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심리학
우석봉 지음 / 학지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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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비의 사회를 살아간다. 하루에도 소비를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한다. 소비의 주체는 소비자이지만 그들의 선택이 늘 현명하지 않은 이유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좌우하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변수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지, 소비자들은 어떤 심리기제를 통해 반응하는지에 대해 적절한 이론과 모형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어떤 재화를 소비한다고 했을 때, 그것의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것에 덧붙여진 부가가치적인 측면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된 것은 브랜드라는 개념이 형성된 이후라고 여겨진다.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별화를 위한 이름, 상징물, 서비스 등의 조합을 넘어서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의 실체를 정의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 책은 유형, 무형의 부가가치 덩어리로 정의내리고 있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의 유형, 무형의 속성이 독특한 차별성을 지닐 때 그 브랜드의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브랜드 자산이 되어 시장과 소비자 성과를 좌우하는 원천이 된다. 그래서 브랜드의 인지도나 이미지는 브랜드의 품질만큼 높은 파워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소비자들의 니즈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데,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니즈보다 사회적, 심리적니즈가 더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에서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을 사는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는 브랜드를 자아에 통합시키려 하고, 브랜드를 의인화하여 동일시하는 것을 심리과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브랜드 행위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소비자는 그것을 자신의 브랜드 스키마로 해석하여 또 다른 의미를 창출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단순한 ‘소비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역할까지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슈머’라는 신조어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성패의 주역은 브랜드 전략가나 기획자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고, 소비자가 브랜드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인지적 틈’을 공약하여 자신의 브랜드를 어필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랜드 전략가가 브랜드 행위에 대한 소비자의 피드백에 적절하게 답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론과 모형을 바탕으로 심리적 과정을 설명한 관계로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분석하여 그 근거를 과학적으로 규명해보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거나 자신의 소비행위와 심리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필자가 제시한 근거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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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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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각자의 내면에 삶을 통해 이루고픈 ‘무엇’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우리는 흔히 ‘욕망’이라고 부른다. 정이현의 소설 <오늘의 거짓말>을 통해, 내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삶의 풍경 속에 숨겨진 ‘욕망’을 엿보았다. 그 ‘욕망’은 어느 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지 않고, 어느 한 곳을 향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접점과 어긋남이 만들어낸 덧칠은 ‘오늘’을 탁하게 만든다.


그 ‘탁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 반응은 탁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의 색을 표출하기 위한 투쟁의 하나이다. 부인하든, 회피하든, 합리화하든, 체념하든, 자신의 ‘욕망’을 보호하기 위함이고, 자신의 ‘오늘’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과정 속에서 난무하는 ‘욕망의 덧칠’은 ‘진실’을 사라지게 만들고, ‘해석’만을 남긴다. 그 해석이 ‘거짓이 아닌, 거짓말’이 될 때, 우리들의 '오늘'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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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7-10-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문장 멋있다..^^

가시장미 2007-10-07 15:45   좋아요 0 | URL
그래? 난 슬퍼. ㅠ_ㅠ 이 책 읽고도, 리뷰를 쓰고도, 마음이 참 쓸쓸했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조명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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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책으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전제로 신화 속 여신의 유형을 탐구한다. 물론 신화 속 여신의 특성을 집단 무의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기존에 연구되었던 ‘융’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융의 시각이 가지고 있었던 양극화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면에서, 여성심리학에 대해 융의 시각보다 더 진보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처녀 여신들의 특성을 정신 질환 증세로 설명했다. 그는 여성 신체와 정신에 나타난 다른 면을 보려 하지 않고 해부학적으로 여성에게는 남성이 지닌 남근이 없기 때문에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능력 있고 자신감 있으며 사회에서 무슨 일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여성은 남성성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반해 융은 프로이트에 비하면 여성에게 꽤 관대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성의 의식의 영역에는 여성성이 있지만, 무의식의 영역에는 남성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융은 누구나 양성성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여성의 내부에는 ‘아니무스’가 존재하고, 남성의 내부에는 ‘아니마’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갖는 보편적, 집단적, 선험적인 심상들에 의해 구성되는 원형(archetypes)으로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남성의 내부와 여성의 내부에 있는 특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종래의 프로이트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성을 개발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융의 시각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세부 특성 중에 긍정적인 측면은 대부분 남성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성을 개발할 수는 있겠지만 원래 그런 특성을 타고난 남성과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봤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무의식내의 요소를 계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이 책은 융이 말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공유해 온 모든 정신적 자료의 저장소인 집단 무의식의 신화적 원형에 대해 인정하지만 융의 시각의 양극화는 거부하고, 융의 도식이 어떤 여성에게는 설득력이 있지만 모든 여성에게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여신들의 원형을 가부장제의 틀에 고정시켜 분석하지 않고, 생동적이고 믿음직스런, 현실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화적 원형을 탐구하고, 우리 내면에 있는 여러 여신들의 모습을 깨달아 갈 때,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특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닌 여신이 여성성만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나 관습에 의한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이 불평등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내면의 평등한 무의식이 발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이여! 스스로를 개발하라!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도, 자신만큼 스스로를 억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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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0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만 하겠어요~.

