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대마다 달랐던 고민의 역사'

"'고민하는 힘'은 학창시절 재일 한국인으로서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쉰일곱 살이 된 지금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했던 아홉 가지 주제를 토로한다."  

기사 바로 보기: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1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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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한다고 밥이 나오냐? 나온다네!
[리뷰] 강상중 도쿄대 교수 에세이 <고민하는 힘>  

-허진무 

"그리하여 아무도 세상에 저항하지 않으면 공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고민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테다. 마침내 고민의 힘으로 전장에 섰을 때 '할리 데이비슨'을 부르릉거리며 호방하게 웃는 강상중을 만나게 되리라."

기사 바로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08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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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저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 기행』 등을 썼고,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주술의 사상』, 『욕망의 연금술사, 뇌』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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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 『고민하는 힘』에 열광하고 있다!
 

 
윤리가 결여된 머니게임 끝에 사회질서가 붕괴한 요즘 필요한 책이다. 자아, 돈, 지식, 청춘, 종교, 노동, 사랑, 죽음 등 여러 주제에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생철학을 터득하는 입문서로 유익한 책이다. _아마존재팬 독자리뷰

베버와 소세키가 격투했던 근대보다 지금, 사람들의 고독이 더 증폭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족적과 저서에서 살아 있는 힌트를 이끌어낸다. 저자는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성립한다’고 강조한다. _「마이니치 신문」

비참할 정도의 밝음이 뒤덮은 현대에 차분히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이 시대의 키워드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영적인 붐이 일고 있다. 강상중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소세키와 베버의 고전을 펼칠 것을 권한다. _「주간 아사히」

어설프게 고민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거기에 그 사람 나름대로의 대답이 있다. 고민을 뚫고 나온 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개운하고 ‘이 세상에 두려울 게 뭐람’ 하는 심정이 된다. _「여성 세븐」

“지금 일본 사회는 다소 폐쇄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 연금, 보험, 다양한 네트워크를 찾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키워드가 없는지 생각해봤더니 그것이 바로 ‘고민’이었습니다.” _「요미우리 위클리」 인터뷰

자신의 키에 맞는 자기다운 인생을 살고 나름대로의 고민을 거듭한다. 이 책은 이 한 마디로 집약된다. 자신의 키를 찾아낼 곳은 게임과 같이 혼자만 잘난 세계도 가상현실도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회다. _「니혼게이자이 신문」

“자본주의는 타자와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일본 사회는 차이를 찾아내기가 몹시 힘들기 때문에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찾아내려 하고 거기서 격차가 생깁니다. 이 게임에 지쳐 쓰러지는 이들을 보면, 살아가는 일은 고민과 직결됨을 알 수 있지요.” _「주간 포스트」 인터뷰

『고민하는 힘』이 베스트셀러를 기록 중이다. 저자 강상중은 제목처럼 고민 많은 반생을 보냈다. 재일교포가 겪어온 차별과 소외가 일본인 전체로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이를 ‘일본인의 재일화(在日化)’라고 부른다. 대기업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시 체제에 동원되어 방치된 재일교포와 비슷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_「겐다이(現代)」

사실 이 책은 정치․사회 개혁을 제언하는 책이다. ……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 핵심에 있는 가치관이나 인간관, 사회관, 삶의 방법을 다시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_「JB 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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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우리 삶에 고민을 불러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세계화를 들고 있다. 세계화는 개인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요하는데, 이 변화의 흐름에서 정작 개인들은 과거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보다는 소외와 고립,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야기하는 고민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또는 이 고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홉 개의 장을 통해 살펴보자. 


 


1장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되는 ‘자아’는 자기 속에 갇혀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주의’와는 다르다. 근대 철학에서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구별이나 대립 등 ‘타자’의 존재를 바탕으로 발견되었다. 개인주의의 시대인 근대 이후 비대해진 자아는 사회의 해체를 초래하기도 했다.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다가 한국을 방문한 후 새로운 자기 인식을 갖게 된 자신의 경험과, 자아에 사로잡혀 관계에 좌절하는 소세키 소설 속 인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마침내 타자와 진지하게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 인정’에 의한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타자에 대해 던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타자와 상호 인정을 하지 않는 일방적인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면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_41쪽




2장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돈’은 근대 이후 모든 가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가치를 지닌 기호로 존재해왔다. 소세키와 베버의 시대에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가치로 대두되었고 그로 인해 무수한 폐해가 생겨났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그들 시대의 산업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금융 기생적 자본주의로 변질되었으나, 그 두 사람은 당시 이미 ‘영혼이 없는’ 자본가(전문가)나 이에 기생하는 사람들을 문제 삼음으로써 돈의 위험성을 예감했다. 저자는 베버나 소세키처럼 가능한 범위에서 돈을 벌어 쓰고 윤리를 고민하면서 자본의 논리 위에서 중심을 잡자고 말한다.

