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람] 편집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
  
(이혜란 글 그림)




이 책 만들면서 짜장면을 한 백 그릇은 먹은 것 같습니다.
이혜란 작가가 어찌나 생생하게 그렸는지 짜장면 그림에서 달콤하고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짜장면 냄새가 나는 것만 같거든요. 게다가 편집부 모두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누구 입에서든 “짜장…….” 소리만 나와도 침이 고인단 말입니다. 아, 쓰고 있는데 또 짜장면이 먹고 싶네요.
 
짜장면, 이 단어 때문에 ‘백분토론’을 백 번 했습니다.


“역시 짜장면은 짜장면이라고 써야 제맛이야.”
“자장면이라니, 이 싱거운 맛을 어떻게 할 거냐.”
“왜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이라고 읽냐, 웃기는 짜장이다.”
“아니다, 일단 어문규정이 맞아야 한다.”
“어린이들이 보는 교과서에 자장면이라고 되어 있지 않냐.”
“요리사들이 다 짜장면이라고 읽고 쓰는데, 메뉴판에 다 짜장면 쓰는데, 무슨 소리냐.”
“그럼 본문에는 자장면이라고 쓰고, 말풍선에는 짜장면이라고 쓰면 어떠냐.”
“한 책에 어떻게 짜장면이랑 자장면을 다 쓰냐. 어린이들 머리 아프게.”
“자장면은 그렇다 치자, 간자장은 어떡할 거냐, 뭐라고 읽을 거냐!”
“우리는 나이 먹어서 자장면이 어색하지만, 어려서부터 자장면이라고 읽고 쓴 어린 세대한테는 짜장면보다 자장면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안되겠다. 일단 자장면 한 그릇 먹고 다시 이야기하자.”
“이제까지 나온 의견 가운데 가장 좋은 의견이다. 나는 곱빼기다.”



격론 끝에 결국 짜장면이라고 쓰고, 속표지 앞에 ‘일러두기’를 두어 이유를 밝히기로 했습니다.
 
어느 동네든지 짜장 볶는 냄새 솔솔 나는 중국집 몇 개는 꼭 있고, 어느 집이든지 단골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힌 광고 스티커 몇 장은 꼭 있습니다. 누구나 추억의 굽이굽이에 짜장면에 얽힌 기억이 한두 개쯤은 있을 테고요. 그런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 중국집 요리사를 다룬 《짜장면 더 주세요!》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는 책입니다. 중국집 요리사 아저씨가 아침부터 밤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 꼬치꼬치 캐물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알차게 담은 책입니다. 아니, 꼬치꼬치 캐물어도 알 수 없는 것까지 담은 책이지요. 그래서 더 생생한 책, 감동이 있는 책이고요. 이것은 이혜란 작가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이혜란 작가는 중국집 가겟방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중국집 요리사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중국집 요리사,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모두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편집부는 오히려 넘치는 이야기를 덜어내야 했지요. 어린이들에게 맞게 눅이고 녹이는 과정도 필요했고요. 이혜란 작가는 경험을 뛰어넘어 보편에 이르는 이야기들과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들을 멋지게 엮어, 정보책이자, 이야기책이자, 그림책인 이 맛깔나는 작품을 잘 버무려 내었습니다.
 
일과 사람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총기를 지닌 데다 그림도 잘 그리고 마감도 잘 하는 작가랑 일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우리가 바로 그런 작가랑 일했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 복입니다.
만약 책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편집부 탓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 글 <일과 사람> 편집자 심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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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꽃은 소리없이 핀다

꽃은 어떻게 필까. 꽃은 소리없이 핀다. 꽃은 고요하게 핀다. 고요한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핀다.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아우성치지 않으면서 핀다. 자기 자신으로 깊어져가며 핀다. 자기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언 땅 속에서도 깨어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도 눈감지 않고 뜨거움 속에서도 쉬지 않는다.  


달이 소리없이 떠올라 광활한 넓이의 어둠을 조금씩 지워나가면서도 외롭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걸 보면서, 꽃도 그 어둠 속에서 자기가 피워야 할 꽃의 자태를 배웠으리라.  


