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방구석 시리즈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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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오페라』


이서희 지음

리텍콘텐츠 출판



 

  웅장한 음악과 화려함으로 장식된 무대와 주인공의 의상은 오페라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부터 서사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오페라도 자금적인 여유가 있어도 티켓팅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는 세계의 유명 오페라들은 대부분 유투브나 영상으로 감상해야 했는데 오페라를 작품으로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거나 서사를 모르고 간다면 헤매기 십상이다.


  인기 연예인의 출연 작품이나 유명 작품만 선호했기에 이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놓치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이런 찰나에 『방구석 오페라』을 읽게 되었는데 책으로 오페라를 감상한다는 것보다 그 서사를 이해하고 QR코드로 간편하게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방구석 오페라』는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을 담은 운명적 서사 25편을 담고 있고, 인생의 굴곡처럼 주인공들의 사랑을 오페라의 서곡-세 맥의 이야기-피날레로 마무리하는 구성처럼 5개의 PART로 나누었다. 작품 중 인상 깊었던 편을 기록해본다.


PART1. 그 무엇보다 용감한 아리아의 시작-사랑하는 사람을 구원

PART2. 순수한 사랑은 지고 남은 것은-복잡한 애정 관계

PART3. 악을 처단하라-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한 줄기 빛

PART4. 선이 악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텐데-사랑과 비극은 하나

PART5. 소신과 가치를 지켜내며-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 결말



피델리오(Fidelio)

  

  베토벤이 <피델리오>를 쓰다 질려 오페라를 그만두었다고 말할 정도로 총 2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위해 8년을 공들여 작업한 유일한 오페라로 베토벤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피델리오’ 이름으로 교도소 보조 간수로 취직한 아내 ‘레오노레’는 극적으로 남편을 구해내고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Heil sei dem Tag heil sei der

행복한 날이여, 행복한 순간이여


만세, 만만세, 행복한 날이여!

만세, 행복한 순간이여!

오랫동안 기다려 왔지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해방의 순간이여, 만세!


정의는 자비와 더불어,

자비와 더불어, 죽음의 문 앞에 나타났네,

우리들의 죽음의 문 앞에 서 있네!

만세! 만만세! 행복한 날이여!

만세! 만세!


가엾은 백성들이여, 나는 지엄하신

국왕폐하의 명으로 여러분을 찾아왔도다

여러분을 오랫동안 뒤덮고 있었던

사악한 밤을 걷어 내어주러 왔노라

더 이상 노예처럼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노라

나는 잔혹한 폭군이 아니니까

나는 여러분의 형제로서 여기에 왔고

할 수 있는 한, 여러분을 돕겠노라


만세, 행복한 날, 만세, 행복한 순간,

만세, 만만세!




카르멘(Carmen)


  ‘미카엘라’와 결혼을 해야 하는 ‘돈 호세’는 집시 여인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밀수업자가 되고 만다. 어머니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미카엘라’는 전하고 ‘돈 호세’는 자리를 비운다. ‘카르멘’에게 관심이 있는 투우사 ‘에스카미요’ 앞에 ‘돈 호세’가 다시 나타나지만 사랑에 구속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돈 호세’가 준 반지를 던지는 ‘카르멘’, ‘호세’는 격분한 나머지 칼로 ‘카르멘’을 찔러 죽이고, ‘에스카미요’의 승리를 축하하는 군중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막이 내린다.

  사실주의 이전 작품으로 작곡가 비제 Georges Bizer는 오페라 코믹(희극)을 통해 침체되어가는 장르를 개척하고자 했지만 집시 무리, 밀수업자, 담배공장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하층민 척박한 삶에 대해 당시는 용납되기 어려웠다. 카르멘은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각자의 특성과 줄거리에 맞게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덕분에 비제가 세상을 떠난 후 유명해졌다.



La fleur que tu m'avais jetee(Flower Song)

네가 던진 꽃은(꽃의 노래)


네가 던진 꽃은

나의 감옥에 남아 있었지


시들고 말라버린 이 꽃은

항상 그 달콤한 향기를 간직했어


그 향기에 취하며

시간을 가득 채웠고

밤에는 널 보았어


내가 널 저주하고

널 미워하며 스스로에게 말했지


왜 운명이

나의 길에 너를 놓았을까?


