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투자,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BSD 공식
찰스 칼슨 지음, 이건 옮김 / 리딩리더 / 2011년 7월
절판


이런 주가의 하락 조정은 배당락일에 발생한다. 배당락일은 배당기준일(배당을 받으려면 주식을 보유해야 하는 마지막 날) 직전 영업일이다. 배당락일과 그 후에는 주식을 보유해도 배당금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배당금을 받으려면 배당락일 전에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배당락일이나 그 후에 주식을 사면 배당금은 받을 수 없지만, 대신 주식을 더 싸게 살 수 있다.

이제부터 배당락일과 배당기준일(결산일)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12월 29일, 30일, 31일이 모두 휴일이 아니라 영업이라고 가정하자. 어떤 회사의 배당기준일(결산일)이 12월 31일이라면, 이 주식의 배당락일은 직전 영업일인 12월 30일이 된다. 따라서 이날 주가의 하락 조정이 발생하며, 이날 주식을 사면 싸게 사는 대신, 배당금은 받지 못한다. 한국은 주식 거래를 완료하는 데 2영업일이 걸리므로, 배당기준일에 주식을 보유하려면 2영업일 전인 12월 29일에 주식을 사야 한다. -43쪽

이 책에서 한 가지만 배워야 한다면, "배당수익률은 투자 위험을 나타내는 훌륭한 지표다."라는 점이다.

어떤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같은 산업의 대표적인 주식보다 예컨대 3% 포인트 이상 높다면, 이는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적신호다.(한국 주식의 업종별 배당수익률은 한국거래소 웹사이트 http://www.krx.co.kr/의 주식>주식통계>투자지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코스피 같은) 시장수익률보다 예컨대 4~5배나 높아도 적신호다. 어떤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자신의 과거 장기 평균보다 예컨대 2~3배 높아도 적신호다.

배당수익률이 어째서 위험을 나태내는 지표가 될까? 배당수익률은 배당금과 주가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배당수익률은 1) 배당금이 증가하거나 2) 주가가 하락할 때 상승한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높은 배당수익률은 대개 배당금이 증가한 결과가 아니다. 주가가 폭락한 결과다.

.......

-53쪽

주식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인 것은 아니지만, 배당이 곤경에 처했을 때만큼은 기막히게 알려준다. 시장은 주가 폭락을 통해서 그 신호를 보내준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배당수익률이 치솟는 것이다.(주가는 투자위험에 대해서 이사회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다. 그래서 배당금이 축소되거나 누락되기 전에 주가가 폭락한다.)

배당금의 안정성을 평가할 때 주가 움직임을 무시한다면, 이는 커다란 실수다. -55쪽

유사투자상품들의 수익률 S&P500 지수의 배당수익률이 2%일 때 어떤 주식의 배당수익률이 4%라면, 이는 높은 수익률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시장수익률의 두 배나 되기 때문이다. 공익산업(전기, 가스, 수도 등)의 평균 배당수익률이 4%인 상황에서 어떤 공익회사의 배당수익률이 5%라면, 이것도 높은 수익률도 간주해야 마땅하다. 공익산업의 평균 배당수익률이 4%인데 어떤 공익회사의 배당수익률이 15%라면, 이것은 높은 수익률이 아니다. 곧 사라질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업종 평균보다 3% 포인트 이상 배당수익률이 높은 주식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 주식의 업종별 배당수익률은 한국거래소 웹사이트 http://www.krx.co.kr/의 주식>주식통계>투자지표'에 나온다. -57쪽

그러나 배당수익률 필터를 가장 먼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1) 배당금이 안전한가? 2) 배당금이 증가할 것인가? 3) 전반적인 투자 관점에서 가치 있는 종목인가? 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배당금의 안정성, 배당금 인상 여력, 주식의 전반적인 투자 가치를 분석한 다음에만 배당 수익률을 따져야 한다. -74쪽

ADR에 투자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위험을 떠안게 된다.

-환율 위험 : 달러가 약세일 때에는 외국 기업이 이득을 본다. 약세 통화인 달러로 환산할 때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달러가 강세일 때에는 국제 투자수익률이 하락한다.

