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던 책이었다. 빌려주기도 많이 했고, 선물도 많이 했다.

내가 범접하기 힘든 사람들. 치열하게 살다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울기도 많이 울고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연인이 준 손수건을 찾아 온 산을 헤매이던 남아메리카의 혁명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민중을 위해 살겠다는 그 혁명가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디서 우연히 저 책 제목을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처음 봤던게 아마 2학년때였지. 작가는 김재희.

그 뒤로 새벽별이 뜨면 푸른 강이 보인다라는 책도 나왔는데.

지금은 뭐하고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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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 한겨레 옛이야기 14
최성수 지음, 윤정주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이야기를 보거나 이야기 책에서 이무기 이야기를 보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한 이의 조급함으로 인해 사람이 못되고 용이 못된 여우와 구렁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고작 하루를 참지 못한 인간에 대한 원망은 여우가 그 인간과 어머니에게 온 정성을 다하고 그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커진다.

기존의 이야기들 때문일까 나는 가난한 선비가 당연히 밥을 뿌릴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밥을 씹어 삼키는 선비의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구렁이라는 것을 알았고(그것도 신령님 비슷하게 보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용이 되기 위해 선비와 그 가족들을 잡아먹을 거란 이야기를 들은 상태에서 나와 가족에게 고맙게 해 준 구렁이 여인이 나를 잡아먹고 용이 되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 말하는 선비는 구미호네 신랑과 비교되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람이다.

권선징악이라는 통쾌한 결말이 보장된다는 옛이야기에서도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는 동물들이 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인간계와 동물계의 넘을 수 없는 구분 때문인지 그야말로 전설의 동물은 전설, 신화 속에만 존재해야 하는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에는 다섯 편의 옛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도령과 호랑이 아가씨 이야기는 많이 본 이야기인데 구렁이가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들이다. 특히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다(생각만 해도 속이 안좋다).

옛이야기의 상상력을 떨어뜨리고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개별의 의미를 빼앗는다는 삽화지만 차본한 톤의 색깔과 민화를 떠올리는 그림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다만 너무 친절하게 그려줘서 상상을 빼앗는 그림들이 몇 있었다.

'고마워요! 나무도령'에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간절한 소원을 상징하는 것은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힘든 농사일을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볼 수 있다. 또 인물의 특징이 극단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고마움을 모르고 또 동물에게 함부로 하는 소년이지만 농사일만큼은 꾀부리지 않고(팥쥐처럼 편법을 쓰지도 않고) 얼마나 열심히 몸으로 하는가. 비록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하지만 주의를 배려하지 않는 성실함을 경계하는 우리 조상들과 지은이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가난한 선비와 구렁이 여인'에서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일하지 않고 책만 읽는 선비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리고 선비의 착한 성품을 묘사하면서 "아무리 마음이 바른들 무얼하겠어요?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한 살림이었으니"라는 표현을 보면서 요즘의 여러 사건들이 떠올라 다시 한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옛이야기가 아이들의 무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보여줘서 옛이야기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불평등함을 다른 사람이 가해하는 것으로 풀어내지 않도록. 가난한 아이들도 세상을 희망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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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이과 출신들은 무식하다' '교수회의를 하면 자연대, 공대 교수들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더라 등등등
그런데 요즈음에는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는 자연계 학자들이 눈에 띈다. 박상진, 최재천,전영우, 이유미, 차윤정, 정재승 등 자기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자연과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물리, 생물, 나무, 풀 이야기를 쉽게 하고 있다. 전문성에 글 솜씨까지 아이고 부러워라.

우리는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피, 기타 다른 특집 방송들에서 동물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식물의 한 생을 다룬 이야기는 동물들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차윤정(공저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거의 혼자 쓴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은 신갈나무 투쟁기를 통해 신갈나무의 한 생과 그와 더불어 사는 식물 이야기, 숲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머리에서는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확한 이름 불러주기를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배고픔을 덜어주는 식물들에 참꽃, 참나물, 참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참꽃, 참나물에 비해 참나무는 한가지 종의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류의 여러 나무들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를 가리킨다. 이들 중에서도 숲의 주인으로 당당히 자리하는 참나무류의 대표적인 나무 신갈나무의 치열한 일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무의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신갈나무의 입장에 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신갈 나무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는 일대기를 소설처럼 쓰고 있다. 원래 이 책의 원고는 여느 과학책과 다르지 않았으나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지은이의 뜻을 전하고 싶어했던 편집자가 전기형식을 빌린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 써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편집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생생한 신갈나무의 투쟁기를 그려냈다.

