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였던 그림자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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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지 않고 엄살없는 후일담문학. 아픈 시절을 이겨낸 늙은 투사들의 한바탕 소극(笑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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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멈춤
안보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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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안좋은 말 몇마디 썻더니만 익명으로 댓글이 달렸다... 짜증나서 지워버렸는데 지우고 나니 후회된다. 정체를 밝히고 이야기를 하자고 할껀데.. 혹시 관계자 아니었을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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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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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딸을 잃었다.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는 사고후 신음하는 딸을 오히려 목을 졸라 저수지에 유기하고 도망가고 말았다.아버지는 복수를 결심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아버지의 집옆으로 일자리를 옮긴 가해자. 아버지는 그 가해자의 가족까지 복수의 대상으로 잔인한 복수를 실행한다. 

줄거리를 이렇게 쓴다면 모든건 인과응보의 과정처럼 너무나 당연한 복수극일 뿐이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처럼... 그 범인을 증오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복수의 주체와 그 진행은 오히려 더 복잡다단하게 소설은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정을 지키기위해 오히려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아버지. 가정을 파괴하고 극단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나타내지만 품안의 자기소유의 물건을 잃고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자기만족만을 위한 복수를 실행하는 또다른 아버지.

 범인을 보여주고 이야기의 시작부터 범인을 보여주며 사건을 진행하지만 잘 짜여진 한편의 교향곡처럼 사건은 순차적으로 점점 빠른 호흡으로 극단으로 치달으며 파국을 맞이한다. 
 

읽는내내 영화 복수는 나의것을 떠올렸다. 악의는 없었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악의없는 행동은 너무나 큰 실수내지는 판단착오였으며 그에 대한 댓가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모든 것에 대한 파멸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애잔한 그들처럼.... 

이미 이 책은 충무로의 블루칩이며, 러닝개런티 포함 고액에 판권이 매각되었고 충무로의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탐을 내고 있다고 한다. 책의 구성과 사건의 흐름. 관념이 배제된 직설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오히려 애초에 이 책은 시나리오 즉 영화를 꿈꾸고 씌여졌지 않나 하는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중반까지의 팽팽한 긴장감은 조금은 어이없이 종결되며, 또한 초반 공간의 그로테스크함을 이끄는 물안개가 가득한 댐의 이미지는 중반이후 어딘가로 실종되어버리기도 하다. 
 

 맛난 한정식집이라도 모든 반찬이 입맛에 맞을 수는 없다. 젓가락질이 가는 반찬이 그 가짓수가 그날 점심의 전체적인 맛을 결정하는 것처럼 소소한 섭섭함을 차지하고 전체적인 흐름과 흡인력에 대해서는 근자의 소설중에 단연 압권이다.

-사족이지만 잠깐 그 사이코패스 역시 딸을 잃은 아픔을 잠깐 나타난다. 그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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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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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결심하나를 한것이 읽은책에 대한 서평을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었다. 파란여우님의 블로그를 열심히 들락거리면서 여우님보다 훨씬 더 빨리 문학과 책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냥 오락영화 보듯 휙 읽고 지나쳐버려 남은것이 없다라는 반성을 했지만, 사실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여전히 서너시간동안 휙 읽고 지나가고 만다.  

굳이 간만에 뒤적거리는게 우연히 다음 view에서 제리에 대한 서평이라고 '요즘 이런 여자들이 대세라면 우리 아들에게 결혼 일찍 권하지 않겠다'라는 리뷰가 베스트에 오르고 거기에 대한 댓글이 '박정희 시절에 미니스커트를 줄자로 재고 다니던 아버지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우리세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거 때문이다. 차라리 댓글에 밤에 남자만나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고 했었다면 웃기라도 했을텐데.... 

