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이제 이틀도 남지 않았다.

   어제 오후에 알라딘에서 보낸 메일이다.

당신은 알라딘을 통해,

한 해 동안 이만큼의 책을 만났습니다.

작년보다는 72권 덜,

재작년보다는 7권 덜,

구매하셨습니다.

2019년

107권

2020년

35권

   내가 작성한 댓글

   와, 이렇게 알라딘과 거리를 두고 산 일 년이었군요. 쌓여있는 책 더미를 해결하고자 한 일 년이었습니다. 당연히 사기보다는 읽기를 많이 했지요. 35권을 사다니.... 돈이 없어서 서점을 돌던 20대 이후 처음일 듯싶네요. 그래도 아직 많은 책들은 쌓여있고, 리뷰를 쓰려고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잠이 깨고는 합니다. 알라딘은 서운했을지라도 스스로에게는 알뜰했던 2020년이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제 일 년을 돌아봅니다. 산 책은 그러하니 읽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해볼 작정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마무리로 2020년의 독서 결산이라는 걸 해보기로 한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거짓말 1, 2; 노희경 [북로그컴퍼니]

벌새; 김보라 [아르테]

괜찮은 사람; 강화길 [문학동네]

다른 사람; 강화길 [한겨레출판]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문학동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문학동네]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작별; 한강 외 [은행나무]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한겨레출판]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민음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창비]

세 여자; 조선희 [한겨레출판]

기사단장 죽이기 1, 2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L의 운동화; 김숨 [민음사]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0권; 김훈 외 [창비]

소설 보다 가을 2019; 강화길 외 [문학과지성사]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열린책들]

 

 

   에세이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매우 초록; 노석미 [난다]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흔]

런던을 속삭여줄게; 정혜윤 [푸른숲]

인생의 일요일들; 정혜윤 [로고플러스]

아무튼 메모; 정혜윤[위고]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재원 [휴머니스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난다]

오늘의 착각; 허수경 [난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한지혜 [교유서가]

아무튼 스웨터; 김현[제철소]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구본형[휴머니스트]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을유문화사]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헤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문학동네]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영광[이불]

퇴사는 여행; 정혜윤[북노마드]

사라짐, 맺힘; 김현 [문학과지성사]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그 좋았던 시간에; 김소연 [달]

 

   인문, 사회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로]

랩걸; 호프 자런 [알마]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교양인]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교양인]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교양인]

신영복 평전; 최영묵, 김창남 [돌베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정희진 외 [교유서가]

바보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고미숙 [북드라망]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함께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봄알람]

역사의 쓸모; 최태성 [다산초당]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생각의길]

 

   시집

꽃의 고요; 황동규 [문지 시선]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문지 시선]

시인의 모자; 임영조 [창비 시선]

극에 달하다; 김소연 [문지 시선]

뿔을 저시며; 이상국 [창비 시선]

입술을 열면; 김현 [창비 시선]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강형철 [창비 시선]

붉은빛은 여전합니까; 손택수 [창비 시선]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시선]

삶이라는 직업; 박정대 [[문지 시선]

그녀에서 영원까지; 박정대 [문학동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문지 시선]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정끝별 [문학동네]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문학동네]

 

 

 

  지금 읽고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 [역사의 끝까지 (열린 책들)]이다. 아마 오늘이면 마칠 테니까.

  쓰다 말고 비공개로 넣어 둔 리뷰들이 몇 편 있는데 틈나는 대로 정리해서 올릴 작정이다. 그 정리가 끝나야 책들도 정리가 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가진 책은 대충 어디 꽂혀있는지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왔다. 그래서 엉망진창인 채로 쌓아두었다가 정리한다. 읽었는데 뭔가 써보고 싶은 책, 산 게 후회되는 책, 나쁘지는 않았지만 적어둘 게 없는 책, 무조건 소장각, 너무 애정 하는 작가라 무조건 샀지만 나중으로 미뤄둔 책,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쌓아두고 있다가 읽으면서 감탄하는 책등으로 쌓여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장에 꽂힌다. 책장은 종류, 출판사, 작가로 나뉘어 나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해둔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아 읽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갑자기는 아니고 선생의 평론을 읽다가, 였을 것이다. 그런 식의 연관성으로 책을 계속 찾아보고 다시 읽는 편이다. 갖고 있는 지식도 딸리고 기억도 딸리니 물량이 많을 수밖에) 오래된, 햇볕에 바래고 낡은 책을 누구를 주었을 리도, 더더군다나 버릴 리도 없는 그 책을 찾느라 책꽂이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구입하나 망설이는 중이다. 그 이후로 계속 생각한다. 책을 좀 정리해야겠다고. 이런 식의 꽂아두기는 욕심에 불과하다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속이 쫌 쓰리기도 하겠지만 2021년에는 반으로 줄이리라 결심했다. 1순위는 다시 손 가는 적이 거의 없는 많은 소설들이나 여행서를 포함한 에세이집들이 목표다. 대신에 그 책들이 주었던 몰입이나 위로들은 메모로 남겨놓으려 한다. 생각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어도, 책을 살 때의 기대감이나 그 책이 내게 준 여러 감정들을 되살려서 몇 자 적어두는 게 그 책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올해의 독서 목록을 보니 누구라도 알아볼 뻔한 독서 경향을 가지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나 할까. 이런 결산을 통해 그동안 감感으로 알고 있던 것을 데이터로 알게 되는구나, 싶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결론, 이게 바로 나구나. 한계구나. 끄덕끄덕~