우리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있다는 것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식물국회(식물처럼만 일을 해봐라)라는 치명적인 말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치열하게 투쟁하는가.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날라가기도 하고 무엇엔가 달라붙어 가기도 하고 맛있는 과육을 제공하기도 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한다.
나무가 죽어서 남기는 나이테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록하는가. 일제침략기에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 자생식물들의 학명에 나까이라는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많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고 느꼈던 분노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비대해진 꽃송이를 자랑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장미에 대한 격한 이야기와 제철과일, 채소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고 단일품종 재배에 대한 위험도 경고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기근과 이디오피아의 기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일품종의 재배는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신갈나무이다. 그러나 신갈나무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숲에 사는 여러 식물들 또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신갈나무가 생을 다하고 죽어도 신갈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주인공들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숲은 결코 고즈넉한 쉼터가 아니라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숲에 다가서기 위해서 나무에게 말 걸기를 시작할 때 이 책을 읽고 식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한다면 숲과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면 보이지 않았던 조그만 꽃들도 우리 눈에 보일 것이고 절대 구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무들도 구별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무 구별에는 많이 서툴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꽃으로만 구별을 했던 나도 지금은 잎도 한두장씩 따서 만져 보기도 하고 수피도 만져보면서 느끼기 위해 노력하니 그만큼 더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 식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부분과 사진이 있어 전문용어나 이름과 실제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자생식물원이 있다. 어느 날 그곳을 관리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자생식물에 대한 애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종 수도 많지 않고 작게만 보이지만 그런 분들의 노력으로 자생식물이 곳곳에서 자라게 될 거라고 희망한다. 그리고 행정책임자들의 무지로 전혀 환경에 맞지 않는 수종의 나무들이 가로수로 선택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 분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전문인력이 제 곳에 배치되어 그런 만행은 더 이상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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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바람 2005-02-1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숲에 대해, 식물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은데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제목이 특이해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면서 계속 안 읽고 있거든요.... 참, 오늘 제가 즐겨찾는 서재를 쭉~ 보다가 로자님 서재의 '빨간머리 앤' 사진이 눈에 띄어 들어와 봤습니다^^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 디즈니 문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교육적 대안
헨리 지루 지음, 성기완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미키, 미니, 플루토, 도날드 덕과 그의 조카들 휴이, 루이, 듀이. 어린 시절 즐겨봤던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이다.  지금처럼 만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고 만화 하는 시간도 하루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디즈니 만화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일요일 아침 디즈니 명작 만화는 하이디, 코난 등의 일본만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공주가 나오는 만화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그림이 서구의 미인형 그림들이었기 때문에 예쁘다는 생각을 갖고 봤던 같다.
그런 만화를 즐겨보면서 디즈니 월드는 꼭 가보고 싶은 이상향--학생대백과에서 본 디즈니랜드의 코끼리(덤보) 놀이기구 타는 사진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이 되고 디즈니월드가 있는 미국은 세계 최고의 나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나라로, 그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함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자랐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만화영화, 책은 그저 단순한 만화 한편, 책 한 권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다 자신들의 의도를 마음먹고 풀어 논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헨리 지루는 순수함을 가장한 디즈니의 진짜 모습은 탐욕스러운 기업의 모습이라고 한다.                       
아이들 책을 보게 되면서 애니메이션 동화의 문제점과 더불어 디즈니 동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편 동화의 축약, 다른 해석, 다른 결말, 정형화 된 주인공, 현란한 색의 그림까지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우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동화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한다. 책의 정지화면은 그림이 빛을 흡수하고 채도의 변화 없는 원색만을 보여주지만 만화영화는 구성, 전개 방식도 뛰어나고 화면 또한 아름답다고. 그래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니모를 찾아서>를 보여주고 캐릭터 장난감을 사준다.

영화 보여주기를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기에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 가치관 이런 것들은 너무 강하다. 그래서 다른 진보적 문화비평가들처럼 헨리 지루는 경고한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담겨진 인종차별, 여성의 수동적 역할, 아동에 대한 상업화, 더 나아가 보수적인 세계관을 심으려 하는 의도에 대해서 말이다.

디즈니 만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던 것이 미녀와 야수(1990년)였다. 감미로운 음악과 숲 속의 나뭇잎 하나 하나가 흔들거리는 멋진 장면들은 디즈니의 기술에 감탄하기에 충분했고 씩씩하고 자기주장 강한 벨이 너무 예뻐서 LP까지 샀던 기억이 있다. 그냥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던 영화 속에 그런 의도가 숨겨져 있다니... 가려 볼 줄 아는 안목과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드림웍스는 슈렉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디즈니 영화나 캐릭터 상품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다. 그들이 지향 하는건 백인 중산층들의 쉼 없이 소비하는 윤택한 생활이라고 하지만 그 캐릭터들은 너무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미국에서는 디즈니 만화 벽화를 그린 유치원을 디즈니가 고소해 못 그리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디즈니는 너무너무 흔하다. 특히나 길거리에서 파는 옷을 보자. 디즈니 캐릭터들이 판을 친다.  그렇게 싼 맛에 사 입힌 아이 옷의 그림을 아이들은 보고자라고 그러면서 친근감을 느끼고 디즈니가 주고자 하는 그런 가치관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너무 큰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를 보면 나와 백인 미군병사를 동일시하면서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을 한편 두 편 보다보면 전쟁으로 가장 고통받는 베트남 사람의 시선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고 외관은 많이 달라 보이는 영화들도 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정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 만든 영화에서조차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인에 의해 철저하게 타자화 되어있고 그들은 거의가 있으나마나한 존재들이다.
굿모닝 베트남이 디즈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 영화를 봤을 때도 알고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에 취해 베트남전쟁을 비판하는 영화라고 재미있게 봤는데 지루의 구체적인 분석을 보니 역시나 뭔가를 가장한 오락영화였던 것이다.

