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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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가의 책들을 좋아한다. 소설집 [봄빛]에서 시작된 끌림이 [행복], [빨치산의 딸1~3],에 이어 [숲의 대화]까지 오는 동안 여여하다. 작가의 철학이, 삶이, 세계관이 시종일관 감동시키고 소소한 일상들이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우리 시대의 주인공들은 그런 서민적인 풍경 속에 존재하리란 기대감이 그녀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숲의 대화]를 읽어 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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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펀드 -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권산 지음 / 반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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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번이 투자에 실패했다.

  지난해에도 은행원의 권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결국은 터무니없을 만큼 낮은 이자율에 혹시나 하고 선택했다가 역시나 실패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게 묻어두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쓸 곳은 생겼고 처분하자니 어김없이 마이너스였다. 그래도 해지 할 밖에...

  다시는, 다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펀드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고 작심했다. 

  그런데 [맨땅에 펀드]란다.

  '쳇~! 뭔 놈의 펀드를 땅에다가... 쳇, 쳇, 쳇~' 했다.

  또 다시 실패할 게 뻔한 투자 위험 등급 1등급, 이라는 문구 때문에 투자를 안 한 것은 아니다. 단언컨대! 가뭄에 콩 나듯 밥을 해먹는 내가 배당 되는 농산물을 소화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책이란다.

  책이라면, 그의 책은 손해 보아도 좋은 확실한 투자 이유를 가졌다.

  무조건 담백하고 정갈한 맛의 글을 좋아한다.

  오래 지리산닷껌에서 만난 그의 글은 그렇다. 그래서 질렀다.

  '고뤠! 나도 뭐 그쯤은 치사빤쑤~ 과감하게 [맨땅에 펀드]랑께라우.'

  농사짓지 않고 시골에서 사는 권산의 좌충우돌 구례 생활의 두 번째 이야기이고-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땅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무슨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가 있겠나 싶은데, 좀 보탠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이 좀 많이 팔렸으면 싶어서다. 

  거기에 출현한 어르신들의 삶이 공감 백배다.

  호랭이도 안 물어갈 수석 펀드매니저 대평댁을 비롯하여  펀드매니저인 지정댁, 대구댁, 갑동댁, 왕샌등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 오미마을 사람들의 실감나는 현실의 중계 방송이 그렇고 이제는 유명인이 되어버린 듯한 농부 홍순영 형님과 그의 가족들, 오미동의 중심 운조루와 허당 농부 윤정수씨, 손이 먼저 떠오르는 구례 감의 대표주자 김종옥형님, 언제나 부지런하고 야무진 '산에사네' 농장과 카페를 운영하는 지리산 노을언니, 귀촌하여 고생이 이만저만아닌 가운데 인기도가 급 상승중인 '나는 설비다'의 무얼까와 일탈 부부, 아쉽게 떠나버린 박과장과 윤하,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펀드의 책임자인 어리버리한 권산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 속에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그들이 매일 보는 식구들 같은 생활이, 땀이, 웃음이, 징함이 있다.

  우리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맘대로 땅으로 맺어진 식구가 되어버렸다.

  안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고, 보면 짠해지기도 하고 장하기도 해서 징허디 징한 식구들이다.

  계속 실패한다 해도 투자할 이유가 충분한 우리 식구들이 운영하는 맨땅에 해딩하기, 아니 펀드다.

  부디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땅을 믿는, 땅심을 믿는 이 땅의 모든 농사짓는 바보들과 농사도 모르는 바보들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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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공원에서 창비시선 354
고영민 지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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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
               고영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모래
                고영민

 

봄녘,
보도블록을 새로 깐 자리에
인부들이 모래를
흩뿌려놓았다

틈을 메운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그냥 가만히
흩뿌려놓고
가는

 

 

벽돌 한장
                고영민

 

변기 물통에 벽돌 한장을 넣어두었다

네 안에도 몰래
벽돌 한장 넣어두고 싶다
내 심장 같은

물을 내리고
다시 새 물이 차오를 때
고여있던 물이 어느 저녁으로 급히 빠져나갈 때

벽돌 한장의 부피만큼
더 빨리
네 숨이 나를 향해
차오른다

 


 

시집 한 권에 8000원,

통상적인 밥 한 그릇의 가격이다.

