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보낸 시간
먼저 한 가지 선입견부터 없애기로 하자.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낡은 등식 말이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도 없다. 박학자란 죽치고 앉아책에 몰두해 있는 외로운 열정가로, 그는 책들을 뒤져 가며자신이 추구하는 특정한 진리의 알갱이를 찾아 헤맨다. 만일그가 독서의 열정에 사로잡힌다면, 그의 이득은 줄어들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것이다. 반면 독서가는 처음부터 지식에 대한 욕망을 자제한다. 만일 지식이 남는다면 잘된 일이지만, 지식을 추구하여 체계적인 독서를 하고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하는 것은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에 대한 좀 - P11
커튼 사이로 내다볼 때 낯설게 다가오던 안개 속의 나무들을 우리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이상한 예감을 갖는 법이니까. 하지만 위의 목록에서 보는 바와 같은, 좀 더 나중의독서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처음으로 모든 제약이 풀어져읽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읽을 수 있고, 아무 도서관이나 드나들 수 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처지인 친구들이 있다. 며칠이고 연이어 우리는 책만 읽는다. 극도의흥분과 고양의 시기이다. 도처에서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는 것만 같다.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이 정말로 이 일을 하고있다는 일종의 경이감이 드는 한편,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가장 위대한 인간들과 이렇게 친숙해졌다는 것을 으스대고싶다는 우스꽝스러운 자만심이 일기도 한다. 이 시기는 지식욕이 가장 열렬하고 또 가장 자신만만할 때이며, 위대한 작가들이 인생의 가치에 대해 우리와 견해를 같이하는 것만 같다는 뿌듯함에 한층 더 열렬히 매진하게 된다. - P15
우리의 의식에서 이 모든 것을 걸러 낸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가난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역사에 관한 책들이 있다. 꿀벌이나 말벌에 관한 책, 산업과 금광과 여제(女帝)와 외교책략에 관한 책, 강과 야만인, 노동조합과 의회 제정법에 관한 책을, 우리는 노상 읽고 -아쉽게도! - 노상 잊어버린다. 이렇듯 서점이 문학과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온갖 욕망을 만족시킨다고 말하는 것이서점에는 별 칭찬이 못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는진행 중인 문학이 있음을 기억해 두자. 이 새로운 책들에서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되게 해줄 만한 한두 작품을 골라낼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만 있다면 -우리 시대에 대해 다른 시대들에게 말해 줄 시나 소설, 역사책이 있으니,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시대의 군중이 그의 작품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듯이 우리 또한 다음 세대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진정 그러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 P19
요즘은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말도 자주들려온다.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그처럼 쏟아져 나오는말의 홍수와 거품, 이 무절제하고 속되고 하찮은 수다의 한복판에는, 그중 소질 있는 저자만 만나면 장구히 이어질 형태로 표현될 수 있을 어떤 위대한 정념의 열기가 있으리라는것을 의심할 수 없다. 이 격랑을 지켜보는 것, 우리 시대의사상 및 비전과 드잡이하는 것, 그중 우리에게 소용될 것을포착하는 것, 무가치하게 생각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눌할망정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이들에게 관대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되어야 한다. 어떤 시대의 문학도 우리 시대 문학처럼 그렇게 비권위적이고, 고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우며, 제멋대로경의를 표하고 변덕스러운 실험을 하지 않았다. 예의 주시하는 이들에게도 우리 시대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에는이렇다 할 유파의 흔적이나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비관론은 피할 수 없다. - P20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제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술에 대해 우리는 원래 아는 이상으로는 결코 더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경험이 쌓여 가며 알게 되는 것이라고는 단지우리의 모든 즐거움 중에 위대한 예술가들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단연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이상은 알수없다. 하지만 아무 이론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런 작품들에서는 우리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책들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특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 그 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연금술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것만은 사실이다. 고전들은 아무리 자주 읽어도 그 장점이 전혀 줄어들지않으며 무의미한 말잔치가 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어떤 연상의 구름도 무관한 - P22
