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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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젊은 작가상 작품집‘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매년 읽게 된다. 새롭게 만나거나 다시 되돌아보는 작가들의 고군분투와 치열함을 응원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진다. 한 편 한 편으로 소설의 세계가 확장 되어가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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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집단의 이야기를 조금씩 바꿈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강제적 침묵 위에 씌어졌던 오래된 이야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 모든 여성들, 고맙습니다. 소셜미디어, 공론장, 대화, 뉴스, 책과 법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 목소리로 침묵을 깨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도어쩌면 그들 역시 세상에 들려줄 끔찍한 이야기를 간직한 생존자가 되기 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모든 이야기꾼들, 고맙습니다.

페미니즘에게, 고맙습니다. 
교차점들에게,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해방을 위하여.

두개골은 생후 몇년 동안 처음의 네배로 커진다. 그런데 만약뼈들이 너무 일찍 맞물리면, 뇌가 자랄 공간이 없어진다. 반대로영영 맞물리지 않으면, 뇌가 보호받을 수 없다. 자랄 수 있을 만큼은 열려 있되 온전함을 유지할 만큼은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콜라주처럼 자신을 만든다. 세계관,
사랑할 사람, 살 이유를 조각조각 모은 뒤에 그것을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부합하는 삶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해낸다. 적어도 운이 좋은 사람은 그런다. - P239

20대 중반 언젠가, 어린 시절에 자연에 대해 품었던 열정이새삼 살아났다. 내가 사는 곳의 숲이나 초원이나 해안 같은 야생의장소에서 깨우침과 자유를 느끼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과 장소와 경관에 관한 개념과 재현과 욕망을 문화사적으로 공부하기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술과 미술사를 대상으로 했지만 나중에는환경에 관한 모든 글과 문화사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그다음에는 그 주제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 P239

나는 글쓰기를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배웠다는 말을 자주한다. 대규모 반핵 야영 시위에 참가하려고 처음 그곳을 찾았던1988년 봄 이후로 2000년대까지 매년 방문하면서 접한 그 장소는얼마나 순전하고 광대하던지, 내 눈에 얼마나 낯설던지, 얼마나 많은 문화와 이야기가 모여 있던지, 내가 본 것을 그런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글쓰기 방식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로 합쳐야 했다. 이전에 나는 글쓰기에 이른바 범주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로 글을 썼다. 비평과 리뷰를 쓸 때는 확신과 객관성을 갖춘 듯한 말투로 썼고, 기사를 쓸 때는 그럭저럭 저널리즘으로 불릴 만한 문체로썼다. 짧고 밀도 높은 에세이도 이전부터 써왔다. 시적이고,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은유적이고, 형식과 문체를 실험해보는 그런글에서는 시와 예언자적 목소리로부터 배운 바를 끌어들였고, 평론과 기사에서 허용되지 않던 요소들을 실컷 시도했고, 놀라움과감상과 불확실성을 담아냈고,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도록재량을 한껏 허용했다.
- P241

그곳은 강렬한 장소였다. 거기 있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광활한 모랫빛의 돌투성이 땅, 그 속에서 뜨문뜨문 반짝이는 분홍색 석영 조각, 돌과 돌 사이의 옅은 흙에 띄엄띄엄 자란 뾰족뾰족한 모양의 강인한 식물들, (모래바람이 일 때나 열기가 뜨거워서 아지랑이가 어른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맑아서수십 킬로미터 밖 산등성이가 선명하게 내다보이는 건조한 대기.
그 망막한 공간이 불러준 덕분에, 나는 가끔 150킬로미터 밖까지내다볼 수 있는 풍경, 그 거리의 절반을 달리면서도 집 한채 못 볼때가 있는 풍경, 내가 자주 그랬듯이 지평선을 향하여 하염없이 걸으면서 해방감과 함께 이토록 메마른 곳에서 전체의 3분의 2가 물로 이뤄진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을 느꼈던 풍경 속을자유롭게 누볐고, 그 속에서는 인간의 몸과 관심사란 하찮기 짝이없음을 느꼈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결과 살갗에서 물기가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을 통틀어 가장 건조한 주 내에서도 가장 건조한 그 일대의 대기에도 드물지만 가끔은 구름이 엉겼고 그러면 비가 내렸는데, 비는 땅으로떨어지는 와중에 증발하거나 후드득 쏟아졌다가 몇분 만에 말라버리곤 했다. - P242

담장과 경비가 있는 장소에 들어가려면 요령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지만, 실은 이런 방대한 공간에 들어가는 데에도 나름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때로부터 몇년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데스밸리와 남서부를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가 예정보다 이르게 돌아선 적이 있었다. 물이 고이는 산골짜기나 협곡에숨은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법을 몰랐고, 초목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몰랐고, 시간이란 아득하고 순환적인 것이라는 감각과 그 고요함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법을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런 곳에 들어가는 법을 배운 계기가 네바다 핵실험장이었다. 그곳에서 봄마다 벌어진 야영 시위에서 그런 외진 땅들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을 사귄 데다가, 그곳에서의 시간이 안전하다고 느꼈고 좀 얄궂지만 그 장소 또한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핵무기와 대치하고 있었고, 방사성 낙진을 마실까봐 걱정했고, 핵실험장을 지키는 무장 경비원들에게 가끔 거칠게 체포되곤 했는데도,
나는 안전했다.  - P243

그 시절에 나 같은 비원주민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원주민들이 주류 담론에서 얼마나 철저히 지워졌는지, 혹은 아예 끼지도 못했는지, 혹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래서 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일은 영영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과거시제로만 이야기되었는지 모를 것이다. 화가, 사진가, 환경보호론자, 시인, 탐험가, 역사가 들이 상상하고 묘사한 북아메리카는 인간이 당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땅, 더 구체적으로말하자면 백인 남성이 최근에야 발견한 장소일 뿐이었고 그 그림에서 원주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 P245

나는 전화로 소식을 듣고는 한시간만에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냉큼 짐을 챙겨 동쪽으로 차를 달렸다. 베이교를 건너고, 이스트베이를 지나고, 새크라멘토강을 건너고, 넓은 새크라멘토 계곡을 가로지르고, 처음에는 참나무 숲을다음에는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산을 올라서 시에라네바다산맥을넘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화물차 휴게소에서 두어시간 눈을 붙였다가, 새벽에 다시 내 집에서 자매의 집까지 800킬로미터를 달리는 운전을 재개했다. 내가 폭력을 향하여 움직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 P251

감정은 최악일 때뿐 아니라 최고일 때도 전염된다. 땅에 가까이 살아가는 서부인들의 용맹함, 배짱, 헌신, 유머는(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서부로 이식된 루시의 활기찬 대담함) 내게 유익하게 작용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장소들 자체와 친해졌고, 장소들로부터 즐거움과 힘을 얻었다. 나는 서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시작할 용기를 키운 터였고, 흙길을 더 잘 달리고 외진 곳까지 갈수있으며 뒤쪽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여러 밤을 나게 해줄 픽업트럭 - P253

을 갖춘 터였고, 유타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와 네바다에 찾아갈친구들을 만들어둔 터였다. 이제 나는 서부를 더 많이 돌아다녔다.
그것은 집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였고, 내가 사는 지역 전체와 유대를 맺고 유지하는 행위였다. 나는 그 장소에, 그리고 장거리 운전과 걷기는 물론이거니와환경 시위에서 야영하며 당국과 맞서는 일까지 갖가지 물리적 도전들을 개의치 않는 자세에 뿌리내린 자아를 만들어나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그 모습 중 일부는 장식물로 치장한똑딱단추가 달린 셔츠, 픽업트럭에서 트는 먼지투성이 컨트리 음악 카세트테이프, 괜찮은 캠핑용품 세트 등등 퍼포먼스였지만, 일부는 더 깊이가 있었다. - P254

글쓰기는 희망적으로 느낄 만큼 잘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훗날처럼 일을 과하게 맡을 만큼 잘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나는 쏘다녔고, 탐험했고, 내게 들어오는 초대를 최대한 활용했다.
시간이 넉넉했고, 눈앞에서 열리기 시작한 세상과 관계와 생각에흥분감이 들끓었다. 그때 가졌던 능력이 그립다. 대뜸 트럭에 올라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어디론가 떠나던 능력, 멀리 돌아가는길을 택하던 능력, 할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그 장소에 충분히 머물면서 탐험하던 능력. 나는 자유로웠다. - P254

