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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봉기 - 교양국사총서 19
한우근 지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초판이 나온지 삼십 년이 넘은 책이다. 당시에 나라 차원에서 추진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이후 절판되었다가 2000년 들어서 재발간을 하였다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책, 잘 팔리지 않을 책인데 과감히 재발간을 추진하였기에 이쁘게 봐주려고 했는데, 솔직히 교정이 너무 엉망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봐 왔지만 버젓이 서점에 내어놓고 파는 책 중에 이 정도로 교정 편집이 형편 없는 책은 처음 봤다. 활자의 오와 열이 어이없이 틀리거나 크기가 뒤죽박죽인 곳도 매우 많으며, 띄어쓰기나 부호 사용, 문단 나누기 등도 온통 개판이었고 오탈자는 수도 셀 수 없어서 책을 보는 내내 안습이었다. 평균적으로 한 페이지당 오류가 두세 곳 이상씩 있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각설하고 이 책은 내가 아주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 '동학 농민 봉기'에 대하여 꽤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은 일단 봉기 당시의 시대 상황부터 기술하고 동학이란 어떤 종교인가에 대한 설명을 거쳐 1차, 2차 봉기 과정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봉기 당시의 시대 상황은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횡포, 외세의 침략. 내가 특히 분개했던 것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 행태가 너무도 가혹했다는 사실이다. 완전 미친놈들, 악귀들이 따로 없다. 백성들에게 온갖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그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 그 많은 종류는 다 지방관리들이 임의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자기네 동네에 부잣집이 있으면 불효하다, 음란하다 등의 개소리로 트집을 잡아 재산을 몰수했단다.
1차 봉기는 그러한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려고 일으켰다. 전봉준이 대장이었고 전라도를 온통 휩쓸었는데,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울에서는 정예군을 내려보냈다. '정예군'은 군산에 상륙해서 전주로 향했는데, 애초에 800명이었던 병력수가 470명으로 줄어들었다 - 전투 한번 치르지 않았는데도. 한마디로 죄다 탈영한 것인데, 당시 우리나라 군대가 얼마나 기강이 없고 개판이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관군은 동학군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둘 사이에는 강화가 맺어졌고, 동학군은 여러 가지 조항을 내건다. 관군은 그 조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조약의 주도권이 동학군에 있는 걸로 보아서 동학군이 승리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당시에 정부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동학군과 관군이 강화를 체결하기 직전에 (모르고)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는 한국전쟁 때 양키들과 뙤놈들로 하여금 우리 동포를 죽이게 하였던 것과 같은 형국이다. 청나라 군대가 오자 쪽발이들도 군대를 끌고 오고, 두 나라가 싸우게 되자 그것이 바로 청일전쟁이다(정부는 뒤늦게 철군해달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을 놈들이 아니다).
쪽발이들은 국왕을 핍박하였다. 이러저러한 소식을 듣던 전봉준은 쪽발이들의 간계에 넘어가(봉기를 일으킬 것을 일부러 종용) 2차 봉기를 일으킨다. 이번 봉기는 왜놈들을 물리치기 위해 일으킨 것이다. 동학군의 주력은 논산에서 집결했다고 하는데, 그 수가 10만이 넘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죄다 몰살당했다. 쪽발이들이 전봉준에게 봉기를 일으키도록 종용한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동학은 교리에서부터 반일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 교세가 엄청나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일일이 색출하려면 고생하니까 아예 싸그리 모아서 진멸(盡滅)시키자. 일설에 의하면 동학군의 인명 피해는 20만이 넘었다고 한다. 屍山血河..
조금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정작 교주인 최시형은 전쟁 수행에 소극적이었으며 사후에도 어떻게 잘 빠져나가서 명맥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1차 때부터 줄곧 앞장을 섰던 전봉준은 붙잡혀 효수된다. 전봉준 사형 집행자 강모씨의 말이다.
「나는 전봉준이 처음 잡혀오던 날부터 나중에 형을 받던 날까지 그의 전후 행동을 잘 살펴보았다. 그는 과연 보기 전에 풍문으로 듣던 말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는 감이 있었다. 그는 외모부터 천인 만인 중의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청수(淸秀)한 얼굴과 정채(精彩)있는 미목, 엄정한 기상, 강장한 심지. 과연 세상을 한번 놀라게 할 만한 대위인 · 대영걸로 보였다.」
워낙에 우리나라가 뼈아픈 과거가 많기도 하지만, 이 동학 농민 봉기야말로 우리 할아버지들의 피로 얼룩진 수모의 역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짓밟히고 으깨어져도 잡초처럼 일어나는게 민초들인 것이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