생각들을 쑤석이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험의순간에 그렇듯이 우리의 모든 기능이 그 순간에 집중되며, 그들의 손으로부터 우리 위에 일종의 축성과도 같은 것이 내려온다. 우리는 그것을 더욱 선명히 느끼고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삶에 돌린다. - P23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선 나는 이 제목 끝에 붙은 물음표를 강조하고 싶다. 설령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대답은 나에게만 적용될 뿐 당신에게는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독서에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만일 우리 사이에 이 점이 양해된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몇 가지 생각과 제안을 여러분과 나눠 보겠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이나제안이 당신의 독립성을 구속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성이야말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니 말이다. - P25
책에는 분류가 있으니 - 소설, 전기, 시, 하는 식으로 -그 분류에 따라 각각의 책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바를 얻으면 된다고 말하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책에서 그것이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흔히 우리는 막연하고 산만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접하며, 소설이 진짜이기를, 시가 거짓이기를, 전기가 아부하기를, 역사가 자신의 편견을 강화해 주기를 요구한다. 책을 읽을 때 그 모든 선입견을 추방해 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시작이될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의 저자에게 그가 해야 할 말을 불러주지 말고, 그가 되려고 해보라. 그의 공저자, 공범이 되는것이다. 처음부터 물러앉아 뒷짐을 지고 비판부터 한다면, 읽고 있는 책으로부터 가능한 최대의 가치를 얻어 낼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넓게 마음을 연다면, 첫 대목부터 문장들이 미묘하게 꼬이고 휘어지는 데서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세미한 신호와 기미 들이 당신을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른 한 인간의 면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일에 숙달되면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또는 주고자 하는 훨씬 더 확실한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27
우선 소설을 읽는 법부터 살펴보자. 어떤 소설이 서른두챕터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모든 챕터는 무엇인가를 건물처럼 지어 올리고 다스리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말[言]은 벽돌 - P27
처럼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책을 읽는 것은 건물을 보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이 된다. 아마도 소설가가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것이다. 말의 위험과 어려움을 가지고 직접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 어떤사건을 되새겨 보라. 길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나쳤다면, 그때 나무가 흔들렸다든가, 전깃불이 춤추었다든가, 대화의 어조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비극적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전체적인 장면을 그 순간에 담긴인상 전체를 말이다. 하지만 사건을 말로 재구성하려 해보면, 그것이 수천 가지 모순된 인상들로 부서지고 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은 억제해야 하고 어떤 것은 강조해야 하며, 그과정에서 당신은 아마도 그때의 감정 전체를 그려 낼 수는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P28
하지만 디포에게는 대자연과 모험이 전부였던 반면, 제인 오스틴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세계는 응접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야기가 거울처럼 세세히 비추어 주는 그들의 성격으로이루어진다. 그렇듯 응접실과 그 거울상에 익숙해진 다음 하디에게로 돌아서면, 또 판이 바뀐다. 우리 주위에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고, 머리 위에서는 별들이 반짝인다. 마음의 이면이 드러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밝은 면이 아니라고독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어두운 면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자연과 운명을 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세계는 서로 다를지라도 제각기 일관성을 지니고있다. 각 세계를 만든 사람은 자기 관점의 법칙을 면밀히 준수하므로, 아무리 큰 긴장을 조성하더라도 동일한 작품 안에상이한 두 종류의 리얼리티를 도입함으로써 ㅡ 이것은 이류소설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데 독자를 혼란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한 대가(大家)에서 다른 대가로,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에서 하디로, 피콕에서 트롤랩‘으로 ‘ 서 메러디스로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며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지는 일이다. - P29
