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일하지 마라
배남석 지음 / 북앤월드(EYE)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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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번의 배낭여행을 하고 난 후 난 우리나라 직장의 근무환경과 직장인들의 직업의식이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행했던 여러 나라에서 일터에 노인들이 많이 보이고, 나이나 성별 차별없이 인력을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보니 나이 제한을 두고, 실력보다는 외모로 사람을 뽑는 게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30살도 한참 안 된 여자가 나이가 많다고 지원을 거절당하는 현실을 보며 웃어야될지 울어야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이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확인하던 정도였기에 하나하나 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책을 읽고 전체적인 흐름이 파악되고 보니 한국의 직장이 웬만큼 굴러가는 거 자체가 희한하게 생각될 정도다.

저자는 미국과 한국의 근무환경이 어떻게 다른 지 언급하면서 한국도 근무환경을 바꾸려면 많이 변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다른가에 대한 원인분석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좀 아쉬운 책이다. 개인개인이 살아있는 문화권과 개인을 집단에 함몰시켜 소속감을 중시하는 문화권의 차이, 과정을 추구하는 문화권과 결과지향주의 문화권의 차이가, 판이하게 다른 근무환경과 직업의식을 낳는 것 같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JOB IQ를 거론하고 있지만 한국은 개인개인의 JOB IQ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부터 해야 답이 나올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가정도 내팽개치고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킬까?

모든 개인시간을 담보잡힌 채 기업의 부속품이 되어 회사에 충성해야 겨우 살아남는 한국의 근무환경은 남편들로 하여근 가정을 포기하고, 사생활을 포기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가정과 개인이 기업에 담보잡혀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우리가 직업에 대한 의식 자체가 내 능력을 회사와 거래한다는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까? 직업이란 그저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수단과 출세수단으로 여기는 우린데?

내 생각에는 개인적 자아와 직업적 자아를 구분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미래의 한국은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본다.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보다는 인간관계 위주로 돌아가고, 업무 외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하고, 나이나 직위에 입각해 상하수직 구조로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된 근무환경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근무환경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보니, 똑같은 성과를 얻어내는 데도 훨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훨씬 많은 낭비가 생긴다. 하긴, 농경사회였던 우리가 몸으로 때우는 것만 알지 시스템 구축을 알 리가 있나...

바보같은 한국 남자들은 정치에만 매달리는데, 정치를 바꾸는 것보다 더 빠른 사회 변혁의 길은 직장의 근무시간을 “9시 출근, 6시 칼퇴근”으로 바꾸는 길이다. 우리도 밀도 높게 일하고, 쉴 땐 확실히 쉬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직장문화를 만든다면 상승한국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여성문제 역시 이 점에 주목해야 발전할 수 있다. 나는 퇴근시간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이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가는 출발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걸 주목하지 않아서 탈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개선’을 생각하기보다 기득권에 흡수되어 적당히 '적응'하고 몸을 사려서 '출세'하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직장에서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화가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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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의사의 부당의료에 속고있다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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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의 전 공중보건국장 허버트 래트너 박사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64~65).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책을 읽고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대구에 놀러갔다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25년이라는 세월과 미국이라는 공간의 갭이 있지만, 가까이는 내 가족부터 주변의 친구들에게서 접하는 현실이나 여기저기 글과 뉴스를 통해 접하는 한국의 현실은 이 책에 많은 공감을 하게 만들었다. 꼭 2년 전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에서 ‘야만적인 한국의 출산문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양돈업자가 우량돼지를 많이 얻는 이유를 설명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이 11년 전 병원에서 아이 낳을 때 모습을 기억하며 사람의 출산이 돼지의 출산보다 못하다고까지 출산문화를 비판한 글이었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의사의 입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다발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산부인과가 생겨난 역사 자체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무지와 지배의식, 그리고 수입을 늘리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아이를 낳는 일은 집안의 축제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산모가 가족들의 정서적 지원을 받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던 일이었는데, 의사가 개입하게 되면서 출산을 ‘병’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출산을 의사 자신들의 ‘수입’ 문제로 생각해서 산파들을 몰아내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도록 만들었다. 의사들은 경제적 동기에서 산모(환자?)들을 병원으로 끌어들이려면 자신들의 말에 따르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필요에 의해 아이와 산모에게 해가 되는 각종 약물투약과 쓸데없는 여러 검사가 실시되었다. 저자는 각종 약물투여와 검사는 아이와 산모를 위해 이루어지는 치료(?)가 아니라 의사 자신을 위해 하는 치료이고, 그런 치료들이 오히려 산모의 몸을 악화시켜 산모를 병원으로 오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의 그런 치료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것처럼 집안 분위기로 꾸미는 트릭을 써서 산부인과 병실을 바꿔놓았고, 산모나 그 가족들은 거기 속아넘어가고 있다.

