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넓이 창비시선 459
이문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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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

                 이문재


   한여름 땡볕
   양짓말 삼촌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홀아비살림 이십년 만에
   적도 부근에서 데려온
   까무잡잡 키 작은 어린 아내
   집 나간지 이태째

   도망치듯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장화를 벗으면
   주르륵 물이 흘러나왔다
   삼촌이 흘린 땀이었다

   상추 쪽파 부추 얼갈이
   그해 봄에서 여름까지
   비닐하우스 갈아엎기를 네댓번
   몇년 새 쌓인 빚이
   집채보다 높아졌다

   그해 여름
   폭염주의보가 경보로 바뀐 날
   양짓말 늙은 삼촌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자마자
   제초제를 병째 들이켰다고 한다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고 한다

                   시집[혼자의 넓이]중에서





   새벽에 출근하는데 벌써 후끈후끈하다.
   폭염경보의 나날이다.
   그래도 이천십팔년 여름이 더 지독했다는 생각이 바뀌지않는다. 저 사진 속의 날들, 속수무책 쏟아지는 땡볕 아래로 점심 피크타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섰던 그해 여름의 시간이 지금을 견디게한다, 고 생각하는 요 며칠, 이문재시인의 농업을 읽는다.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시다.
   모자를 눌러써도, 얼음봉지를 목에 둘러도 무차별로 쏟아지는 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또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는듯 장화마저 낭창낭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루중에 고작 몇시간을 밭에서 보냈던 내가 농업에 대해 시적 은유와 현실의 행간을 어찌 읽어내야할지 아득하다. 다만 아무리 더워도 해야하는 일들과 그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냥 한다. 해야하는 일이니까 하고 그것으로 살아가니까 한다. 거기엔 생각이라는 게 필요없다. 그것이 삶이다.
   뜨거운 불 앞에서 종일 냉면을 삶고 손목뼈가 돌아가도록 마는 친구는 땡볕에서 일하는 현장 사람들을 걱정한다. 뜨거움을 견디는 일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방호복으로 중무장을 갖추고 코로나 방역현장의 일선에 서있는 이들의 숨소리는 어쩔것인가.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기만 하다.

   폭염경보의 세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엄숙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진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제초제를 병째 들이켰다고 한다/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고 한다˝ 그런 심정으로 견디는 것이다. 곧 팔월이다. 삼년 전의 여름이 지독했다고 말하는 지금처럼 곧 옛말하게 되리라. 보름쯤 지나면 아침, 저녁 서늘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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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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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발원

                  안미옥

  한여름에 강으로 가

  언 강을 기억해내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강이 얼었더라면, 길이 막혔더라면

  만약으로 이루어진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아주 작은 사람이 더 작은 사람이 된다

  구름은 회색이고 소란스러운 마음

  너의 얼굴은 구름과 같은 색을 하고 있다

  닫힌 입술과 닫힌 눈동자에 갇힌 사람

  다 타버린 자리에도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이 있다고

  쭈그리고 앉아 막대기로 바닥을 뒤적일 때

  벗어났다고 생각했다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쪽이 끊어진 그네에 온몸으로 매달려 있어도

  네가 네 기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집 [온]중에서

 

 

 

        

    

  일하다 올려다 본 하늘이 엄청나다. 폭염 속의 하늘이 '저래도 되나'싶게 비현실적으로 투명하고 환한 데다 구름의 조화는 훈훈하고 감동적이다. 불과 이틀 전 형제봉에서 바라본 하늘도 환상이었다. 이 숨 막히는 더위에도 저런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또 나름 살만하지 않냐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 날마다 조금씩 부당하고 크고 작은 모멸감에 부대끼면서 자존감은 하락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그럭저럭 살아간다.

  "한여름에 강으로 가/ 언 강을 기억해 내는"일이 필요하다. "만약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까. "벗어났다고 생각했다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읽을수록 감칠맛이 더해지는 시집이다. "네가 네 기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시집을 읽는 일,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일,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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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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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찜통

