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말들이 내게로 온다. 한번은 역전 식당에 국밥 한그릇 먹으러 들어갔는데, 독상을 받아놓고 밥을 먹는 내 등 뒤로 주방 이모와 주인아주머니의 구성진 남도사투리가 윙윙거렸다. 스마트폰으로 행선지인 도서관 위치를 찾던 나는 한 대목에서귀가 번쩍 뜨였다. "그 여자가 얼마나 예쁜지 가을 고등어처럼 반짝반짝해야."
‘가을 고등어!‘ 나는 얼른 지도창을 빠져나와 검색창을 열었다.
‘가을 고등어 낚시‘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가을 고등어는 다른 계절에 비해 지방이 올라 고소한 맛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물오른 등 푸른 생명체라니. 싱그러운 말의 파동이 그대로 전해왔다. - P5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슬프지만 일을 하고, 슬픈데도 밥을 먹고, 슬프니까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뭐든 써보자고 하면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 P6

아름답거나 아릿하거나, 날카롭거나 뭉근하거나 타인의 말은나를 찌르고 흔든다.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이 모양인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 P7

핍보다 과잉이 들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 타인의 입장에서는 일이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동안 성급한 추측과 단정, 존재의생략과 차별에 대한 예민성을 기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삶을 담아낼 어휘는 항상 모자라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다는 것. 이 예정된 말의 실패에 대해 황현산은 《말과 시간의 깊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제 정신에 들어있는 내용을 말로 소통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말이 그 정신 내용을 다소통시키는 것은 아니다. 말은 복수의 인간을 상정하지만, 정신에는 한 개인에게만 특수하게 해당되는몫이 항상 남아 있다."
나의 편견을 확인할 때마다 나의 소망은 구체화됐다. 모두를 설득하는 글보다 "한 개인에게만 특수하게 해당되는 몫"을 놓치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 P8

"한 사람 한 사람 대단해 보여요." 같은 고백들. 물증은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본디 글쓰기에는 한 사람 인격의 최상의 측면이 발휘되는 속성이 있다. 그 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잡아준다. 한 사람을사연과 이야기의 존재로 바라보면 존경스럽다. 나는 길에서 만나는사람들을 틈틈이 관찰한다. 야쿠르트 아줌마, 버스 운전기사, 학원가는 아이를 보면서 저이는 어떠한 삶의 사정과 행로를 거쳐 지금여기에 있을까 상상한다. 한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무작정 혐오하기는 어렵다. 누구라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서로 아무런삶의 연결고리가 없을 때 더 쉽게 혐오하지만, 서로의 삶이 한 자락이라도 섞이면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는 꼭 생긴다. - P9

그런 측면에서 글 쓰는 일은 좋은 직업 같다. 나는 인터뷰를 하고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삶을 위무하고 지혜를 안겨주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선물 받는다. 혼자만 알기 아깝다. 이야기 전달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소설가 위화도 "작가란 집시들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 P10

그렇게 불확실한 날들을 10년쯤 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어정쩡함이 글쓰기의 동력이었음을.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것과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 했다. 어차피 더러워질걸 알면서도 또 청소를 하듯이 말이다. - P18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다는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하는 직장인보다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 P19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4)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서는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 - P24

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사실로 바꾸는"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 "나를 단한 번도 알아보지 못한" 저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에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연구 대상‘ 엄마를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딸의 지적여정을 함께 하고 난 후, 나의 꿈은 정교해졌다. 스스로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 엄마 되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수시로그려보기. 그저 고양이처럼 말없이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 P25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않겠지만 신상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차례의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 탑승 기회가 남았다. - P30

저자의 일침대로라면 육성만 담지 말고 울림과 떨림까지 담아야 하고 그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으로 가능하다.
이 무위의 글쓰기라는 경지는 아득하지만 일단 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조급해진 마음은 누그러뜨려준다.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수행하려는 욕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다스리라는 글쓰기의 이정표 앞에서 나는 또 가던 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글이 불이 되는 글쓰기를 해낼 재주는 없지만 쓰면서 알아가고싶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으면, 혹은 되었다면 하루에 이삼십 장씩쓰라는 말보다 이쪽이 더 윤리적이며 매혹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미글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면기에서 면발 나오듯 줄줄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며, 그렇게 능력을 행위로 소모하다간 4대 보험 적용도 안되는 무명 작가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는 자각이 아주 세게 드는 조언이다. 고마워요, 아감벤 씨, - P34

수레는 늘 엎드려서 네 발로 무지랑 눈을 맞추었다.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되기"인가. 자신의 고정된 위치를 버리고 다른 존재로 넘어가기. 한 사람의 놀이 능력은 곧 교감 능력이자 변신 능력이고 사랑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고양이는 만져지는 자연이다. 무지는 명당자리를 용케도 발견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자마자 손 씻고 오면 그새 외투 위에 왕처럼 앉아 있다. 목도리 · 스카프부터 쇼핑백 · 책까지 폭신하든단단하는 보드랍든 뭐든 한 겹 깔고 본다. 커튼 사이로 한줌 별이 들면 그곳이 아무리 손바닥만 할지라도 몸집의 표면적을 최대화해 누린다. 볕을 모은다. 무지를 보면서 알았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 게아니라 고양이 키우는 걸 싫어했던 거구나. - P37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여섯 살 여자아이 ‘무니‘의 무지갯빛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운다.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 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 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 P42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 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102쪽)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없이 일하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타인으로부터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 P45

그간은 글쓰기를 열렬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만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나는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평소 목소리 없는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해야 했던 것이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 P47

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거나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변명을 듣고 나니 그의 언행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 P51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탓으로 단정하는 저 장면은, 한국사회의 장대한 폭력에관한 서사를 한 여성의 트라우마로 간단히 환원해버리는 목소리와겹친다.
‘남자도 돈 버느라 힘들다.‘ ‘남자도 설거지 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목숨도 던질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구구절절한 말하기는 (여성이 그렇다는 걸 알았다가 아니라) 남자는 이렇다는 걸 알아달라는 한 줄 요약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나의 역량이나 경험 부족 탓이 아닐까 자책했으나 솔닛의 사례와 연결되니 보편적 젠더 현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P52

"남자들은 감정이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백인은 유색인종과는 달리 다른 인종에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자신만을 볼 뿐 남들은 보지 않는 것이다." (89) - P52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부장제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그 하자와 결함을 체화한 젠더 역할 수행을 윤활유 삼아 굴러간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
난 강연 중 눈물바람이 세 번째다. 두 번은 말하다가 혼자 울컥했다. 더 울어야 할 것이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19쪽) - P53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난 그래도엄마가 됐을 거 같다. 아이를 무작정 좋아하는 데다가, 한 생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화와 노동의 총량에 대한 정보를 알더라도 구체적인 실감은 어려우니 용감하게 출산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놓고 여전히 생일날 온전한 식사를 위한 외출권과 효행 미역국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심정으로 살았으리라.
이러한 내 부산스러운 행동과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낳을자유‘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공적 자원 "281쪽)과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여성이 비난받지 않을 자유"(283쪽)가 확보된 상태. 특정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관계 맺기가 가능하도록 가족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나는 무한한 모성을 강요하는 세상의 모든 면접관들에게 말씀드릴 작정이다. 엄마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 P57

결국 딸은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네 상식과 내 상식의다름, 자기 불안의 겨룸, 상호 애환에 대한 무지, 욕망의 투사, 필요의 거래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엄마와 딸. 그러나 패자가 정해진 싸움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는 자식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이는 내 자식이고 나는 그 애의 부모이고, 그 사실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196쪽) 작은 인간‘의 태를 벗고 세상의중심으로 나아가는 딸아이에 비추어 ‘왜소해진 나‘를 본다. 더는 작지 않은 아이가 더는 쪼그라들고 싶지 않은 엄마를 흔들어 깨운다. - P72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귀한 깨우침이 담긴 고백이다. 나는 수업과 강연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 아니 자기 삶을진득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그래 본 적이없어서인 것 같다. 한국에서 입시제도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 글쓰기란 남에게 평가받는 일이다. 출제자의도에 부합하는표준화된 ‘답‘을 찾다 보니 자기로부터 멀어지고 남의 사고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된다. - P74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48쪽) "미리 어떤 것을 써야지 생각하고 머릿속에 준비해둔 원고를 ‘프린트아웃‘한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18쪽)글쓰기를 시작하는 용기, 그리고 방법은 내 안에 있다. "자기 자신을 단서 삼아 이야기를 밀고 나가" 32 야 글쓰기에 힘이 붙고 논의가 섬세해지면서 자기의 고유한 목소리가 나온다. 엄마에 관한글쓴이의 고백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 (311쪽)진다. - P75

‘나는 왜 엄마만 미워했을까‘라고 글을 쓰는 딸이 어딘가에 있고, 다른 한쪽에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되는가‘를 생각하며 육아법을 설계하는 엄마가 있다. 저마다 속상하고 답답할 때마다 한 줄 한 줄 길어 올린 글쓰기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풍경을 그려본다. 그럴 때 존재를 옥죄는 말들이 "인정과 도리에 맞는 언어로 교체되고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질 거란 믿음이 내겐 있다. "그것은 채점자 앞에 제출한 ‘답안‘이 아니라 될수록 많은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 때문"(303쪽)일 것이다. - P77

이것이 눈물의 완창인가 박연준 시인이 친구 앞에서 마음 푹 놓고 실컷 울어댄 일이 있는데 그걸 두고 친구들이 "완창" (판소리의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 한 세월떠나보내는 느낌, 사연 한편 완성되는 느낌으로 더없는 표현이다.
요즘 나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익사당하지도, 폭포 같은눈물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재무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집은넓어졌고 조용히 울 수 있는 방도 생겼는데 예전보다 덜 운다. 나이들면 머리숱이 줄고 생리 양이 줄듯이 눈물도 줄어드는 걸까. "가끔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그리고 그만큼 슬프지가 않아서 완창을 할 수가 없다. 살면서 완창은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닌가 보지?" (50)한 세월이 갔다. 눈물도 잦아들고 눈물의 목격자도 떠났다. 멀리서 지켜봤을 거 같다. 내가 모처럼 사연 있는 여자처럼 한바탕 운그 사연을 나의 스물두 살 자동차는 알리라. - P80