무대를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 역시 우리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내 엄마는 주사 한 대 맞지 않고 우리 네 명을 낳았다. 물론, 내 엄마 뿐이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병원에서 낳아야 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기를 낳는 건 여자인데, 산부인과 의사는 왜 대부분 남자일까? 이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우리나라도 산부인과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아기가 빨리 나오도록 의사가 손을 질속으로 집어넣고 막 돌리더라는 친구 동생의 얘기, 음모를 밀어내더라는 친구의 얘기, 회음부를 절개한다는 책속의 수많은 얘기, 자기들 점심시간이니까 빨리 (애가 나오게)하자는 잡지에 나온 경험담, 옆구리를 얼마나 눌러대던지 아이를 낳고 나서 갈비뼈가 우드득 나간 얼마전 애를 낳은 내 먼친척의 최근 얘기까지 듣자면 애낳는 일이 야만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의 아내(올케?) 역시 병원에서 애를 낳으며 여자로서 상당히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난 산모의 남편에게 자신의 아내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의사의 행동을 지켜보게 한다면 아기 낳고 싶어하는 남편이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저자의 책 두 권을 읽고 나니까 병원이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병을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담합이 멀쩡한 사람들도 환자로 만들고 그런 환자들을 의사의 실험도구로 삼는 곳이 병원이다. 이 책을 읽은 이상 난 그 치욕과 의사의 횡포를 감당하며 도저히 애를 못 낳을 것 같다. 임신은 미친 짓이다. 적어도,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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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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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이 남자 말은 화끈하고 시원하게 잘 하는데 너무 자기 위주잖아?’는 인상을 가졌던 책이다. 저자는 대부분 결론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보라,로 대안 제시를 하고 있다. 과연, 사랑이라는 게 지금 만나는 남자랑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남자를 차버리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가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런 경우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이 만나는 남자들은 관계를 발전시켜 보려는 노력조차 해볼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남자들인 걸까?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한 발전적 충고라면 남자도 꼭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내가 이 남자에게 여전히 마음이 있다면 불만을 토로하고, 시정요구를 해서 개선의 정도를 본 다음 그래도 가망이 없어 보이면 그때 떠나도 늦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저자의 충고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남자랑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라고 조언해주기 보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보다 더 훌륭한 남자가 널렸으니 그런 남자를 찾아보라고 한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런 남자를 계속 방치하는 거 자체가 여성 자신이 남자에게 가진 바로 그 불만을 더 키우고 있는 건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메시지는 “당신은 사랑을 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받기만 해야되는 존재예요. 그러니 다른 남자 찾아봐요.” 줄곧 이런 메시지를 띤다. 정작 필요한 조언은 당신과 당신이 만나는 남자의 문제는 이러이러한 점인 것 같으니 이러이러한 점은 당신이 고쳐보는 게 어떠냐, 이러이러한 점은 남자분에게 말해보라,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남자를 찾아봐라 이런 발전적 조언 아닌가.

