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


<뉴욕 타임스>에 프란스 드 발이 쓴 어떤 글에 보노보 원숭이를 간지럽히면 완전히 인간과 같은 반응, 낄낄거리고 몸을 뒤로 빼지만 간지러움을 더 원하기도 하는 등등의 반응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놀랍고도 절묘한 글이죠.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를 객관화하고 싶어 하기에,
우리는 그 어린 유인원이 딱 어린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말을할 수가 없어요. 아니다. 그 유인원은 유인원의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우린 그에 대해 결코 인간의 표현을 쓰면 안되고, 함부로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드 발이지적하다시피, 유대감에 대한 공포도 있어요. 우린 유인원이나 생쥐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동질감이 없다면 시가 어디 있겠어요?










때늦게』의 서문 중에서


시는 나무나 강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시도할 수있는 인간 언어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그 대상을 위해서 말한다는뜻이다. 시는 개별 인간의 관계를 어떤 대상(돌멩이든 강이든 나무든)과 관련지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있고, 아니면 그저 대상을 최대한 진실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외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시는 내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한다. 과학은 밖으로 풀어내어 해설하고, 시는 안으로 풀어내어 함축한다. 둘 다 묘사 대상을 기린다. 우리의 무지나 무책임을 알려주지 못하는 ‘정보‘만 끝없이 쌓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과학의 언어와 시의 언어 둘 다 필요하다.

네이먼


작가님이 인용하신 메리 자코버스의 말 같네요. 자코버스는 "시의 절제된 언어는 아마도 우리가 그런 것들, 움직이지 않는 물체의 고요한 목소리나, 나무의 지각 없는 서 있음 같은것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며 어쩌면이 절제된 언어가, 우리가 유대감이나 사색으로 나아가도록돕는 기술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죠. - P65

르귄


우리가 언어를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술은 사실 도구와 연관되어 있죠. 언어는 우리가 발산하는 무엇이고, 특정시기에 배우지 않으면 안 돼요. 언어는 기이해요. - P65

르 귄


<뉴욕 타임스>에 프란스 드 발이 쓴 어떤 글에 보노보 원숭이를 간지럽히면 완전히 인간과 같은 반응, 낄낄거리고 몸을 뒤로 빼지만 간지러움을 더 원하기도 하는 등등의 반응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놀랍고도 절묘한 글이죠.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를 객관화하고 싶어 하기에,
우리는 그 어린 유인원이 딱 어린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말을할 수가 없어요. 아니다. 그 유인원은 유인원의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우린 그에 대해 결코 인간의 표현을 쓰면 안되고, 함부로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드 발이지적하다시피, 유대감에 대한 공포도 있어요. 우린 유인원이나 생쥐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동질감이 없다면 시가 어디 있겠어요? - P67

네이먼


「맥코이 크리크에서의 사색Contemplation at McCoy Creek」이라는시에서는 이런 우주의 주관적 해석과 바깥으로 손 뻗기라는문제를 아주 잘 다루셨어요.


르 귄


이건 철학 시 같은 것이니, 그 시에 대해 한마디 할게요. 전도서관이 없는 하니 카운티 스틴스산에 가서 사색contemplation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단어에는 신전temple이 들어가 있고, 맨 앞에 붙은 con은 ‘함께‘라는뜻이죠.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을 했고ㅡ이게 그 시의 중반을 설명해줄 텐데 그때 묵던 집에 책이 한 권 있었거든요.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는데, 사색이라는 말에 아주 훌륭한 에 - P67

세이가 붙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는 배움의 경험을 담은셈이죠.



네어먼


시 앞부분에 "단어 안의 의미를 찾다가"라는 구절을 보니 미국 시협회와의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던데요. 협회에서 운영하는 잡지에 첫사랑First Loves」이라는 칼럼이 있었는데, 시인들에게 시를 처음 만난 경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는 코너였죠. 작가님은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의 이야기시 모음집 고대 로마의 노래 Lays of Ancient Rome」에 대해, 또 스윈번의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이런 시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시로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또한 이야기는 때로 단어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며, 개별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단어들이 빚어내는 박자와 음악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죠. 여기에 대해 조금 더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 P71

르 귄


더 깊은 의미란 시가 음악에 가까워지는 지점이에요. 그 의미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의미는 거기에분명히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건 리듬과 박자이고 그걸 전달하는 소리가 빚는 음악이죠. 이건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고 그래야 마땅해요. - P71

맥코이 크리크에서의 사색



단어 안의 의미를 찾다가, 나는 추측했다
그곳 그 성스러운 장소 안에
신전이 있음을 온전히 목격하고,
따라서 목격된 바의 제단이 된 신전.

개울 옆 그늘 속에서 나는 사색한다
이번 초여름 높은 곳에서 흘러온 큰물이
어떻게 물길을 바꿨는지에 대해.
개울 속 커다란 바위 네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버드나무들은 무성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범람한 물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뿌리 뽑히기도 했다.
계곡 위 환한 빛 속에서는
까마귀 한 마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그림자 날개가 까마귀처럼 고요히
벼랑 끝 바위를 가로지른다. 사색은
나에게 불연속이라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책 안을 보았을 때 나는 발견했다

시간이란 관측되고 구별된 신전-시간 자체와 공간이라는 것을一
네 개로 나뉜 하늘, 벽에 둘러싸인 땅에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기 위한 신전.

연속성에 합류하기 위해, 마음은
물을 따라가고, 새들을 좇고,
움직이지 않은 바위를, 절묘한 비행을 관찰한다.
느리게, 침묵 속에서, 말없이,
장소와 시간의 제단이 올라간다.
자아는 사라져, 찬미를 위한 제물이 되고,
찬미 자체도 적막 속에 빠져든다.

네이먼


지난번에 대화를 나눌 때 작가님은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울프는 시를 별로쓰지 않았어요. 작가님이 어렸을 때 시에 대해서나 소리의 의미에 대해서 배운 바가, 산문을 쓸 때 버지니아 울프가 소리와 맺은 관계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설명하셨던 바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르 귄


산문의 리듬 속 소리에 대해 말할 때는 시와 많이 달라요. 어떤 면에서는 훨씬 거칠거든요. 산문 작품의 리듬은 아주 긴박자죠. 물론 문장에도 문장의 리듬이 있어요. 울프는 그 점을 강렬하게 의식한 작가였어요. 어떻게 리듬이 자신에게 책을 선사하는지에 대해 울프가 쓴 글도 있는데, 휴,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사실상 표현할 어휘가 없는 경험적인 뭔가예요. - P72

적절한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것도 음악을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음악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냥 연주를 해봐야 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듣고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못할 수도 있고요.


네이먼


성인이 되어서 사랑하게 된 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소중하게 여기는 시인은요? - P73

르 귄


릴케를 아주 윗자리에 둬야겠네요. 도움이 필요했던 어느 여름에 매킨타이어가 번역한 『두이노의 비가』번역본을 읽었어요. 그때 제 상태가 아주 나빴는데, 그 시집에 실린 비가 몇편이 저를 어둠에서 끌어낸 것 같다고 느껴요. 적어도 버텨내게 해준 건 확실하죠. 전 독일어를 몰라요. 그러니까 릴케와괴테는 번역으로 마주한 다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짚어봐야하죠. 보통은 저만의 형편없는 번역을 해보려고 하는데, 그러면 사전을 들고 독일어 단어를 파고들 수 있어요. 시를 읽는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만, 단어를 하나씩 짚어가며 읽는다면, 독일어 명사를 하나도 몰라서 모조리 찾아봐야 하고 동사는 수수께끼 같은 데다 제자리에 놓여 있지도 않으면, (웃음)겨우 다 읽었을 때는 그 시를 제대로 알게 돼요. 자기만의 번역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아는 언어는 물론이고 잘모르는 언어도 번역하기를 좋아하는 거예요. 노자의 책이 그런 경우였죠. - P73

Muro


Muro fácil y extraordinario,
muro sin peso y sin color:
un poco de aire en el aire,

Pasan los pájaros de un sesgo,
pasa el columpio de la luz,
pasa el filo de los inviernos
como el resuello del verano;
pasan las hojas en las ráfagas
y las sombras incorporadas.

¡ Pero no pasan los alientos,
pero el brazo no va a los brazos
y el pecho al pecho nunca alcanza!




간단하고, 비범한 벽,
무게도 없고, 색채도 없는,
허공에 뜬 공기 같은 벽.

새들은 그 벽을 비스듬히 통과한다;
빛의 흔들거림도,
겨울의 칼날도,
지나가는 여름의 한숨도.
폭풍에 불려 온 나뭇잎들은 벽을 건너
그림자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숨결은 통과하지 못하고,
팔은 뻗어오는 팔에 닿지 못하고,
숨결과 숨결은 영영 만나지 못한다.

