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마도 미국인은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학자 조너선 덜은 캐나다 사태의 배경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인은 자신들의 고결한 대의를 굳게 믿었기에캐나다인이 자신들을 불신할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못했다."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이다.
삶의 끝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업가 벤은 캐나다 사태를 되돌아보고 캐나다를 정복하는 것보다 구매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전쟁에 지친 프랭클린은 이러한 생각을 모든갈등에 적용했다. "내 생각에는 정치인들이 산수를 조금만 더 잘하거나 계산에 조금만 더 익숙해도 전쟁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 P339

프랭클린이 몬트리올에서 보낸 짧은 시간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캐나다 사태를 기념하는 기념비 같은 것은 없다. 캐나다 원정의 연대기를 담은 두꺼운 책도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승리만큼이나 우리의 패배도 기념해야 한다. 승리와 패배는 우리생각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는 한두 개의 더나은 선택으로 살짝 다른 길을 가게 된 패배다.
프랭클린이 캐나다에 남긴 흔적을 더 깊이 파헤친다. 캐나다인친구인 마틴과 캐런에게 말하니 친구들도 도와주겠다고 한다. 캐나다인인 두 사람은 친절할 뿐만 아니라 유능하기까지 하다. 나는 조사가 착착 진행되리란 것을 알았다. - P339

자명한진실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는 논쟁을 초월한다.
문제가 까다로워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가 이런 진실을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번 자명하다고 선언된진실은 더 이상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점은 크나큰 자유를 준다. 예를 들어 내가 딸을 사랑한다는 것은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익히 잘 알기때문에 의문을 품거나 ‘증명‘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그냥 사실이다. 나의 또 다른 자명한 진실은 내가 과체중이라는 것이다. 나한테 그 말을 해주려고 내 몸무게를 잴 필요는없다. 몸을 청바지에 욱여넣을 때마다 나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으니까. - P351

벤의 문도 닫혔다. 수영의 문(완전히 닫힌 건 아니었다), 섹스의 문, 결국에는 보행의 문까지. 그러나 벤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아직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문에서 기쁨을 얻었다. 심지어 닫힌 문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닫힌 문은 아직 열려 있는 문, 정말로 중요한 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벤은 "지혜의 문"은 절대로닫힐 일이 없다고 말했다.
벤은 활력을 잃지 않았지만 젊음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젊은이를 따라 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자기 나이를 온전히 받아들였고 심지어 찬양하기까지 했다. 나는 벤의 삶이 그저 바쁜 것이 아니라 유의미했다는 사실에서 이런 활력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벤은 미국 독립 혁명에서 그간 계속 찾아 헤맨 목적을, 자신의 집을 발견했다. 게다가 70세의 나이에! 어쩌면 나에게도 아직 시간이 남았을지 모른다. 가방에 손을 넣어 책 한 권을 꺼낸다. 그 안에는 벤의 초상화가 여럿 담겨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파시에서 프랭클린의 이웃이자 친구였던 프랑스 화가 안-로잘리 보케 피유월의 작품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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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국인 마르시아 발리시아노가 이끄는 프랭클린의 열성팬들이 구조에 나섰다. 이 집은 잉글리시 헤리티지 English Heritage 와영국 철도, 심지어 마거릿 대처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작은 박물관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집에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요." 벤저민 프랭클린 하우스의 현 책임자인 마르시아가 내게 말했다. 물론 비유적 표현이다. 아닌가?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파리에 있던 프랭클린의 집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집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일까? 마르시아 발리시아노 같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행운도 한몫했다.
섭리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생각보다 아는 게 적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적다. - P324

아무렇게나 바쁘고 싶진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좋은 바쁨, 의미 있는 바쁨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보통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행복은 순전히 주관적인 상태다. 의미는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발언권이 있다. 자기 안으로 향하는 쓸모는 자기중심적인 헛짓거리다. 우리가 다른 중생에게 쓸모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바쁨이 필요하다. 물론 쉬면서 재충전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완충된 배터리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벤의 말처럼 "여유로운 삶과 게으른 삶은 다르다." 여유는 유용하다. 게으름은 그렇지 않다. - P330

게다가 독립군에 합류하지 않으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 "차갑고 침울한 침묵 속에 빠져 있어야 했다. 그건 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하며 자기 쓸모를 다해야 했다. 벤은 잃을 것이 많았을까? 어떤 면에서는 그랬다. 그는 오랜 세월을 들여 평판을 쌓고 큰돈을 모았다. 둘 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70대가 된 벤은 자신에게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며, 조지워싱턴에게 한 말처럼 "즉시 이 땅을 하직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두려워하면서도 해방감을 느꼈다. 노인이었던 그는 자유롭게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세대가 "어린 인디언 옥수수밭처럼" 번성하는 미국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이 옥수수들은 비바람에 시달렸으나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두 배의 활력으로 쑥쑥 자라날 것이고, 밭의 주인뿐만 아니라 지나가며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큰기쁨이 될 것"이었다.
벤의 이런 면이 좋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라는 빈 허공을 응시하며 허무가 아닌 의미를 찾아낼 줄 아는 그의 모습이 좋다. 그의 불꽃은 꺼졌을지 몰라도 그 빛은 계속해서 남아 새로운세대의 마음과 정신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 P332