부분부분 새겨들을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저자의 말은 여성이 자신을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는 걸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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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하는 거야 미워하는 거야 - 커플의 영원한 딜레마 '성격 차이'를 극복하는 법
임정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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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몰라서 혹은 인정하기 싫어서 싸우는 것이다.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지 않은가. 이책을 읽으며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교수의 명언이 내내 생각났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선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부부싸움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파악노력부재는 간과한 채 상대방이 나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고, 너는 왜 나와 다르냐고 싸우는 일이겠다. 결국 분노는 무지, 무능, 게으름 이런 걸 증명하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나의 진실은 내가 외향형이냐/내향형이냐, 오감형이냐/직관형이냐, 사고형이냐/감정형이냐, 판단형이냐/인식형이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또 상대방이 저 유형중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남녀들이 진실이 성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는 것 이걸 감지하지 못했기에 아까운 시간을 분노하는 데 소비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서의 분노는 소통통로를 개발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죽을 때까지도 내가 살대고 사는 사람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다가 간다면... 으... 생각하기도 싫다. 남자/여자를 볼 때 상대방이 가진 외적 조건에만 눈이 멀게 아니라 정말 인간관계에 눈을 뜬다면 평수 넓은 집, 그럴듯한 살림, 번듯한 직장, 내눈을 즐겁게 해주는 외모, 학벌(‘S/K/Y대 이상, 석사/박사 과정 이상’을 전제로 남자를 찾는 여자들이 정말 있는 줄 몰랐다.) ... 이런 게 다 뭔소용이란 말인가.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해 자초한 자신의 결혼을 깨닫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상대방 탓만 하며 살다가는 인생에서 깨어날 일이다. 행복이 별 건가. 속물근성을 벗어나면 본질이 보인다. 성숙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남녀라면, 언제나 깨어있는 삶이라면 결혼에서의 내 불행을 상대방과의 성격탓 문제로 돌릴 게 아니다.


사실, 제목과 표지가 가벼워 보여서 간과했던 책이었다. 남녀 사이의 분석에 관한한 비교적 최근에 ‘여성 그대의 사명은’이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한동안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책은 뜻밖의 횡재다.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사람은 이해나 설득의 대상이지 평가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남자친구가 어떤 맥락으로 이 말을 하고 살았는 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부딪히며 얼마나 동전의 한쪽 면만을 보고 살았는지 남자 친구가 한 이 말을 나 나름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한층 넓어질 것 같다. 내가 이 책에 나온대로 다 실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행동을 읽을 수는 있겠다는 점에서 갈등과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남녀 사이를 떠나 모든 인간관계가 다시 보인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선물해야겠다.

마침 이 책과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이라는 책을 같이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도 인간의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이책처럼 남녀에 관한 분류는 아니지만 사람을 읽는다는 점에서 이책과 같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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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앵티아 (Science) - 과학에 불어넣는 철학적 상상력
최종덕 지음 / 당대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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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나무에서 사과가 ‘어떤 궤도로, 얼마나 빠르게 떨어지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만 '왜 떨어지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과학은 유전자가 어떤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지는 밝혀주지만, 유전자가 왜 존재하는 지는 증명해주지 않는다. 즉, 과학은 “자연이 ‘어떻게’ 운행되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만, “자연이 ‘왜’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가치중립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왜?’라는 질문이 던져지지 않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과학은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내고, 기술은 과학을 발전시키므로 과학과 기술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그 기술을 다루는 것도 어차피 인간이고, 과학이 발전해야 하는 이유도 인간을 위해서다.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과학이라면 아무리 정교한 과학일지라도 인간에게 위험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발명한 원자폭탄이 전쟁의 무기가 되었던 것처럼. 여기서, 왜?라는 물음을 과학에도 던져야하는 이유가 생긴다. 이 물음에 답을 얻으려면 철학으로 눈을 돌려야할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이 ‘어떻게’와 ‘왜’가 만나는 지점에서 쓰여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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