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나이우스는 겸손과는 심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므로, 자기가(스스로 자주 들먹이며 자화자찬했던) 재능을 지닌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의지였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에 앞서 다른 누구도 ... 더 위대한 식물학자나 동물학자일 수 없도록... 더 많은 책을, 더 정확히 쓴 적이 없도록 ... 그처럼 다른 모두가한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동물의 목록을 만든 일이 없도록온 세상에서 그보다 더 유명해지는 일이 없도록" 전능한 신이 정해두었다는 것이다. 린나이우스는 전능한 신이 창조의 날 이후 전혀 변하지 않은 무수한 생명 형태들에 관해 그 누구보다 큰 통찰력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칼 린나이우스니까. 하지만그러한 거드름을 일단 옆으로 치워두면, 실제로 그에게는 자신을 남다른 존재로 부각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재주와힘을 묘사한 과도하고 현란한 방식이야말로 그 차이를 알려주는 실마리다. - P77

그 시절의 체계화와 명명 작업은 그야말로 자연의 질서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질서에 대해 갖게 된 감각과 강력한 비전의 풍부한 세계를 다루는 일이었다. 박물학자들은 수년간 생명의 세계에 주파수를 맞춘 예리한 감각을 동원해 주변의 생명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터보 충전기를 장착한 듯한 린나이우스의 감식력은 이를 초월했다. 자연사가 점점 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던 그 와중에도, 그의탁월한 감식력은 완전히 새로운 식물, 신비롭고 새로운 꽃을 만나자마자 그 식물이 다른 어떤 식물과 가장 닮아 보이는지, 식물에 집착적으로 빠져 살아온 평생 그때까지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본 모든식물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적으로 사고하지 않고도 즉각 감지하게 해주었다. 그가 즉각 ‘아, 맞아요 맞아. 그건 월계수속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세계에 대한 바로 그 풍부하고도 설득력 있는 감각이 그에게 지극히 명백한 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P79

자기 입으로 그렇게 부단히 자화자찬해댄 그를 칭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의 체계는 정말로 굉장한 성취였다.
린나이우스는 이십 대 백수 시절에 그 책을 씀으로써, 자기 힘으로서른도 되기 전에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영예를 거머쥐었다. 「자연의 체계를 씀으로써 그는 이제 막 생겨나던 분류학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세월의 시험을 통과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표준을 설정했다.
「자연의 체계」 10판은 후에 전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모든 동물의 분류와 명명을 관장하는 동물학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식물의 종Species Plantarum』은 세계적으로모든 식물 명명법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인정받았다. - P83

그러니까 「자연의 체계는 단순히 체계화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된 세계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히 우리가아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느끼는 세계였다.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 린나이우스가 기록한 것은 바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이 비전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디테일에서 드러났지만(우리 중에 그 수수께끼 같은 월계수속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의 인간다움은나머지 모든 것에서, 그러니까 우리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 소나무, 호랑이에서 드러났다. 그 모든 개인적 결함과 끝없이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린나이우스가 여전히 그렇게 존경받고 스웨덴의 국민 영웅으로 사랑받으며, 수많은 전기의 주인공이 되고, 수많은 교과서에서 그토록 열정적인 칭송을 받는 것은 바로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를 포착하고 그 타당성을 확인해주었다. - P85

위대한 진실은 모두 처음에는 신성모독으로 등장한다.
ㅡ조지 버나드 쇼

따개비는 도무지 동물 같지 않은 이상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따개비는 돌덩이처럼 보인다. 선체나 새의 발, 고래 옆구리, 거북이 등딱지등 여기저기 불편하게 들러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돌덩이. 따개비는 타고난 비밀스러움으로(따개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것은 꽉 닫힌 껍데기 안의 정교한 조직들 속에 숨어 있다) 체계화와 분류를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난관을 안겨왔다.
일찍이 1597년에 존 제라드John Gerard라는 식물학자는 「초본식물 또는 식물의 일반사Herball, or Generall Historie of Plants』라는 책에서이 수수께끼 같은 혹덩이를 ‘따개비나무Barnakle Tree‘라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도로는 충분히 괴상하지 않았던것인지, 이 식물에서 만들어지는 따개비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이른바 따개비거위라는 작은 거위들을 몸 안에 품고 있다고 여겼다(물론따개비거위는 제대로 된 다른 모든 거위처럼 알에서 부화한다). - P88