-정치적 위험 : 정치 상황은 그 나라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경제와 사회 문제를 시장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민주국인지, 아니면 권력이 지배층에 집중되어 있는지 분석해보아야 한다.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 : 러시아처럼 국가 경제가 원자재 가격에 좌우되는 나라가 많다. 러시아는 석유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가가 상승하면 러시아 주식들은 대개 좋은 실적을 낸다. 그러나 유가가 하락하면 러시아 주식도 하락한다. 원자재 가격은 변동성이 높으므로, 원자재에 의존하는 경제와 주식시장도 변동성이 높다.
-87쪽

만일 배당금이 연 3%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배당금으로 8,000달러를 회수하는데 24년이 채 안 걸린다.

배당금이 연 5%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20년이면 투자원금을 회수하게 된다.

......

회수기간을 주식투자에 대한 안전대책으로 생각하라.

-125쪽

이익과 현금흐름이 궁극적으로 배당금 규모를 결정한다. 이익과 현금흐름이 증가하면 배당금도 증가하게 된다. 배당성향은 회사가 배당금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배당성향이 60% 이하인 회사는 60%를 초과하는 회사보다 배당금을 유지하거나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128쪽

배당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배당수익률이 아니라 총수익률이라는 사실 말이다. 총수익률이 높지 않다면 배당수익률이 높아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138쪽

그러나 부동산투자신탁이 배당금을 주식으로 지급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배당금 중에서 얼마를 재투자할 것인지를 주주가 아니라 부동산투자신탁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모두 주주가 똑같은 비율로 주식을 더 받데 되면, 각 주주의 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발행주식 수만 증가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배당금을 가장한 주식분할이다. 주주들이 보유하는 주식 수는 증가하지만, 지분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식분할과는 달리, 배당금으로 받은 주식에 대해서는 세금까지 내야 한다.

-151쪽

우선주에는 주식의 특성도 다소 있지만, 채권의 특성이 많다. 회사가 파산하여 잔여 재산을 분배할 때, 우선주의 청구권은 주식보다는 선순위이지만 채권보다는 후순위다. 배당금을 받을 때에도 보통주에 우선한다. 우선주가 먼저 배당금을 받은 다음에야 보통주도 배당금을 받게 된다. 우선주가 배당금을 받지 못하면, 그 배당금은 누적되어 다음에 받게 된다. 우선주에 대한 누적 배당금이 모두 지급된 다음에야 보통주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161쪽

2008년은 워낙 심각한 폭락장이어서, 내가 배당금을 재투자하여 산 주식 대부분이 여전히 손실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흥미로운 점은, 내가 배당금 재투자제도에 가입한 덕분에 과거 70년 중 최악의 시장에서도 주식을 샀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

주식이 비쌀 때는 흥분해서 사들이고, 주식이 헐값일 때는 두려워서 사지 않는 행태야말로 비합리적이다.
-191쪽

이런 현실적인 제한을 고려하면 일반투자자들 입장에서는 KOSPI200으로 종목군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KOSPI200 종목 중 ROE(자기자본이익률) 10% 이상, PER(주가수익비율) 10 이하, 배당수익률 상위인 종목을 투자 가능 대상으로 보면 보통 30~60여 개의 후보 종목을 얻게 된다.

......

-ROE 10% 이상
-PER 10 이하
-배당성향 60% 이하
-직전 회계연도 배당증가율 0% 이상
-위 조건에 부합하는 종목 중 배당수익률 상위 종목 15개-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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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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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업무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뢰를 받지 못했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훗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참여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똑같은 실패를 다시 겪었다. -183쪽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가치관이 뚜렷하고, 정책에 밝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본일 뿐이다. 정치를 잘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폭넓은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왕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남이 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적게 했다. 그렇게 하면 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는가? 사업을 하든, 기업이나 정부에서 조직 생활을 하든,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얻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185쪽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믿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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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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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려면 기득권과 더불어 살면서도 그 달콤함과 안일함에 젖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악에 가담하지 않고 살려면 강력한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고생은 되지만 마음은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예 기득권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다. 법학과 진학과 사법시험을 포기한 것은 악과 싸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자신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성인聖人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5쪽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준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37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미여 권리이다. 철학자 손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일만하는 사람, 권력을 좇는 사람, 신을 섬기는 사람 등 백 사랑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가치는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37쪽