지평선 가까이의 하늘이 살구색이고 그 위의 하늘은 아직 파란색인 저녁에 나는 가끔 두 색 사이의 경계선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하늘에는 서로 다른 두 색 사이에 어떤 엷음이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가려내지 못하고 놓치기가 쉽다. 가끔은 역시 저녁에 주변의 색들이 변하거나 그림자가 땅에 점점 더 길게 끌리는 과정을 지켜보려고 하지만, 거의 매번 한순간 주의를 깜박했다 싶으면 이내반쯤 빛을 받고 있던 나무가 벌써 어둠에 삼켜졌거나 환하고 또렷하던 그림자가 갑자기 뭉개진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해가 벌써 넘어갔거나 코발트색이던 하늘이 이미 미드나이트블루색이 되었기때문이다. 상태는 이랬다가 이내 저렇고, 이행의 과정은 표시하기가 어렵다. - P255

나는 짧은 글과 리뷰를 발표했고, 다음에 더 긴 글과 더 야심찬 에세이를 발표했다. 책을 한권 썼고, 그보다 더 야심 찬 책을 또썼고, 같은 맥락의 책을 한권 더 썼고, 그다음에 걷기의 역사에 관한 책인 걷기의 인문학] 반비 2017을 썼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내가 처음으로 얼추 생활임금에 가까운 금액을 선인세로 받은 책이자 처음으로 널리 판매된 책이었다. 각각의 책은 내가 집필을 시작할 때 마음에 품었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었고, 끝에 가서는 각각 또다른 질문들을 발생시켰다. 걷기의 역사를 쓰면서도 두가지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 두 책에서는 그것들을 파고들었다. - P259

<길 잃기 안내서> -반비 2018-를 쓴 것은 방랑, 미지 속으로 과감히들어가는 일, 만물의 핵심에 있는 본질적 미스터리를 받아들이는일, 그리고 상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이 글을과연 누구에게든 보여줄지, 마무리할 수는 있을지, 책으로 낼 만한지, 내가 출간을 바라기는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에는책으로 냈다. 책은 처음에 조용한 반응만을 얻다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인용되고 또 몇몇 예술가가 작품으로써 반응하면서 흥미로운 생애를 살게 되었다.
- P259

그다음 몇년 동안, 나는 정치에 대해서 쓰는 작가가 되었다.
현재 펼쳐지는 사건들과 만성적인 상황들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한 웹사이트에 발표했고, 그러면 전세계 여러 뉴스 사이트들이 그글을 가져가서 게재했다. 글쓰기의 계기는 종종 최악의 사건들,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분개하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반대도,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해쳤거나 해칠 참이라서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쓴 글 한편이 저 혼자 거친 파도를 일으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가 다른 어떤 글보다도 덤덤하게 쓴 글이었다. 다른 글들은 모두내가 선택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한 주제에 관한 글이었지만, 페미니즘은 그것이 나를 선택했다. 아니면 내가 그것을 모른 척할 수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67

내가 그날 아침에 쓴 글을 발표한 뒤로 변호사, 과학자, 의사,
온갖 분야의 학자, 운동선수와 등반가, 기계공, 건축업자, 영화 기술자, 기타 등등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남자들이 자꾸 자신을 가르치려 든경험이 있었다. 그 남자들은 자기가 하는 소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응당 앎은 남자에게 있고 앎의 결핍은 여자에게 있다고 믿었고, 듣기는 여자의 자연스런 태도이자 의무인 반면에 설명은 남자의 권리라고 믿었고, 게다가 어쩌면 여자의 일은 남자의 자아를 부풀려주는 것이고 여자의 자아는 쪼그라들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누가 사실을 쥐고 있는가에 대한 이런 비대칭은 지적인 문제에서부터 방금 전에 벌어진 일상의 사건에까지 매사에 적용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여성의 능력을 갉아먹는다. 거의 모든 일에 대한능력을 가끔은 생존의 능력도 - P272

날 가만 놔두라고 말한다는 것이 어릴 적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일, 내게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말해도 안전한지를 모르겠으며 그렇게 말한들 그들에게 내 말을 들을 의무가있는지, 아니 들을 의향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을 때 늘 강간당할 수 있다고, 어쩌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여자다. 나는 평생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거나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아는 남자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그런 강간과 살해가 예술에 선정적으로 잔존하는세상을 살아온 여자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차례 당신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말, 당신이 헷갈린 거라는 말, 당신은 사실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어온 여자다. 그리고 이 모든 면에서 나는 평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강간 검사 키트, 캠퍼스 스토킹인식 제고의 달, 여자와 아이가 제 남편과 아버지를 피해 숨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가 붙박이로 널린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 P274

이른바 <#미투나도 고발한다>로 세상이 뒤집히고 이어서 미국 밖으로도, 아이슬란드에서 한국까지 전세계에서 고발이 이어졌던 사건에 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2018년 대법원 청문회에서 한 여성이 열다섯살에 겪을 뻔했던 성폭행과 그로 인한트라우마를 증언하고는 폭로의 대가로 살해 협박을 받은 사건에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살펴보는 현상은 잔인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다는사실과 말의 힘을 느끼는 것은 환희로운 일이었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말함으로써 해방됨과 동시에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었다. 한번 그렇게 둑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쏟아졌던지 마치 숨었던 것들이 모조리 백일하에 드러난 것 같았지만, 그 뒤에도 또 둑이 터졌고, 그러면 수천수만의 더 많은 여성들이 또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 P282

분노가 이런 사업의 추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평생 활동가들과 함께한 경험으로 내가 확신하는바 대개 활동을 추진하는 힘은 사랑이다. 사유화된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내놓는 치료법은 개인적 차원의 것일 때가 많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을 위해서, 타인과 함께, 우리를 해친 환경을 바꾸는 일을 함으로써 연대와 힘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트라우마의 핵심인 고립감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 P283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나는 최악의 일을 다루는 방법은 그것을 직면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면, 그것이 당신을 뒤쫓는다. 그것을 무시하면, 무방비 상태일 때 그것이 당신을덮친다. 그것을 직면해야만, 그 과정에서 동맹과 힘과 승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이전부터 누차 젠더폭력을 직면하고 호명하려고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고 마침내 나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직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대화를 꾸려가는 여성들의 세계적 움직임을.
- P284

복장이나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여자들의 욕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낡은 변명을, 피해자 비난과 무시를 조금씩 지웠다. 또한 우리는 스토킹, 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여성살해를 여성혐오라는 한 현상의 서로 다른 표현으로이해하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 덕분에 우리는 성적 학대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왜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가 많은지,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경우는 드문데도 불구하고 왜 정작 신고를하면 의심받는지, 왜 가해자가 유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드문지에대해서 더 넓고 깊게 알게 되었다.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방식을 더 잘 알게 된 것도 새로운 소득이었다. 둘 사이의 유사점도 더잘 알게 되었다. 인종폭력 또한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불신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행위를 용인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85

가부장제는 종종 자신이 합리성과 이성을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빠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이라면 아무리입증 가능하고 일관되고 일상적인 이야기라도 믿지 않으면서 남자의 말이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소리라도 받아들이고, 성폭력은 드물지만 무고는 흔한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말을 꺼내봐야 그때문에 또 처벌과 비난을 받을 뿐이라면, 왜 말하겠는가? 혹은 무의미한 말인 것처럼 무시될 뿐이라면? 선제적 침묵시키기는 이렇게 작동한다. - P286

영향력consequence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권리가 있다.
그의 말은 그 권리를 위해서 일한다. 그에게 증언하고, 합의하고,
한계를 정하는 힘을 준다. 그가 영향력 있는 존재라면, 그의 말에는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는지를 정하는 권위가 담겨 있다. 그 힘은 평등과 자결의 일부로서 동의의 개념에 꼭필요한 전제 요소다. - P288

그동안 여자들은 세가지 전선 모두에서 손상을 입었다. 유색인 남자들도 그렇고, 비백인 여자들은 이중으로 그렇다. 그들은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고, 혹은 말한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혹은 결정이 내려지는 무대에서법정, 대학, 입법 기관, 보도국에서배제당한다. 어렵사리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말하면 조롱당하거나 불신당하거나 협박당하고, 그런 범주의 사람은 본질적으로기만적이고 악의적이고 망상적이고 정신이 혼란하다고 혹은 그냥자격이 없다고 싸잡힌다. 아니면, 말해도 침묵한 것과 다를 바가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의 권리와 증언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소리일 뿐이다.
젠더폭력은 이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의 결여로 인해 가능해진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거대한 모순이나 다름없으니, 사회는법률과 그 잘난 자존심에 의거하여 그런 폭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무수한 전략으로써 그런 폭력이 계속 횡행하도록허락했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훨씬 더 자주 더 잘 보호했고, 직장 성희롱이든 학내 강간이든 가정폭력 사건이든 늘 입을 연 피해자를 처벌하고 모욕하고 겁박했다.  - P289

