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남자 아이 동구의눈(?)으로 본 고부간의 갈등이 주축이 된 가족사와 유신말과 광주 항쟁 때의 사회 풍경을 담고 있다.
항상 엄마에게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고 독설을 퍼붓는 할머니, 언제나 할머니편인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대표하는 아빠, 엄하고 부당한 시집살이를 묵묵부답으로 참으면서도 야무지고 음식솜씨 좋은 따뜻한 엄마, 똑똑하고 귀엽고 예쁜 6살 터울의 여동생 영주, 나(동구)를 난독증으로 부터 구해주신 선녀같은 박영은 선생님(현실감이 없는 인물, 작품의 리얼리티를 많이 떨어뜨린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그 당시 사회상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 주된 등장 인물이다.
홀어머니 외아들 집의 시어머니 할머니와 엄마와의 갈등을 나타내는 많은 에피소드들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결혼 후 줄곧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우리 집안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흥미 진진하게 읽었다.
하지만 동구의 아픈 마음을 다독거려주면서 엄마와 할머니를 다 이해하도록 조언을 아끼지않는 이상적인 인물 박영은 선생님이 등장하면서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한다. 후기에서 작가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가 제일 약자에 해당하는 상황이면서도 촉촉한 인내와 헌심으로 주변을 끌어안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다.'고 나이 어린 소년을 믿는다면서, 굉장히 어른스럽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너무나 깊은 동구를 변명(?)해 준다. 그러나 동구는 결코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서 엄마와 할머니를 이해하고 화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 자체가 10살 주인공에게 맞지 않는 설정은 아닐까?) 박선생의 2번에 걸친 충고 덕분에 갈등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습게도 해피 엔딩(?)을 이끌어내는 동구의 결정적인 제안은(할머니와 둘이서 시골에 내려가 사는 것)은 죽은 박선생이 동구의 꿈에 나타나 할머니의 괴상한 행동을 이해시켜 준 뒤에 나타난 일이다. 동구의 눈에 비친 할머니의 행동은 전혀 동정과 이해의 여지가 없는데 동구는 박선생의 몇마디 말에 엄마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는 할머니의 괴상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단번에 다 이해하고 화해를 제안하는 것이다.
화자인 동구가 사건과 에피소드에 대해 구구하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때문에 독자가 숨을 고르며 읽기가 쉽지 않고, 성장소설의 외형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부터 성숙했던 동구가 많은 아픔과 시련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 커가는 모습을 쉬 찾아 볼 수 없었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데 앞으로 좀 더 세련된(?) 작품을 기대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까다로운 독자일지도 모르겠다.
* 경험자로서의 한마디: 고부간의 갈등은 작품처럼 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서로의 좋은 점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서로 포기하면서, 화내고 상처 받는 날보다 받아들이는 날이 많아진다. 그때서야 우리에게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도 갈등은 남아있다.200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