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핸드 - 천재 형사의 뉴욕 마피아 소탕 실화
스테판 탈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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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핸드』

스테판 탈티 지음
문학동네 출판 

✏️조지프 페트로시노는 이민자로 구두닦이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차별받는 이민자 계층에서 벗어나고자 일거리를 찾다 윌리엄스 경위의 눈에 들어 경찰이 된다. 

가죽 수첩에 늘 메모를 하며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고 피해자 가해자의 억울함보다 사건의 진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본받아야 한다. 이민자로 차별로 노동으로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의 쓸모를 미국에서는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맨손 아메리카드림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이민자가 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이탈리아계 미국인 대다수는 사실과 다른 교육과 성장 배경으로 이민자는 스스로가 저렇게 성공할 수 없다는 소문들이 낭자하다. 이런 편견들을 페트로시노는 경찰 경력 내내 전쟁의 단계마다 겪는데 소문들은 그림자를 드리울 편견의 맛보기었다. 

미국에서 그의 명성은 높았다. 하지만 정치인과 자신을 발굴해준 겅위도 자신의 경력에 이민자를 옹호하는 인물로 낙인 찍힐 까 이름 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의 편이었다. 범죄와의 싸움에 앞장세울 최적의 대변자로 서로 앞다투어 내세우기 바빴다. 

유괴 납치를 통해 돈을 뜯고 피해자들은 경찰이 알면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쉬쉬한다. 그런 검은손은 지역 상점들에서 상납금을 받고 나아가 지역, 국가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지만 검은손은 뉴욕시 의회, 경찰, 높은 지위까지 연결된 것일까. 페트로시노가 잡고자 했던 범죄조직은 그의 죽음 이후에서야 소탕 되었다. 그는 죽음 후 그가 지키려 했던 이들, 맞서 싸웠던 이들, 감동시킨 사람들, 가장 미국적인 사람이었지만 시칠리아에서 가장 이탈리아식으로 암살되었다. 

논픽션 소설이라 많은 사실과 사건의 인물들이 뉴스처럼 쏟아져 나온듯했다. 이 사실들로 페트로시노가 이탈리아 이민자로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 좌절, 희망 등의 감정으로 나타내주었더라면 읽는 재미가 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자신의 머릿속의 범죄자들의 인상착의, 범죄수법, 사건 해결 방법 등의 암기된 내용들을 시스템화하여 형사들이 범죄자를 수배하기 쉽도록 했다. 검은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 무엇보다 국적을 넘어 형사로써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위험에도 포기하지 않은 점들은 스릴러보다는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러라는 명칭으로 범죄심리학자들이 활동을 하기까지의 과정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조지프 페트로시노. 
이민자의 차별과 편견에 포기하지 않고 범죄조직과 정부에 대항한 인물 전기를 읽은 느낌이다.



📖 책 속 밑줄긋기

편지 하단에 그려넣은 조잡한 검은색 십자가 세 개와 해골, 크로스본(대퇴골 두 개를 교차시킨 모양. 주로 해골 밑에 그려 죽음을 상징하는 표시로 쓴다-옮긴이) 그림은 공포감을 극대화 했다. 검은손의 기호였다. P18
 
🔖이탈리아계 이민자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편견도 수위가 높아지면서, 어엿한 일원이 되기를 소망하는 이민자들은 그저 침묵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치러야 할 대가의 일부였음을 페트로시노는 곧 알게 된다. P53-54

그냥 “나 페트로시노요”하면 거의 매번 용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순순히 따라왔다. “페트로시노”라는 말 한마디가 경찰력 만 명을 보유한 뉴욕 시경 전체의 위세를 능가하는 듯했다. P70

🔖‘없던 길도 만드는 페트로시노’ ‘부패를 모르는 형사 페트로시노’는 맨해튼 일간지가 가장 즐겨 쓰는 문구가 되었다. 퓰리처 소유의 뉴욕 월드와, 허스트가 소유한 뉴욕 저널, 아돌프 오크스가 창립한 뉴욕 타임스까지 무뚝뚝하고 지적인 페트로시노를 범죄와의 싸움에 앞장세울 최적의 대변자로 점찍었다. P102

🔖검은손을 상대로 이기려면 막강한 동맹이 필요했고, 페트로시노는 이미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젠가는 놈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검은손의 테러를 멈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건 바로 연방 정부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P153


#블랙핸드 #스테판탈티 #문학동네 #블라인드서평단 #3월신간 #스릴러 #논픽션 #소설 #누아르 #범죄소설#신간도서 #책스타그램 #페트로시노 #서평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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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2
문보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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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두 번째: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다채로운 시와 소설의 풍경을 한 권으로 만나는 '시소'에서 사계절을 꼽아 선정한 '임솔아 윤혜지 문보영 주민현'의 시와 '이미상 전예진 최진영'의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봄 소설 이주혜 작가님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실리지 않았는데 나는 읽어본 적이 있으므로 😊 장편소설로 출간되기를 기다려본다. 