성적 폭력을 가능케 하는 이런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무시는폭력 이후의 무시, 즉 여성이 경찰이나 대학 당국이나 가족이나 교회나 법정을 찾아가거나 강간 검사를 받고자 병원에 찾아갔을 때외면과 모멸과 비난과 망신과 불신을 받는 것과 뗄 수 없는 일이다. 둘 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누려야 마땅한 온전한 인간성과 구성원 자격을 공격하는 일이고, 후자의 영역에서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전자의 일을 가능케 한다. 성폭력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 불평등한 상황에서만 활개 칠 수 있다. 다른 어떤 불균형보다도 바로 이 불균형이 젠더폭력이라는 전염병의 가장 중요한전제 조건이다.
힘과 저 세 속성을 다 갖춘 목소리를 누가 가질 것인가, 이 점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로잡힐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바꾸면, 규칙이 바뀐다. 특히 어떤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질지,
누가 그것을 결정할지를 정하는 규칙이 바뀐다. 이 변화의 척도 중하나는 과거에 무시되고 불신되고 일축된 사건들, 혹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결된 사건들 중 현재에 다른 결과를 낸 사건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증언대에 선 여성이나 아이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일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가 가져올 여러 결과 중 가장 측정하기어려운 결과는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은 수많은 범 - P290

죄일 것이다.
그런 변화의 배후에는 누구의 권리가 중요한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릴 것인가,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면에서의 변화가 있다. 그 목소리를 확대시키고 북돋우며 그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내가 작가로서 확보한 목소리를 써서 수행한 과제 중 하나였다.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과 말이 세상의 변화를 거드는 걸 보는 것은 작가이자 또한 생존자인 내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 P291

내가 뉴올리언스에 간 것은 그 도시에서 가장 추악한 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가난, 인종차별, 그리고 도시가 범람했을 때 바로 그 요인들 때문에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버려진 데다가 이어 공격받고, 대피가 저지되고, 구호를 받지 못하여 죽어간일, 그에 더해서 그들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죽어간 일. 그런데 나는 그뿐 아니라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중 하나는 그곳 주민들이 현재에 머무를 줄 안다는 점,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거리에서 축하하고 주변과 이어질 줄 안다는 점, 그런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를 기억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또한 일상의 자각과 즐거움을그냥 지나치도록 볶아치는 비참한 두 덕목인 생산성과 효율성 이외의 것들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 P295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Despite everything, 이 말을 나는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삶에서 으레 겪는 장애물과 상처를 가리키는 것으로이해했다. 세상이 그동안 좋은 방향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젠더라는 뒤틀린 거울이 그들에게 비춰 보인 손상된 자아상 때문에, 혹은 그들의 권리와능력과 생존 조건마저 훼손된 현실 때문에 운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세상에 티끌만큼도 손상되지 않은 인간이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존재를 굳이 상상해볼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여성이 겪는 피해 중 일부나마 줄고 금지되는 모습만큼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또 그 과정이 현재 진행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울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희망적인 인간일 수 있는 까닭은,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내가 태어난 이래 여러 장소에서 여러 방식으로 크나크게 변해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296

손상을 입은 삶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삶과는 다른 운명을 낳지만, 우리가 손상을 입는다고 해서 삶을 살지 못하게 되거나 중요한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우리가 어떤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일때문에 운명으로 정해진 존재가 되고,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하게 된다. "운명대로 살다" meant to be, 여자의 이 말을, 나는 손상이 없었다는 뜻이아니라 손상이 있었어도 그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을 수행하는 - P299

사람은 사실 어떤 운명도 타고나지 않는다.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난다. 약간의 선천적 기질을갖고 태어난다. 그다음에는 사건들과 만남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좌절되고, 뜨겁게 데고, 격려를 받는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이말은 한 사람을 저지하려고 들거나 그의 성품과 목적을 바꾸려고드는 힘들이 있음을 뜻하고, 운명대로 산다, 이 말은 그 힘들이 완벽히 성공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낯선 이가 내게 건넨 멋진운이었다. 나는 그 운을 받아들였고, 더불어 내 운명은 어떤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금 - P302

간 곳을 추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가끔은 수선하는 사람이 되는것, 또 가끔은 가장 귀중한 화물을 담아 나르는 짐꾼 혹은 배가 되는 것이라는 느낌도 함께 받아들였으니, 그 화물이란 말해지기를기다리는 이야기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이야기들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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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내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산더미처럼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 그때 내가 택한 대처 방법도 그것이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부설 도서관에 가서, 두 남자가 문제의 시기에 나눴던 대화와 함께했던 작업에 관한 자료를 있는 대로 복사해 왔다. 그리고 그 자료를 내 편집자가 코플랜스의 변호사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결국 책은 폐기되지 않았다. 별 반응을 얻지 못한채 조용히 있다가 절판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평 기사는 딱 두편이 나왔고, 개중 한 기사는 선뜻 서문을 써준 시인 겸 비평가 빌벅슨Bill Berkson 을 책의 저자로 잘못 소개했다. 얄궂게도 벅슨의 서문첫머리에는 작가 미나 로이 Mina Loy의 이 시구가 인용되어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겪은 고통은 흔해빠진 비극일 뿐"
- P210

없으니 그 싸움특정 기상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하기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기후변화가 기상의 전반적인 경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도 그렇다. 어떤 특정 사건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상대의 태도에서 비롯한 일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이 누적되면 그로부터 분명또한 패턴이 드러난다.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시절의세상이 달랐더라면, 즉 내가 겪은 위협과 주변 여성들이 겪은 폭력이 절박한 현실이 아닌 세상이었다면, 또 내 청년기에 우상으로 떠받들렸던 작가들의 업신여김이 그리 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겪은 저런 적대적 행동들도 그냥 재수 없는 일일 뿐 서로 무관한 시건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 P211

요컨대 나는 미래와 과거의 전쟁들이 현재에 겹쳐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데도 우리가 그 사실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 서부, 자연, 문화, 원주민 등등을 생각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개념들은 그즈음 이미 혁명적으로바뀌는 중이었고, 나는 그 혁명의 수혜자였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적 없고, 권리를 포기한 적 없고,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않았고, 그 땅에는 역사가 있으며, 그 역사는 자연과 괴리되거나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문화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것은나처럼 원주민이 아닌 사람에게는 혁명적인 깨우침이었다. 상징적 소멸을, 즉 특정 집단이 특정 성별, 인종, 성적 지향의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예술에서, 해당 사회나 지역에 관한 공식적 묘사에서 재현되지 않는 현상을 만회하도록 해주는 깨우침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이전까지 저런 개념들을 조직하는 데 널리 쓰였던자연대 문화의 선명한 이분법을 지우는 변화였다. - P213

신뢰성은 생존의 기본도구다. 책은 통상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서 1994년 가을에 출간되었다. 책에 핵무기와 반핵 운동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침 내 남동생은 반핵 운동가이자 내게 지지를 아끼지 않은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서부를 돌며 책을 홍보할수 있도록 계획을 짜주었다. 동생은 자기 인맥을 활용해서 내가 대학과 라디오 방송과 활동가 단체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내 쉐보레 트럭으로 떠난 11,000킬로미터의 여정에도 동행해주었다. 우리는 주로 동생의 친구와 지인 집에서 묵으면서 다녔다. 댈러스에서 우리를 재워준 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댈러스까지 어느 길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시애틀을 거쳐서요"라고대답하면서 재미있어한 일도 있었다. - P215

‘우리가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장벽을 부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경이나 장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혹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야 하고, 그래서 지치고 불안해진다. 나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논픽션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내게 진실과 정의를 가려보는 능력과 신뢰성이있다는 점을 믿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제 가끔은 나 자신을, 혹은남들을 옹호하고 나설 수 있게 되었다. - P218

어떤 여자가 자신에게 혹은 다른 여자에게 나쁜 일이 벌어졌고 그 가해자가 남자라고 말하면, 말한 이에게 남성혐오자냐는 비난이 쏟아질 때가 많다. 마치 그 일이 사실이라는 점은 중요하지않고, 상황이 어떻든 여자가 쾌활한 태도를 보여야 할 의무가 중요하다는 듯이. 모든 남자가 끔찍하지는 않다는 점이 어떤 남자는 끔찍하게 굴었다는 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여자의 말은 내용의사실성으로 평가되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그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가, 그가 그런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살갑게 구는가 하는 점으로 평가되곤 한다. 내 20대에는 주변에 멋진 남자들도 있었다. 스물한살 생일부터 20대 후반까지 함께한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하는 사회운동에 나를 끌어들이고 그 운동과 점점 더 긴밀하게 얽혀온 내 일을 지지한 남동생도 있었다. 그리고 게이 남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친구였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큰 영향력을발휘하는 문화 세력이었고, 다른 형태의 남성성이 가능함을 보여준 모델이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 P219

