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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가는 길
양귀자 / 열림원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양귀자의 ‘천마총 가는 길’ 그것은 충격이었다.

  소설로 만나는 80년.

  갑자기 타고 가던 차안에서 밖으로 내팽겨진 느낌.

  안이하고 무심하던 생각 속에서 빠져 나온 어리둥절함.

  그게 지나면 분노와 억울함이 밀려오듯 그 책의 느낌이 그러했다.

  내가 살아온 이 땅을 향한 분노와 모르고 지나온 것들에 대한 무기력함이

  중편하나에서 이렇게 강렬하다니.

  무고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학대,

  죽음을 밟고 선 찬양과 우상.

  세뇌당한 불쌍한 내 머리는 온통 혼란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라는 결말의 물음을 난 누구에게 묻지.

  작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제시해준다.

  바로 이어서 읽은 백도기의 중편 ‘가시떨기 나무’ 로 좀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떠도는 말들의 진실을.

  고문의 악몽이 전기쇼크로 가위 눌리게 한다.

  진정한 선, 진정한 악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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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막심 고리끼 지음 / 열린책들 / 198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막심 고리끼 ‘어머니’

  처음 대하는 작가의 소설.

  신선하다.
  러시아의 평범한

  (그 나라에서 평범하다는 건, 문맹에다 남편의 구박과 힘든 가사일과 자식에 대한 봉사로

  자신을 되돌아 볼 겨를도, 사고 능력도 없음을 말함)

  한 여인이 남편의 죽음 뒤,

  지켜보는 아들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세상을 보게 되는 것,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가는 과정을

  담담한 아주 소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전개해 가는 소설이다.

  러시아, 소련이 아닌 러시아는 얼마나 많은 꿈과 혁명을 담고 있는가.

  역사적 시련을 많이 겪은 나라여선지 러시아 문학에는 참담함이 있다.

  시련의 냄새가 극복의 향기가 있다.

  위기를 극복해내는 지혜.

  시련을 가장한 처세술이 아니라 자기를 내 맡기고 그 강물에 휩쓸려 물이 되는 희생정신.

  노동 운동의 본질은 결국 어머니 마음인가.

  우리시대의 어머니,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여사의 마음은.......

  우리 어머니, 분명 반대하셨을 것이다.

  자식이 가는 길.

  남들 보다 순탄하고 넓은 길을 가기를 원했을 테지만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그 길을 닦고자 하셨을 그런 어머니 마음을 갖는 것이 노동운동 아닐까.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떠한가.

  결국은 실리를 계산한다.

  강을 따라 걸을 뿐이다.

  혁명이 없는 강을 따라 걸을 뿐이다.

  모두 다 위대할 필요는 없다는 명분으로.......

  선택받지 못한 노동자로 살았던 고리끼.

  끝까지 노동자이고자 했던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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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방식
잉게보르크 바하만 / 청하 / 1987년 7월
평점 :
절판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죽음의 방식’

 

   프란짜의 죽음과 화니 골드만을 위한 진혼제, 두 편으로 이뤄진 바하만의 작품집이다.

  프란짜의 죽음은 작가의 죽음으로 미완성 장편으로 남게 되었다.

  두 편 모두 제목에서 보듯 ..죽음, ..진혼제로 이어지는 죽음의 방식들을 여성이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 얻게 되는 죽음을 다루었다.

  프란짜의 죽음은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반복과 숙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책읽기였다.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작법이어서 조금만 건성으로 읽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고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많은 복선이 깔려서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해해야 했다.

  독특한 죽음의 방식은 작가에게도 해당했던 것일까.

  ‘소금과 빵’에서는 완벽한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가 이 책에서는 여성성이 여성임으로 인한 죽음의 실례를 보여 주고 있다.

  광속의 세상에서 그저 흘러 지나가는 무수한 죽음들의 내면을 작가적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기한에 쫓긴 빌려다 본 책이라 여운이 강렬하다.

  구입할 도서목록에 추가한다.

  인내심을 요하는 어려운 책읽기의 버거움은 재미있는 책에 자꾸만 길들여지는 뇌에 경종을 울린다.

