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막 시작되는 어느 날,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책 읽을 수 있는 하루를 통째로 얻은 날이라 기분 좋게 사 둔 책을 들고 서재 소파에 앉았다. 한데, 기분이 묘하게 어지러워서 책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그 어지러움의 정체가 무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채 열댓 장을 넘겼는데, 꾸역꾸역 읽어내려 가는 글들이 손에 든 모래알처럼 뇌에서 흘러나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책이 재미가 없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저자의 책인 데다 전개 방식도 꽤나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즐겁지가 않았다.

 

 책갈피도 끼우지 않은 채 그냥 책을 덮었다. 뭘까? 뭐가 문제인 걸까? 특별히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미뤄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골치 아픈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책에 빨려들지 못하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서 다른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읽지 않은 책들을 주욱 훑는데, 당혹스럽게도 아무 것도 읽고 싶은 게 없었다. 그 책들을 골라서 살 때만 하더라도 빨리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는데... 

 

 순간, 어지러움의 정체가 나를 확 덮쳤다. 이럴 수가... 지금 나는 ‘책’이 재미없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책 읽기’가 재미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책 읽기가 재미가 없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 서재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그동안 내가 읽었던 잡다한 책들을 쳐다보면서 내가 저걸 도대체 왜 읽었던 걸까, 갑자기 막막해졌다.

 

 글자를 깨친 그 순간부터 책 읽는 것이 늘 행복하고 즐거웠다. 책 읽기는 그 자체가 행복한 삶과 동일한 목표였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그 생각거리들을 가지고 사유하는 즐거움은 정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알아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늘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읽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책 읽는 일이 재미가 없다니...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까닭을 찾았다. 그러기를 사나흘.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소통하지 못하는 책읽기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처음 며칠은 그 ‘소통 부재’가 ‘내가 읽은 책을 함께 이야기 나누어줄 사람이 없음’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소통은 세상과, 현실과, 삶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이십 대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는 것을 꽤나 즐겼다.

 그런데 삼십대 초반 즈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끔찍하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다. 감성보다 논리가 앞서고, 삶의 이해보다 판단이 앞서고, 주의와 주장에 현실을 끼워 맞추고, 내뱉는 말을 회의하지 않고, 자기 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주장하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 나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했다. 나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내뱉고, 그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시 또 다른 말들을 내뱉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내게 필요한 것은 사유였다.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심할 수 있는 여유가, 회의를 뒷받침해줄 철학이 간절히 필요했다. 나는 내 삶을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오랫동안 해왔던 일들을 다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접었다.

 

 그렇게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살면서 솔직히 나는 오랫동안 행복했다. 책과 만나는 시간들이 즐거웠고,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들이 늘 충만한 기쁨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알겠다. 그 시간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세상과 소통하던 시간들이 남겨준 결과물이었다는 걸. 책 속에는 길이 없다. 그 길은 늘 세상 속에 있다. 소통할 세상을 뒤로 한 채 얻는 지식이 얼마나 큰 짐이고 고통인지 절절히 깨닫는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 내려갈수록 나무들은 생채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너무도 멀쩡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 역시 너무도 멀쩡한 수피를 입고 있다. 그렇구나. 내 생채기들이 이렇듯 다 나았구나.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생채기가 없는 마음에 책과 사유가 어떻게 스며들겠는가.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나는 이제 책을 덮어야겠다. 다시 내 수피에 생채기를 내러, 세상과 소통하러 가야겠다. 마음 단단히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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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래요. 산딸나무님.


비로그인 2007-10-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듯이 책을 읽다가 멈추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30대 초반까지 줄기차게 책을 읽다가 한 10년 책과 다소 멀어졌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40대 초반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전보다 훨씬 느긋하게 읽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멀어졌던 이유는 간명합니다. 사노라 바빠서였지요..


산딸나무 2007-10-25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살다보면 또다시 책읽을 시간이 아쉬워지는 날이 오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짬짬이 읽는 책이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사는 게 너무 느긋해서 책만 읽었던 삶에 대한 반성이에요^^
 

 추석날 저녁, 바람이 좋아 옥상에 앉아 어머니께서 가꾸신 고추며 호박이며 들여다 보고 있는데 가족들이 하나 둘, 갑갑한 방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오빠들과 새언니와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어머닌 평상에 앉아 빨래를 개키며 친척들의 시시콜콜한 생활들을 들려주시고, 조카녀석들은 대여점에서 빌려온 '나루토'를 한 권씩 들고 복습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옛날 어렸을 적에 명절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게 얘기 한 자락을 청하시던 아지매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용돈 받는 재미로, 칭찬 받는 재미로 책에서 읽은 전래동화를 어른들 앞에서 풀어내곤 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선 '말'이나 '대화'가 아닌 '이야기'를 가족들 앞에서 풀어내 본 적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가족들 앞에서 의무방어전이 아닌 진짜 내 흥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단 욕구가 들면서(사실, 이 흥도 조금은 의무감이기도 했다.) 조카 녀석들에게 만화책을 덮고 얘기 한 번 들어보라고 졸랐다. 고등학생이 된 큰 조카는 좀 귀찮다는 듯이, 중학생인 작은 녀석들은 손가락으로 여전히 읽던 페이지를 끼워들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내가 한 이야기가 바로 양영순의 천일야화, 마지막 이야기였다.

