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선생님을 만났다.
"김용택은 임실에 삽니다. 임실하면 뭐가 유명하죠?" 하시자 반사적으로 "치즈요~"라는 말이 나왔다.
"에헤~ 다시 물어요. 김용택은 임실에 삽니다. 임실하면 뭐가 유명하죠?"
그렇게 웃으면서 김용택 시인을 만났다.
어제 날짜로 끝난 연수의 마지막 날 특강 강사로 오셔서 구수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다.
선생님의 책 중 가장 많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어서 인세를 두둑히 받았다는 <<콩, 너는 죽었다>> 는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읽지도 못한 것 같다.
3일 전에 나온 따끈한 책이라면서 응대를 잘 한 선생님 몇 분께 저자 친필 사인본을 주신 <<사랑이 다예요>>의 내용도 궁금하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도 읽었던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어머니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위 네 권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마지막 책을 읽어보려 한다.
선생님은 교사 생활 대부분을 한 학교에서 근무하셨다고 한다.
5년 근무하다가 1년 다른 학교 갔다가 다시 그 학교로 오고, 또 5년 근무하다가 1년 다른 학교 근무하고 다시 그 학교로 오고...
선생님이 다녔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가르치셨다고 하시면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기를 보낸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 학교에서 보냈다 하셨다.
3학년은 공부를 가르치려니 너무 어렵더라~~~ 그래서 20년 넘게 2학년만 가르쳤다 하셨다.
아이들에게 공부 안 가르쳐도 부모님들이 자신에게는 뭐라 못 한다고.
자기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니까.
그렇다고 선생님이 공부를 안 가르치셨겠는가?
자연을 통해 삶을 알도록 가르치셔서 아이들이 살아있는 공부를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것들이 다시 책이 되지 않았겠는가?
선생님은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쓰면 시가 된다고 하셨다.
시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문학 장르인지, 그 함축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바로 철학이 된다고 하셨다.
사모님께는 결혼하고 딱 6개월 잔소리를 들었다 한다.
6개월 잔소리 듣는 동안 자신의 안 좋은 습관, 행동들을 다 고쳐서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안 좋은 것은 생각해 보고 얼른 고치라 하셨다.
"여보, 왜 양말을 이리 뒤집어 벗어요? 바로 벗어두면 좋을텐데..."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생각되어 양말을 바로 벗어두고
"여자들이 꼭 이불을 개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하길래 이불을 개어 봤더니 딱 15초 걸리길래 이불도 개고...
물 달라, 밥 더 달라, 국 더 떠달라... 이런 말 해 본 적이 없다고. 양말 가져다 달란 말 왜 하냐고?
아내들이 양말을 숨겨놓지 않는다고...
여기저기서 빵 터지게 하는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다.
딱 두 군데의 강연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교장 선생님과 중2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그들의 공통점은 듣지 않는다고! ㅎㅎ~
선생님은 어머니가 주신 말씀 중에
사람이 그러면 안 돼~
남의 일 같지 않다
싸워야 큰다!
라는 말을 마음 속에 새기기 살아오셨다 한다.
인간다운 도리를 다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아야 하고 모순을 보면 고치고 바꾸고 맞추어 가면서 커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김용택의 가끔 열리는 학교'가 궁금하다. (http://blog.daum.net/windada11/8753435)
연수 마지막 날, 김용택 시인을 만나게 되어 횡재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