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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박이선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2월
평점 :
『염부』
박이선 장편소설
다산북스 출판

일제강점기 시대의 고창 벌막에서 자염(화염)소금을 만드는 염부들의 이야기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소금에 대해 자부심 있지만 값싼 천일염 사업이 확장되면서 자신들이 하는 자염이 머지않아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한다. 생계가 달린 일이라 놓지 못하지만 배운 것이 없으니 달리 방법도 없던 시절의 고달픔이 느껴졌다.
소금 굽는 염부들의 삶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자식들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검단선사는 백제때 선운사를 창건하고 도적떼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알려주고 불법으로 교화하여 양민으로 살게 해주었는데 전쟁통에 염부와 마을 사람들은 먹고 살기 팍팍해도 검단선사에게 은혜를 갚고자 선운사에 보은염을 시주하는 이운식 행사를 했다.
자신들이 지금은 천일염 산업으로 염부라는 직업이 먹고 살기 힘들어졌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노동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데 대해 감사를 한다는 것이 지난날이 아닌 현재와 앞으로도 염부의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행사는 아닐까 생각한다.
염길은 일제강점기 시대 교사로 학생들에게 원하지 않는 일본교육을 시킨다. 해방된 이후 어수선한 배경처럼 염길과 아케미의 관계는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었고, 설상가상 염길은 친구때문에 얼떨결에 사회주의 좌익으로 몰리는데 그 과정도 아주 잠시 스친 것 같이 짧게 기록되어있어 아쉬웠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시키는데로 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강제시키는 공포심과 주입된 일제의 사상으로 자신이 일본 사상을 따르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살았을 수도 있겠다. 혼돈의 시대에 흔들리는 염길은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싫어서였을까 선운사의 염봉이라는 승려의 삶을 택한다.
염길은 국일여관 딸 아케미와 산책하다 판석을 만나 막걸리 한잔에 초월의 춘향가를 듣게 된다. 판석과 박초월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기생과 소리꾼들은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술집에서 손님들을 대상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일제시대의 생활은 암울했다. 소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정신은 독립을 위한 투쟁처럼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고, 춘향가를 읽는데 고창의 판소리명장인 신재효의 동리정사를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어쩜 이리도 고창에 대해 잘 알까 생각했는데 책의 마지막에 심사평으로 고창신재효문학상은 ‘고창의 역사. 자연. 지리. 인물. 문화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이 선정된다는 제한 조건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정말 치열하게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애정으로 지역에 관한 기록, 불교에 대한 자료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갈대와 지푸라기로 만든 이엉을 두른 원뿔 모양의 공간이다. 안에서 밤새도록 솥에 불을 때면, 함수의 수분이 증발해 소금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퍼 올려 쌓아놓고 간수를 빼면 먹을 수 있는 소금이 완성된다. 이것을 자염 또는 화염이라 부른다.
“쌔빠지게 일하고도 남는 것이 없응께 하는 말 아니우. 산 가진 놈들은 편히 앉아 소금을 얻어먹고 우리 같은 사람은 나무 사다 써야제, 소금 만들어야제, 소금값보다 나뭇값이 더 들어가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우.” P54
석대는 연회색빛이 감도는 하얀 소금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감칠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배합된 좋은 소금이었다.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잊히는 듯했다. 자신이 만든 소금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소금은 세상 어딜 가서도 맛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63
판석은 수련을 보고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비록 기생으로 관기에 적을 두었고 지금은 요릿집으로 불려 다니는 신세여도, 말하는 것을 보면 배울 점이 있었다. 하긴 여기를 떠나면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누구 한 사람 오라는 이도 없었고, 축음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양악에 귀가 익숙해져 이제는 판소리에 몇 시간씩 귀을 기울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사정이 판석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P128
“결정은 자네가 해야겠지만 학업을 이어가지 않고 몇 년 일찍 돈을 번다고 하여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진 않을 걸세. 오히려 아버님은 자네가 배움을 통해 세상에 문명을 떨치고 동생들을 이끌어주길 바라실거야. 그것 때문에 지금껏 자네를 가르치지 않으셨겠나.” P133
“말이 그렇단 거지요. 혹시 아우? 열심히 공양하믄 나중에 염부 말고 대갓집 옥동자로 태어날지.” P164
염길은 장학사에게 호되게 당한 후에 봉안전 앞을 지날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겉으로는 허리를 굽혀 경례를 올렸지만 당장이라도 망치를 들고 때려 부수고 싶었다. P178
도대체 누가, 왜 댕기 머리 흔들며 이곳 모릿등에서 게를 잡고 소금 가마를 지키며 살아온 숙영을 전쟁터로 끌고 갔단 말인가. 우리가 일으킨 전쟁도 아니고 아무런 대의가 없는 전쟁 아닌가. 염길은 지금껏 일본에 대하여 남들처럼 대단한 적대감을 가져본 일도 없고, 조선의 독립이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숙영과 필석의 불행한 운명을 바라보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치 못할 분노와 적개심이 솟구쳤다. P277
어머니는 나에게 눈물보다 짠 소금으로 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셨어요. 아버지 없는 일본에서 소금은 어머니의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나는 소금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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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쌔빠지게 일하고도 남는 것이 없응께 하는 말 아니우. 산 가진 놈들은 편히 앉아 소금을 얻어먹고 우리 같은 사람은 나무 사다 써야제, 소금 만들어야제, 소금값보다 나뭇값이 더 들어가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우." - P54
석대는 연회색빛이 감도는 하얀 소금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감칠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배합된 좋은 소금이었다.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잊히는 듯했다. 자신이 만든 소금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소금은 세상 어딜 가서도 맛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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