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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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떠났다.
 떠나 버렸다.
 누구나 한번은 가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아무리 자주 접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나이에(?)비해 죽음을 많이 경험한 축에 속하지만 언제나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부재하는 상황은 생경하고 공포스럽고 피하고 싶은 느낌을 준다.
 일면식도 없고 전혀 교류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삶에 깊숙히 빠져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떠났다.
 너무 놀랍고 황망하다.
 많이 존경하고 좋아 했는데...

 죽음이 하도 흔한 세상이라 그는 한 줄의 짤막한 기사로 남고 말았지만 유용주 시인의 말처럼 '장산리 왕소나무'로 내 가슴에 있던 그.
 이문구님이 떠나고 말았다.
 25일밤 향년 62세로.
 우직한 소나무로"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그렇게 오래 서있거나 걸어서 단숨에 쓰러지고 만 것일까?
 62세라는 나이가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그 나이여서.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때, 그 투박하면서도 속시원하게하는 여운이 남는 감칠맛에 반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자신의 경험과 아픔이 녹아있지 않는 글은 죽은 글이라는 판단이 강할때 였는데 그의 글은 단번에 매료시켰다.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그 능청스러움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비판이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책이 아마 '우리동네'연작 이었을 것이다. 햇빛받은 얼음은 화려한 빛이 나지만 섬뜩한 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유순한 말투속에 숨어있는 차거운 기지를 내포한 글쓰기를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마력이 그속에 있었다.
 그후로 '관촌수필' '유자소전' '매월당 김시습' '내 몸은 너무...'까지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데로 다 읽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어서 조금 오래된 것은 구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청춘기에도,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목구멍을 조르는 궁핍함 속에서도,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한 번도 글을 놓지 않았고 그랬기에 삶이 녹아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그의 고단함을 글속에서 읽으며 고단한 내 일상을 위로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책을 읽는건 행복하다.
 특히 그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같이 느끼고 같이 행동하는듯한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건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의 책을 읽을땐 행복했다.
 일회적인 것들이 판을치는 세상에서 소나무처럼 문단을 지켜온,
 농촌을 지키면서 내게 행복을 준 그의 퇴장이 못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작가는 책을 남겼고 다시 힘들때마다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
 다시 읽어도 처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이 살아서 내게 오기에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작가 이 문구님의 명복을 빈다.


                                                             2003. 2. 2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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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목례 애지시선 7
김수열 지음 / 애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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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삿개에서 

                       김수열

 

그립다,는 말도

때로는 사치일 때가 있다

노을구름이 산방산 머리 위에 머물고

가파른 바다

漁火 점점이 피어나고

바람 머금은 소나무

긴 한숨 토해내는 순간

바다끝이 하늘이고

하늘끝이 바다가 되는 지삿개에 서면

그립다, 라는 말도

그야말로 사치일 때가 있다

 

가날픈 털뿌리로

검은 주검처럼 숭숭 구멍 뚫린

바윗돌 거머쥐고

휜 허리로 납작 버티고 선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

                               시집 <바람의 목례> 중에서

                               김수열시인은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산문집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이 있다.

 

 

 

지삿개는 주상절리의 제주 방언입니다.

 

숭숭 구멍 뚫린 검은 현무암 절벽에 피어난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에서 치열한 생존을 봅니다.

경배를 올리고 싶은 생...

사는 것은,

견디는 일입니다.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절 올립니다.

그립다는 말,도 아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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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에 우는 사람 애지시선 14
조재도 지음 / 애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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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에 우는 사람

                                 조재도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환갑이나 진갑

아들 딸 장가들고 시집가는 날

동네사람 불러

차일치고 니나노 잔치 상을 벌일 때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운다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 운다

이 좋은 날 울긴 왜 울어

어여 눈물 닦고 나가 노래 한 마디 혀, 해도

못난 얼굴 싸구려 화장 지우며

운다, 울음도 변변찮은 울음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누님이 그랬고

외숙모가 그랬고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했을,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

소주에 국밥 한 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시집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애지 2007)] 중에서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청양에서 자랐다.

                                공주사대를 졸업한 후 대천고, 공주농고, 안면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민중교육]지 사건 (1985), 전교조 결성(1989) 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어 지금은 온양 신정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집 [백제시편] [그 나라] [사십 세] [교사일기] 등이 있고

                                 산문집 [내 안의 직은 길] 장편소설 [지난 날의 미래] 동화 [넌 혼자가 아니야]

                                 교육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삶· 사회· 인간· 교육]

                                 시 해설집 [선생님과 함께 읽는 윤동주] 등을 펴냈다.

 

 

좋은 날에 우는 사람, 누군가요?

우리들의 어머니인가요?

이모인가요? 외숙모? 고모???

아하~!!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바로 그대!!!

그래요. 그대,

울어도 좋으니

날마다 좋은 날이었으면

울음도

변변찮은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이라도

세월의 응어리

확 풀리는 좋은 날들이......하고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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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시선 296
김경미 지음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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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나를

                         김경미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 중에서

                             시인은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시작.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쉿, 나의 세컨드는]과

                             사진에세이집 [바다, 내게로 오다] [막내] 가 있으며 2005년 노작문학상을 수상.

 

시의 생명은 역설에 있다는 말이 생생해지는 시입니다.

다정한 누구를,

장미의 다정함을,

저녁 일몰의  다정한 시간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으로 읽혀지는.

저도 유독

다정한 이가,

마음결 훈훈한 당신이 좋으니 어쩝니까?

설마!!! 다정이 저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죽인다 해도

다정한 그대를, 다정한 저녁일몰의 길을 사랑합니다. ^_^;;

그것이 우리들의 숙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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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 이근배 시선집 시월 활판인쇄 시선집
이근배 지음 / 시월(十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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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시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중에서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 출생.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사랑을 연주한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한강],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달은 해를 물고],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등이 있으며

             육당문학상, 편운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월하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

생각으로만 읽으면 참 무겁게 얹히는 말이고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

자꾸 소리 내어 읽으면 살가워져서 가볍게

모든 절망을

모든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살다가 보면

당신은 지금, 어느 고비쯤을 넘어가고 계시는지요.

살다가 보면,

좋은 날……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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