우리는 누구나 서로 의지하는 존재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하다. 누구나 침범당할 수 있고, 실제로 쉴 새 없이 침범당한다. 음파진동은 우리 귓속으로 들어오고, 빛은 우리 눈과 피부에 쏟아진다.
우리가 매순간 호흡해야 하는 공기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물도,
피부에서 뇌로 전달될 감각을 일으키는 접촉도, 우리가 들이마시는 작은 입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냄새도 우리를 침투해 들어온다.
장을 비롯하여 우리 몸 곳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의 유익한 세균도 있다. 그런 세균이 인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한 점을감안하면, 한 개인이라는 단수적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복수로, 어쩌면 무리로 표현해야 옳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이가 정말로 침투 불가능한 존재라면 그는 고작 몇분 만에 죽어버릴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치명적인 활기 없음을찾아볼 수 있다.
- P231

퀴어 문화는 우리에게 일종의 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우정을 안정된 기반으로 삼아서 살 수도 있다는 사실, 실제 가족도 배우자 간의 계약과 후손 생산과 혈연관계라는 관습적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이런 사실은핵가족만이 사랑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피곤한 통념에 대한 방어벽이 되어주었다. 가족은 종종 그런 것을 제공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가족은 불행과 분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족의 이런 현실 자체가, 법이 평등혼을 보장하고 동성커플이 쉽게 입양할 수 있게된 현재로부터 오래전에, 사람들이 퀴어를 결혼에서 배제하고 혈연 가족으로부터 내친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좀 든 뒤로 - P234

가끔 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느냐는 실례되는 질문을 받을 때가있었는데, 그때 당신은 남자에게도 그런 걸 묻겠느냐고 받아치거나 고약한 태도를 이유로 목 졸라 죽이거나 해야 했건만, 미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는 점을 들어 대답하곤 했다.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랑이 삶을 떠받칠 수있는가에 대해서 덜 틀에박힌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때문이라고.
그 옛날 그 집에서 서쪽으로 죽 걸어가면 태평양에 닿을 수 있었다. 거의 정남쪽으로 걸어가면 캐스트로 극장과 그 밖의 오락 시설득, 구성원의 면면이 차츰 달라지는 친구 무리가 나를 부르던 캐스트로 지구가 나왔다. 북쪽으로 걸어가는 일은 드물었다. 차를 몰고 골든게이트교를 건너기는 했다.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서, 혹은어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게 다리를 건너는 일은해방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동쪽으로는 조금만 걸어가면 공공기관들, 요즘도 자료 조사차 이용하는 시립도서관 본관, 이스트베이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나왔다. 1990년대가되자, 차를 몰고 베이교를 넘어서 동쪽으로 여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미국 서부를 향해서, 그곳의 산과 사막과 그곳에서 찾아낸 새삶과 친구들을 향해서 가는 것이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내게 열리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세상에게 열리고 있었던 것일까. - P235

성장은 크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마치 우리가 나무인 것처럼, 높이를 키우면 다 되는 것처럼. 하지만 성장이란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그것들이 그리는 그림을 읽어냄으로써 차츰완전해지는 과정일 때가 많다. 인간은 두개골을 이루는 여러개의판들이 아직 단단한 몸처럼 맞물리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는데, 머리통이 산도를 빠져나올 때 짜부라졌다가 빠져나온 뒤에는 그 속의 뇌가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판들은 마치 깍지 낀 손가락처럼, 극지방 툰드라를 흐르는 강물의 굽이처럼 꼬불꼬불한 이음선을 그리며 만난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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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글을 한편 쓸 때마다쓰지 않는 글이 더 많이 있고, 우리가 무언가를 글로 털어놓을 때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이 비밀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기억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글을 쓰는 의도가 무엇이든
심지어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는 자신이 겪은 혼란스럽고 유동적인 경험 중 일부만을 선별하여 종이 위에 모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대리석 덩어리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다. 거친 강물에서 겨우 몇줌의 부유물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 찌꺼기를 어떻게 잘늘어놓아볼 수는 있겠지만, 강 전체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누락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내 조부모들이 내 부모에게 물려준 상처가 부모에게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고, 우리가 공적으로 물려받은 역사가 우리의 사적인 삶에도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 나는 이제우리 집안의 다섯 세대를 목격할 만큼 오래 살았다. 내 앞의 두 세대에게 벌어졌던 역사의 무게가- 굶주림, 집단 학살, 가난, 참혹한 이민과정, 차별, 여성혐오가 -내 뒤의 두 세대에게도 여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목격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여자가 내게 준 작은 책상에서 나는 부모의 부고를 썼고, 그들이 세상을 뜬 뒤 내게 찾아온 평화를 누리며 살아왔다. 내가 유년기의 혹독함에 대하여 쓸 마음이 없는 것은 그 이야기라면 지금까지 많은 이가 누누이 곱씹어왔지만 유년기 이후에 찾아오는 혹독함에 관해서는 아직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p164.165


여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거부한 뒤 나는이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읽고쓸 줄을 알게 된 해에 매일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로사서가 되고 싶어했던 시기가 잠시 있었지만, 곧 그 책들을 누군가가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거라고 정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인생 목표를 굳게 정한 탓에 삶이 단순해졌지만, 글쓰기 자체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 - P163

은 우리가 누구나 살면서 접하는 과제를 형식화한 일이라고 할 수있다. 세상의 지배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내는 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담아낼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새로쓸 수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 P164

간간이 곁가지를 내거나 몇갈래로 갈라지며 여러 방향으로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할 때 실처럼 풀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표현이다. 하지만 여러가닥의 섬유가 꼬여서 하나의 실오라기를이루는 점을 고려할 때 한 실오라기를 따라간다는 것은 그것을 풀어 헤쳐보거나 그것을 이룬 여러가닥들을 구별해보는 일이라고말할 수 있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는 실의 비유를 써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게는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작은미술 잡지에 편집 조수로 취직했다가 곧 편집자가 되었다. 말은 편집자였지만 실제 하는 일을 보면 거의 편집장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교정의 규칙,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일을지시하는 법, 간행물을 만드는 법, 그리고 현대미술 특히 캘리포니아 미술에 대해서 배웠다. 부고, 리뷰, 가끔은 특집 기사, 몇편의 심층 취재 기사, 수많은 지면 때우기용 기사를 썼다. 월요일마다 들어오는 십여편의 글, 대체로 최악이었던 글들을 발행인과 함께 편집하여 목요일 오후에 인쇄기에 걸 수 있도록 만들었다.  - P165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시각예술의 영역을 거쳐왔다는 사실은 내가 한없이 고맙게 여기는 일이다. 당시 시각예술의 창작자들은 근원에 다다를 만큼 깊고 사방팔방으로 뻗는 질문들을 던졌다.
거의 모든 것이 시각예술이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곧 예술가들이모든 가정을 의심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탐색할 수 있고 모든 상황에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철학적 탐구. 나는 시각예술을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몇몇 예술가의작업에 관심을 쏟고, 다른 예술가들과 대화하고, 또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그 세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참고문헌을 뒤지면서 배웠다. 프랑스 철학,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의 난해한 텍스트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들을 수집했다.
- P166

메리델이 뉴멕시코에서 소개해준 사람들은내 중요한 친구들이 되었고, 나는 이후 거의 매년 여름 그곳을 찾으면서 그곳 여름 풍경을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로 여기게 되었다.
제리가 어언 80년 넘게 머물면서 애정으로 화폭에 담아온 그 장소를 내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제리 덕분이었다. 캐서린은 그 몇년 뒤에 뉴욕으로 옮겼고, 나는 어른이 된 뒤로는 처음으로 그 도시를 방문할 때 캐서린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젊은 미술 비평가였던 나는 미술계에 더 깊이 투신하거나 업계에서 경력을 닦으려면뉴욕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결국 서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자 내 앞날에서 그 운명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이 그렇게 맘 편할 수가 없었다).
- P171

이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서 만든 작품은 제목이 결핍과 과잉이었다. 거대한 동전 카펫 한구석에는 연기자가 있었다. 흰 셔츠를 입은 그는 꿀이 가득 든 챙 넓은 펠트 모자를무릎에 올려두고 앉아 있었다. 그가 해야 하는 퍼포먼스는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하면서―관람자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ㅡ두 손으로 꿀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연기자를 포함시키는 것은 작품이 이미 다 만들어진 과거 시제가 아니라 한창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시제임을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앤이 이후에 만든 작품들에서는 연기자가 무언가를 원래대로 되돌리거나,
풀어내거나, 지우곤 했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전시 기간 도중에 만들어지는 동시에 해체되었다.
나중에 앤은 동전 중 일부를 화폐로 바꿔서 내게 건네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연기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보면, 그가 나를 지속적인 대화와 침묵 양쪽 모두에 초대했다는 점이 매혹적이다.  - P175