그리고 나는 모독의 죄를 자책하며

나 자신 안에서 느껴지는 건

한 가지 욕망, 한 가지 희망뿐이었어


다시 널 만나고 싶다는 거야,

오 카르멘,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네가 나타나기만 하면 충분했어

나에게 한 번 눈길만 던져주면

내 전부를 사로잡는 거야


오 나의 카르멘

나는 네 것이었어

카르멘, 나는 널 사랑해!



  오페라는 역사나 인생의 역경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줄거리를 노래한다.

  오페라의 용어, 구성요소, 전문용어들을 앞에서 서술해 줌으로 오페라를 어떻게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는데, 음악과 유명 연예인이 나온다는 것만 쫓아다녔던 나의 무식을 반성하게 했다. ^^;


<구성요소>


· 일반적으로 3막 구성: 1막(primo), 2막(secondo), 3막(terzo)


· 리브레토: 오페라 대본

· 오페라 가수: 프리마 돈나, 프리모 우오모,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 이리아, 레치타티보: 주인공의 노래, 대화하듯이 노래

· 듀엣, 앙상블, 합창: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

· 서곡, 간주곡, 전주곡: 오페라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기약곡

· 군무, 발레: 무용수의 춤


<오페라의 시간적 구성>


서곡 → 전주곡 → 1막 → 합창 → 레치타티보 → 아리아 → 군무 → 음악 → 2막 → 간주곡 → 3막 → 클라이막스 →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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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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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소설

문학동네

 

 

 

📚<새 이야기>

청둥오리가 인간을 좋아해 천일 동안 노동을 했다는 파의 이야기. 생뚱맞게 파와 오리라니.

진짜 새인 걸까. 오리의 미련을 담은 파. 새처럼 날아가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진아는 상상으로 남겼을까.

모르는 채로 있고 싶었다. 천희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그저 빠지는 것만으로 재밌었다. 나는 저런 사람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좋았다. 모르고 있고 모르는 와중인 것이. 하나를 알아도 그다음이 축적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아는 게 즐거웠다. 아니 모르는 일이 즐거웠다. 모르는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뱅글뱅글 돌며 어질어질하게 살고 싶었는데. 실제로 그 기간은 매우 짧았다. 강렬했기 때문에 길게 느껴졌다. P15

📚<나주에 대하여>

남자친구의 헤어진 전 여친이 회사에 나보다 어린 직원으로 입사한다. 규희가 죽고 흔적을 찾은 것이 전 여친 예나주. 그렇게 라도 규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이제는 세상에 없기에 규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주를 통해 더 알고 싶고 그러다 보니 나주에 대해 더 궁금해져하는데 어쩌면 나주가 알아버리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만큼 많은 정보를 흘려주었다. 어쩌자고 규희를 놓아주지 못하는지 ㅠㅠ

자기 공간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 오롯한 혼자를 내버려둬야 하고 스스로가 세운 원칙을 존중받아야 해서 섣불리 노크하거나 노크조차 않고 불쑥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며 절대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 P63

📚<꿈과 요리>

솔지는 활동적이었다. 수언은 솔지를 떠올리면 자기가 못가진 듯한 생각이 들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부러워하고 때로는 질투하며 지내는 동안 마음에 담겼던 게 폭발하고 대판 싸운다. 그냥 축하하면 될 일을 왜 말안했냐고 시비 거는 듯한 말투 하나로.

이후 서로는 멀어지지 않고 솔지의 요리는 연어덮밥을 할만큼 늘었고 수언은 자신의 꿈속에서 솔지와 여기저기 선명하지 않은 장소지만 함께 헤쳐가는데 그런 느낌도 좋다.

나는 친구와의 관계가 사실 제일 어려웠다. 친하다 생각해도 나는 늘 혼자 같았고 경쟁상대가 되는 것은 싫으면서 또 즐거운 일은 축하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들이 솔지와 수언의 사이에 있었다.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였다. P88



 

📚<근육의 모양>

재인과 필라테스 강사 은영의 이야기.