 

 

   내년에도 허영으로 쌓아둔 책, 파먹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혹독한 허영의 다이어트에 따른 부작용으로 블로그에 글 올리기 남발도. (염불보다 젯밥인 콩 모으기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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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박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마른 저수지와 강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기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2012)]중에서

                                                                   

   면벽 24

                                                                              강세환

     -오래전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났던 김태정 시인의 부음을 듣고

   미황사 아래 어디

   해남 송호리 어디

   무릎께만 한 땅거미도 슬금슬금 기어들던

   푸성귀 널어논 마당을 지나

   어느 독거노인 집 건넌방에 겨우 세 들어 살던

   깍지 낀 손을 풀었다 쥐던

   흙바람 벽면에 툭 던져놓은

   창 넓은 흰색 민모자 하나

   낡고 허름한 추리닝 한 벌

   텅 빈 액자 자국 하나

   벽면에 홀로 남겨놓고

   꼭 그렇게 떠나려고 했으리라

   친구도 혈육도 세간살이도 통장 잔고도 집 한 칸도

   어떤 소식도 없이

   (······)

   그녀는 그렇듯 떠났으리라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녀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을 돌아보고

   느릿하게 또 돌아보며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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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바닥 위의 숲

                             김태정

   꽃이삭을 늘어뜨린 상수리

   열푸름한 꽃을 피운 회잎나무

   흰꽃 잔조롬한 덜꿩나무

   연보랏빛 물이 빠진 현호색

   그 옆의 작은 개별꽃 노란 금붓꽃

   부질없는 세간의 말로나마

   이 숲의 삶들을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손바닥은 또 하나의 숲을 이루었습니다

   뒷모습을 불러 세우는 듯한 휘이, 휘요호

   새초롬하니 토라진 삐친삐친삐친

   어눌한 날 놀리는 쥬비디쥬비디쥬비디

   오래된 흉터를 쪼아대는 쑤잇쑤잇쑤잇

   넋과 바람을 부르는 휘휘휘요 휘용휘용휘용

   그리고, 산밑 길을 돌아 내게로 오는

   물소리 바람소리

   이 숲이 부르는 진혼가를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말이 달리 없습니다

   쉰 목청으로 우는 산꿩의 간절함과

   불러도 불러도 허공으로나 되돌아오는

   수취인불명의 메아리와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남긴 물의 발자국과······

   그 모든 간절함과 추억을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전언이 달리 없어

   흐르는 물에 가만히 저들을 띄워보냅니다

   흙으로 누워 상수리가 되고

   현호색 금붓꽃 박새 후투티가 되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되어

   내 손바닥 위 숲으로 돌아오는 당신

   빗돌 아래 제비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향기로

   당신께 타전하는데

   오늘밤 달은 없고

   이름만 덩두렷한 망월에서

   솟 솟쩍, 쓴 울음 삼키는 소리까지 적고나니

   당신께 보낼 것은 단지 슬픔밖에 없어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맙니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중에서

 

   시는 문사철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어는 그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처럼 일종의 메타언어(meta language)다. 예를 들어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말하는 '연탄재'는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이다.[담론,26]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2013)을 보면 시인에 관한 설명이 있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8쪽) 시인은 언어를 통해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언어의 지시적 의미, 일반적 의미를 '살해'하지 못한다면 시인이라 할 수 없다. 【신영복 평전, p268】

   쇠귀는 "사실성과 사회미에 충실하되 사실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담론,32]을 시적 관점이라고 본다. 그래서 시는 언어의 한계, 문학 서사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글로 쓰는 것은 시공과 감각의 한계 속에서 건져 낸 사실의 조각들(facts)에 불과하다. '진실'은 건져 낸 사실이나 언어 너머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실을 진실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너머를 볼 수 있는 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시는 문학 서사 양식을 뛰어넘는 인식틀이다.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그것을 설약(說約)이라고 했다. 시는 설약의 전형이다.[담론,57~58] 사물과 세상에 대한 유연한 시적 사유는 우리의 인식 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쇠귀의 생각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시는 시를 만드는 사람 스스로도 감동할 수 있는 진정성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담론,32]    【신영복 평전,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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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꽃이 핀다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간다고,

그날 아침의

참담함을

세월이라는 이름을

그냥

바라보기만했던

간절함을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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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달

                                 손택수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

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

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탄을 하며 구두를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시집 [목련전차]중에서

 

 

 

 

 

 

 

 

 

 추석이면 어김없이 추석달의 시구들이 떠오르고 나는 이보다 더 서글퍼지는 명절의 시를 알지 못한다.

 이천십구년 구월 십삼일 모처럼 맑은 날의 추석에 일몰과 월출을 동시에 만났다.

 아니, 만나기를 기다렸다. 광교산 형제봉에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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