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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존 - 하얀 죽음의 땅, 북극 탈출기
발레리안 알바노프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무모한 용기로 출발해서 참담한 실패를 겪고 극적으로 생존한 극지원정대의 이야기다.
혹독한 기후에 대한 과소평가, 부실한 음식준비, 계획된 대원 구성의 차질, 북극지형에 대한 턱없는 이해부족, 선장의 어리석은 고집과 탈출 준비... 낮에는 혹한의 추위와 눈보라 속을 행군하고 밤이면 얼어붙은 텐트 속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그리고 설원에서 이국적인 항구에 대한 환상(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 책은 하얀 죽음의 땅에서 살아 돌아온 생생한 기록이다.
알바노프는 비교적 간결하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지독하게 극적이다.
극도로 위험한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는 공포, 극한의 상황,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으면서도 안일한 게으름과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의 동료들과 함께 행동해야 하는 안타까움, 어쩌다 배불리 먹은 날에 느낄 수 있는 평화스런 모습, 사냥감(이)이 가득한 셔츠를 벗어 땅 위에 놓으면 옷이 저절로 기어갈 것 같다는 위트...
알바노프의 섬세한 문장들은 문학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나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자연의 고난을 격고, 피할 수 없는 위험을 견디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스스로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한다.
알바노프는 ‘온갖 고초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우리는 1914년 9월 1일 아르항겔스크에 상륙했다’는 담담한 한마디로 기록을 끝냈다.
책에 수록된 지도상으로 보기에는 고작 손가락 한마디의 거리(?!)인데, 그들은 목숨을 걸고 그 거리를 걸어야 했다니... 새삼 자연이 주는 거대한 공포에 몸서리가 쳐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살아남은 콘라드의 일기에서 엿볼 수 있는 인생의 불예측성, 마치 신의 주사위 위에서 당황하는 듯한 인간을 보는 느낌도 안타까움과 비극적인 감동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