어릴 때 우리는 끈적끈적하게 묻히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 어지럽히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자란다. 그래서인지 손목까지 꿀에 파묻는 것은 감각적 쾌락일뿐더러 그 모든 금지를 위반하는 멋진 행위로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그날의 첫 연기자라면, 처음에 꿀은 차갑고 좀 단단했다. 하지만금세 내 손의 온기로 데워져서 흐르기 시작했다. 꿀을 두손 가득히 퍼 올릴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곧 꿀은 똑똑 떨어졌지만 어차피내가 작품에서 할 일은 꿀을 움켜쥐고 있는 게 아니라 흘리는 것,
꿀을 모자에서 퍼 올렸다가 도로 똑똑 떨어뜨리는 것, 몸의 나머지부분은 꼼짝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치 1킬로미터 밖을 보는 듯 멀리 응시하면서 꿀만은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 P176

사방치기처럼 말하기. 뒤로 살짝 물러나서, 같은 영역을 다시밟아가기. 1987년 초, 아버지가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던 중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죽자, 나는 이제 충분히 안전해졌다고 느꼈다. 굳은 것을 풀고 닫아뒀던 것을 열어도 된다고 느꼈다. 오래전에 겪었던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그제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으스스했던시절에 꽁꽁 얼었던 감정이 그제야 녹은 것 같았는데, 비로소 내가그 사건들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잔인하고 잘못된 일로 규정할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역시 그해에,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서 떠났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도감당하기가 유난히 어려웠다. 나는 미술 잡지를 나와서 들어갔던직장에서 잘리고서 받기 시작한 실업급여, 약간의 저축, 가끔 지역 잡지에 리뷰나 에세이를 쓰고 받거나 샌프란시스코 여기저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받는 쥐꼬리만한 돈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더 잃을 것이 없는 때야말로 자유로운 때라고 생각했다.
- P177

시티라이트 출판사에 출간 제안서를 보냈다. 제안은 1988년 초에승인되었고, 나는 첫 책의 선금으로 1,500달러를 받았다. 앞에서말한 비혼 다짐 작문을 썼던 1학년 때 이후로, 나는 줄곧 책 쓰는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세상에서 거의 제일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책을 현실에서 걸리는 마법으로 여겼기 때문이었고, 책을 쓰는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그 매혹적인 마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로 일하고 싶었고, 글이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파편들을 모아서 새로운 패턴으로 배열하고 싶었다. 책이라는 별세계의 온전한 시민권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으로써, 책 속에서, 책을 위해서 살고 싶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 내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품었을 때는 그 목표 혹은 지향이 그저 사랑스러웠지만, 막상 그것을 하려니… 음, 산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오르려면 힘든 법이다. 작가가 되는 일에는 어엿한 인간이 되는 일의핵심이 담겨 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할지, 이야기와 나의 관계는 어떠한지, 내가 선택한 이야기는 무엇이고 선택당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그 바람에 얼마나 귀 기울여야 하고 또다른 것들에는 얼마나 귀 기울여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더 깊게 더 멀리 생각해보는 일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실제로 써야 한다. - P178

책을 쓰면서, 나는 캘리포니아가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바다 건너로 아시아에 면하고 있고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더 멀다는 점이 왜 고마워할 점인지를 스스로 깨우쳤다. 사람들은 유럽의 영향이 적통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볼때는 그것이 관습화하는 힘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마크 트웨인Mark Twain, 수전 손택, 셰이머스 히니 seamus Heaney, 알렉산더치 Alexander Chee 등등 많은 작가가 이곳에 와서 어떤 자유를 얻고 달라져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몇년 뒤, 뉴욕에서 살다가(그 전에는 뭄바이에서 살았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만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이 내게 더는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말에는 중심만이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주변부의 가치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희망과 사회 변화에 관한 책에서 주변부의 가치를 역설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관찰한 바에 기초한 의견이었다. 나는 어떤 사상이 그늘진 가장자리에서 태어나서 중심부로 옮겨가는 것을 많이 보았고, 중심부가 사상의 기원을 쉽게 잊거나 무시하는 것을 보았다.  - P182

호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삶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졸업 후 4년 만에 첫 책을 쓰기 시작한그때, 나는 내가 두번 다시 취직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쉼 없이 일하고, 책을 많이 쓰고, 에세이와 기사도 많이 쓰고, 더러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학생들도 가르칠 터였지만, 상사를두고 봉급을 받는 직장 생활은 두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었다.
- P184

북극성은 지구에서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그 빛이 우리에게도달하는 데는 300년이 넘게 걸린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도 4년이 걸린다. 책은 별과 좀 비슷하다. 독자가 지금 읽는 것은 저자가 오래전에 열중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끔은 그저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배포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책을 만드는 데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곧 그 내용이 글쓰기에 앞서 있었던 관심의 잔류물이라는 뜻이다. 1980년 말에 나는 벌써 옛 관심사 대신새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연, 경관, 젠더, 미국 서부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P184

이들의 이상주의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토대가 있었다. 그 시절의 풍요함, 그들의 검소함, 백인들이 도심에서 교외로 이주함에따라 도심에 싼 집이 많이 나왔던 것, 파트타임 일자리 하나만으로도 커플이나 심지어 가족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만큼 임금이 높았던 것. 1980년대 초만 해도 더이상 그렇지 않았으니, 터전을 내키는 대로 옮기고, 집세를 몇달씩 체불하다가 더 쾌적한 집을 구하고 필요에 따라 경제 체제에 들락거리는 자유는 과거의 자유인들이나 행했던 괴상한 습속으로 보였다. 내 책의 주인공들은 비트족의 변두리에서 활동하거나 한때 그 동아리를 거쳤다. 보통 동부 출신 남성 작가들의 동아리로 묘사되는 비트족이 실은 이런 시각예술가들, 실험 영화 제작자들, 다른 운동에 몸담았던 시인들,  - P185

최선의 형태일 때, 논픽션은 세상을 도로 짜맞추는 행위다.
혹은 세상의 한조각을 뜯어냄으로써 세상의 통설과 관행 밑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는 파괴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열렬히 흥분되는 것일 수있다. 뜻밖의 정보를 발견해서 그럴 수도 있고, 조각들을 조립해보니 차차 어떤 패턴이 드러나서 그럴 수도 있다. 잘 몰랐던 무언가가 차츰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혹은 기존의 통설에서 틀린 것이 발견되고, 그래서내가 새로 쓰게 된다. - P188

첫 책의 주제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었다. 예술사, 영화사,
문학사의 선형적 서사에서 대체로 누락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 대신 영화와 시와 시각예술의 관계,
마약과 신비주의적이거나 비서구적인 철학과 정치적 반대 의견과퀴어 문화의 관계, 반문화 내에서 촉매 역할을 했지만 기본적으로아방가르드라고 불릴 만한 파격적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였다. 내 예술가들은 구술사적 인터뷰 외에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않았고, 훗날 대부분이 특히 드페오와 코너가 주목을 훨씬 더많이 받기는 했어도 원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 P189

콜라주는 말 그대로 변두리의 예술이다. 서로 다른 두가지가대면하거나 스며들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차이의 연접에서 어떤대화가 생겨나는지, 차이가 어떻게 새롭고 온전한 전체를 낳을 수있는지를 탐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예술가들에게 콜라주는 또한 가난의 예술이었다. 주변의 흑인 동네에서 철거된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슬쩍해온 재료, 중고품 가게가 내버린 물건, 잡지에서 오린 종이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너는 첫영상 작품을 파운드 푸티지‘로 만들었다. 카메라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그처럼 기존 영상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자신의 주력 장르로 선택했다. 파운드 푸티지와 새로 찍은 영상을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 그의 그런 영상 작품들은 창의적인 편집과 페이싱 으로 널리 영향을 미쳤다.
내가 사는 곳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 더군다나 나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존재했던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은 아이디어와 패턴 인식의 낙원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그런 작업을 그렇게 - P190

큰 규모로는 처음 해봤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와 지역의 과거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몸소 경험한 장소들에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시점까지의 세계에 대해서 쓰고 있었고, 그 글쓰기는 그 세계에서 내가앞으로 나아가는 데 발판이 되어줄 작업이었다. 나는 내가 속한 세상에게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안겨주는 문화사를 쓰고 있었다. 또한 한 주제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점으로부터도 보상을 얻었다. - P191

