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글쓰기 공부를 하는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있다. 키도 덩치도 이미 나보다 훌쩍 커버린 녀석들이지만 하는 짓은 나이를 속일 수 없어서 얼마나 재롱둥이들인지 모른다. 공부하다 보면 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한 녀석이 가방에서 푸른 색 필통을 꺼내보이면서 ‘선생님, 제가 만든 거예요.’ 한다. 순간, 모양이 너무도 그럴 듯한 그 필통을 흘낏 보면서, ‘에이, 설마.’ 했다. 근데, 미심쩍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바느질 한 걸 보여 주고, 안을 뒤집어서 재단한 선을 보여주는데, 진짜 손으로 직접 만든 필통이었다. 학교 가사 수업시간에 만든 거라고 한다. 다른 한 녀석은 자기가 필통에다 아주 예쁜 인형까지 달아 놓았다.
내 바느질 솜씨보다 훨씬 정갈해 보이는 바늘땀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엄마가 다 만들어 주셨지?”
“아뇨! 학교에서 만든 거라구요. 에이, 왜 선생님은 우리말 왜 자꾸 안 믿어요?”
펄쩍 뛰는 녀석들을 보니 정말 자기들 솜씨가 틀림없는 모양이다.
아마 그 녀석들이 여자 아이들이었다면 내 반응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여자 아이들은 ‘가사’, 남자 아이들은 ‘기술’이라는 성별분업, 더 정확하게는 성차별이 존재했었다. 그렇게 배워왔기에 나도, 여전히 바느질은 여자들의 역할이라는 성차별에 길들여져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남자아이들이 바느질 하는 모습을 어색하게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나는, 몸도 마음도 차별 없는 사회를 살기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그 필통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하는 그 애들의 표정이었다. 아주 소중하고 엄청난 일을 해 낸 듯한 그 의기양양한 요정을 보면서 양성평등 사회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앞날을 기쁘게 그려볼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들의 관습과 편견에 짓눌리지 않고 십년 뒤, 이십년 뒤에도 여전하길 빌어 본다. 신문 읽는 아내 곁에서 설거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이 되고, 아이들을 업고 장을 보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빠가 되고, 명절날 음식을 만드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사위가 되길......
이제는 학교가 아닌 일상에서도, 가사 노동의 능력이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기본노동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좀 더 많이 노력해 보자. 우리 아이들에게 ‘구세대’라는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