사람과의 이별 후 남은 흔적들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내 의지로 만드는 몸의 근육을 보면서 어쩌면 흔적도, 내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그렸다. (운동은 배신하지 않지요^^;)

어느 순간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해본 것’ 리스트를 적는 일만큼 재인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마음으로 모르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으므로. P128-129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P132-133



 

📚<척출기>

영은은 귀에 종양이 있어 제거하면 청력의 손실도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영은은 주현의 수술 고백을 듣고 좋아한다는 고백이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황에서 상대방을 받아들일 자리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 생각한다.

저 준비하던 거 그만뒀어요. 못하겠어요. 사실 진작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만뒀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젠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 미래가 좋을 거야…… 하고 나한테 내가 최면 거는 거. P166

그 사람의 인생울 바꿀지도 모르는데, 내가 책임져줄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만들지도 모르는데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하는 거 지쳤어요. 삐라 날리는 짓 같은 거 그만하고 싶어요. P179


 

우리는 서로 아플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뭘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구나. P180

📚<정체기>

전 애인을 잊지 못하는 영지. 청력이 떨어지고 자주 귀가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씨는 영지를 좋아하는 은주. 그런 은주를 좋아하는 나.

안정된 직업이라 모두가 말해도 내가 느끼지 못한다는 건 내가 잘못된 것인지. 이런 불안은 정상인 건지.

매번 처음 디딜 때처럼 낯설었고 늘 그렇듯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그제야 숙소와 근처 풍경이 익숙해졌지만 익숙하다는 감각만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P211

📚 <쉬운 마음>

레즈비언 고백에도 고개를 끄덕여주던 세선. 이성애자였던 수영을 떠올리게 만든 현정. 노멀피플인 이성애자는 결코 알 수 없는 마음.

변명 같지만 현정이 멀어 보였던 이유를 하나 덧붙여보자면, 그애가 누가 봐도, 당연히, 너무나 이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의 친구로 남는 일은 너무 쉬웠다. 마음껏 품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마음. 짝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내가 살면서 내내 해온 일이었다. P231

📚<침묵의 사자>

어릴 때 좋아해서 따라했지만 그 행동으로 친구들로 부터 거리가 멀어졌다. 실재하지 않는 사자가 눈에 보이며 자신을 데리러온 것은 아닐까 두렵다. 하지만 지은을 만나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눈에 보이던 사자가 이제는 기다려지고 반갑다. 사자는 어쩌면 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내가 아니었을까. 크고 강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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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공간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 오롯한 혼자를 내버려둬야 하고 스스로가 세운 원칙을 존중받아야 해서 섣불리 노크하거나 노크조차 않고 불쑥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며 절대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 - P63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였다. - P88

어느 순간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해본 것’ 리스트를 적는 일만큼 재인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마음으로 모르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으므로. - P128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 P132

저 준비하던 거 그만뒀어요. 못하겠어요. 사실 진작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만뒀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젠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 미래가 좋을 거야…… 하고 나한테 내가 최면 거는 거 - P166

그 사람의 인생울 바꿀지도 모르는데, 내가 책임져줄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만들지도 모르는데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하는 거 지쳤어요. 삐라 날리는 짓 같은 거 그만하고 싶어요. - P179

매번 처음 디딜 때처럼 낯설었고 늘 그렇듯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그제야 숙소와 근처 풍경이 익숙해졌지만 익숙하다는 감각만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P211

변명 같지만 현정이 멀어 보였던 이유를 하나 덧붙여보자면, 그애가 누가 봐도, 당연히, 너무나 이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의 친구로 남는 일은 너무 쉬웠다. 마음껏 품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마음. 짝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내가 살면서 내내 해온 일이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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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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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유홍준 지음 
창비 출판

교토의 가볼만한 곳, 맛집 같은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역사와 추천 장소에 가봐야 하는 이유를 강의를 듣는 것처럼 상세하게 알려주어서 마냥 여행 길라잡이로 분류하기에는 아깝다. 『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의 너무 자세한 내용을 교토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간략하게 핵심만 추려서 한권으로 나온 책이다. 교토 관광안내서에는 도시 중심의 낙중, 그 외곽은 낙동, 낙서, 낙담, 낙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시를 개조할 때 어소를 중심으로 토축을 쌓으면서 안쪽인 낙중과 바깥쪽인 낙외을 구분한데서 유래했다. 