              박성우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

  넘실대는 요강 들고 옆집 할머니 오신다

  화기 뺄 땐 오줌을 끓여

  사나흘 푹 담그는 것이 제일이란다

  이틀 전에 깁스를 푸신 어머니,

  할머니께 보리차 한통 내미신다

  호박넝쿨 밑으로 절뚝절뚝 걸어가신다

  요강이 없는 어머니

  주름치마 걷어올리고 양은 찜통에 오줌 누신다

  찜통목 짚고 있는 양팔을 배려하기라도 하듯

  한숨 같은 오줌발이 금시 그친다

  야외용 가스렌지로 오줌을 끓인다

  찜통에서 나온 훈기가 말복 더위와 엉킨다

  마당 가득 고인 지린내

  집밖으로 나가면 욕먹으므로

  바람은 애써 불지 않는다

  오줌이 미지근해지기를 기다린 어머니

  발을 찜통에 담그신다 지린내가 싫은 별들

  저만치 비켜 뜬다

  찜통더위는 언제쯤이나 꺾일런지

  찜통에 오줌 싸는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홀어머니

  소일거리 삼아 물을 들이키신다

  막둥아, 맥주 한 잔 헐텨?

  다음주까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먼 모가지라는디

                                 시집 《거미》중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만나면서 내내 『찜통』이다. 날씨도 『찜통』, 이놈의 세상도 『찜통』, 내 속도 『찜통』이다.

   마지막으로 까부라지는 몸을 부린 휴게실, 어떡허든 기운을 차려보겠다고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된 컵라면 생각을 하면 계속되는 『찜통』더위 속에서 천불이 난다.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에서, 비록 청소 일이지만 최고의 일원이 되어 자랑스러웠을까? 그걸 영어로 쓰는 일이 뿌듯했을까? 개뿔~! 세상이 갑자기 와글와글 시끄러워졌다. 여전히 바닥을 쓸고, 여전히 땀으로 걸레질을 하고, 여전히 쓰레기봉투를 낑낑대고 끌어내리고, 여전히 저 휴게실에 몸을 눕혀야 하는 동료들은 어떨까? 바글바글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며칠이나 이어질까? 다시 자리는 채워지고 우리나라 최고의 학생들은 음식을 주문해먹고 쓰레기를 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토론하겠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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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7 11:40   좋아요 1 | URL
잘 참는 사람인데 가끔은 울분을 토로하고 싶어져요. 후~ 감사합니다.
 

 

  내 몸에도 같은 기관이 있을 텐데 나는 여자의 성기의 전모를 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여자들은 왜 타인에게 자기 몸의 일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수는 있어도 자기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의 뒤통수는 볼 수 없다지만 뒷거울로 볼 수가 있다. 거울을 사용하면 자신의 성기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한 번도 그걸 시도해본 적이 없다.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제 몸의 일부건만 마치 없는 것처럼 자신에게조차 감추고 살았다. 눈부시게 밝은 불빛 아래 샅샅이 드러난 여성 성기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마치 검은 털을 가진 짐승의 상처처럼 검붉고 처참했다. 의사는 상처의 가장 깊은 구멍에다 금속으로 된 대롱 같은 걸 박고, 그 관을 통해 자루가 긴 약숟가락처럼 생긴 쇠붙이로 분홍빛으로 흐느적대는 내장 같은 걸 조금씩 조금씩 긁어내고 있었다. 자궁이라는 신비한 궁이 외부에서 저렇게 가까이 직통으로 연결돼 있을 줄이야. 춘희는 신음소리를 참지 못하면서도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춘희는 지금 나를 통해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 끝났다고 간호부가 말했다. [그 남자의 집<박완서>] p233. 234

 

 

 

 

 

 

 

 

 

 

 

 

   미국 사회에서 미군의 한국인 아내들은 여성도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이다. 이들은 백인 중산층 중심의 여성 범주에 속할 수 없으며, 남성 중심의 한국인 범주에도 속할 수 없었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된 것은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엄청난 경멸감은 보편적인 가부장제 관행이나 인종적 자부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8.15 '해방' 이후에도 탈(脫)식민화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일제 강점기 '군 위안부'는 제국주의 침략의 순결한 희생자로 여겨지지만, 기지촌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천민'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강제적인' 성폭력(군 위안부)과 '자발적인'(?)성매매(기지촌 여성)로 구분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 때문이기도 하다. '군 위안부'와 달리 기지촌 여성은 떳떳하지 못하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은 청산해야할 식민주의자이며, 독도 분쟁의 예에서 보듯이 침략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음험한 제국주의자다. 하지만 미국은 감사해야 할 동맹이자 우방이며, 미국의 자유와 물질적 풍요는 선망의 대상이고 경쟁해야 할 이상으로 간주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이 기지촌 여성을 군대 성매매의 희생양이자 현대판 위안부로이해하는 것은 한국 사회 스스로 주권 국가 환상을 깨는 정신적 탈식민이 요구되는 일이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근대 국가의 모순을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 추방과 포섭의 정치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는 재미 동포나 재일 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재중 동포만 조선족이다. '같은 세포'라는 의미의 '동포(同胞)'가 모두 한국인은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잘나가는' 동포만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에 목숨을 건다. 미식 축구 스타인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처받았다가 열광했다가 하는 식이다. (그는 아버지가 주한 미군이었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

