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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마음』(세계문학전집 14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인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마음』은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신문에 연재한 글로, 백여 년 전 연재를 따라가는 느낌으로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당시의 시대와 현재 시대가 분명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외롭고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와 닿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져 외로움에 채울 수 있는 대상도 여러 가지이지만 그때와 또 다른 외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이니까.
K군이 의사집 양자로 보내졌다가 양부모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서 원래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부분 같았다. 나쓰메가 집이 메이지 시대로 가세가 기울자 시오바라 부부에게 양자로 갔다가 부부가 이혼을 하게되고 나쓰메가 대를 이을 장남과 차남이 모두 결핵으로 죽자 다시 나쓰메가의 호적으로 오게 된다. 노후를 위해 두 집안은 소세키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호적을 바꾸고 다툼하는 거래의 흥정을 하였고, 마음의 상처와 정신의 고통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면서 문호가 되었다. 『마음』 소설은 병환으로 몸이 아플 때 써서 기분이 낮게 깔리는 듯한 느낌인 줄 알았는데 이미 그의 삶 아래부터 깔려 있던 고통이었던 듯하다.
일본 특유의 조심스런 말투때문인지 글이 예의가 바른 느낌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글이 참 좋았다. 말하듯이 노래부르는 가수들처럼 이야기하듯 글이 잘 읽혔고 쉬운 단어들로 사용하여 술술 읽혔다.
나는 한국 독자라 메이지 천왕의 죽음이 얼마나 큰 상심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노기 대장의 죽음도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왠지 주군이 죽으면 따라 할복하고 죽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에는 잠재적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근대화가 추진된 메이지 시대에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가 혼합되어 있는데, 소세키의 성장환경과 시대적 배경이 혼란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냥 소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갖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한 마음으로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
선생님은 죽음으로 그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 이후는 끝이므로 죄책감이 덜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마음의 고통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나. 꼭 죽음으로 그 고통을 끝냈어야 했나는 질문이 책을 덮고도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마음 소설에서는 죽음이 많다. 메이지 천왕, 노기 대장, 선생님, K, 아버지 모두 죽음으로 끝이 난다. 나름 지식인이고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의 재산이 있음에도 그들은 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통한 고통에서의 해방을 선택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나’는 선생님의 유서를 읽고 난 후, 선생님이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이기에 메이지 천왕의 죽음 후 따라 죽음을 택한 노기 장군과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소설은 끝이났지만 소설의 ‘나’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독자에게 질문을 남겨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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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갑용 작가님과 줌토크에서의 얻은 정보들! 〕
소세키가 처음으로 프랑스어 ‘로망(일본어로 로만)’을 제대로 옮길 말이 없어서 '낭만(浪漫)'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음차하여 옮겼다고 했다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번역가들도 소설의 단어량이 다른 책보다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ㅎㅎ)
작가님이 재미있게 읽었거나 지금 읽고 있는 책 목록이다. 수많은 책 중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고민될 때가 많은데, 추천 받은 책들은 고전문학들이 많지만 그만큼 독서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급적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o<알렉시. 은총의 일격>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o<감정의 혼란> 슈테판 츠바이크
o<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o<스토너> 존 윌리엄스
o<몽유병자들> 헤르만 브로흐
o<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o<특성 없는 남자> 로베르트 무질
📖 책 속 밑줄긋기
1부. 선생님과 나
선생님이 종종 내게 보인 무뚝뚝한 대답이나 냉정해 보이던 몸짓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기한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다가올 가치가 없는 인간이니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던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했던 것 같다. P17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 품속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감싸안을 수 없는 사람-그런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P22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 P43
내 눈에 비치는 선생님은 분명히 사상가였다. 하지만 그 사상가가 도출해낸 결론의 이면에는 강렬한 사실이 깔려 있는 듯했다. 자신과는 거리가 먼 남의 사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통절하게 맛본 사실, 피가 끓어오르거나 맥박이 멈출 만한 사실이 내재되어 있는 듯했던 것이다. P44
2부. 부모님과 나
여름에 고향으로 내려와 귀 따가운 매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슬퍼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 애수는 언제나 이 곤충의 격렬한 울음 소리와 함께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듯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혼자 꼼짝 않고 자기 자신을 응시했다.
내 애수는 이번 여름 귀향한 후부터 점차 정조가 바뀌어갔다. 유지매미 소리가 쓰르라미 소리로 바뀌듯,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운명이 커다란 윤회 속에서 조금씩 움직여가는 것 같았다. 적적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과 말을 반추하면서, 편지를 보내도 답장을 주지 않는 선생님을 다시 떠올렸다. 선생님과 아버지는 정반대의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서로 비교될 때도 연상될 때도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P120
3부. 선생님과 유서
예의고 뭐고 없이 내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어떤 것을 움켜쥐고 싶어하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갈라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빨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난 살아 있었습니다. 죽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네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죠. 나는 이제 자진해서 내 심장을 갈라, 심장의 피를 자네 얼굴에 끼얹으려 합니다. 내 심장의 고동이 멎었을 때, 자네 가슴에 새 생명이 깃들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 P153
모든 의혹, 번민, 고뇌를 한번에 해결할 마지막 수단을 K는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빛으로 각오라는 두 글자를 다시 비춰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만일 내가 내려앉은 가슴을 안고, 그가 입에 담은 각오란 말의 뜻을 다시 한번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펴봤더라면 그래도 나았을지 모릅니다. 슬프게도 나는 한쪽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P252
나는 끝까지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끼인 나는 또다시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P 260
나도 노기 대장이 죽은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듯이 자네도 내가 자살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시대의 추이에서 오는 세대 차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개인의 타고난 성격 차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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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 - P43
모든 의혹, 번민, 고뇌를 한번에 해결할 마지막 수단을 K는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빛으로 각오라는 두 글자를 다시 비춰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만일 내가 내려앉은 가슴을 안고, 그가 입에 담은 각오란 말의 뜻을 다시 한번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펴봤더라면 그래도 나았을지 모릅니다. 슬프게도 나는 한쪽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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