아니, 커피 한 잔의 가격이다. 
이런 시편들을 만날 수 있는데 밥 한 그릇의 값이고

커피 한 잔의 값이라니......

어쩐지 시인들께 죄송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한 잔의 커피가 소중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시인의 심장을, 시인의 가슴을 통째로 가질 수 있는데...

시집을 사는 일은

내 속에 

벽돌 한장을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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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 오늘의 작가 총서 27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27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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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어둡고 쓸쓸한 날들의 평화

  늦가을의 바람이 제법 찼고, 해뜨기 전의 구름들은 파란 잉크가 번진 솜뭉치 같았다. 비가 한 차례 내리면 곧 이어 지상엔 영하의 날씨들이 닥칠 거였다. 겨울, 만물이 어둠 속의 흐느낌처럼 가냘 퍼지는 겨울.

 

 

p25

  언뜻 그런 우스갯소리들이 엉터리인 것 같지만, 사실 전쟁터에서도 사람이 늘 찡그리고만 사는 건 아니거든, 사람들은 우울한 환경 속에서도 해학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를 제공받게 마련이지. 생존하려고 말이야. 웃음은 폭풍이 몰아치는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해주는 배와도 같아.

 

 

 

 

p47 이제 나무묘지로 간다

  고풍스런 옛 관공서 건물에는, 지난여름 약진하는 군대와도 같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담쟁이덩굴의 손자국들이 역력했다. 무성하고자했던 것들, 번식하고자했던 것들의 상흔. 나는 어느새 손톱이 다 부러져 나간 것을, 내 추억의 검은 피가 딱딱하게 맺혀버린 자리를 보고 있었다.

 

 

p52

  터무니없는 고요라는 것, 나는 폐 속에 갑갑하게 차있는 그 고요함으로 인해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p

 

p53

  거기엔 어김없이 그 혼령의 옷자락 같은 파란 안개가 있었다. 나는 내 영혼이 색맹이기를 바랬다. 세상의 안개들은 워낙 우윳빛일 뿐, 저 안개가 자꾸 파란색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눈이 이상해서라고 .......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향해 날카롭고 가느다란 음각의 판화를 새기고 있었다.

  ........ 아무런 언어 없이 서로의 세계를 주고받는 모습을.

 

 

p62

  물이 끓는 난로에 올려놓은 겨울 귤껍질처럼, 서서히 내 몸에서 추억의 냄새가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

땅에 묻히기를 거부하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교감하는 어떤 장소에서, 나무만큼 영원한 모습으로 마주치리라는 것을.

  ....... 손끝에서 별빛 같은 아픔이 반짝였다.

  별빛 같은 아픔이.

 

 

 

 

p67 그녀에게 경배하시오

  바람이 생선처럼 식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p101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복만 입히고서도 모든 사람들을 죽음에 가깝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닌 곳이었다. 생의 체념과 연민의 범벅이 표현하기 힘든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그런 곳이었다.

 

 

p109

  추억에도 속도라는 것이 있다. 나는 아주 드물게 그 속도를 감지하곤 한다. 나는 내 그림 속의 인물과 사물들이 그 추억의 속도로 움직이길 원했고, 그 그림들에서 지나간 내 모습들을 반추할 수 있기를 추구했다.

 

 

p114

  지독한 불면의 밤 홀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방이 활활 타오르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내가 외로움이라는 도가니 속에 들어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귓속으로 마치 수돗물이 욕조를 채우듯 올라오는 느낌, 내 삶의 대부분은 그런 쓸쓸함과의 싸움이었다고 장정이 멋진 공책에 쓰면, 그것이 바로 내 자서전이다. 삶에 관한 주의; 부작용인 것이다.

