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고급장정본) - 정진규 시선집
정진규 지음 / 도서출판 시월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막의 성찬

                        

                                    신달자

                   

 그제는 속초 바다와 저녁 겸상을 했다 밥상에 바닷속 사정 많이도 올라와 있었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싱싱할수록 쫄깃한 물결이 오래 입안에 메아리쳤다 얼마나 파도쳤는지 한입 가득 들어오는 날것들 쫀득쫀득하게 찰지다 바다는 외곬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느라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렸나 상 위에서도 이빨 사이에서도 철썩 그 한 마디만 되풀이했다 나는 바다의 속만 파먹었다 파도의 아픈 발자국이 우둘우둘 씹혔다 바다가 무거워 허리가 반으로 접힌 붉은 새우는 내 시선이 포개져 더 오므라진다 냅다 입으로 넣어버렸다

 어제는 설악산과 저녁 겸상을 했다 밥상에는 구구절절한 산속 사연들이 올라와 있었다
 명산의 갈비뼈를 거쳐 여기까지 온 풋것들 저마다 접시 위에서 차분히 고개 숙이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고속으로 몸을 키우지 않고 서서히 자연의 속도로 하늘의 질서를 잘 견디어온 귀빈들 그 몸속에 폭풍도 천둥도 뙤약볕도 폭설의 수난도 곰삭은 속도로 서서히 안으로 껴안아 온 것 본다 두 번 생을 살더라도 따라갈 수 없는 필요한 잠언들 잎으로 열매로 뿌리로 낱낱이 접시에 싱싱하게 누워 있다 다 견딘 자의 묵묵한 겸손이 산나물 잎 잎에 배어 있다 입에 넣지 않고 바라만 봐도 산 하나 먹은 것 같다

  오늘은 백담사와 저녁 겸상을 했다 상이 비어 있었다


                           신달자 시선집 [바람 멈추다 (도서출판 시월)] 중에서  

 

 

 시집 한 권에 오만 원, 오만 원, 허걱~ 하루 일당에 근접한 돈이다.
 하여 정진규 선생님의 활판시집이 출간되었을 때도 망설이다 망설이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시 신달자 시인의 ‘사막의 성찬’에서 결국 수저 들고 만 것이다.
 그동안 거의 모르고 있었던 시인의 언어가 잘 차려진 밥상이다.
 하루쯤 굶어도 좋게 하는 고봉밥이다.
 오만 원, 하면 비싸다 여겨지지만 시 백편인데 한 편에 오백 원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뜨끔하다.
 절제하고 절제하면서, 다듬고 다시 다듬어서 내게로 온 시 '사막의 성찬'이 오백 원이라니.......
 비만 오면 찾아 들어야 하는 삽이 '삽'이 되어 오백 원이라니.......
 이틀 치의 일당이 날아갔지만 석 달은 배부를 것 같은 뜨거운 고봉밥이 내게로 왔다.
 글자들이 살아서 가슴에, 머리에 콕 콕 먹힌다.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



  

놋수저

             정진규

 어머니가 쓰시던 놋수저 한 벌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오늘도 놋수저를 꽂는다 제삿날 메 올리는 삽시 (揷匙)가 아니다 어머니의 고봉밥을 어머니의 놋수저로 내가 먹는다 혼령의 밥을 내가 먹는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 밥이시다 죽이 아니라 밥이시다 어머니 가신 뒤 늘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놋수저를 꽂았다 

 

           정진규 시선집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도서출판 시월)]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제1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민음의 시 98
이기철 지음 / 민음사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봄길과 동행하다

  전쟁의 예고로 흉흉한 날이었다. 노루귀 군락지를 아시는 분의 안내로 노루귀를 보러 가자는 지인의 전화에 집을 나섰더니 전철역엔 반전시위가 한참 중이였다. 역설적이게도 반전시위는 다가온 전쟁을 더욱 예감케 하는 것이어서 공연히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 버린다. 확실한 소신으로 반대하는 용기 있는 자세가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아닌걸 아니라고 얘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건강 해질 것이다. 명분 없는 반대나 딴지 걸기가 아니라 명명백백한 이론을 앞세울 때는 더욱 그러하다. 역으로 들어서니 화물차에 수 십대의 탱크가 실려서 이동 중이다. 그렇게 가까이, 그렇게 여러 대의 탱크를 한꺼번에 대하고 나니 전쟁이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 어마어마한 탱크에 죽어간, 어린 소녀, 미선이와 효순이의 핏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바퀴를 보고 있는 착각에 사로잡혀, 어두워지려는 마음이 들지만 세상은 너무도 찬란한 봄이다. 어둠에 맘을 뺏기기에는 너무도 화사한 날씨인 것이다. 찬 기운이 가셔버린 바람에선 더운 기운이 묻어나고 이 햇살에 모든 꽃들은 피어날 것 같기만 하다. 전쟁의 예감도, 이 햇살의 찬란함 앞에서는 맥을 놓고 마는 것이다.