나는 아무 주저 없이 “검약은 미덕이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나카노 고지(中野孝次) 씨의 『청빈의 사상』이라는 책도 있지만, 오늘날 ‘청빈’에서 그 어떤 문화가 생기기는 힘듭니다. ‘가난하다’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현자의 선물』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며, 『우동 한 그릇』을 읽어도 현대의 우리는 곧바로 감동을 느낄 수 없습니다. _61쪽



3장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지성은 학식이나 교양과 더불어 협조성과 도덕관을 갖춘 종합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성은 분할되어 일부만이 비대해졌다. 베버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조화롭고 종합적인 지성 획득이 불가능할 것임을 전망했다. 현대 사회에 정보와 지식은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생산, 유통되고 있지만, 그 정보의 질은 인간 중심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우리의 지성이 어떤 이유로 존재하며,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 과거에 인간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지식․기술에 대한 신체적 감각을 되살리자고 주장한다.

물론 ‘무엇이든 알고 있는 박식한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본래 ‘박식한 사람’, ‘정보통’과 ‘지성’은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다(know)’와 ‘사고하다(think)’는 다릅니다. ‘정보(information)’와 ‘지성(intelligence)’은 같지 않습니다. _65쪽



4장 청춘은 아름다운가?
청춘은 비단 인생의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청춘의 의미를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민하다 보면 좌절이나 당혹감을 맛볼지도 모르지만, 고뇌 없는 청춘은 ‘바싹 마른 건조한 청춘’, 즉 반드시 겪고 넘어서야 할 인생의 고비를 지나치고 늙어버리는 것과 같다. 청춘의 방황을 겪지 않고 별다른 고통 없이 목표한 바를 이룬 인생은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청춘은 좌절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실패가 있기 때문에 좋은 시기다.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 반드시 존재하는 ‘청춘’을 알지도 못하고 끝을 내거나 그 소중한 청춘을 매일 한 장씩 떼어서 버리는 것, 그것은 불행이 아닐까요? 그렇게 살다가 10년 후에 자기 삶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삭막함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_88∼89쪽



5장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종교란 무엇일까? 근대 이전에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종교가 곧 자신의 종교가 되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물음 자체가 생길 수 없었다. 그러나 과학과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종교의 권위가 상대화된 근대 이후 개인은 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더구나 개인주의는 자신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인 종교’의 시대를 열었다. 베버나 소세키와 같이 자신의 지성만을 믿으면서 자기와 끝없이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믿는다는 일은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고민을 계속하거나 분별력을 키워야만 가능한, 외롭고도 힘든 일이다.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이며,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믿고 해답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쩔쩔매는 일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관계를 선택해야 할지, 상대에 대한 기분을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낳지 말아야 하는지,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죽음과 마주할 것인지……. _103쪽



6장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일을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먹고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면 먹고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일을 하지 않게 될까? 생존이 목적이 아닌 노동, 이른바 ‘신성한 노동’ 개념은 사라지고, 19세기 말 이후 직업이 전문화,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영혼이 없는 전문가’, 곧 일만 하는 ‘기계’가 생겨난다. 그럼에도 저자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노동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수단이며, 자기가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보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의 꿈을 실현시켜 줄지 그렇지 않을지는 다음 단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면, 이 배려라는 ‘인정의 눈길’은 가족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자로부터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_118쪽



7장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사랑에 대한 진정한 논의는 없는 요즘 현실에 대해, 저자는 사랑하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오히려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한쪽에는 순애보적인 사랑에 대한 열망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는 상대방의 외적 조건을 주요 척도로 삼는 사랑의 형태도 있다. 이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하는 세태에서 비롯하는데, 이 경우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사랑이란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정해진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권태기의 부부라 해도 그들 사이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남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랑의 모습은 변하며, 상대방의 물음에 응답할 의지가 있는 한 그 사랑은 지속된다.

부부에게는 부모 자식 같은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원래는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비탄에 잠기고 상대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모습을 바꾸면서 서로 속에 존재하고 그렇게 쌓인 것이 자기 인생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사랑이 성취되었는지 어떤지는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은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사랑의 모습은 변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이 식을 것을 처음부터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_138~139, 140쪽



8장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엽기적인 무차별 살인과 자살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결과다. 저자는 삶에 대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무제한적 자유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자유와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대가로 고립감과 단절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죽(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것을 권한다.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에게 인정받음으로써 갇혀 있는 자아가 아니라 독립적이면서도 타자와 연결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은 비슷한 무게를 갖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 삶의 보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해답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 돈이나 학력, 지위, 일의 성공과 같은 것은 최종적으로는 살아갈 힘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내면에 깃드는 충족감, 즉 자아 또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될 듯합니다. _150쪽


9장 늙어서 최강이 되라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분별력과 원숙한 지혜를 지닌 존재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노인은 사회의 규범에서 밀려난 존재, 비노동인구로 인식될 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분별력 없는’ 노인의 힘은 사회를 ‘교란하는 힘’이라고 규정하며, 이 힘을 통해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중시하는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람은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젊은 시절에 하지 못한 것들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뻔뻔함’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저자의 경우,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일본과 한반도를 종단하고 싶다거나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노년에 이르러 ‘뻔뻔해진다’는 것은 고민한 끝에 두려움이 사라지는 경지다. 고만고만한 꿈과 노년 계획, 안정만을 추구하지 말고 고민을 거듭한 후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최강의 노년을 살라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사실 지금의 시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꿰뚫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지식의 세계가 모두 가득 차 있습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간섭을 하거나 옥신각신해도 폐쇄감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면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_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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