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으로도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허공


수천수만 번의 벼락도
나를 멍들게 할 수 없다

비어 있으므로

나는 자유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오만과 무능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

지옥에서 보낸 두 철


보았네

보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보다,의 지옥

인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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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쓰기에 내 삶을 바쳤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내게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묻는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들이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어렵게 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가르쳐줄 수는 없다. 그 과정과 구상이 내안에서 무르익어 표출될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쓰는 방법도 정확히는 모른다. 글쓰기는 문장 안에서 호흡할줄 아는 것이다. 독자가 필수적인 일종의 대위법 안에서, 나의리듬뿐만 아니라 독자 자신의 리듬에도 적응하면서 나와 함께서두르지 않고 호흡할 수 있도록 문장만큼이나 행간 사이에도약간의 침묵을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문장이 숨 쉬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 연습해왔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열다섯 살에는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P958

준비 과정이 길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상 과정이 빠르게 이뤄지기도 하니까. 내 준비 과정은 호흡하는 것을 배우고, 몇몇 사람이 문체라 부르고 나는 "자연적인 문체"라 부르는 내 글쓰기 방식을 스스로 배신하지 않는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내 교열자가 내 글의 단어를, 구두 - P958

점을 바꾸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내 교열자는 악센트 부호를 넣는 것이 전부인데, 그건 내가 계속 빠트리기 때문이다. 브라질리아에서 온 한 청년이 리우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전화상으로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는나를 만나서 내가 그에게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지 말해주길원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랑 만나기로 약속한 일요일, 나는 점심을 먹고 유감스럽게도 잠이 들었고, 그 청년은 떠나버렸다. 미안해요. 언젠가 나를 다시 찾아주세요. 그러나 지금 당장 그에게말할 수 있는 건 브라질에서 책을 써서 받는 수입으로 생활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방법은 기자가 되는 것과 다른 소소한 일을 하는 것이다. 소소한 일을 더하면 경제적으로 합당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수입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일들을 다 하면서 문학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내야 한다. - P959

주디스 역시 연극을 좋아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 자기를소개하면서 극장에서 예술가로 일하고 싶고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조롱했다. 모두가 경험이 없는 순진한 이젊은 여자 앞에서 자연히 다른 것을 상상했다.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직업도 없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거리를 떠도는 일뿐이었다.
결국 누군가- 어떤 남자였다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데려갔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가엾게 여기길. 주디스는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는 끝난다.
버지니아 울프는 묻는다. "누가 여성의 몸에 갇힌 시인의 뜨겁고 맹렬한 심장을 평가할 수 있는가?" - P968

베른


눈앞에서 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목격한 이방인은 어쩌면 신비를 밝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풍경은 아름다움의 증거를 너무 많이 제시하니까. 첫인상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다음에는 불가해한 느낌이 뒤따른다. 엽서 같다. 그러나 조금씩 그 부동의 상태가, 그 균형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본다. 무감각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벽들이 집들과 교회들을 한데그러모으는 이 마을에는 일종의 단호한, 내부 지향적인 집중이있다. 탑들과 골목길들과 뾰족뾰족한 아치들과 침묵이 있는 이도시에서 악마는 알프스산맥 너머로 추방되었을 것이다. 악마없는 도시에는 혼란스러운 평화, 개혁의 기치 아래서 가혹하게형성된 삶의 흔적, 느린 정복의 표시들, 완고하고 고통스러우며지속적인 광택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P1012

악마를 멀리 붙들어두려는 결의인가? 청결에 대한 너무도 스위스다운 욕망에서 배어나는 이 완고함, 땅 위에 공기의 투명함을 복제하려는 욕망, 준엄한 윤곽의 산이 지시하는 명확한 법칙에 대한 순종, 치명적으로 불순하고 무질서한 인간적인 것을 제물로 바치려는 의지, 질서는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도덕적 필연이다. 질서는 스위스 사람이 스위스에서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스위스 밖에서 스위스 사람은 그가 추방한악마로 인해 놀라고 방향을 잃는다.
거리에는 표정을 아끼는 고행자의 얼굴들이 있다. 그 평온하고 무거운 표정에는 맹신의 힘을 연상시키는 조용한 힘이 있다.
누군가 스위스는 군인이 아니라 전사라고 말했다. 스위스가 전사라면, 스위스 여자는 여전사다. 강인하고 굳건하고 강한, 어떤희생에 바쳐지는 존재. 그녀는 대성당에서 열린 콘서트에 있다. - P1013