봄길과 동행하다

                       이기철

움 돋는 풀잎 외에도
오늘 저 들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꽃 피는 일 외에도
오늘 저 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종일 풀잎들은 초록의 생각에 빠져있다
젊은 들길이 아침마다 파란 수저를 들 때
그때는 우리도 한번쯤
그리움을 그리워해 볼 일이다

마을 밖으로 달려 나온 어린 길 위에
네 이름도 한번 쓸 일이다
길을 데리고 그리움을 마중하다 보면
세상이 한 번은 저물고 한 번은 밝아 오는
이유를 안다
이런 나절엔 바람의 발길에 끝없이
짓밟혀라도 보았으면

꽃들과 함께 피어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꽃의 언어로 편지를 쓰고
나도 너를 찾아
봄길과 동행하고 싶다

봄 속에서 길 잃고
봄 속에서 깨어나고 싶다

 

  습관적으로 펴든 얇은 월간지에서 이 시가 튀어나와 찾아가는 그 길의 아름다운 동행을 미리 축하라도 해주지 싶은데,,, 그랬다.
  낯설지만 이미 알고 있는 분의 안내로 찾아간 그곳에는 '봄 속에서 길 잃고 봄 속에서 깨어나고 싶은'소망을 품고 싶은 봄 길이 있었다. 도심에서 멀리 벗어난 것도 아니고 그리 깊은 산 속도 아니건만 조금 걸었어도 깊숙이 파묻히는 안온한 느낌을 그 산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한 때 민둥산이었을 거란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나무들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산을 설렘 속에 만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모르고 볼 때의 모든 것들은, 익명성 속에서 단순하지만, 이름을 알고 난 후의 사물은, 얼마나 달라지는지 번번이 느끼곤 한다. 오늘 만날'노루귀'는 어디에도 노루를 닮은 모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꽃이 지고 잎이 나오는 모습이 도르르 말린 게 노루귀와 같다니...겨울을 이기고 봄을 부른 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진이 아닌 실제의 꽃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이다.

  '길을 데리고 세상을 마중하다 보면 세상이 한번은 저물고 한 번은 밝아오는 이유를 안다'고 시인은 그랬던가!
  손으로 가르켜 준 곳에 눈을 따라가니 앙징맞은 모습으로 낙엽 속에서 수줍게 고개 내민 노루귀는, 살랑살랑 우리를 반기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10Cm도 안 되는 솜털 보송송한 여린 꽃대를 세우고 하늘거리는 모습이라니...
  담박에 여리지만 완벽한 자세로 태초부터 거기 있었던 듯, 세상을 밝히고 마음에도 활짝 등불이 되어 걸린다. 세상 어떤 등대보다도 환하게.
  내가 그동안 철철이 산을 오르락 거리면서 무심히 밟기도 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지나다녔을 그 길 위에도 노루귀는 그렇게 피어 있었으리. 어디 노루귀뿐이랴! 여전히 이름을 알지 못하는 많은 꽃들은 그렇게 무심히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쓸쓸히 꽃을 피웠다 지리라. 원망 없이 분노 없이 제 몫의 꽃피우기를 멈추지 않을 노루귀를 여기저기 누군가 캐간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결국은 사람들의 관심이 꽃을, 동, 식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고 얘기를 나누면서 이건 무언지? 저건 무언지? 묻기를 반복한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양지꽃, 봄맞이꽃, 개암나무, 싸리나무... 거침없이 대답하는 두 분의 자연 사랑이 놀랍고 감탄스럽다.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 있기에 희망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지치지도 않게 그 작은 꽃들을 바라본다. 하늘거리는 여린 꽃잎의 떨림 만큼이나 삶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그 작고 여린 몸으로도 세상을 맞서 꽃을 피우고 서있는데, 수 천 수 만 배는 될 몸뚱아리를 갖고도 핑계만 가득하니 꽃 피울 일이 아득해져서 더욱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간절한 의지만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행동하지 않고, 춥다고 웅크려 있으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꽃을 피우지 못하리라. 노루귀와 함께 한 봄길 동행에는 '일어서라' '일어서라'속삭임이 귀를 후비고 가슴을 때린다.
  작년보다는 올해, 올해보다는 내년, 그렇게 나빠질 것이 당연한 노루귀가 살아갈 환경, 하지만 내년에도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감탄 할 그날이었음 좋겠다.
  봄 야생화, 작고 여린 풀꽃들이 주는 수백 수천의 언어들. 그저 주어진 봄이 아니라 몸 전부를 걸고 피어난 꽃송이 있기에 봄 있으니, 깨어나 저 봄 속으로 당당히 일어서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렇게 계절은 오고 삶은 계속되고 있는 거라고 속삭인다.
  그래.
  눈을 번쩍 뜨고 봄 길과 동행하자.
  이 봄이 지나기 전에 전쟁도 멈춰있기를 바라면서.

