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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작가는 미성년의 시간이 일곱 소설에 스며있다고 했다. 그 시절의 폭력, 비난 말들로 도망치고 싶었고 내게 무해한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각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달랐지만 각자 성장 과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읽으면서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고, 어쩌면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아서 인물들로부터 위로 받기도 하고 숨었던 내 모습을 알아봐주기도 했다.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연이어 읽으면서 폭력과 차별, 우정과 사랑이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내가 놓인 위치와 나에 대해 조금더 알아볼 수 있고 이해한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다 떠나서.. 글이 넘 좋음 💛
📚「그 여름」
늘 하루의 한계치만큼 살아내는 것 같이 보였던 수이와 수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이경. 오랜 시간만큼이나 지쳤을테고 성장하는 동안 만나는 관계가 달라지면서 수이와 이경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는다.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지만 열여덟 뜨거운 여름과 같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첫사랑이 생각나는 소설.
🔖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을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고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P29
무너지기 직전의 연애, 겉으로는 누구의 것보다도 견고해 보이던 그 작은 성이 이제 곧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예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P49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의 마음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이 서서 이경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이야, 불러도 듣지 못한 채로, 이경이 부순 세계의 파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곳까지 이경은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은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수이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 가정에 대해 이경은 자신이 없었다. P59
📚「601,602」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 이야기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도 있을..)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인가 싶을 정도로 가혹했고 살기힘들다는 소리기 나올 차별의 현장이다.
에미가 되어서 돈 번다고 애를 방치한다는 말을 듣던 엄마는 막상 직장을 관두고서는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속 편하게 노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P77
📚「지나가는 밤」
친언니가 생각났다. 그렇게 싸웠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 어쩌면 그때도 내 모습같았던 것 때문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먼 곳에서 다른 환경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유년기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함께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얼굴만 서로 늙어가는 것은 착각이 아니겠지만^^)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P97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P99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P101
📚「모래로 지은 집」
단편 중 가장 긴 글이었지만 가장 좋았다.
고등학교부터 가정폭력을 겪는 공무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의 모래, 나는 통신으로 만나 스물하나의 나이가 되기까지 세트처럼 지낸다. 공무, 모래, 나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듯 하면서도 함께 공유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상처입을까봐 한발짝 뒤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서 행복하지만 모래로 지은 집처럼 그 시간은 허물어져 희미하다.
그 시절 미니홈피 사진과 글을 보며 감성에 젖어보려했던 기억도 떠올랐고, 통신이라는 매개로 청춘에 대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서로의 글을 읽으며 알아봐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비록 허물어져 없어져버릴 모래집일지라도 짓는 동안은 행복했었던 그 시간.
나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말로 풀어 쓸 수 있는 그애의 능력과 끝까지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태도에 마음이 갔다. P109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P112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P121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P127

📚「고백」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신경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미주, 진희, 주나.
예민하다고 여중학생들만의 아픈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한 고백이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건 언제든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손길」
혜인. 정희.
자신의 꿈을 위해 부인과 자식을 상처로 내 몰았던 아빠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티를 내지도 않는 성숙했던 어린 혜인은 스무살 초 젊은 숙모와 함께 있을 때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배꼽 잡고 깔깔 웃는 딱 그 나이의 아이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난 숙모를 혜인은 그리워했다고 이제 혜인이 숙모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P222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P226
📚「아치디에서」
랄도는 하민이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통해 자신이 상처준 가족을 떠올린다. 나약한 나였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해서 나를 위해 희생하고 무조건 적인 포용해야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민을 보며 깨닫게 하다니. 이 소설을 읽고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힘들게 한 사람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같은 느낌.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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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을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고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 P29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 P101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 P112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 P127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P209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 P222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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