화장기 없고, 냉정한 그녀는 목을 축이면서 오르간 소리와 합창단의 날카로운 목소리, 이 민족의 근엄한 기쁨에 맞는 순수한 음악을 들으며 기쁨을 살짝 드러낸다. 그녀는 의자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 있다. 그녀는 약간은 근엄하고 이해하기 힘든 모습으로남아 있을 것이다. 꽉 막힌 매력 없이, 때와 장소를 아는 일종의청교도적인 우아함을 지닌 채, 하지만 허영심을 부끄러워하는옷차림에 반기를 들면서,
이 부끄러움은 봄에 극복되어 조금은 대담해진다. 환한 블라우스와 어두운색 원피스에 작은 주름 깃 장식들이 나타나며, 빛을 받아 섬세한 여성성이 돋보인다. 노인들은 정원의 자리를 차 - P1013

지한다. 그곳은 존경할 만한 노인들의 땅이다. 그들은 벤치에 앉아서 반짝이는 호수와 눈 덮인 알프스, 상냥하고 쾌활해 보이는각각의 나뭇가지를 응시한다. 그러다 여름이 온다. 미지근한 향기 속에서 선들은 더욱 선명해지고, 꽃들은 더 서둘러 난폭해지며, 바람은 결국 조금의 먼지를 일으킨다. 놀이, 놀이, 놀이-그것은 악마 없는 개화다. 가을이 오면 물 색깔이 짙어진다. 사냥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사람들은 사냥 고기를 산다.
산, 표면, 작은 형태, 모든 것은 더 차가워진 바람 아래 태양 없이빛난다. 집이 아늑해진다. 그러고 겨울이 온다. 놀이, 놀이, 놀이.
그러나 지금은 다시 봄이다. 우리는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베른의 다리 아래에 얼어붙은 강이 가볍게 달린다. 빛과 고요와신비, 그것이 내가 베른의 창문으로 본 것이다. - P1014

옮긴이의 말

‘리스펙토르‘라는 세계


"카프카가 여성이었다면, 릴케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브라질인이었다면, 랭보가 어머니였다면……."
작가, 엘렌 식수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수식했던 말이다. 카프카, 릴케, 랭보, 이 커다란 이름들 옆에 리스펙토르를 나란히 두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나는 그들을 모두 지우고 남은 말들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여성,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브라질인, 그리고 어머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그가1946년부터 1977년까지 30년 동안 브라질 언론에 칼럼니스트로서 썼던 글들을 여기 모았다. 1967년에서 1973년까지 매주 토요일, 일간지 <조르나우 두 브라질>에 연재했던 칼럼들과 미출간된 글 120편 이상을 함께 실은 이 작품집은 사실상 리스펙토르 문학의 원재료라고 말할 수 있겠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삶, 글쓰기에 대한 사유, 독자와의 소통,번역가로서의 면모, 또 그가 만난 인물들까지 리스펙토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풍경들이 이곳에 담겨 있다. - P1021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텍스트‘의 개념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엘렌 식수가 설명하는 ‘여성적 글쓰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엘렌 식수는 「출구」에서 "오늘날 글쓰기의 여성적 실천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여성적텍스트의 규정이라는 것이다. 분석하고, 명료화하는 것이 규정이라면 여성의 텍스트는 그 반대편에 있다. 분석될 수 없고, 명료화할 수 없으며, 기존의 체계로 분류할 수 없는, 남성 중심적언어와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글. 여성의 텍스트는 존재 자체가 전복이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문학은 그 전복된 세계에 위치한다.
식수가 말하는 "자신만의 경험으로 언어를 소유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여성적 글쓰기"를 리스펙토르는 직관과 본능의 글쓰기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를 길들인 언어가 존 - P1022

재하기 이전 혹은 그 언어 너머의 세계를 향하는 방식으로 실현한다. 언어가 탄생하기 전에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감각했을까.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세계를 무엇으로 명명할까. 그의글은 이 두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언어를 해체하며 새로운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가 가닿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남성적 세계를 깊은 당혹감에 빠뜨리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수정하도록 이끌며, 우리의 원시적 감각을 깨운다. 목소리는 지금까지 배제되고 제한된, 우리가마주한 적 없는 존재들이 있는 장소들을 가리킨다.
익숙한 이곳이 아니라 낯선 저곳, 법칙 안이 아닌 바깥, 우리를통제하는 장치들(규칙, 해설, 설명 등)이 일소되는 곳. 바로 그곳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세계이다.  - P1023

그 꿈은 일종의 슬픈 강박이었다. 꿈은 중간부터 시작됐다.
살아 있는 젤리가 있었다. 그것이 젤리의 감정이었다.
고요했다. 살아 있는 고요한 젤리는 힘겹게 테이블 위를굴러다녔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천천히, 넓게 퍼지지않고, 누가 그 젤리를 잡을까? 아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가 젤리를 봤을 때, 나는 내 얼굴이 반사되어 젤리의삶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을 봤다. 나의 변형은중요했다. 나는 녹지 않고 형태만 변했다. 나도 기껏해야숨만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포 속에 욱여넣어진 나는 내사본으로부터 원초적 젤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했고, 테라스로 나가 마지막 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 P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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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지금 이 순간을 떠도는 행려들의 꽃핌을 위하여.
위하여,라고 기어코 쓸 수 있기 위해 수없이 발목을 삔
갸륵한 의지의 몽유를 위하여.
그리하여 찾아낸 바로 당신을 위하여.