그러니 그저 친구 집에서 친구 집으로, 정원에서 정원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다 보면 우리는 영국 문학의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넘어가게 되며, 그러다 다시 여기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지금 이순간을 구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런 것이 우리가 전기와 서한집을 읽는 방식 중 하나이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통해 과거의 많은 창문들을 밝힐 수도 있고, 고인이 된 유명인사들의 익히 알려진 버릇을 지켜볼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가까이서 그들의 비밀을 상상으로나마 폭로해 볼 수도 있으며, 그들이 쓴 희곡이나 시 한 편을 꺼내 와 그것이 저자의면전에서는 어떻게 읽히는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한다. 한 권의 책은 저자의 생애에서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하는 것이 그 질문이다. - P33
하지만 우리는 그런 책들을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읽을수도 있다. 문학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거나 유명 인사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창조력을 새롭게 연마하기 위해서 말이다. 서가 오른쪽에 열린 창문이 있지 않은가? 책을 읽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얼마나 상쾌한가!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광경 - 망아지들이 들판을 뛰어돌아다니고, 여자는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채우고, 당나귀는고개를 뒤로 빼고 구슬피 울어 젖히는 - 은 독서와는 무관한 그 무의식적이고 끊임없는 움직임이 얼마나 자극적인가. 어떤 서재에서든 거기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남자들, 여자들, 당나귀들의 삶에서 이처럼 스쳐 가는 순간들의 기록일 뿐이다. 모든 문학은 세월이 가면 폐지 더미가 되어 버리며, 그 사라진 순간들과 잊힌 삶의 기록들은 더듬거리는 힘없는 말투 속에 스러진다. 하지만 이 폐지를 읽는 데 맛들이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정말이지 내버려져 썩어 가는 인간 삶의 유물에 압도될 것이다. - P34
그들은 완전히 숙련되어 뜻대로 재단하는 예술가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삶에 대해서조차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주근사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망쳐 놓았다. 그들은 기껏해야사실들을 제공하는 데 그치거니와, 사실이란 허구의 아주 열등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쪽짜리 진술과 추정을 끝장내고픈 마음이 든다. 인간 성격의 미세한 음영을 찾기를그치고, 더 추상적인 것을, 허구라는 더 순수한 진실을 즐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세부를 제쳐 놓고 분위기를, 일반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창조하며, 규칙적이고 일정한 박자를 찾는다. 그 자연스러운 표현이 시이다. 시를 읽을 때가된 것이다. 우리 자신이 거의 시를 쓸 수 있을 때야말로 시를읽을 때이다.
서풍이여, 그대 언제 불어오려는가? 가는 비 내려도 좋으리, 오 내 사랑 내 품에 있다면내 다시 침상에 있다면!
16세기 작자 미상의 시 - P36
그럴 때 우리는 얼마나 심오한 깊이를 체험하는지! 얼마나 갑작스레 완전히 몰두하는지! 여기서는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비상 속에는머물 데가 전혀 없다. 허구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은 차츰 퍼져 나간다. 그 효과는 준비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넉 줄을 읽을 때 이것을 쓴 이가 누구냐고 묻거나, 존 던의 집이나시드니의 비서를 떠올리거나, 과거 여러 세대에 걸친 복잡한일과 연관시키려 하겠는가? 시인은 항상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우리 존재는 개인적 감정의 격렬한 충격 속에서 으레 그렇듯 잠시 집중되고 수축된다. 그러고 나서 감각은 우리의정신을 통해 좀 더 넓은 원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며, 더 먼감각들에도 기별이 간다. 이 감각들이 소리 내어 토를 달기시작하고 우리는 반향과 반영 들을 깨닫는다. 시의 강렬함은광범한 감정을 포괄한다. 시인의 다양한 기술을 알아차리기위해, 우리는 몇 편의 시를 비교해 보기만 하면 된다. 다음과같은 시행들의 힘과 직접성을
나는 나무처럼 쓰러져 내 무덤을 찾으리 오직 내 슬퍼하는 것을 기억하며
프랜시스 보몬트, 존 플래처 <하녀의 비극> - P37
다음 시행들의 떨리는 요동이나
떨어지는 모래알이 분초를 헤아리는 모래시계에서처럼 세월이 우리를 닳아뜨려 무덤에 이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본다. 쾌락의 시절은 흥청망청 탕진된 후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슬픔으로 끝난다. 하지만 인생은 법석에 지쳐 모래알을 헤아린다. 한숨지으며 마침내 마지막 한 알을 떨구고 하여 안식 속에 비운을 마무리 짓는다.
존 포드 <연인의 우수> - P38
다음 시행들의 명상적인 고요함과
젊었거나 늙었거나 우리 운명, 우리 존재의 심장이자 집은 무한과 함께 있다. 오직 거기에 희망, 죽지 않는 희망과 함께 있다. 노력, 그리고 기대, 그리고 욕망 그리고 아직도 되고자 하는 무엇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 P38
그리고 다음 시행의 완전하고 소진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나
움직이는 달이 하늘에 올라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네. 달은 부드럽게 올라가고 그 곁에는 별이 한두 개
S. T 콜리지 <노수부의 노래> - P39
다음 시행들의 눈부신 환상과 비교해 보라.
그리하여 저 숲속을 쏘다니는 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 그럴 때 어느 언덕 아래 멀리 온 세상이 타오르는 가운데 솟아나는 여린 불길 하나가 그에게는 그늘 속 크로커스로 보이리.