계절에 어울리는 시와 소설을 모아 본다는 것이 온도와 풍경에 어울리는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상한 평화로움을 시작으로 시한부가 사랑을 말하는 글까지 묘하게 사계절이 떠올랐다. 

각 시와 소설 후 문학평론가와 작가의 인터뷰를 읽는 재미가 더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해석도 좋지만 작가님의 생각을 들으니 시와 소설이 더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인터뷰 끝에 qr코드를 찍으면 영상을 볼 수 있어 북토크에 참가한 듯 좋았다 😌 이렇게 만난 작가님들이 새로 출간하거나 글을 쓰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


📖봄 시-임솔아

<특권>
방에 들어온 햇빛을
색종이처럼 접으며 논 적이 있었다. 

반복해서 접으면 유리병에 모아둘 수 있었다. 
모으다보면 왠지 소원을 빌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
친구는 들었다. 
그 말이 도움이 되었다 했다. 
아무것도 빌지 않기로 했다. 
그게 우리의 소원이기로 했다. 


🎤인터뷰
이상한 평화로움 속에서 
임솔아x노태훈

누군가가 힘든 상태일 때, 진심으로 힘을 주고 싶을 때, 그러나 어떤 말도 전달되지 않는 것만 같은 때가 있었어요. 상대방의 기분을 잠깐 나아지게 할 수는 있었지만,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무력감을 느꼈달까요. 반대로 어떤 말도 저한테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때도 있었죠. P22 

✏️특권이라는 것이 나에게 해당될 수도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를 때 느끼는 것인데. 무언가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힘들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과 공감이 되지 않은 어떤 상황을 특권이라는 시에서 보였다. 이상한 평화로움 속에서라는 인터뷰 제목이 시와 딱 맞는 것 같아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여름 시-윤혜지

<음악 없는 말>
평범한 것들이 마음에 닿았다 떨어지는 순간
등 뒤에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사건을

잠깐 쥐었다 놓아도 쥔 감각을 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인터뷰
이상한 좋음, 말 없는 음악
윤혜지 X 김나영

나는 뭔가를 상대방한테 얘기하는데 그게 딱 100퍼센트 가까이 붙지를 않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내가 말할수록 오해하고 내가 정말 전하고자 하는 진실과는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시를 쓴다면 ‘음악 없는 말’이 아니라 ‘말 없는 음악’ 같은 말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P52 윤혜지

🔖우리가 사소하게 취급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런 말의 역할을 이 시가 굉장히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앞서 좋아하는 구절이라고 언급한 문장들은 한편으로 보면 뭔가가 마음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 너무나 순간적이고 비가시적인 접촉이지만 그게 아주 크고 가시적인 사건의 시초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또한 담고 있는 것 같아요. P56 김나영

✏️시를 쓰면서 힘이 들 때 ‘당신이 쓴 것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말을 듣고 힘을 냈다고 하는데 정말 멋진 말인 것 같다. 이번 인터뷰는 음악없는 말 시 하나로 노인, 음악, 어머니의 양말, 바다 등의 시 속의 단어에서 파생해서 깊이 있게 이야기 하는데 신기하게 어렵지 않고 참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두 분의 대화에 함께 동참을 하고 싶다고 느낄만큼. 