2016년 4월
김선우

花飛,그날이 오면


길 끝에 당도한 바람으로 머리채를 묶은 후
당신 무릎에 머리를 대고 처음처럼
눕겠네 꽃의 은하에 무수한 눈부처와
당신 눈동자 속 나의 눈부처를
눈 속에 모두 들여야지
하늘을 보아야지
당신을 보아야지
花, 飛, 花, 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

그날이 오면
내게 필요한 건
이름 붙이지 않은 꽃나무 한 그루와
당신뿐
당신뿐
대지여

소울메이트


1

반쪽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반쪽 어둠을찾아 영접하는 것이다.

영혼은 본래부터 완전하였다.


2

영혼의 혈거

그 바닥엔

우주먼지로 지어진 밥상 하나

그 위엔

먼지의 밥 한 그릇 숟가락 두 개

바라보며 나누어 먹으며 가끔 입가를 
닦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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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심한데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는 혼자 있고 싶다! 소심한 영혼의 비명은 고독 속에서만 나온다. 역설적으로 영혼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를 원한다. "자, 카를루스, 인생에서 왼손잡이가 될 거야." (내가 드루몽의 시를 제대로 인용했는지 모르겠다. 외워서 쓰는 것이다.)
그리고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고문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이 돈으로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아는 사람처럼 자신감이 있는 척 자기를 드러내야 할까 아니면 어설프고 과한 겸손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인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소심한 사람들의 대범함이 있다. 갑자기 대범해져서 공격하는 듯한 단호한 어조로 월급 인상을 요청하다가 금세 당황해 불편함을 느끼고, 월급 인상은 과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매우 불행해지는 것이다. - P806

비 오는 날은 게을러진다. 글을 거의 쓸 수 없다. 지난번에는주말을 보내러 프리부르구에 갔다. 비가 왔고 여기서처럼 게으름뱅이들을 봤다. 내게는 지나친 모습이었고, 그걸 보니 잠을 자고 싶어졌다...... 완전히 젖은 게으름뱅이들이었다. 그들은 꼼짝하지 않았고 게으름에 죽어갔다. 그들에게서 동물의 냄새가났다. 거의 무색에 가까운 돌 색깔이었다.
프리부르구는 멋지다. 우리가 머물렀던 집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말, 닭, 자보치카바, 데이지, 레몬, 장미 같은 것들. 빵을 굽는 오븐도 있었다. 진짜 농장이었다. 도시는 달라 보였다. 나는버스 터미널에 가서 <조르나우 두 브라질>을 사서 드루몽의 글을 읽었다. 후추로 양념한 수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돼지고기어깨 살로 만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토요일에 있었던 일로, 그날은 나를 위한 날이었다. 나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너무도 현실적인 꿈을 꿨고, 일어나서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 배고파서 밥을 먹고 다시 잠을 잤다. 내가 꿈꿨던 것은 어떤 남자와 나였던 여자였다. 꿈속에서 나는 약속이 있었고 약속에 늦고 싶지 않았다.  - P809

자연은 모두 게으르다. 말은 계속 먹다가 지금은 운다. 귀뚜라미 소리도 들린다. 달콤한 플루트 소리도 들리는데 바흐인지 비발디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새벽 4시, 조용하다. 이제야 두꺼비들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미 커피를 마셨고, 담배를 피운다. 이 집에는 그림이 없다. 카부프리우에는 예를 들어 스클리아르, 주앙 엔히키, 주제 지 도미 같은 사람이 있었다. 스클리아르는 황토색을 좋아하고 주앙 엔히키는 초록색을, 주제 지 도미는노란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름다운 수프 그릇이 있다. 내 타자기가 그립다. 나는 타자기를 두 개 소유하고 있다. 하나는 올리베티이고 다른 하나는 올림피아인데, 나는 올리베티를선호한다. 그 타자기가 타자감이 더 단단하고 뻑뻑하기 때문이다. 나만 빼고 모두 잠이 들었다. 이곳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말굽이 있다. 배고픈 새들이 지저귄다. 여기 있는 것이 이토록 좋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내게는 심농-내가 미치게 좋아하는 작가다의 책이 한권 있는데 프랑스어로 읽는 게 더 좋지만 이곳에는 포르투갈어로 된 번역본밖에 없다. 한 문장을 인용해보겠다. ‘커다란 빛줄기가 방을 가로지르면서 가느다란 먼지들을 밝힌다. 마치 공기의 은밀한 삶을 드러내듯이." 아름답지 않은가? - P812