물론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장대한 이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론이 심오하고도 강력하게 모든 것을 밝혀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그 이론을 몸서리치게 두려워했다. 그이론이 품고 있는 의미는 장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이었고, 가장 온건하게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닐지언정 (자기 아내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할 터였다. 자연에 대한 그의 진화적 비전은 자비로운 신의 존재를 인정사정없이 의심하게 만들 것이고, 인류는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존재에서 그와는 뭔가 다른 존재로 격하되어 따귀를 맞은 것처럼 모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윈은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경Sir Charles Lyell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조상은 물속에서 숨을 쉬고, 부레가 있으며, 거대한 꼬리지느러미와 불완전한 두개골을 지녔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암수한몸인 동물이었습니다! 여기 인류가 참으로 기뻐할 계보가 있군요." - P97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한 일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뒤로 미투기로 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대신 수년 전에 발견한 이 따개비에 집중하는 거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두어 달,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저 한 종류의 작은 생물, 한 가지 따개비일 뿐이었다.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지만 유리병 속 따개비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다윈은 자기가 어떤 상황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 아마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작은 바다생물이 그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진화에 관한 이론(이미 10년 전에 처음으로 떠올렸던)은 그때부터 13년이나 더 출판되지 못하다가 1859년이 되어서야 「종의 기원으로 출판됐다. 지금 다윈이 막 시작하려는 곁다리 프로젝트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참이었고, 그는 앞으로 8년을 오직 이 따개비에게만 쏟아부으며 자신을 갈아 넣게 될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생과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적 동요에 시달리는 한편, 보상도 따를터였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회피하려 애썼던 진화론에 대한 핵심적증거가 될,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도 그 보상 중 하나였다. - P101

생명에 대한 과학적 시각과 나머지 우리 모두의 시각이 일치했민 순간(린나이우스가 축하하고 기록했던 그 순간)은 이제 공식적으로막을 내렸다. 그 많은 조개껍질 수집가와 딱정벌레 사냥꾼, 그 많은올빼미 관찰자와 식물 덕후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생명의시각, 움벨트의 시각, 인간과 생명 세계 사이의 가장 깊고 심오한 연결이 이제 나가는 문 쪽을 향해 떠밀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과학이 칼자루를 넘겨받았고, 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어딘가로,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철저하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향해 가는 자기만의 여정에 올랐다. - P120

정에 올랐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의 탄생과 물고기의 죽음은 아직 한참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분류학의 다른 세 학파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진화분류학, 다음에는 수리분류학, 마지막으로 분자분류학이 등장했는데, 세 학파 모두 과학적 생명 분류가 부상하고 최종적으로 움벨트를 버리게 되는 과정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마침내 물고기를 죽일 분기학자들이 등장할 터였다. 그것은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윈의 마차 에피파니에 힘입어이루어진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과학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세웠고,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래 공유했던 자연의 질서로부터 과학을 점점 더 멀리 이끌어갈 터였다. - P120

마차 에피파니가 마무리되면서 다윈의 따개비 시절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8년을 쏟아붓고 1854년 가을이 되자 다윈은 그 일을마무리할 준비가 되고도 남은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전의 그 어떤 사람도 이토록 미워해본 적 없을 만큼 따개비가 밉다.
느릿느릿 바다를 지나는 선박의 선원조차도 이 정도로 따개비를 미워하지는 않았으리라."
다윈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변이를 발견했고, 종의 기만성을깨달았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라고 이해해왔던 것에막강한 개념적 폭력을 가했다. 게다가 따개비 문제도 해결하며 어마어마한 분량의 분류학 연구 성과를 쌓았고 그걸로 현존하는 따개비와 따개비 화석을 통틀어 모든 따개비에 관한 연구서 4권을 내면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과학자로서의 존경도 얻어냈다. 따개비 연구로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들의 협회인 왕립학회에서왕실 자연과학 훈장을 받았다. - P121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에서는 그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진화는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분류학의 "막대한 헛소리들을 깨끗이 제거할 것"이라고 썼다.
정말 많은 것에 관해 옳은 말을 한 걸로 유명한 다윈이지만, 이말보다 더 틀린 말은 없을 것이다. 분류학의 입장에서 진화에 대한 깨달음은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화는 분류학에 투척된 폭탄 같았다. 다윈이 분류학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 하나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생명의 계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활용해 생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감각을 통해파악되는 유사성과, 모호하게 정의되었으나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질서를 찾는 일은 가능했다. 그것은 분류학이 줄곧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아주 오래전 과거를 밝혀내고 모든 생명의 계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라도 품어볼 수 있는 걸까?
따개비 연구가 끝나고 5년 후, 그 진실이 세상에 나왔다. 다윈은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 진실, 생명은 불변하는 존재들의 고정적 배열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며 가지를 떨구고 왕성하게 싹을 틔우며 항상 변화하는 나무라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다윈이개인적으로 짊어지고 있던 짐은 이제 더 이상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 P122