궁극적으로는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양한 면이 있다. 이러한 선과악의 복잡다단한 조합은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인격은 극히 다양한 속성의 복합체일 뿐만 아니라 그 속성들은 해마다, 심지어 시간마다 달라진다." (82쪽)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허물과 결핍의 존재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우상이 된다는 건 한 사람이 단순화·고정화·신화화된다는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날 그는 용감했다." - P82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나마 용감하다. 글 바깥에선 비겁하고 부산스럽지만 글 안에서만은 일관되고 침착하려 애쓴다. 글과 삶의(불일치는 내 삶의 영원한 화두다. 잘 존재하는 방법은 어렵고, 글쓰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삶에서 그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일찍이짰다.
글쓰기 수업도 그 일환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학인들은 매번말한다. "우리 수업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러면 내가정정한다.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 P83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대인배라도 된듯한 그 착각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임은 물론이다. "작가란 최상의 순간에 자기 인격의 최상의 측면을 갖고 주로 글을 쓰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83) 저마다 삶에 몰입하고 자기 인격의 최상을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상의 존재도 자연 소멸하지 않을까.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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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은 쓰다

                            김태정

  청매화차라니

  나같이 멋없고 궁색한 사람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청매화차

  무슨 유명한 다원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초의선사의 다도를 본뜬 것도 아닌

  이른 봄 우이동 산기슭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래바람에 휘날리던 꽃잎 한 주먹 주워

  아무렇게나 말려 만든 그 청매화차

  한 사나흘 초봄 몸살을 앓다 일어나

  오늘은 그 청매화차를 마셔보기로 한다

  포슬포슬 멋대로 말라비틀어진 꽃잎에

  아직 향기가 남아 있을까

  첫 날갯짓을 하는 나비처럼

  막 끓여온 물 속에서 화르르 펴지는 꽃잎들

  갈라지고 터진 입안 가득

  오래 삭혀 말간 피 같은 향기 고여온다

  누군가 내게 은밀히 보내는 타전 같기도 해

  새삼 무언가 그리워져 잘근잘근

  꽃잎 한점을 씹어보았을 뿐인데

  입안 가득 고여오는 꽃잎의

  은근하게도 씁쓸한 맛

  꽃잎의 향기는 달콤하나

  향기를 피워올리는 삶은 쓰거웁구나

  청매화차라니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의 청매화차라니

  삶이 초봄의 몸살 같은 마흔은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잎의

  쓰디쓴 맛을 사랑할 나이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중에서

  "청매화차라니/ 나같이 멋없고 궁색한 사람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청매화차" 이 구절은 입안에 오래 남아있는 향기처럼 마음에 남는다. 매번 읽을 때마다 그렇고 가끔 나와 어울리지 않을 어떤 장소에서도 문득 떠오른다. '청매화차라니'는 가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체념과 포기의 상징 같은 것이다. 감정이입을 쉽게 하는 나는 시인의 "청매화차라니/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의 청매화차라니/ 삶이 초봄의 몸살 같은 마흔은/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잎의/ 쓰디쓴 맛을 사랑할 나이"에서 무너진다. 마흔의 나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시인의 생애는 '향기를 피워올리는' 거기 멈춰있고 (벌써 11주기가 지나간다.) 나는 여전한 진행형이지만 진행형일 뿐 '쓰디쓴 맛'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가을이면 단풍을 만나듯 시집을 만나본다. 시를 음미하듯 몇 편 읽고 나면 마음이 수굿해진다. 가난한 저녁도 힘이 된다.

  지난 주말은 웨딩홀 뷔페에서 접시 빼는 알바를 했다. '웨딩홀'이나 '뷔페'는 손가락도 남을 만큼의 내 일상에서 '청매화차라니' 같은 장소이고 어리버리한 신입 알바에게는 뒤섞인 음식 냄새만으로도 허기를 채울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은 다르다.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화려한 음식들과 떠들썩한 '뷔페'의 구석에서 고개를 묻고 허기를 달래는 많은 종사원들 사이에 끼여 덜 불은 컵라면에 식은 김밥을 먹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삶을 살아갈 때 '달콤하고 은은한' 세상은 구현되는 것이다. 모두 같을 필요는 없다. '다름'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두 아이가 있다.

  첫아이는 '캄보디아, 푸옥'의 아이였는데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다.

  두 번째 아이는 '말리, 사모리'의 아이였는데 올해 성년이 되어서 자립하게 되었다. 셋째는 '에티오피아, 하브로'의 아이와 만나게 되었고 이제 네 번째 아이의 사진을 어제 받았다. 어떤 아이가 올까 궁금했는데 '말리, 베마'의 이제 5살이 된 아이다. 사진을 보내려고 제일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여러 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혔을 아이는 멀뚱한 날 것의 표정이다. 반갑고도 고맙다.

  후원자라고 하기에는 성의 없고 게으른 편이다. 1년에 한 번 선물을 보낼 뿐이고 편지는 아예 쓰지 않는다. 처음 두 아이 모두 헤어지게 되면서 겨우 한 통씩 보냈다. 아이들이나 사업장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성향적으로 뭔가 요란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돈 몇 푼으로 대단한 걸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편지'는 중학교 때인가 취미로 '편지 쓰기'를 적어 넣었을 정도로 편지 쓰기를 좋아한다. 이 정도나마 글을 쓰게 된 것도 무수한 편지 쓰기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편지'를 안 쓴다. 그 아이가 내게 고맙다는 것을 강제하기 싫다. '편지'를 쓰다 보면 서로 그런 뻔한 내용들이 오고 갈 것이 두렵다. '사랑'을 가장한 '애착'도 두렵기에 적당한 거리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편지를 쓰지 않기로 했다. '편지'는 작별 용이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후원자'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많이 배웠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배움'이 간절하기도 했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환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부재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후원을 시작했다. 세상 어딘가의 한 아이를 위해서.

  내 마음은 그것이 전부인데 아이들이 주는 뿌듯함은 의외에서 발견된다. 가령 '청매화차라니'의 순간들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때가 그렇고, 적어도 세상에 와서 그럴듯한 일 한 가지는 하고 가는구나 싶은 안도감을 가질 때가 그러하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조금 다른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이 아니다.

  월드비전에서는 후원금의 절반은 지역에 쓴다 한다. 지역이 같이 좋아지는 것은 아이의 환경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방식이 좋아서 '월드비전'을 선택했다. 종교적인 것은 관심 없다. 한 아이에게 3만 원씩, 다른 단체인 유니세프에도 보내니 한 달에 십만 원. 사실 최저시급의 내 급여로는 버거운 금액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알바 하루면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몸을 움직여 일을 할 때까지는 계속 해갈 작정이다. 십만 원으로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뿌듯함은 '책 구매'와 함께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청매화차라니'를 잊지 않고. '김태정'시인도 고개를 끄덕여주실 것이다.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은 쓰다

청매화차라니
나같이 멋없고 궁색한 사람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청매화차
무슨 유명한 다원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초의선사의 다도를 본뜬 것도 아닌

이른 봄 우이동 산기슭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래바람에 휘날리던 꽃잎 한 주먹 주워
아무렇게나 말려 만든 그 청매화차

한 사나흘 초봄 몸살을 앓다 일어나
오늘은 그 청매화차를 마셔보기로 한다
포슬포슬 멋대로 말라비틀어진 꽃잎에
아직 향기가 남아 있을까
첫 날갯짓을 하는 나비처럼
막 끓여온 물 속에서 화르르 펴지는 꽃잎들
갈라지고 터진 입안 가득

오래 삭혀 말간 피 같은 향기 고여온다

누군가 내게 은밀히 보내는 타전 같기도 해
새삼 무언가 그리워져 잘근잘근
꽃잎 한점을 씹어보았을 뿐인데
입안 가득 고여오는 꽃잎의
은근하게도 씁쓸한 맛
꽃잎의 향기는 달콤하나
향기를 피워올리는 삶은 쓰거웁구나

청매화차라니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의 청매화차라니
삶이 초봄의 몸살 같은 마흔은
향기를 피워올리는 꽃잎의
쓰디쓴 맛을 사랑할 나이

쌀 한줌 두부 한모 사들고 돌아오는 저녁/ 내 야트막한 골목길에 멈춰서서 바라보면/ 배고픈 애인아/ 따뜻한 저녁 한끼 지어주랴/ 너도 삶이 만만치 않았으리니/ 내 슬픔에 네가 기대어/ 네 고독에 내가 기대어/ 겨울을 살자/ 이 겨울을 살자 <겨울산>부분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 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입 베물어본다 <배추 절이기>부분

저녁상 물리고/ 설거지도 말끔히 끝낸/ 배부른 아홉시에는/ 슬금슬금 졸음 오는 아홉시에는/ 아직 잠들기엔 이른 아홉시에는/​마감이 코앞인 시나 한편/심심한 시나 한편 써야겠다//​ 언젠가 보았던 공장 담벼락 공고판/ ‘실밥 따는 아줌마 구함/ 1EA당 50냥/ 꼬마 시다 환영‘을 낙서처럼 끄적이면서/ 아직도 그 고단한 노임이/ 1EA당 50냥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꼬마 시다 환영이라는 속보이는 문구도/ 아랍을 겨냥한 미국적 속내를 닮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배부른 아홉시에는/ 1EA당 50냥의 노동도/실밥 따는 아줌마도 꼬마 시다도/ 아프간이나 팔레스타인만큼 먼/ 강 건너 불빛 배부른 아홉시에는,​ <배부른 아홉시에는>부분

이것도 보릿고개 덕이라면 덕이겠다/ 궁핍이 나로 하여 ​글을 쓰게 하니/ 궁핍이 글로 하여 나를 살게 하니/가난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조력자인가 <궁핍이 나로 하여>​부분


부업이나마 한 일년/ 가윗밥을 넣고 아이롱을 달구어도/ 밥의 내력을 모른다는 시인/ 밤새 꾸벅이며 실밥이나 따고 있어라/ 하루종일 뺑이치는 미싱 소리에/ 서투른 가위질이나 하고 있어라// 그래도 모른다면/ 해가 지고 해가 떠도/ 기계가 멈추고 기계​가 돌아도/ 끝내 모른다면// 요 시인, 철 없는 시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만/ 생업과 부업의 차이/ 다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기계가 멈추고 기계가 돌아도/ 끝내 변하지 않는 사실/ 엄지와 검지의 굳은살로 밥이 된다는 것만 알아라/ 그것만 알고 있어라 <부업>부분