1972년 11월 18일


글쓰기

문장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장은 탄생한다.
- P819

나조차도 내가 써야 할 시간을 계산해보면 깜짝 놀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나는 확신한다-이것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산다는 것을 뜻한다. 하루, 한주, 한 달, 한 해란 단지 시간을 쌓아나가기만 하면 된다. 한 영국인이 그 계산을 했는데, 그의 이름은 모른다.
1년은 365일이고, 8,760시간이다.
하루에 수면 시간 여덟 시간을 빼자. 이제 일주일에 5일, 하루에 여덟 시간씩 49주 동안 일한다. (최소 휴가 기간 2주에 약 7일의 휴일을 빼야 하니까.) 직장이 멀리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이동하는 데 필요한 두 시간을 빼자.
그렇게 계산하다 보면, 1년에 1930시간이 남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혹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한 1930시간. 인생은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길다. 매 순간이 중요하다. - P819

발걸음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더 가까워진다. 현재 아주 가까이에서 울린다. 더 가까이. 이보다 더 가깝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내게 가까워졌다. 그러나 계속 다가온다. 이제는 더 다가오지 않는다. 걸음은 내 안에 있다. 걸음은 나를 지나쳐서 계속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나의 바람이자 나의 경의다. 거리를 어떤 감각으로 지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걸음이 가깝지 않고 무거운 것을 보아하니 이제 걸음은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걸음과함께 걷는다. 나는 가담했다. - P832

삶의 과정은 실수-대부분 중요한 실수들이다-용기와 게으름, 식물 같은 주목을 끌기 위한 희망과 절망, 아무 곳도 아무것도 아닌 데로 이끌리는 지속적인 감정(생각이 아니다)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러다 느닷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삶의 성역과의 두렵고 고유한 접점이 된다-그 인식의 순간(깨달음과 같다)을 우리는 가장 커다란 순수함으로 우리를 이루는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정은 어려운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꽃이 만들어지는 매우 까다롭고 자연스러운 방식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 소년이 말했다. 바다는 아름답고, 파란색에 녹색이 섞여 있으며 파도가 있어요! 바다는 모두 저절로 만들어졌어요! 누구도 바다를 만든 적은 없어요!) 엄청난 조바심은(식물이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보 - P832

다가 아무런 변화도 보지 못했을 때의 조바심은) 식물과 관계된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창피한 인내심과 관계된 것이다. (식물은밤에 자란다.) 우리가 "이렇게는 1분도 못 참겠어" 또는 "저 시계공의 인내심이 나를 짜증나게 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참을성 없는 참을성이다. 그러나 식물의 참을성, 쟁기를끄는 소의 참을성은 더할 나위 없이 우직하다. - P833

한번은 누군가 내게 인생의 첫 번째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인생의 순간들에 있어서 각각 첫 번째 책이 무엇이었는지를말하고 싶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 보물을 손에 들고 있었던 감각이 거의 느껴질 정도다.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와 알라딘의 램프 이야기가 담긴 매우 얇은 책이었다. 나는 그 두 이야기를 읽고또 읽었다. 아이는 책을 한 번만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아이는 거의 외울 때까지 읽는다. 아니, 아예 달달 외우고, 처음읽는 것과 똑같은 흥분으로 다시 읽는다. 예쁜 오리들 사이에서자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는 나중에 자라면서 비밀이 밝혀진다. 오리 새끼는 오리가 아니고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였던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고, 미운 오리 새끼의고통에 나를 동일시했다 어쩌면 나는 백조였던가? - P840

알라딘의 경우에는 내가 믿었던 불가능한 세상의 끝을 향해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불가능은 내가 닿을 수있는 곳에 있었고, "원하는 것을 말하세요.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라고 말하는 지니를 상상하면서 꿈에 빠져들었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어느 날 지니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상상을 했다. "원하는 것을 말하세요." 그러나 이후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하는 것에 도달하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됐다. - P840

그러다 어느 날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라는 제목의 책을고르게 됐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잭 런던 스타일의 모험소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더더욱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읽었던 그 책은 모험 이야기이되 꽤나 다른 모험이었다. 열세살에서 열네 살 사이에 짧은 이야기들을 이미 써봤던 나는 헤르만 헤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를 따라 하며 긴 이야기를 쓰기시작했으니까. 내면의 여행이 나를 사로잡았다. 커다란 문학을 만났던 것이다. - P842

열다섯 살에 내가 경험했던 인생에서 나는 일을 해서 처음으로 번 돈을 들고, 돈이 있으니까 자랑스럽게 서점에 들어갔다. 서점은 내가 살고 싶은 세계였다. 나는 서점에 진열된 거의 모든 책을 뒤적였는데, 몇 줄을 읽어보다가 또 다른 책을 펼치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책들 중 하나를 펼쳤는데 거기엔 너무도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고, 그래서 그 책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감동하여 말했다. 이 책은 나잖아! 깊은 감동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억누르면서 그 책을 샀다. 그러고 난 후에그 작가가 아주 무명이기는커녕 그 시대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 P842

희망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까?