📖여름 소설-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모든 문장을 쭉 빨아올리며 꼭대기에서 탁 터뜨리는, 푹 꺼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비위 약한 작가들을 위한 탁 터뜨림이고요. 여하튼 결정적인 한 장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한순간, 우리가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그 뭐가 제 글에는 없대요. P72

틈 없는 정신과 틈뿐인 몸의 간극을 메운 것은 무수한 규칙이었다. P75

🎤인터뷰
끝나지 않는 독자의 모험
이미상 X 안서현

소설의 마지막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마지막에 힘을 싣지 않더라도, 정말 아무 문장이나 넣더라도, 마지막은 마지막이라서 무조건 힘이 실리는 것 같아요. P120

📖가을 시 - 문보영

<두려운 상황에 대한 탈감각적 반응>

저기 공이 있는데
닿으면 죽어
저기까지 안 가는
시 쓰기 훈련 중인


<어딘가 맛이 간 이곳>
안 가면 지나간 게 돼

🎤인터뷰
쓰고 지우다 지나간 것들
문보영 X 조대한

사실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다들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지도 몰라”라는 부분인데요. 게오르크가
겪고 있는 어떤 갈등, 예를 들면 사람들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나 아니면 피하고 싶은 게 있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P160

📖가을 소설 -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누군가에게 이헤받는 게 이런 거구나. 채원른 내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안도감이 들었다. 평생 서로에게 지금 같은 존재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P177

🎤인터뷰
이 불안이 우리를
전예진 X 안서현

소설 속 화자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외면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가 많잖아요. 편향된 정보만을 접하거나 아니면 같은 정보를 접해도 편향적으로 생각해버리거나요. 저도 그럴 때가 많아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거의 매일 마주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느끼는 좌절감, 그리고 그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었을 때 느끼는 죄책감이 있잖아요. 그런 감정과 경험이 소설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P206 전예진

📖 겨울 시 - 주민현
<밤은 신의 놀이>

왜 이 동네엔 헌옷수거함이 없을까
모두들 영원히 버리지 않아도 좋을까

버리지 않게 되는 기억도 있지

🎤인터뷰
어둠을 바라보며 걷기
주민현 X 김나영

우리의 일상은 되게 매끄럽고 아름답고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일상을 한 겹 벗겨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밝은 곳에도 어둠이 있고, 사람에게도 밝은 면도 있지먼 어두운 면도 있고요. 저에게 시 쓰기란 바로 그 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밝은 면과 함께 그 한 겹 아래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P228 주민현

📖 겨울 소설 - 최진영
<홈 스위트 홈>

나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버라볼수록 두려움보다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었다. 슬픔을 위해서 움직일 힘이 아직 남아 있었다. P251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 그리고 하나 더. P259

🎤인터뷰
아직은 사랑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최진영 X 노태훈

인간이라는 존재가 시간에 얽매여 살고 시간에 쫓기는 존재잖아요. 저 또한 시간에 얽매여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저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확 물러나버려요. 미미한 인간에게 시간이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과거, 현재, 미래죠. 어제와 내일이고요. 하지만 우주 공간에는 시간이 없잖아요. 시간은 지적 존재인 인간이 만들고 약속한 개념이고요. 인간은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에 굉장히 얽매여 살아가고 있죠. 그렇게 가끔 거시적 관점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면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요.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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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제공 받았습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 그리고 하나 더.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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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10 - 안개
이현석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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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ic』 에픽

다산북스 출판

-시즌 1 마감의 소식 😔

 

2년동안 에픽을 읽으면서 좋았는데 발행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구독자가 없어서 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잠들기 전까지 머리 속에서 천천히 지나가듯 기억하는데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인지 마음이 좀 그랬는데 편집장님은 또 이런 독자의 마음을 ‘종간’이라고 말하지 않고 시즌1의 문을 닫는다고 둘러 표현주셨다. 다른 형태가 되었던간 에픽의 글들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

 


 


 

 



 

어떤 사건은 목소리가 주어짐으로서 세상에 겨우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건은 표준, 정상, 평균, 중앙값 등으로부터 멀리 비껴 나와 있을수록 더욱 두텁게 가려진다. 가려진 것을 드러내는 것. 나는 그것이 내 직업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P39 나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이현석

 

내 안에 자리 잡은 기준으로 아이의 세계까지 함부로 휘젓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고귀한 것’과 ‘하찮은 것’을 규정하는 권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내가 그 기준에 동의한 적이 있는지 제대로 따져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났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불현듯 일어섰다.

P91 닫아둔 그곳, 열두 시간 이야기. 서은혜

현철의 얼굴은 나에게 보여줬던 그동안의 얼굴과는 달랐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딘가 슬프게 울고 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골똘하게 슬퍼하는 사람의 얼굴.

현철은 우는 듯 보였다.

P208 파주. 김남숙

 

 

수련이 피었는지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밤도 그랬다. 연재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는데,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장편소설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훨씬 더 어렵다.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젠가의 맨 아래쪽 막대기를 빼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들을 망가뜨리지 않고 끝내려면 절묘한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쓰려는 그 결말을 쓰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퍼즐의 답을 구하기 위해 나는 걷는 것이다.