오늘은 조카가 선물해준 샤프로 시를 써보기로 한다/ 굵고 뭉툭한 연필심에 비하면/ 이 가늘고 날카로운 0.5밀리 샤프심은/ 가볍고 세련된 샤프의 자존심을 증거한다/ 아무리 정교한 세밀화라 해도/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샤프심은/ 가끔 내 삶의 미세한 신경회로를 건들이지만/ 그 정도 사소한 경박성쯤은/ 애교로 봐줄 아량도 과시하면서// 뒤꼭지만 눌러주면 무한정 심이 나오는/ 그의 놀라운 생산력은/ 몽당연필도 아쉬웠던 나의 어린 시절을 조롱하는 듯도 하지만/ 샤프로 시를 쓰는 오늘만큼/ 내 손아귀에서 내 어깨에서 내 삶에서/ 짐짓 무게를 덜어내고자 한다/ 그러므로 손끝의 힘을 빼고/ 빙판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쇼트트랙 선수처럼/ 가볍게 여유롭게 어디 한번 중력을 탈주해보자/ 생계만큼 무거운 원고지의 중량을 통과해보자/ 그러나......// 처음으로 샤프를 쥔 손은 불안하고 또 불온하다/ 글자와 글자 사이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하다/ 너무 힘을 줘도 너무 힘을 빼도 안되는/ 그 적당히

세상의 불빛 한점


세상에 보태줄 것 없어
마음만 숨가쁘던 그대 언덕길
기름때 먼지 속에서도
봉숭아는 이쁘게만 피었더랬습니다
우리 너무 젊어 차라리 어리숙하던 시절
괜시레 발그레 귓불 붉히며
돌멩이나 툭툭 차보기도 하고
공장 앞 전봇대 뒤에 숨어서
땀에 전 작업복의 그대를
말없이 바라보기나 할 뿐
긴긴 여름해도 저물어
늦은 땟거리 사들고 허위허위
비탈길 올라가는 아줌마들을 지나
공사장 옆 건널목으로 이어지던 기다림 끝엔
언제나 그대가 있었습니다

먼 데 손수레 덜덜 구르는 소리
막 잔업 들어간 길갓집 미싱 소리
한나절 땀으로 얼룩진 소리들과 더불어
숨가쁜 비탈길 올라가던 그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허방을 짚는 손에
야트막한 지붕들은 덩달아 기우뚱거렸댔습니다​
​그대 이 언덕길 다할 때까지
넘어지지 말기를
휘청거리지 말기를
마음은 저물도록 발길만 흩뜨리고
그대 사라진 언덕길 꼭대기에는
그제 막 보태진 세상의 불빛 한점이
어둠속에서 참 따뜻했더랬습니다​

가을 드들강


울어매 생전의 소원처럼 새가 되었을까
새라도 깨끗한 물가에 사는 물새가

물새가 울음을 떨어뜨리며 날아가자
바람 불고 강물에 잔주름 진다
슬픔은 한 빛으로 날아오르는 거
그래, 가끔은 강물도 흔들리는 어깨를
보일 때가 있지
오늘같이 춥고 떨리는 저녁이면
딸꾹질을 하듯 꾹꾹 슬픔을 씹어 삼키는,
울음은 속울음이어야 하지 울어매처럼
저 홀로 듣는 저의 울음소린
바흐의 무반주첼로곡만큼 낮고 고독한 거
아니아니 뒤란에서 저 홀로 익어가는
간장맨치로 된장맨치로 톱톱하니
은근하니 맛깔스러운 거
강 건너 들판에서 매포한 연기 건너온다

이맘때쯤 눈물은
뜨락에 널어놓은 태양초처럼
매움하니 알큰하니 빠알가니
한세상 슬픔의 속내, 도란도란 익어가는데
강은 얼마나 많은 울음소릴 감추고 있는지
저 춥고 떨리는 물무늬 다 헤아릴 길 없는데
출렁이는 어깨 다독여주듯
두터워지는 산그늘이나 한자락
기일게 끌어당겨 덮어주고는
나도 그만 강 건너 불빛 속으로 돌아가야 할까부다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게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호마이카상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낡아서가 아니야
싫증 나서는 더더욱 아니야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까지도 거뜬히
읽어낼 줄 아는 네가,
반질반질 닮아버린 귀퉁이만큼 노련해진 네가.
너를 펼쳐놓는 순간부터
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
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
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네 앞에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졌다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동백꽃 피는 해우소


나에게도 집이란 것이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두 칸짜리 해우소
꼭 고만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방에도 창문이 있다면
세상을 두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그리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얼굴로
버티고 앉아
저 알 수 없는 바닥의 깊이를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똥 누는 일, 그 삶의 즐거운 안간힘 다음에
바라보는 해우소 나무쪽창 같은
꼭 고만한 나무쪽창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마당에 나무가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나지막한 세계를 내려서듯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지나 두 칸짜리 해우소
세상을 두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슬픔도 기쁨도 다만
두 발로 지그시 누르고 버티고 앉아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에 바라보는 쪽창 너머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동백꽃,
꼭 고만한 나무 한그루였으면 좋겠다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환하고 쓸쓸한 꽃바구니 같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 네루다 시집 속엔/ 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이파리 한점/ 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다만 먼지 때문에//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보내듯/ 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 일으켰나 <눈물의 배후>부분

미황사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
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
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
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거라고
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
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
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

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
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
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
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
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
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
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
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
미황사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봄산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었듯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진달래 향기에 깊이 취했던 것도 아닌데 등산객들의 발자국 어지러운 샛길, 길이 너무 많아 차라리 길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걸까요 길 안팎에서 한나절을 헤매었습니다 바람 속 무성한 시누대 숲은 좀처럼 길을 열어주지 않고 해묵은 낙엽들은 밑에서 아프게 바스라지는데

손바닥에 잔금이 이리도 많은 걸 보니 너도 잔근심이 많겠구나, 겨울 실가지처럼 무수한 손금에서 삶의 비밀을 뒤적이듯 봄산 난마처럼 얽혀 있는 샛길에서 길을 찾듯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곧을 태 곧을 정, 까짓거 대나무처럼만 살면 될 거 아닌가 뜻도 모르는 채 내 이름 석자에 온 생을 맡겼습니다 곧고 곧아라 삶도 사랑도, 내 이름대로만 살면 될 거 아닌가 겁도 없이

봄도 아직 이른 봄이라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진달래 낯빛 핏기 없이 질려 있는데 시누대는 제 울음만큼 한매듭씩 자라나는데 내 몸이 내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여 나는 자주 휘청거리곤 했지요 대나무붙이들아 늬들도 과분하게 주어진 이름들이 부끄러워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거니?

손바닥의 잔금만큼 사소한 근심들이 거미줄 치던 세월, 시누대 그 고통의 생장점이 스스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듯 슬픔이 나를 팽창시켰고 나는 어느덧 손금 위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좋을 나이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듯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찾아헤매는 내 발자국이 길 위에 길을 보태었다는 걸, 산을 내려온 뒤에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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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고자 하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는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눈길을 끄는젊은이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젊은이란 사실을독자들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들려줄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 그 자체를위한 것이다(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이며,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그를 위해 마음에 새겨 두는 것이 필요하다).

토마스 만, 홍성 옮김, 『마의 산』, 을유문화사, 2008.


굉장히 복잡한 문장 같지만 이런저런 부연 설명을 걷어 내면이 이야기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일 뿐이다‘라는 뜻의 문장이된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이보다 적절한 문장이 또 있을까. 게다가 토마스 만 소설의 첫 문장으로도 마침맞고.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다 보면 지적 과시처럼 보이는 긴 논쟁이나 설명과 마주할 때가 많은데, 저 첫 문장처럼 그 길고 긴 ‘부연 설명‘을 걷어 내면, 대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들려줄 법한 특출한 이야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게다가 그 특출한 이야기는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짜여 있어, 가령 문체를 느끼면서 읽어야 한다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번역문으로 읽을 때의 지루함 같은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p120, 121



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하려면 ‘내 삶‘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어 내려면 ‘내 문장‘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문장‘은 바로 ‘내 삶‘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게 바로 글쓰기와 글 읽기의 시작점 아니겠는가. 규칙과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기법을 익힌다고 해서 내손끝에서 나만의 문장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이 첫눈에 말끔하게 해독되는 것도 아니듯이.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삶의첫문장이든 글쓰 - P10

기의 첫 문장이든, 우선은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해 내 글쓰기의첫 문장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더불어 내 삶의 첫 문장까지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하여 처음부터 이렇게 살려던 것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렇게 쓰려던 것도 아니었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 주는 책이 아니니오해 없기 바란다. 소설에 대해 논한 책 또한 아니다. 단지 소설의 첫 문장에 기대어 쓴 짧은 단상을 모은 책에 불과하다. - P11


"이제 어떻게 될까, 응?"
앤서니 버지스, 박시영 옮김, 『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2005.


"다음이 뭐야. 다음이 뭐야....…‘‘
토마스 만, 홍성광 옮김, 『부덴브로크 가의사람들, 
민음사, 2001. - P18

궁금했다. 과연 다음이 어떻게 될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소설책도 읽고 내 삶에대한 기대감도 키웠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다음을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궁금했다"라고 과거형으로 썼으니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겠다.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내 안에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기대감도 사라졌다. 소설책을 봐도 재미가 없고 삶은 그야말로 균일한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 같아져서 드라마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어쩌면 이야기나 삶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기대할 것도 없을 때 이야기는 이제까지와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이고, 삶 또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틀에서벗어나 마치 꿈속처럼 제각각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젠 소설책을 읽을 때든 삶의 모퉁이에서 다음 장면을 앞두고 있을 때든 내가 궁금해하는 다음은, 다음의 내가 어떤 나일지뿐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내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또는삶의 다음 장면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그게궁금할 뿐이다. 다음의 나. - P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2010.