그러나 온갖 것에 희망이 있다면 그 일은 성취된다. 그러나 희망은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 희망은 이 순간이다. 어떤 희망에 - P859

는 다른 이름을 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 말은 무엇보다 기다림을의미하니까. 희망은 이미 여기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표현의 어려움

표현이 가능하도록 어쨌거나 거기 있는 뭔가를 찾는 어려움은맹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커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커피는 말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진 않지만 감정적 해방 행위를 상징하기는 한다. 그것으로써 내가 무상으로 해방된다는 뜻이다. - P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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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도심 한복판에서 별안간 당혹스러워질 때가 있다. 휴대전화를 목에 걸고 혹은 귀에 대고 서로를 지나치는 인파 속에서, 무어라 무어라 끊임없이 발신되는 말들의 홍수 속에서, 자동차 소리와 온갖 기계들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고 허둥거릴 때, 되묻게 된다. 이 넘쳐나는 소리들 속에서 우리는 정작 소리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침묵으로부터 말을 분리시킴으로써 우리의언어는 버림받은 고아의 말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도심에서 지쳐 돌아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펼친다. 「침묵의 세계는 한번에 완독할 필요도 속독할 필요도 밑줄쳐가며 주석을 달 필요도 없는 책이다. 필요와 효용성이 가치의우선 척도가 된 오늘날, 아무런 효용성도 생산성도 없는 ‘침묵‘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가장 무용한, 동시에 참으로 유용한 책.
‘나‘라는 덧문이 너무 자주 여닫혀 소란스러워질 때, 아무 문단이나 펼쳐 허공에 띄워놓고 그 느릿느릿하고 절제된 사유가 만 - P215

드는 아름다운 소롯길을 걷는 즐거움이란! 그러나 그 즐거움의이면에는 이 지독한 소음의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아니,
철저히 버려져 자유롭기를 원하는 자의 응집된 고뇌가 있다.
그리하여 얻어진 소금결정 같은 말들이 소란스런 내 혀를 각성시킨다. "침묵하는 풍경, 그것은 인간의 얼굴 속에 들어오면말하는 침묵이 된다. (...) 오늘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떠한 바다도산도 없다. 얼굴이 더이상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밀쳐내버린다. 얼굴에서 나무들이 베어져나가고, 산은 파여없어지고, 바다는 말라붙었다. 그 텅 빈 얼굴 속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하나의 페이지를 허공에 띄워놓고, 시간과 사랑과 꿈과 보이지 않는 신의 얼굴을 상상하다가 나는 오래 전나를 이루었던 바다와 숲이 그리워진다. 자연의 소리가 속삭이던밀어를 떠올린다. "침묵해요. 당신이 나의, 내가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 - P216

당신과 나 사이에 웅덩이가 있다. 어떤 말씀. 어떤 행위가 있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아득한 심연의 웅덩이-‘침묵의 세계‘ 가우리 사이에 놓여 있다. 고여 있는, 그러나 내부로부터 부드럽게 유동하는 그 세계로부터 말이 자라나고 말의 봉오리가 벌어진다. 침묵의 웅덩이 속에서 두근거리는 말의 구근. 침묵에 젖줄을 댐으로써 육체를 얻은 인간의 말은 침묵에서 나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말의 어머니인 침묵을 경청하는 시간이 우리 - P216

에겐 얼마나 절실한가. 그리하여, 침묵 자체가 말하게 하는 일!
그러니 내 혀가 창조해야 할 것은 언어가 아니라 침묵일지도 모른다. - P217

알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사람들은 창이 넓은 집을 좋아한다. 큰 창을 가져볼 기회가 드물었지만 나 역시 커다란 창문이 있는 집을 꿈꾼다. 창은 햇빛과 만나면서 비약적인 매혹의 순간을 낳는다. 창문 앞에 놓인꽃병 하나를 생각해보자. 오전에서 오후에 이르까지 시시각각변화하는 빛의 질감과 각도에 따라 꽃병은 제 속에 간직한 무수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빛과 창의 마술 속에서 꽃병의 형상은 깊은 우물이, 아름다운 여체가, 다알리아 구근이, 주름살 빼곡한 노파의 옆얼굴이 된다. 흙의 질감과 그것을 구워낸 불의열기가 느껴지고 그 열기가 전해주는 규정할 수 없는 슬픔과 사랑이 ‘꽃병‘이라는 딱딱한 기표를 무화시킬 때, 권태로운 생의한순간이 돌연 싱싱해진다. 그리하여 나는 창을 사랑하고, 창앞에 놓인 사물들이 그들에게 규정된 이름과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기표와 기의가 교란되는 순간의 즐거움. 이를테면 오독(誤讀)의 즐거움?! - P218

