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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오지 않은 당신에게.
---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 집을 읽고 ---
이 책, ‘아름다운 집’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처음 책방에서 이 책 제목을 보고 당시에 유행한 한옥들에 관한 이야기를 묶은 책인 줄로 지레 짐작을 했다. 오래 구독한 한겨레신문의 문화부장이리라는 생각보다 목수의 이름일 것이다로 단정했다. 그리고 한참 후 좋아하는 지인의 문방에서 그 책을 읽은 소감을 읽고는 내 생각이 틀린 것을 알고 실소를 훔쳤다.
‘좋은 책이구나. 기회 되면 읽어야지.’ 그렇게 미뤄두고 있는 사이 다른 지인은 몇 편에 나눠 그 책들을 분석하고 책이 준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글을 만났다.
‘꼭 읽어야지.’ 의 시간이 일년을 가까이 보내고서야 겨우 잡게 된 이 책을 밤을 새워 읽었다.
처음엔 책상에 앉아서 진득하게 보다가, 어느 사이 누워서 뒹굴며보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홍수를 이뤄,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서 다 읽은 다음 퉁퉁 부은 눈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일하러 갔다.
책을 읽은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아픈 일기를 훔쳐보는 팽팽한 긴장감과 아프게 떨려오는 감정의 파장들...
책을 읽기시작하면서는 표지에 ‘손석춘의 소설’이라 표기한 것이 참 거슬린다는 지인의 의견에 동감했다. ‘
편집자’ 라면 몰라도...
그 책은 리진선 이라는 한 눈 맑은 사회주의 혁명가의 자서전이요, 명상록이요, 일대기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기록을 떠나 분단국가, 우리 역사의 현장을 살아간 한 피맺힌 절규의 기록들이라는 생각에 내내 거슬렸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논픽션을 가장한 형식의 픽션... 소설인 것을 알았다.
끝끝내 혼동을 주는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문제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못된다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겨우 알아챘다.
이 책에서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리진선의 일기는 1938년 4월 1일 금요일.
‘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 어디에 있는가. 오늘 조선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연희 전문에 등록한 오늘 마치 운명처럼 먹장구름이 엄습해왔다....’ 로 시작 된다.
식민지 시대에 지식인이 나아갈 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상을 모색한 그는 모두가 완전하게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런 너무나 순박한 사회주의자의 이상은 그가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의 몽상적인 이상은
“아들이 혁명이 뭔지 알까?"
"그럼요. 왜 몰라요." 서돌이의 해맑은 눈이 다소 진지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 를 통해서 보여주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 날의 대화 속 그 ‘아름다운 집’ 이었다.
그가,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꿈과 이상이 어떻게 굴절되고 권력에 이용되는지를 읽어가면서 나는 그를 지켜보는 헌신적인 아내 신여린이 되었다가, 그를 평생토록 사모해서 가슴에 묻어 둔 최진이 되었다가, 꼭 살아서 독자적인 혁명사상을 가져달라고 나직하고도 힘찬 목소리로 당부하는 박헌영이 되기도 했고, 권력으로 사위어 가는 조선혁명의 불씨를 그의 가슴 안에서 타오르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현상이 되기도 했지만, 간절하게 해맑은 눈으로 아버지를 지켜보는 4살짜리 서돌이다.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지아비로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지켜가지 못하는 것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골목 모퉁이 집 플라스틱의자에 엉덩이를 겨우 걸치고 술잔을 비우고 있을 수많은 등들이 보였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를 화두처럼 짊어지고 가는 굽은 등들이.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볼테르--"
이 자막으로 시작 되는 영화 '선택'을 보면서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 청년 김선명, 해방이 되던 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매료 되어 북한을 선택한 그 선택 때문에 43년 10개월을 감방에서 보낸 그와 리진선이 겹쳐보여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볼테르처럼 싸우지도 못하는 소시민인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전 세계 역사상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이 아름다운 집을 꿈꾸고 짓기 위해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불살랐을까. ‘혁명가’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저 한 개개인 삶들이... 이상들이...
노예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봉건영주에 저항하고 식민주의자에 대항하고, 그리고 만민평등의 사회주의를 따랐던 숱한 사람들.....
필연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상의 옳고 그름은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한다.
‘선택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이상의 선택에 맡긴 사람들의 선택.
김선명의 선택...
리진선의 선택...
나라면...
너라면...
그렇게 박헌영도 되고, 이현상도 되어보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 이데올로기가 주는 공포와 편협의 그릇된 시선을 벗어던졌다.
물론 그릇된 이상을 갖고 있었음에도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이상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도 우리 역사에는 숱하게 많을 것이다. 누구도 수많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권력을 움켜쥔 악랄한 사람들은 이렇게 숱한 순진한 사람들의 순수한 이상을 사욕을 위해 악용했고 순수한 이상의 깃발을 전체라는 이름으로 짓밟는 과정을 우리는 고스란히 지켜 보아 왔다.
리진선의 일기는 그 실체를 똑똑히 보여주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그대, 바로 나일지도 모르고 너 일지도 모르는 그 그대들, 당신에게 쓴 편지로 끝을 맺는다.
그 끝은 바로 인류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다.
‘이미 사라진 수많은 이들이 제 몸속에 살아 숨쉬었듯이 저 또한 당신의 몸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삶은 그 뿌리부터 나눔이요, 사랑인 까닭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존경하는 지인은 이 책 독후감의 제목을 ‘바다로 지는 달’로 썼었다. (퍼다 두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 싸이트의 폐쇄로 현재의 나로선 찾을 수가 없다.)
‘바다로 지는 달은 고혹적이오.’ (이런 낭만적인 문장의 표현들 때문에 중간에 이 글이 픽션인 것을 눈치 채게 됐지만... 그 제목을 차용하고 싶었는데 그 지인께 양해를 구할 수 없어서 아쉽게도 포기했다.)
지리산 빨치산의 대명사로 남아버린 이름, 이현상은 해남 달마산 정상에서 시나브로 바다로 뚝뚝 떨어지는 달을 보며 말한다.
처음 도보 여행을 나섰을때 내 곁에서 든든한 수묵화처럼 따라오던 그 아름다운 달마산... 톱니같은 달마산 정상에서 바다로 지는 달의 모습이 보인다.
이 땅의 백두대간의 끝인 장소에서 우리에게 완고한 인상의 전형으로만 그려지는 실천적 사회주의 혁명가를, 작가는 인간의 여린 품성을 가진 역사를 살아 간 혁명가의 시선으로 그린다. 시종일관 역사 속 역사를 바라보게 하면서도 내내 소설적 긴장감과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소설적 상상력으로 완급을 유지하며 책을 붙잡게 했다.
좋은 책이 주는 감동으로 떨리고 벅차 오르는 여운을 아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집’을 꿈꾸는 눈 맑은 몽상주의자를 기다린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그대가 만들어 줄 '아름다운 집'을 꿈꾼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상으로 더운 가슴을 가진 미완의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2004. 7. 16.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