죽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비카스 스와루프, 조영학 옮김, ‘6인의 용의자』,
문학동네, 2009. - P22

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삶도 죽음도. 물론 그사이에서 겪는행복과 불행의 모습도 다르고, 그 행불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마음까지도 다 제각각이다.
같지 않아야 마땅하다. 우린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이자명한 사실을 왜 자꾸만 부정하려는 건지.
말만 해도 그렇다.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지독했으면같지 않은 걸 ‘같잖다‘라고 표현했을까.
무섭다. 말도 무섭고 그 말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도 무섭고.
아무도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털끝만큼도 같지 않기를…………. - P23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 이은정 옮김,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2.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이인규 옮김, 『채털리부인의 연인』, 민음사, 2003. - P50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누구에겐 최고의 시절이 누구에겐 최악의 시절이 되고, 누군가에겐 지혜의 시대가 누군가에겐 어리석음의 시대가 되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건 모든시대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라는 것. 왜냐하면 ‘우리 시대‘ 이니까. 다른 이가 아닌 나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간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여러 사람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엄청난 모순을 버텨 내야 하는 시간들이니까. - P51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

김훈, 『흑산』, 학고재, 2011.



봄 병풍의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法師다.

마루야마 겐지, 한성례 옮김, 『달에 울다』, 자음과모음,
2009. - P64

바람이 분다. 순간 깨닫는다. 바람은 부는 순간 이미 떠나고없다는 것을, 정체를 알 수 없을 때까지만 내 곁에 머물 뿐, 아,
바람이구나 하고 느낄 때면 이미 바람은 내 곁을 떠나고 없다.
그래서, 바람이다. - P65

내가 처음 여자의 성기를 본 것은일곱 살 때였다.

송기원, 『여자에 관한 명상』, 
문학동네, 1996.



올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아니 에르노, 최정수 옮김,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2012.



처음이란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프랭크 허버트, 김승욱 옮김, 『듄』, 
황금가지, 2001. - P66

처음으로 꿈꾼 날, 처음으로 이 뽑은 날, 처음으로 글씨 쓴 날,
처음으로 친구와 싸운날, 처음으로 자장면먹은 날, 처음으로남의 집에서 잠잔 날, 처음으로 버스 탄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통장 만든 날,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책 빌린 날, 처음으로서점에서 책 산 날, 처음으로 욕한 날, 처음으로 주먹질한 날, 처음으로 나 혼자 목욕 간 날, 처음으로 돈가스 먹은 날, 처음으로영화 본 날, 처음으로 누군가와 어깨동무한 날,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 날, 처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한 날, 처음으로 키스한날, 처음으로 섹스한 날,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 날, 처음으로내 손으로 밥한 날, 처음으로 세금 낸 날, 처음으로 내가 쓸 도마를 사 가지고 온 날, 처음으로 운전한 날………….
정확한 날짜를 기억할 수 없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 문신처럼새겨진 날들. - P67

나는 인생의 가장 내밀한 진실을
비빔국수를 통해 배웠다.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창비, 2014. - P70

비빔국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의 내밀한 진실이라.
그게 과연 뭘까?
글쎄, 결국엔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
비빔국수야말로 다 거기서 거기니까.
맛도 특별할 게 없고, 들어가는 재료도 특별할 게 없는 데다,
종류도 따로 없어 그저 비빔국수이니까.
흰쌀밥에 잡곡밥, 콩밥, 콩나물밥, 가지밥 등등 외려 밥이 더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하지 않은가. 같은 국수라도 뜨끈한 국물맛을 내는 국수라면 잔치국수, 가락국수, 칼국수처럼 가짓수를제법 늘어놓을 수 있지만 비빔국수는 그저 비빔국수일 뿐.
다만 단맛을 높이거나 신맛을 더하거나 매운맛을 강하게 하면서 차이를 내는 게 고작이다.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거기서 거기인 비빔국수.
거기서 거기인 삶. - P71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커트 보네거트, 김한영 옮김, 『신의 축복이있기를, 로즈워터씨』, 
문학동네, 2010.



팔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팔아 치웠다.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0. - P72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는 돈이 없어 겪는 궁핍 중 가장 처참한 것은 "하루 종일 돈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썼다. 그렇다. 가난, 곧 돈이 없어 겪는 궁핍의 본질은 몸과 마음 모두 돈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지 못하는 건 그저 궁핍 때문에 겪는 불편함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깟 불편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면서 가난을 자청하는 사람들도있다지만, 글쎄 내 눈엔 그들이 가난하기는커녕 누구보다 넉넉한 사람들로 보일 뿐이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돈 몇 푼 때문에하루에도 몇 번씩 치사해지는 경험을 반복하는 사람이며,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는 함부로 돈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머릿속에서 늘 빠듯한 생활비를 이리저리 계산해야하는 사람, 돈이 없을 때는 물론 여윳돈이 생겼을 때도 즐겁기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이다. 돈에 얽매여 자유를 잃은 사람. 그러니 자신이 가난하다고 쉽게 드러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가난 속에서헤매는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난 때문에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든 것은 아니니까. - P73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나무, 2001. - P90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출간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하루는 시내에 나갔다가 밤늦은 시각에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버스 안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더러는 멀거니 차창 밖을 내다보고 더러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하차 문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촌에서였던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버스에오르더니 맨 뒷좌석에 가 앉았다. 몇 분쯤 흘렀을까. 뒤쪽에서조곤조곤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마치시를 암송하듯 감정을 담아 낭송하는 소리였다. 여학생 둘이 한문장씩 돌아가며 읽고 있었다. 시집을 읽는구나 했더랬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슬쩍 뒷좌석을 보니 여학생들 손에 들린책은 시집이 아니라 『칼의 노래』였다. 내가 시의 한 구절이려니여겼던 문장이 바로 소설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였다. - P91

"완벽한 문장 같은건 존재하지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윤성원 옮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문학사상사, 2003.
- P96

형용사 ‘완벽하다‘와 ‘순수하다‘가 수식하는 것들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완벽한 문장이나 완벽한 절망은 물론 완벽한 삶이며 완벽한 죽음, 완벽한 행복, 완벽한 불행, 완벽한 거짓말, 완벽한 사랑, 완벽한 논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완벽조차 완벽하지 않은데 (그러니 완벽한 완벽도 존재하지 않는셈이다) 다른 것이야 말해 무엇하랴. 같은 의미에서 순수한 사랑이며 순수한 마음, 순수한 몸, 순수한 의도 따위도 허상에 불과하다. 순수조차 순수하지 않은데 다른 걸 말해서 뭐하랴.
가끔은 ‘완벽하다‘나 ‘순수하다‘ 같은 형용사가 언어의 마개역할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언어라는 수조 밖으로의미들이 새 나가지 않도록 언어 스스로 만든 마개, 가장 극단에 존재해야 하니 의미도 극단적이어야 하고 사용도 극단적이어야 하지만, 의미에서나 사용에서나 형식만 가질 뿐 내용은 갖지 않는 마개, 그러니 ‘완벽한‘이나 ‘순수한‘이라고 쓸 때 우리가경험하는 건 단지 의미의 극단까지 밀려갔다 되돌아오는 것뿐이다. 아무 의미 없이… - P97

숲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로드』, 
문학동네, 2008.



뻔뻔스러운 여자의 쌓이고 쌓인
한이 이 울창한 숲에 그득하다.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천년 동안에』,
문학동네, 1999. - P110

숲만큼 문학적인 낱말이 또 있을까. 그냥 숲이라고만 써 놓아도 이야기가 저절로 이어질 것만 같다. 무언가 원초적이면서도음험하고, 따듯하면서도 서늘하고, 조용하면서도 요란하기 그지없고,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
그래서인지 숲이 들어간 말 중에 가장 이상하면서도 그럴듯한 말이 내겐 ‘빌딩 숲‘이다. 서로를 추문으로 만드는 것을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이상하지만, 그 이상함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는 점에서는 그럴듯하달까. 적어도 내겐그렇다. 숲을 갈아엎고 들어선 빌딩이 다시 숲을 이루었다는 말이니 숲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잔인한 말이 되겠지만.
아무려나 뒤틀어진 이야기를 하나 가득 담고 있을 것 같은 빌딩이 숲을 이루었으니, 말만 놓고 보면 이야기의 숲이 따로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저 첫 문장들에 등장하는 ‘숲‘ 앞에 ‘빌딩‘을 붙여 보면 어떨까. 음,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막상 붙여 보니말이 된다. 서늘하다. 정체 모를 숲에 들어온 것처럼. - P111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김영하 옮김, 『위대한개츠비』, 
문학동네, 2009. - P124

소설의 첫 문장으로 이만한 문장이 또 있을까. 적어도 내겐그렇다. 말 그대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소설의 세계 속으로 한발 들어서게 만드는 문장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잖은가. 어리고민감하던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삶에 대해 충고를 해 주는 것이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니까. 적어도 내겐……….
아버지는 삶에 대한 충고는커녕 자전거를 타는 법이나 여자에게 매너를 지키는 법 같은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 아버지가 나를 앞에 앉혀 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기억조차 없다. 오죽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도 친척들 모임에서 주워들은 말로 겨우 알게 되었을까.
그러니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적어도 내겐 소설의 세계로 들어서는 입국장처럼 여겨질 수밖에. - P125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에서의 죽음과는
다른냄새를 풍겼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장희창 옮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2010. - P142

언뜻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내용을 담은 문장인 듯싶지만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어 보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전장에서 맞닥뜨리는 시체들의 이야기이니까.
요컨대 저 문장에서 말하는 죽음의 냄새는 말 그대로 시체들이 풍기는 냄새다.
아프리카와 러시아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날씨가 아닐까. 강렬한 태양, 건조한 바람, 서늘한 밤이 아프리카 쪽이라면폭설, 강추위, 습기는 러시아 쪽이겠다. 그러니 아프리카에서는전사한 군인의 시체가 태양과 바람 속에서 건조한 냄새를 풍긴다면 러시아에서는 습기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는 것.
흥미로운 건 아프리카에서는 낮 동안의 열기 때문에 가스가찬 시체들이 밤이 되면 부풀어 올라 마치 다시 한 번 전투에 나서기 위해 일어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다 아침이 오면 다시 오그라들어 군복이 헐렁해 보일 지경이라고. - P143

우리 아버지의 성姓은 피립이고 내 세례명은필립이었는데, 어린아이 적 내 짧은 혀는이 이름과 성을 ‘핍‘ 이상으로 길게도분명하게도 발음하지 못했다.