1️⃣제 1부는 교토의 전사(前史)로 일본의 수도가 교토에 정착하기 이전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의 대표적인 사찰인 법륭사와 동대사가 실렸다. 아스카시대는 고구려 담징이 그린 벽화와 백제관음이라는 우아한 불상을 소개한다.  

일광보살, 월광보살 등의 예술품을 보고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기보다 예술품 자체로 감상하고 예술적 가치로만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무척 공감도 갔다. 교토 여행을 나선다는 것은 이미 비극적 역사, 불편하게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은 벗어나보자는 마음도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고도 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유산 동대사 금당에 안치된 대불을 보지 않는다면 경주에 가서 불국사를 안보고 가는 것이라며 꼭 보아야 한다고 적어두었다. 대불 제조는 백제 멸망시 이주해간 도래인의 공이 컸다고 하는데 사실 동대사는 사슴이 많아 사슴먹이를 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알고 가야 제대로 보는 것만은 확실하다!

2️⃣제 2부는 교토가 역사도시로 발전해가는 각 단계에서 조성된 명소를 소개했다. 
백제계 도래인 후손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노 장군이 창건한 청수사는 소리샘의 맑른 물이 흐르는 위치도 좋고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영험 때문에 인기가 많다. 이후 왕실 원당 사찰이 되면서 참배객들이 늘었고 본당 안의 28부중상은 사진으로 보아도 명작다운 모습이다. 

후시미 아니러 신사에는 입구 부터 화려한 설치미술 센본토리이가 있는데 붉은색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특이했다. 과거 전투에서 장수 이하 2천명이 활복자살을 해 물든 핏빛 나무를 양원원과 정전사의 천장 나무로 썼다는 것! 금적색의 상징을 조상의 위업이 서린 유적으로 보는 일본인의 정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뒤로하고 삼십삼간당의 천수관음상 1천분은 사진으로 보아도 멈칫하는데 실제 방문한다면 한참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을 듯하다. 화려함과 정밀성을 담은 권세의 상징을.

✔️일반적인 유명하다는 명소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흔적들이 담긴 유서들을 찾아 담았다는 게 많이 느껴져서 일본 역사 공부하는 느낌과 우리나라가 잃어버리고 놓치고 있던 숨은 역사들을 함께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3️⃣제 3부는 교토의 명소로 무로마치시대의 대표적 선종 사찰과 유명한 정원를 소개한다. 신라에서 보내준 것으로 전하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가장 오래된 사찰 광륭사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동에 청수사가 유명하다면 낙서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천룡사가 있었다. 이끼 정원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방사’, 일본 정원사의 조원지인 ‘방장 정원’, 천룡사 북문으로 나가면 보이는 일본 죽도의 90%를 만들어 낸다는 ‘사나노의 죽림‘까지 절로 다음 여행으로 산책하고 싶은 장소로 이미 마음 속으로는 찜했다.

🪨 스님의 수행공간인 고요하고, 정갈하고, 아름답고, 평범성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용안사의 석정‘은 마른 산수 정원이라고 했는데 물도, 나무도, 풀도 없이 돌로만으로 배치한 정원은 강렬한 인상이다. 이 정원을 보고 유홍준작가님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4’33’’ 곡을 예로 들었는데 사진과 곡이 너무 잘 어울려서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정원의 모습을 그 속에 담겨 있을 정신세계의 표현의 결과임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책 중에서 이 정원의 공간이 너무 좋았음🩶 침묵으로 정원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뒷모습 마저도..)

