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Late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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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날, 문득, 불현듯,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거리, 시선을 고정하지 못 한 채 퀭한 눈빛의 흔들거리는 한 여인, 그녀가 ‘이상’을 감지했을 때, 그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일어난 후였다. 불현듯 울려 퍼지는 싸이렌소리, 그녀의 인생의 적색신호는 옛사랑에 대한 작은 흔들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번져간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심을 흔드는 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희망도, 미래도, 웃음도, 사랑도, 그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는 죄인이었다.

불현듯 그렇게 실연이 닥쳤고, 불현듯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찾아온 파국 또한 불현듯 그렇게...




 

2. 치명적인 매력, 상처에 대한 이해  

살면서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상처는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맥락과 상황에 대해 모두 이해한다고 해도,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유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남들의 상처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그 어떤 글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상처의 언어가 있다. 상처의 언어가 오고가는 관계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누가 더 상처를 많이 받았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그녀의 상처를 이해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도 할 수 없었던 상처의 언어를 구사한다. 치명적인 그의 매력은 근육질 몸매도, 화려한 테크닉도,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도 아닌, 바로 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혹은 모든 상처를 다 통달한 사람처럼, 재고 따지고 계산하려 들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스스럼없이 내 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 이거랑 비슷한 거 아주 많아요. 가져요.” 라고.  
그가 가진 것은 비단 그 물건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의 조각이었으리라.  
 




 
3.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우리 나오는 날, 다시 만날까요? 이곳에서..”

지킬 수 없는 약속. 전할 수 없는 마음. 소유할 수 없는 사랑. 그들의 기억 속에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 버린, 온몸의 전율을 느끼게 했던 키스의 장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그녀. 그리고 나타나지 않는, 아니 올 수 없는 그에게 건네는 수줍은 인사.

“안녕, 오랜만..”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그것을- 가슴속에서, 기억 속에서, 추억 속에서 하는 사랑은- 잃지 않을 터다. 어쩌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에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사랑. 그것은 환상 안에서 완벽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의 엔딩은 그렇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들의 사랑이 환상 속에서, 서로의 기억 속에서, 가슴 속에서,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그리고 나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은, 잊을 수 없는 사랑에게도...안부를 묻는다.

"안녕, 오랜만.."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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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2-22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아요, 영화처럼요 :)

가시장미님 말씀처럼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 또 그렇게 잃어버리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죠. 그래서인지 늘 어떤 기억들은 미화되고 어떤 추억은 아련한가 봅니다.

가시장미 2011-02-23 06:23   좋아요 0 | URL
어쩜 그렇게 제 생각을 잘 헤아려주시는지 ^^
마지막 한 줄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그러나 적절히 표현할 수 없었던 말이네요. 미화되고, 아련하다... 음.. 화오화오~!

누구나 그런 기억, 그런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 않나...해요. 제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만요. ㅋㅋ 오랜만에 가슴을 동요시킨 영화를 만났는데, 글로 적절히 표현할 수 없어서 좀 아쉽네요. 한동안 글쓰기를 게을리 했더니, 참 쉽지 않아요. 굿바이님의 리뷰와 비교되어서 부끄러울따름입니다. ^^;;

테스 2011-02-2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저예요!)블로그를 통해서 보는 또 다른 매력의 가시장미님^^*의 글들 하나씩 하나씩 모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가시장미 2011-02-23 06:27   좋아요 0 | URL
(ㅋㅋ쌤!)이렇게 방문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자주 뵙는데, 참 대화할 시간이 부족한 우리네요. 오늘도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를 줄 몰랐어요. 일터에서는 늘 시간이 화살 같아요. 울아기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면, 제가 조금 더 일찍 출근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가끔은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래요~~~ 으흐흐

Kir 2011-02-2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더 좋은 리뷰인데요^^;
상처에 대한 이해... 맞아요, 그래서 포크 씬이 좋았어요.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이라 아련한 마지막을 잊을 수가 없고요.

전 장미님처럼 높은 평점을 주진 않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걸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가득 남겨주어서
아쉬움이 큰데도, 만족도가 높아요.
(이건 기대치가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제 탓이지만요;)

가시장미 2011-03-01 23: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영화를 보아서였을까요..
기대하지 않고 보아서였을까요..
전.. 아쉬움을 남게 하는, 여운을 남기는 엔딩까지...
모두 좋았던 것 같아요 ^^
사실 현빈의 연기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탕웨이가 그 부분을 잘 채워준 것도 같구요.

같은 영화를 보고,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는 것.
전혀 다른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
이 곳에 리뷰를 남기고, 이 곳에 남긴 리뷰를 읽으면서..
더 의미있게 기억에 남게된 영화 인 것 같아요.