비트족에 대해서 글을 쓰기 몇년 전, 긴즈버그의 사진 전시회개막식에 갔다가 이보다 더 강렬하게 내 존재가 지워지는 경험을한 적이 있었다. 전시장에는 긴즈버그가 자기 남자친구들을 다양한 장소에서 찍은 흑백 사진에 손수 설명문을 써서 덧붙인 작품이수십점 걸려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모험을 즐기고, 서로를 즐기고, 세상을 제 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또 피터 올로브스키의 어머니와 누이를 찍은 사진이 한장인가 두장 있었는데, 정신 질환을 앓던 그들이 슬프고 고립되고 희망 없는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사진이었다. 내 기억에 전시장에 걸린 여자는 그들뿐이었다. 길위에서」와 「풀 마이 데이지에서처럼, 그들은 이동성이 곧 자유라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이동성을 갖지 못한 물체였다. - P199

글쓰기는 예술이지만, 출판은 사업이다. 나는 첫 책을 쓰면서크고 작은 출판사들과 갖가지 사건을 겪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혼자 방 안에서 생각, 자료, 언어를 가지고 하는 일이었고 대체로잘 굴러갔다. 한편 출판은 다른 조직과 협상하는 일이었는데, 그조직들은 늘 나보다 머릿수도 힘도 더 많았으며 가끔은 나를 지지하고 기꺼이 협업했지만 가끔은 오히려 적처럼 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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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주제가 단순 명료한 문장을 요구할 때는 단순 명료하게쓸 줄 아는 언어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명료하기 위해서복잡성이 필요하다. 나는 때로 더는 줄일 수 없는 표현이 있다고믿고, 어떤 심상을 일으키거나 환기하는 언어가 있다고 믿는다. 쭉뻗은 고속도로 같은 문장보다 고불고불 오솔길 같은 문장이 좋다.이따금 경치를 감상하려고 둘러 가거나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는 길 같은 문장이 좋다. 오솔길은 포장도로가 가로지를 수 없는가파르고 굴곡진 지형도 누빌 수 있다. 가끔은 탈선으로 불리는 경로를 택해야만 배에서 떨어진 사람을 건져낼 수 있는 법이다. 나는영어라는 언어가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되기를 바랐다. 글이 풍요하고 미묘하고 환기적이기를 바랐고, 사실과 견고한 사물만이 아니라 안개와 분위기와 희망까지 묘사하기를 바랐다. 온 세상이 패턴과 통찰과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세상이 부서지기 전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패턴들을 발굴해내고 싶었고, 그 부서진 조각들로부터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패턴들을 알아내고 싶었다. p158, 159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힘이 없고 힘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 마음이 열려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치기 쉽다는 의미에서 취약한 vulnerable 상태를 뜻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그때의 나뿐 아니라많은 여자아이나 젊은 여성이 이런 열망을 품는 듯하다. 이것은 남자를 갖고 싶은 갈망인 동시에 스스로 남자가 되고 싶은 열망, 힘과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 힘이 있는 곳에 있고 싶은 열망, 힘 있는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 힘에 정신적으로 매달리거나 아예 내 몸을제물로 바침으로써 힘이 내게도 옮아 오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갑옷이 되고 싶지, 그 속에 든 취약한 것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열망이다. - P96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에 속하는가? 이것은 보통 정치적 입장이나 가치를 묻는 질문이지만, 때로는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당신은 스스로 딛고 설 곳이 있다고 느끼는가?
당신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보기에 정당한가? 뒤로 물러날 필요도남을 공격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신에게는 그곳에 있을 권리, 참여할 권리, 이 세상이나 그 방이나 그 대화나 역사적 기록이나 의사 결정 기구에서 공간을 차지할 권리, 요구와 욕구와 권한을 가질권리가 있는가? 당신은 남들에게 자신을 해명하거나 사과하거나 - P97

변명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발밑에서 땅이 꺼질까봐, 코앞에서 문이 닫힐까봐 두려운가? 남들로부터 배척당했거나, 지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배척당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권리를 주장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가? 원하거나 필요한 것을 말했을 때, 당신 스스로도 듣는 사람들도 그것을 공격이나 부담으로 간주하지 않고받아들이는가? - P98

이 문제를 결정짓는 한 요인은 사회에서 당신의 위치, 그리고으레 이런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 인종, 계급, 젠더, 성적 지향 등이다. 또다른 요인은 자신감confidence 이다. 하지만 사실 자신감이라는 단어는 이 성질을 가리키는 말치고 너무 번지르르하게 들린다. 그보다는 확신conviction이나 신념faith 이 더 나은 표현일 것 같다.
자신의 존재와 권리에 대한 신념. 자신의 견해와 진실에 대한, 자신의 반응과 욕구에 대한 신념. 자신이 선 곳이 자신의 자리라고믿는 신념.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신념. 이 신념들을 빠짐없이다 가진 사람은 드문 듯하다.  - P98

어쩌면 나는 대답보다 질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공간은 어디인가? 당신은 어디에서 환대받는가?
당신에게 주어진 공간은 얼마나 되는가? 당신은 어디에서 저지당하는가? 길거리에서, 아니면 직업에서, 아니면 대화에서? 우리가세상에서 겪는 갖가지 분투를 제각기 자기 영토를 방어하거나 남의 영토를 합병하려는 영역 다툼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각자에게 허락된 공간과 거부된 공간의 차이가 말하고, 참여하고,
돌아다니고, 창조하고, 정의하고, 이길 공간이 얼마나 주어졌는가하는 차이가 사람들 간의 여러 차이점 중 하나일 것이다. - P99

라가 되는그 와중에도 나는 작가가 됨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주장하고, 문화라는 대화에 참여할 자격을 얻고, 내 목소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다른 경쟁도 벌여야 한다는 뜻이었고, 길거리에서의 위협 때문에 늘 두려움과 긴장에 시달리던 시절을 살아낸 직후에 나는 그런 싸움들도 벌이게 될 터였다. 나는 또 삶을 삶답게 살려고 애썼고, 삶답게 산다는 데에는 사랑도 포함되었으니,
그것은 곧 내가 상대에게 모습을 보이고, 상대의 마음을 끌고, 나도상대에게 끌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가끔은 그 일이 즐거웠다. 가끔은 남자들도, 내 몸도, 나를 드러내는 일도, 사람들 앞에서 시간을보내는 일도 즐거웠다. 하지만 전쟁은 그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 P100

내가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몸이 있기 때문에 나는 위험과 잠재적 피해에 노출되었고, 수치심과 결점에 노출되었고,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울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든, 노출되었다. 자신의 몸과 움직임과 소속감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나와 같은 젠더의 몸을갖는다는 것은 약점이자 수치인 듯했다. 그때 이 문제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요즘도 나는 몸을 방어할 방법을 궁리하고 20대 때 꿈꿨던 갑옷 같은 것을 상상한다. - P101

사실 진짜 문제는 몸 자체가 아니다. 남들이 우리 몸을 가차없이 검토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여자라는 점이다. 혹은 남자에게종속된 여자라는 점이다. 나는 한때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가 여성의 몸의 기능과 형태에 대해서 품었던 깊은 수치심을 담뿍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종종 어머니의 몸을, 나중에는 내 몸을, 가끔은지나가는 여자들의 몸까지 시시콜콜 비판했던 것은 그 수치심을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우리 문화에서 드물기는커녕 일상적인 요소였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문화는 몸에 집착했다. 그 시절에는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정밀한 측정과 사이즈로 계량했다. 우리에게 그 기준을 만족시키면 한없는 보상이 따를 테지만 만족시키지 못하면 끝없는 처벌이 따를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결국에는 모두를 처벌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 P103

우리는 남자를 만족시키도록 교육받았고, 그 탓에 스스로를만족시키기가 어려웠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러려면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욕망은 거부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내 몸은 외로운 집이었다. 하지만 내가 늘 집 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자주 다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SF소설에서처럼 인간이 통에 든 뇌로만존재한다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몸은 즐거움과 연결과 활력의 도구이자 존재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 어쩌다 우리가 그 속에 처박히고만 가련한 무언가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가 말랐던 것은 놀라운일이 아니었다. 여자들이 말랐다는 이유로, 공간을 최소한만 차지한다는 이유로, 거의 사라질 지경이라는 이유로 칭찬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여자들이 적게 먹음으로써 마치 영토를양도하는 나라처럼, 퇴각하는 군대처럼 사라지다가 결국 존재하기를 그치고 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P104