르 귄


독재자들은 언제나 시인들을 두려워하잖아요. 시인은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여기는 많은 미국인에게는 이상해 보이겠지만, 남아메리카나 다른 독재 치하의 나라에서는 사실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 P83

논픽션에 대하여


지난 10년간 그는 중요해진 유명 인사이자 사상가인 ‘이 세상의‘ 어슐러였다. 같은 기간 동안 어슐러는 구글이 저작권을 무시하고 책을 디지털화할 수 있게 합의한 작가조합에 항의하며 조합에서 공개적으로 탈퇴했다. 또한 많은 이가 전미도서재단 역사상 가장 맹렬한 연설로 꼽을발언도 했는데, 미국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공헌을 인정하는 상을 받으면서 그 기회에 아마존 같은 곳이 책과 저자들을 점점 더 상업화하고상품화하는 현실을 맹공격했다. 어슐러는 소위 포스트 팩추얼 시대무엇이 사실인지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사실이란 무슨 의미인가에서부터,  - P85

정부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이유로 민병대가 오리건주 남동부의 야생동물보호구역을 점령하는 시절에 과연 ‘공유지‘란 무슨 의미인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많은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전국적 담론에서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어슐러는 작가로서 초기에 겪은 어려움을 나누고, 어느 웹사이트 포럼에서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했으며,
블로그에 고양이 파드의 ‘회고록‘을 연재하면서 그의 삶을 다른 식으로도 보게 해줬다.
그러니 우리의 세 번째 대화로 논픽션 쓰기를 이야기하고자 라디오 방 - P85

송국이 아니라 어슐러의 집에서 만난 것도 어울리는 일이었다. 우연히도 어슐러의 삶과 작가 경력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고 있었던KBOO의 오후 뉴스 코디네이터 에린이 우리 대화를 녹음해주겠다고 자원했다. 나는 예린과 함께 그 집으로 갔고, 우리는 야외 녹음으로서는최상의 품질이 나오는 안락하고 책이 가득한 2층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세상이 계속 끼어들기는 했다. 우리는 트럭이 가까이 지나갈 때도 멈추고, 옆 침실 안의 제일 좋아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이게다 무슨 소란인가 확인하러 나온 파드에게 인사하느라고도 멈췄다.
내가 그랬듯 독자들도 어슐러가 소설과 시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선언과 주장의 세계에서는 좀 더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둠의 왼손」에서 어슐러는 "어떤 질문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인지 배우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  - P86

이것이야말로 압박과 어둠의 시절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문학비평, 강연에서-과학과 환경에 대해서든, 구글과 아마존에 대해서든, 페미니즘과 문학의 정전에 대해서든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는 이영역에서 어슐러는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변호하고, 모든 예술가, 아니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답 없는 존재를 대변해 말하는 것 같다.
논픽션에 대한 이 대화를 끝내면서 나는 소설, 시, 논픽션이라는 세 장르 모두에 이렇게 깊은 역사를 지닌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도. 사실은 달리 누구와 이런 일을 또 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대화를 책으로 만들어야겠는데요!" 어슐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 책이 나왔다. 어슐러 K. 르 귄의 사색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세상에 나온 오브제가 되어 우리 손안에 펼쳐졌다. - P86

르 귄


우선 제가 읽을 수 있는 글이요.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할 거예요. 제게는 서사가 필요한데, 사실 언제나 서사가 필요했어요. 추상적인 생각은 잘 읽지 못해요. 그러니까 자서전과 전기, 지질학 같은 과학을 읽는 경향이 있죠. 역사 속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역사 자체를 말하는 논픽션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글은 잘 읽지 못해요. 특히 철학에는 애를 먹어요. 대학 신입생 때 철학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때는 필수로 들어야했거든요. 저도 철학이 좋기는 한데 도무지 머리에 남지가 않더라고요. 도저히 머리에 담아둘 수가 없어요. 반드시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우화라면 저도 기억하거든요. - P90

네이먼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서문에서도 지금 하신 말씀을 넌지시 언급하셨죠. 소설 쓰기와 시 쓰기는 자연스럽고, 쓰고 싶기도 하며, 쓰면서 충족감을 느끼고 또 그 글의정직성과 품질을 판단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논픽션은 그럴수가 없다고요. 논픽션 쓰기는 업무처럼 느껴지는 데다, 소설과 달리 글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거라고요. 그런 심한 불안을 느낀다면 어떻게 든든한 토대를 찾고, 또 에세이 한 편이 제대로 완성되었는지 그 여부를 아시나요? - P90

르귄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끝도 없이 첫 페이지를 구겨서 버리다가 겨우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죠. 언제 끝났는지 아느냐는 문제는 가끔 정말 어려운데요. 몇 년 전에 여자 어부의 딸TheFisherwoman‘s Daughter」이라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들고 강연에 나갈 때마다 청중들이 피드백을 어찌나 많이 주는지, 매번 글을 다시 써야 했어요. 결국 전 그냥 "그만! 이젠 다시 쓰기를 그만해야 해!"라고 말하고 그대로 출간했어요. 하지만그건 어떤 글을 그 자체로 완성한 게 아니라, 그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전 의견을 담아내는 글이라면 어느 경우에나 글 끝에 꼭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느껴요. - P91

네이먼


그 책에서는 특히 예술 작품 속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는 글로 꼽으시는데요. 드물게 누구의 의뢰없이 쓰신 글이기도 하죠. 순전히 작가님이 쓰고 싶어서 쓰신글이에요. 이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해서 무척 흥미로운 말씀을하셨는데요. "나는 소설을 쓸 때처럼 생각의 직접적인 수단이나 형식으로서 글을 이용할 수 있을 때라야, 산문을 제대로이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알거나 믿는 바를 전하는 수단으로서도 아니고,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서가 아니고,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뭔가를 초래하는 탐구이자 발견의 여행이 될 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를 구성하실 때의탐구 과정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독자로서 그글의 즐거움 하나는 작가님과 같이 탐구하는 느낌, 작가님과같이 발견하는 느낌이었다는 걸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 P91

르 귄


아마 그 글은 저에게 자서전에 가장 가까운 글일 거예요. 제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제가 열일곱 살에 떠나기는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다시 찾던 집으로 돌아가죠. 그러니 전 한참을 돌이켜 생각했어요. 그 글은 늙은 여자가 어린시절을 탐구하는 글이기도 해요. 내가 살았던 곳, 단순하게는집이면서도 어린 나에게는 우주였던 그곳이 어땠더라? 전 그곳이 어땠는지, 그곳의 의미와 내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그곳이 어떻게 저를 빚어냈는지 탐구해보려고 했어요. 그 집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또 제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던 집에 대해 쓰는 것 자체가 즐겁기도 했어요. 그 집에 다시 가서 그 집을 생각하는 즐거움이요. - P92

[예술 작품 속에서 산다는 것] 중에서


우리의 메이벡 주택을 어떤 소설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설에는 어둠과 광휘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정직하고 대담하고 독창적인 구조에서, 영혼과 정신의 상냥함과 관대함에서 솟아날 것이며 또한 환상적이고 기이한 요소들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소설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나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이 결국 그 집에 살았던 경험으로 배운 게 아닌가 싶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평생 단어로 그 집을 다시 지으려 애써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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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19세기 소설을 읽으면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전지적‘이라고 불리는 시점이 편안하기 그지없어요. 저는 이 방식을 ‘작가‘ 시점이라고 부르는데요, ‘전지적‘이라는 용어는 작가가 모든 것을 안다는 생각을 반영하다보니, 마치 그게 나쁜 것처럼 비판적으로 쓰일 때가 많아서예요. 하지만 작가는결국 이 모든 인물을 만든 저자이고, 창조자죠. 사실 솔직하게 파고든다면 모든 인물이 곧 작가예요. 그러니 작가는 모든인물의 생각을 알아 마땅하죠. 작가가 독자에게 인물들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왜일까요? 이건 생각해볼 만한질문이에요. 많은 경우 이유는 그저 작가가 아는 내용을 독자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서스펜스를 자아내기 위해서일 뿐이에요. 뭐, 그것도 정당한 이유긴 하죠. 이건 예술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전 사람들이 선택의 폭에 대해 생각하게 하려는 거예요. 쓰이지 않는 아름다운 선택지가 정말 많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1인칭시점과 제한적 3인칭시점은 제일 쉬운 시점이고, 그만큼 제일 흥미롭지 않은 선택이에요. - P38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갈 때 그런 일이 일어나죠. 톨스토이와 울프는 황홀하게 해내지만, 어색하게 하거나 스스로도 모르는 채 할 수도있어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알고 쓰느냐예요. 시점을 바꾸려면 강렬한 의식과어느 정도의 연습 및 이동 기술이 필요해요. 성공적으로 시점을 이동하면 쌍안경으로 보는 효과, 아니면 그보다 더 여러 개의 눈으로 보는 효과가 생기죠. 어떤 사건에 대해 한 가지 관점을 보여주는 대신, 영화 <라쇼몬>처럼 여러 관점을 제공하는 거예요. 그것도 <라쇼몬>처럼, 이야기 자체를 여러 번반복하지는 않으면서요.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할수 있고, 복수의 관점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더 어리둥절하게만들거나 더 명료하게 만들죠. 작가가 둘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에 따라서요. 저는 그런 이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작가 시점이 모든 시점 중에서 가장 유연하고,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자유롭고요. - P40

이야기는 곧 갈등이라고 가르치고, 언제나 "네 이야기에서 갈등은 어디 있지?" 묻는 것, 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있다는 뜻이에요.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다고, 플롯은 갈등에바탕을 둬야만 한다고 말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각하게제한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선언이기도 하죠. 삶은 갈등이고, 그러니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갈등뿐이라고 말이에요. 이건 그냥, 사실이 아니에요. 삶을전투로 보는 건 시야가 좁은 사회진화론의 관점인 데다, 굉장히 남성적인 시각이기도 해요. 물론 갈등은 삶의 일부죠. 소설을 쓸 때 갈등을 끌어내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갈등이 이야기의 유일한 생명줄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야기는 다른 많은 것을 다루니까요. - P41