온 세상에서 뒤죽박죽된 혼란보다 더 나쁜 건 없어요.
무시무시하게 들려도 죽음과 운명을 직면하는 게 오히려 쉽죠.
내가 돌이켜보며 경악하게 되는 건 나의 혼란들이에요....
혼란을 조심해요.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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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어린아이든 다른 누구든, 백색증에 걸린 낯선 흰색 호랑이든, 심지어 돌연변이로 머리가 둘이거나, 다리 하나를 절단해 다리가 세 개뿐인 호랑이도 호랑이로 알아본다는 사실에도 놀라지 않는다. 이런 건 우리가 전혀 신기해하지 않는 신기한 일, 바로 ‘플라톤의 딜레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것을 바탕으로그렇게 많이 아는 걸까? 별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한 생물이 무엇인지(특히 그것이 거대한 자연의 질서에서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아는 일은 우리모두에게 정말 놀랍도록 수월하다. 너무 쉬워서 우리의 무의식에도깔끔하게 맞아들어갈 정도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이 일에 매우 능숙해 보일 뿐 아니라, 생명의 질서, 생물의 이름과 분류와 조직에 관해 배우는 일에 일찌감치 그리고 아주 깊이 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 P34

그러자 대학 시절에 벌들에 빠져 있던 어느 교수님의 동물행동학 수업에서 배웠던 뭔가가 기억났다. 교수님은 생물학자들이 ‘움벨트Umwel‘라 부르는 것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용어는 익숙하지 않지 - P35

만, 그 개념은 아주 익숙하다. 우리는 개들이 색깔을 볼 수 없어서 색채가 아니라 냄새로 그려진 우주에서 산다는 걸 안다. 멍멍이가 자기눈에 보이는 모든 기둥과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킁킁대며냄새를 맡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교수님이 애지중지하던 벌들은 다면적인 구조의 눈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벌들은 꽃에서 꿀이 있는 위치로 정확히 날아갈 수 있다. 꽃에 자외선으로 그려진 띠와 줄 패턴이 벌들을 그 자리로 안내한다. 하지만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 - P36

인간의 움벨트에는 내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중요한 의미 하나가 들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 처음부터 내장돼 있으며 판에 박힌 그 방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움벨트(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는 깨달음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이 제안한 바이오필리아(생명이 있는 세계에 대한 인류의 사랑)가 사람이 생물들에게 그토록 자주 매료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면(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생명의 세계와 그 속 자연의 질서를 우리가 늘 바라봐왔던 그 방식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움벨트(그 별스러운 특징들과 강점 및 약점, 그리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를 포함하여그에 관한 다른 모든 것까지)일 것이다. - P36

움벨트는 또한 심리학자들이 뇌 손상 환자들을 연구하는 동안 줄곧 추적하던 것이기도 했다.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은 그 가련한 영혼들의 뇌에서 사라졌거나 고장 난 것이 바로 움벨트였다. 아직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작고 앙증맞은 아기들에게 생명의 세계란 과연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역시 움벨트였다.
내가 전에는 분류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아주 많은 것의 원인이 움벨트임이 분명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나움벨트가 우리에게 질서를 보게 하고, 또한 그 질서에 근거해 행동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인간을 포함해) 한종 안에서도 또 질서를 매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이 우리의 자연 질서 안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그러니까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시아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의료를 처방하고, 적합한 화장실을 고르며, 장학금과 기회를, 심지어 사랑을 나눠주는 데까지 그 분류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우리의 움벨트라는 렌즈를 통해 행한다. - P37

과학을 태동시키기 훨씬 전부터 움벨트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세월 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인류가살아 있는 모든 것과 나누는 가장 좋은 연결이자 가장 내밀한 연결이었다. 움벨트는 단순히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우리 자신이누구인지 이해할 맥락이며, 이는 언제나 그래왔다. 움벨트는 우리에게 자연의 한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뭐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선포한다. 또한 현실 자체의 경계선을 정하며, 그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함해 생명의 세계 안 존재들의 위치를결정한다. 움벨트를 잃어버린 사람들, 뇌 손상으로 생물의 자연적 질서를 인지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증거다. - P40

우리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맡겨두는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생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됐다. 수많은 야생의 생물들이 자기 좀 보라는 듯 눈에 띄는 모습으로 끈덕지게 우리 앞에 나타날 때도(예컨대 매들이 주차장 상공을 날아 이동하거나, 한밤에 다채로운 색깔의 나방들이 유리창에와서 몸을 부딪치거나…. 이런 일은 항상 있다) 우리는 그 존재들을 거의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모두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생명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일,
바로 ‘먹기‘를 할 때조차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사실은 생명의 세계임을 점점 더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고기가 콧김을 뿜어대는 덩치 큰 포유동물에서 잘라낸 살덩어리가 아니라 스티로폼접시에 놓인 새빨간 타원형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세계는 항상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놓치고 있다.
우리가 치를 대가는 그보다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것 중 가장 큰 것을, 바로 야생의 자연 자체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우리는 생명과 너무 심하게 단절된 탓에그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심지어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 P44