 

 2003. 3. 25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불 9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요로 내리는 풍경 -백양사   

 

 

 “그렇지요. 벽암과 사천왕과 승병과 의병과 벚나무.” 그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고맙고 장한 불교에 대한 포상이기도 하고, 그 복원된 절터들이 입지 좋은 산속에 있는지라 군사의 요충지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난세에 충신 나고, 부모가 병들어야 효자가 나듯이, 호되고도 모질게 양대 전란을 겪은 후에야 호국 호법의 염원이 간절해져서,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강렬한 소원으로, 나라와 백성들은 사천왕같이 힘세고 큰 존재가 자기들을 지켜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못된 외적은 단칼에 호령하여 물리치고, 나라와 불법은 소중하게 보호하여 주기를 염원하는 마음은 사찰마다 산더미처럼 물밀듯이 밀려들어, 사천왕들은 날마다 태산이 좌정을 한 모양으로 우람하고 용맹스럽게 우뚝우뚝 높아졌다.
 그리고 눈부시게 찬연한 오색단청을 입었다.
 “아까도 잠시 말씀을 드리다가 말았습니다만 임진왜란 이후에 사천왕이 세워진 사찰은 대개 반드시 승군 승병이 일어났던 의병집결소였어요. 그러니 호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지요.
 임진왜란 때 승군 대장으로 활약하신 부휴선사와 그의 제자 벽암대사를 두고 사람들은 대불과 소불이라 지칭하였답니다. 이분들이 사천왕과 반드시 관계가 있을 법한 것은 묘하게도 제가 다녀 본 절들에 사천왕이 중건된 해가 기록되어 있는 걸 살펴보니. 우연의 일치인가, 벽암대사가 조실로 계실 때 꼭 사천왕을 다시 세우셨더란 말입니다. 간 곳마다.”
 승군과 호국과 사천왕과 식민지의 승려.
 그리고 동경 유학생.
 사천왕 이라면 우선 막연히나마 얼핏 스치며 힐끗 본 인상만으로도 그 어떤 분노를 참지 못하여 잉걸처럼 이글거리는 눈망울이 툭 불거져 부릅뜬데다 붉은 입에 주먹코. 도무지 우리 마을 주변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아 기이 기괴한 얼굴. 거기다가 괴력을 발휘할 만큼 거대한 몸체. 후려칠 듯 위압적으로 쳐들어 올린 팔과 악귀를 짓밟고 있는 발들이, 꿈에라도 정다울리 없어 보이지만.
 강호는 만감이 착잡하게 뒤엉키는 눈으로 새삼스럽게 사천왕을 올려다본다. 저 힘을 빌려서 지키고 싶었던 것들.
 나라. 불법.  

