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은 생후 몇년 동안 처음의 네배로 커진다. 그런데 만약뼈들이 너무 일찍 맞물리면, 뇌가 자랄 공간이 없어진다. 반대로영영 맞물리지 않으면, 뇌가 보호받을 수 없다. 자랄 수 있을 만큼은 열려 있되 온전함을 유지할 만큼은 닫혀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콜라주처럼 자신을 만든다. 세계관, 사랑할 사람, 살 이유를 조각조각 모은 뒤에 그것을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부합하는 삶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해낸다. 적어도 운이 좋은 사람은 그런다. - P239
20대 중반 언젠가, 어린 시절에 자연에 대해 품었던 열정이새삼 살아났다. 내가 사는 곳의 숲이나 초원이나 해안 같은 야생의장소에서 깨우침과 자유를 느끼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과 장소와 경관에 관한 개념과 재현과 욕망을 문화사적으로 공부하기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술과 미술사를 대상으로 했지만 나중에는환경에 관한 모든 글과 문화사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그다음에는 그 주제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 P239
나는 글쓰기를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배웠다는 말을 자주한다. 대규모 반핵 야영 시위에 참가하려고 처음 그곳을 찾았던1988년 봄 이후로 2000년대까지 매년 방문하면서 접한 그 장소는얼마나 순전하고 광대하던지, 내 눈에 얼마나 낯설던지, 얼마나 많은 문화와 이야기가 모여 있던지, 내가 본 것을 그런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글쓰기 방식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로 합쳐야 했다. 이전에 나는 글쓰기에 이른바 범주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로 글을 썼다. 비평과 리뷰를 쓸 때는 확신과 객관성을 갖춘 듯한 말투로 썼고, 기사를 쓸 때는 그럭저럭 저널리즘으로 불릴 만한 문체로썼다. 짧고 밀도 높은 에세이도 이전부터 써왔다. 시적이고,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은유적이고, 형식과 문체를 실험해보는 그런글에서는 시와 예언자적 목소리로부터 배운 바를 끌어들였고, 평론과 기사에서 허용되지 않던 요소들을 실컷 시도했고, 놀라움과감상과 불확실성을 담아냈고,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도록재량을 한껏 허용했다. - P241
그곳은 강렬한 장소였다. 거기 있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광활한 모랫빛의 돌투성이 땅, 그 속에서 뜨문뜨문 반짝이는 분홍색 석영 조각, 돌과 돌 사이의 옅은 흙에 띄엄띄엄 자란 뾰족뾰족한 모양의 강인한 식물들, (모래바람이 일 때나 열기가 뜨거워서 아지랑이가 어른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맑아서수십 킬로미터 밖 산등성이가 선명하게 내다보이는 건조한 대기. 그 망막한 공간이 불러준 덕분에, 나는 가끔 150킬로미터 밖까지내다볼 수 있는 풍경, 그 거리의 절반을 달리면서도 집 한채 못 볼때가 있는 풍경, 내가 자주 그랬듯이 지평선을 향하여 하염없이 걸으면서 해방감과 함께 이토록 메마른 곳에서 전체의 3분의 2가 물로 이뤄진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을 느꼈던 풍경 속을자유롭게 누볐고, 그 속에서는 인간의 몸과 관심사란 하찮기 짝이없음을 느꼈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결과 살갗에서 물기가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국을 통틀어 가장 건조한 주 내에서도 가장 건조한 그 일대의 대기에도 드물지만 가끔은 구름이 엉겼고 그러면 비가 내렸는데, 비는 땅으로떨어지는 와중에 증발하거나 후드득 쏟아졌다가 몇분 만에 말라버리곤 했다. - P242
담장과 경비가 있는 장소에 들어가려면 요령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지만, 실은 이런 방대한 공간에 들어가는 데에도 나름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때로부터 몇년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데스밸리와 남서부를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가 예정보다 이르게 돌아선 적이 있었다. 물이 고이는 산골짜기나 협곡에숨은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법을 몰랐고, 초목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몰랐고, 시간이란 아득하고 순환적인 것이라는 감각과 그 고요함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법을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런 곳에 들어가는 법을 배운 계기가 네바다 핵실험장이었다. 그곳에서 봄마다 벌어진 야영 시위에서 그런 외진 땅들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을 사귄 데다가, 그곳에서의 시간이 안전하다고 느꼈고 좀 얄궂지만 그 장소 또한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핵무기와 대치하고 있었고, 방사성 낙진을 마실까봐 걱정했고, 핵실험장을 지키는 무장 경비원들에게 가끔 거칠게 체포되곤 했는데도, 나는 안전했다. - P243