하지만 내가 예외적인 노인이 된다고 해도 젊은 세대에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가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말을 하지 못할 뿐, 젊은이들은 언제나 세대교체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나이가 많이 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후배들이 지혜를 구하러 오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조언을 할 때도 꼭 옳은 생각은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를 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부적절하고 과격하게 표현했다고 '노인 폄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마흔 살이었을 때도 쉰다섯 살이 된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77쪽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ㅇ르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인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그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더라도 자신을 지나치게 책망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 여섯 가운데 하나가 1년에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60대는 넷 중 하나, 70세가 넘은 노인들은 셋 중 하나가 그렇다.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다섯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철학적 신존적 선택이다. 특별히 못나서 자살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83쪽

욕먹는다고 뭐 죽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내 나름의'비법'이 있기는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품,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88쪽

인생은 소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냉혹한 과정인지 모른다. 원대한 꿈과 낭만적 열정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대통령, 과학자, 장군, 의사, 영화배우, 축구 선수, 교사, 판검사, 변호사, 외교관, 소설가, 기업가.... 아이들은 마음대로 꿈을 정한다. 스스로 정하든 부모가 권하든 백지에 그림 그리듯 할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그려도 좋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른 것을 그려도 된다. 아이들의 그림은 흔히 명예, 부, 권력, 지위를 성취하는 것과 연관되지만 청소부, 간호사, 수녀를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그림은 가치와 관련된다. 지구를 깨끗이 한다든가, 아픈 사람을 도와준다든가,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자라고 사회를 배우면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어떤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다른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또 다른 것은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무 살쯤 되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170쪽

괜찮겠다 싶은 직업 가운데 자기의 환경과 능력에 비추어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쪽으로 마음을 싣는다. 마흔 살쯤 되면 인생을 크게 바꾸는 선택은 하기 어려워진다. 마흔 이후에도 인생을 바꾸는 결단을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결단이 너무 늦는 법은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신의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본다.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행 ㅑ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미식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170쪽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171쪽

열정과 재능의 불이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4쪽

재단 업무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뢰를 받지 못했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훗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참여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똑같은 실패를 다시 겪었다. -182쪽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가치관이 뚜렷하고, 정책에 밝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본일 뿐이다. 정치를 잘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폭넓은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왕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남이 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적게 했다. 그렇게 하면 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는가? 사업을 하든, 기업이나 정부에서 조직 생활을 하든,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얻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185쪽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상과 비전, 정책과 아이디어 경쟁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정치는 열정과 탐욕, 소망과 분노, 살수와 암수 맞부딪치는 권력투쟁이기도 하다.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고는 하지만, 과연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정치는 사회적 연대의 가장 차원 높은 형식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그것도 그냥 국회의원 정도가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 자리를 목표로 삼는다면, 권력투쟁을 놀이처럼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높은 지지율은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저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런데 인기란 아침 안개와 같아서 저 혼자서 밀려왔다가 때가 되면 저 혼자 녹아 없어진다. '좋은 생각'과 '착한 이미지'로 인기를 잠시 붙잡아 둘 수는 있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할 수는 없다.

-189쪽

아이를 사랑해주고 부모 스스로 좋은 사람을 사는 것, 그것이 양육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까지 느끼고 이해한다. 부모의 꿈, 정서, 가치관, 감정, 부모가 외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뇌에 영향을 준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다.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끌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더 창의적인 아이들은 덜 창의적인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으로 길들이면 아이는 호기심을 버리고 창의적이기를 그만둔다. 어떤 부모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자식에게 줄 수는 없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부모만이 그것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
-216쪽

최악의 훈육 방법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다. 폭력은 어떤 것이든 정서 발달을 왜곡한다. 승복할 수 없는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경험은 소통과 공감 능력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만 소통하느 ㄴ존재가 아니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을 하기 전에 아이들은 먼저 말을 알아듣는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이의 뇌 속에 음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과 신경세포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중해서 듣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애햐 한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의 존중해주어야 한다. -216쪽

자년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믿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 -218쪽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진보적인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일을 하지만, 진보주의 그 자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이 확실하다. 크게든 작게든, 급격하든 점진적이든 생활환경은 늘 변화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필요하다.