…중략… 
 


봄도 그렇게 온다. 아주 작은 냉이꽃 한 송이나 꽃다지 한 포기도 그렇게 추위와 어둠 속에 그 추위와 어둠이 화두가 되어 제 빛깔의 꽃을 얻는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혹독한 제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한다.  
발치 끝에 와 발목을 간질이는 어린 풀들을 보며 신호라도 하듯 푸른 잎을 내미는 나무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한다. 그 나뭇가지 위로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는 반가운 목소리가 모여와 쌓을 때 비로소 봄이라고 말한다.  


추상명사인 봄은 풀과 나무와 꽃과 새라는 구체적인 생명들로 채워졌을 때 추상이라는 딱지를 떼고 우리의 살갗으로 따스하게 내려온다.  (pp33-35) 
 

 
3월 초 까지만 해도 올해 이례적으로 눈이 펑펑 왔었죠. (눈이 와도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뛰놀 수 없지마는 그래도 흰 눈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 ^) 한데, 그렇게 눈이 내리던 3월에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낮은 꾸준히 1분씩 길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조금씩 찾아온 봄이 이제 제법 봄 다워 졌구나 싶어요. 빈 가지가 점점 무거워 지고 무채색이었던 풍경이 180° 바뀝니다.
잎사귀가 자라거나 꽃이 피는 소리가 있다면 봄은 가장 시끄러운 계절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봄은 어느 순간 새로 돋아나는 잎사귀에도 ‘봄이다!’하며 눈을 반짝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독자님들도 소리없이 온 봄을 바쁜 중에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봄이라는 생명의 계절을 눈으로 피부로 열심히 즐기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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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주영하

196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중국 중앙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 대학원 민족학과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中國四川凉山彝族傳統漆器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10월부터 1년 동안 일본 가고시마대학 인문학부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교수로 있다.  


민속학과 음식학을 주로 연구하며, 전근대와 근대의 사유와 생활이 혼재되어 있는 19세기와 20세기라는 시간 축에 관심이 많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한국·중국·일본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꾸준히 현지 조사를 수행하면서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김치의 문화인류학』(1994), 『한국의 시장―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공저, 1995․2003), 『음식전쟁 문화전쟁』(2000),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2000),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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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뉴멕시코의 로컬 라이프 프로젝트 

도시 생활의 안락함을 누리던 뉴욕 토박이가 석유 중독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며 뉴멕시코 촌구석의 외딴 농장에 정착한다. 단 인터넷과 아이팟, 화장실 휴지, 아이스크림은 포기할 수 없다. 기름을 덜 쓰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활 동력을 공급하고, 지역에서 나는 로컬 푸드로 먹고 살려는 에코 농장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녹색으로 디지털 시대를 누리며 생활하려는 시도는 순탄하지 않은 고생길이다. 또 건강한 로컬 라이프를 실천해보려 하지만 월마트를 피할 수 없다는 모순에 사로잡힌다. 

 
   



  *개인적으로 볼 때 녹색 삶이라는 모험을 떠날 시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으니까. 다만 전기, 배관, 건축, 엔진에 대한 기계적 지식, 원예나 축산 기술이 전혀 없었을 뿐. 뉴욕 근교에서 도미노 피자를 먹고 자란 나는, 서른여섯 살 나이에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산 평범한 사내가 원유를 절감하는 행보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이는 먹고살기 위해 가축을 치고 농사를 짓고, 휘발유가 아닌 다른 이동 수단을 생각해내며, 은행계좌가 텅텅 비도록 태양열에 자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_ 14쪽

  *작금의 녹색 열풍이 그저 그런 유행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었다. 유가가 좀 내릴 때까지 잠깐 휩쓸고 지나가는 유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가 2달러 29센트의 시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3달러 29센트 유가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저 귀여운 변덕 정도로 시작됐던 일은 머지않아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여정이 되었다. _ 16쪽

