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특히 복지국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로의 이민이 대세다.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북유럽으로의 이민이 2배나 증가했다는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다. 이러한 이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의 의사표현이자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엑소더스다. 하지만 이민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사실 북유럽으로의 이민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상당한 자산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이민을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바로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북유럽 국가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이다.

 

UN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국가는 덴마크다. 스스로 행복하다는 국가가 있다면 대한민국 사회도 그것을 벤치마킹하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다. 바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다. 오연호 대표는 세계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한 명의 탐험가로 분()해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덴마크의 행복이 어디서 연원했는지 탐험한 오연호 대표의 족적은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로 묶였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절절한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다.

 

평등, 안정, 신뢰, 그리고 가치관

 

독일 역시 복지 제도가 잘돼 있는데도 왜 덴마크인들이 더 행복하다고 할까요? 그것은 제도 이전에 태도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는 정신적인 태도, 가치관이 중요하죠. 덴마크에서는 남이 큰 집을 갖고 있어도, 친구가 좋은 대학을 다녀도 부러워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덴마크 사회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먼저 제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94)”

 

너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돼.” 한 모자(母子)가 길을 청소하고 있는 환경미화원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공부하지 않고 놀기 바쁜 자식에게 잘 되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그 엄마가 환경미화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폭력적이다. 환경미화원은 상대적으로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깔보는 시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시선을 받는 환경미화원 역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남보다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보다 못한 남을 깔보는 사회. 대한민국은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는 사회다. 심지어 엄마의 배 안에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같은 기간을 자란 쌍둥이조차 누가 먼저 나왔는지에 따라 형(언니)/동생이 나뉜다. 쌍둥이를 그냥 쌍둥이라 부르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열이 명확해야 하고, 열에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깔봄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지경에 있다.

 

앞서 언급한 덴마크의 사례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열보다는 평등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회로 변모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했든,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봐주는 사회라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보다 다른 가치에 의해 존재를 평가받는다면 소수만이 행복할 수 있고, 다수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수치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행복이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그건 주로 좋은 관계를 맺는 데서 나옵니다. 나는 좋은 관계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미국인들은 아마도 우리가 세금을 월급의 50퍼센트나 내면서 왜 행복하다고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을 잃어도 별걱정이 없어요.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평등하죠. 늦은 밤에 코펜하겐 시내를 걱정 없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치안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친구와 이웃이 있어요.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 시민에게는 정부와의 관계든 이웃과의 관계든 가족 관계든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돼 있습니다.(102)”

 

평등이라는 가치관이 사회 내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된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신뢰다. 대한민국 사회는 현재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행정부에서 시작해 사법부, 입법부, 그리고 국민들 사이조차 불신으로 팽배해 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정글과도 같은 상황이다. 이런 사회에서 행복이 존재할리 만무하다. 전향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불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저자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덴마크의 교육은 우열을 나누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기회의 균등보다 결과의 평등을 중요시 한다. 요컨대 누가 빨리 목표한 수준에 오르는지 평가하기 보다는 모두가 목표로 한 수준에 오르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더불어 경쟁보다는 협동이 중요함을 교육함으로써 모두가 동일한 인간임을 깨우칠 수 있게 한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는 딴판이다. 우열반을 나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차별하고, 학생간의 경쟁을 조장해 서로의 노트를 찢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사교육과 부모의 등쌀은 대한민국을 OECD국가 중 가장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아이들조차 행복하지 않은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행복할리는 만무하다. 대한민국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들부터 인간으로써 동등하며 스스로의 개성을 존중받는 존재로 교육받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직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세계가 놀랄 만큼의 기적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성장에 국한된 것이었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경제가 성장한 만큼 사회적인 의식이나 문화적인 수준이 따라오지 못하는 문화지체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경비원 분신 사건만 보더라도 직업의 귀천을 구분하고 인간의 평등이란 가치가 상실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라도 자본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를 배제하고 물질적인 것만 추구할 때 지금의 대한민국과 같은, 행복이 없는 사회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행복한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 보장, 개인의 능력을 맹신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것 등 자본이 아니라 인간에 가치를 두는 사회로의 변신이 필요하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고민은 오연호 작가처럼 가장 행복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취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한민국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정책이나 운동을 고안해내는 노력일 수도 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현재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또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난 이와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고떠난 이는 반드시 돌아온다이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고사성어를 풀이한 것이다이 고사성어처럼 영원한 만남이나 영원한 이별은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다그럼에도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관계에서 결국 상처를 받고 만다.