 웬일인가.
 눈에 눈물이 돈다.
 지나치게 험상궂어 애기 같아 보일 만큼 순진해져 버린 사천왕의 동, 남, 서, 북 얼굴과, 저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몸에 절하여 바친 낱낱의 염원들은, 얼마나 간절한 눈물이었을까.
 더 무섭게. 더 크게. 더 강하게.
 한 점 한 점 붙이고 새긴 그 눈물이 저렇게 엄청난 과장을 넘어서서 그만 무구에 이르러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무서워서 귀엽구나.
 강호는 저도 모르게 스며드는 마음에 스스로 놀라 의아했다.
 “아이고. 나, 저 얼룩덜룩 칠해 논 것만 없어도 덜 무섭겄등만, 왜 사천왕은 저렇게 꼭 뿔겅 푸렁, 벨라도 요상시럽게 왼 몸뗑이에다 무당맹이로 칠갑을 허고 있당가잉? 어매에. 나는 그리로 안 들어갈라네이. 자네 혼자가소. 나는 부처님 전으다 절 허고 불전 바치는 불제자라도, 그 사천왕 앞에는 안 가고 자프네. 뒷모갱이 잡우땡길 것맹이고 잉. 팍 뚜드러 갖꼬 나를 거시랑(지렁이) 맹이로 대롱대롱 들어올려 불면 어쩌 꺼이여? 저 손아구는 솥뚜껑 저리 가라고 큼지막허게도 생겼그만. 아아따아, 심란시러라. 멋 헐라고 저러고 눈은 기양.”
 “어어이구 참. 알았응게 저리 가드라고잉? 넘의 뒷꼭지 딸옴서 무단히 애민 년끄장 부정타게 허지 말고.”
 입이 싸고 말 못 참는 것도 타고난 업인가.] 

 “벚나무라고요? 일본 국화. 벚꽃?”
 “그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국화를 무엇 때문에 번뇌초 다 깎은 중들의 절집에다 저토록 몇 백 년생 무성하게 진작부터 심어오겠습니까?”
 .......
 “ 절에다 벚나무를 심은 것은 벽암대사였습니다. 이유는 이 벚나무가 곧고도 단단해서 유사시에 병장기로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왜병이 쳐들어오면 가차 없이 저 나무를 베어 깎아서. 구국의 무기로 만들려고.”
 “그렇습니까?”
 ........
 “이제 절간의 벚나무 보는 눈이 좀 달라지시겠습니까?”
 하며 불이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범련사 입구 일주문 언저리에 용틀임하는 아름드리 벚나무들 잎사귀, 푸르게 겹겹으로 짙어지는 무리무리가 녹음의 구름머리를 아득히 이루고 있다.

 

   ‘혼불’ 9권에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사천왕을 묘사했다. ‘혼불’을 읽고난 다음, 내가 보는 사천왕의 모습에는 혼을 담아 철필로 글을 써내려간 작가의 시선이 얹힌다. 탄성을 내지르며 꽃으로만 즐기는 ‘사쿠라’ 그 나무를 보는 생각을 다르게 해준 것도 역시 ‘혼불’이었다. 한 편의 서사시로 읽히던 문장들....... 드문드문 그려진다. 책 속에 담긴 역사와 사상과 철학을 통해서 비로소 배우는 것들, 작가의 마음으로, 눈으로, 바라보는 ‘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
 그러나 이제는 뿔겅 푸렁 단청도 퇴색해 무서움 보다는 안쓰런 스산함이다. 세월이 가면 간절한 기원들도 변하는가. 죄여서 사무치는 아름다움으로 그려지던 가릉빈가의 날개도 무거워 보인다. 젖지 않은 마음하나 속세를 지나 승의 문을 넘는다. 

 텅 빈 절집 마당.

 초파일이 지난 지 이틀, 절 마당 가득 염원의 연등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설선당, 대웅전, 조사전, 명부전에 둘러싸인 마당은 비에 젖는 학바위 홀로 내려앉아 있다.

 고요한 정경. 아늑하게 멈춰있다.
 풍경이 문득 댕강댕강 맑은 소리로 흔들린다. 쏴아~ 마음도 흔들린다.

 대웅전의 본존도, 설선당 좌탈입망의 서옹선사도, 그를 둘러싼 나무들도 저마다 흔들리며 젖고 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젖으며 흔들리는 것들, 저마다의 초발심으로 흔들리며 저마다 부처가 되어가고 있을까? 비는 내린다.