보르헤스의 소설은 나에게 오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그의 여러 단편집 중 픽션들』과 『알렙은 정교하게 세공된 꽃병이 놓여 있는 창을 바라보는 일처럼, 여러번 읽어도 매번 새롭다. 그 즐거움의 어느 굽이에서 나는 돌연 머릿속이 텅 비는 서늘함을 느끼고, 그 자체로 ‘미궁‘인 세계의 다양한 이면들과만난다.
그의 소설에는 신, 영원, 우주, 시간과 신비라는 형이상학적주제가 넘쳐나지만 그가 보여주는 형이상학의 세계는 고답적이지 않다.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직관과 상상력으로 육박해가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알수 없는 근원. "그리고 나는 ‘알렙‘을 보았다. (...) ‘알렙‘의 직경은 2 또는3센티미터에 달할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전공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나의 사물은 무한히 많은 사물이었다. (...) 나는 모든 각도에서 ‘알렙‘을 보았고,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고,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을 보았다.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너의 얼굴을 보았다." - P219

죽은 애인의 사촌 집 지하실에서 발견한 알렙은 동전 크기만한 무한 시공체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그 터무니없음‘의 힘으로 ‘어떤‘ 진실에 육박해가는 법이다. 알렙을 발견하는 순간의 행간을 읽어가면서, ‘일중일체다중일(中切多中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을 말한 동방의 현자를 떠올리는 것은 내 오독의 편향일까. 꽃병 속에 화엄이 있고 당신의 얼굴 속에 알렙이 있다. - P220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어빙 스톤


겨울 전등사에 갔다가 소나무 밑둥치에 붙어 있는 매미 유충의 껍질을 보았다. 검지 한마디만한 바싹 마른 얇은 껍질에는여섯 개의 발이 오롯하게 남아 나무껍질 틈새에 단단히 발톱을박아넣고 있었다. 오랜 시간 땅속에 머물다 지상에 나온 어느날자신의 등을 가르고 여름햇살 속으로 날아올랐을 매미는 짧디짧은 생의 시효를 다하였을 것인데, 겨울바람 속 메마른 껍질하나가 증거하는 생의 흔적이 아찔하다. 
차갑고 어두운 겨울숲 밑자리, 매미 유충의 껍질로부터 돌연끼쳐오는 빛과 열기의 폭풍. 나는 고흐를 떠올린다. 그가 그려낸 해바라기와 붓꽃과 아를르의 지글거리는 태양과 타는 밀밭, 꿈틀거리는 나무들엔 또다른 빛이라고 할, 어둠이 스며 있다. 그의 화폭에서 터져나오는 자연의 광휘는 지독히 인간적인 통증으로부터 피어난다. 우리가 ‘예술혼‘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으로부터 분리된 예술에 대한 이상화된 열 - P221

망이 아니라 벼랑 끝에 부려진 생의 매순간을 끌어안아 창조의힘으로 전이시키는 견인주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빙 스톤이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고흐의 생애가 감동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고흐를 위대한 예술혼을 부여받은‘ 천재화가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사랑받기를 원했고 어둡고 가난한 땅에서 소외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길 원했으며 굶주림과 외로움, 때로 배신감으로절망하는 고흐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난 태양을 그릴 땐 태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보리밭을 그릴 땐 보리알 안에 든 원소 하나하나가 영글어 터지는최후의 순간을, 사과를 그릴 땐 사과의 즙이 표피를 밀고 나오려는 것을 중심에 있는 사과씨들이 그 자신의 결실을 맺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어." 절망과 희망이 깍지끼고 자신을 밀어가는 ‘산것‘들의 치열한 리듬- 운동성이야말로 최초이자 최후의 생의 조건 아니던가. - P222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린 때로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기까지의 9년 동안 그가 남긴 그림은 879점이었다. 1년에 거의100점의 그림을 그린 셈인 화가로서의 그의 지상의 9년은 그무시무시한 열기만으로도 자신을 내파(內破)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 그리면서, 그를 이해한 유일한 벗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고흐는 쓴다. "어디까지가 습작화이고 어디부터가 본격적인회화인지 잘라말하긴 어려워. 그저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그리고, 결점도 갖고 우수함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기로하자." 생의 매순간은 생의 전부이다. 영원이란, 찰나에서 찰나로 거듭나는 생의 매순간이다. - P223