전 무엇을 위한 ‘싸움‘, 무엇에 맞서는 ‘전쟁‘ 같은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해요. 모든 것을 갈등 및 당면한 폭력의 해결책같은 용어에 밀어 넣는 데 반대해요. 전 노자가 갈등에 관해하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요. 노자는 분쟁을 원래 있어야 할곳인 전장에만 제한해요. 모든 인간 행동을 갈등으로 제한하는 것이야말로 드넓고 풍성한 인간의 경험을 빼먹는 짓이에요. - P42

전 그저 문학에서 제일 오래된 형태가 환상성을 갖고 있었다고 짚었을 뿐이에요. 문학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오디세이‘
처럼 신화화된 영웅담에서 시작하죠. 장르소설이 문학이 아니라고 여기던 시절은 이제 과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 경우는 장르소설도 『분노의 포도』와 다를 바 없는 문학이라는 주장을 하도 오래 했더니,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물론 대부분의 장르소설은 『분노의 포도』만큼 훌륭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리얼리즘 소설도 『분노의 포도』만큼 훌륭하지 않죠. 장르로 작품을 판단하는 건 그냥 틀렸어요. 어리석은 데다, 낭비죠. 이제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사실을 알아요. - P43

바로 그거예요. 최근에 ‘북뷰 카페‘에서 했던 서사 소설에 대한 온라인 워크숍에서 저는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해양 모험소설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비롯한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을 읽어보라고 권했어요. 그 긴 문장, 묘사를요. 해상전투를 어떻게 쓰는지 보고 싶으면 오브라이언을 찾아보라고요. 오브라이언은 놀랍도록 뛰어난 액션 작가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쓰는 걸까요? 그 부분을 연구할 가치가 있어요.
이렇게 경이로운 글쓰기 사례들을 장르소설에서 찾을 수가있어요. - P45

네이먼


지금 인용할 말에 제가 과도한 뜻을 부여해서 읽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아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하신이 말씀에서는 불교철학이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어떤사람은 예술을 통제의 문제로 본다. 나는 예술을 주로 자기통제의 문제로 본다. 이런 식이다. 내 안에는 말해지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그것의 수단이다. 내가 나 자신, 나라는 자아, 나의 소망과 의견, 나의 정신적인 쓰레기를 치우고 그 이야기에 집중해 따라갈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가 스스로 말할 것이다." 이건 작심하고 뭔가를 종이에 쓰려는 사람과는 아주 다른 접근법 같아요. - P48

르귄


그래요, 상당히 도가적이죠. 무위無, 또는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 아주 수동적인 태도처럼 보여요. 물론 노자는 갈등을 지향하는 서구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수동적이라고 보죠.
"뭔가를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라." 그게 노자가 정말 어려우면서도 정말 유용한 대목이에요. 그냥 앉아 있기에도 수많은 다른 방법이 있거든요. - P48

르귄


[글쓰기의 항해술] 에 썼듯이 ‘금욕‘은 제가 열네 살 때, 소설을 써보려는 시도가 딱히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단어가 너무 많고, 형용사와 부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안해낸 방법이에요. 그래서 전 일부러 어떤 형용사도 부사도 쓰지 않은 서술을 한 페이지 꽉 채워서 써보려고 했죠. ‘오직‘이나 ‘거의‘같이 꼭 필요한 단어도부사에 속하니 아주 힘들어요. 그러니 다 잘라낼 수는 없을 때도 있죠. 그래도 ‘~적-ly‘
같은 단어는 다 잘라낼 수 있고, 다채롭고 매력적인 형용사를다 없앨 수도 있어요. 그러고 나면 금욕적이고 소박한 산문이 남죠. 대신 모든 에너지를 동사와 명사에 쏟아야 하기 때문에글이 더 힘 있고 진해져요. ‘금욕‘은 제가 가르치는 거의 모든 워크숍에서 하는 연습방법이에요. 그리고 다들 그걸 싫어하죠! 그래도 마지막 연습인 이른바 ‘끔찍한 일‘ 만큼 싫어하진 않아요. 자기 글을 가져다가 절반으로 줄이면서, 그 절반의 양으로 똑같은 내용을 말하는 연습이거든요. - P49

이 워크숍을 하다 보니, 작가 생활 말년인 지금에 와서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하는 게 제게도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지망생들도 거의 모든 작가가 좌절과 끔찍한 자기 의심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테고 그 점을 알아두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요. 작가들은 혼자 작업할 때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예술가보다 더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향이있어요. 그리고 출간은 만만찮은 장벽이죠. 시작할 때 저는 어쩌다 한 번씩 시를 발표할 수 있었어요. 독자가 여덟 명, 아홉 명쯤 되는 아주 작은 시 잡지였지만, 그래도 인쇄가 되긴했죠. 하지만 소설은 하나도 팔지 못했어요. 6년인가, 7년 동안 꾸준히 단편과 장편을 써서 세상에 내놓으려고 했지만 아무 데도 싣지 못했죠. 친절한 거절 쪽지는 잔뜩 받았고요 - P50

사실 저는 작가가 되는 데에, 제 글에 전념하고 있었고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가 있었기에 계속할 수 있었어요. ‘난 해낼 거야, 그것도 내 방식으로 해낼 거야.‘ 그런 생각에 매달렸죠. 그리고 펑, 마침내 뚫었어요. 일주일 사이에 단편 두 개를 팔았죠. 하나는 상업 잡지였고, 하나는 작은 문학잡지였어요. 일단 살짝이라도 열리고 나면 문이 계속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작품을 어디에 투고할지 알기가 쉬워지는 거죠.
제 단편은 전통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요소가 - P50

있을 때가 많았고, 전 판타지와 SF 잡지들은 제 글을 읽고 "이게 대체 뭐야?"라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통 문학시장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열린 마음이 그곳에 있었죠. 이렇게 한번 전진하고 나니 그 후에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글이 채택됐죠.
물론 그러고 나서도 에이전트를 얻기 전까지는 계속 제 글을투고했는데, 그건 힘든 일이에요.
그리고 이건 제가 지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는 영역이기도 해요. 인터넷과 전자출판, 자가 출판과는 너무 달라서요. 예를 들어 자가 출판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이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자가 출판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작가를 실제로 어디로 데려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뿐이에요. 홍보망도 없고, 작품을 알릴 방법도 없이 자가 출판을 하고, 광고주들에게 팔지도 않겠다고 선택한다면. ..? 전 그냥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자기 작품이 인쇄된걸 보면 정말 좋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친척들 말고는 아무도 읽지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죠? 저는 모르겠어요.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누군가에게 확고한 조언을 해주지 못해요. 우린 혁명기를 살고 있어요. 이 혁명 이후에 출판이 어떻게 정착할지짐작해볼 수밖에 없죠. 정착하기는 할 테니까요. - P51

시에 대하여


어슐러와 첫 인터뷰를 하기 전, 아내와 나는 워싱턴주와 캐나다 국경선근처에 있는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에 하이킹을 하러 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북서부에서 여름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산불이 공원을 닫아버렸고,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대안을 찾아 헤매야했다. 나는 어슐러가 오리건주 남동부제일 구석의, 외딴 고지대 사막에 있는 스틴스산을 오랫동안 사랑했음을 알았다. 어슐러의 소설 『아투안의 무덤의 세상에도 영향을 미쳤고, 시와 사진이 함께 수록된 협업작품집이었던 『이곳에 나와Out Here 에도 영향을 미친 풍경이다. 아직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어슐러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우리의 휴가를 구해줄 만한 제안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 P53

"어두운 하늘‘ 알아요?" 어슐러는 신이 나서 정보를 공유했다. "미합중국에 남은, 진정한 어둠을 경험할 수 있고 어떤 광공해도 없는 하늘 아래에서처럼 별들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거든요?" 어슐러는 바로 그 하늘 아래에서 보낸 무수한 밤의 경이로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곧 아내와 나는 ‘그곳에 나가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신 검은 하 - P53

늘 아래 아직도 야생마들이 돌아다니는 지역,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마을 안, 다섯 세대째 오리건 사람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어슐러와 찰스가 보냈다고 해요." 어슐러는 그렇게 말했고, 그곳에 사는 보기 드문 사람들은 우리를 보살펴줬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에 처음 찾아온 백인 정착민들까지 쭉 이어지는 농부와 목장사람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 ‘타오르는 정적‘과 ‘끝없는 빛의 심연‘ 아래 나란히 앉아서, 세상과 우주 속의 우리 자리를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 어두운 하늘과 그 하늘이 밝혀주는 사람들을 통해 어슐러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어슐러와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한참 전에 말이다. - P54

이제 나는 어슐러의 시를 생각할 때 이 순수한 하늘과 몇 세대나 그 하늘 아래 살아온 사람들을 제일 많이 떠올린다. 어슐러의 소설을 생각할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상상이라면, 어슐러의 시에서 제일 많이떠오르는 말은 사색이다. 어슐러는 SF 시나, 상상 속의 다른 세상에서일어나는 시를 쓰지 않고 이 세상 속 우리의 자리를 사색한다. 하늘에서 인간의 빛을 제거해 다시금 ‘영원함을 볼 수 있는 하늘이 되게 한다면, 영양과 코요테와 펠리컨과 맹금류가 인간의 수를 훌쩍 넘는 땅에서시간을 보낸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의미에 대한 질문들이 솟아오른다. 비인간 타자, 즉 짐승, 새, 식물, 땅 자체와의 진정한 유대감이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어떤 도구와 기술 이야기와 언어들이 세대에서세대로 전해질 가치가 있을까? 우리가 수수께끼와 경이, 우리가 알지못하는 것. 알 수 없는 것들과 맺어야 하는 적절한 관계는 무엇일까?
어슐러의 세상은 어둠과 빛이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마니교의 세상이아니다. ‘음양‘은 ‘어둠과 빛으로 번역될 수 있고, 도가의 개념과 비슷 - P54