여윈 것, 딱딱한 몸을 갖는 것, 부드러운 살보다 단단한 뼈에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에는 금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상태는 생물체가 살기 위해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지저분하고 질척하고 질금거리는 일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자기 몸을 몸 밖에서, 덜 유약하고 덜 유연한 다른 장소에서 지켜보는 듯한 상태다.
육신의 필멸성과 육체적 쾌락을 경멸하는 듯한 상태다. 남들에게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꼬투리 잡힐 일은 없는 상태다. 즉 마른몸은 부드럽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트집 잡히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갑옷이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 Soft 이라는 단어에는 살이 물렁하고 푹신하다는 뜻과 도덕적으로 물러서 심약하다는 뜻이 둘 다 있으니, 이 경우에는 음식을 먹고 공간을 차지하는 행위가 심약함으로 이어진다고 간주되는 셈이다. - P107

여자의 몸은 건강할 때는 보통 부드럽다. 최소한 몇몇 부위라도 그렇다. 그런데 만약 부드러움이 도덕적 실패를 뜻하고 체질량이 낮아 딱딱한 몸이 미덕을 뜻한다면, 부드러움은 여자가 틀리는 또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따라서 여자들은 잘못된 상태를 벗어나고자 굶는다. 록산 게이Roxane Gay는 「헝거 사이행성 2018에서 이렇게말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공간을 차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설령 남들의 눈에 보이더라도 귀에는 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보일 때도 남자들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 사실을 안다. 세상은 여자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사실을 목청껏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에 저항해야 한다." - P108

가장 혹독하게 관습적인 형태의 여성성, 그것은 끊임없이 사라지는 행위다. 남자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주기 위해서 여자가삭제되고 침묵하는 행위다. 그 공간에서 여자의 존재는 공격으로간주되고, 여자의 비존재는 우아한 순응으로 간주된다. 그런 전제가 우리 문화에 수많은 방식으로 깃들어 있다.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는 개인정보 보호용 질문의 답으로 사용자의 어머니의 결혼 전성을 묻곤 한다. 어머니의 원래 성은 비밀스러운 것, 삭제된 것, 남편성을 따른 순간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여자가 결혼하면서 자기 성을 버리는 일이 예전만큼 보편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결혼한 여자가 자식에게 자기 성을 물려주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이 또한 여자들이 사라지는 한 방법, 혹은 애초에 나타나지 못하는 한 방법이다. - P110

인식은 현실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자면 한둘이 아니겠지만, 당장 떠오른 것을 몇가지 말해보겠다. 의학계는 심근경색을남자들에게 주로 드러나는 증상 위주로 서술해왔다. 그러니 여자들이 주로 겪는 증상은 간과되기 쉬웠고, 그래서 많은 여자가 죽었다. 자동차 충돌 테스트용 인체 모형은 남성의 몸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것은 곧 차량의 안전 설계가 남자의 생존에 유리하게끔 이뤄졌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여자들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실시된 감옥 실험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 내용을보면, 엘리트 대학 남학생들의 행동을 인간 전반의 행동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고 가정한 실험이었다. 그보다 더 어린 영국인 남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인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1954년 소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도 인간 행동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어온 이야기다. 남자가 그렇게 모두를 대표한다면, 여자는 아무도 아니었다. - P112

장소에 이름을 붙일 때 여자가 아니라 (주로 백인) 남자의이름을 따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장소명을 모두 여자 이름으로 바꿔서 지도를 그려보는 프로젝트를 했던2015년에 와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자란 세상에서 인명을딴 지명은산, 강, 마을, 다리, 건물, 주, 공원 등등―거의 모두 남자 이름이고 거의 모든 동상은 남자 동상이었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깨달았다. 여자 동상은 비유적인 존재를 구현한 것일 뿐 자유의 여신, 정의의 여신-실제 사람은 아니었다. 주변 경관에 여자이름을 딴 장소와 여자 동상이 흔했다면, 내게도 다른 여자아이들에게도 상당한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이름은 없었고, 그것이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없었다.  - P113

그것은 내 미래가 미래가 없는 미래이자 더 나아갈 곳이 없는미래일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현재에 일으키는 감정이었다. 지금끔찍한 일이 앞으로도 계속 끔찍할 것이라는 확신, 지금이라는 순간이 늘 아무 지형지물 없이 밋밋하기만 한 평원일 것이라는 확신,
그 평원은 영원히 이어질 테고, 한숨 돌리게 하는 숲은 없을 테고,
불쑥 솟아난 산도 없을 테며,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나를 받아들여주는 문 따위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으로부터 비롯한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그런가 하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고 기쁜 일은 나를 배신할 테며 무서운 무언가가숨어서 나를 기다린다는 두려움이 희한하게 공존하는 상태였다. - P114

나는 열성적으로 읽었고, 몽상했고, 도시를 쏘다녔다. 그것은생각 속을 쏘다니는 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내 생각 자체가 늘 쏘다녔다. 대화, 식사, 수업, 일, 놀이, 춤, 파티 도중에도 생각은 자꾸만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한곳에 머물면서 사고하고, 숙고하고, 분석하고, 상상하고, 희망하고, 관련성을 쫓고, 새로운 의견을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생각은 자꾸만 내 덜미를 붙잡아서 처한 상황으로부터 멀리 함께 달아났다. 나는 대화 도중에 사라졌다. 지루해서 그럴 때도 있었지만, 상대의 말이 너무 흥미로워서 머리가 그생각을 쫓아가는 바람에 상대의 다른 말을 못 듣는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나는 긴긴 몽상 속에서 살았다. 몽상이 끊이지 않고 며칠씩 이어질 때도 있었다. 그것은 고독이 주는 한가지 선물이었다.
- P117

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도 궁금했다. 어떤 때는 꿈이 조바심을 부려서 그런 것 같았다. 여기서 저기로 넘어갈 때 그 사이의공간을 지우고 순식간에 장면을 전환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탈출인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그것이 재능이었다. 그리고 재능이란것이 간혹 그렇듯이, 그 재능 때문에 나는 남들과 동떨어진 존재가되었다. 보통은 문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날 줄아는 사람인데다가 보통 혼자 날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남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거나 남을 데리고 날기도 했다. - P119

그것이 글쓰기와 관계있지 않을까, 작가가 된다는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이제돌아보니, 왜 그것을 읽기의 은유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다. 내가읽는 법을 배운 뒤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바쳐서 쉼 없이만성적으로 수행한 활동이 바로 읽기였는데 말이다. 읽기란 곧 내가 책 속에 있는 것, 이야기 속에 있는 것, 내 삶과 내 세계가 아니라 아니라 타인의 삶과 상상의 세계에 있는 것, 내 몸과 인생과 시공간에 구속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어쩌면 문제는땅으로 내려오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P120

책은 새이자 벽돌이다. 나는 문 닫은 주류 판매점 앞에서 하나씩 훔쳐 온 플라스틱 상자를 착착 쌓아서 그 속에 낡은 페이퍼백책들을 꽂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찌어찌 나무 책장을 장만하면,
상자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다놓았다. 나의 새들은 떼를 이뤘다.
나중에는 줄줄이 늘어선 책장 때문에 복도가 좁아졌다. 방도 반쯤책장으로 찼다. 그러고도 남은 책들이 책상 위에도 다른 바닥 위에도 불안정한 기둥으로 쌓였다.
우리는 집을 책으로 채우는 것처럼 독서로 마음을 채운다. 책이라는 물체가 우리의 기억 속으로 들어와서 상상력의 장비가 되어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독서로써 나만의 문헌을 구축했고, 세상이라는 지도에서 기준점이 되어줄 사실들을 모았고,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도구들을 얻었 - P131

나는 물체로서의 책도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상자이자새이자 세상으로 난 문인 책은 여전히 마법처럼 느껴진다. 요즘도서점이나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몹시 원하거나 필요한 무언가로 열리는 문을 막 넘어서는 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가끔은 정말로 그런 문이 나타난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을 새롭게 볼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패턴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현실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뜻밖의 도구를 얻는다는 점에서, 말의 아름다움과 힘을 느낀다는 점에서 계시와 희열을 느낀다.
새로운 목소리와 생각과 가능성을 만나는 일, 작게든 크게든세상을 좀더 조리 있게 이해하는 일, 세상의 지도를 좀더 넓히거나빈 곳을 메우는 일. 이런 일이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기쁨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칭송해야 한다. 패턴과 의미를 찾는 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깨달음은 다행히 되풀이되고, 그때마다 즐거움도 되풀이된다. - P132