찰스 디킨스, 이인규 옮김, 『위대한 유산』, 민음사, 2009.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모비딕』, 
작가정신, 2011. - P194

두 번째 책부터는 내 이름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성별이문제였다.
김정선, 여자 이름 같은 모양이다.
『 동사의 맛』은 물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독자평에 저자를 여자로 착각하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강연을 의뢰받고 강연장에 가서도 ‘어머, 남자분이네요‘ 하는 반응과 자주 맞닥뜨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 대표에게 메일을 받았다. 젊은 만화가가 동사의 맛을 만화로 그려 보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샘플 만화를 파일로 첨부했다기에 열어 보았더니 책의화자로 등장하는 내가 쉰 살의 귀여운 아줌마로 그려져 있었다. - P195

찌는 듯이 무더운 7월초의 어느 날
해 질 무렵.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홍대화 옮김, 『죄와 벌』, 
열린책들, 2009.



무더운 어느 봄날 해질 무렵
파트리아르흐 연못가에 두 시민이
나타났다.

미하일 불가코프, 김혜란 옮김, 『거장과마르가리타』, 
문학과지성사, 2008. - P242

두 편의 러시아 소설이 모두 어느 무더운 날의 해 질 무렵 묘사로 시작하는 게 흥미롭다. 닮은꼴이랄까. 소설을 다 읽고 나면그 흥미가 배가되는 것까지 닮았다.
별 뜻 없이 끼적댄 어느 글에서 "러시아 소설의 시점은 ‘지평선 시점‘이 아닐까"라고 쓴 적이 있는데, 해 질 무렵이야말로 지평선의 시간인 듯싶어 두 소설의 저 첫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 소설의 시점을 ‘지평선 시점‘이라고 이름 붙였던 이유는, 곰팡내 풍기는 지하 창고 안에서 누군가의 구차한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보면 어느덧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우렁우렁 들려오는 광야에서 저 멀리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해서였다.
그런 점에서라면 이 두 소설이야말로 해질녘 ‘지평선 시점‘
으로 쓴 소설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 P243

댈러웨이 부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꽃을 사오겠다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 이태동 옮김, 『댈러웨이 부인』,
시공사, 2012. - P274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화자의 시점이 들쑥날쑥해서 읽기에 불편해야 마땅한데 웬일인지 편했다. 각각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시간이 마치 제 나름으로 피었다가 지는 꽃들처럼, 혹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밀물과 썰물처럼 ‘어쩔 수 없는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커다란 시계 빅벤의 종소리마저도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피고 지고, 밀려오고 밀려가고, 뛰어오르고 뛰어내리는삶 가운데로 스며들 듯 울려 퍼지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 P275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어쩜 이렇게 화창하지! 바깥으로 뛰어들고 싶어!" (7쪽), "그녀는 굴뚝 같기도 하고, 녹슨 펌프 같기도 하고, 바람에 꺾여 부러져 더 이상 새로운 나뭇잎을 나게 할 수 없는 고목 같기도 했다." (118쪽), "몸속에서 밀물과 썰물이, 오전과 오후가 교차되고있었다."(165쪽), "그 궁극적인 신비는 아주 단순한 사실 안에 담겨 있었다. 여기에 방 하나가 있고, 저기에는 또 다른 방이 있다는 것. 종교가, 또는 사랑이 그 문제를 푼다고?"(186쪽), "또 졌군.
반복되는 인생처럼." (236쪽), "어둑어둑해진 하늘은, 아름다운한쪽 뺨을 돌리듯 저물어가고 있었다." (271쪽). - P275

그리고 첫 문장으로 돌아와 다시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꽃을 사러 나갔었지. 거리를 돌아다니다 꽃을 사가지고는 파티가 열릴 집으로 돌아왔고, 나갔다 돌아오는 것, 그게 삶이었구나, 파티를 여는 댈러웨이 부인도 하염없이 솟구칠 수만은 없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셉티머스도 하염없이 떨어져내릴 수만은 없다는 것. 어쨌든 다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것. 제 몫의 꽃을 들고서……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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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아르헨티나-쿠바  
1928. 6. 14~1967. 10. 9

새로운 인간을 향하여

1965년 4월, 새로운 혁명전쟁을 위한 출격을 앞둔 게바라ErnestoChe Guevara는 아르헨티나에 사는 부모에게 장차 자신의 유서가될 한 통의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지. 다시 발뒤꿈치 아래에 로시난테의 늑골을느낍니다. (……) 10년쯤 전에도 이별의 편지를 썼었지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 저는 훌륭한 군인도 의사도 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했었습니다. 이제 의사가 되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군인으로서는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모험가라고들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다만 다른 종류의 모험가이지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모험가 말입니다. 이번에는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제마지막 포옹을 전합니다. (…) 예술가와 같은 희열로 갈고닦아온 - P100

제 의지가 약해진 다리와 지친 마음을 이제부터 지탱해주겠지요.


질풍과도 같은 10년이었다. 그 10년 동안, 방랑의 길을 떠난 스물일곱 살의 청년 의사는 게릴라전의 탁월한 사령관이 되었고, 혁명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는 공업부장관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전 세계 반제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 서른일곱 살의 게바라는 스스로를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쿠바 정부 지도부의 지위와 가족들과의 생활을 버리고 또다시 혁명전쟁을 향한 긴 여정에 나섰다. - P101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귀국한 1965년 3월, 게바라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 일은 세인들의 온갖 소문과 억측을 불러왔고, 한때는 그가 카스트로에게 숙청당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사실은 카스트로 역시
‘제2, 제3의, 더 많은 베트남을!‘이라는 자신의 호소를 몸소 실천하려는 게바라의 간절한 소망을 이해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1965년 10월 3일,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게바라가 쓴 이별의 편지를 낭독했다.


나는 당 지도부에서 맡은 직무, 장관이라는 지위, 소령이라는 계급, 쿠바인의 신분을정식으로 버리네. 법적으로 나를 쿠바에 붙들어놓을 수 있는 것은 없네. 그저 사령처럼 파기할 수 없는 인연만이 남아 있을 뿐이네. (......) 세계 도처에서 보잘것없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네. 쿠바에 대한 책임 때문에 자네에게 금지된 일이 나에게는 가능하다네. 이제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네. - P103

 라이게라라는 마을로 송치되어 10월 9일 사살된다. 남겨진 사진에서 그의시신은 유난히 맑은 두 눈을 뜨고 있다.
게바라의 많은 글 중에서도 쿠바의 사회주의와 인간 socialismo y el hombreen Cuba(1965)은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 모두,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은 의무를 수행했다는 만족감으로 보상을 받음을자각하고,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인간을 목표로 모두가 함께 전진하고 있음을 자각하며, 자신에게 부여된 희생을 완수하려 한다.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과거 소련의 수정주의를 격렬하게 공격했던 중국마저도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휩쓸린 오늘, 게바라가 보여준 이상주의는 어느덧 냉소와 망각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빈곤과 소외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준 ‘새로운 인간‘이라는 이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 P104

카스트로 1926~


쿠바의 정치가, 혁명가. 1926년 쿠바 오리엔테 주 출생. 1945년 아바나대학 법학과 입학,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1947년 도미니카공화국의 트루히요 독재정권 타도 활동, 1948년 콜롬비아 보고타의 도시 동에 참여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바티스타 정권 전복을 위해 1953년 156명과 함께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으나 실패 후 체포되어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라는 유명한 자기 변론을 남겼다. 1955년 특사로 풀려난 후 멕시코로 망명했다가 1956년 동지 80여 명과 돌아와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전을 펼쳐 정부군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전력으로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렸다. 총리 취임 후 토지개혁과 외국자본몰수를 단행하고 40여 년 동안 미국의 턱밑에서 반미·반제를 주창했다. CIA에서여러 차례 암살 공작을 폈으나 실패했다. 1976년 신헌법을 제정해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했으며, 2006년 7월 건강 악화로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했다. - P106

폴 니장
작가 프랑스  
1905. 2. 7~1940.5.23

반격하는 앙가주망

1968년 5월 파리, 학생혁명의 와중에 어느 학생 그룹이 유인물을 뿌렸다. "우리는 ‘파수견‘이 되는 미래를 거부한다." 이어
‘장Paul Nizan의 반격‘을 논하는 글들이 신문지상에 등장했다.
"만일 니장이 살아 있다면, 사람들이 이쪽으로 가라고 가르치는 생활에 양처럼 온순하게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수천 명의 학생들 편에 섰을 것이다."
1930년대를 헤쳐나간 코뮤니스트 지식인, 전쟁으로 인한죽음과 정치적 묵살로 땅속 깊이 묻혀 있던 폴 니장의 초상은장 폴 사르트르가 서문을 쓴 『아덴 아라비아』 Aden Arabie(1931)가1960년에 재출간되고, 이듬해에는 『파수견들』Les Chiens degarde(1932)이 다시 출간되면서 문학적으로는 이미 부활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1968년의 분노한 젊은이들의 눈앞에
‘앙가주망의 시대‘의 상징으로서 정치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 P107

나는 스무 살이었다. 그것이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는 말은 누구도하지 못하게 하리라.


‘아덴 아라비아‘의 첫머리이다. 프랑스 최고의 지적 엘리트의 지위가 약속되어 있던 니장은 "오직 관념에만 관계하는 것에 대한 혐오‘ 때문에 혁명의물결이 지나간 유럽을 뒤로하고 아덴을 향한 여정에 나선다. 1926년, 스물한살 때의 일이다.