 화엄.(華嚴)

 젖어드는 세상도, 나무들도 화엄. 
 비는 세상에 내리고 당간지주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나는 비에 젖는다. 아무리 비를 막아도 막무가내로 젖는다.  .......젖고 또 젖고, 젖고 또 젖는다.

 발길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맹이 몇 개, 마당에 슬그머니 내려두고 나를 부르는 길을 따라 절집을 벗어난다. 길은 구불구불 산으로, 내 안으로 향한 외길이다. 젖은 발자국을 젖은 길에 남기며 간다.

 2004. 9. 7.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섬의 햇빛 속에는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섬의 햇빛은 따가웠다.
녹동항에서 배로 오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지만
수심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물결을 건너야만
이를 수 있는 곳, 그 가깝고도 먼 섬에
상처 입은 사슴들이 살고 있었다.
그 섬의 햇빛 속에는
다른 데서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햇빛을 다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을 막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빛이 무어라 외치는 것처럼 들렸을 뿐이다.
몽당손으로 그물을 잡고 둘러선 소년들이
파닥이는 물고기 몇 마리를 소출로 내놓은 모습도,
뗏목하나에 의지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남자도,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꽃수를 놓던 노파도,
길 양쪽으로 갈라선 채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눈으로만 피붙이를 만나야했던 어미의 흐느낌도,
여든네 명의 목숨을 불태웠던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들도,
없는 것처럼 없는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던가.
바다 저편에서 단지 제 고통에 겨워 읊조리지 않았던가.
굉음처럼 따가운 햇빛 아래
다리 붉은 게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길 잃은 게가 숨어든 숲그늘,
썩어가는 손으로 전지해놓은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두 다리가 없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걸어가는 처녀의 웃음소리,
나는 햇빛 속으로도 그늘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나희덕의 ‘그 섬의 햇빛 속에는’ 전문. 시집 ‘사라진 손바닥’-

  지하철 안에서 몇 번째 앞을 지나가는 흰 지팡이를 모른 척 고개를 박고 있었다. 창에 걸린 햇살 하나, 시어로 박힌다. 3년 전 소록도 중앙공원의 나무의자에 앉아 있을 때 까무룩 지나가던 빛 화살이었다. 잊고 있던 그 여행길, 어린 사슴의 섬. 그곳에서 머문 네 시간이 살아난다.

 24년 전의 시간들이 거기 놓여있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만났던 중 2때 소록도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서 정말로 보았을까, 의심스럽게 했다. 어쩌면 책이나 영상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아닐까 싶은 기억의 환청에 오래 시달렸다. 붉은 벽돌의 건물들과 대비되던 푸른 이미지들....... 처음 만난 바다는 낮에도 밤에도 푸르게 으르렁거렸다. 티 없이 잘 가꾸어진 잔디는 만지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았다. 더펄거리는 내 머리보다 더 잘 손질된 나무들의 푸름은 박제되어 있었다. 소독약이 놓여있던 우물물도 까닭 없이 푸르렀고 그 모든 것을 비추는 8월의 하늘은 더 할 수 없는 푸름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길. 이제는 가도 가도 황톳길을 만날 수 없고 문둥이라는 말도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멀고 먼 섬. 몸보다 마음이 멀어서 다가 갈 수 없는 먼 나라. 아직도 당신들만의 천국이었다.

 터무니없이 밝은 햇살은 푸름은 더 푸르게 했고 붉은 벽돌을 더 붉게 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흰 건물 앞마당,  활기 가득한 자원봉사자들과 무심한 듯 잡담을 나누고 있는 휠체어들 사이에도 빛은 고르게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그리고 거기, 몽당손들이 강제로 가꾼 아름다운 중앙공원을 오래 걸어 다녔다. 6000평 푸름 속을 핏빛의 심정으로 같은 길을 걷고 걷다가 만나던 보리피리 시비에 내리던 빛에 잠시 눈감아야했다. 사랑과 박애정신을 배우던 어린 시절도, 욕망의 벽과 벽으로 고립된 그 때에도, 내 머리위에 내리던 8월의 뜨거운 햇빛은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주었다. 격리되고 유폐된 삶의 흔적들이 붉은 벽돌로 서럽게 상징되던 어린 날의 가르침을 실체로 인정했다.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목숨과 삶이 문둥병이라는 천형으로 거기 버려져 있었다.