매년 플로리다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아하함, 하품이 나네. 종들이 멸종하는 속도가 인류가 끼어들기 전에 비해 100배 내지 1000배나 빨라졌다고? 하암, 하아암. 우리는 도무지그런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각성하지 못하며, 생명의 세계는 우리와너무 멀어졌고 너무나 무관해 보인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지경에 와 있음을 깨달은 지금, 어떻게 여기서 탈출해야 할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다. 이 책에는 우리가(과학자들과 나머지사람들 모두) 이 낯선 장소에 도달한 여정의 이야기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도가 담겨 있다. - P45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 알고 보니 나는 뱀들과새들과 물방울을 튕기는 매혹적인 물고기들로 가득한 세계를 내게보여줬던 유년기의 숲에서 마음껏 활개 치는 움벨트와 함께하던 그시절, 처음부터 올바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비록 과학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나는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야겠다. 우리가 과학을 아무리 많이 필요로 하더라도(실제로 우리는 과학을 많이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물고기도, 아마 모두가 짐작하는 것보다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끌미끌하고 반짝거리며 물속을 헤엄치는 그 동물들은(자연탐구가들이 기나긴 세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생물과 함께) 우리와 생명의 세계를 연결하는 중심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터무니없게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 이상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P45

져 있는 냉담한 분리 상태가 생기기 한참 전,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아마 제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던 인물, 당대 지성계의 가장 거대한 문제인 생명의 세계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이야기에 시동을 건 인물에서 시작한다. 바로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카롤루스 린나이우스다. 그는 물고기와 얼룩말, 나방, 그리고 수정처럼 맑고 파란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우리가 오랫동안 알아보았던 다른 모든 것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었다. - P46

우리가 와 있는 이곳은 정말 이 세상 같지 않게 너무나도 풍성해....
저 엄청난 나무들이라니! ・・・ 새들과 물고기,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된)가재까지 색깔도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 지금까지 우린 내내 얼간이들처럼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녔어. 첫 사흘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지.
계속 먼저 잡았던 걸 던져버리고 바로 다음 걸 붙잡아야 했으니까.
봉플랑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 경이로움이 어서 바닥나지 않는다면자기는 분명 정신이 나가버릴 거래‘

ㅡ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프로이센의 유명한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1799년 형에게 쓴 편지 중에서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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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생후 두 달 만에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이민을 가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북동부에서 보냈고, 이후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1944년 데뷔작 『야생의심장 가까이』로 그라사아랑냐상을 수상했고, 뒤이어「어둠속의 사과]단편들』『G.H.에 따른 수난』등을 발표했다. 또 배움 그리고 기쁨의 책들』로 황금돌고래상을 수상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소설인 『별의 시간』은 1977년에, 『삶의 숨결』은 사후에 발표되었다. 작가로서의 생활고와 1967년 화재로 입은 화상의 후유증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다가 1977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푸르다.
-내가 최초의 우주 비행사였다면, 내 기쁨은 두 번째 인간이세계에서 돌아왔을 때에만 되살아날 것이다. 그 역시 봤을 테니까. 어떤 묘사도 ‘봤다‘라는 것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 봤다는 것온 봤다는 것에만 비교된다. 다른 어떤 사람이 내가 본 것을 똑같이 볼 때까지는 말을 할 때조차도 내 안에 커다란 침묵을 간직할것이다. 고찰: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이미 신을 목격했을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위대한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우연이라는 큰 행운이다. 미래에 관해 말하자면, 더 오래살아 더 많이 보기 위해서 우리는 담배를 줄이고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한다. 나아가 과학자들에게 서두르라고 보채야 한다-우리의 개인적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 - P16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삶이 견딜 수가 없어. 인생은 너무 짧은데도 삶을 견딜 수가 없다고."
"나도 모르겠어. 나도 같은 것을 느껴. 그러나 뭔가 있어, 많은것이 있어. 절망이 빛이요, 사랑이 되는 지점이 있다고."
"그다음에는?" - P19

"그다음에는 자연이 오지."
"자연, 그게 네가 죽음에 부여한 이름이야?
"아니, 그건 자연이야, 나는 그것을 자연이라 불러"
"모든 생명이 그랬을까?"
"난 그렇다고 생각해." - P20

나는 이 새로운 일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짜 칼럼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을 쓰는 것 말이다. 이 분야뿐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것에도 초짜다. 이미 전문 기자로 활동했었지만 정식 계약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만약 이름을 올린다면자동으로 개인을 더 드러내는 일이 될 텐데, 내게는 그 일이 마치영혼을 내다 파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한 친구에게 그렇게말하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은 어느정도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이야." 맞는 말이다.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많이 드러낸다. 그러나 의사인 한 친구는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자기 일에 영혼을 바치지만 생활도 해야하니까 돈을 받는다고 한다. 결국 나는 가장 커다란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내 영혼의 일부를 토요일에 나눈 이 대화의 일부를 판다. - P21

느끼지 않는다는 것
익숙함이 추락을 무디게 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덜 느끼게 되면서 경고와 징후로서 고통이 지닌 이점도 잃었다. 오늘날 그는 훨씬 더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그의 삶은 위험한 상태다. 어쩌면그는 죽음의 문턱에 한 발짝 다가섰을지도 모르고, 이미 죽기 한발짝 전일 수도 있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이다. - P28