    

필립 k 딕의 소설중에 미래 사회에서 인류가 과학발전에 한계에 봉착했을때, 타임머신으로 1930년대의 예언가들을 납치해 현재의 기술적 한계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그 예언가들은 다름아닌 sf소설가들이었고, 그들은 정확하게 몇백년후의 일들에 대해 '예언'을 해왔던 것이었다. 사회학자가 과거의 통계와 종합으로 분석한다면, 문학의 본령은 징후를 읽어내고 예언을 해내 지식인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일것이다. 300의 예언자는 몽롱한 상태의 시인의 다름 아니겠는가. '퀴즈쇼'의 김영하는 한참후에 88만원세대에 나오는 글귀 그대로 몇년전의 소설에서  88만원 세대의 현실에 대해 냉철하게 토로했다. 과연 몇명이나 그것이 사회적 현상이고 우리가 , 우리의 현재세대가 풀어야할 문제라고 사회학적 분석 대상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제리는 '퀴즈쇼'에 대한 그 세대의 대답이다.  김규항 식으로 말한다면 노력하지 않는 젊은 세대라고 욕하는 기성세대는 기껏해야 착한 바리새리인이 아니고 무엇일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나열된 글을 읽는 행위는 아닐것이다. 제리를 찾아읽을 정도의 교양인들이 그안의 88만원 세대의 개인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현실에 작가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져라 까지는 찾아가지 못하더라도 밞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겨우 이정도 뿐이라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 아닌 기껏해야 '내 아들 장가보내지 않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야동이라도 하나 다운받아서 '요즘 여자들은...' 쯧쯧 하는거이 낫지 않을까?? 

 

사족으로 제리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딴 서평들이 지지를 받을꺼라면 별 다섯개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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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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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열풍이 부는 책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어느순간에 트렌드를 반영하는 기호가 되었던 것처럼 열풍이 부는 책들은 모두 책의 내용보다는 그 기호가 하나의 유행이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거부감으로 인해 거의 읽지 않고 간단한 리뷰로 겉핧기만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도무지 20~30대 여성이 읽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니.. 그것도 1~2만부도 아니고 30만부가 훌쩍 뛰어넘었다는 소식에 호기심은 간단히 거부감을 뛰어넘는다.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주권자를 학살한 정권이 '민주'와 '정의'를 선점한 이후 우리에게 정의는 얼마나 희화된 개념이었을까. 기껏해야 깡패들을 잡아들여 삼청교육대에 집어넣는 정도의 '정의'가 우리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책은 정의란 이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책이 아니다. -물론 나도 그걸 기대하고 집어들었지만- 정의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라는 판단에 도달하기 위한 많은 철학적인 질문의 근원부터 사유해 내려오는 책은 그리 녹록하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벤덤과 밀의 공리주의, 칸트의 도덕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행복론, 롤스의 정의론. 그들이 내세우는 행복과 도덕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그 개념에서 출발하는 정의라는 개념을 다시 이야기한다. 물론 중간중간에 예시로 들이는 많은 구체적인 사례들은 (머 전철의 비유, 이라크에서의 염소치기, 어머니에게 동생의 불치병을 이야기할것인가,, 등) 적용될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더욱 생생한 살아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가족과 공동체의 번영을 , 자본주의 국가내에서 소규모 인적 네트워크의 강화를 이야기하는 그는  신자유주의로 변질되어 버리기전의 건강한 미국식 보수주의를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이다. 이 글에 걸린 어느 평론가는 민족국가가 진보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시대에 제국주의 변형으로 갈수있음을 지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그들의 살인을 미리 단죄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 

명백한 보수주의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좌파의 책으로 읽히는건 당연하다. 우리에겐 아직 명백한 중립적인 정의조차 허용되지 않는 봉건의 시대이며, 샌들이 말한 소규모 인적 네트워크로 인한 사회적 자본이 와해되기는 커녕 이제 연결이 되기 시작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샌들이 좋았던 60년대의 미국을 이야기하며 찬양할때 우리는 아직 2010년에도 그만큼의 길도 가보지 못했기에 그의 과거가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의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발전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는 소규모 인적 네트워크. 얼마전에 그나마 매력있던 대통령의 깨어있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 건전한 보수와 진보는 어쩌면 같은 길로 가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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