 그것들을 생각하던 시간들이, 그 빛 화살 하나하나가 시어들 속에서 빛의 속도로 가슴에 꽂힌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어린 사슴들의 소리 없는 처절한 절규를 듣는다. 내 안에서부터 아직도 진행형인 유배를 만난다.

 나는 햇빛 속으로도 그늘 속으로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2004. 11. 28.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떠남과 만남



  구본형의 산문집, 이 책을 참 좋아한다. 그 책 속의 길을 따라서 남도의 많은 길들을 달팽이처럼 걸었고 팔영산, 천관산들을 따라 올라보았다. 그처럼 한 달간 이어지는 일정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구간별로 끊어서 구석구석 그와 같게, 혹은 다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낙안읍성에서는 책 속의 내용처럼 액자로 걸린 봄 풍경을 넋을 빼고 오래 바라보았던가. 깃발 나부끼는 성루에 앉아 푸르른 보리밭을 바라보며 엽서를 쓰던 몇  해전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진다. 바닷물결처럼 넘실대던 청청한 보리밭....... 여전히 선물하기를 즐기지만 책 속처럼 여행하기를 멈춰버린 요즈음, 그 책을 읽으며 여행적금이라도 부어야겠다는 지인의 문자를 받고 갑자기 아주 오래전, 그 책을 만나기 이전에 다녀온 홍도가 불쑥 그립다.

 

  오래 시내에서만 맴돌던 후배랑 여행사 팩키지 상품으로 떠났던 여행. (그때 계속 특집기사로 실리던 홍도, 흑산도 여행 홍보는 두어 번 기회를 놓친 내게는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결국 저지르게 만든 계기는 ‘언제 여행 한번 같이 가자’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우리 두 사람이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휴일이면 쉬는 일을 하는 그 친구와 휴일이면 더 바쁜 내가 같이 움직일 시간을 확보한 것으로 어디로든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휴일에 대한 모독이었으니.......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이 전부인 후배는 얼마나 흥분하고 기대를 하던지 재미없을까 잔뜩 긴장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목포까지 기차로, 다시 페리호로 여행의 요소를 고루 갖춘 매력적인 코스임이 분명했지만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뭍사람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리 멀미약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얼굴은 말라가는 탱자빛깔이었다. 홍도를 먼저 가려던 계획이 흑산도로 변경될 만큼 바다의 사정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예리항은 섬 분위기 물씬했고 눅진하고 습한 바람을 타고 유람선으로 돌아본 흑산도의 해무는 그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싶을 만큼 유혹적인 몽환이었다. 무진의 안개가 이렇겠다고 자연스럽게 연상했다.

  지금은 많이 돌아왔다는 홍어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다행이다로 위안삼고 (-_-;; 어쩔 것이냐. 엄두도 못내게 비싼 것을....) 가리비에 기울인 보해소주와 함께 흑산도의 하룻밤은 무기력하게 지나갔다. 일정조절로 자산어보의 바다를 예리항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는 걸로 그치고 만 것이다. 아마도 다시는 하게 될 것 같지 않은 팩키지 여행, 정작 자유롭고 싶을 때는 자유시간이 없고 무료할 때는 널널한 자유시간에다가 숙소배정에 걸리는 시간들은 성질 더러운 우리를 기함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홍도....... 구본형은 구멍섬이라 칭했던가, 원추리 꽃으로 치장한 섬의 부두는 시멘트 덩어리였지만 물빛은 가을이었다.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준다는 가을 물빛........ 사실 전형적인 뭍사람인 나는 그 색감 차이를 모른다. 설명에 그저 그런갑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중에 홀로 아는 척 써먹을 뿐이다. 혹자는 이런 잘난 척에 넘어가서 참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성공한 셈인가. ((_ _) 아차차~~~ 또 곁길로 샜다.)

  홍도는 아주 먼 바다에 있는 섬이었고, 섬에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묘한 고립감과 동시에 더 끈끈한 유대감에 그동안의 세월 십여 년보다 단 하루에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바닷장어 아나고 구이는 그동안 무진장 비웠던 진로, 빨간 뚜껑과 달리 우리 입맛에는 좀 달큼한 느낌이 남는 보해를 몇 병씩 비우게 만들었다. (그때 보해소주, 보드카처럼 투명한 케이스였던 술 이름을 모르겠다. 지금은 잎새인 것이 확실한데. -_-;; 지금의 진로가 참이슬로 대표되듯이 그때는 빨간 뚜껑에 새겨진 두꺼비가 그랬다.