가시장미 2007-09-03 14:59   좋아요 0 | URL
네 읽어볼만 합니다. 으흐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
에모토 마사루 지음, 양억관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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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결석이라는 병으로 고생하면서, 나의 70%를 차지하는 ‘물’에 대해 관심을 갖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자연히 ‘물’에 대한 도서로 옮겨졌고, 우연히 ‘물에도 의식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를 물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신념은 확고했고, ‘물이 정보를 기억하고 그것을 전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책에 소개된 실험의 내용과 그 방법이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물을 이해하는 색다른 시각을 통해, 생명과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인간을 물로 정의하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물과 인간은 하나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의식하는 모든 것을 물도 의식할 수 있으며, 그것을 물의 결정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간단한 실험을 예로 들자면, 좋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글씨를 접하게 한 물은 눈의 결정체처럼 아름다운 결정체를 만들게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정리되지 않은 결정체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정서나 의식에 해로운 것들은 물도 그렇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실험에서 사람의 의식이나 말이 가지는 에너지가 물의 결정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했고, 학계에서는 그의 실험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나도 관련된 뉴스를 접하면서, 그의 근거가 과학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이상 그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모든 만물이 진동을 지니고 있다면, 의식이나 마음의 영역에서 비롯되는 많은 것들도 진동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이 물의 진동에 영향을 준다면, 물의 결정이 달라지는 것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사실,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많은 것들이 있으며, 이성보다 직감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근원이나 흐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 설명이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그것을 전제로 결론을 도출해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을 비롯하여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여전히 가설에 머물러있다고 여겨야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물의 결정체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을까?’에 대한 사념이다.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그 결정체의 모양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나의 삶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적인 정서나 부정적인 의식은 내 안에만 머물러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로 이루어진 나의 몸과 물로 이루어진 세계는, 의도하지 않아도 하나로 연결되고, 그 에너지의 ‘길’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내 안에 아름다운 물의 결정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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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양이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테죠. 아름다운 결정체를 우리 만들어가요~ ^^

가시장미 2007-08-20 00:04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이승환씨의 노래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으흐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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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배우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지만 ‘앎’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해답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배움과 앎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앎’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앎’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앎’ 이 중요해진 반면 자신의 경험이나 성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앎’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범람하는 지식의 획득에 혈안 되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에 비해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가슴 뛰는 삶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사람은 드물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투쟁하고, 더 좋은 위치나 지위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중요해질수록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자들에게 들려주는 현자의 충고이다. 물론 그 충고가 아주 어렵거나,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들은 아니다. 단지,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중요한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의 회고와 반성을 많이 곁들였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나도 이렇게 살다가는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겠는데?’라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그런 두려움이 두려움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혹은 두려움이 전혀 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만한 것들에 대해, 아니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것들에 대해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갖은 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내 두려움의 원인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닥칠 비슷한 경우를 대비하여, 일반화된 패턴을 바탕으로 저자의 흐름을 쫒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쯤이면 ‘인생수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업은 지루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고, 다 아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와 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중간에 서있는 ‘중간자’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전부를 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인생수업’은 오히려 있어서는 안 되는 수업이다. 삶의 이유와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 ‘인생수업’은 불가능하다. ‘인생’을 ‘수업’을 통해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수업’을 통해 ‘자신’에 대해 탐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을 아는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살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의 몸으로, 나의 생각으로, 행하고 느끼고 판단하지만, 정작 내 삶에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인생이 아닌 나를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 많은 것들을 수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조금 더 삶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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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0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삶이란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잊고 있던, 잃어버리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구나 싶더군요.

가시장미 2007-08-06 18:10   좋아요 0 | URL
네.. 잉크님. 근데 잉크님 서재에서는 왜 새롭게 배워가는 많은 것들이 느껴질까요? 한 편에 글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님과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이 되기도, 자랑스러움이 되기도 합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