모두가 예전의 상황에 맞는 익숙한 생각과 행동만 한다면 개체뿐만 아니라 집단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할 수 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은 인간의 일반 지능을 진화시켰다. 이것이 일반 지능의 발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다.


-256쪽

만약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럽고 진화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일반 지능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바나-IQ 상호작용 가설"이라는 것이 둘의 관계를 설명해 준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능이 낮은 개인은 지능이 높은 개인보다 조상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진화적으로 새로운 존재와 상황을 이히해고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연애, 출산, 육아, 긱 찾기처럼 진화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을 하는 능력에는 일반 지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 연구가 '사바나-IQ 상호작용 가설'을 뒷받침한다. 나이, 인종, 교육수준, 소득수준, 종교 등의 영향을 배재할 경우 IQ가 높은 청년일수록 진보 성향이 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정치적 진보성과 청소년기의 IQ는 단조증가 관계를 나타냈다. 강한 진보적 정체성을 가진 미국 시민은 강한 보수적 정체성을 가진 시민보다 평균적으로 11점 이상 청소년기의 IQ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능의 형향력은 성이나 인종보다 두 배나 강력하다. -256쪽

운동도 정치도 하다 보면 성과를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경우에도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훌륭한 일을 하면서 훌륭하게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면 실패는 아니다. 그런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승리를 손에 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사람의 행위를 비루하게 만든다면 그런 운동, 그런 정치, 그런 정당은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일시적인 성과를 거둔다 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민족 자주, 한반도 평화, 민중 생존권 보장 등 그 어떤 아름다운 이념과 목표도 그 운동 속에서 사람을 더 훌륭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의마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훌륭한 운동이 아니다. 그런 운동은 사람을 이념의 도구로 만들 뿐이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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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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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노루의 수가 그나마 많은 것은 고기값밖에 못 건기지 때문이다. 반달곰과 사향노루는 웅담과 사향 때문에 그 수가 훨씬 적다. 호랑이는 가죽뿐만 아니라 뼈와 살까지 비싼 약재로 팔린다. 그래서 호랑이가 가장 먼저 멸종위기에 몰렸다.

사람들은 동물에게 상업적 가치를 매긴다. 그 가친 순으로 동물은 멸종해간다. - 69쪽

세어보니 가지마다 잣송이가 서너 개씩 달려 있다. 대여섯 개씩 달린 가지도 많다. 풍작이다. 이동관찰을 하면서 잣나무와 참나무, 야행호두나무 숲에 열매가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발굽동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여기저기 다니며 어렵지 않게 먹이를 구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결국 이런 숲을 찾아와 눈을 헤집고 바닥에 떨어진 잣송이나 도토리, 호두를 뒤진다.

이 발굽동물을 따라 호랑이가 출몰한다. 그래서 숲의 열매를 확인하는 일은 잠복지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

나는 수첩에 적어 넣었다.

'까마귀산 서사면 초입의 15헥타르 잣나무 군란. 가지마다 평균 3개 이상의 잣송이. 한달 이상 지나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호랑이 발자국과 배설물' 이런 정보들이 축적되면 호랑이 생태지도가 완성된다.
- 75쪽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과 개과 동물의 발자국은 보통 사람이 구분하지 못할 만큼 유사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발톱자국이다. 고양잇과 동물을 평소 발톱을 오므려 숨기고 다닌다. 그러다가 사냥감에 발톱을 박아 넣을 때나, 나무와 바위절벽처럼 가파른 곳을 오를 때만 갈고기 같은 발톱을 좍 펼친다. 필요한 때만 꺼내 쓰기 때문에 발자국에 발톱자국이 찍히지 않는다. 반면 개과 동물은 발톱을 오므리고 펼 수 있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발자국마다 늘 발톱자국이 찍힌다.