  우리가 같이 회사를 다닌 몇 해동안 잡아먹은 두꺼비 숫자를 모으면 그럴듯한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란 썰렁한 농담을 둘은 요즘도 주고받는다. 사실 술값보다 안주 값이 더 대단했을 것인데. 아, 안주 없다면 술은 대체 무슨 맛일까? 지독하도록 쓰기만 할 것이다. 왜 그리 술맛 땡기게 하는 사건, 사고가 많던 이십대였는지....... 날마다 비분강개로 날 새는 줄 모르던 그때의 젊음이 그리운 시절이 올까? 아직은 아니다. 이십대는 너무 추레하고도 비통에 찬 나날이었다는 생각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다. 다 버리고, 다 털고 나면 정말 철이 들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ㅋㅋ~)

  짠바람이 코를 간질이는 바다를 지척에 두고 마시는 탓일까? 술이 들어갈수록 더욱 명료한 의식은 그립지도 않았던 그리운 것들을 불러 세우기에 더할 나위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쓸데없이 처연해져서 오래전에 공염불이 되어버린 버린 옛사람과 바다에 같이 가자던 약속 따위가 다 떠올랐다. 달랑 전철 삯으로 수원에서 구로, 구로에서 인천행 전철로 갈아타고 물어물어 찾아간 월미도....... 그 화려한 곳을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못 하고 찬 바람 속에 떠있는 거대한 군함을 보면서 훗날을 기약했던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웠던 시절, 한 곳으로만 흘러가는 마음을 방치해두면 얼마나 적막한 곳까지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하필이면 둘의 숙소로 배정받은 곳은 터무니없게도 단체용, 삼사십 명은 거뜬히 자겠다싶은 휑한 방에서 전화 통화 중에 잠들어버린 후배 곁에 이불을 펴고 누워있자니 한데나 다름없이 바람이 불어댔다. 덜컹덜컹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후두둑 비까지 몰고 오는 듯 하더니 이윽고 파도소리까지 데불고 나타났다. 처음엔 이러다 여기 고립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밤바다가 무서움보다는 유혹으로 불렀다. 습기를 잔뜩 담은 눅눅한 바람이 우엉우엉 울어대는 포구에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빠르게 구름이 몰려가는 하늘바다에 빼곡하던 별....... (별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고 쓰는 순간, 문장은 얼마나 가식적이 되고 마는가!) 

  홍도를 생각할 때마다 이러저러한 다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떠오르는 것은 방파제 끝에서 몇 시간이고 나를 사로잡던 별이 가득한 밤바다와 해상관광 중에 배에서 먹은, 어부가 직접 떠준 착착 감기던 막회 맛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건모의 미련........ 혼자 방파제를 걷던 그 밤 함께 있어준 노래. 홍도를 생각하면 미련의 멜로디가 떠오르는지 미련을 들으면 홍도가 기억나는지 잘 모르겠다.  

  바람이 뒤숭숭하게 불어대던 오늘 하루, 귀에 감겨오는 미련을 듣는다. 피아노 건반으로 파도소리도 따라 나온다. (그 시절은 잠이 많질 않았는데 이제는 졸립다. 어쩔 수없이 나이 탓인가. 졸려서 감기는 눈으로 쓰고있다. 빨리 마치고 싶다. -_-;;)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후배랑 꼭 같이 가기로 한 제주는 벌써 몇 년째 유보 상태다. 아직 비행기도 못타봤다는 푸념도 여전히 유효한 불쌍한 친구^^* (여전히 홍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을 반짝이면서 너무 좋았다고 입맛을 다신다.) 이제는 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여행 노하우가 생겼는데 언제쯤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까? 꼭 지키고 싶은데.......

  그러나 무수하게 남발하는 약속들 속에 마음과 달리 지키지 못한 약속이 어디 그뿐이랴. 내일 하루치의 삶을 위해 에라 잠이나 자야겠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건강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면,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없을 것이니 지금은 그저 마음으로 떠남과 만남을 반복한다.


 

 2005. 3. 7.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