향해 가다
간밤에 고양이가 너무 우는 바람에 생명을 향한 깊은 동정심을느꼈다. 그 동정심은 고통과 닮아 있었고, 인간과 동물 들이 쓰는 표현에 따르면 고통이 맞았다. 하지만 고통일까? 혹시 ‘가는것‘, ‘향해 가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것은 향해 가는 것이니 - P28

봄을 쓰다
새 계절에 처음 느끼는 온기, 첫 숨만큼이나 오래됐다. 미소가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거울도 보지 않고 바보 같은 천사의 미소를 짓는다.
새로운 계절은 이미 한참 전에 도래를 예고했다. 갑작스레 다시 유순해진 바람, 처음 찾아왔던 달큰한 공기. 말도 안 되지! 이 달큰한 공기가 또 다른 달콤한 공기를 몰고 오지 않는다는 것은있을 수 없는 일이지! 좌절한 가슴이 말한다.
말도 안 돼! 아직 차갑고 매서운 기운이 남아 있는 봄의 온기가 메아리친다. 이 공기가 세상의 사랑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까맣게 그을어 말라버린 것들을 잘게부순 심장이 미소를 띠며 반복해서 말한다. 공기가 이미 가져다준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그 첫 번째 온기는 모든 것을 가져온다. 그것뿐이다. 나눌 수 없는 모든 것. - P30

끝없이 달콤한 죽음의 환희를 붙잡을 수 있을까? 아, 나는 결국 최대한 잘 죽기 위해 최고의 것을 살지 못할까 봐 심히 걱정스럽다. 나는 봄의 우스운 행복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내가 죽는것을 누군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그 행복이 오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재촉하지 않을것이다. 살아서 기다리는 것은 나의 무녀가 벌이는 철야 의식이니까. 밤낮으로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겠다. 최상의 기대 속에서더 오래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봄의 첫 온기...... 그러나 그것은사랑이다! 행복은 내게 딸아이의 미소를 준다. 나는 머리를 잘손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은 내 안에서 더는 버텨내지 못한다. 내가 나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은, 그토록 긴 기다림으로 땀방울이 식은 가운데 결국 나의 첫 번째 봄의 죽음을 잃는것은, 때가 되기도 전에 죽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호기심에 미리 죽는다. 나는 벌써 새로운 계절이 궁금하니까.
그러나 나는 기다릴 것이다. 조심스럽게, 참으면서, 절제된 욕 - P32

망으로 작은 부스러기까지도 놓치지 않고 먹으면서 기다릴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한다. 그 어떤 것도 이토록 영원한, 지금도 이미 존재하고 실재하는, 나의 생인 나의 죽음에 과분한 것은없으니까.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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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시공간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과 마주치든 간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채 읽기를 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같다. 이 글을쓰고 있는 지금 내 앞에는 『세상의 발견』 가제본 책과 『달걀과 닭 한권이 나란히 놓여 있다. 나는 두 책을 번갈아 본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세상의 발견』 표지는 백지이며 『달걀과 닭』에는 어느덧 친근해진 클라리시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그의 두 눈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2020년대의 한국 독자인 나를 바라본다. 『달걀과 닭처럼 표지 전체가 작가 얼굴로 점령되어 있는 책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진속 무표정이 너무나 심원해 보여서 책을 집어 들다 멈칫하게 되는 경험은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클라리시의 얼굴은 독서의 시간 동안 또다른 풍경처럼 머릿속 한편에 둥둥 떠 있다. 그의 초상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강렬한 인상은 책의 감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왔을 것이다.

내 얼굴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래전의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을 그의 시선은 50여 년의 생애 동안 어느 표면과 심층을 오가며 무엇을 식별하고 또 축조해왔을까. 클라리시의 소설에서 사건들의 시간은 문장의 나열을 통해 팽창된다. 부엌에 놓인 달걀을 바라보거나 거리에서 죽은 쥐의 시체를 밟거나 모르는 개를 묻어주거나 차창 밖으로

껌 씹는 장님을 목격하는 등, 일상적인 동시에 일상으로부터 탈구된 장면들은 문장으로 분화되는 동안 더 넓은 시간성을 확보한다. 반면 결말은 단말마의 비명처럼 찾아온다. 이 급작스러운 끝남이 죽음의 형식과닮아 있다고 느껴지기에 나는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살덩어리처럼 여기게 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뜨거운 내장을 내 손으로 쥐는 일 같았다. 처음 읽으며 몸서리쳤던 기억이지금도 선명하다. 이러한 독서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거의 경악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제는 인쇄물의 형태로만 마주할 수 있는 그의 두 눈이, 감정과 감각을 지닌 육체에 속해 있었을 때에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소설의 형태로 구성되고 형식화되지 않은, 아직 재료인 상태였을장면들을 그가 어떻게 다루고 간직해왔을지. 이 얼굴이 목소리로 내뱉은말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타자와 나누었던 대화들은 어떤 내용이었을지.