에버니저 존스 <세계가 불탈 때> - P39
시인에게는 우리를 배우이자 관중으로 만드는 능력이, 마치 장갑에 손을 넣기라도 하듯 등장인물 속에 들어가 폴스타프가 되었다 리어왕이 되었다 하는 재주가, 단번에 압축하고확장하고 진술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고? - 이 말로 들통이 나버렸다. 독서란 실로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첫번째과정은 작품이 주는 인상들을 고도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독서의 전반부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책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 절반은 다른 절반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다양한 인상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스쳐 가는 형태들로 단단하고 영속적인 것을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는 아니다. 독서의 먼지가 내려앉기를 기다리자. 갈등과 질문이 죽어 없어지기를 기다리자. 걷고, 말하고, 장미에서 죽은 꽃잎을 떼어 내고, 잠드는 거다. 그러면 갑자기 우리가 의도하지 않고도 - 자연은 그런 식으로 이행을 일으킨다 - P40
우리는 더 이상 작가의 친구가 아니라 그를 판단하는 자이다. 우리는 친구로서 아무리 다정해도 지나치지 않듯이, 판관으로서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과공감을 낭비하게 했으니,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거짓 책, 날조된 책, 공기를 부패시키고 병들게 하는 책을 쓰는자들은 사회를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가장 불온한 적들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판결에 엄격해지기로 하자. 모든 책을그 분야의 최고와 비교하기로 하자.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가읽은 책의 형태들이 우리가 내린 판단에 의해 굳어진 채 매달려 있다. - P41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 일들, 그 자체가 목적인 즐거움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독서야말로 그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때로 꿈꾸었다. 심판의 날이 밝아 와 위대한 정복자들과 법률가들과 정치가들이 보상을 받을 때, 그들이 왕관과 월계관과 영원히 썩지않을 대리석에 각인된 이름을 얻게 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가 책을 끼고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는 베드로를 향해 부러움이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이다. <저들에게는 상이 필요 없어. 여기서 그들에게 더 줄게없어. 저들은책 읽기를 사랑해 왔으니 말이야.> - P46
자신의 작품을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기초할 수 있다면, 플롯도 없어지고 희극도 비극도 전형적인스타일의 사랑 이야기도 파국도 없어져서, 단추 한 개도 본드가(街)의 양복쟁이들이 다는 방식으로는 달려 있지 않을것이다. 삶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마차 등이 아니라빛무리이며,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반투명한 외피外皮)이다. 이 다양한, 알려지지 않고 한정 지어지지 않은 정신을 설령 그것이 어떤 탈선이나 복잡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외적이고 이질적인것이 섞이지 않게끔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저 용기와 성실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고유한 재료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믿어 온 것과 다소다르다는 점을 제시하는 바이다. - P54
분명 그들은 우리보다 멀리, 우리가 가진 중대한 시각 장애없이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이 보지 못하는 원가를 보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암울함에 저항의목소리가 섞여 들겠는가? 이 저항의 목소리는 또 다른 오래된 문명의 목소리이니, 그것은 우리 안에 고통을 감내하며이해하기보다 즐기고 싸우는 본능을 함양해 온 듯하다. 스턴에서 메러디스에 이르기까지 영국 소설은 유머와 희극에서지상의 아름다움에서, 지성의 활동과 육체의 발랄함에서 우리가 누리는 천성적 기쁨을 증언해 준다. 하지만 영국 소설과 러시아 소설처럼 동떨어진 것들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어떤 추론도 그것이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그 지평선에는 한계가 없으며 허위와 가식외에는 아무것도 - 어떤 <방법>이나 제아무리 자유분방한실험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점을제외하면 다 부질없는 것이다. <소설에 걸맞은 재료 같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설에 적합한 재료이다. 모든 느낌이, 모든 생각이, 두뇌와 정신의 모든 특질이 동원될 수 있다. 어떤 지각도 그릇된 것이 아니다. - P60
시, 소설, 그리고 미래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현재에 등을 돌리고 과거를 응시한다. 분명 현명한 일이겠지만, 요즘 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임무는 서평가라는 부류에게 - 서평가라는 직함 자체가 이들 자신이나 이들이 탐사하는 대상의덧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ㅡ 넘겨 버린다. 하지만 때로는자문하게 된다. 비평가의 의무란 항상 과거라야만 할까? 그의 시선은 항상 등 뒤를 향해 고정되어야만 할까? 그도 때로는 돌아서서 앞을 보고,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눈 위에 손 그늘을 만들어 미래를 내다보며, 그 희미한 시야 가운데서 언젠가 우리가 도달할지도 모를 땅의 희미한 윤곽을 그려볼 수는 없는 걸까? - P101