 

  그 상처는 서로 얽히고설키며 공유했던 것을 단칼에 잘라냄에서 오는찢어짐과 같은 아픔일 것이다우리는 그런 상처들을 잊으려 하지만그 욱신거림에 신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그렇기에 임경선 소설가의 기억해줘는 욱신거림과 신음에 관한 이야기다다시 말하면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실패거기서 파생된 상처에 관한 기록이다.


사랑과 상처의 인과관계

 

  『기억해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별에서 시작된다그리고 한 남자의 기억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연인간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이야기는 한 남자가 맺는 관계와그 관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관계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퍼져 나간다그 속에서 연인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상처 등의 이야기도 녹아있다.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사랑과 상처에 관한우리가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익숙한 세상이 펼쳐진다사랑이 없는 부부유부남과의 불륜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 등이는 우리의 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불투명한 무엇인가에 싸여있어 희미하지만 기억해줘에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무런 포장도 없는 날 것이다그래서 낯설다.

 

  『기억해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로맨스소설이다그럼에도 이 소설이 끌리는 것은 사랑과 상처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랑이란 것은 합일의 경험이다인간은 본연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그렇기에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어떤 공백을 메우는완결성을 갖는 일이다태어날 때부터 천형과 같은 결핍을 가진 인간은 결국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결실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처를 낳는다하나가 되었던 것이 다시 갈라진다는 것은 그 이전의 상태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박스를 밀봉하기 위해 붙였던 접착테이프를 떼어낼 때 박스의 표면이 테이프에 붙어 딸려나오는 것처럼사랑이 끝난다는 일은 상대의 잔여물을 갖고 나의 일부를 때어주는 작업이다.

 

  사랑한 후의 인간은 사랑하기 전과 다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실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일부가 된 상대의 흔적을 떨쳐내려고만 한다헤어진 상대에게 항상 나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을 보면 말이다눈물로 씻어내 보려고도 하고분노로 그것을 뜯어내보려고도 하지만 그것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둔다면 결과는 누가 봐도 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헤어짐의 경험을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던 옛 연인을 만남으로써 그 의식은 완결된다.

 

그리고 기억해줘

 

  단편이든 장편이든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책을 덮을 때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책을 덮기까지 읽은 소설의 내용과 소설의 제목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제목은 단어의 뜻 그대로하나의 작품을 대표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다과연 이 제목이 소설 전반의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기억해줘의 제목인 기억해줘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제목이기는 하지만 소설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그 이유는 사랑이 남긴 상처가 단지 떠올리기 싫은 아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그 상처가 사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일부였음을이를 깨닫고 그 상처를 기억해달라고 소설이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장황하게 기억해줘에 관해 떠들었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꺼이 상처받을 것그리고 기억해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적으로 공감할만 한 내용이었다. 진보를 표방한 세력(그들이 정말 진보인가는 차치하더라도)이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권력에 대항하는 자신들을(정말?) 지지하지 않은 자들을 혐오하거나 조롱하는 태도에 대해 경각심을 줄만 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단점도 만만찮다. 저자가 단 시간에 책을 뽑아내는 강준만 작가인 탓인지 인용이 너무나 많았다. 저자 자신이 싸가지 없음에 관해 논하고 있음에도 헤아릴 수 없는 인용으로 도리어 자신이 싸가지 없어보임을 자각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나의 자격지심 때문일까. 과도한 인용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뭔 그리 오류, 현상, 편향 등의 이론이 많은지...
더불어 싸가지 없음과 관련이 없을 법한 일들까지도 싸가지와 엮으려는 비약도 몇몇군데 보였다. 그리고 진보 지식인의 과격한 단어 선택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말하는 싸가지 없음이 그 과격한 단어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는지 아쉬울 뿐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의 가장 큰 문제는 싸가지 없음이 아니라 무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U-17 AFC에서 한국의 메시라 불리는 이승우 선수의 세레모니가 싸가지 없음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이승우 정도의 실력이라면 저정도는 신성의 패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의 선결과제는 실력을 키워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현재 그들에게는 아무런 컨텐츠가 없다. 오로지 반새누리 혹은 반 정권이라는 정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반 새누리 정서에 편승하는 것을 벗어나 그들만의 컨텐츠를 생산해 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무능을 극복한다면 싸가지 없음도 자신감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겸손한 무능력자로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치킨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중국에서 치맥(치킨과 맥주) 열풍이 불고 있다고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여파였다.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인 천송이가 치맥을 뜯고 마시는 장면 때문에 치맥을 먹지 않았던 중국 사람들이 치맥을 먹게 되고, 이로 인해 해외창업이 활발해진다니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일어난 치맥 열풍 소식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치킨과 맥주라는 음식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즐기는 국민음식인 탓일 것이다. 셀 수도 없는 프렌차이즈가 영업을 하고 ‘11을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에서 치킨은 소울푸드라고 할 만하다. 이런 의미를 가진 치맥을 중국 사람들도 즐긴다니 오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자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가 보다. 때문에 누구보다 치킨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프랜차이즈 치킨을 맛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이런 필자의 눈에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제목의 책이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대한민국 치킨전>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치킨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닭 본연의 맛보다 튀김옷과 소스의 맛