하게 어슐러에게도 이런 반대 항은 사실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이며 서로 얽혀 있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어스시의 사람들은 도가 사상 같은시노래들을 쓰고 전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문화는 그 시를, ‘어둠과빛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차지한 자리를 사색하기 위해 세대를 넘어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슐러는 그중에서 발췌한 시 한 편을 어스시라는 세상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의 제언으로 삼았다. 여전히 타자와의조화와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을 말이다.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어감 속에 삶이 있네.
텅 빈 하늘을 나는
매의 비행은 찬란하여라. - P55

우리가 스턴스에서 여름을 보낸 후, 여름이 올 때마다 산불은 더 심해지고 더 멀리 퍼졌다. 자연에 대한 사색은 이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하늘, 타자성을 비추고 우리가 경외심에 멈춰서서 사색하도록 하는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밝힌 빛과 우리 자신만을 반사해 비추는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는 한, 자연과 유대감을 자아낼 기회는 줄어들기만 할 것 같다. 그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시, 그중에서도 특히 어슐러의 시가 발휘하는 관심 기울이기다. - P55

해안가의 별빛
(코스트 스타라이트 노선)을 타고서


가는 길, 넓은 계곡 속
아침 강물에서 떠오르는
하얀 펠리컨들을 보았지.
오는 길, 깊은 산맥 속,
구름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눈 덮힌 하얀 나무들을 보았지.
무겁고, 고상하고, 엄숙한
날개의, 나뭇가지의, 하얗게 써내는 파괴의 몸짓을.

애플게이트 하우스 앞, 작은 인디언 막자


조밀하고 무겁고 결 고운 검은 현무암
강물처럼 매끈하게 닳아
양쪽 끝이 둥글고 무딘 원통 모양의, 도구:절묘한 중심부나 그 전체적인 곡선
손에 들어맞는 그 모양을 만져보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손이, 여기를 쥔 여자들의 손이
그 모양을 빚어냈다는 걸 안다
그 무게가 딱 얕고 우묵한 그릇에 떨어지게 쥐고
씨앗을 짓이기고 들어 올렸다 다시 떨구면서부드럽고 무지근한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마침내는 돌 속을 파고들었으니,
내가 집어 들었을 때는
어떻게 잡고 들어 올릴지를 직접 말해주듯내 손을 빠듯 채우는 이 고운 형태로 부드럽게 마모시킨
그 손가락들의 자리에 내 손가락을 놓지.
아래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노래하고 싶어 하는 이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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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중에서


벽이 있었다. 별로 중요해 보이는 벽은 아니었다. 다듬지 않은 돌에 대충 모르타르만 발라서 쌓아, 어른은 넘겨다볼 수 있는 높이였고 어린아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었다. 도로와 교차하는 곳에 난 문은사실 문이라기보다 그냥 기하학적인 배열이자 하나의 선이었다. 경계선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개념은 실재했고 중요했다. 일곱 세대 동안 그 세계에서 그 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모든 벽이 다 그렇듯 그 벽도 양면이 있었다. 무엇이 안이고 무엇이 밖인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둠의 왼손』 중에서


그때 나는 새삼스럽게 알았다. 내가 언제나 두려워했고 그래서 에스트라벤을 보면서도 못 본 척해왔던 사실을, 그가 남자일 뿐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 두려움의 원천을 설명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침내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나는 에스트라벤의 실체를 거부하고 부정했다. 자신은 게센에서 나를 믿는 유일한 사람이면서, 또한 내가 불신하는 유일한 게센인이라던 에스트라벤의 말이 옳았다. 그는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준 유일한게센인이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개인적으로 의리를 다해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똑같은 인정을 바라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도무지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인정하기가두려웠다.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남자이면서 여자인 사람에게 나의 믿음과 우정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거기에 더해 큰 이야기 진짜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하는 데특히 관련이 있죠. 하지만 복잡한 문제예요. 현재시제에도 멋지게 들어맞는 용법이 있다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최근에는현재시제가 맹목적으로, 이야기를 푸는 유일한 방식처럼 쓰였어요. 다른 글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많이썼고요. 글쎄, 그건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또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한계를 내재하고 있죠. 전 그걸 ‘손전등 초점‘이라고 불러요. 바로앞은 보이는데 주위는 다 어두운 거죠. 높은 긴장감, 긴박한상황, 본론만 전달하는 글쓰기에는 아주 좋아요. 하지만 엘레나 페란테의 책들이나, 1920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을 다루는 제인 스마일리의 ‘지난 백 년The Last Hundred Years‘ 3부작같은 크고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ㅡ현재시제를 썼다면 그런 책은 제 기능을 못 했을 거예요. 현재시제가 말 그대로 ‘지금‘이고 과거시제는 말 그대로 먼 과거라는 추정은 너무나 순진해요. - P33

헨리 제임스가 제한적 3인칭시점을 아주 잘 구사하면서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죠. 제임스는 소에게서 우유를 잘 짜냈고, 그건 훌륭한 소예요. 아직도 우유를 많이 내놓고요. 하지만 정작 동시대 작품만 읽고, 언제나 제한적 3인칭시점만 읽는 독자는 이야기 속에서 시점이 아주 중요한 데다가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울프의 『등대로』 같은 책을 읽고 울프가 어떻게 사람들의마음속을 움직이는지 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좋죠. 와, 톨스토이가 독자는 바뀐 줄도모르게 이 시점에서 저 시점으로 옮겨가는 솜씨란-정말 우아하거든요. 독자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 눈을 통해서 보는지알면서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거예요. 그야말로 달인의 솜씨죠.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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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 
Ursula K. Le Guin, 1929~2018


1929년 10월 21일, 인류학자 앨프리드 크로버와 심리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작가 시어도라 크로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미 최후의야생 인디언으로 알려진 이시를 돌보며 기록을 남기는 등 아메리카 인디언 연구에 몰두했던 부모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은 르 귄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래드클리프컬리지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한 르 귄은 이후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1953년 프랑스로 건너가던 중 역사학자 찰스 르 귄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몇 달 후 파리에서 결혼한다. 1959년, 남편의 포틀랜드대학 교수 임용을 계기로 르 귄은 미국으로 돌아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 정착한다.
시간 여행을 다룬 단편 「파리의 4월(1962)을 잡지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르 귄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며 ‘어스시 시리즈‘와 ‘헤인 우주 시리즈‘로 대표되는 환상적이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낸다. 인류학과 심리학, 도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외계로서 우주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총 21권의 장편소설, 11권의 단편집 4권의 에세이집, 12권의 어린이책 6권의 시집과 4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팁트리상 등을 받았다. 또한 세계환상문학상을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태평양북서부서점협회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미국 SF 판타지 작가협회의 그랜드마스터로 선정되었다. 의회도서관에 의해 ‘살아 있는전설‘로 지정되었으며, 전미도서재단에서 미국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공헌을 인정하며 수여한 공로상을 받았다.
2018년, 88세의 나이로 포틀랜드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데이비드 네이먼 David Naimon


작가이자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라디오와 팟캐스트 <책표지 사이Between the Covers>의 진행자다. 틴하우스를 포함한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글은 2016년 최고의 짧은 소설The Best Small Fictions2016」에 수록되어 재간되었다.

어슐러 K. 르귄(1929~2018)을 기리며


교열 담당자는 빨간 펜을 썼고, 어슐러는 연필을 사용했다. 겨우 일주일 전에 어슐러가 넘겨줬던 이 원고에서는 연필과 펜의 의견이 일치할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우리가 광고문을 어떻게 내보낼지를 두고이메일을 주고받은 지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이제는 내가 어슐러와 교열 담당자의 의견이 맞지 않은 부분에 끼어들 차례였다. 그렇게 한창 작업 중이었을 때 어슐러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주일이 더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내가 맡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게이먼, 마거릿 애트우드, 조월튼처럼 위대한 작가들이 바친 헌사를 읽었다.
나는 어슐러의 글씨를 다시 보았다. 열정적인 좋아요! 사무적인 제생각은 다릅니다를. 그러다 보니 어슐러가 이 책에 얼마나 온전히 참여하고 있는지, 얼마나 눈앞의 일에 철저히 임하는지가 보였다. 어슐러의 강 - P7

력하고 자기주장 강하며 매혹적인 자아를 끌어내기에 너무 사소한 작업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온 세상을 담아내는 일이나 다름없다해도 말이다. 작가들을 위해 구글과 아마존에 도전한 어슐러, SF와 판타지계 속 남자들의 클럽에 맞섰던 어슐러, 지구, 우리의 행성인 바로 그
‘지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한 어슐러.
어슐러는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본질이 같다고 보고, 똑같이 몰두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나도 똑같이 해보려고, 어슐러가 했듯이 언어에심혈을 기울이려고 했다. 여전히 이 책을 어슐러와 함께 출간하고, 함께 이 여정을 축복하겠다는 꿈이 사라져서 슬프다. 어슐러의 어떤 프로젝트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테지만, 특히 이 책, 어슐러의 길고놀라운 삶에서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이 책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어슐러를 작가로서 돋보이게 한 지점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다는 상상이었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상상하고, 그 세상을 반영하는 언어를 창조하고, 어슐러가 그토록 아끼던 ‘지구‘를 기림으로써 그를 기리는 것은 우리 몫이다.