「창백한 푸른 점」 
칼 쎄이건


고등학교 1학년 지구과학 시간이었다. 암청빛 칠판에 선생님이 분필로 작은 점 하나를 ‘쾅‘ 찍었다. "이것이 지구다!" 맙소사. 저 작은 점 속에 깃들인 숱한 생명 중의 하나가 ‘나‘ 라니! 호명할 수 있는 태양계의 별들을 모두 그려넣어도 칠판 한구석에동전 크기만하게 옹크린 저 세계 속에 내가 있다니! 칠판이라는우주 위에 작은 점 하나로 치환되어 나타난 지구는 열여섯의 나를 미열에 시달리게 했다. ‘나‘를, ‘인간‘을, ‘지구‘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데 길들여진 내게 암청빛 칠판이 보여준 거대한 우주는 어떤 막연한 두려움과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천문학자 칼 쎄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일상의 속도 속에서 잃어버린 우주에의 꿈을 복원시킨다. 동시에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화두를 던진다. 또다른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비유하고 있는 바, 약 150억 - P224

년의 나이를 가진 우주의 역사를 달력의 1년으로 줄인다면 지구의 탄생은 9월 중순 어느날 일어난 사건이며 그후 10일쯤 지나최초의 생물이 싹트며 인간의 조상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12월 마지막 날의 마지막 15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가 탄생하기 훨씬 전에 무수한 별들이 있었고 인간이 탄생하기 전에 무수한 생물들이 이 별의 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듯한, 인간을중심으로 생명들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종종 빠진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가 수천억을 헤아리는 수많은 은하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이 평범한 우리 은하 속에만도 4천억개 가량의 별들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 지구는 극히 미미한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경쟁과 정복과 착취로 얼룩져온 인간의 역사는 무슨 의미일지. 이 작은 점 위에 빼곡하게 구획된 지독히 인간중심적인 영토들 인종, 국가, 민족, 지역과 가족의 성곽이 서로를 경계하며 벌이는 아귀다툼은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사랑하기에만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도 짧다. - P225

별을 바라보자. 저 무한의 빛들이 지지배배거리며, 자그락거리며, 몸 비비는 소리를 들어보자. 우리가 머무는 이 찰나의 순간에 닿기 위해 무수한 별들의 몸을 스쳐 수십, 수백만 광년을달려온 저 별빛. 어쩌면 저 별은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내게 닿는 사이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죽은 별이 오늘의 내게 보내오는 속삭임.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을하러, 나는 날마다 이 별로 온다. - P226


장 그르니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타인에 의해 생긴 것이든 내 속의 무수한 나에 의해 생긴 것이든, 상처는 우리의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물질성이며 환영(幻影)이다. 가장 권태로운 삶 속에서도 상처는 끊임없이 환생한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는 상처의 영혼을 불러내고 치유를 위한 비나리를 거듭할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이자 선택받은 존재들인 셈이다.
일상의 어느 결에서 문득 상처가 만져질 때, 한권의 책이 나를 치유하는 경험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상상력을 자극한다거나 새로운 지식을 준다거나 정신을 각성시키고 들끓게 하는 좋은 책은 종종 있으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책은 그리많지 않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내 상처의 덧난 자리에 고요하고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치장이 없는 맨얼굴로, 말보다는 침묵으로, 섬세하지만 결코 도망가는 법 없이 섬의 뿌리가 나의환부에 닻을 내린다. 그 순간, 뿌리와 환부가 만나는 그 순간이 - P227

그르니에의 글에서는 인식과 사유 이전에 영혼에 직접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름다운 에쎄이들은
‘문학적‘이기보다는 ‘음악적‘이다.
그리하여 나는 선율을 읽듯, 내 젊은날의 어느 캄캄한 모퉁이를 지날 때 주문처럼 떠오르던 아름다운 멜로디를 읊조려보는것이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28

나는 샤먼이 되어,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아득한 미래의 어머니가 되어, 몇개의 문장을 입속에서 굴려본다. 말들의 틈에서유연하게 파동치며 배어나온 빛살이 내 혀끝에 둥근 환약 한알을 올려놓는다. 나는 머뭇거리며, 마침내는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 삼킨다. 아, 내가 상처라고 믿었던 것들의 영원한 흥취와 덧없음이라니! 나는 애초에 상처로 지어진 집이며 그리하여 새로이 얻은 상처란 없는 것이다.
세계의 헛됨을 아는 그르니에의 문장이 만드는 지극히 아름다운 울림 속에서 나는 느릿느릿 산보를 한다. 가장 일상적인것들이 보여주는 낡음 속에서 빛나는 ‘공(空)‘의 매혹. ‘비어 있음‘은 슬픔도 쓸쓸함도 그 무엇도 아닌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그 무엇인가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세상을 껴안는다. "나는 저 - P228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그르니에가 사랑한 고양이 물루가 창틀에 턱을 괴고 속삭이듯이. - P229