둘째, 발볼의 크기와 모양이다. 같은 크기의 발자국이라도 고양잇과 동물의 발볼이 훨씬 크다. 보통 사람들은 도사처럼 큰 개의 발자국을 그 크기만 보고 호랑이 발자국으로 착각하곤 한다. 개의 발가락은 길고 넓게 퍼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발자국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비교해 보면 같은 크기의 발자국이라도 발볼의 크기는 다 자란 도사견보다 새끼호랑이가 월등히 크다. 그리고 고양잇과 동물의 발볼은 사다리꼴인데 비해 개과 동물의 발볼은 삼각형이다.

- 102쪽

셋째, 발자국의 가로 세로 비율이다.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은 길이와 너비가 비슷한 원형이지만, 개과 동물의 발자국은 길이가 너비보다 긴 타원형이다. 여우의 발자국이 제일 길고 그 다음은 늑대, 그 다음은 개의 순서다. 호랑이의 뒷발자국도 길이가 너비보다 약간 길다. 하지만 앞발자국은 길이가 너비와 같거나 오히려 짧아서 둥그스름한 원형을 이룬다. 원형 안에 네 발가락과 발볼이 찍혀 있는 모양이 둥근 매화를 닮았다 해서 호랑이의 발자국을 매화발자국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으로 발가락의 위치다. 호랑이는 두 번째 발가락 자국이 제일 높이 위치한다. 그 다음으로 세번째, 첫번째, 네번째 발가락 순이다. 그래서 두번째 발가락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구분한다. 제일 크고 높은 발가락이 왼쪽에서 두번째라면 오른발이고, 오른쪽에서 두번째라면 왼발이다. 반면 개과 동물은 두번째와 세번째 발가락의 크기와 높이가 똑같다. 그래서 발자국 하나만 보면 왼발인지 오른발이니지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호랑이의 발가락은 첫번째와 네번째가 개과 동물처럼 측면으로 벌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오므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둥글고 다부지게 갈무리된 느낌을 준다. - 103쪽

똑같은 흔적이라도 지표면의 상태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진흙 위에 찍힌 발자국은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진흙에 물기가 너무 많으면 발을 뗄 때 묽은 진흙이 흘러내려 발자국이 줄어든다. 모래사장을 걸을 때도 모래가 튀겨 전체 윤곽은 커지지만 발을 뗄 때 모래가 무너져 내려 발자국의 크기는 줄어든다. 살짝 내린 가루눈 위의 발자국은 오히려 커진다. 발자국을 디딜 때의 공기압으로 인해 눈가루가 밖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린 다음의 발자국은 파악하기 힘들다. 발을 눈 속 깊이 디뎠다 뺄 때 눈이 무너져 내린다. 이럴 때는 발을 디딘 눈구멍의 깊이와 넓이로 가늠하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발자국 표면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발자국의 경계면과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진흙이 축축한지 말랐는지, 뾰족한지 마모되었는지에 따라 지나간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발자국 안에 물이 남아 있다면 그 상태가 어떤지도 중요한 정보다. 맑은 물이라면 한 시간 이전에 지나간 발자국이고, 흙이 채 가라앉지 않은 탁한 물이라면 한 시간 이내에 지나간 발자국이다.- 111쪽

만약 지금도 물이 움직이고 있다면 몇 분 전에 지나간 것이다. 풀을 밟았을 때는 풀이 어느 방향으로 넘어졌는지, 부러진 풀줄기가 얼마나 시들었는지, 새벽이라면 이슬이 매달려 있는지 여부를 잘 관찰해야 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나 엎어진 돌, 나뭇가지에 걸린 한 움큼의 털갈이 제 위치를 벗어난 자연의 사물에도 예리한 눈길을 주어야 한다.