P230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뜻을 잃은 음소가 허공에서 서로 맞물리고 부딪히다가

나중에는 그마저고 사라져

탁음과 청음만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형태로 남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어깨가 들렸다가 내려가며.

바람이 열고 닫히는 그런 소리만 되풀이되었다.

그건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였고,

누군가 고개를 가로젓거나 팔을 긁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 소리였다.

P260 스스로 고난에 처하사. 윤치규

 

 

 

#에픽 #epiic #안개 #다산북스 #계간지 #시즌1 #문학 #소설 #안녕이라고말하지마 #내돈내산


현철의 얼굴은 나에게 보여줬던 그동안의 얼굴과는 달랐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딘가 슬프게 울고 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골똘하게 슬퍼하는 사람의 얼굴.

현철은 우는 듯 보였다. - P208

수련이 피었는지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밤도 그랬다. 연재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는데,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장편소설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훨씬 더 어렵다.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젠가의 맨 아래쪽 막대기를 빼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들을 망가뜨리지 않고 끝내려면 절묘한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쓰려는 그 결말을 쓰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퍼즐의 답을 구하기 위해 나는 걷는 것이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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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비행 - 2022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박현민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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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비행》

박현민 그림

창비 스위치


 

🌼보도블럭 사이에 핀 민들레.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민들레를 표지에 그렸는데 어떤 눈으로 민들레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처음 펼쳤을 때는 어지러웠다.

두 번째에는 민들레의 시선들로 다가오는 것들이 보였다.

세 번째는 글이 보이면서 늘 짓밟히는 민들레의 마음이 느껴졌다.

🌼따르릉 자전거 바퀴, 킁킁 짓으며 이를 드러낸 개, 사람들의 신발 아래 민들레의 꽃은 점점 더 아래로 밟힌다.



 

나무에서 스스륵 떨어진 번데기에서 노란 나비가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민들레는 ‘겁내지 않고 똑바로 볼 거야’ 라고 다짐한다. 사실 민들레는 무섭다고 피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향해 오는 것에 물리적으로는 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고난에도 꿋꿋하게 이겨내려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민들레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은 늘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한정된 배경이지만 공포, 어둠, 낯선 것들에도 날아오르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꽃이 지고 민들레씨앗은 자신을 뽑은 소녀의 입에서 후후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민들레는 죽었지만 자신이 본 노란 나비처럼 하늘을 훨훨 여행하다 또 낯선 곳으로 정착할 것이다. 여러 씨앗들은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 관심받지 못한채 살아갈 수도 있지만 예쁜 꽃밭에 떨어져 노오랗게 강렬히 빛내며 꽃피울지도 모르겠다.


 

🌼<도시 비행> 은 2022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박현민 작가의 그림으로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와 그림의 해석에 따라 미술관에 걸린 점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주듯 동화책도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다 생각이 든다. 비록 보도블럭 사이 피어난 민들레일지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생명력이 도시 비행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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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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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박이선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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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

 

박이선 장편소설

다산북스 출판

 


 

일제강점기 시대의 고창 벌막에서 자염(화염)소금을 만드는 염부들의 이야기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소금에 대해 자부심 있지만 값싼 천일염 사업이 확장되면서 자신들이 하는 자염이 머지않아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한다. 생계가 달린 일이라 놓지 못하지만 배운 것이 없으니 달리 방법도 없던 시절의 고달픔이 느껴졌다.

 

소금 굽는 염부들의 삶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자식들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검단선사는 백제때 선운사를 창건하고 도적떼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알려주고 불법으로 교화하여 양민으로 살게 해주었는데 전쟁통에 염부와 마을 사람들은 먹고 살기 팍팍해도 검단선사에게 은혜를 갚고자 선운사에 보은염을 시주하는 이운식 행사를 했다.

자신들이 지금은 천일염 산업으로 염부라는 직업이 먹고 살기 힘들어졌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노동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데 대해 감사를 한다는 것이 지난날이 아닌 현재와 앞으로도 염부의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행사는 아닐까 생각한다.