금각사는 환상이라 표현하며 교토에 와서 금각사를 보지 않았다면 다시 교토를 와야할 만큼 뜻을 담았다. 거울처럼 맑은 경호지에 3층 누각 건물이 물결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고 환상을 일이킨다고 했는데 작가님은 흩뿌리는 눈발 속 금빛을 발하는 당당함에 시각적 관능미라 표현하며 아름다움을 말했다.

✔️시대의  미술, 건축에 대해 설명도 상세하지만 이 책에서 돋보였던 것은 정원의 사진과 해석이었다. 일본인들은 정원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는데 역사의 사상에 따라 양식이 변화되고 새롭게 창출되며 일본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한국회화사를 전공하셔서인지 문화재 역사에 대하여만 알리지 않는다. 남선사의 ‘어제비장전’ 목판화는 몽골 침입 때 불타 없어지고 인출되어 일부만 소장되어있다고 했는데 고려시대 일반 회화도 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이라며 미술사 전공자들에게 이 기억을 환기해주고 싶다 하셨다. 
책의 마지막에는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왔던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자취도 담고 있다. 도쿄여행은 일본의 역사뿐만 아니라 근대지성사의 일본과 한국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해서 도쿄에 여행을 다시 가게된다면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에 대해 나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여행지인 교토는 간략하다고 적은 이 책에서만도 너무 많은 유적지와 문화유산이 나온다. 교토 여행계획이 있다면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이 책은 꼭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욕심내서 여러군데를 대충보는 여행보다 한두 곳만 가도 진정한 도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더 좋다 생각한다. 미술관도 도슨트 깊이감 있는 해설을 한 작품을 보기 위해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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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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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음악과 함께 떠오른 사람들. 상실과 고통의 경험. 갑자기 떠난 사람들로 텅 빈자리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 내야하는 외로움이 느껴진 소설들이었다. (하루키 작가의 변태스러움이 중간 중간 나오지만 순수한 인간의 욕망을 담은 것이라 생각하며 읽어봅니다^^;; ) 모든 화자는 남자라서 그런지 고독, 술과 여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들에 대해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도 보였고,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긴장감으로 버티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교양적이다. 반면에 난잡한 여자관계들로 인해 벌을 받는 듯 본인들이 걷어차이거나 버림받는 걸로 불행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소설 속 인물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 팝, 재즈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다. 교양적이다.

연극배우인 가후쿠씨는 여자 운전사 마사키를 고용한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이 뭔가의 불안도 아닌 편안도 아닌 신경쓰인다는 사람이 말이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왜 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자 아내의 남자와 친구가 되어보기도 한다. 결국엔 뭐든 다 이해 안되는 일 투성이지만.

(뭉그적, 헤싱헤싱 적확했다는 표현들이 좋았던 소설)

 

가후쿠는 프로 배우였다.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타인을 연기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연기했다. 관객이 없는 연기를. P28

 

 

📚 <예스터데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르던 기타루를 기억해서 쓴 글이다.

기타루는 덴엔초후에서 태어나 내내 거기서 자랐지만 간사이 사투리를 외국어 배우듯 악센트까지 외워 습득했다. 야구 커뮤니티에 잘 어울리기 위해서.. 참 이런 특이한 인물들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하고) 재미있는 건 화자도 나와 같은 시점으로 소설 속 인물을 독특하게 바라본다는 것.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 듯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한신 타이거스 광팬이라서 도쿄에서 한신시합이 있으면 꼭 보러 갔는데, 세로줄무늬 한신 유니폼 입고 외야 응원석에 가봤자 도쿄 말을 써버리면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더라고.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이거 간사이 사투리를 배워야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야말로 피눈물 나게 고생해가면서 공부했지." P66

 

아무튼 전부 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간사이 사투리를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 것이란,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또한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열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69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P112



 

📚 <독립기관>

 

의사인 도카이는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는 부류의 사람’ 이라고 시작하는데, 이런 굴곡은 사실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과 충족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여러 여자들과 만남을 갖거나 나름 만족하다고 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몸만 남는다는 상상도하며 사는 인물은 남에게 보이는 삶을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든다. 이 모든 것이 상사병으로 인한 것이고, 어이없는 죽음이지만 화자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며 편협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말한다. 여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기관이 그렇게 했다며 옹호하지만 이미 읽고 있는 여자 독자인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흠흠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P142