역사는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연속이다. 오늘날 피할 수 없는결과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하나의 길 뒤에는 언제나 수십 개, 수백 개의 대안경로, 매혹적인 만약의 수가 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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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



오늘부로 너의 모든 계절을 만났어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고개를 떨군 채 차곡차곡 말라가고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을 받아 안는 너의 모든 계절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내 안에서 이야기가 될 수 있게
기다렸어

한 존재를 안다고 말하기까지
매일매일 건너왔고

건너왔다는 건
두 번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일 거야

내가 볼 때
너도 보았겠지

너는 걷거나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목격자가 될 수 있고

내가 어떤 표정으로 네 앞에 서 있었는지는

오직 너만이 알 테니까

살아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나눠 가진 것
동심원을 그리며 가라앉은 것

죽지 마 살아 있어줘
조약돌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거울이 되어주는 풍경들
가라앉은 말이 더 낮게 가라앉는 동안

새잎은 말려 있다
말려 있다가 피어난다
아침, 노트를 펼쳐
펼쳐지는 영혼이라 적을 때

멀리서 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겪고 있다
잎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귀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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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낙천적이지는 않지만 희망찬 사람이다. 우리는 두 단어를혼용하지만 사실 둘은 다르다. 낙천주의자는 자기 행동이나 운이나 어쩌면 신의 개입을 통해 어떻게든 밝은 미래가 펼쳐지리라 믿는다. 희망찬 사람은 무조건 밝은 미래가 오리라 믿지는 않지만 모든 선함은 결국 자기 행동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낙천주의자는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믿는다. 희망찬 사람은 자신에게승산이 없음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간다. 희망은 역기를 들며 열심히 몸을 단련하는 낙천주의다. 벤 프랭클린은 낙천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희망찬 사람이었다.
다시 한번 아르모니카 연주를 시도한다. 이번에는 손가락의 압력을 바꿔본다. 약하게, 세게, 그러다 다시 약하게. 그러자 마침내들려온다. 소리다! 진심으로 누가 듣고 싶어 할 소리는 아니지만소리는 소리다. 그리고 소리는 음악과 겨우 반걸음 떨어져 있다. 나는 유리 아르모니카와 교감했다. 들었어요, 벤? 당신과 나, 우리는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요. - P289

벤은 불안함 없이 나이 들었다. 그가 쓴 편지들을 검토하면서나는 노년의 시작에 대한 그 어떤 하소연과 불평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의 몸에 신장결석과 통풍 같은 쇠퇴의 징후가 나타나고있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벤은 자신의 다양한 질병이 평정심을깨뜨리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절대 괴팍한 노인네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더 차분해졌다. 부처 벤이 점차 강해졌다. 트위퍼드 하우스로 피신하기 직전이었던 1771년 여름 프랭클린은 여동생 제인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자신이 수많은 악의를 목격했고 "인류가 서로에게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나는 내가 알게 된 이세상을 꽤 좋아하는 듯하구나."
내가 탄 열차가 워털루역에 진입할 때쯤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이런 희망은, 그 고집스러운 낙관은 어디서 나왔을까? 타고난 걸까, 아니면 학습된 걸까? 물론 나는 후자이길 바란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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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의 제목은 "닥터 프랭클린: 시민 과학자"다. ‘닥터‘라는 직함이 가짜임을 알기에 빙긋 웃음이 나오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 대신 ‘시민 과학자" 부분에 집중한다. 매우 흥미로운 조합이다. 우리는 보통 이 둘을 나란히 놓지 않는다. 시민군 가능하다. 시민 케인? 있고말고. 하지만 시민 과학자? 겨우 1998년에 생겨난 이 용어는 크라우드소싱 연구를 의미한다.
시민 과학자의 다른 말은 ‘무임금 노동‘이다.
시민 과학자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환경단체 어스워치Earthbranch‘와 함께 브라질 열대우림으로 원정을 떠났을 때였다. 여섯 명의 시민 과학자와 나는 기후변화를 막는 데 일조하고 싶은바람으로 브라질의 진짜 과학자들을 도와 열대우림에 나무를 심고 설치류의 건강 상태를 추적했다. 힘들고 궂은 일이었다. 설치류의 미끼를 탁구공 크기로 빚었는데, 바나나와 땅콩버터, 산패 - P192