지루는 공교육 붕괴와 모든 공공부문의 약화를 경고한다. 공공의 것이 약화되었을 때 그 피해는 소수민종, 하위계층 만이 받는 것은 아니다. 소비행위가 주는 쾌락과 도피적 오락과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사회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경계한 것이다. 지루는 기업 귀족 디즈니에 대항하기 위해 학부모, 교육가, 문화활동가, 일반인들의 강력한 연대와 비상업적이고 비영리적인 공공영역 확대를 위한 다각적 활동과 독립 미디어가 상업적인 영역을 벗어나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디즈니가 주는 메시지를 비판 할 수 있고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 습득을 위해 비상업적인 공공영역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디즈니는 공공부문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지향점은 백인 충산층 가정이다. 디즈니의 모든 전략은 백인 중산층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게 하고 더 나아가 사회성원들의 가치관까지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중산층은 더욱 더 보수가 된다. 자신들의 것은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고 소수민종, 하위계층을 사회악으로 여기고 공화당에 투표를 한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와 공화당 조지 부시는 닮지 않았는가?

지루는 비판적 의식을 가르치는 공공영역을 창조하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공공영역과 연관된 민주적인 미디어 체계를 창조하기 위한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디즈니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자고 한다.
<디즈니의 순수함과 거짓말>은 긍정적으로만 보기 쉬운 산학연대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자본주의 이념을 민주주의의 이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탐욕스런 기업들의 숨겨진 본심을 날카롭게 지적해내고 있다. 지루가 강조하는 연대의 중요성, 공개적인 토론, 비판능력을 길러내는 충분한 학습, 공공영역의 강화와 확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디즈니가 제 3세계나 우리나라에서는--신식민지건 반식민지건 종속된 어떤 형태건--문화제국주의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식대로 디즈니를 해석하고 대안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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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먹고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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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은 한국글쓰기연구회 선생님들이 6개 중학교에서 지도한 중학생들

글 가운데 34명의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나에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나에게 책 속의 중학생들은

감동을 준다. 우리는 학교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시나 글짓기를 좋은 글쓰기라 배웠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미리 겁먹고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자신없어 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이들 문집이나 한겨레에 실리는 초등학생들의 시를 보면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게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는 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밝은 세상의

모습, 풍요와 희망이 넘치는 세상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몽실언니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그 시절에나 있을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글을 보자. 주로 강원도의 소도시, 인천 부평 등지의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꿋꿋이 이겨내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누구나  '뒤돌아 생각하면 꿈 많던 그 시절'이라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꿈만 많았던가? 아픔은 없었던가? 그 아픔을 표현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호철선생님의 <학대받는 아이들>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감정, 아픔을 어떤 방법

으로든 표현하고 드러내야 그 상처는 치유되고 이겨낼 수 있다고.

교통사고를 내놓고도 아이에게 넘어졌다고 말하라는 학원 버스 운전자 아저씨, 자기 할 일은

자기 스스로 하라고 늘 말하면서 교무실 청소에 자기들이 먹은 컵까지 씻으라고 하는 선생님의

모습, 잘 차려입고 놀러와서 쓰레기만 잔뜩 버리는 관광객들, 약한 친구를 놀리고 때리는 아이들,

맞는 친구가 안타깝지만 보복이 무서워 그냥 지켜보다 힘내라는 말 밖에 해줄수 없는 보통의

아이들.

 "다큐멘타리 동물의 왕국을 찍나? 힘이면 다 살아남는 그런 세상이야? 아니, 우리사회도

힘이면 다인 그런 사회 같다. 정치가, 조직폭력배, 돈만 가지고 다 되는 세상. 모범을

보일 것은 어른들이다. 허구헌날 텔레비젼에서는 비리와 폭력배들 얘기만 나오는데 아이들이

뭘보고 배우겠나?"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끄러운 어른들의 모습과 아이들이 살아가는 학교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약하지 않다. 건강한 정신과 강한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

"이 학생들의 글에서 내가 가장 크게 감동한 것은 온갖 험난한 가시밭 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아이들이 어른들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거나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거나 할터인데. 그런 역경을 놀랄만큼 참고 이겨내면서 꿋꿋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눈물 겨운 일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 겨레의 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를 어떤 길로 가게 해야 하는가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도 읽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읽어야 한다.

끝으로 나는 장정호의 글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키 작은 형은 장가는 갔는지?   

정호는 지금 어떻게 자랐는지?  정말 궁금하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조금 덜 힘들어 하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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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쓰려다가 로그인하고 그 사이에 코멘트 쓰려고 했던 걸 까먹고...
이 책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아이들이 직접 쓴 글들 알고보면 참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