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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장편소설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출판

(첫 문장)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어떤 책은 첫 문장만으로도 책에 빠져들게 하는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그랬다. 화자인 한탸는 책을 통해 고독을 선택하고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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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탸는 책을 너무 좋아하지만 지하실에서 책을 압축해서 폐기하는 일을 한다. 일상의 반복되는 쏟아지는 책, 압축기의 녹색과 붉은색 버튼을 누르는 일을 하면서도 책을 고독의 피신처로 삼는다. 다양한 작가와 책들이 폐지처리되는 것을 사물인 책에도 생명이 있는 듯 죽음으로 표현하며 슬퍼헀다.
🔖내 안에는 이미 불행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자리했다. 그렇게 나는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열차의 차량들에도 화물을 실었고, 수많은 열차가 킬로그램당 1코루나에 팔릴 짐을 싣고 서방으로 떠나갔다! (P23)
프로이센 왕실 서적이 전리품으로 분류되어 헐값에 팔리거나 다시 싣는 트럭에서 비를 맞아 인쇄용 잉크가 금빛 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본 한탸는 꼭 책의 죽음을 보는 듯 눈물을 흘리며 공산주의 정권같은 사상따위 보다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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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 벗어난 닭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내려오며 모이를 쪼아대면 손 하나가 그들을 낚아채 산 채로 꼬챙이에 꿰어 목을 잘랐다. 그들 운명의 고리에 막 합류하고 난 그 닭들처럼, 이곳에 쌓여 있는 책들도 요절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P97)
반복되는 일상과 지하에서 마시는 맥주한잔을 마시는 개인의 시간을 사랑하는 한탸라는 주인공이 매력적인 이유는 위의 문장처럼 책의 죽음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장면도 있고, 엉뚱한 상상력 때문에 책 읽는 재미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침대 위로 쌓아 높이 솟은 책 천개를 올려다본 후 2톤짜리 닫집이 불러일으킨 상상의 무게에 짓눌려 몸이 구부정해져 8년새에 9센티미터 키가 줄었다고 하는 말! 책과 함께 한 시간만큼 순수한 한탸의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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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연은 성부 하느님이 되었고, 나는 그분의 아들인 성자, 그리고 연줄은 인간과 하느님의 중재자인 성령이 되었다.(P83)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P86)

어린 집시여자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마이다네크 혹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한탸는 히틀러의 관련된 책을 파쇄하고 짓이길수록 어린 집시여자를 더 떠올린다. 한탸는 청소를 하며 희생시킨 쥐들도 폐지더미에서 새끼를 키우고 살았을 뿐인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짐승이지만 자신이 죽였고, 어린 집시여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에 잊고 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을 떠올린다.
이름도 묻지 않았고, 언제 만나는지 약속도 하지 않는 그녀와 한탸는 어쩌면 서로는 결국엔 헤어질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종종 신의 환영을 보지만 신을 믿지 않는 한탸에게 어린 집시여인은 하늘(신)에 연을 날리며 함께 하고 싶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 찾아와도 나는 수당을 받고 일하러 갔다. 일이 항시 밀려 있는데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종이 더미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으니까. 사르크스 양반과 카뮈 양반이, 특히 후자가 멋들어지게 글로 옮겨놓은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십오 년 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 (P93)
돌을 굴려 언덕을 올라가는 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자신도 35년간 지하에서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하는데 좋아하는 책을 죽음으로 압축하면서도 동시에 책을 구하는 것도 필사적이다. 한탸에게 돈을 주며 고서와 같은 서책을 사는 철학 교수와 과거 신문기사의 글을 썼던 슈트륨은 책을 알고 좋아하는 한탸 주변의 유일한 인물들이다. 이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며 한탸 자신은 책을 죽음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졌지만 자신을 대신해 책을 구해 주기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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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파를 하면 좀토크로 작가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이 가장 컸는데 이번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구월서가’ 책방지기 김혁규 님이 독파메이트로 독서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혼자 읽었다면 길을 잃거나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손을 잡고 천천히 책 속 한탸가 있는 공간으로 나를 이끌어준 듯하여 읽기도 한결 수월했다. 김혁규 님이 독파메이트라면 그 책을 선택하고 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미션 가득은 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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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밑줄긋기
진정한 책에 내 눈길이 멎어 거기 인쇄된 단어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대기 속에서 파닥이다 대기 중에 내려앉는 비물질적인 사고들뿐이다. 대기에서 자양분을 얻고 다시 대기로 돌아가는 사고들. 면병 속에 있으면서도 없는 성혈처럼 만사는 결국 공기에 불과하니까. P11
그 순간 머릿속에는 칼 샌드버그의 시구만 맴돌았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 P25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P26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일은 굳고 경직되어 빈사 상태에 놓이는 것인 반면, 개인을 비롯한 인간 사회가 투쟁을 통해 젊어지고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단 한 가지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P38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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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책에 내 눈길이 멎어 거기 인쇄된 단어들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대기 속에서 파닥이다 대기 중에 내려앉는 비물질적인 사고들뿐이다. 대기에서 자양분을 얻고 다시 대기로 돌아가는 사고들. 면병 속에 있으면서도 없는 성혈처럼 만사는 결국 공기에 불과하니까.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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