2단편 「버펄로」 낭독회에서 한 독자가 "이야기 전체가 마치 내장으로만들어진 것 같다"라는 후기를 전했다는 일화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클라리시의 소설이 내장과 같다면 『세상의 발견』은 피부에 가까운 글들의 모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표면인 것. 부드럽고 따뜻하고익숙하지만 그 속에 뼈와 내장과 정신을 품고 있는 것. 산문의 넓이를 누리며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일상적이고 경쾌한 문장들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는 작가의 신비를 걷어내 폐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걷힌 자리에서 새로운 형식의 신비를 발견하게 한다. 가령 아래와같은 문장들.

나는 삶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느낀다. 봄에는 몇 시간이고 혼자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때로는 피를 흘릴 수도 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을 방법은 없다, 나는 내 피 안에서 봄을 느끼니까.
그래서 아프다. 봄은 내게 무언가를 준다. 봄은 나를 살게해준다. 나는 어느 봄에 죽을 것이다. 나를 찌르는 사랑과 약해진 심장으로.


각주에 따르면 남반구의 봄은 9월 말부터 12월 말까지이다. 클라리시는 1977년 12월 9일에 사망했다. 단편 「버펄로」는 "그러나 봄이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봄이라는 계절의 폭력적일 만큼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클라리시는 줄곧 경탄했던 것 같다. 어머니로서의 자신이 작가로서의 자신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였으므로 만물이 탄생하는 봄이 자신의 소멸과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대체 어떻게 "나는 어느 봄에 죽을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추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단지 눈으로 보기 힘든 더섬세하고 어려운 현실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문장처럼, 클라리시에게 스스로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섬세하고 어려운 현실이기에 어떠한 방식의 예감과 확신이 가능한 대상이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이렇게 무릎에 타자기를 올리고 글을 썼어요. 이사진은 연출된 것이기는 하지만요. 어머니는 네다섯 시쯤, 아주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썼어요. 요즘에는 주로 컴퓨터를사용하니까 타자기 소리를 잘 모르실 텐데, 빗방울이 창문에부딪치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에는 창문에 빗방울 부딪치는소리가 들리기에 엄마가 글을 쓰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도했죠.


이른 아침 일어나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은 클라리시의 일상이었다.「세상의 발견』에 수록된 글들 역시 같은 시간에 쓰였을 것이다. 동틀녘의 빛이 붉게 물들이는 그의 손등과 타자기의 네모난 자판들을 떠올려본다. 마치 타악기 연주처럼 이어지는 타자기의 규칙적인 소리들은 아침의공기를 흔들었을 것이다. 오래전 열 손가락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통해적힌 포르투갈어 문장들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지금 우리 곁에 책의 형태로 도착해 있다. 그의 죽음 이후 약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에서 열렬한 그의 독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임을 클라리시는 예상하였을까. 발음도 구조도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미래의 사람들이 그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그의 영혼을 이토록 환대할 것임을알았더라면 이에 대해 그는 어떤 문장을 적고 싶어 했을까.

클라리시의 글에서 포착되는 미지의 여러 양상 중 가장 불가해한 것은 쓰는 사람으로서의 그의 힘과 용기였다.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로서의, 작가로서의 그 모든 정체성을 쇠약한 육체로 수렴시켜 문학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그의 쓰기에, 수십 년전 타자기를 두드리던 클라리시의 두 손에, 오늘 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의 움직임이 빚지고 있다.

『세상의 발견』을 읽는 동안 나는 독서보다 대화에 가까운 경험을 했다. 또한 작가로서 글을 쓰는 동안 가지게 되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한 대부분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질문보다 먼저 쓰인 대답인셈이다. 내내 많은 위안을 받았다. 클라리시는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라난 브라질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사회문제에 분노하며시위에 참여하였고 언제나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 많은 이들의의심이 뒤따랐을 테지만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참여문학이라 여기기도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친구의 아름다운 글을 자신의 글 안으로 초대하였고, 파블로 네루다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몹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

도 했으며, 구걸하는 자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지갑을 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수면제를 먹고 48시간 동안 잠들어버린다 말하는 젊은 여성에게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를 레스토랑에서함께 보내자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매사에 좋은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클라리시의 일상은 추상적이며 난해하다고 치부되는 그의 문장들과 별개의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의 깊이와 넓이를 통렬하게 감각하는 동시에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프로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77년, 세상을 떠나기 몇달 전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는 그에게 브라질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과 교류하는지 묻는다. 클라리시는 그렇다고 답한다. 인터뷰어가 브라질 작가 중 요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누구인지 묻자 클라리시는 이러한 호명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대답을 거절한다. 재차 인상 깊은 작품을 말해달라 요구하자 그는 단호하게 다시 거절한다. 그의 배려는 그가 아끼는 대상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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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계속 윤CAROL KAESUK YOON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현역 과학자였던부모님 곁에서 실험용 생쥐와 함께 놀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춘기가 오기 전에는 사랑이나 멋진헤어스타일의 힘보다 다양한 통계 기법에 더 빠삭해질 만큼 자칭 ‘과학의 젖을 먹고 자랐다. 과학자와 결혼했고, 친구들도 대부분 과학자이며 자신 역시 과학자가 되었다.