한 발만 헛디디면 모든 것이 젊은이들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연애도 사상도 가족을 잃는 것도, 어른들의 세상으로 들어서는 것도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맡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쓰라린 일이다. (......) 이제는 그저 증오로만 타인들과관계 맺는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 남을 짓밟는 인간과 밟히기를 거부하는 인간이다. - P108

‘뻔뻔함‘과 ‘거짓말‘은 니장의 기대와는 반대의 형태로 나타났다. 공산당은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과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를 선두에 내세워 니장이 ‘경찰의 스파이‘였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죽은 니장을 한 번 더 말살하려했던 것이다. ‘니장의 반격‘은 1960년대를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은 그 1960년대의 뜨겁던 열정도 멀리 사라져갔고, 지난날 니장이 ‘현대의 그리스라고 불렸던 소련마저도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0세기를 ‘앙가주망‘의 시대였다고 해도 될까? 아니면 20세기의 어느 한 시기에 ‘앙가주망의 시대가 있었다고써야 할 것인가…………? 어느 쪽이건, ‘앙가주망‘의 작가 폴 니장의 망령은 앞으로도 거듭해서 ‘반격‘ 해올 것이 분명하다.


시와 여인들은 언젠가 사라져가지만, 그러나 혁명이 지나갔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다. (아덴 아라비아) - P111

engagement 앙가주망


본래 구속, 계약 등의 뜻으로 쓰였으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사르트르 이후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르트르는『존재와 무』,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통해 쓴다는 것의 전통적인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문학을 통해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것을 주창했다. 또한 1945년 창간한 잡지 『현대를 통해 세계의 불의를고발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도덕적 책임이라고 강조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르트르 자신도 알제리 독립전쟁과 베트남 전쟁당시 적극적으로 반전운동과 평화재판 등의 활동을 펼쳤다.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에게 관심을 기울인 빅토르 위고, 드레퓌스 사건 때 권력에 항거했던 에밀 졸라 등은 이 말의 의미가 확장되기 전에 활동했지만 역사적맥락에서 앙가주망 전통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지식인의 앙가주망 전통은 20세기 후반 파업 현장을 찾아 노동자와 연대했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등으로 이어졌다. - P113

프란츠 파농
혁명가·사상가·의사  프랑스  
1925. 7. 20~1961. 12. 6

인간에게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어젯밤 놈들은 나를 세탁기 속에 처넣었다." 백혈병에 걸려죽음을 앞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이 마지막 말은 실로『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1952)의 저자답다. 백인들의 병원에서 자신의 피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환각과 공포가 낳은 표현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파농 특유의 신랄한 유머 감각과 불굴의 투쟁 정신이 마지막으로 분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61년 12월 6일, 프란츠 파농은 미국 워싱턴의 베데스다 국립병원에서 사망했다.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의 유지에 따라 시신은 튀니지로 공수된 뒤 민족해방군ALN 전사들의 손에 의해 국경을 넘어 알제리영내에 매장되었다. - P114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폭력의 사도라고 말한다. 분명 파놓은 식민주의적야만에 항거하는 식민지 원주민의 유일한 무기인 폭력의 이론가였다. 그러나그의 폭력은 역설이 아닌, 비폭력자의 폭력이었다"라고 같은 마르티니크 출신의 시인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는 말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민족해방투쟁은 물론, 미국의 블랙파워 운동, 프랑스 등 ‘선진국의 학생운동에이르기까지 파농의 사상이 끼친 영향은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이었다. 한국의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도 파놓은 예민한 공감을 일으키며 받아들여졌다. 일본에서는 어떠했던가. 학원투쟁의 한 시기에 파농의 저작이 읽히기는 했지만 소화되지 않은 채로 토해내지고 배설되기만 했을 뿐이 아닌가"라고 농을 소개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에비사카 다케시 씁쓸하게 술회한다.
- P115

자유·평등·박애라는 보편적 이념이 적어도 프랑스에서만큼은 체현되고있다고 소박하게 믿고 있던 10대의 파놓은 그 지고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미사여구에 감추어진 백인 문명의 차별 구조를 직접몸으로 겪고, 진정한 보편주의 이념의 실현이라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사상적도전을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파놓은 일단 마르티니크로 돌아왔다가 1946년 가을 다시프랑스로 건너가 리옹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했다. 리옹에서 보낸 5년 동안백인 문명과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 파놓은 ‘흑인으로서 실존한다는 것에 대한정신병리적, 철학적 해명을 시도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완성한다. - P116

1954년 11월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봉기를 시작으로 알제리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파농은 그 협력자가 되었고, 1956년 말경에는 알제리 주재 장관을 향해 알제리인의 독립 요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구"라고 선언하면서 병원을 사직했다. "인간에게, 다시 말해 나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파농은 그 사직서를 이렇게 끝맺는다.
1957년 1월 말 알제리에서 튀니지로 탈출한 파동은 정식으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멤버가 되어 대변인으로서 정보선전활동과 기관지 『엘 무쟈히드의 편집과 집필을 담당했고, 이듬해 9월에 임시정부가 성립한 뒤로는기니 주재 대사 등의 격무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파놓은 알제리의 독립만이아니라 아프리카의 통일을 꿈꾸고 있었다. 그가 너무도 이른 죽음을 맞이한 이듬해 알제리는 독립을 달성했지만, 그후 알제리와 아프리카의 현실은 그가 그리던 꿈과는 너무도 달랐다.


유럽은 유럽의 모든 거리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인간을 만날 때마다 인간을 살육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유럽과 결별하자. - P117

사람 한 사람이 인간의 조건에 뒤따르는 보편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전인적 인간의 창조를 호소했다. ‘전인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근육과 두뇌를 분리하지 않고 노동 속에서 양자를 통일하는 인간", "도구나기술에 지배당하기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이 받아들인 목적에 따라 도구와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 "타자와 타민족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거부하고, 타자와타민족과의 공생을 원리로 삼는 인간", "자율적 공동체의 자율적인 성원"이다.
이 같은 파농의 호소는 이제 더 이상 무용한 것일까? 백과 흑, 주인과 노예, 제1세계와 제3세계, 제국과 식민지…… 그 대립과 분열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른 20세기. 파농처럼 20세기의 분열을 자신의 내부에 가장 격렬하게 떠안고 있는 존재들이야말로, 어둠이건 희미한 빛이건 인류사의 진정한 미래를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P118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1954년 결성된 알제리의 독립운동단체·정당 식민지 시기에는 급진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독립 후에는 오랫동안 유일합법정당으로 기능했다. 1955년 민족해방군ALN을 결성,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폭탄테러와 게릴라 전술로 독립전쟁을 벌여 8년 동안의 전쟁 끝에1962년 7월 5일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독립 후 민족해방군의 분열로 알제리는한때 내전 상태로까지 치달았으며, 알제리를 프랑스의 ‘또 다른 영토‘로 간주하고적극적으로 프랑스화 정책을 폈던 132년의 식민지 역사를 반영하듯, 15만 명의 아르키Harki(프랑스 쪽에 가담한 알제리 출신 군인·관료)가 프랑스의 보호를 받지 못한채 FLN의 보복에 의해 희생되었다. 한편 알제리 전쟁을 치안유지활동‘으로 폄하하던 프랑스는 1999년에야 이를 전쟁으로 공식 인정했으며, 1961년 알제리인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사건인 ‘파리 대학살‘도 1998년에 와서야 인정되었다. 알제리 전쟁 시기의 포로 학대와 아르키 처리 문제는 지금도 프랑스와 알제리의 ‘뜨거운 감자‘이다. - P119

프리모 레비
작가 이탈리아  
1919. 7. 31~1987. 4. 11

미래를 위한 증인

1987년 4월 11일, 예순일곱의 프리모 레비 Primo Levi는 토리노에 있는 아파트의 현관 난간에서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프리모 레비는 1919년 토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고 독일군이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점령하자 정의와 자유‘ 라는 레지스탕스에 참가하여 싸우다 1943년 12월 13일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일반적으로 ‘아우슈비츠‘라 할 때는 1940년 4월부터 폴란드 남서부의 오슈비엥침에 나치 독일군이 건설을 시작하여 점차 주변 지역으로 확장한 일군의 수용소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폴란드인 정치범이 수용되었다가, 이어 대규모의 소련군 포로들이 수용되었다. 1941년 10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Endlosung을 위해 가스실을 갖춘 비르케나우 수용소가 건설되 - P120

고, 1942년 7월 네덜란드를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이송이 개시되었다.
가축용 화차에 실려 나흘 동안의 여정 끝에 레비가 도착한 곳은 통칭 ‘부나‘Buna 라고 불리는 모노비츠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합성고무공장에 부속된강제노동시설이었다. 그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여인들과 아이들이 무를 향해떠나는 것"을 보고, 집, 자신의 습관, 옷,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렸으며, 왼팔에 새겨진 ‘174517‘이라는 문신으로 자신의이름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곳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 대한 소모전"을강요당하는 전장이자 인간을 파괴하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P121



우리는 노예가 되어, 이름 없는 죽음을 맞기 훨씬 전에 먼저 영혼이 죽어, 수백 번 행진하고 말없이 중노동을 했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아무도 여기서 나가선 안된다. 팔뚝에 새겨진 숫자를 들이대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불길한 소식을 세상에 전해서는 안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의 수는 대략 110만에서 15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90퍼센트는 유대인이었다. 트레블린카, 마이다네크 등 모든 수용소를 합하면 희생자 수는 약 300만 명에 이른다. 다양한 국적의 정치범과 전쟁포로, ‘집시‘로 불리며 차별당하고 있던 신티sinti, 로마Roma 민족 사람들, 동성애자, ‘여호와의증인 신자 등의 이른바 ‘반사회적 인물‘들도 - P121

거기에 포함된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을때 100만 벌 이상의 옷과 7톤의 머리카락, 셀수도없을만큼의 신발과 안경이발견되었다. 살아남은 수용자 가운데 5만 8,000명은 철수하는 나치에 의해 ‘죽음의 행진‘으로 끌려갔고, 해방된 수용자는 약 7,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화학자였다는 등등의 몇 가지 행운이 겹쳐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았다. 그는 1945년 10월 토리노로 돌아와 곧바로 『이것이 인간인가 se questo èun womo를 집필했다. 그것은 수용소에서 철저하게 부정당한 자신의 인간성을회복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동시에 "위험을 알리는 불길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1947년에 출간된 이 책의 초판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58년에 출판사를 바꾸어 재출간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에 출간되었다(다케야마 히로히데아사히선서朝日). 그후로도 레비는 『휴전』la옮김,
tregua(1963), 『주기율표II sisterna periodico(1975), 『지금이 아니면 언제 Sequando?(1982)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일종의 문화적 영웅" 으로 떠오른다. - P122