오늘도 현호 간신히 재우고 영화 한 편 보려 했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현호가 깨는 바람에..
정지버튼 누르고, 만화채널 보고 있네요. 크크
나무가 현호랑 만화보는 동안 잠시 마실나왔답니다. ^^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좋은 휴일 보내셨나 모르겠어요. 일욜같은 휴일이었는지라..
수욜인데도 월요병이 날 것 같아서, 내일이 두렵네요. ㅋㅋ
 

 

1.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 누군가의 실체에 대해 혹은 그 실체를 대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아닌 마음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떠난 그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가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껴왔고,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비록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없지 않을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따금씩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와 나눈 글을 생각하고, 그녀가 남긴 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녀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기억 속에서...

2.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것을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무한하지 않은 삶을 살더라도,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 자신의 유골조차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그래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기를.. 영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떤이는 업적이 연연하고, 명예와 권력을 갈망하고,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창작물에 열정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여 그 업적과 훌륭함을 인정 받은 사람만이 누군가의 하나의 '의미'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자신의 삶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평범한 삶을 살아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노력하고,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이웃과 소통함으로써 자신이 실존함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일상에서 생기는 모든 불안의 근원, 도취상태에서 도피하려고 하는 것,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는 그 불안감의 정체가 '죽음'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그 불안감은 숙명적이며,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는 죽음의 불안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실존을 되찾는 길이라고 했다. 즉,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거나 그 불안에 허덕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질러 그 죽음을 떠안으면 '죽음의 불안'은 오히려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웃으로 그녀의 글을 엿보면서, '죽음의 불안'이 아닌,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를 보았다. 그래서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지막도 그렇게 자유로웠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이와같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는 것은 그녀의 삶, 그것의 의미를 증명하는 것이리라.   

4.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그에게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인간은 현실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관계'로 이어지고, 그것은 가상공간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기억들이 결코 가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허락해주고, 슬픈 일이 있었을 때, 새해가 되었을 때, 먼저 와서 안부를 물어주던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더 좋은 세상에서, 더 건강한 모습이길....부디 편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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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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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많은 사람은 인생이 고달프다고 한다. 사람은 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어서 ‘나에게 허락된 것이 이만큼이구나’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제명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산다는 건 그저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대형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는 것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 빚쟁이들의 빚 독촉 받을 일이 없는 것, 먹고 싶은 라면을 지금 내 손으로 끓여먹을 수 있다는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하고 싶은데 그 모든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누르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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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2-2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련이 많은 제 얘기 같아요.ㅠ.ㅠ

가시장미 2010-03-15 00:45   좋아요 0 | URL
미련없는 인생은... 글쎄요. 재미없지 않을까요? ^^

무해한모리군 2010-02-2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련하면 저죠 --;; 체념을 어떻게 좀 배워야 할텐데..

가시장미 2010-03-15 00:46   좋아요 0 | URL
저는 너무 쉽게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을 좀 경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요즘 너무 체념모드라 재미없답니다 ㅋㅋ
 
쌍화점 - A Frozen Flow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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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적인 노출과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베드신

‘욕정’은 한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한 순간에 일어난 충동적인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에 대한 육체적인 욕망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욕정은 후자에 속한다. 임신과 출산에 의해 나의 ‘몸’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인간의 ‘몸’이 호르몬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산 후 지금까지 나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아, 아줌마가 되면서 나의 ‘욕정’이 사라진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소문대로 파격적인 노출신과 충격적인 베드신은 나의 뇌를 자극하여 호르몬을 방출시키는데 아무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만큼 그들의 ‘사랑’은 매혹적이고 격렬하고 짜릿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너무 부각되어서인지 역사적인 배경과 화려한 의상이 무색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역사극을 의미하는 ‘사극’으로 분류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굳이 장르를 나눈다면 멜로와 에로의 중간쯤이 되지 않을까?


- ‘욕정’과 ‘사랑’은 닮은꼴이다
 
영화 속에서 왕은 왕후에 대한 홍림의 감정을 욕정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홍림의 흔들림이 욕정에 의한 것이라면 용서하되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왕과 왕후 사이에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홍림 또한 자신의 감정을 욕정으로 치부하고 왕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욕정이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 그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욕정’과 ‘사랑’은 육체에 의해 파생된 감정이다. 그런데 흔히 ‘욕정’은 육체의 산물로 ‘사랑’은 정신의 산물로 여긴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없고, 육체가 없이 정신이 존재할 수 없듯이 ‘욕정’과 ‘사랑’을 구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욕정’은 ‘사랑’의 닮은꼴이여서 ‘욕정’이 ‘사랑’으로 위장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홍림과 왕후는 욕정을 품어서는 안 되는 대상과 몸을 섞은 이 후, 그것을 용납할 수 없어 ‘욕정’을 ‘사랑’으로 위장시키고, 그것에 속아 왕을 등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홍림은 왕의 신의를 잃었고, 왕후는 홍림의 아이를 가졌다. 그들이 처한 현실은 그들의 감정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고, 서로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의 감정은 현실에 의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그 해석은 달라지기도 한다. ‘욕정’에 의해 그들이 그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욕정’은 순식간에 ‘사랑’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마지막에 죽어가는 홍림의 왕을 바라보며 눈, 그 눈에서 나는 후회를 엿봤다.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후회의 눈빛 말이다.