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후, 코넬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뉴욕 타임스》에 과학자들이 내놓은신기하고 경이롭고 새로운 발견들에 관한 글을 쓰며 보냈다. <사이언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도 기고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학자이자 저술가인 캐럴 계숙 윤이 온갖 생물의 이름과 질서를 연구하는 학문인 분류학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마주하게 된 뜻밖의 사실과 충격을 그려낸 이야기다. 인생의 가치관 그 자체였던 과학의 세계와 어릴 적 집 뒤편의 숲속에서 수없이 다채로운 동식물과 어울리며 느꼈던 직관적감각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기막힌 현장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2009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과학·기술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이 책은,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의 화제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보다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없다. 섬세한 관찰자이자 면밀한 과학자로서 저자가 길러낸 이 열매들을 즐겁게 맛보다 보면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될 것이다.
-룰루 밀러, 과학 전문 기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발굴된 고인류 화석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고민하는 과정은 고인류학에서 중요한 과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이러한 고민을 특별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 동식물의 이름을 익히며 즐거워하는 아이, 어떤 식물을 두고 풀인지 나무인지 구분하기 위해 말다툼하는 부부. 저자는 분류학의 역사를 꼼꼼히 파헤치며, 생명에 이름을 붙이고 비슷한 것끼리모으고 다른 것끼리 나누는 일이란 취미나 과학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몸짓에서 기원하고 진화했음을 깨닫는다. 살아 있는 존재를 느끼고 유심히 살피는 본능적인 감각에 관한 깨달음이 갈피마다 가득한 이 책은 무감하게 바라봐왔던 우리 일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준다.
-이상희,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인류학 교수, 『인류의 진화』 저자

생명의 세계에는 이미 질서가 존재했지만 자기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는 이른바 분류학자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류학이 발전할수록 생물은 사라져간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생물을 구분하는방식이 진화분류학, 수리분류학, 분기학으로 발전하면서 각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생명의 이름이 사라지는 사정을 소상히 밝힌다. 아뿔싸! 이젠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이한 일이다. 이름이 사라지면 지식이 사라지고, 이름이 사라지면 생명이 사라진다. 다시 지구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는 법. 각자 자기 세계의 생명에게 스스로 이름을 붙이는것이다. 물고기가 다시 헤엄치게 하자.
-이정모, 펭귄 각종과학관장,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저자

분류학에 관한 풍성한 지식과 살아 있는 존재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다. 분류학이란 다양한 과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종과 종 사이의관계를 밝히고 이름을 부여하는 학문이다. 그 분야의 지식을 저자는 물고기를 예로 들어 무척이나 흥미롭게 짚어낸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편에 서서 바라봐야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은 말 그대로 철학적 사유에 가깝다. 주체로서의 삶을 지탱하느라 망각하고 있는 우리의 본능을 ‘움벨트‘라는 개념을 통해일깨워 주기도 한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더 깊이 연결되어 있어야 세계의 진실에 가까스로 도달하게 된다는 것! 무릎을 치면서 배운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초록목록』 저자

진화생물학자 캐럴 계숙 윤은 우리가 이 세상의 경이를 바라보고, 만져보고, 귀 기울이고, 불완전한 우리만의 감각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다윈이 그랬듯 윤도 따개비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생물학과 전기와 민담으로 풍성하게 꾸려진 그의 책을 읽는 것은 감각적 환희를 선사한다.
-오프라 매거진 (0)

분류학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시각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이 책에서... 캐럴 계숙 윤은 분류학이 무슨 학문이며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었는지, 이 분야를 추동하는 동기는 무엇이고 거기 매진한 과학자들은 어떤사람들이었는지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분류학에 휘몰아친 수많은 이념의 파도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생생한 현장감까지 느낄수 있다.
--리처드 레인, 《네이처》

얼핏 따분해 보이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과학적 지식과 개인적 경험을재치 있고 산뜻하게 엮어내, 이렇게 재미있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런 걸 보면 윤은 아주 특출한 과학 저술가다. 최고.
-《커커스 리뷰》

재미와 통찰이 가득하다. 캐럴 계숙 윤은 각자 자신의 ‘움벨트‘를 되찾아보라고, 생명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라고, 그리고 생명의분류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다양성들을 있는 그대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보라고 권유한다. 낙관적이면서 신명 나고 혁명적인 책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 책은 과학이 생명의 다양성 속 깊숙이 자리한 질서정연함을 찾아내는방법을 어떻게 깨우쳤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린나이우스부터 에른스트 마이어와 빌리 헤니히까지 까칠한 인물들이 잔뜩 등장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데이비드 쾀멘, 『신중한 다윈씨], [도도의 노래」, 『진화를 묻다] 저자