 사실, 가족에 대한 넘치는 애정 따윈 애당초 허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내가 지극한 형제애를 다룬 그 장면을 선택한 것은 가족들 앞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을 읽는 내내 울고 또 울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그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어야 하는데 요 근래 읽은 이야기 가운데 나를 가장 매료시킨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울었던 그 장면에서 내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기 때문에, 자칫하단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도대체 내 속에 있는 어떤 무의식을 건드렸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나를 흔드는 것일까? 나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겨우 겨우 마치고 조카들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다시 읽던 만화책에 집중을 했다.

 그런데 언니와, 오빠의 표정들은 달랐다. 모두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나와 같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와 내 형제들의 성장기의 정서에 맞닿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시여! 저희에게 또다른 하루를 열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이라는 이 귀한 선물의 가치를 잊지 않도록 늘 일깨워주옵소서. 저희가 누리는 이 하루가 저희를 기억하는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하소서..."

 신에게 고백하지 않더라도 찬찬히 생각에 머물다보면 내 삶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루도 내 걱정과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사랑하는 이의 염려와 지지와 바람과 기도로 내 하루의 삶이 온전히 이루어져 있음을... 내 의지와 노력은 그것들을 장작으로 해서 타오르는 불꽃임을...

 '오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구나. 그러고 보니 달이 참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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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였던가? 아마 지난 해 가을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운문사자연휴양림에 가서 하루를 쉬다 오려고 차를 몰고 청도를 넘어갈 때였다.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혼자서 중얼거리셨다.

 “하이고, 전쟁 때 여그를 넘어서 갔는데.”

 구불구불 이어진 고개를 넘느라 운전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나는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조금 있다, 재를 다 넘어서 너른 들판 사이 난 작은 강줄기를 따라 차를 몰고 있을 때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여그다가 천막 치고, 솥 걸고, 다 그래 살았는데, 우째 그래 안 죽고 다 살았는가 몰라.”

 순간,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어머니란 것과, 어머니의 연세가 여든을 바라보고 계시니, 당연히 전쟁을 겪은 세대란 것과, 내 어머니의 전쟁도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삶 속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과거’구나 싶은 깨달음이 스쳤다.

 때로는 너무도 익숙한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마치 공포영화의 공식처럼. 그 날도 책이나 영화에서 만나던 익숙한 전쟁이 내 어머니의 삶이 되어 오히려 너무도 낯설게 다가왔다.




 이 기억이 떠오른 까닭은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이 ‘전쟁과 여성의 삶’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참으로 낯설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이 년 만에 다시 잡게 되었다. 두 번째 읽는 책임에도 이 년이 지나는 동안 내 사유가 들어선 새로운 산길에서 만나는 책이라서 또 다른 깨달음에 즐겁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줄 그어가며 읽었던 다른 어떤 글귀보다 강하게 마음을 붙드는 장면이 있었으니 기예프의 전승 기념탑에 대한 선생의 깨달음이었다.

 힘들게 탈환한 고지에 깃발을 꽂는 병사들의 모습 따위에 익숙한 우리에게 두 팔을 벌려 살아 돌아오는 아들을 맞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 탑은 전쟁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는 장면.

 나 역시 그 장면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니, 전쟁에 승리한다는 것은 땅덩이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를 적들로부터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영웅들의 영웅담이 아니라... 오로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여성들이, 어머니들이 전쟁에 대해 말해주는 유일한 진실이 아닐까?




 <이 여자, 이숙의>를 다음 날 바로 잡은 것도 아마 그 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부추겼기 때문일 터이다. 빨치산 사령관의 아내로, 딱 6개월간 함께 살았던 남편을 평생을 사랑하며 살았던 한 여인의 삶. 대단한 사랑이라고 추앙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사랑이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붙들어야 했던 종교였음을 이해하기에. 그러나 자식을 키우며 살아남아야한다는 당연한 본능이 사랑보다, 사상보다, 위대함을 읽었다.

 그 어떤 남성 지식인이 이토록 진솔하게 삶의 알몸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혜린의 <불의 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모임에서 읽고 토론을 하려고 뽑아 놓은 책이었는데, 내 사유가 이렇게 흐르고 있다보니 이 작품 역시 여성 주인공들의 삶과 그 삶을 뒤흔드는, 농락하는 전쟁과 운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그 어떤 여성도 운명에 농락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고 확신했다. 악의 화신 ‘카라’조차도.