 

염길은 일제강점기 시대 교사로 학생들에게 원하지 않는 일본교육을 시킨다. 해방된 이후 어수선한 배경처럼 염길과 아케미의 관계는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었고, 설상가상 염길은 친구때문에 얼떨결에 사회주의 좌익으로 몰리는데 그 과정도 아주 잠시 스친 것 같이 짧게 기록되어있어 아쉬웠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시키는데로 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강제시키는 공포심과 주입된 일제의 사상으로 자신이 일본 사상을 따르면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살았을 수도 있겠다. 혼돈의 시대에 흔들리는 염길은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싫어서였을까 선운사의 염봉이라는 승려의 삶을 택한다.

 

염길은 국일여관 딸 아케미와 산책하다 판석을 만나 막걸리 한잔에 초월의 춘향가를 듣게 된다. 판석과 박초월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기생과 소리꾼들은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술집에서 손님들을 대상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일제시대의 생활은 암울했다. 소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정신은 독립을 위한 투쟁처럼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고, 춘향가를 읽는데 고창의 판소리명장인 신재효의 동리정사를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어쩜 이리도 고창에 대해 잘 알까 생각했는데 책의 마지막에 심사평으로 고창신재효문학상은 ‘고창의 역사. 자연. 지리. 인물. 문화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이 선정된다는 제한 조건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정말 치열하게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애정으로 지역에 관한 기록, 불교에 대한 자료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갈대와 지푸라기로 만든 이엉을 두른 원뿔 모양의 공간이다. 안에서 밤새도록 솥에 불을 때면, 함수의 수분이 증발해 소금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퍼 올려 쌓아놓고 간수를 빼면 먹을 수 있는 소금이 완성된다. 이것을 자염 또는 화염이라 부른다.
 

 


 

 

 

“쌔빠지게 일하고도 남는 것이 없응께 하는 말 아니우. 산 가진 놈들은 편히 앉아 소금을 얻어먹고 우리 같은 사람은 나무 사다 써야제, 소금 만들어야제, 소금값보다 나뭇값이 더 들어가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우.” P54

 

석대는 연회색빛이 감도는 하얀 소금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감칠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배합된 좋은 소금이었다.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잊히는 듯했다. 자신이 만든 소금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소금은 세상 어딜 가서도 맛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63

 

판석은 수련을 보고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비록 기생으로 관기에 적을 두었고 지금은 요릿집으로 불려 다니는 신세여도, 말하는 것을 보면 배울 점이 있었다. 하긴 여기를 떠나면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누구 한 사람 오라는 이도 없었고, 축음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양악에 귀가 익숙해져 이제는 판소리에 몇 시간씩 귀을 기울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사정이 판석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P128

 

“결정은 자네가 해야겠지만 학업을 이어가지 않고 몇 년 일찍 돈을 번다고 하여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진 않을 걸세. 오히려 아버님은 자네가 배움을 통해 세상에 문명을 떨치고 동생들을 이끌어주길 바라실거야. 그것 때문에 지금껏 자네를 가르치지 않으셨겠나.” P133

 

“말이 그렇단 거지요. 혹시 아우? 열심히 공양하믄 나중에 염부 말고 대갓집 옥동자로 태어날지.” P164

 

염길은 장학사에게 호되게 당한 후에 봉안전 앞을 지날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겉으로는 허리를 굽혀 경례를 올렸지만 당장이라도 망치를 들고 때려 부수고 싶었다. P178

 

도대체 누가, 왜 댕기 머리 흔들며 이곳 모릿등에서 게를 잡고 소금 가마를 지키며 살아온 숙영을 전쟁터로 끌고 갔단 말인가. 우리가 일으킨 전쟁도 아니고 아무런 대의가 없는 전쟁 아닌가. 염길은 지금껏 일본에 대하여 남들처럼 대단한 적대감을 가져본 일도 없고, 조선의 독립이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숙영과 필석의 불행한 운명을 바라보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치 못할 분노와 적개심이 솟구쳤다. P277

 

어머니는 나에게 눈물보다 짠 소금으로 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셨어요. 아버지 없는 일본에서 소금은 어머니의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나는 소금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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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쌔빠지게 일하고도 남는 것이 없응께 하는 말 아니우. 산 가진 놈들은 편히 앉아 소금을 얻어먹고 우리 같은 사람은 나무 사다 써야제, 소금 만들어야제, 소금값보다 나뭇값이 더 들어가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우." - P54

석대는 연회색빛이 감도는 하얀 소금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감칠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배합된 좋은 소금이었다.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잊히는 듯했다. 자신이 만든 소금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소금은 세상 어딜 가서도 맛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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