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 인생 단 하나의 희망,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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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은 특별한 날이다.

예수님이 인간과 구별되는 신이라는 증거가 바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 이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그저 세계 4대 성인의 한 명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석가모니, 예수)

신이 아니라면 굳이 인간이 믿고 경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단지 우상일 뿐이다.

기독교란 종교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팀 켈러 목사는 이 책 <부활을 입다> 에서 처음 부분을 바로 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데 할애한다. 신화나 전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고 증거가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미 기독교를 믿는 교인 입장에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인지 아닌지 보다 그 부활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예수님의 부활이 현재를 살고있는 나와 또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사실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기독교인의 영적 체험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며 짜릿한 감정은 얻는 수단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P.214)】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옛 본성을 죽이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곧 이전의 나의 죄와 불의 대신에 정의와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만 다시 살아나셨다면 나 하나에서 끝난다. 나 개인만 새로운 영적 삶을 얻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참으로 다시 살아나셨기에 기독교는 온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세상을 전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불의하고 부패한 이 땅을 말이다.

즉 변질된 이 땅을 바로잡을 의무가 믿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만 잘 살고 나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응당 세상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이었던 옛 자아는 이제 세상을 향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만족에만 국한되어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덧입혀지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옛 사람은 죽고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세상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혼, 양극화, 살인, 폭력, 빈부격차, 가난, 새로운 질병의 고통 등은 행복한 미래와는 멀어 보인다.

그런데 팀 켈러는 말한다.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사는 이 '부활' 이 이 땅에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이 땅에 새롭게 살아나는 생명과 정의의 희망이.

이로써 믿는 기독교인의 의무가 더 중요해졌다.

과연 개독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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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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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미국의 시인인 메리 올리버의 시집 『개를 위한 노래』, Dog Song.

그녀가 만난 반려견들, 퍼시와 베어, 루크, 벤저민, 바주기, 리키 등을 보고 지은 시집이다.

"개는 귀엽고 고귀하지.

진실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지.

하지만 쾌락주의자이기도 하니까 조심해"

요즘 어느때 보다 고양이가 더 주목받고 인기있는 때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개 일 것이다. 고양이가 들으면 좀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개가 인간과 더 친한건 사실이니까.

며칠 집을 비워야 해서 애견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어, 그런데 베어가

그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야.

베어가 말했어. "사랑과 반려는 모든 걸 바꿔놓는

장식과도 같아. 거기 가면 잘해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난 슬프고 , 슬프고, 슬플거야."

그러면서 애처롭게 발을 비벼댔어.

난 여행을 취소했지.

위의 시처럼 시인이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겪는 일상도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다.

더 오래 함께 있고 싶고 항상 함께 하고 싶고 더 멀리 가보고 싶은 건 개도 사람도 같은 심정인가 보다.

시인처럼 우리도 자신의 반려견을 위한 자랑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래된 이런 동요는 있지 않은가.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오늘은 우리집 강아지 '윌크' 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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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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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감춰진 인간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이 책을 보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는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 사피엔스에 도전하는 책!"

이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인간의 본성은 성선설과 성선설이 대립하여 요즘은 악한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뉴스엔 매번 자극적인 살인사건들이 나오고 영화나 드라마 역시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화제절정의 드라마 "펜트하우스' 를 보아도 그렇다.

그동안 인간 본성에 관한 수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1954년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 은 무인도에 갇힌 아이들의 권력과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루시퍼 이펙트)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도시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통해 '방관자 효과' 를 주장했던 학자들,

의 사례를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악하게 변한다.

이것은 집단이기주의 일지도, 아니면 내가 피해보는게 싫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 은 이러한 실험결과에 의심을 품었다.

그래서 일련의 모든 실험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신문, 방송에 나온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이 모든 실험엔 실험을 기획한 교수가 자신의 의도대로 논문에 실릴 수 있도록 가려냈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결과들은 부러 발표하지 않은, 다른 말로는 조작된 실험이었던 것이다.

<파리대왕> 같은 극적인 사건들이 없다면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을까?

제복을 입은 교도관은 마치 권력인양 마구 휘둘려지고

사람들은 알면서도 전기충격의 세기를 사망에 이르기까지 올리고

무려 38명의 목격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방관자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실험의 결과과 주장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현재까지 ,

이 책을 읽지않은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이러한 주장,

죄인을 다루는데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권위에 대한 복종은 정당화 된다거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그 누구나 방관자가 된다는 주장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이제까지 그 실험들의 진실을 왜 밝히지 않은걸까?

그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생각은 이렇다.

교수와 기자들은 자신의 명예와 성공과 명성, 직장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인 것이다.

한 번 사람들 입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얻은 명성이나 인기가 식지 않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험들과는 별개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많은 실험들이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보여주기 위해 실행되었지만 대부분의 실험은 그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들이 나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미 알다시피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무한경쟁 시대, 돈이 좌지우지 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펜트하우스의 '주단테' 와 같이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을 쉽게 이용하곤 하진 않는다.

흔히 인간은 어떤 것에 '확증편향' 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데 부정적인 것에 더욱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되는 부정편향 이란 것이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접할수록 더 의심이 많아지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지금의 사회는 바로 이 부정편향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자꾸 사회는 점점 더 나빠져가고 인간은 더 악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랑과 애정, 보살핌, 관심, 칭찬과 격려, 위로와 공감이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늘 그랫듯이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란 영화의 대사가 생각나는 희망을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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