   기지촌 여성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군인 아내를 향한 혐오와 비하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자부심과 열망이 실은 우리 사회 안팎의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균질적인 국민으로 구성됐다고 상상되는 국민 국가 내부의 성별, 인종, 계급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군인 아내들의 몸에 고스란히 체현됐다.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민간 외교관'과 '양공주'라는 이중 메시지에 시달렸던 군인 아내들의 삶을 애정과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라는 정치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최초로 해냈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여성도 한국인도 아닌'<정희진>]

p15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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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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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박소란

 

 

   우리는 자주 다툰다

   너는 고집이 세고 언제나 나를 이긴다

 

   한 사람을 향해 갈 때

 

   한 사람으로부터 힘겹게 돌아서 올 때

   느닷없이 너는

   한 사람을 부른다 더없이 긴한 몸짓으로

   불러 세운 뒤 그 팔을 목을 끌어다 잡는다

 

   나는 당황스럽다

   너의 상스러운 행동이 지나치게 진지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한 사람은 놀란다

   마음을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재빨리 달아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는 붙든다

   버림받은 자 특유의 파리한 몸뚱이를 다섯개의 가느다란 리본으로 얼기설기 포장한

   너를

 

   누군인가

   누구의 슬픈 애인인가

 

   나는 껴안은다 껴안고야 만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면 그만 한 줌 꿈으로 부서져버릴 것 같은

   너를

 

   나는 왜 고작 손인가 우두커니 생각에 잠긴

   너를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중에서

 

 

 

   왼쪽 엄지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상처 부위에서 피가 나오길래 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반창고까지 붙였다. 고작 손가락의 작은 상처도 이렇게 확실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내친김에 손톱을 깎고 핸드로션을 발랐다. 손가락이 휘어지고 튀어나온 관절들이 이제는 쉽게 눈에 띈다.

  누군가를 만나면 손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상대방의 손짓이나 손 모양, 손을 쓰는 방식, 손가락 길이, 손톱 상태 등. 손은 그저 손일뿐인데도 참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이야기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의 일부분인 손 하나로 그 사람의 전부를 다 알 순 없지만 손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려는 은밀하고 나쁜 짓거리가 고쳐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재주가 있는 손인지, 고생을 많이 한 손인지, 손을 정성스레 가꾸는 사람인지 혼자 유추해보고는 한다.

   "나는 왜 고작 손인가 우두커니 생각에 잠긴" 손을 떠올렸다. 손가락이 길고 가늘고 얇은 손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은 어쩐지 악기도 잘 다루고 그림도 잘 그릴 것만 같아서다. 내게 부족한 예술가적 기질이 짧은 손가락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긴 손가락의 소유자는 다재다능할 것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내 손은 짧고 뭉툭한 손이다. 울 엄마의 손도 그랬고 살아있던 세월보다 이제는 떠난 세월이 길어버린 귀안 오빠의 손이 그랬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던 거칠고 따뜻하고 뭉툭하던 두 사람의 손이 생각난다. 오늘은 벌써 34년 전 서른에 세상을 떠난 버린 귀안 오빠의 기일이다.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것을, 사라져가는 흔적을 나라도 기억하고 싶다. 내가 아는 한 한번도 이생에서 평안하지 못했던 오빠는 그곳에서는 평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생전에도 평생을 속깨나 썩이던 자식이 너무도 일찍 당신을 만나러 왔을 때 엄마가 어떻게 했을지 알 것만 같다. 등짝을 후려치면서 어쩌자고 벌써 왔냐고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며 또 한 번 등짝을 후려치면 단춧구멍 보다 작은 눈의 오빠는 잘못했다고 눙치며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그것도 벌써 34년 전이네. 두 사람은 그쪽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여전히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사람 안 변한다. 그래도 두 분, 평안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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