  한계를 본다.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고 독일 문화권에서 생활하고 공부한 작가가 이집트 문명에 대해 그렇게 해박하다니...

  작가의 끝없는 탐구, 열정이 느껴진다.

  그저 얻어지는 것이라면 가치도 덜해지겠지.

  내 한심함을 마구 확인한 책이다.

  다음엔 30세를 읽어야겠다.

  30세가 되는 그 때, 덜 후회하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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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그가 떠났다.
 떠나 버렸다.
 누구나 한번은 가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아무리 자주 접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나이에(?)비해 죽음을 많이 경험한 축에 속하지만 언제나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부재하는 상황은 생경하고 공포스럽고 피하고 싶은 느낌을 준다.
 일면식도 없고 전혀 교류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삶에 깊숙히 빠져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떠났다.
 너무 놀랍고 황망하다.
 많이 존경하고 좋아 했는데...

 죽음이 하도 흔한 세상이라 그는 한 줄의 짤막한 기사로 남고 말았지만 유용주 시인의 말처럼 '장산리 왕소나무'로 내 가슴에 있던 그.
 이문구님이 떠나고 말았다.
 25일밤 향년 62세로.
 우직한 소나무로"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그렇게 오래 서있거나 걸어서 단숨에 쓰러지고 만 것일까?
 62세라는 나이가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그 나이여서.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때, 그 투박하면서도 속시원하게하는 여운이 남는 감칠맛에 반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자신의 경험과 아픔이 녹아있지 않는 글은 죽은 글이라는 판단이 강할때 였는데 그의 글은 단번에 매료시켰다.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그 능청스러움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비판이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책이 아마 '우리동네'연작 이었을 것이다. 햇빛받은 얼음은 화려한 빛이 나지만 섬뜩한 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유순한 말투속에 숨어있는 차거운 기지를 내포한 글쓰기를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마력이 그속에 있었다.
 그후로 '관촌수필' '유자소전' '매월당 김시습' '내 몸은 너무...'까지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데로 다 읽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어서 조금 오래된 것은 구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청춘기에도,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목구멍을 조르는 궁핍함 속에서도,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한 번도 글을 놓지 않았고 그랬기에 삶이 녹아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그의 고단함을 글속에서 읽으며 고단한 내 일상을 위로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책을 읽는건 행복하다.
 특히 그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같이 느끼고 같이 행동하는듯한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건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의 책을 읽을땐 행복했다.
 일회적인 것들이 판을치는 세상에서 소나무처럼 문단을 지켜온,
 농촌을 지키면서 내게 행복을 준 그의 퇴장이 못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작가는 책을 남겼고 다시 힘들때마다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
 다시 읽어도 처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이 살아서 내게 오기에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작가 이 문구님의 명복을 빈다.


                                                             2003. 2. 2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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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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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결코 익숙해 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따돌림과 고의적 시비를

 무시하는 일, 몰매를 맞으면서도 대항하지 않는 일, 침묵 속을 걷는 일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교실을 나오는 동안 내 몸은 새파란 화염에 휩싸여 있

 었다. 차갑고도 끈질긴 불길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교문을 통과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네 편의점에 다다를 때까지, 쉼없이 나를 태웠다."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

 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 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 주는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아야 한다, 그러러면 당황하고,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누군

 가에게 곁을 내줘서는 안된다. 거지처럼 문간에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

 라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나의 힘이다.

 아니, 자살하지 않는 비결이다."

 

  그렇게 어떤 문장들은 새겨지고 있었다.

  정유정의 "7년의 밤" 이다.

  오랜만이다.

  얼마만일까?

  읽던 책을 덮지 못해서 밤을 새운 일이.......

  500페이지도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재미있다.

  그리고 엄청난 몰입이다.

  책을 덮고도 오래 세령호의 물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어느 사이 소설 읽기 좋은 가을 인 것이다.

  단단한 작가를 새로이 만났다.

  '정유정 '

  덕분에 졸리운 밤,

  자야겠다.

  꿈도 없이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선가의 당신도 그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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