 

사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조사하고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의문은 대체 치킨은 무슨 맛으로 먹는가였다. 그런데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 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각자 갖고 있는 치킨의 취향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로 갈리지만 그건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58)

 

필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치킨을 먹는다. 왜 이렇게 자주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렇게 치킨을 먹은 게 10년 정도 된 것 같으니, 계산해보면 수천 마리의 닭이 필자를 위해 희생한 셈이다. 현 시대를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치킨을 이렇게 먹는다면 만 마리 정도의 닭이 필자를 위해 죽을 팔자다.

 

이처럼 필자는 수도 없이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치킨을 뜯으면서 당연히 닭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치킨을 먹는 이들이 치킨과 닭을 연결 짓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치킨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닭 본연의 맛보다 튀김옷과 소스의 맛이라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치킨을 주문할 때도 양념치킨인지, 간장치킨인지, 아무런 소스도 없는 후라이드 치킨인지를 선택했지 어떤 닭을 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닭 본연의 맛보다 닭을 감싸고 있는 튀김옷과 소스의 맛을 즐겼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치킨의 주재료인 닭은 단지 씹는 식감을 주는 역할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필자에게 소소한 충격을 던져준 책은 이어서 대한민국 전역에 산재한 치킨 프랜차이즈에 관해 다루고 있다.

 

치킨의 주요한 공급원, 치킨 프랜차이즈

 

한국형 프렌차이즈 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치킨시장도 마찬가지다.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로열티의 부담도 알고 갑의 횡포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립 치킨점들이 인지도를 높이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끊임없는 홍보는 물론 맛의 승부를 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치킨시장에서 승부를 가리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맛이다. 하는 수 없이 할인 행사나 사은품 제공, 전단지 작업 등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데, 이런 이벤트야 말로 프렌차이즈가 가장 잘한다.(81~82)

 

대한민국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있지만 대중에게 인지도를 가진 프랜차이즈 업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을 차린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치킨 프랜차이즈가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임에도 치킨 프랜차이즈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성행하는 이유는 쉽게 차릴 수 있고, 자본도 다른 음식점에 비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 치킨점들에 비해 적은 노력이 든다는 점도 있다. 더불어 치킨은 사람들이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메리트가 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킨 프랜차이즈에는 숨길 수 없는 애환이 있다. 저자는 책에서 치킨과 관련해 큰 이슈가 됐던 사건들 예컨대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통큰 치킨사건, 최근 새롭게 이슈가 되고 있는 배달 관련 어플리케이션 수수로논란 등을 다루면서 치킨 프랜차이즈의 이모저모를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스포츠하면 떠오르는 음식, 치킨과 맥주

 

스포츠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승리에 가장 목마른 것은 치킨점 사장님들이다. 국가대표팀 경기 결과에 따라서 치킨 판매율은 널을 뛰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닭은 많이 받아놓았는데, 하필이면 대표팀이 힘도 쓰지 못하고 기운 빠지는 경기를 하면 치킨 주문량도 함께 떨어지고 재고는 쌓인다. 홀에 와서 직접 경기를 보는 손님들도 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시켜 먹는 치킨과 맥주의 양이 다르다. 승리에 울고 웃는 것은 선수와 감독만이 아니다.(174~175)

 

스포츠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치킨과 맥주다. 대한민국이 4강에 올라간 2002년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때 치킨은 없어서 못 파는 음식이었다.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린 치킨 업계는 국가적인 스포츠가 있을 때면 그때마다 2002년 월드컵만 같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업계의 사활이 걸린 만큼 선수와 감독보다 더 승리에 민감하지 않았을까.