만일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라고 말한이는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사상가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였다(『극한에 맞서』 Face à extréme). 토도로프는 수용소 생존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수치심‘을 실마리로 삼아 레비의 죽음을 고찰하고 있다. 첫째, 기억으로서의 수치심. 자신의 의사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와 자기 붕괴에 빠진 희생자의 수치심은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흡사 강간당한 여성의 수치심처럼, 수치심을 느껴야 - P122

하는 것은 강간을 저지른 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도리어 희생당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둘째, 살아남았다는 수치심. 레비는 만년에도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형을 죽인 카인이라는 의혹, 누구나 자신의 이옷을 밀어내고 그를 대신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의혹이 마음을 갉아들고 구멍을 뚫는다‘고. 그리고 셋째, 인간이라는 수치심. ‘인간이 아우슈비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죄이다. 저들에게 죄가 있다면 같은 인간인 나역시 유죄가 아닌가‘ 하는 의식이다.
토도로프의 결론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레비는 장대를 너무 높이 올려놓았다. 인류는 선할 수가 없었다. 이미저 지극히 가까운 과거마저도 왜곡하고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무고한 자들은 죄를 의식하고, 죄 있는 자들은 자신이 무죄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아우슈비츠의 교훈을 들으려고하지 않는다." - P123

인류의 역사는 20세기에 이르러 절멸수용소라는 인공 지옥을 출연시켰고,
그 역설적인 부산물로서 ‘생존자문학‘이라고 불러야 할 장르를 탄생시켰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trotzdem Ja zum Leben sagen의 저자 빅토르 프랑클 Viktor Frankl이나 3부작 『밤, 새벽, 낮』 Night, Dawn, The Accident의 작가 엘리비젤Elie Wiesel과더불어 프리모 레비는 ‘생존자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지옥은 이제 종교적인 신념이나 몽상이 아니라 집이나 돌, 그리고 나무들처럼 현실적인 존재라고 말해보아도 어느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생존자들은 이미 수용소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말 - P123

없이 떠나가버리는 악몽으로 온밤 내내 괴로워했다고 레비는 쓰고 있다. 그럼에도 레비는 고뇌를 이야기했다. 설령 이제 아무도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지라도, ‘생존자문학‘이란 단순히 살아남은 자들의 문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이해하고, 묘사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고, 전달할 수 없는상념을 전달하도록 운명 지워진 문학, 태생적으로 갈가리 찢긴 문학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인류의 역사는 생환을 기약하기 힘든 ‘오디세우스의 항해‘에 내던져졌다. 바다는 어두컴컴하고, 항해는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고, 레비는 결국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레비의 자살은 인류 자체의 자살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 P124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와 이게파르벤


1942년에 세워진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자리에는 이게파르벤I. G. Farben이라는 기업의 화학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수용자들은 이곳에서 ‘부나‘라는 합성고무를 만드는 데 동원되었고, 그래서 제3수용소를 ‘부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2차대전으로 수요가 폭증해 사세를 빠르게 확장한 이게파르벤은 헤르만 괴링과 하인리히 힘러의전폭적인 지원 아래 충분한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노동력을 제공받았으며(이를 위해 공장에서 일할 폴란드인을 제외한 모든 민간인들이 아우슈비츠 시 밖으로 소개되었다), 노동력 관리에서도 나치 친위대와 긴밀하게 협조했다. 이게파르벤은 다른 기업과 공동 출자해 데게슈 사를 만들고 학살에 쓰인 살인 가스 ‘치클론 B‘를 개발하기도 했다. 부나 공장을 거쳐간 3만 5,000명의 노동자 가운데 2만 5,000명이 죽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이게파르벤의 고위 경영진과 기술자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회부되어 5명이 각각 6~8년형을 선고받았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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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Bauhaus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 세운 조형학교,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 Hausbau 를 도치한 이름으로, 순수예술과 공예는 동일한 것의 두 변형이라는 생각 아래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한 것이다. 바로크 이후 상실된 총체예술 이념의 복구, 기술과 장인성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실용성을 근간으로 한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통합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지향했으며, 위계적인 교수법 대신 상호협동과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협동 워크숍 체제를 지향했다. 1925년 정부의 재정 지원 취소 등으로 폐쇄 위기에 처했으나, 데사우 시에서 시립 바우하우스로 재출발했다. 1932년 나치의 탄압으로 데사우에서 쫓겨난 후 베를린에 사립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으나, 1933년에 나치에 의해 완전히 폐쇄되었다. 조형 디자인의 기능과 효율성에 초점을 둔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현대 조형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 P66

에리히 케스트너
작가·시인  독일  
1899. 2. 23~1974. 7. 29

잔혹한 시대의 증인이 되어

‘절대로 울지 말자!‘
하늘을 나는 교실』Das fliegende Klassenzimmer의 주인공 마르틴 탈러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급비생인 마르틴의 부모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다가오는데도 아들에게 고작 5 마르크밖에 송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섣달그믐까지 갚기로 약속하고 양복점 주인에게 빌린 돈이었다.
그러나 마르틴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8마르크의 여비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집에 오지 말고보내준 돈으로 초콜릿이라도 사먹으라고, 가끔은 썰매라도 타면서 놀라고, 그리고 절대 울지 않기로 서로 약속하자고. "어머니, 다정하신 어머니!" 그렇게 중얼거린 마르틴은 한 번은울어버리고 말지만, 이내 ‘절대로 울지 말자! 고 다짐한다. - P67

토마스 만 Thomas Mann을 비롯하여 그의 형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수많은 문학가들이 망명했다. 쿠르트 투홀스키kurt Tucholsky는1935년 스웨덴에서 자살했다. 에른스트 톨러는 1939년에 뉴욕에서 자살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940년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가던도중 붙잡혀 자살했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1942년 브라질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케스트너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에 머물렀다. 독일을 떠나는 친구 헤르만 케스텐Hermann Kesten에게 그는 "어머니를 위해서 이곳에 머물 생각일세. 그래서 언젠가 찾아올 잔혹함의 증인이 되겠어. 나치의 독재를 다룬 장편을 쓸 계획이네. 미래의 고발자로 꼭 남아 있고 싶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케스트너는 자신의 책들이 불태워지는 현장을 일부러 보러 갔다. - P70

고난의 시대를 살아남은 케스트너는 전후에도 『두 명의 로테』Das doppelteLottchen(1949), 『동물회의』Die Konferenz der Tiere(1949), 『내가 아이였을 때A‘s ich einpleiner Junge war(1957) 등의 작품을 남기고 1974년 7월 29일 뮌헨에서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문학가 이케다 히로시池田浩의 표현을 빌리면, 케스트너는 "도덕이 무너져버린 시대"에 모럴리스트가 되려 했던 인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인물상은 단순한 것일 수 없다. 헤르만 케스텐은 이렇게 묘사한다.

정치적으로는 제한 없는 자유주의자이고 세계관에서는 과격한 휴머니스트이며, 천성적으로 이성적이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돈 씀씀이가 헤프고, 내성적이면서도 결단력이 뛰어나며, 온화하면서도 반항적이고, 친절하면서도 신경질적이며, 신랄하면서도섬세한 인물이 바로 케스트너이다. - P71

바이마르공화국1919-1933

1차대전으로 독일제국이 붕괴한 후 군부, 관료, 대자본가 등보수 세력과 사회민주당의 타협에 의해 성립한 민주공화국.
1919년 1월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파가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그해 8월 헌법을 반포하면서출범했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후 극우 세력의 카프 반란, 좌파의 루르 봉기 등 반대파의 거센 반발에 시달렸고, 막대한 전쟁배상금 지불과1923년 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의 루르 점령으로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1920년대 중반 배상 문제를 일단락하고 다시 선진공업국으로 변모하면서 짧은 안정기를 누렸다. 그러나 국력이 회복됨에 따라 강대한 독일 건설을 꿈꾸는 우익의 권력이 강화되고, 1929년 대공황에 휘말리면서 공화국은 급격히 쇠락했다. 실업자가급증하고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면서 극좌와 극우 세력이 강해졌는데, 분열한 좌파와 달리 우파는 군부, 관료, 자본가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나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1933년 1월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바이마르공화국은 14년 만에 무너졌다. - P73

숄 남매

한스 숄
반나치 저항자 독일  
1918. 9. 22~1943. 2. 22

조피 숄
반나치 저항자  독일 
1921. 5. 9~1943. 2. 22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강제수용소가 주는 짓눌린 듯한 공포감, 게슈타포 등 그물망 같은 치안 조직,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이 서로 감시하고 밀고하는 메커니즘, 그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한없이고독" (잉게 숄inge Scholl)한 작업이었을까? 그러나 여기 그런 목소리를 드높인 이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백장미통신은 1942년 7월 초에 제4호까지, 그리고1943년 1월과 2월에 제5호와 제6호가 제작되어 독일 남부 각 도시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개인들에게까지 송달되었다.
1943년 2월 18일, 뮌헨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한스 숄Hans Scholl과 조피Sophie Scholl 남매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백주 대낮에 아무런 위장도 하지 않고 예방책도 세우지 않은 채 대학 본관에서 팸플릿을 뿌린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호가 된 『백장미통신』 제6호였다. 거기에는 "청산의 날이 왔다. 독일 청년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독재체제를 청산할 바로 그날이" 라고 씌어 있었다. - P75

한스와 조피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를 증언한다. 특히 조피는 조사를 받은 뒤에도 편안히잠을 자고, 사형 직전의 면회에서도 부모가 가져온 음식을 보고 "저,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어요" 하고 입맛을 다시며 꾸러미를 펼쳐보았다고 한다. 언니잉게의 회상에 따르면, 조피는 짙은 갈색 머리에 크고 거무스레한 눈동자를 가졌으며, 아직 천진난만한 앳된 표정에 "무엇에건 킁킁거리며 코를 들이대는 어린 동물 같은 호기심"과 "대단히 진지한 태도를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남겨진 사진이 그녀의 이런 인상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어떤 교사는 조피의 "섣불리 자신의 자주성을 관철하는 태도를 가리켜 "경망스럽다"라고 표현하기도했다. 실제로 민족재판소에서 그녀는 재판관에게 "비록 우리들의 머리는 오늘떨어지지만, 여러분들의 머리도 우리 뒤를 이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런 ‘경망스러운‘ 태도는 잔다르크나 막달라 마리아를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경망스러운 이들에게는 국가권력이 휘두르는 죽음의위협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 P77