지금껏 소설가를 피해 온 영향들, 즉 음악의힘, 시각적인 자극, 나무의 형태나 색채의 유희가 우리에게미치는 효과, 군중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 어떤 장소 어떤 사람들로부터 불합리하게 오는 모호한 두려움과 증오 움직임의 환희, 포도주의 도취 같은 것들을 극으로 만들기에 이를 것이다. 모든 순간이 중심이며, 지금껏 표현되지않은 막대한 지각들이 마주치는 장소이다. 삶은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다.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제시한 것을 하려고 시도하는 이에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그리 큰 예언의 재능이 필요치 않다. 산문은 아무나 시키는 대로 새로운 스텝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징조들을 아주 무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발전에 대한 필요를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는 거추장스러운 예속에서 풀려나 작업하려는 작가들, 다시금 자신의힘을 중요한 것들 위에 온전히 풀어놓을 위치에 서기 위해태도를 재조정하려는 작가들이 있음이 확실하다. - P121
서평 쓰기
런던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드는 쇼윈도가 몇 개 있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라 헝겊을 대고 깁는낡아빠진 옷들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작업하는 것을 구경한다. 거기 쇼윈도 안에 앉아서 그녀들은 좀먹은 바지 같은것에 보이지 않는 바늘땀을 심고 있다. 이 친숙한 광경은 이글의 삽화가 될 만하다. 우리 시인들, 극작가들, 소설가들은말하자면 그렇게 쇼윈도 안에 앉아서 서평가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평가들은 길거리의 무리처럼 말없이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 P123
이처럼 19세기의 위대한 시인과 위대한 소설가는 방식은다를지언정 모두가 서평가의 힘을 인정했으며, 그들 뒤에는민감하는 강인하든 다 같은 방식으로 ㅡ 물론 그 방식은 복잡하고 분석하기 어렵지만ㅡ 영향받았을 무수한 군소 시인과 소설가들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안전할 터이다. 테니슨과 디킨스는 둘 다 상처 입고 분노했으며,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데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서평가는 빈대요 그가 무는 것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물리면 역시 고통스럽다. 서평가의 독설은 허영심에도 명성에도 상처를 냈으며, 매출에도 물론 그랬다. 19세기 서평가는 무시무시한 곤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저자의 감수성은 물론이고 대중의 취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작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대중을 설득하여 책을 사거나 안사게 만들 수도 있었다. - P127
적당히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두 극단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는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의 저자들에게말을 걸어 왜 내가 그들의 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대화로부터 일반 독자도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는 정직한 고백이며, 그 정직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서평이 개인적 의견의 표현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마감에 쫓기는 필자, 지면의 압박을 받는 필자, 그 옹색함가운데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부응해야 하는 필자, - P131
끝으로, 이 모든 문제중에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즉, 서평가를 없애는 것이 문학에는 어떤 영향을미칠까 하는 것이다. 쇼윈도를 부숴 버리는 것이 저 손닿지않는 곳에 있는 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은 이미 시사된 바 있다. 작가는 공방의 어둠 속으로 물러날 것이고, 더 이상 수많은 평자들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들여다보면서 한 땀 한땀마다 호기심 많은 군중에게 논평을하는 가운데 옥스퍼드가에서 바지를 깁는 어렵고 미묘한 임무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의식은 줄어들고 평판은쪼그라들 것이다. 더는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 하지 않으면서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좋은 글을 쓸수 있을 것이다. - P140
서평은 자의식을 고조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며, 쇼윈도와 거울은 사람을 가두고 주눅 들게 한다. 그대신 토론을 두려움 없고 사심 없는 토론을 도입함으로써작가는 폭과 깊이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대중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인물, 공작새와 원숭이의 잡종은 더이상 조롱 대상이 아니라 공방의 어둠 속에서 자기 일을 하는 이름 없는 장인, 존경받아 마땅한 장인이 될 것이다. 이전보다 덜 치졸하고 덜 개인적인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 새로운 경의가 따라올 수도 있다. 재정적 이익을 별도로 한다면, 그것은 어떤 빛을 가져올것인가, 비평적 안목을 갖춘 배고픈 대중은 공방의 어둠 속으로 어떤 순수한 햇빛을 가져올 것인가. - P142