 

📚 <셰에라자드>

 

하바라는 셰에라자드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에 대해 기록한다. 그 여자는 칠성장어였다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자신이 물고기였다는 건 왜 인지 아직도 이해는 안된다ㅠㅠ)와 십대 때 빈집털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좋아했던 같은 반 남학생의 집에서 연필을 훔치고 자신의 탐폰을 두고 오고, 다음번엔 남학생의 축구공 배지를 가져오고 자신의 머리카락 세 올을 책 속에 끼워둔다. 특이한 여자이지만 하바라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언젠가 끝이 날 것을 아는 관계이지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은 서로에게 친밀한 시간이라는 것을 하바라는 안다.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그게 나의 ‘빈집털이 시대’ 이야기야. P21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P214

 

📚<기노>

 

아내의 외도로 ‘기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을 운영하게 된다.

의문의 가미타 손님은 늘 혼자 오고 책을 읽는다. 뱀이 나타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기노의 이야기부터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마주하고 거쳐야할 고통을 피하기만 했던 과거에서 아직도 기노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P265

 

📚<사랑하는 잠자>

 

눈을 떠보니 자신은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해 있다. 어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의 자물쇠를 수리하러 온 꼽추의 몸인 수리공 여자를 보고 성적 욕망을 느낀다. 밖은 전쟁통처럼 사람도 없고 검문과 탱크, 외국병사가 가득하니 조심하라고 말하며.. 이 잠자라는 사람은 전쟁 중에 정신줄을 놓은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인지. 어려운 소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P308

 

📚<여자 없는 남자>

 

사귄 여자 3명이 죽고, 죽은 여자의 남편은 나를 어떻게 알고 그녀의 부고를 전했는지 궁금하다. 소식을 전하는 남편은 말과 말 사이에 스페이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본인도 그 소식에 표현을 멈춰버린 침묵 상태다.

열네 살 때 만난 엠. 이름 없는 세 번째 여자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 했고, 잃어버린 여자를 남편과 그 여자와 얽혔던 남자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ㅡ십억 년은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리라ㅡ빼앗겨버리는 것. 저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 지와 무지 사이 임의의 중간지점에서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하며 메마른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는 것. P327-328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P332

 

#여자없는남자들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북클럽문학동네 #앰버서더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 #가을독서 #외로운소설 #가을에어울리는소설 #책스타그램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 P112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 P14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 P214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 P265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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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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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일인칭 단수』의 단편은 총 8편으로 엉뚱하고, 오래전의 기억들을, 꺼내본 적 없는 감정들을 만난 것 같았다. 요즘 말하는 T보다 F가 가득한 소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 봉태규 배우, 고선향 편집자와 함께한 zoom북토크!

(봉태규 배우님을 게스트로 초대하다니요~♥)

배우님이 인물들이 책에서 튀어나온 듯 재밌게 설명하는데 기억나는 건 소설 속 찌질남(들)과 불벼락 단어만 기억에 남습니다 ㅎㅎ 스몰토크처럼 웃고 떠들다 끝난 줌토크지만 하루키의 팬들이 모여 수다스럽게 인사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봉태규 배우의 추천 책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과 김승옥 <무진기행>입니다.

 

 

 

📚<돌베개에>


우연히 동침한 사람과의 인연. 그래서인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이지만 말은 가집(일본 고유의 시가)으로 남았다. 사람은 죽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이 있는 한 그녀도 글 속에 존재하는 것.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P24

 


📚<크림>

 