-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없다.

나는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할 자신은 있다. 그 말은 한 눈을 팔지언정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눈을 판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또 다른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각은 새롭고 신선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늘 그것을 쫒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익숙해지면 그 사람에 의해 느낄 수 있는 감각도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변하지 않는 거야!’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사랑 혹은 상대방의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사랑이 온전한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육체가 느끼는 자극도 염두에 두어야한다.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랑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 늘 같은 모습으로 사랑하려 하지 말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홍림의 흔들림은 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어주었던 왕의 탓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왕은 전혀 다른 자극과 교감을 선사해줄 여지가 충분한 왕후와의 만남을 주선하였으니 홍림의 본능(id)을 간과하였거나 홍림의 초자아(superego)를 과대평가한 탓도 있으리라.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p.s> 내가 조인성의 팬이였나? (쓰고보니 시종일관 조인성을 옹호하고 있구나 =_=)
근데 언제쩍 영화를 이제서야 ㅋㅋ 아줌마 되더니 완전 뒷북이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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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g)
    from 木筆 2009-05-06 10:22 
      아무생각없이 봤는데, 심보가 생긴다. 가시자ㅇ미님 글에 보태고 싶기도 하구 말이다.
 
 
프레이야 2009-05-0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님, 어린이날이에용..^^
현호는 아직 아닌감? ㅎㅎ
장미님의 이 리뷰 참 마음에 들어요. 영화보다 더~
늘 새로운 모습으로 사랑하기,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기^^

가시장미 2009-05-07 02:46   좋아요 0 | URL
으흐 감사합니다. ^^
신랑이 어린이날까지 쭉 5일을 쉬면서 육아를 많이 도와줘서 저도 덩달아 연휴아닌 연휴를 보냈습니다 ㅋㅋ

사실.. 뭐..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사랑이 변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 변할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의 감정일 수도 있지만, 지키고 싶다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근데 가장 가까운 연인이나 부부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 그거 솔직히 쉬운 일도 아니죠. 결혼해 보니 예전에 가졌던 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네요. 예전에는 있는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순오기 2009-05-0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영화는 별로였지만 장미님의 리뷰가 훨씬 훌륭해요.^^
노출보다 정사 장면이 변화없이 너무 빈번하게 등장해서 예술이란 느낌이 안 들었어요.
정사장면도 정말 멋지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선 점수 대폭 삭감!ㅋㅋㅋ

가시장미 2009-05-09 04:19   좋아요 0 | URL
예술과 외설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
미인도의 베드신은 참 예술적으로 느껴졌는데 말이죠. ^^;;
그래도 조인성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던,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조금 부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의 연기력 탓만은 아닐텐데.. 하고 아쉬웠지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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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그림, 르네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실제 파이프와 똑같이 생긴 그림이라고 해도 그것은 실제 파이프가 될 수 없다. 그 그림은 평면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단지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 단순히 파이프를 닮은 이미지일 뿐이다. 결국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명제에는 오류가 없다.

 우연에 의해 메일 파트너가 된 에미와 레오. 그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시각, 섬세하고 자극적인 언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밀고 당김, 그 사이에서 싹튼 ‘사랑’의 감정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끝없는 갈망처럼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간다. 그 욕망은 에미와 레오의 현실을 위협할 만큼 강렬해진다.

 사실 모든 ‘사랑’은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은 이데아의 속성을 닮고 있을 뿐 완벽한 이데아는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의 사랑 역시 사랑의 이데아의 속성을 지닌 이미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라는 전제에서 생각해보면, 에미와 레오의 ‘현실’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것은 거짓된 것이며 허구의 세계이다.

 분명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그것이 거짓이라니, 분명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 아니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것이 거짓이라니, 서로를 미치도록 원하는 두 남녀에게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서로의 이미지는 현실을 은폐하고 변질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 한 채, 영원히 ‘바깥 세상’에 둘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그것이 서로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것이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바깥 세상’에서만 가능할지라도 말이다.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밞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 없어요.”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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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1-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읽으셨군요! 이 책,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죠? :)

가시장미 2009-01-12 11:51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더군요.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크크 :)

프레이야 2009-01-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미의 절묘한 대사가 기억나요.
레오! 결혼은 모순 형용사에요.
작년에 녹음도서 낭독하며 읽었는데 신선하고 충격적이더군요.
결미에서 완전 쿵 때려서 책장을 못 덮고 벙벙했어요... 추천^^

가시장미 2009-01-12 11:51   좋아요 0 | URL
결말.. 예상하긴 했었는데.. 벙벙하긴 하더라구요. ^^
근데 전 그 결말이 더 마음에 듭니다. 가슴 아프지만...

무해한모리군 2009-01-12 20: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결말이었다면 구태의연했을 듯 해요.

가시장미 2009-01-12 20:27   좋아요 0 | URL
다른 결말이였다면- 그들의 사랑이 변질되어 버릴까봐.. 두렵던데요. ^^

2009-01-13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