현대 에세이
리스 씨의 지당하신 말씀대로, 에세이의 역사와 기원을- 그것이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페르시아 사람 시란네이에게서 비롯되었는지 - 깊이 파고드는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그렇듯이, 에세이도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계는 아주 넓게 퍼져 있어서, 그중 대표적인 몇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여 위세를 떨치는 반면, 어떤 이들은플리트가 근처의 빈민가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기도 한다. 에세이는 형태도 다양하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고, 진지할 - P143
수도 시시껄렁할 수도 있으며, 신이나 스피노자‘를 다룰 수도 있고 거북이와 치프사이드를 다룰 수도 있다. 하지만187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쓰인 에세이들이 실린 이 다섯권의 작은 책을 뒤적이다 보면, 그 혼돈 가운데서 몇 가지 원리가 눈에 뜨이며,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도 역사의 진보라고나 할 만한 것을 감지하게 된다. 문학의 모든 형식 가운데 에세이는 긴 단어의 사용을 가장 덜 요구하는 형식이다. 에세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요컨대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가에서 에세이집을 꺼낼때 우리는 단지 즐거움을 얻으려 할 뿐이다. 에세이에서는모든 것이 이 목적에 따라야 한다. - P144
에세이는 그 첫마디로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야 하며, 우리는 그 마지막 한마디에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야 한다. 그 중간에 우리는 재미와 놀람, 흥미, 분노 등 아주 다양한 경험을 거치게 될 것이다. 램‘ 가 더불어 판타지의 정상으로 솟구치기도 하고, 베이컨과더불어 지혜의 심연에 뛰어들기도 하겠지만, 결코 흥분해서는 안 된다. 에세이는 우리를 넉넉히 감싸고 세계를 가로질 - P144
러 장막을 드리워야 한다. 그런 위업은 좀처럼 달성되지 않는다. 물론 그 잘못은 작가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있겠지만 말이다. 습관과 무기력이 독자의 입맛을 둔하게 한 것이다.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고 시에는 리듬이 있는 데 비해, 에세이스트는 그렇게 짧은 산문에서 대체 어떤 기술을 동원해야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황홀경 - 잠이라기보다는 더 강렬한 삶이라고나 할 상태, 모든 기능이 깨어 있는 가운데 감미로운 일광욕을 즐기는 듯한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제대로 글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 P145
이 승리는 문체의 승리이다. 왜냐하면 문학에서 자아를활용하는 것은 글 쓰는 법을 터득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아란 문학에서 본질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적이다. 결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되 항상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리스씨의 선집에서 몇몇 에세이스트들은솔직히 말해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쇄된 글의 영원성 가운데 분해되는 시시한 개성들을 보며 욕지기를 느낀다. 물론 잡담으로서는 매력적이었을 터이고, 그것을 쓴 사람도 맥주 한잔을 사이에 놓고 만나기에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문학은 엄격하다. 매력적이거나 덕이 높거나 심지어 학식이 많고 총명하다 해도, 글 쓰는법을 알아야 한다는 문학의 첫째가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문학은 거듭 말하는 듯하다. - P155
삶은 솟아나고 변화하고 더해진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살아 있는 한 변화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만나기를 원하며, 만날 때마다 그들은 달라져 있다. 우리는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을 한 편 한 편 반추해 보며, 9월이 오든 5월이 오든 그 글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에세이스트가 모든 작가중에서 여론에 가장 민감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응접실은 오늘날 많은 독서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도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덕분에 절묘하게 돋보인다. 주위에는 술잔도, 독한 담배도, 말장난도, 술주정이나 미친 짓도 없다. 신사 숙녀는 함께 이야기하며, 물론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도 더러 있다. - P156
어떤 이들은 힘들게 간신히 통과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순풍을 타고 날아간다. 하지만 벨록 씨와 루커스 씨와 스콰이어 씨는 어떤 것에도 그 자체에 강한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오늘날의 딜레마, 즉 집요한 확신의 결여이다. 그런 확신만이누군가의 언어라는 희미한 영역을 통해 덧없는 말소리를 영속적인 결혼, 영속적인 화합이 있는 땅으로 들어 올리는 것인데 말이다. 모든 정의(定義)가 막연하다고는 하나, 좋은 에세이란 이런 영속성을 지녀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장막을 치되, 우리를 밖에 두지 않고 안에 들이는 장막이라야 한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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