약속한 장소에 아무 것도 없어 거짓말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존재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노인의 말까지 더해져 특별한 원이 뭔지, 하찮고 시시한 것이 뭔지, 특별한 크림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주인공. 진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엉뚱하고 수수께끼 같은 소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P44-45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뉴욕 시내에서 자신이 쓴 글의 음반이 있다! 레코드는 35달러라서 사지 않고 나왔는데 다음 날 가보니 그런 음반은 없더라는 거다. 어느 날 꿈에서는 버드가 나와 찰리 파커의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제공해주어 고맙다고 한다. 내가 쓴 소설의 인물이 꿈에 나오기도 하고 음반을 실제로 보기라도 한다면,, 상상력 풍부한 하루키 작가님 ㅋㅋ 역시 엉뚱하다.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P61

 


📚<위드 더 비틀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소년같다. 남자에게도 소년스럽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

고등학교 때 비틀스 음반을 들고 있던 소녀에게서는 ‘종’이 울렸다. 대신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평균에 속하는 여자친구가 새로 생겼는데 종이 울리지 않아 헤어지자 말했던 여자친구다. 약속날짜를 잘못알아서 여자친구 오빠와 둘이 집에 있게 되고 책을 낭독해주게 되는데 그 상황이 몹시 코믹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왜 하루키 작가는 열여섯 살 소녀를 소설에 자주 등장시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종이 울렸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몹시 궁금^^;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P76-77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처럼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더니, 귓속에서 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십초 내지 십오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자 이미 끝나버린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고등학교 건물의 어둑한 복도, 아름다운 소녀, 흔들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 P77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P79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P87

 

그것은 무언가를ㅡ우리가 살아간다는 행위에 포함된 의미 비슷한 것을ㅡ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연에 의해 어쩌다 실현된 단순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두 사람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없었다. P120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야구를 좋아하고 삼백부를 쓴 책이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 이야기.

하루키 작가 자신의 에세이 같은 글

 


📚<사육제>

 

추한 얼굴 아래 다른 가면이 있을 것 같은 F* 여자친구와 사육제에 대해 음악을 공유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런 추억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혔다가 우연히 음악을 들을 땐 내 마음으로 찾아와 지금을 흔든다. 음악에 대한 추억을 못생긴 여자에 비유하는 하루키 작가..정말 매력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P158

 

그 가면의 미추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P172

 

그리고 그 뒤에 헤어지면서 받은 그녀의 전화번호 쪽지를,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P181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우연히 들어간 쓰러져가는 료칸에서 말하는 원숭이를 만난다.(하루키 작가의 상상력이란 ㅎㅎ)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름을 훔친다는 원숭이는 왠지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다. 내가 경험했던 기이했던 일에 대해 나 혼자만 알아야 할 때가 있는데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유조차 설명하기 힘들 수 있다는 그 느낌을 잘 표현된 소설.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P208

 


📚<일인칭 단수>

 

그녀는 기억 없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건지. 양복입고 바에 앉은 내 복장을 지적한다.

그녀도, 나도 상대방보다 내 기준이다. 감정의 이기심. 나를 방어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방어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거나 무례함에 대한 화를 내는 것도 모두 차단시킨듯하다. 유미의 세포들에 나온 감정캐릭터들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감정 공격을 받았을 때 혼란스러움과 난처함 캐릭터 둘만 공격을 상대못하고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상상됐다.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P232


 

#일인칭단수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추천도서 #가을독서 #앰배서더 #앰배서더3기 #서평 #내돈내산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 P24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 P44

학창 시절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뒤로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분주해졌고, 어차피 그 가상의 음악 평론은 젊은 날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조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십오 년 후, 그 글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치 허공에 던져놓고 잊어버렸던 부메랑이 예상도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듯이 - P61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 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 P79

다시 말해 그녀의 추한 외모는 갖가지 추함의 요소가 어떤 엄숙한 규칙하에 한데 불려와서 특별한 압축력으로 결정화한 결과였다 - P158

어쨌든 지독히 불쾌한 어떤 감촉이 입안에 남았다. 삼키려 해도 삼킬 수 없고, 뱉어려 해도 뱉을 수 없는 무언가다. 할 수 있다면 그냥 화를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터무니 없는, 불쾌한 일을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한 그녀의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는 제법 기분좋고 평화로운 봄날의 저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의 파도가 그 외의 감정 혹은 논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떠내려보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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