한 고기를 질퍽하게 섞어 만든 이 미끼는 촉감과 냄새가 정확히여러분이 상상하는 그것과 똑같았다. 씨앗을 채집하고, 심고, 옮겨 심고, 물을 주고, 그밖에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뜻있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씨앗과 함께했다. 평생 한 것보다 샤워를 더 많이 했는데도 평생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비정상적인 크기의 설치류를 비롯해 수많은 포유류의 무게를 달고 크기를 재고 사진을 찍었다. 포획 틀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겉은 딱딱하고 속은 끈적한 도마뱀 똥을 치웠다. - P193

그때 나는 내 몸으로 일했다. 그냥 일이 아니라 손톱 밑에 때가피고, 열대의 햇볕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모기가 코를 무는 그런고달픈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을 하고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친소리로 들리겠지만) 돈을 내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가 정말로 정신 나간 부분인데) 이 일이 즐거웠다.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내가 이 세상을 더나은 곳으로 살짝 더 푸릇푸릇하고 시원하고 건강한 곳으로 만들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벤이라면 분명 나의 짧고 굵은 시민 과학자 생활을 칭찬했을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벤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는 길고 쓸모 있는 삶의 상당 부분을 시민이 아닌 대영제국의 자랑스러운 신민으로 살았다. ‘과학자‘는 18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다. 프랭클린은 자연철학자였고 당시에는 자연철학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을 아울러 의미했다. 자연과 철학은 비록골치 아픈 결혼생활이었지만 아직 이혼하기 전이었다. - P193

다시 우리 둘만 남게 되자 내가 이저벨에게 묻는다. "만약 식민지 시대 미국으로 갈 수 있다면 누구와 점심을 먹고 싶으세요?"
프랭클린은 아니라고, 이저벨이 대답한다. "내가 보기에 프랭클린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에요." 나는 이저벨이 프랭클린을 비롯한 모든 역사적 인물을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프랭클린의 여동생 제인과 먹을 것 같아요. 제인은 여성이라는이유로 집에 갇혀 있었어요. 만약 제인이 남자였다면 또 한 명의벤 프랭클린이 됐을 거예요." 제인 본인이 길었던 삶의 막바지에인정했듯이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수많은 보일과 클라크, 뉴턴이 그저 유리한 상황을 만나 적절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사에 무지한 채 보잘것없는 삶을 살다 죽었을 것이다." 벤 프랭클린의 초상화는 수십 개가 걸려 있지만 제인의 초상화는 단 한 개도 없다. 프랭클린이 살던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도왔던 여성과 노예는 지금도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다. - P198

감정의 측면에서 나는 벌거벗음의 정반대에 있다. 내 몸은 크기와 스타일이 다양한 보호복으로 겹겹이 싸여 있다. 유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호복 중 하나다. 어찌나 몸에 꼭 맞는지 내10대 딸처럼 매우 섬세한 사람만 그 안을 꿰뚫어 보고 꼬집어 언급할 수 있다. 이 옷가지들은 전부 나를 구속하고 몸의 가동 범위를 제한한다. 사람들은 겹겹의 보호복 너머로 나를 만지기는커녕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이면 옷을 벗기가 더 쉽다. 외국인은 벤만큼 푸짐한 내 뱃살이나 수술 자국 같은 내 몸의 수많은 흠결을비판적으로 바라볼 확률이 덜하다. 내 감정의 흠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들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다 한들 뭐 어쩌겠는가?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다. - P257

좋은 삶이지만 완벽한 삶은 아니었다(삶은 완벽해지는 법이 없다). 크게 존경받는 미국인이었지만 어쨌든 미국인이었던 벤은 결국외부인이었고, 그것도 좋은 혈통이나 대학 졸업장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그는 런던 상류층의 유리창에 코를 딱 붙이고 안을 들여다봤지만 입장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 클럽의 회원에 가까웠지만결국 회원은 아니었다. 그가 스코틀랜드인 인쇄업자 윌리엄 스트레이핸(프랭클린은 그를 "스트레이니"라고 불렀다)이나 퀘이커교도 식물학자이자 전기 전문가 피터 콜린슨 같은 외부인과 어울린 것도당연했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왕실 의사였던 존 프링글을 비롯한 진짜 의사도 많았다.
런던은 활기와 지적 자극이 가득했지만 안식처는 아니었다. 영혼의 장소가 아니었다. 벤은 이따금 한바탕 향수병을 앓았고 벤저민 웨스트 같은 예술가와 동료 식민지 대표 등 런던에서 점점존재감을 키워가는 다른 미국인들과 만나며 향수병을 달랬다. 그밖에도 영국 땅을 잠식한 미국의 식물들이 있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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