자취를 관찰하는 것은 '모호'에서 '구체'로 한 걸음씩 옮겨가는 일이다. 거듭 관찰하고 추적해 나감에 따라 불명확했던 자취는 점점 선명해져, 마침내는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처럼 윤기나는 하나의 작은 사실이 된다. 하나의 사실은 새로운 사실에 연결되고 이렇게 작은 사실들이 조금씩 쌓여 결국 사실의 전체에 도달한다. - 111쪽

이동관찰을 할 때는 내가 자연의 주체가 되고, 잠복관찰을 할 때는 내가 자연의 객체가 된다. 주체가 되면 자연의 깊은 곳을 볼 수는 없지만 많이 볼 수 있다. 객체가 되면 자연의 많은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깊이 볼 수 있다.
- 200쪽

낮에는 바람소리를 구분하며 시간을 보낸다.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센바람, 노대바람, 황소바람, 바늘바람, 샛바람, 댓바람, 산바람, 눈바람, 바닷바람, 너울바람, ....... 이 자연의 피리소리는 어떤 때는 격류 같고, 어떤 때는 빗발치는 화살 같으며, 어떤 때는 아기의 숨소리 같고, 또 어떤 때는 바다처럼 심원하기까지 하다.

눈송이가 똑바로 떨어져 내리면 고요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떨어지면 실바람이다. 얼굴에 바람이 느껴지고 눈송이가 비켜 내리면 남실바람이다. 참나무에 매달린 마른 나눗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눈송이가 휘날리면 산들바람이고, 마른 나뭇잎뿐 이나라 작은 가지까지 흔들리고 바닥에 내린 눈송이가 다시 날아오르면 건들바람이다. 작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며 그 우듬지에 쌓인 눈더미가 날아가면 들바람이고, 큰 가지가 흔들리며 숲이 전깃줄처럼 울면 된바람이다. 큰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눈이 수평으로 내리면 센바람이고, 가느다란 가지들이 부러져 날아가고 바닥에서 눈가루가 온통 날아올라 시계가 짧아지면 큰바람이다.- 204쪽

큰 가지가 부러져 날아가고 바다에서 용오름이 일어나면 큰셈바람이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숲이 뒤집히면 노대바람이다. - 206쪽

강력한 무기를 가진 육식동물들이 사회적 자제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고 사사건건 싸워 우열을 가린다면, 그 강력한 힘과 무기로 인해 그 종은 멸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동물일수록 사회적 자제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자제력이 강할수록 다른 강자와도 일정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둔다. 일종의 핵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야행호랑이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야생호랑이에게 사회적 자제력이 있다 하여 사육 호랑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육 호랑이는 자신의 힘으로 먹이를 잡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어서 자신의 힘과 그 용도를 모른다. 자신의 힘을 모르면 상대의 힘도 알기 어렵다. 병아리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병아리를 쪼아 죽이듯이 사육 호랑이가 사람에게 장난을 친다는 것이 살인행위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동물에서 탈출한 호랑이보다 야생호랑이를 만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 329쪽

월백은 새끼들과 엎치락뒤치락 뒹굴면서도 바깥세상과 가족 사이에 경계를 두어, 안과 밖을 뚜렷이 구분했다. 경계의 바깥은 마음의 밖으려 내쳐서 거리를 둔 냉정한 공간이었지만, 경계의 안쪽은 가족끼리 마음을 주고받는 온화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바깥세상을 향해 긴장하고 절제했으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경계의 안에서 월백은 강아지처럼 순수했다. 새끼는 평화로웠고 어미는 다정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 온전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호랑이를 무섭고 용맹하게만 생각하지만, 이렇게 평화록보 다정한 모습이 호랑이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습을 찾는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배를 드러내고 뒹구는 모습을 보면 시시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월백의 가족을 두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가슴 떨리는 삶의 절정이다. 암호랑이가 야생에서 새끼들과 뒹굴며 노는 모습은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만 볼 수 있다. 가장 은밀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만 암호랑이는 자신의 내밀한 가정사를 언뜻 보여준다. 지금 나 자신, 자연의 객체로 온전히 녹아들었음을 느낀다.
- 416쪽

사회에서는 줌렌즈로 세상을 보지만 자연에서는 광곽렌즈로 세상을 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 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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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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