정확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정말 주의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자연 속을 더 많이 걷고, 새들을 더 많이 관찰하고, 생명의 세계와 직접 더 많이 접촉해볼 것을 권하는 윤에게 우리 대부분이 찬사를보내게 될 것이다.
-아서 M. 샤피로, 《계간 생물학 리뷰anarty Beries of Bong)

60년이나 분류학자로 살아온 나도 이 책에서 린나이우스와 다윈 같은사람들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배웠고, 주변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분류학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생물학자, 탐조인,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즐겁게 읽을 것이다.
-폴 R. 에얼릭, 「진화의 종말』 저자

매혹적인 과학사이자, 자연이 지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의 실례이며, 인간이 내린 정의와 실제 생명의 현실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사려 깊은 검토.
-데버러 블룸, 『원숭이 전쟁 Monkey Wars』, 「사랑의 발견 Love at Goon Park] 저자

캐럴 계숙 윤에게 진짜 과학이란 생명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그러니까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생명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야외로 박차고 나가보라고, 생명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보다 생명의 경이를 직접 눈으로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 책은 숲속으로 들어가 그런 경이들을 탐험할 수 있게 독자들을 이끌 것이다.
-빌 던컨, 《오리건 커런츠》

"이름을 불러도 벌레들이 대답을 안 한다면이름이 있어 봐야 무슨 쓸모가 있니?" 각다귀가 말했다.
"걔들한텐 쓸모가 없지. 그렇지만 걔들한테 이름을 붙인 사람들한테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애초에 왜 걔들한테 이름이 생겼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나야 모르지" 하고 각다귀가 대답했다.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200년도 더 전에 과학자들은 생명 세계 전체 (꽥꽥거리고, 휙휙 지나다니고, 꽃을 피우고, 덩굴손으로 감아 오르고, 잎을 내고, 털이 복슬복슬하고, 초록이고, 경이로운 그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려는 과업에 착수했다. 처음에 내가 이 책에 대해 세운 계획은 단순했다. 바로 그 추구에 관한 글을 쓰면서, 오늘날 분류학taxonomy 이나 계통학systematics이라고 불리는 그 유서 깊은 분류의 과학에 관해 이야기할작정이었다. 과학자들이 생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모든 생명을포괄하는 하나의 계층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동물과 식물 및 그 밖의모든 생물을 나누고 무리 짓는 그 복잡미묘한 방식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과학자들 외에도 중앙아메리카 마야인부터 중세 중국인,
오늘날의 남아프리카 사람, 미국의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여러 집단이 생명의 세계를 체계화하는 특이하고 신기한 여러 방식에 관해서 - P19

도 쓸 계획이었다. 흥미를 자아낼 이 특이한 분류법들이 귀퉁이에서스며드는 한 줄기 빛처럼 재미있는 곁다리 정보를 더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류법들은 적어도 과학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틀렸다는것을 나는 기정사실로 여겼다. 과학적 분류도 불완전할 수 있고 아직많은 부분이 진행 중인 작업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생명의 세계를 체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실로 타당한 유일한 방법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명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일에서는 언제나 과학을 따라야 하며, 또한 한결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 P20

급기야는 과학이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쓰고 있던 것, 바로 생명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과학 자체가 훼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욱더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은, 완전히 현대적이며 철저하게 진화론적인 새로운 분류의 과학이 사실상 전 세계의 보통 사람들을 생명의 세계와점점 더 단절되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거의 아무도 눈치채거나 크게 염려하지 않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 여러 생물 종이 차례로 사라져가는 현 상황을 초래한 비극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다. 얼핏 부정확해 보이는 그 수많은 비과학적 이름과 범주(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네 주변의 생명들을 기쁘게기리며 만들어낸 질서의 체계)가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름과 범주는 각자 더없이 옳았으며, 그것들(그중어느 하나든, 당신이 원한다면 그 모두든)을 되살리는 일이 이 모든 상황을 치유하는 열쇠였다. - P21

숲속을 누비며 다니는 아이라면 누구나 아는 어떤 사실, 자기가 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아는 그 사실을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것도 바로 그 숲에서였다. 그건 바로 생명의 세계란 아무렇게나 뒤죽박죽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비슷한 것들끼리 무리를 이루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야생의 세계가 다양한 종류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각 범주 안에는 또 더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알아보았던 것에 이름이 있으며 그이름이 몇 세기나 되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이름은 바로
‘자연의 질서‘였다. 태고부터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관찰하고 집착해왔던 바로 그 자연의 질서. 그 사람들 대부분이 한 것처럼 내가 한 관찰 역시 세밀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회만 생기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쉽게 자연탐구가naturalist 가 된다.
내게 그 숲에 있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명백했고, 언제나 당연했으며, 아주 실제적이고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그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까마귀의 깍깍거림이 들리고, 내 발에 밟혀 나뭇가지가 부서지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었고, 맑고 파란 하늘만큼 명백한 것이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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