「유마경」


"거사님, 이 병은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났습니까?" "일체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이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오래 전 내가 유마힐에게 매혹된 것은 문학서나 철학에쎄이들에 간혹 인용되던 이 문답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떤 ‘통증‘을동반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으며 동시에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환기하는 전언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상상했던 유마힐은 일체의 생명 가진 것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동참하고 함께 아파하는, 섬세한 영혼의 시인이자 대속자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경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른 빛깔의유마힐을 만났다. 스스로 최고 경지의 불법을 얻었으면서도 재가신도로 남아 중생이 앓는 병을 함께 앓으면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 유마힐은 자기의 방에 수많은 방을 들인 광장의 구도자였다. 다른 경전들이 보이는 비교적 순연하고 온건한 말하기 방 - P230

식이 아니라 쾌도난마하는 논객이며 자유분방한 비판자로서의유마힐. 그는 어떤 보살의 권위에도 주눅들지 않고 심지어 붓다앞에서조차 논리정연한 설법과 영감에 가득 찬 게송을 노래할줄 안 자유로운 철인(哲人)이었다.108『불가사의해탈법문』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유쾌하고 판타스틱한 불경은 『천일야화』만큼 재미있고 『우파니샤드만큼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동시에, 듣고 읽는 이로하여금 의외의 친밀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아마도 이 경전이대승불교의 사상 위에 성립된 것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연결될터이지만, 신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이미 깨달은 자보다는 깨달음에 들고자 소망하는 이들에 대한 공경의 자세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231

여러 종교의 많은 경전들이 인간의 상상력의 문학적 보고라고 할 수 있지만 「유마경」은 인간사의 다양한 곁가지들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이를테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사리와 유마힐이 벌이는 문답과 토론의 장에서 나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겅중겅중 시공을 건너뛰어 철학의 황금기를구가하던 옛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로 건너간다. 자유분방한비판과 토론의 문화 속에서 비옥하게 영글던 언어의 열매들과절대권위에 물음표를 던지는 열린 정신들이 그립고, "그대는 어찌하여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가"라고 묻는 사리불에게 남녀를 차등지어 분별하는 그릇된 분별심을 깨닫게 하는 천녀의 - P231

설법이 또한 통쾌하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며 생사가 곧 열반 인, 번뇌를 품은 일체중생의 몸을 부처의 씨앗으로 귀히 여기는 지극하고 도저한 정신들이 그립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쓴, 설산의 고독과 광장의 싸움을 온몸으로 실천한 만해의 눈빛처럼. - P232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


모란공원에 간다. 그곳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죽은, 아직도스물두살인 전태일이 있다. 그리고 문익환, 박영진, 박래전, 성완희, 문송면, 김귀정, 조영래..... ‘민주열사 묘역‘에 들어서는데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밥이 되지 않고, 알콩달콩 생활의 잔재미를 북돋우지도 못하는 ‘기억을 더듬으며 저들과 나는 왜 이곳에 오는가. 5월과 11월이면 밀린 부채를 탕감하듯 나는 왜 서둘러 묘지를 찾는가. 묘지 부근에서 유독 살지게 자라는 나무들, 붉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움켜쥔 적단풍나무 줄기에 이마를 댄다. 어떤꿈을 덜고 어떤 꿈을 더하러 우리는 묘지로 오는가……
고백하건대, 어떤 ‘책‘을 읽고 눈물 흘려본 기억이 있다면 내겐 이 책이 유일하다. 그것은 좋은 책이라든지 감동적인 책이라든지의 범주를 넘어선, 날것 그대로의 아픔과 분노가 촉발시킨 눈물이며 그때의 눈물은 카타르씨스의 둥근 포용성이 아니라 - P233

날카로운 예각으로 나의 내부를 찢으며 온다. 어린 스물에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와서 내 바깥의 ‘나들‘
을 깨닫게 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간적인‘이라는 말이 빚는 빛과 그늘의 웅덩이를 들여다보게 하였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초등학교조차 졸업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 속에서 전태일이 남긴 빼곡한 일기속에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분노와 탐구와 희망과 고통받는 어린 생명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지극한 사랑을 품은 댓가로 그는 스물두살의 나이에 분신 산화하였다. 1970년 11월 13일. 그리고 시작되었다. 그 이전엔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대자적 인식이 인간의 조건을 각성한 ‘노동운동‘의 격류가. - P234

우리는 흔히 ‘평균적‘으로 살 만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배불러도 단 한명의 굶주린 이가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바로 이 땅에서, 가까이 북녘에서, 몸팔러 고향을 떠나온이국의 노동자들 속에, 제3세계에 가해지는 숱한 폭력과 착취속에, 이 막돼먹은 세계 속에 순연한 ‘긍정‘이 놓일 자리는 불행히도 없다. ‘자기부정‘과 ‘부정‘을 ‘부정‘하여 도달한 ‘긍정‘의좁은 문이 있을 뿐.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스스로를 태운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 전설의 새처럼.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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