 

 

 

 

p121 레몬트리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초저녁 서쪽 하늘의 고혹스런 비너스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곧이어 화성의 붉은 사막이 남서쪽 처녀자리 일등성 스피카 곁을 산책하고, 목성은 길잡이별 거문고자리 직녀의 밝기를 무시하며 제 고뇌를 빛낸다.

  ....... 만일 고통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면, 불행조차도 함부로 찾아와 주질 않는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결국 그가 아무것도 아님을 뜻하기에.

 

 

 

 

p153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지나치게 소심한 배려는 가장 육중한 비판에 다름 아니라는 걸 왜 모르고 있을까, 그대는.

  내가 쓴 소설을 언제나 처음 읽던 여자. 그녀가 쓴 시를 항상 외우고 있던 나. 두 사람 모두 이젠 내게서 떠나라. 내 사랑의 추억, 기다림이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윤회의 혹독한 끈마저 끊어지도록 매서운 속도로.

 

 

p161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두려운 가르침. 진리의 명제 그 역도 참일진대, 훗날 시작된 방황이 저렇듯 끝을 모르고 먼 곳으로 진행될 때, 우린 무작정 미래가 궁금해지고 만다. 종교 없이도 운명을 믿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고는 있지만, 결코 영원히 사랑한 수는 없다는 서글픈 확신.

 

 

p170

  문이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삶은 깜깜한 복도 정도가 아니야. 미로조차도 아니고. 하지만 어찌 어두운 실 없이 양탄자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겠냔 말이지. 보다 포괄적이고 따뜻한 비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네.

 

 

p172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바쁘고 정교한 노동인 줄 아나? 가구는 없고 전화만 딸랑 놓인 방에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다가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운명을 바꿔놓을 만한 소식이 끊기곤 하는 게 세월이지.

  ....... 도시에서의 마흔과 이런 시골에서의 마흔은 다르지. 여기선 세월이 은은하고 선명한 탓에, 시간은 속도가 아니라 얕고 깊음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네.

 

 

 

 

 

 

이응준은 처음 만나는 작가다.

오래 전에 구입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좋다.

야~ 좋다, 하면서 읽었다.

왜 그동안 밀어두었는지......

긴 제목이 어색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라고 읽으면서 실소를 깨물었다.

전체적으로 긴 제목이 많다.

제목을 정하는 작가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짧은 제목이 강렬한 함축의 의미를 담는다면

긴 제목은 낭만적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갖게 해준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이 특히 그러했다.

이 작가는 시를 쓰고 소설을 짓고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일까?

감각적인 문장이 많고 시적 은유를 가진 행간에 자꾸 발목이 잡혔다.

 

최근에 몰입하는 작가 중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에서.

긴 호흡의 문장에서도 강력하게 끌리는 시적 운율을 만난다.

책 耽(탐)이 그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가을에 읽은 책을 이제야 쓴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바야흐로 12월이고 겨울이다.

어쩐지 길 것 같고 추울 것 같은 겨울

살아보자.

"겨울, 만물이 어둠 속의 흐느낌처럼 가냘 퍼지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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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시선 204
장석남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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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水墨) 정원 1

- 江(강)

                                장석남

 

먼길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강가에 이르렀다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버드나무 곁에서 살았다

겨울이 되자 물이 얼었다

언 물을 건너갔다

다 건너자 물이 녹았다

되돌아보니 찬란한 햇빛 속에

두고 온 것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버드나무 곁에서 살았다

아이가 벌써 둘이라고 했다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중에서

  

 

       

 

 

수묵(水墨)은 번짐,

여백이 가득한 아슴아슴한 번짐.......

산에 들에 어둠이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은 강가에 이르는 계절, 십일월.

강을 건넌다는 것은 지금 속해 있는 세상를 떠난다는 것

‘되돌아보니 찬란한 햇빛 속에 두고 온 것’은.......

간절한 그리움이고 회한이겠지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가슴을 친 들

지나간 오늘이 다시 올까요?

??

?

 

오늘, 날마다 오늘

생애에서 최고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농원에서 머문 시간을 포함해서

그대 생의 가장 빛나는 오늘을 응원합니다.
                                        **
농원 식구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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