 

축구부터 시작해 야구, 또는 e스포츠까지.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경기가 있을 때마다 치킨과 콜라, 혹은 치킨과 맥주를 시키고는 TV 앞에서 경기를 기다린다. 스포츠와 치맥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에서 이제 어떤 스포츠의 빅 매치가 있을 때 TV 앞에 치킨과 콜라, 그리고 맥주가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한민국의 소울 푸드, 치킨

 

아버지의 월급날 먹을 수 있었던 노란 크라프트지 봉투에 쌓인 옛날통닭에서부터 시작해 기분 좋은 날이나 밤에 출출할 때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배달해 먹는 11닭까지. 대한민국에서 치킨은 현재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대한민국의 영혼을 담은 음식이다.

 

앞으로 치킨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치킨이 대한민국 소울 푸드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킨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어떤 음식 중에서도 사람들과 가까웠고, 사람들의 즐거움과 함께 했던 음식이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치킨이여 영원하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4년 4월 16일, 3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무분별하게 세월호 참사를 보도했던 수많은 언론은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잃었다. 종이 신문 몇 종과 방송국 몇 개에 불과했던 뉴스매체는 인터넷이 생긴 이후 끊임없이 늘어났지만, 매체신뢰도는 그 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줄어들었다.

'신뢰를 쌓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언론을 향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치명상을 입은 지금, 새로운 시도 혹은 새로운 모색을 하지 않으면, 언론은 더 이상 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죽은 매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문학동네, 2014)는 현 뉴스의 비판과 더불어 뉴스의 미래를 모색한다.

뉴스가 지루한 이유

"언론은 자신이 우리에게 매일 전하는 것들이, 몇 달 혹은 심지어 몇 년에 걸쳐 다듬어진 안목을 통해서만 그 진짜 형태와 논리 구조를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만 뽑아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길 꺼린다. 따라서 많은 경우 단편적인 문장들보다 장별로 나뉜 이야기를 읽는 쪽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시인하는 데도 우물쭈물댄다.(29쪽)"

뉴스는 어떤 사건에서 모든 사족을 쳐낸, 극도로 정제된 사실이다. 이를 기자들은 '팩트(fact)'라고 부른다. 이러한 팩트들은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요소지만, 팩트는 단지 어떤 사건의 핵심에 해당할 뿐이다. 핵심이 각 핵심들을 서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가 지루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온다. 소설이 흥미를 유발하는 이유는 어떤 사건이 벌어진 서사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트레이트 뉴스는 사건의 서사를 제거하고 사건의 핵심만 전달한다. 그 때문에 기자가 중요하다고 여겨 취재한 뉴스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쉽게 사라지고 만다. 

뉴스는 보통 지루함을 떨쳐내는 방법으로 "그저 사람들에게 '진지한' 뉴스를 좀 더 많이 소비하라고 겁을 주"곤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거기에 있지 않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뉴스의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은 "소위 진지한 뉴스 매체들에게, 대중을 적절히 사로잡을 수 있는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뉴스의 거리감을 극복하려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사람의 반응은 '저곳은 또 저러는구나'에 그쳤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이슈인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벌어진지 4개월 이상 지난 지금, 사건 초반의 절절한 관심도와는 달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처럼 대부분의 국민은 강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특별한 관심을 쏟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관심이 멀어지는 이유는 일상을 무너뜨렸던 비일상의 사태가 이제 일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지역이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야만, 또한 그곳 거주민들의 일상생활, 일과, 그들이 품고 있는 소박한 희망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거기서 벌어진 슬프고 폭력적인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우려를 표할 수 있다.(98쪽)"

뉴스는 항상 끔찍하고 자극적인 일을 보도하지만 그런 보도가 어떠한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끔찍하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있는 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뉴스가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끔찍하고 자극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비일상이 일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일상의 일도 그만큼 보도해야 한다. 

새로운 뉴스, 또 다른 가치

뉴스매체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뉴스의 구독률 혹은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의미한 뉴스의 향연이 아니라 독자(讀者)들 스스로 독자적(獨自的)인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가치 있는 뉴스다. 더불어 독자들은 자극적인 뉴스의 시대에서 잠시 한 발 빼는 용기도 필요하다.

뉴스의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개인 스스로의 독자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뉴스를 보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정보의 핵심만 모여있는 뉴스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뉴스의 홍수에서 잠시 기어 올라와 예술을 통해 독자적인 가치관을 갖는 것,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이 <뉴스의 시대>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