  *하지만 아무리 절실히 원한다고 해도 휘발유와 중국 노예 공장 생산품을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프로젝트를 가동한 후 처음 한두 해 동안은 말이다. 내 삶에 너무 깊이 파고들어와 있었다. 베이글은 어떻게 구워먹을 것인가? 그리고 미안하지만, 기자 신분으로 아무리 오지를 다녔어도 화장실 휴지에 대한 깊은 애착은 버릴 수 없었다. 휴지는 거의 날마다 내 인생의 일부로 존재했다. 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스크림이 있다. 사회야 어떻게 돌아가건. 아이스크림 없이는 못 살았다. 이것이 바로 제멋대로 날뛰는 옹고집 염소들을 키우게 된 내밀한 진짜 이유였다. _ 26쪽

  *목장을 깔끔하게 가꾸면서 녹색 삶도 실천해야 하고 로컬 라이프도 꾸려 나가야 했으니까. 이 말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백만 개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과 일과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태양열 전지판도 주문해야 하고, 바이오 연료도 알아봐야 하고, ‘스케줄’에 끼워 넣어서 일 좀 맡아달라고 시공업자들한테 빌기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염소들을 인수해서 제충 작업을 하고 발굽을 손질해주고 하루에 두 번 꼬박꼬박 먹이를 주는 일이었다. _ 42쪽

   
 

CHAPTER.2 디지털 시대의 가축 쇼핑

인터넷으로 염소를 구입한 덕 파인은 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 비로 물이 불어난 강을 목숨을 걸고 도강한다. 홍수로 고립무원이 된 지경에서 염소치기의 생활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염소를 본 게 고작이었던 저자에게 염소치기의 삶은 코요테부터 염소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밤을 새야 하고, 24시간 수의사가 되어야 하는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죽고 못사는 아이스크림을, 미래의 단백질원을 책임진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염소치기의 생활에 빠져든다.

 
   



  *그 질주를 마지막으로 한 달 반 동안은 밈브레스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한 자동차가 한 대도 나오지 않았다. 엔진 블록이 강물에 푹 잠기고 휠 베어링이 다 떨어져 나간 상태를 ‘성공적’이라고 볼 경우 그렇다는 얘기지만, 나로 말하자면 진짜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사흘 뒤 강물 한가운데서 몬스터 트럭이 전복해 이웃 잭이 썬루프 창으로 간신히 탈출한 걸 고려하면 더욱이나 그렇다. _ 50~51쪽

  *나는 녀석한테 나탈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유는 가수 나탈리 머천트의 목소리가 좀 염소 울음소리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끼 염소가 어찌나 힘차게 젖병에 달려드는지, 내 젖을 직접 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보고만 있어도 몸이 움츠러들면서, 내 가슴을 어루만지게 될 정도였다. 새끼 염소는 젖꼭지를 꿀떡 삼켜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쾌감은 시작에 불과했다. _ 54쪽

  *그리하여 나는 갓 짜낸 맛있고 싱싱한 치즈, 요구르트, 그리고 초콜릿 염소젖 아이스크림은 저절로 식탁 위에 짠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현실과 곧 타협하게 되었다. 행여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채 하룻밤도 가지 못했다. 염소들이란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분통이 터졌다. _ 47~58쪽

  *사각팬티를 입고 카우보이모자를 쓴 염소 시종인 나는 염소들이 소리를 지르는 동안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보수우익 목장 주인들이 억지로 사과를 안겨주고, 예쁜 환경운동가들이 내 염소의 목숨을 구해주러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니,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뿐 아니라 그 무엇을 못 해주랴. _ 82쪽

   
 

CHAPTER.3 식용유 세례를 받고 개종하다

석유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제 휘발유 승용차인 스바루를 버리고 위풍당당한 포드 트럭을 구입하여 식용유로 구동할 수 있게 개조한다. 대안에너지 전문가인 식용유 정비사는 걸프전 참전용사 출신의 공군 군무원으로 히피들을 혐오하고 폭스 뉴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공화당 지지자다. 그에게 석유를 거부하는 것은 애국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감수성 예민한 진보주의자였던 덕 파인은 식용유용으로 개조한 우락부락한 트럭을 타고 마초 기분을 내고 깐풍기 배기가스를 내뿜고 다닌다.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앨버커키 대체에너지 창고 계단 두 개를 쿵쿵 엉덩방아 찧으며 내려가고 말았다. 하지만 식당 기름 속에서 살다시피 하는 정비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만 이번에는 식물성 식용유로 뒤덮인 콘크리트 바닥을 가로질러 이동하기에 ‘걷기’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몸소 배울 기회를 또 얻게 되었다. 알고 보니 ‘미끄러져 가기’가 오히려 적절한 기술이었다. …… 화석연료를 떼는 과정은 미끄럽고 위험천만했다. _ 92쪽