그 시절에 나 같은 비원주민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원주민들이 주류 담론에서 얼마나 철저히 지워졌는지, 혹은 아예 끼지도 못했는지, 혹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래서 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일은 영영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과거시제로만 이야기되었는지 모를 것이다. 화가, 사진가, 환경보호론자, 시인, 탐험가, 역사가 들이 상상하고 묘사한 북아메리카는 인간이 당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땅, 더 구체적으로말하자면 백인 남성이 최근에야 발견한 장소일 뿐이었고 그 그림에서 원주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 P245
나는 전화로 소식을 듣고는 한시간만에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냉큼 짐을 챙겨 동쪽으로 차를 달렸다. 베이교를 건너고, 이스트베이를 지나고, 새크라멘토강을 건너고, 넓은 새크라멘토 계곡을 가로지르고, 처음에는 참나무 숲을다음에는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산을 올라서 시에라네바다산맥을넘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화물차 휴게소에서 두어시간 눈을 붙였다가, 새벽에 다시 내 집에서 자매의 집까지 800킬로미터를 달리는 운전을 재개했다. 내가 폭력을 향하여 움직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 P251
감정은 최악일 때뿐 아니라 최고일 때도 전염된다. 땅에 가까이 살아가는 서부인들의 용맹함, 배짱, 헌신, 유머는(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서부로 이식된 루시의 활기찬 대담함) 내게 유익하게 작용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장소들 자체와 친해졌고, 장소들로부터 즐거움과 힘을 얻었다. 나는 서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시작할 용기를 키운 터였고, 흙길을 더 잘 달리고 외진 곳까지 갈수있으며 뒤쪽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여러 밤을 나게 해줄 픽업트럭 - P253
을 갖춘 터였고, 유타와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와 네바다에 찾아갈친구들을 만들어둔 터였다. 이제 나는 서부를 더 많이 돌아다녔다. 그것은 집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였고, 내가 사는 지역 전체와 유대를 맺고 유지하는 행위였다. 나는 그 장소에, 그리고 장거리 운전과 걷기는 물론이거니와환경 시위에서 야영하며 당국과 맞서는 일까지 갖가지 물리적 도전들을 개의치 않는 자세에 뿌리내린 자아를 만들어나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그 모습 중 일부는 장식물로 치장한똑딱단추가 달린 셔츠, 픽업트럭에서 트는 먼지투성이 컨트리 음악 카세트테이프, 괜찮은 캠핑용품 세트 등등 퍼포먼스였지만, 일부는 더 깊이가 있었다. - P254
글쓰기는 희망적으로 느낄 만큼 잘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훗날처럼 일을 과하게 맡을 만큼 잘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나는 쏘다녔고, 탐험했고, 내게 들어오는 초대를 최대한 활용했다. 시간이 넉넉했고, 눈앞에서 열리기 시작한 세상과 관계와 생각에흥분감이 들끓었다. 그때 가졌던 능력이 그립다. 대뜸 트럭에 올라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어디론가 떠나던 능력, 멀리 돌아가는길을 택하던 능력, 할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그 장소에 충분히 머물면서 탐험하던 능력. 나는 자유로웠다. - P254
지평선 가까이의 하늘이 살구색이고 그 위의 하늘은 아직 파란색인 저녁에 나는 가끔 두 색 사이의 경계선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하늘에는 서로 다른 두 색 사이에 어떤 엷음이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가려내지 못하고 놓치기가 쉽다. 가끔은 역시 저녁에 주변의 색들이 변하거나 그림자가 땅에 점점 더 길게 끌리는 과정을 지켜보려고 하지만, 거의 매번 한순간 주의를 깜박했다 싶으면 이내반쯤 빛을 받고 있던 나무가 벌써 어둠에 삼켜졌거나 환하고 또렷하던 그림자가 갑자기 뭉개진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해가 벌써 넘어갔거나 코발트색이던 하늘이 이미 미드나이트블루색이 되었기때문이다. 상태는 이랬다가 이내 저렇고, 이행의 과정은 표시하기가 어렵다. - P255
나는 짧은 글과 리뷰를 발표했고, 다음에 더 긴 글과 더 야심찬 에세이를 발표했다. 책을 한권 썼고, 그보다 더 야심 찬 책을 또썼고, 같은 맥락의 책을 한권 더 썼고, 그다음에 걷기의 역사에 관한 책인 걷기의 인문학] 반비 2017을 썼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내가 처음으로 얼추 생활임금에 가까운 금액을 선인세로 받은 책이자 처음으로 널리 판매된 책이었다. 각각의 책은 내가 집필을 시작할 때 마음에 품었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었고, 끝에 가서는 각각 또다른 질문들을 발생시켰다. 걷기의 역사를 쓰면서도 두가지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 두 책에서는 그것들을 파고들었다. - P259
<길 잃기 안내서> -반비 2018-를 쓴 것은 방랑, 미지 속으로 과감히들어가는 일, 만물의 핵심에 있는 본질적 미스터리를 받아들이는일, 그리고 상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이 글을과연 누구에게든 보여줄지, 마무리할 수는 있을지, 책으로 낼 만한지, 내가 출간을 바라기는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에는책으로 냈다. 책은 처음에 조용한 반응만을 얻다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인용되고 또 몇몇 예술가가 작품으로써 반응하면서 흥미로운 생애를 살게 되었다. - P259
