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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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돈이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돈이 많은 사람들의 흔한 갑질이나 호텔이나 백화점에서 자가용만으로도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은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불행한가?

그럴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충족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을 배부르게 먹는 것,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는 것, 아플때 알맞은 치료를 받는 것 등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로날드 잉글하트는 소득이 증가해도 더 이상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기준점을 "결별점" 이라고 불렀다. 이 결별점을 경제학자 리차드 레이어드는 '만족점' 이라 불렀는데 대략 1년간 소득이 1만 5000달러 에서 2만 달러 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에 적용하면 대략 연봉 2500~ 4000만원이 된다.

KBS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우 월 430만원이 소득의 결별점이었다.

연봉 5000만원 정도이다.

한국에서 연봉 5000만원이란 숫자는 굉장히 상징적인데, 결혼정보회사의 이상적인 남편감을 조사해보면 대략,

연봉 5000만원, 키 178cm, 대졸, 공무원이나 공사에서 일하는 남성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월 430만원을 받는다는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공무원은 9급부터 10년 이상 되어야 하고, 일반 중소기업은 20년 이상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430만원이 되기까지는 행복도가 큰 폭으로 상승하지만 그 이후에는 별로 행복수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걸로 봐서는 수입 그 이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돈이 많아지는 것은 행복의 증가가 아니라 고통의 감소와 관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고통이나 걱정이 없는 상태의 기본적인 사회생활, 가정을 꾸리고 친구를 만나고, 경조사에 참여하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은

대략 연봉 5000만원 정도인 것이다.

그럼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고 있는 주류 심리학의 행복론은 무엇일까?

1. 쾌락주의 행복론이다.

인간은 불쾌를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2. 행복은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 50, 환경 10, 주관 40 이라는 이론이다.

3. 개인의 행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적 행복은 배제한 채 개인적 행복에만 초점을 맞춘다.

행복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견해는 불행한 이들은 전적으로 본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간의 행복 경쟁을 부추기게 된다.

4.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긍정심리학이다.

정신승리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생존불안이나 존중불안을 줄여주면 된다. 저자는 그 예로 북유럽의 선진국 등을 계속해서 예로 들고 있다.

핀란드, 덴마크 같은 세금이 50%가 되는 나라들이다.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돈을 벌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유럽형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진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생존과 관련된 만성적인 근심이나 걱정에 시달리진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 들이다.

1. 사회에 기여하며 살기

2. 사랑과 신뢰가 살아있는 사회

3. 자유의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

4. 삶의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며 사는 사회

저자는 주장한다.

주류 심리학이 말하는 마음챙김, 가족과 몇몇의 절친들, 월 430만원 이상의 소득을 가지고 자원봉사 등을 하며 적당히 쾌락을 즐기면 행복해진다는 개인주의 행복론을 믿지 말라고 한다.

소확행, 워라밸, 욜로, 가심비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자고.

참다운 행복을 누리려면 인간다운 삶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라고 한다.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한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임금의 노예가 되지말고, 자본가의 갑질에 대항해야 한다.

행복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야 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도생하지 말고 사회를 바꾸자고 저자는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행복을 말하는 심리학 책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학 책이다.

그러나 저자가 그렇게 찬양하는 덴마크가 살기좋은 행복한 나라일까?

마음챙김, 종교를 통한 위로, 소확행, 워라밸은 정말 필요없는 것들일까?

행복을 말하며 사회운동을 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너무 멀리 나아간 모양새다.

- 이 글은 갈매나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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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 인생 단 하나의 희망,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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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은 특별한 날이다.

예수님이 인간과 구별되는 신이라는 증거가 바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 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그저 세계 4대 성인의 한 명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석가모니, 예수)

신이 아니라면 굳이 인간이 믿고 경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단지 우상일 뿐이다.

기독교란 종교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팀 켈러 목사는 이 책 <부활을 입다> 에서 처음 부분을 바로 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데 할애한다. 신화나 전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고 증거가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미 기독교를 믿는 교인 입장에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인지 아닌지 보다 그 부활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예수님의 부활이 현재를 살고있는 나와 또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사실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기독교인의 영적 체험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며 짜릿한 감정은 얻는 수단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P.214)】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옛 본성을 죽이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곧 이전의 나의 죄와 불의 대신에 정의와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만 다시 살아나셨다면 나 하나에서 끝난다. 나 개인만 새로운 영적 삶을 얻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참으로 다시 살아나셨기에 기독교는 온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세상을 전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불의하고 부패한 이 땅을 말이다.

즉 변질된 이 땅을 바로잡을 의무가 믿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만 잘 살고 나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응당 세상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이었던 옛 자아는 이제 세상을 향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만족에만 국한되어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옛 사람은 죽고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세상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혼, 양극화, 살인, 폭력, 빈부격차, 가난, 새로운 질병의 고통 등은 행복한 미래와는 멀어 보인다.

그런데 팀 켈러는 말한다.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사는 이 '부활' 이 이 땅에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이 땅에 새롭게 살아나는 생명과 정의의 희망이.

이로써 믿는 기독교인의 의무가 더 중요해졌다.

과연 개독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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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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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미국의 시인인 메리 올리버의 시집 『개를 위한 노래』, Dog Song.

그녀가 만난 반려견들, 퍼시와 베어, 루크, 벤저민, 바주기, 리키 등을 보고 지은 시집이다.

"개는 귀엽고 고귀하지.

진실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지.

하지만 쾌락주의자이기도 하니까 조심해"

요즘 어느때 보다 고양이가 더 주목받고 인기있는 때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개 일 것이다. 고양이가 들으면 좀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개가 인간과 더 친한건 사실이니까.

며칠 집을 비워야 해서 애견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어, 그런데 베어가

그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야.

베어가 말했어. "사랑과 반려는 모든 걸 바꿔놓는

장식과도 같아. 거기 가면 잘해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난 슬프고 , 슬프고, 슬플거야."

그러면서 애처롭게 발을 비벼댔어.

난 여행을 취소했지.

위의 시처럼 시인이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겪는 일상도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다.

더 오래 함께 있고 싶고 항상 함께 하고 싶고 더 멀리 가보고 싶은 건 개도 사람도 같은 심정인가 보다.

시인처럼 우리도 자신의 반려견을 위한 자랑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래된 이런 동요는 있지 않은가.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오늘은 우리집 강아지 '윌크' 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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