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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가(家)의 사람들
피터 콜리어 외 지음, 함규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정확히 903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하고도 두꺼운 책이다. 얇은 추리소설과 통속소설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무척 지루하고 기나긴 시간이기도 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다.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밭을 쉬지 않고 걷다가 가끔 나타나는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강행군을 계속하는 것처럼 말이다.
간혹 록펠러 가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록펠러 가문이 미국의 현대사와 자본주의에 대항해 어떻게 싸우고 부를 축적해왔나 하는 이야기다.
편집진은 30여 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의 축약본을 읽고 완역을 결심했다고 했는데, 문자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겠는가? 개인적으로도 축약본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 책을 곧장 집어던졌을 것이다.
너무 많은 부분이 성공과 창조, 혁신보다는 언론과의 싸움, 노조 또는 정부에 대항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러드로우 광산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무려 30페이지가 넘는데, 그 지루함에 읽다가 지쳐버릴 정도다.
어쨌든 록펠러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 있어 할 내용이 많이 있다.
우선 록펠러 1세는 무엇이 비즈니스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무차별적인 탐욕을 드러내던 밴더빌트, 피스크같은 가문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단지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오명과 비난을 대표해서 뒤집어썼다고 할 수 있다.
록펠러 1세는 석유붐이 한창일 때, 석유 자체보다는 석유를 운송하는 사업에 투자할 정도로 통찰력이 있었다.
2세 또한 모건과의 협상에서 "뭘 팔러 온 게 아니고 뭘 사고 싶어 한다기에 왔다"는 말을 할 정도로 사업 감각이 있는 후계자였다. 그는 주로 록펠러 가문에 씌어진 오명을 벗겨내기 위해 자선사업에 몰두하고 또 어느 정도 성공한다.
나름대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3세의 이야기를 거쳐 4세에 이르면 가문의 결속력이 훨씬 느슨해지고 그 정신도 쇠퇴한다. 록펠러 4대를 다룬 4부의 제목이 '사촌들'이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관계가 그만큼 멀어졌음을 암시한다.
4부에 나타나는 배부른 자들의 오만에는 짜증이 날 지경이다. 4대가 자신들이 '록펠러'이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가를 장항하게 나열해나갈 때는 신물이 날 정도다.
서민 독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들의 행동과 말은 가진 것에 우선 감사할 줄 모르고 투정만 부리는 미성숙한 세대의 것이다.
평소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주말이면 자신의 비행기나 요트를 즐기고, 오래 된 폭스바겐을 몰고 다니지만 그 차를 타고 가는 곳은 자기 소유의 농장이다. 얼마나 이중적이고 어이없는 소탈함인가?
결국 부의 축적에 관한 그럴듯한 이론과 드라마를 기대했지만, 마지막에는 짜증스러움과 함께 책장을 덮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