2018년 2월 1일데이비드 네이먼 - P8

서문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인터뷰어는 출판사 홍보팀에서 책에 관해 쓴 보도자료를 읽고 오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발췌 문장까지 갖춰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발췌 문장을 크게 읽고 나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여기에서 하신 말씀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
그런 인터뷰어들은 책을 한 권 쓴 유명인들과는 잘 맞는다. 그 유명인이 실제로 그 책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터뷰어도 실제로 읽지 않았으니까. 인상적인 한 구절만을 원할 뿐이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는 책에 정보나 메시지를 담았고, 그메시지가 전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풀이해서 말할 열의가 있는 진지한 작가들에게도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최대한 언어에 잘 담아보려고 고심한 작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작가들도 자신들이 한 말이 큰 소리로 읽히는것이야 기쁘게 듣겠으나,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더 잘 표현해야 한 - P9

다고 하면 기뻐하지 않는다. "나이팅게일에 대해 쓰신 부분이 참 흥미로운데요, 키츠 씨,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운이 좋아서, 이런 준비되지 않은 인터뷰어와는 극과 극처럼 다른 분들을 만나왔다. 빌 모이어스와 몇 번 만나본 뒤 ‘좋은 인터뷰‘에 대한 기준이 영영 고정되기도 했다. 좋은 인터뷰란 계속하고 싶어지는 인터뷰다. 하고 있는 말에 대해 전부터 생각해보았고, 말하고 있는 지금도 상대방이 하는 말에 비추어 생각해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다. 그러다 보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서로 의견이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차이를 적대감 없이 말하고 답하다 보면 대화를 더욱 치열하고정직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 P10

이제 나는 질문 한두 개만 받아보아도 불만만 남을지, 노력에 보상받을지를 안다. 불행한 결말이 뻔히 보일 때, 그 인터뷰를 계속하기란 양쪽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내가 ‘대체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라고?‘ 하고 생각하는 동안 인터뷰어는 ‘맙소사, 또 10초 동안 침묵하다가 음, 이라고 하는군‘ 하고 속으로 한탄한다.
좋은 인터뷰란 멋진 배드민턴 랠리와 비슷하다. 두 사람이 셔틀콕을 계속 허공에 띄워놓을 수 있으며, 그러면 셔틀콕이 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OO의 매력적이면서도 펑키한 녹음실에서 서로를 처음 마주했을때 데이비드와 나는 조금 굳어 있었고, 낯을 가렸지만, 곧 대화에 빠져들었고 나는 우리의 셔틀콕이 날고 있음을 알았다.
소설가로서 나는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끄러움 없이 말하지만, 시인으로서 이야기할 때는 수줍음이 많고 아마추어스럽 - P10

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시인들을 향해 말하게 되는데, ‘다른 시인들‘은 쉽게 만족하지 않고, 격렬한 자기 의견을 품고 있으며, 적대감이 강할 때가 많다. 배타적일 수도 있다. 글쓰기 워크숍에서낭독의 밤이 있을 때면 나는 산문 작가들과 같이 앉아서 시인들의 낭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반면 산문 작가들이 낭독할 차례가 오자, 시인들은 모두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게다가 영역 문제에 딸려오는 일종의 ‘시인 언어 Poetspeak‘도 있는데, 그건 나의 언어가 아니다. 이런 모든이유에서 나는 데이비드와 시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바로 사라졌다. 대화에 푹 빠져드는 것만큼 빨리 불안을치유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 P11

나의 논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섭다. 나는인터뷰어가 내가 읽은 적도 없는 쇼펜하우어나 비트겐슈타인, 아니면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내 글에 미친 영향을 논하려고 할까 봐 무섭다. 아니면 퀴어이론이나 끈이론string theory에 대한 견해를 물으면 어쩌나. 아니면 청중들에게 도가 사상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하면? 아니면 제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면 어쩌나, 내가 스스로 얼마나 무지한지 안다고 해도, 그 모습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내 배움과 지성의 한계를 존중하고, 나에게 ‘델피의 예언자‘처럼 굴라고 하지 않는 인터뷰어가 고맙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일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인터뷰어를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도 일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게 해준 KBOO에 감사드리고 싶다. 50년간오리건에서 예술과 사상의 자유와 관용을 지지하는 가장 강하고 끈질긴 - P11

목소리로 있어준 데 대해서도 고맙다. 미국이 아우성과 거짓말과 분별없는 폭력으로 갈가리 찢기느라 바쁜 중에도, 이런 목소리들 덕분에 아직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내용을 들을 수 있다. 귀를 기울인다면 말이다.

2017년 10월 6일
어슐러 K. 르귄 - P12

소설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은 말한다. "아이들은 유니콘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훌륭하기만 하다면 유니콘에 관한 책이 진실한 책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알지요."
성장기에 [어스시의 이야기들]을 읽던 내 경험이 바로 그랬다. 어스시에서는 마법이 흔했다. 마법사들이 지상을 걷고 용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나를 ‘현실‘에서 멀리 데려갈수록 나는 진짜에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슐러 K. 르 귄은 가슴속 깊이 작가, 그것도 소설만이 아니라 상상력의 작가다.  - P15

그리고 그에게 상상이란 남는 시간에만 하는 무의미한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이게 만드는 권능이다.
"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용에게 잡아먹힐 때가 많지요. 속에서부터요"라고 경고할 정도다.
어려서부터 르 귄의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타고 날아본 나로서는 ‘진짜‘
어슐러 K. 르 귄을 만나면 어떨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상상 속의작가를 몇 개만 떠올리더라도 어스시의 이야기들』에 나오는 마법의땅,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양성애 행성 게센,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아나레스의 탈권위 노동조합 사회 같은 세계를 만들어낸 마법사를 현 - P15

실 세계, 즉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여성, 나와똑같이 일상의 거리를 걷는 사람, 내가 곧 소설 쓰기의 기본 기술에 대해 인터뷰할 사람과 비교하면 어떨지를 말이다.
우리는 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포틀랜드 동부 깊숙한 곳에 있는 거대한자원봉사 체제의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국인 KBOO의 스튜디오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어슐러를 처음 본 나는 단단하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바보들을 봐주지 못하는 사람. 오랫동안 잘 살면서 풍부한 경험을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모여서 살아 숨 쉬는 지혜같은 것으로 변화한 사람. 그리고 이런 지혜를 갖췄기에 가식이나 허세를 참아주지 않을 듯한 사람. 대화를 해나가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기에, 그런 첫인상은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 P16

이 현세의 실제 어슐러와 내가 상상한 다른 세상의 어슐러 사이에 모순이 있었냐고?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아 보였다. 실제와 상상 속을 분리할 수 없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상상력의 가지를 하늘 높이 뻗어 올린작가였다. 그럼에도 작품 밖 세상에서의 어슐러에 대해 알면 알수록보이지 않는 작품 내부의 상상이 현실을 움직이는 것이지, 그 반대가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미국 SF 판타지 작가협회가 선정한 ‘SF 그랜드마스터‘이자 미국 의회도서관의 ‘살아 있는 전설로서 이 세상에서 지닌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슐러는 계속해서 오클랜드의 아나키스트 PM 프레스에서부터 시애틀의 페미니스트 SF 출판사 애크덕트 프레스 같은 소규모 독립 출판사에서 책을 낼 뿐 아니라, 소통에 대한 정신을 공유하고 또 주변부에 있어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키워야 한다는 데 관심을 둔KBOO 같은 방송국에 출연한다. 나로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 P16

어스시, 게센, 아나레스 같은 상상 속의 세계야말로 서로 맺는 관계에있어서나 땅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나 이 같은 상상 속의 대안적 삶이야말로 어슐러가 현실 세계에서 보여주는 이런 행동의 추동력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곧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요소들조차도, 이를테면 문법이나 구문이나 문장구조 같은 것들조차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의해 생동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히 말하자면 그 뒤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마법 같은 뭔가가 있었다. 우리 문장의 걸음걸이, 길이,
소리, 우리가 사용하는 시제, 시점, 대명사, 그 모든 것에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암시가 있고, 그 모든 것이 좋든 나쁘든 상상 속의 미래 세상을 향해 쌓아 올리는 건축 소재이자 구체적인몸짓이 될 수 있다. - P17

네이먼

그림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대부분의 예술에서 모방은 배우는 과정의 일부 같아요. 기술을 연마하고,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죠. 가장 경험이 많고 창의적인 화가라 해도 보통은 선대 화가들처럼 그리는 시기를 갖거든요. 작가님은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으로 모방을 추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작가들은 전통적으로 모방 때문에 조금 힘들지 않았나요. - P17

르 귄

전통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최근에는 확실히 그렇지요. 예술의 경우에는 모방하는 사람이 모방을 배움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에요. 배우기 위해 모방하기는 하되, 출간하지는 말아야죠. 아니면 모방하면서 "이건 헤밍웨이 흉내입니다"라고 말하거나요. 하지만 인터넷이나 대학 내 경쟁은 모방과 표절 사이의 구분을 흐리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흐릿해진 상황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들이아예 모방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게 되는 거예요. 어리석은 일이죠. 우리는 좋은 작품을 읽고 그렇게 써보려고 하면서 배워야 해요. 피아노 연주자가 다른 피아노 연주를 하나도 듣지않는다면, 연주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전 우리가 모방을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8

네이먼


작가님은 소리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고, 언어의 소리가 모든 것의 시작점이며, 언어의 핵심은 물리적인 실체라고 하셨는데요.