그다음 몇년 동안, 나는 정치에 대해서 쓰는 작가가 되었다. 현재 펼쳐지는 사건들과 만성적인 상황들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한 웹사이트에 발표했고, 그러면 전세계 여러 뉴스 사이트들이 그글을 가져가서 게재했다. 글쓰기의 계기는 종종 최악의 사건들,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분개하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반대도,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해쳤거나 해칠 참이라서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쓴 글 한편이 저 혼자 거친 파도를 일으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가 다른 어떤 글보다도 덤덤하게 쓴 글이었다. 다른 글들은 모두내가 선택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한 주제에 관한 글이었지만, 페미니즘은 그것이 나를 선택했다. 아니면 내가 그것을 모른 척할 수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67
내가 그날 아침에 쓴 글을 발표한 뒤로 변호사, 과학자, 의사, 온갖 분야의 학자, 운동선수와 등반가, 기계공, 건축업자, 영화 기술자, 기타 등등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남자들이 자꾸 자신을 가르치려 든경험이 있었다. 그 남자들은 자기가 하는 소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응당 앎은 남자에게 있고 앎의 결핍은 여자에게 있다고 믿었고, 듣기는 여자의 자연스런 태도이자 의무인 반면에 설명은 남자의 권리라고 믿었고, 게다가 어쩌면 여자의 일은 남자의 자아를 부풀려주는 것이고 여자의 자아는 쪼그라들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누가 사실을 쥐고 있는가에 대한 이런 비대칭은 지적인 문제에서부터 방금 전에 벌어진 일상의 사건에까지 매사에 적용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여성의 능력을 갉아먹는다. 거의 모든 일에 대한능력을 가끔은 생존의 능력도 - P272
날 가만 놔두라고 말한다는 것이 어릴 적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일, 내게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말해도 안전한지를 모르겠으며 그렇게 말한들 그들에게 내 말을 들을 의무가있는지, 아니 들을 의향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젊을 때 늘 강간당할 수 있다고, 어쩌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여자다. 나는 평생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거나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아는 남자에게 강간과 살해를 당하는 세상, 그런 강간과 살해가 예술에 선정적으로 잔존하는세상을 살아온 여자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차례 당신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말, 당신이 헷갈린 거라는 말, 당신은 사실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어온 여자다. 그리고 이 모든 면에서 나는 평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강간 검사 키트, 캠퍼스 스토킹인식 제고의 달, 여자와 아이가 제 남편과 아버지를 피해 숨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가 붙박이로 널린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 P274
이른바 <#미투나도 고발한다>로 세상이 뒤집히고 이어서 미국 밖으로도, 아이슬란드에서 한국까지 전세계에서 고발이 이어졌던 사건에 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2018년 대법원 청문회에서 한 여성이 열다섯살에 겪을 뻔했던 성폭행과 그로 인한트라우마를 증언하고는 폭로의 대가로 살해 협박을 받은 사건에답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살펴보는 현상은 잔인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다는사실과 말의 힘을 느끼는 것은 환희로운 일이었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말함으로써 해방됨과 동시에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었다. 한번 그렇게 둑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쏟아졌던지 마치 숨었던 것들이 모조리 백일하에 드러난 것 같았지만, 그 뒤에도 또 둑이 터졌고, 그러면 수천수만의 더 많은 여성들이 또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 P282
분노가 이런 사업의 추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평생 활동가들과 함께한 경험으로 내가 확신하는바 대개 활동을 추진하는 힘은 사랑이다. 사유화된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내놓는 치료법은 개인적 차원의 것일 때가 많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을 위해서, 타인과 함께, 우리를 해친 환경을 바꾸는 일을 함으로써 연대와 힘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트라우마의 핵심인 고립감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 P283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나는 최악의 일을 다루는 방법은 그것을 직면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면, 그것이 당신을 뒤쫓는다. 그것을 무시하면, 무방비 상태일 때 그것이 당신을덮친다. 그것을 직면해야만, 그 과정에서 동맹과 힘과 승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이전부터 누차 젠더폭력을 직면하고 호명하려고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고 마침내 나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직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대화를 꾸려가는 여성들의 세계적 움직임을. - P284