  *“저는 애국자입니다.” 이것이 식용유 엔진 정비사가 페르시아 만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창고에서 내게 해준 말이었다. “어느 날 거기 착륙하는데, 우리한테 발포하고 있는 저 사람들이 우리가 자동차에 넣고 다니는 원유를 팔아서 재원을 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도 안 되는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자동차에 뭐 다른 걸 넣을 수 있는지를 좀 봐야겠다 싶었어요.” _ 94쪽

  *내가 스스로에게 투사했던 그런 종류의 남성성은 이제 영원히 변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젯밤 잠들 때 나는 틀림없이 감수성 예민한 진보주의자였는데 눈을 떠보니 NASCAR(미국 개조 자동차 경주대회)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다알라 같은 이름의 여자들이 사람 신체 부위를 보듯 내 트럭에 흘끔흘끔 눈길을 주었다. 윙크를 하기도 했다. 문신을 한 팔을 흔들며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한두 번은 혓바닥을 낼름거리기도 했다. _ 101쪽

  *‘내가 쓸 식용유는 충분할지’가 궁금해졌다. 평생 처음 미국인들이 건강에 좀 덜 좋은 음식을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튀김 기름이 계속 넉넉하게 나올 테니까. 개인적으로 꼭 필요하다면 프렌치프라이를 엄청 많이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상상까지 했다. _ 104쪽

   
 

CHAPTER.4 태양은 공짜라니까

목장의 동력을 태양열로 전환하기 위해 9미터 높이의 풍차 탑에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는데, 강풍이 불어 풍차에 매달려 목숨을 건 서핑을 한다. 또 지하수를 퍼 올리는 파이프에 유독물질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태양열로 작동되는 펌프로 끌어 올린 물탱크 주변에서 칠레만 한 크기의 방울뱀을 만나 현대판 사무라이가 되어 싸우는 등 요절복통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전업 운동권인 히피 친구를 만나 녹색 생활과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전지판들은 내가 새로 산, 호사스럽게 값비싼 태양열 구동 우물 펌프에 동력을 제공하게 되어 있었다. 펌프는 덴마크산이었다. 노예노동도 쓰지 않고, 월마트에서 소매 물품을 팔지도 않는 나라다. 아프리카 차드의 빈민들에게는 이런 펌프가 없다. 이 값비싼 브랜드 기기는 이미 지하 140미터 밈브레스 지하수면에 묻혀 있다.  _ 132~133쪽

  *하지만 녹색 친환경 물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날 아침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그게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 난 풍차를 기어오르다 말고 중간쯤에서 한 팔로 매달려 있었지만 힘이 빠지고 있었다. 원래 나와 시공업자의 발밑을 받쳐주게 되어 있는 널빤지에 발끝만 간신히 대고 있었다. 아, 이럴 수가, 내 나이를 늙었다고 보는 건 밈브레노들밖에 없을텐데, 이런 창창한 나이에 죽다니 진심으로 사양하고 싶은 운명이었다. _ 133쪽

  *하지만 그 후광은 칠레만 한 크기의 방울뱀이 식수원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자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 다음 날 아침, 패드가 들어간 사슬톱 작업용 가죽바지에, 오토바이 헬멧, 두꺼운 겨울용 장화, 그리고 큰 칼로 구성된 보호장구를 갖추고 탱크의 수위를 확인하러 나섰다. 문간에 서서 4달러 주고 산 월마트 무기를 만족스러운 ‘쉭’ 소리와 함께 꺼내어 휘둘러보았다. 심하게 흥분되고 꼴은 우스꽝스럽고 하여, 마치 현대의 사무라이가 된 것 같은 복잡한 기분으로 나는 풍차 앞에 섰다. _ 144~148쪽