"나는 글 읽는 법을 배운 해부터 죽 작가가 되고 싶었다. 바람이 명확했지만 남에게 말하진 않았는데, 말했다가는 비웃음을 사거나 사기를 꺾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워서였다. 20대까지는 학교숙제 이외의 글을 거의 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숙제로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 적은 가끔 있었다. 나는 다만 읽었다. 걸신들린 듯이 읽었다. 고전이든, 위로가 되는 책이든, 불편한 책이든, 현대 소설이든, 대중소설이든, 역사책이든, 신화든, 잡지든, 리뷰든 뭐든읽었다.
위로를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내 처지 혹은 나와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의 처지를 제대로 깨닫게 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위안을 주는 책도 있었다. 외롭고 불안한 것이 나 혼자가 아님을 아는 데서 오는 위안이었다.  - P134

그글들덕분에 나는 여러가지가 섞여도 된다는 것,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번갈아 나와도 된다는 것, 서사가 간접적일 수 있다는 것, 산문도 시처럼 주제에서 주제로 건너뛰거나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배웠다. 장르란 선택일 뿐이라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물론 내가장르들 사이의 벽을 뚫을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는 데는 그로부터10년이 더 걸렸다. - P136

하지만 내가 갈구한 소멸도 있었다. 책을 읽을 때 나는 내가아니었고, 그 비존재의 상태를 약물처럼 갈구하며 삼켰다. 그 상태일 때 나는 부재하는 목격자였다. 그 세계 속에 있지만 등장인물은아닌 존재, 혹은 모든 단어이자 길이자 집이자 나쁜 징조이자 버려진 희망이었다. 책에 빠져 산 수천시간, 수년 동안 나는 모든 사람이었고, 아무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모든 곳에 있었다. 나는 안개였고, 연무였고, 박무였다.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 - P142

어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 방식으로 나를 잃음으로써 처음엔 아이로 다음엔 성인 여자로 존재하는 일의 버거움을, 나라는 아이와나라는 성인 여자로 존재하는 일의 버거움을 잠시나마 잊는 사람이었다. 흩어지고 뭉치고 흘러가는 구름처럼 다양한 시대와 공간을, 세계와 세계관을 떠다녔다. 내가 작품을 숙지한 시인으로는 첫시인이었던 T. S. 엘리엇T. S. Eliot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는 "당신이만나는 얼굴들을 만날 얼굴을 준비할 시간은 있으리라고 말했다.
혼자 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얼굴 없는 자였고, 모든 사람이었고,
특정 사람이었고, 한계가 없었고, 다른 곳에 있었고,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사실은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얼굴과 자아와 목소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그 유예의 순간들을 나는 사랑했다.
다만 순간들이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다가 잠깐씩 쉬었던 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이 생활이었고 내내 그렇게 지내다가 간간이 사람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 P143

"나는 책 속에서 살았다. 독서는 흔히 한 책을 골라서 그 속을처음부터 끝까지 여행하는 일로 묘사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은물론이거니와 아예 그 속에 터를 잡고 산 책들도 있었다. 몇번이나 다시 읽었던 책들, 그러고는 이후에도 종종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고, 그 작가의 생각과 목소리를듣고 싶어서 아무 쪽이나 펼쳐 들곤 한 책들이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의 소설들이 그랬다.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 Earthsea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 Frank Herbert의 「」 Drune, 더 나중에는E. M. 포스터E. M. Forster, 윌라 캐더, 마이클 온다치 Michael Ondaatje, 어른이 된 후 다시 읽은 몇몇 동화책, 더 이전에는 문학적 가치가 미미한 숱한 소설들이 그랬다. 사방 지리를 속속들이 아는 그 영토들속을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줄거리를 알고자 딱 한번 읽고 마는 책에서는 낯선 감각이 보상이라면, 그 영토들에서는 친숙함이보상이었다. - P144

나는 언어의 강과 바다를, 그 주술적 힘 속을 헤엄쳐 다녔다.
전래동화 중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제 올바른 이름으로 부르면 그것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흔하다. 주술이란 우리가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말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언어가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그 속으로 데려간다는 것, 은유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직유가 다리를 놓는다는 것을압축적으로 표현한 한 예다. 책을 통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것보다 더 깊고 더 잘 표현된 대화와 생각을엿들을 수 있었다.
글에는 하지만 체온이 없었다. 글에는 내 몸을 만져줄 몸이없었다. 그리고 글은 영원히 나를 알지 못할 터였다. 책으로 사는삶에는 내가 깃들어볼 수 있는 여러 존재와 정신과 꿈이 있었고,
상상력 풍부한 가상의 내 존재를 확장시킬 방법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비존재의 삶이었다. - P145

대학원에서 나는 엄청나게 귀중한 것을 배웠다. 기지를 총동원하여 정보를 찾는 법, 마감을 엄격하게 지키는 법, 이야기를 구성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 언어를 엄밀하게 써야 하고,
데이터를 정확하게 써야 하고, 독자와 주제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각오를 새겼다. - P148

나는 순진하게도 그 비범한 작가를 다룬 책이 당연히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찾아보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버먼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얇은 전시 도록이 한권 있을 뿐 책은 한권도 없었다. 바로 내가 몇년 뒤에 그 책을 내 나름대로 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논문 주제로 버먼을 선택했다. 저널리즘 전공자가뉴스와 그렇게나 먼 주제로 논문을 쓰는 것이 통상적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버먼은 유일하게 응한 인터뷰였다고 알려진 인터뷰의녹음 자료를 없애버린 뒤 1976년에 이미 죽었기에, 나는 남은 기록과 그가 어울렸던 예술가 친구들과의 인터뷰로 많은 부분을 재구성해야 했다. 내가 우연히 미술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그이미지를 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그 논문을 쓰게 되었다는 우연의연쇄를 떠올리면, 그 시절에 와인병을 잘 딸 줄 몰랐던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 P153

 사람들은 글쓰기를 한번에 한편씩 무언가를 지어내는작업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글은 그것을 쓰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부터, 그의 진정한 목소리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거짓된 목소리와 틀린 말을 버려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어떤 글을 쓰는 작업에는 그보다 더 큰 작업, 즉 먼저 자신이 쓰려는 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작업이 선행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겪기 마련인 과정을 형식화한다. 목소리를 낼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 어떤 가치와관심사와 우선순위가 자기 앞날과 자아를 형성하도록 만들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글을 쓰려면 내가 어떤 말투를 취할지, 어떤 표현을 쓸지, 재밌게 쓸지 심각하게 쓸지 둘 다 할지 등등을 정해야 한다. 결과가 의도와 달리 나올 때도 많다. 막상 쓰고 보니 자신이 애초 의도와는 다른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사람임이 드러나는 것이다(한 작가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것은 처음에 작가 자신도 잘모르는 다른 사람, 그의 예상과는 다른 관심사와 말투를 가지고서그를 찾아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묘사하는 방식에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어떤 윤리가 담겼는지,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주제가 무엇인지, 달리 말해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발견하게 된다. 흔히 문체니 목소리니 어조니 하고 불리는 것을 발견하게 - P154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면에 자아의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한 디프리마의 선언이 담긴 유명한 시 장광설」Rant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저 시구로부터 좀더 내려가서 이런 대목이나온다.

정신적 싸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편들지 않을 방법은 없다
시poetics를 갖지 않을 방법은 없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배관공이든, 제빵사이든, 선생이든

당신은 그 일을 의식적으로 당신의 세계를 만들고자
혹은 만들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절에 내가 여러 사람에게 말할 때, 종종 친구 하나에게말할 때도 썼던 목소리는 수백 킬로그램의 갑옷을 걸친 목소리, 감정이라면 그 어떤 감정도 직접적으로 말할 줄 모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거나 수많은 필터를 거쳐서 느꼈기 때문에, 내가 어떤 감정에 휘둘리는지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그 목소리,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 익히 접하고 모방하려고 애쓰고그러다 쓰게 된 목소리였다. 그것은 영리하고 쿨하고 날카롭고 유쾌하려고 애쓰는 목소리,  - P155

내 목소리에는 다른 종류의 유머도 있었다. 유머라기보다 묵직한 위트였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비비 꼬인 목소리,
인용과 말장난과 관용구의 변주로 가득한 목소리, 실제 사건과 내느낌을 에둘러서, 아주 멀리 에둘러서 말하는 목소리였다. 발언은간접적이고 참조적일수록 좋다는 듯이, 내가 직접 진실히 느낀 반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였다. 영리함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몰인정한 태도는 상대뿐 아니라 말하는나 자신의 가능성도 해친다는 사실,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긴 시간이흐른 뒤였다. 그 시절의 내 목소리는 아이러니를 많이 이용했고,
본심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방식을 썼다. 그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한 말은 사실 남들에게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한 말일 때가 많았다. 내 진짜 생각과 느낌을 잘 모르면서 말할 때가 많았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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