복장이나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여자들의 욕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낡은 변명을, 피해자 비난과 무시를 조금씩 지웠다. 또한 우리는 스토킹, 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여성살해를 여성혐오라는 한 현상의 서로 다른 표현으로이해하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 덕분에 우리는 성적 학대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왜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가 많은지, 피해자가 거짓말하는 경우는 드문데도 불구하고 왜 정작 신고를하면 의심받는지, 왜 가해자가 유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드문지에대해서 더 넓고 깊게 알게 되었다.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방식을 더 잘 알게 된 것도 새로운 소득이었다. 둘 사이의 유사점도 더잘 알게 되었다. 인종폭력 또한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불신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행위를 용인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85
가부장제는 종종 자신이 합리성과 이성을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빠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이라면 아무리입증 가능하고 일관되고 일상적인 이야기라도 믿지 않으면서 남자의 말이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소리라도 받아들이고, 성폭력은 드물지만 무고는 흔한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말을 꺼내봐야 그때문에 또 처벌과 비난을 받을 뿐이라면, 왜 말하겠는가? 혹은 무의미한 말인 것처럼 무시될 뿐이라면? 선제적 침묵시키기는 이렇게 작동한다. - P286
영향력consequence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권리가 있다. 그의 말은 그 권리를 위해서 일한다. 그에게 증언하고, 합의하고, 한계를 정하는 힘을 준다. 그가 영향력 있는 존재라면, 그의 말에는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는지를 정하는 권위가 담겨 있다. 그 힘은 평등과 자결의 일부로서 동의의 개념에 꼭필요한 전제 요소다. - P288
그동안 여자들은 세가지 전선 모두에서 손상을 입었다. 유색인 남자들도 그렇고, 비백인 여자들은 이중으로 그렇다. 그들은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고, 혹은 말한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혹은 결정이 내려지는 무대에서법정, 대학, 입법 기관, 보도국에서배제당한다. 어렵사리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말하면 조롱당하거나 불신당하거나 협박당하고, 그런 범주의 사람은 본질적으로기만적이고 악의적이고 망상적이고 정신이 혼란하다고 혹은 그냥자격이 없다고 싸잡힌다. 아니면, 말해도 침묵한 것과 다를 바가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의 권리와 증언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소리일 뿐이다. 젠더폭력은 이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의 결여로 인해 가능해진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거대한 모순이나 다름없으니, 사회는법률과 그 잘난 자존심에 의거하여 그런 폭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무수한 전략으로써 그런 폭력이 계속 횡행하도록허락했고,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훨씬 더 자주 더 잘 보호했고, 직장 성희롱이든 학내 강간이든 가정폭력 사건이든 늘 입을 연 피해자를 처벌하고 모욕하고 겁박했다. - P289
성적 폭력을 가능케 하는 이런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무시는폭력 이후의 무시, 즉 여성이 경찰이나 대학 당국이나 가족이나 교회나 법정을 찾아가거나 강간 검사를 받고자 병원에 찾아갔을 때외면과 모멸과 비난과 망신과 불신을 받는 것과 뗄 수 없는 일이다. 둘 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누려야 마땅한 온전한 인간성과 구성원 자격을 공격하는 일이고, 후자의 영역에서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전자의 일을 가능케 한다. 성폭력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 불평등한 상황에서만 활개 칠 수 있다. 다른 어떤 불균형보다도 바로 이 불균형이 젠더폭력이라는 전염병의 가장 중요한전제 조건이다. 힘과 저 세 속성을 다 갖춘 목소리를 누가 가질 것인가, 이 점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로잡힐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바꾸면, 규칙이 바뀐다. 특히 어떤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질지, 누가 그것을 결정할지를 정하는 규칙이 바뀐다. 이 변화의 척도 중하나는 과거에 무시되고 불신되고 일축된 사건들, 혹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결된 사건들 중 현재에 다른 결과를 낸 사건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증언대에 선 여성이나 아이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일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가 가져올 여러 결과 중 가장 측정하기어려운 결과는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은 수많은 범 - P290