조피와 같은 감방에 있었던 엘제 게벨lse Gebel에 따르면, 그녀는 마지막순간을 앞두고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햇살이 비치는 날에 이제 난 떠나가야만해. 내겐 죽음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의 행동이 수천 명의 마음을 흔들어깨울 테니까. 분명 학생들이 저항하며 일어날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게벨은 대답했다. "조피, 넌 아직 몰라. 인간이 얼마나 겁 많은 짐승인지를."실제로 조피가 기대했던 학생들의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항은커녕, 숄남매와 프롭스트가 처형되고 사흘 뒤 대학 강당에 모인 학생중대는 ‘백장미‘를 매도하는 나치 학생지도자의 연설에 환성을 지르고, 숄 남매를 게슈타포에게 인계한 대학 직원에게 갈채를 보냈다. ‘백장미‘의 다른 동료들 역시 이해 2월과 3월에 연이어 체포되었고, 알렉산더 슈모렐과 쿠르트 후버는 1943년 7월 13일에, 빌리 그라프는 같은 해 10월 12일에 처형되었다.
‘백장미‘는 ‘시민적, 그리스도교적 저항이며, 그런 한계 때문에 좌절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세계는 다시 그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 P78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한국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1970년대 말 한국에 번역되어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처럼 읽히며 한국 학생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나치의 ‘긴급명령‘과 유신정권이 발동한
‘긴급조치‘, 전두환 군사독재의 철권통치가 일체의 비판을 봉쇄했다는점에서 일맥상통해 이 책의 상황과 당시 한국의 상황을 유사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긴급조치 9호 세대들은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반정부 페인트 낙서‘라는 저항 방식을 착안하기도 했는데, 1978년 5월 1일 서울대 강의실 벽 곳곳을 장식한 반체제 페인트 낙서, 1979년 2학기 개강 직후 연세대 독수리상 기둥에서 발견된 ‘유신철폐‘, ‘독재타도‘라는 붉은 페인트 낙서 등이 그 예이다. - P79

그 글을 읽는 우리는 안네의 그런 모습에서어떤 ‘희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무고한 소녀는 똑같이 무고한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 했다.
안네의 가족 8명이 25개월 동안 생활한 ‘은신처‘는 1944년 8월 4일 누군가의 밀고를 받은 나치 친위대와 비밀경찰에 의해 급습당한다. 그리고 9월 3일그들 가족은 네덜란드의 베스테르보르크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절멸수용소로 이송되는데, 그것이 네덜란드에서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마지막이송열차가 되었다. 연합군이 이미 그곳에서 겨우 200킬로미터 떨어진 브뤼셀까지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 열차에는 총 1,019명의 희생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남자 45 명과 여자 82명에 지나지 않았다.  - P83

안네의 여덟 가족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아버지 오토 단 한 명이었다. 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에 남겨진 어머니 에디트Edith는 1945년 1월 6일 그곳에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에 판단이라는성으로 등장하는 헤르만 판 펠스Hermann van Pels는 1944년 10월 또는 11월에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보내져 사망했다. 그의 아내 아우구스테Auguste는 몇몇 수용소를 전전했지만 사망일시와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안네가 사랑했던페터는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1945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치과의사 뒤셀, 즉 프리츠 페퍼Fritz Plefter는 노이엔가 수용소에서 1944년 12월 20일 사망했다. - P83

이렇게 쓴 안네는 우리들 ‘일반 사람들‘의 책임을 계속 묻고 있다. 설령 세상 사람들 수백만 명이 안네의 일기』를 읽고 동정의 눈물을 흘릴지라도,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는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만들어진시오니스트 국가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역설을 저질러왔으며, 한편으로 세계는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또다시 대두하는 배외주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안네의 죽음을 더더욱 희망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P84

살바도르 아옌데
정치가  칠레  
1908. 7. 26~1973. 9. 11

칠레의 길을 위한 싸움

드브레는 앞의 인터뷰에 붙인 서문에서 아옌데를 이렇게 규정한다. "박사‘ 이면서 동시에 ‘동지‘이고, 프리메이슨 단원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이며,전 공화국 상원의원이면서 사회주의 전사이고, 부르주아로 성장했으면서도 혁명적 확신을 지니고 있으며, 그 나라의 수도보다) 지방적 현실에 깊이 뿌리를내리고 있으면서도 철저한 국제주의자이다." 이런 아옌데 자신이 ‘칠레 역사의변증법‘에 각인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의 여러 형태와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운동의 결합‘의 ‘살아 있는 예이자 ‘화신‘이라고 드브레는 쓰고 있다.
따라서 아옌데가 현재의 사회 위에 "과거의 사회와 미래의 사회를 이어주는 교랑을 놓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 P88

인민연합 정부는 구리광산 등의 기간산업 및 유통·금융 부문의 국유화와철저한 농지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국내의 인플레이션과 구리의 국제가격 하락, 미국의 원조 삭감, 국제금융기관의 대출 정지 등으로 말미암아 칠레의 경제는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인민연합 내부에서도 여러 세력 간의 대립이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 CIA 과 거대기업 아이티티 IT 사의 후원을 받은 우파의 정권 전복 공작이 격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의 징후가 분명해진 시점에서도 아옌데는이상주의자다운 완고함으로 끝까지 ‘혁명적 폭력의 선제적 행사‘를 배격하고
‘입헌적 틀‘을 고집했다. 군부 쿠데타 소식을 접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집필중이던 회상록에 서둘러 마지막 몇행을 적어넣었다. - P89

칠레에는 오랜 문민정치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에서는 혁명은 드물었고, 보수적이고 평범하며 안정적인 정부가 많았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그릇이 작았지만, 두 명은큰 인물이었다. 발마세다José Manuel Balmaceda (19세기 말의 자유주의자)와 아옌데가 그 - P89

들이다. (………) 발마세다는 초석으로 얻는 부를 외국에 넘겨주지 않으려 저항했기 때문에 자살로 내몰렸다. 아옌데는 칠레의 또 다른 지하자원인 구리를 국유화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다. 두 경우 모두 칠레의 과두제가 유혈혁명을 조직했다. 두 경우모두 군인들이 사냥개 역할을 맡았다. 이들 군인들을 사주하고 자금을 제공한 세력은발마세다 때는 영국의 회사, 아옌데 때는 북아메리카의 회사였다. (네루다 회상록』) - P90

‘사회주의를 향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길‘을 목표로 한 칠레 인민연합의개혁 프로그램은 당시 ‘아옌데 실험‘으로 불리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유럽 각국과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회주의 분파의전략 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복수정당제‘ 개념을 포함하여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아 ‘아옌데 실험‘은 사회주의 자체를 구하려는 시도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바라는 아옌데에게 선물한 자신의 책에 "다른 길을 선택해 같은곳에 도달하려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라는 헌사를 썼다고 한다. 다른 길을택한 두 사람은 모두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 P90

빅토르 하라
연극인 싱어송라이터  칠레 ㅡ 
1938. 9. 28~1973. 9. 16

두 손이 으깨어지더라도

두 손이 으깨어진 빅토르 하라 Victor Jara………… 그의 이름은 16세기 독일의 조각가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 를떠올리게 한다. 리멘슈나이더는 농민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두 번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없도록 양손을 못 쓰게 되었다. 칠레의 음악가 빅토르 하라 역시 ‘칠레 사회주의의 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똑같은 일을 당했다.
1973년 9월 11일,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자 빅토르 하라는 "시민들은 각자의 일에 충실히 임해주십시오"라는 아옌데대통령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국립공과대학으로 향하던 도중체포되었다. 임시 정치범 수용소로 변해버린 칠레 스타디움으로 연행된 하라는 일주일 후인 9월 18일 시체 공시소에서 그 - P92

의 아내 요안 하라 Joan Jara에 의해 확인되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빅토르 하라는 스타디움에 연행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타를 집어들고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venceremas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화를내며 그의 기타를 빼앗았다.
하라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계속 이어갔다. 화가 치밀어오른 군인들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두 팔을 짓이겼다. 그래도 하라는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자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마치 그가 되살아날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수십발의 총탄이 그의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그때 한 군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디 한번 계속 불러봐. 이래도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 (야기 히로요八代 금지된 노래」 - P93

쿠바의 뮤지션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는 이렇게 말한다. "박물관에 들어가서는 안 될 전통문화와 민속음악이 있다. 절대로 흥미를 잃지 않고한 세대에서 또 한 세대로 이어져야 하는 것, 역사의 한 순간 한 순간마다 그본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형태를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이 빅토르 하라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가운데 하나이다. 노래가 현실의 뼈와 살과 혈관에 형태를 만드는 것일 때,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저 살육자들이 그 - P96

에게 퍼부은 증오야말로 진정 그것을 보여준다. 그의 최후는 그 당연한 귀결이며, 그가 스스로 바란 일임에 틀림없다."
빅토르 하라와 함께 ‘새로운 노래‘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앙헬 파라Angel Parra는 쿠데타 때 체포되었으나 반년 만에 석방되어 멕시코로 망명, 훗날파리로 이주했다. 1987년 크리스마스, 피노체트 정권의 사면 조치로 추방령이해제되었다는 사실을 안 그는 「빅토르 하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 P97

그러나 무엇을 용서한단 말인가?
용서받지 않으면 안 될 그 어떤 일을 내가 저질렀단 말인가?
그대의 등에 박힌 40발의 총탄이 나를 용서해주는 것인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내 아버지가?
저 3만 명의 죽은 자들과 피로 물든 마포초 강이 나를 용서한단 말인가?
(.....)
‘너는 리스트에 올라 있어."
무슨 리스트? 웃고, 생각하고,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사랑하고, 죽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리스트?
(.....)
그리고 또 하나 자네에게 전하고 싶은 이별의 말이 있네.
올 겨울의 파리는 너무 멋졌지. 그래서 내게 베풀어준 사면을 받지 않기로 했어.
나는 한 방울 눈물 속에 조국을 꼭 안고 싶어.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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