르 귄


저는 제가 쓰는 글의 소리를 들어요. 아주 어렸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머릿속으로 소리를 들었죠. 알고 보니글쓰기에 대해 쓰는 많은 사람이 듣거나 귀 기울이지 않고,
좀 더 이론적이고 지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몸안에서 글이 울리면, 스스로가 쓰는 글을 들으면 올바른 리듬을 들을 수 있고, 그러면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데 도움 - P18

이 됩니다. 젊은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스스로의 목소리를찾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쓴 글에서 울리는 소리는 그 글의작용에 핵심적이에요. 우리의 글쓰기 가르침은 그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아마도 시만 빼고요. 덕분에 우린 덜컥거리는산문을 만들어내면서도, 뭐가 잘못됐는지를 몰라요.



네이먼


2000년에 있었던 포틀랜드 문학예술 강연에서 이런 멋진 말씀을 하셨죠. "기억과 경험 아래, 상상과 창작 아래, 단어들아래에 기억과 상상과 단어 모두가 움직이는 리듬이 있습니다. 작가의 일은 그 리듬이 느껴질 만큼 깊숙이 들어가서, 그리듬이 기억과 상상을 움직여 단어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 P19

르귄


그건 버지니아 울프에게 배운 거예요. 울프는 친구인 비타 ‘약20년간 울프의 연인이자 친구였던 20세기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를 가리킨다. 올랜도』의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말 멋지게 설명하죠. 스타일은 리듬이라고, ‘마음속의 파도‘라고요. 그 파도,
그 리듬이 말보다 먼저 존재하고, 단어들을 거기에 맞게 짜맞춘다고요.



네이먼


리듬 사용에 대한 아마도 최고의 예시로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하기도 하셨죠.



르 귄


울프는 산문에서 길고 섬세한 리듬을 사용하는 놀라운 실사 - P19

례에요. 하지만 다른 작가도 얼마든지 있죠. 전 톨킨이『반지의 제왕』에서 쓴 리듬에 대해 에세이를 쓰기도 했어요. 짧은리듬이 반복되면서 긴 리듬을 형성하는데, 톨킨의 글에 나오는 순환적인 반복이야말로 그 글이 정말 많은 사람을 완전히사로잡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린 이 리듬에 넋을 잃고 행복해지죠.



네이먼


작가님이 문법과 문법 전문용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규칙들이 옳은지 따져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게 흥미롭습니다. 문법은 우리 직업의 도구인데, 너무나 많은 작가가 문법과의 관계를 피한다니 이상한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셨어요. - P20

르귄


제 세대에서나 그 후로 한동안은―저는 1929년에 태어났습니다만 문법을 맨 처음부터 배웠어요. 조용히 주입받았죠.
우린 품사의 이름을 알았고, 영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얻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아요. 요새 학교에서는 읽기도 예전보다 훨씬 적게 하고, 문법은 아주 조금만 가르치죠. 작가에게 이건 목공 도구 이름을 배우지도 않고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채 목공실에 내던져지는 상황과 비슷해요. 필립스 스크루드라이버로 뭘하죠? 필립스 스크루드라이버가 무엇이죠? 우린 사람들에게 쓸 준비를 갖춰주지 않고, 그냥 "당신도 쓸 수 있어요!" 아니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써봐요!"라고하고 있어요. 하지만 뭔가를 만들려면, 만들 도구를 갖춰야해요. - P20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


그러자 정말로 평화가 찾아왔다. 바다에서 해변으로 평화의 메시지가 불어왔다. 세상의 잠을 더는 깨뜨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깊이 잠들어 쉬도록 달래며, 꿈꾸는 이들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성스럽고도 현명하게 확인토록 하고ㅡ또 뭐라고 속삭이는걸까, 릴리 브리스코는 깨끗하고 조용한 방에서 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세상의 목소리는 너무 조용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없었지만,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해진들 달랐을까.

J. R. R. 톨킨의 [반지 원정대] 중에서

깊은 물속에 세워진 거대한 받침돌 위에 돌로 만든거대한 두 왕이 서 있었다. 둘 다 이마가 갈라진 채, 흐릿해진 눈을 찌푸리며 가만히 북쪽을 바라보았다. 둘 다 왼쪽 손은 경고하듯 손바닥을 바깥쪽으로들어 올렸다. 둘 다 오른쪽 손에는 도끼를 들었다.
둘 다 머리에는 부서져가는 투구와 왕관을 썼다. 오래전에 사라진 왕국의 말 없는 수호자들, 그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과 위엄을 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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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대화 


호르르, 바람이 세월을 밀어낸다. 그의 시간 한 줌이 바람속에 흩어져 흘러간다. 잣나무 가지가 쉴 새 없이 살랑이고그 사이로 갓난아이 눈망울같은 햇살이 어룽거린다. 아내가 묻힌 자리,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눈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찾을 길 없이 녹음 짙푸러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풍경 사뭇 다르다. 매일 오는데도 한재정상 잣나무숲은 매일 모습을 바꾼다. 호르르, 바람결에 흔들리며 어어룽 숲 바닥에 내려앉는 햇살이 아내의 웃음처럼 수줍다.
이러고 있으니 좋은가?
평생 고생하여 마련한 선산이며 뒷산 놔두고 하필 여기에 묻히길 원한 것은 아내였다. 죽음을 예감한 순간, 아내는병원 창밖, 이제 막 새 움을 틔운 은행나무를 보며 말했다.
- P9

한재 잣나무숲에 가면 열십자 모양의 바우가 한나 있을것이요. 그 근방암 디나 뿌려주씨요.
한재, 라는 말이 아내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거무죽죽다 죽어가던 심장이 벌떡살아나 타닥타닥 시퍼런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백운산에서 1년. 85년 중 찰나와도 같은 그 짧디짧은 기억이 아직도 자네 돌아갈 곳이었단 말인가. 노여움인지 슬픔인지 질투인지 뒤범벅인 감정을 헤아릴길 없어 그는 묵묵부답, 일가친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유지를 따랐다.
그 뒤로 그는 매일 한재에 오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아이 넷 낳고 아이가 기억을 지워 아무일 없이 잘사는 것 같던 아내의 얼굴에는 문득문득 깊은 소(沼)의 바닥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 P10

가서 바람은 오동나무 잎사귀를 조심조심 흔들고 포플러 잎사귀를 요동치게 하고 아낙 잃은 외로운 남정네의 한숨을 실어 늙은 과부 시리디시린 가슴팍을 두드릴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유정(有情)한 것들의 설움을 무심하게 실어나른다. 마당의 은행잎이 어지러이 흩날리는 늦가을, 아내는 저녁을 짓다 말고 불길이 제 치마폭을 삼킬 듯 너울거리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바람의 노니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이상하지라. 바람이 불면 시상이 한숨 같은 것으로나 꽉찬 것맹키 아득하고 서글프고 그래라.
그러면서 아내는 무안한 듯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잣나무숲에 일렁이는 바람은 누구의 한숨일까? 아내가 마음에품었던 그 썩을 놈이나 그놈 같은 어떤 이들의 서러운 한숨일까? 어쩌면 이 바람 속에는 아내 묻은 날 그가 뿌렸던 눈물이나 그날 이후 오늘까지의 묵묵한 그의 숨도 섞여 있을지 몰랐다. - P15

젊은이의 눈길이 잣나무숲, 햇살 어룽거리는, 지난가을의 낙엽 아직도 미처 썩지 않은 푹신한 땅바닥을 더듬는다.
아내 묻힌 거기 어디쯤, 아마 아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거름이 되어 잣나무를 쑥쑥 키웠을 것이다. 사람의 몸뚱이를먹고 자란 잣나무는 그 어느 곳보다 무성히 짙푸르고 사람의 슬픔을 먹고 자란 바람은 그 어느 곳보다 처연히 서늘하다. 제 슬픔을 먼저 간 혹은 후에 간 사람들의 슬픔을 다독이듯 도련님은 잣나무숲 여기저기를 눈빛으로 어루만진다.
도련님의 눈빛이 더듬는 곳, 햇살이 반짝 빗방울처럼 튕겨오른다.
목심은 하난디라. 되련님도 나도……….
목숨을 버릴 생각 같은 건… 그는 해본 적이 없다. 도련님 따라 간이학교에 가서도 그는 갓 태어난 송아지 눈망울이 아른아른, 갓 돋아난 가지 떡잎이 어어,  - P22

사람이 좋아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도련님은 몰랐다. 혼령이 되어서도 도련님은 여전히 모른다. 도련님에게 신념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무엇이다. 저 하나 바꾸기도 어려운 게 인생이란 걸, 부잣집도련님은 모른다. 아니 도련님은 아는 무엇을 그가 모르는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굳이 부정할 생각도 없기는 했다.
도련님과 그는 타고난 태생만큼 다른 사람, 그러니 달리 산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믿었다.
사랑이 신념인 사람도 시상에는 있어라.
니 말이 맞다믄... 니도 고런 사람이겄제. 그래서 니헌티순심이를 보냈을랑가………. 그건 나도 모린다. 순심이를 살릴라고 생각형게 니배끼 생각나는 사람이 없드라. 그래 니헌티보냈다. 그래 니가 괴로웠을랑가, 고것까지는 나는... 생각을못 혔다. 아니 안… 혔다. 사람 살리는 것이 더 급했응게. 혀서 니는... 내가 미웁냐? - P25