  *허비가 이 프로젝트의 고귀한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어이, 드릴을 석탄과 가스에 좀 꽂아주겠나?” 그가 내게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국가 송전망을 추방함으로써, 내 인생에서 석유를 없애고자 일하고 있다는 사실. 초기 단계에서는 흠 없는 이미지를 흐리는 유독성 보라색 물질이 끼어 있다 해도, 미래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나가자. _ 166쪽

   
 

CHAPTER.5 땀의 열매를 거두다

좌충우돌 에코 농장 프로젝트는 결실의 계절을 맞는다. 펑펑 생산되는 유기농 달걀의 처리와 콜레스테롤 수치를 걱정할 정도다. 흐뭇하게 해주던 닭들이 코요테의 습격을 받고, 덕 파인은 총을 들고 딕 체니라 이름 붙인 코요테를 경계한다. 또 단백질 공급을 위해 시도한 사냥은 부상을 입고 초라한 결과로 포기한다. 삽질과 실패의 시리즈는 계속된다. 가을걷이의 기쁨을 만끽하던 차에 쏟아진 우박 폭풍은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려버린다. 하지만 우여곡절 속에 녹색 삶이 어떻게 진일보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   

 
   


  *닭들은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 사실 저비용으로 목장 생활에서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 하겠다. 한 달에 8달러어치 사료 값만 들이면, 의기양양하게 일렬종대로 펑키 뷰트 목장을 행군하고 다녔고, 하루 한 번씩 헛간의 작은 둥지에 들어가서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때 말고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 그리하여 내 삶은 조류독감과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_ 181~182쪽

  *벌거벗고 기진맥진 잠들어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서 택사 거실로 뛰쳐나왔다. 나를 맞은 것은 미닫이 유리창을 맹렬하게 할퀴며 달아나는 혼비백산한 닭의 모습이었다. 그놈은 최고의 달걀 생산자였다. 내가 ‘그레이트 레드 레이어(위대한 빨강 어미닭)’이라 이름 지어준 로드 아일랜드 종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흐릿한 눈을 비벼볼 새도 없이, 빨간 털의 코요테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아마 30센티미터쯤 뒤에서 닭을 뒤쫓고 있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나와는 아마 30센티미터도 못 되는 거리였으리라. _ 186쪽

  *솔직히, 코요테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공정한 시각을 견지하자면, 내가 싱싱한 햇닭을 사먹는 마당에 딕 체니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싶었다. 딕 체니의 저지방 고단백 식단에는 탄소 마일리지가 제로에 달할 텐데. 녀석은 친환경주의자였다. _ 192쪽

  *목장을 경영하고 행복을 가꾸는 일은 둘 다 약간은 장거리 경주를 대비해 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차근히 깨달아야 했다. 점진적으로 진일보하는 것도, 개점 휴업일이 있는 것도, 퇴보, 부상, 그리도 도약적 발전까지. _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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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자 2009-09-2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사계절출판사 2009-10-21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saint236 2009-10-1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평단 3기였는데요, 책을 이제야 받았네요. 평소에 관심있던 분야인지라 완전 두근거리며 책을 폅니다.

사계절출판사 2009-10-21 13:40   좋아요 0 | URL
재밌게 잘, 읽고 계신가요? :)
 

  



여행 작가이자 프리랜서 기자,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을 떠났고, 버마, 르완다, 라오스, 과테말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오지와 분쟁 지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워싱턴 포스트』, 『U.S.뉴스』, 『월드 리포트』등에 기사를 썼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National Public International)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대 때 편안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진정한 행복을 깨닥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났으며, 이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쓴 『진짜 알래스카 산 사나이는 아니지만Not Really An Alaskan Mountain Man』을 발표했다.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뉴욕 토박이로, 현재 뉴멕시코 주 남쪽의 외진 골짜기에서 염소와 코요테와 더불어 살고 있다.  

 

작가 홈페이지 : http://www.dougf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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