죄일 것이다. 그런 변화의 배후에는 누구의 권리가 중요한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릴 것인가,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면에서의 변화가 있다. 그 목소리를 확대시키고 북돋우며 그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내가 작가로서 확보한 목소리를 써서 수행한 과제 중 하나였다.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과 말이 세상의 변화를 거드는 걸 보는 것은 작가이자 또한 생존자인 내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 P291
내가 뉴올리언스에 간 것은 그 도시에서 가장 추악한 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가난, 인종차별, 그리고 도시가 범람했을 때 바로 그 요인들 때문에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버려진 데다가 이어 공격받고, 대피가 저지되고, 구호를 받지 못하여 죽어간일, 그에 더해서 그들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죽어간 일. 그런데 나는 그뿐 아니라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중 하나는 그곳 주민들이 현재에 머무를 줄 안다는 점,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거리에서 축하하고 주변과 이어질 줄 안다는 점, 그런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를 기억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또한 일상의 자각과 즐거움을그냥 지나치도록 볶아치는 비참한 두 덕목인 생산성과 효율성 이외의 것들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 P295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Despite everything, 이 말을 나는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삶에서 으레 겪는 장애물과 상처를 가리키는 것으로이해했다. 세상이 그동안 좋은 방향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젠더라는 뒤틀린 거울이 그들에게 비춰 보인 손상된 자아상 때문에, 혹은 그들의 권리와능력과 생존 조건마저 훼손된 현실 때문에 운명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세상에 티끌만큼도 손상되지 않은 인간이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존재를 굳이 상상해볼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여성이 겪는 피해 중 일부나마 줄고 금지되는 모습만큼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또 그 과정이 현재 진행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울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희망적인 인간일 수 있는 까닭은,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내가 태어난 이래 여러 장소에서 여러 방식으로 크나크게 변해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296
손상을 입은 삶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삶과는 다른 운명을 낳지만, 우리가 손상을 입는다고 해서 삶을 살지 못하게 되거나 중요한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우리가 어떤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일때문에 운명으로 정해진 존재가 되고,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하게 된다. "운명대로 살다" meant to be, 여자의 이 말을, 나는 손상이 없었다는 뜻이아니라 손상이 있었어도 그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을 수행하는 - P299
사람은 사실 어떤 운명도 타고나지 않는다.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난다. 약간의 선천적 기질을갖고 태어난다. 그다음에는 사건들과 만남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좌절되고, 뜨겁게 데고, 격려를 받는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이말은 한 사람을 저지하려고 들거나 그의 성품과 목적을 바꾸려고드는 힘들이 있음을 뜻하고, 운명대로 산다, 이 말은 그 힘들이 완벽히 성공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낯선 이가 내게 건넨 멋진운이었다. 나는 그 운을 받아들였고, 더불어 내 운명은 어떤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금 - P302
간 곳을 추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가끔은 수선하는 사람이 되는것, 또 가끔은 가장 귀중한 화물을 담아 나르는 짐꾼 혹은 배가 되는 것이라는 느낌도 함께 받아들였으니, 그 화물이란 말해지기를기다리는 이야기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이야기들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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