죽어서 그의 곁이 아니라 도련님의 곁을 택한 것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임도, 함께하여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임도, 그는 짐작한다. 그러면서도 아내의마음 전부를 갖지 못하여안절부절, 몸의 욕망이 끊긴 뒤에도 질기게 살아남은 마음의 욕망이 서글프다. 아내 묻힌 자리, 처연히 더듬고 있을 도련님의 시선조차 소화되지 않은채 그의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뜻밖에, 그 자리 더듬는 도련님의 시선은 청포묵처럼 담백하다. 사상이고 무엇이고 도련님만 해바라기하는 그 여자, 답답하여 내려보낸 그 순간, 도련님은 여자 향한 제 마음도 싹둑, 작두로 콩대 자르듯 잘라낸 것인가.
도련님은 왜 하필 그로 와 죽었소? - P31

나가 참말 죽었으까 운학아?
죽어 젊은 도련님이 살아 늙은 그를 응시한다. 아, 잣나무숲이 바람에 출렁인다. 바람이 잣나무숲에 고인 어떤 것들의 세월을 소환하여 거기 숨을 불어넣는다. 순심이가 눈물 떨구며 뒤돌아보고 도련님이 물푸레나무 지팡이 짚은채 잣나무숲으로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자처럼으로 숨어든다. 바람의 숨결 닿는 곳마다 잣나무숲, 출렁이며 싱싱하게 살아난다.
이것이 시방 꿈이끄나.
그는 깨어나는 숲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동고새가 융단처럼 푹신한 낙엽더미에 입을 묻고 박수라도 치듯 머리를끄덕인다. 꿈틀꿈틀 싱싱한 벌레 한 마리 동고새 입에 낚인다. 먹이를 먹은 동고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휘휘휘 호로롱, - P33

봄날 오후, 과부 셋 


봄바람이 앙탈하는 아이처럼 마당을 휩쓴다. 어지간한바람에는 끄덕도 않던 남보라 빛 수국마저 미친년 널뛰듯몸을 뒤챈다. 간신히 매달려 있던 무거운 꽃송이가 뚝 부러질 것만 같다. 가만보니 그것은 수국이 아니라 빨랫줄에서펄럭거리는 남보라 빛 치마다. 요즘은 자꾸 헛것이 보인다.
헛것이 보인다고 한숨결에 한마디했더니만 서울사는 딸년은 짜증스럽게 헛것은 무슨, 백내장이 심해 그렇지, 무안하게 쏘아붙였다. 썩을년. 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백태 낀 눈이 빚어내는 착각이 그녀에게는 잠시의 현실이다.
그녀는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는다. 반나절 만에 빨래를말린 성급한 바람처럼 그녀의 80년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누군가 그녀의 세월 밖에서 그녀의 한 삶을 지켜보고 - P37

사다꼬도 그게 부러웠구나. 어쩐지 그녀는 그런 사다꼬가 가깝게 느껴진다. 언제였는지, 갓 구운 카스텔라를 들고서점에 간 적이 있다. 학생들 등하교 시간이나 되어야 손님이 드는 서점은 고즈넉했다. 그렇게 자주 봐도영말이없는 하루꼬 남편이 불편해서 그녀는 창밖에서 서점 안을 기웃거렸다. 참고서를 들이는 참인지 두 사람은책뭉치를 풀고 있었다. 하루꼬의 앞머리가 흘러내리자 남편이 장갑을벗고는 천천히 쓸어올렸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귀 뒤로 넘긴 남편은 몇 번이고 하루꼬의 뺨을 쓰다듬었다.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었다. 하루꼬가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 또한 다정하고 따뜻했다.
단 한 시간도 그런 세월을 살아보지 못했노라는 사다꼬의말을 그녀는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P59

하루꼬의 웃음을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하루꼬도 그 사실을 의식했는지 머쓱하게 웃음을 거둔다. 그러나 잠시의 웃음은 소녀 시절처럼 해맑다.
"자주 좀 모이자 영감도 없으니 나도 이제 놀러도 다니고 해야겠다."
웃음 끝에 사다꼬가 덧붙인다. 사다꼬는 지난 5년, 남편이 앓아누운 뒤로 아예 문밖출입도 하지 못했다.
"아이구, 언제는 사는 게 덧없다더니………."
"에이꼬 네 말이 맞다. 죽지 못할바에는 재미나게 살아야지."
사다꼬는 이렇게 불쑥 물러나서 사람 맥 빠지게 하는 데도사다.
"나 배고파. 뭐 먹을 거 없어, 사다꼬?"
그녀가 산해진미를 올려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하루꼬가 먹을 것을 찾는다. 하루꼬의 염장질은 이런 식이다. - P63

그는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행주로 상을 닦는다. 엊저녁 삶아놓은 것이다. 자기부터 자기를 대접해야 남한테도대접을 받는 법이야. 그래서 어머니는 입고만 나서면 흙투성이가 되고 마는 옷을 그악스럽게도 갈아입히고, 사과 하나 귤 하나도 예쁘고 좋은 것으로만 골라 먹였다. 그래 봐야 남들에게는 병신이었을 테지만 어머니만큼은 그를 부잣집 도련님처럼 위했다. 그는 보란 듯이 밥상을 차린다. 언젠가 어머니 간 뒤 군청 복지과라나 사회과라나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에 병신 아들 사는 꼴이안타까워 누가 민원이라도 넣은 모양이었다. 마침 밥을 먹으려던 차였다. 군불 지피고 나온 숯으로 구워낸 고등어자반까지 떡하니 놓인 밥상을 본 여직원이 어머,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머, 저보다 훨씬 낫네요. 여직원은 염치도 좋게 자반을 손으로 죽 찢어 맛을 보았다. - P75

가슴이 두근거린다. 호아가 집에 있다면 아이가 저렇게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몸조차 가누지 못할 만큼 맞은 것일까. 아니면 호아도길호 어머니처럼 집을 나간 것일까. 어머니가 떠난 날처럼등골이 서늘하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저거침없는 손길은호아가 아니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길호형의 마음을 그는 알 것 같기도하다. 동네 아이들에게 병신 소리를 듣고 온 날이면 아버지는 그를 때렸다. 맞는 것은 그였으나 괴로운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주먹이 향한 것은 그가 아니라 아버지의 어긋난 유전자, 그러니까 곧 아버지 자신이었다. 호아를 때리는길호 형의 주먹도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른다.
그게 아버지가 견디는 방식이란다. 막막해서, 하도 막막해서 그러는 거야. 네가 이해하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은상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길호 형도 아버지처럼 막막한것일까. - P79

손에 잡혀나오는 것은열쇠다. 버둥거리는 손으로 그는 허리춤의 쇠사슬에서 열쇠를 빼낸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손에 열쇠를 쥔 채 그가손을 뻗는다. 그의 말없는 말을 호아는 알아듣는다. 조심스레 열쇠를 잡는다. 이제는 담벼락 아래서 멍든 얼굴을 가린 채 숨어 있지 않아도 될까. 이곳이라면 취한 남편도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호이는 열쇠를 쥔 채 문을 열고 나선다. 끼이익, 돌아가야 할 곳의 냉혹함을 일러주기라도 할듯 쇳소리가 귀청을 긁는다. 비탈길을 내달리기 전에 그녀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본다. 눈송이 같은 하얀 꽃이 철조망위로 조랑조랑 매달려 있다. 꽃송이가 바람에 살랑인다. 꽃송이를 흔든 바람이 향기를 안고 그녀의 품으로 달려온다.
그것은 그의 향기다. 열쇠를 꼭 쥔 채 그녀는 마을을 향해내달린다. - P90

맏이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그는 묵묵히 도끼를 놀린다.
퍽, 퍽, 나무 쪼개지는 소리에 겨울 햇살이 시들어간다.
"아부지는 시방도 경우 쟈가 사람노릇 허고 살 것 같소?
꿈 깨씨요. 23년 만에 지 팔도 보돕씨 움직이는디 쟈가 지발로 걷는 꼴을 아부지 살아생전에 볼 수나 있을 것 같소?
행운의 사나이 좋아하시네. 그놈의 행운 개나 주라고 허씨요. 저놈 명운(命運)이 어매아배 다 잡아묵고 인자 나꺼잡아묵게 생겼단 말이요."
도끼가 갈 자리를 잃고 받침대에 꽂힌다. 한치만 어긋났으면 그의 정강이에 꽂혔을 것이다.
"주뎅이 못 닥치냐!"
순간, 우어, 우어어, 기이한 비명 소리가 그의 일갈을 눌러 앉힌다. 그의 귀가 경우 방을 향해 곤두선다. 어어. 분명경우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도끼를 집어던지고 신발을 벗을 겨를도 없이 아들 방으로 내달린다.  - P149

머리를 침대 머리맡에 박으며 우어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놀란 그가 아들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지난 23년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아들의 목이 그의 팔 안에서 버둥거린다. 아들의 볼은 눈물로 온통 흥건하다.
"씨발! 벵신 자석만 끼고돌다가 인자 산 자석 죽는 꼴 보게 생겠네. 조오컸소!"
콰당, 대문이 거칠게 닫히고 아내의 곡소리가 늦가을 바람처럼 어지러이 집 안을 휘돈다.
"아이고오! 우리 경우가 그때게, 사고 났을 때게, 팍 죽어부렀으면, 그랬으면 좋았을랑가……."
울음 끝에 아내가 탄식한다. 아직도 경우는 그의 품 안에서버둥거린다. 버둥거림이 점점 힘차지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느낀다. 이것은 기적이다. 경우는 또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들어가는 햇살이 눈물로 번들거리는 아들의 뺨 위로 힘없이 내려앉는다. 벌써 짧은 겨울 낮이저물고 있다. - P150