 여성들은 어떤 운명이 자기에게 닥쳐도 받아들이고 이겨낸다. 삶이 아무리 구차해도,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살아남고,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고... 

 죽음은 운명에 지는 것이 아니다. 좌절이 운명에 지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도 늘 희망을 품어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왜 이리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자본의 욕망과, 사상과, 종교와 손잡은 운명이 우리의 삶을 농락해도 인간은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우리의 어머니가, 생명의 기원인 여성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희망하는 여성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세상, 자식들 땜에 살았지.”

 내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 의미가, 그 말의 무게가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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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2008-04-2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산딸나무님 어머님께 현철 콘써트 표라도 한장 선물하고 싶네요
 

인간은 꿈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 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 꿈꾸기가 행복함 보다 괴로움을 가져다 줄 때가 더 많다.

꿈을 위해 잃어야 했던 것들, 꿈을 위해 가지 못한 길...

새삼 내 꿈이 버거워진다.

그 꿈이 나를 지금껏 버티게 해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 갈 수 없는 길들에 미련이 생기는 건,..

약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그 꿈을 얼마나 힘들게 부여잡아 왔던가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오늘 다시 내 꿈을 생각한다.

내 꿈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아무리 숨 막히는 삶에서도, 적어도 네가 있어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던 날들.

아무리 아픈 사랑의 상처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날들.

아무리 구차한 삶도 씩씩하게 살아낼 수 있게 해 주었던 날들.

잊어서는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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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풍진 세상에, 꿈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테지요.

꿈은,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소중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산딸나무 2007-07-2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도 지금 꿈꾸고 계시겠죠?
그 꿈 덕에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스위트피 2007-08-0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언니 서재로 초대를 받아 무척 기뻤어요.
잠이 안와서 잠깐 들렀는데 별천지가 따로 없네요.^^
음~이 행복한 사람의 냄새~
이대로 책속에 파묻혀서 영원히 꿈만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온 우주가 그대에게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홧팅!

산딸나무 2007-08-0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우주와 교신하는 분이시군요^^
들러줘서 고마워요.
그대도 날마다 좋은 꿈꾸며 행복하시길...
 

음력 6월 10일. 내 생일이다.

창을 여니 아침부터 햇발이 장난이 아니다.

이 더운날 나 낳으시느라 고생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잠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요."

삼십대 후반의 나이, 독신으로 살기를 고집하면서 독립해서 살고 있는 나는 집에 자주 들르지 못한다.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탓에.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내 생일날 아침은 꼭 어머니의 밥상을 받으러 어머니 집으로 간다.

내가 어릴 때부터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탓에 내 생일상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그 생일상의 메뉴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우선 팥밥과  참기름 들깨만 든 미역국. 도톰하게 구운 갈치 한 도막. 그리고 오뎅볶음.그리고 김치.

이 생일상을 어머니께 받으러 가는 날, 나는 늘 소화제를 준비한다. 원체 평소에 먹는 양이 적은데다가 어머니의 아침 식사시간은 내가 한잠이 들어있는 시간이라서 다른 날 보다 일찍 깨고 억지로 밀어넣는 밥이 뜻대로 먹히지 않는다. 게다가 밥상 옆에서 다 큰 딸의 숟가락질을 보면서 흐뭇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한 술이라도 더 뜨려고 하다보니 소화제 없이는 생일을 지내 본 적이 없다.

밥을 다 먹어갈 즈음이면 물어보시는 말도 똑같다.

"저녁도 챙겨 먹어야 되는데, 생일날 거르면 안되는데.."

그러면 내 내답도 늘 한결같다.

"저녁에 친구들이 저녁 사준다고 해서 같이 밥 먹을 거에요."

어느 해는 진실이고, 어느 해는 거짓인 대답이다.

일이 바빠서 점심도 저녁도 건너 뛰는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내 대답에 어머닌 기뻐하시면서 숟가락을 놓는 내 손에 하얀 봉투를 쥐어 주신다.

"자, 이거 갖고 밥 사준 친구들 한테 커피라도 한 잔씩 사 줘라."

보통의 레스토랑 식사에 커피가 후식으로 따라 나오는 걸 모르시는 어머니의 작은 배려이다. 혼자 사는 딸이 심심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불러내서 밥을 사주는 착한 내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어머니 식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보내는 생활비로 사시는 어머니께 결코 적지 않은 그 돈을 나는 늘 두 말 없이 받는다.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야! 난 엄마 딸로 태어난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평소엔 쑥스러워서 해 본 적도 없는 애교를 부려가면서.

그렇게 생일날 어머니와 만나고 나오는 날마다 나는 늘 목이 메인다.

늙어서 쇠약해가시는 어머니께 앞으로 몇해나 더 생일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이 불안한 행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없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제발 어머니께서 오래오래 사셔서 내가 생일날마다 소화제를 먹는 이 연례행사를 한없이 이어갈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날 수 있게 착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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