핏줄 


왕시루봉이 구름 한 점 없이 말갛다. 오늘도 비 오기는글렀다. 장마철이 열흘 남짓 지났는데도 뜨거운 뙤약볕만내리쪼인다. 60년 경력의 농사꾼인 그도 철을 종잡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매화와 동백이 시들 무렵 연노란 산수유가 들판에 봄빛을 불러오고, 아련한 연노랑 빛이 성에 차지않는다 싶을 즈음 진달래가 산등성을 벌겋게 물들이고, 그꽃들이 죄 사라진 뒤에야 봄볕에 지친 보랏빛 오동이 숨을헐떡이며 커다란 꽃잎을 축 늘어뜨려 여름을 알렸는데 요즘은 온갖 꽃들이 동시다발로 피어난다. 지난겨울에는 제가 무슨 고결한 매화나 되는 양 한겨울 눈 속에 움튼 버들강아지를 보기도 했다. 농사일에도 철이 사라진 지 오래다.
철따라 농사를 지었다가는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다.
- P153

"밥 차례! 시방이 몇 신디……그는 괜히 아내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느릿느릿 얼갈이배추를 씻으며 콩닥콩닥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답이었다.
"넘들은 나이가 들면 둥글둥글 부처를 닮아간당만 우리집 영감은 먼 영문으로 늙을수록 심통만 늘어가 모리겄네. 묏자리를 잘못 썼능가, 집터가 안 좋응가…………"
제발 사근사근 말 좀 했으면 싶던 젊은 날에는 꿀 먹은벙어리마냥 입을 꽉 다물어 애를 태우더니 뒤늦게 말문이터졌는지 요즘에는 그가 한 마디 하면 백 마디로 돌아왔다.
늙은이 살가죽처럼 질긴 아내의 잔소리는 피하는 게 상책중 상책이었다. 아침부터 뭘 볶는지 온 집 안에 기름내가진동했다. 아침 밥상 위에 떡하니 올라온 것은 모양도 요상한 샛노란 부침개였다. - P172

내는요즘 들어 끼니마다 베트남 음식이 밥상 위에 올라왔다.
아내가 베트남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 쑤언의생일이 지난 뒤였다. 한국에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이라고 아내는 오랜만에 옛 실력을 발휘하여 백설기에 약밥까지 한국식으로 떡 벌어진 한 상을 차렸다. 쑤언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게 그 상을 받았다. 그날 밤 화장실에 다니러 간 아내가 찬바람을 몰고 혀를 차며 돌아왔다. 초봄이라 쌀쌀한밤공기에 잠이 깬 것인지 한참 뒤척이던 아내가 넌지시을 건넸다.
"영감, 쑤언이 봄이라요. 봄에 태어났다고 쑤언이랑마."
봄이 그렇게 예쁜 이름인 줄 그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쑤언은 베트남 얘기를 단 한 번도 입에 올린적이 없었다.
"초승달을 봅시로 울고 있어라. 월남이 그리운서. 하기사 여우도 죽을람시로 고향 쪽을 보고 죽는단디 워째 고향이 안 그립겄서. 짠하고 안됐어라." - P173

간간히 쑤언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조차 마음껏 지르지 못하게 만든 것은 비명을 질러봐야무용지물인 오랜 세월이었으리라. 으앙! 어미 대신 우렁찬비명을 지르며 아이가 나왔다. 잠시 후 분만실 문이 열렸다.
"사내아입니다."
간호사가 얇은 천에 둘둘 말린 아이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저도 모르게 움찔 그는 눈을 감았고, 심호흡을 하며지발, 간절한 기도와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눈앞이캄캄했다. 까맸다! 어미를 쏙 빼닮아 새까맣고 오종종한 아이가 벌써 눈을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눈동자 검은 이 아이가 한산 이씨 28대손 이강호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는 엉거주춤 아이를 안은 채 화석처럼 굳었다. 아이고, 아가! 우당탕 문이 열리며 저만치 아내의 고함 소리가 아득하게 멀었다. - P178

고등학교 때부터 술 좋아하고 문학 좋아하던 박은 문청들의 잡소리 듣는 재미에 빠져 그냥저냥 식객으로눌러앉았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고, 경기고에 다니던 박은영어 좀 안다는 죄로 선배 따라 켈로 부대원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잘도 일상으로 복귀했다. 박은 그게쉽지 않았다. 전쟁은 박에게 술로 남았다. 술 없이는 도무지시간이 흘러가질 않았다. 술을 마시면 시간이 훨훨 날아갔다. 술과 더불어 한평생을 하룻밤처럼 흘려보내는 것이 스물둘 박의 소원이었다. 그래도 평생이 하룻밤과 같지는 않았다. 술에서 깨고 보면 또 지루한 시간들이 막막하게 놓여있었고 하여 다시 술잔을 잡았다.  - P182

"얘, 너는 어디서 빌어먹니?"
발로 걷어차인 데다 곤한 잠을 깨웠는데도 취객은 성을내지 않았다. 나? 하고 반문하더니 가만히 제가 기대앉은집을 가리켰다. 그곳은 전쟁 전 최의 집이었다. 최의 가족은 죄 월북하고 남도부 부대원이었던 최는 홀로 남에 남았다. 복역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은 백부가 차지하고 있었다. 자기 집에서 최는 더부살이를 하는 셈이었다. 최의 백부는 집안 말아먹은 좌익이라면 치를 떨었고, 하여 빨치산이었던 최에게 더 엄격했다. 늦잠을 자도 술을 마셔도 저놈이 저러니 빨갱이지, 귀에 딱지가 앉았다. 취한 최는 그놈의빨갱이 소리 또 들을까 싶어 통금 가까운 야밤에 집을 지고앉아 노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자는 동안 취기가 걷혔는지 최는 또랑또랑 되물었다. - P183

박은 이내 아쉬운 시선을 거둔다. 젊어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여자는 놓쳐도 술을 놓치는 법은 없던 박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팡이 짚고 돌아갈 길이 아득하다. 생각난 김에 박은 지팡이를 잡는다.
언제나처럼 김이 동작 빠르게 계산을 한다. 평생을 김에게 얻어먹었으나 박도 최도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있는 놈이겨우 짜장면으로 생색이야. 그런 지청구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평생 마음 놓고 얻어먹을 친구가 있다는 것도 생각하면 복이다. 부모 잃고 형제 잃고 꿈도 잃고 대신 친구 등쳐먹을 복은 챙겼다. - P206

혜화동 로터리에 차들만 분주하다. 로터리를 둘러싼 널찍한 인도에서 최와 박은 머뭇거린다. 택시를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 로터리를 돌아 나가는 차들이 대낮인데도 뒤엉켜 있다.
"여기서는 택시 잡기 어려워요. 성대 쪽으로 조금 올라가죠."
"흥, 너는 아는 것 많아 좋기도 하겠다. 예순 넘으면 잘난놈이나 못난 놈이나 똑같고, 일흔 넘으면 배운 놈이나 못배운 놈이나 똑같고, 여든 넘으면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똑같다더라."
1-45지팡이 짚고 김의 뒤를 따라 로터리를 돌아나가며 박이또 쏘아붙인다. 최도 한마디 거든다.
"하나 더 있다. 얘. 빨치산이나 켈로나." - P207

김이 택시를 잡고, 몸 제일 불편한 최가 먼저 오른다. 지팡이 한 손에 들고 겨우 차에 오른 최가 문을 닫기 전, 박과김을 일별한다.
"간다."
김과 박은 고개를 끄덕인다. 작별은 평소처럼 무덤덤하다. 이내 문이 닫힌다. 멀어지는 차의 꽁무니를 박과 김이물끄러미 바라본다. 또 보자, 라는 인사가 언젠가부터 간다,
로 바뀌었다. 그러고도 몇 번 또 보았다.
끊임없이 차들이 로터리를 돌아 나오고 그중에는 박 태울 빈 차도 있다. 박의 인사 또한 간결하다.
간다."
언제나처럼 김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박과 최가 떠난 자리, 제 몸뚱이보다 더 무거운 한 삶을 지고 그 삶에 짓눌려허덕이던 그들의 무게 따위 존재도 하지 않았던 듯, 거리는평온하다. - P208

땅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일을 하는 순간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농사일과는 다르다. 아무리 넓은논도 밭도 끝은 보인다. 끝까지 갈 일이 아득해도 하다 보면 어느 샌가 끝이 나 있곤 했다. 그는 고추 따기가 가장 싫었다. 계집처럼 쭈그려 앉아 고추를 따다 보면 허리가 끊어지거니와 무슨 놈의 고랑이 그렇게 긴지, 검푸른 고추 터널의 끝 부근에서 어룽거리는 빛 때문에 아득히 현기증이 일었다. 고추 딸 때가 다가오면 온종일 술에 취한 듯 세상이어지러워 차일피일 핑계거리를 만들었고, 꼭지가 말라들즈음에야 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섰다. 벼룩처럼 들러붙어 등골을 뽑아먹는 자식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지게를 내던지고 훌훌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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