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간달프 > [박노자] '왕따', 획일을 강요하는 자본의 몬스터

'왕따' 획일을 강요하는 자본의 몬스터
인권 특강은 국가인권위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실시하는 특강으로, 박 교수의 강의는 지난 7월 6일 진행됐다. 박노자 교수는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를 맡고 있으며,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의 저서를 낸 바 있다.

정리: 월간 <인권> 편집부

▲ 강의하는 박노자 교수
ⓒ2004 인권위 김윤섭
먼저 제가 왜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라는 주제를 택했는가에 대한 ‘변명’의 성격이 짙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소련이 망할 때까지 소련 사회의 가장 큰 인권 문제로 생각한 것이 이른바 양심수였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체제가 망하고 나서, 옐친 체제로 접어든 후 체첸 독립운동 투사를 잡아 둔 것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양심수는 거의 없어지게 된 겁니다.

러시아 사회의 일상적 인권 유린

그런데도 시민들이 몸으로 겪는 인권 상황은 대단히 악화되었습니다. 사회가 빈곤해지는 과정에서 과거의 중산층 대부분이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인간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즉, 연금 생활자들이 연금으로는 연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에 있던 책이나 잡동사니를 지하철역에서 파는 그런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현재 러시아의 상황입니다.

노점상들은 경찰한테도 괴롭힘을 당하고, 뒷골목 깡패들에게도 갈취를 당합니다. 자릿세를 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기업 입사 과정에서는 여성이 입사를 원하는 경우, 이른바 성상납은 불문율입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취업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상납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언론에서 이를 다룰 때는 일종의 낭만적인 에피소드로 거론하지 인권 침해 문제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사회가 폭력화되면서 가장 나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중산층 가정의 아동과 청소년들입니다. 집단싸움이 일반화되었고, 빈민 거주지역의 공교육 기관들은 집단싸움과 마약밀매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에도 국가적 인권 보호 기관이 존재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을 갖지 않고 실제로는 사회의 극단적인 폭력화를 방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가에 의한 인권 탄압을 지적해도, 국가의 경제실책이나 언론의 오도(誤導)로 인해 황폐화된 사회의 인권 유린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국제 인권단체들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대단히 아쉽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일반인에 의한 인권 유린의 한 형태를 말씀드리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란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길어진 변명이지만 이제 조금씩 본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한국에서 집단 따돌림을 다루는 석·박사 논문들이 꽤 있는데, 대개는 집단 따돌림 현상을 개인적인 문제로 다루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경향이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문제를 더욱 더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갖고 있습니다.

1998년에 교육개발연구원에서 학생들에게 집단 따돌림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7%가 “튀는 행동을 해서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얘기입니까. 똑똑한 척한다, 남보다 아는 척한다 등을 지목한 것 같은데, 남과 다르게 행동한다면 집단 따돌림당하기 쉽다는 얘기입니다. 최근엔 직장인들의 집단 따돌림 현상에 대한 여론조사도 있었는데, 역시 튀는 행동이 집단 따돌림의 한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집단 따돌림당하는 이유가 이와 같다면, 집단 따돌림은 사회문제라는 견해를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의 집단 문화를 문제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의 집단 문화는 남과 다른 행동, 남과 다른 외모까지도 포용하지 않습니다. 집단 차원에서 상처를 주는 폭력이라는 것이 군사주의적인 집단 문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 한국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근대 지상주의적 집단 통합의식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근대 지상주의란 ‘서구 표준’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불인정, 괄시를 말합니다.

한국 사회, ‘서구 표준’과 다른 것을 불인정

예를 들면 한국 직장인 가운데 턱수염이나 콧수염을 기르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면도 문화가 생긴 개화기 초에는 면도를 한 사람은 근대적인 문명인이었고 수염을 기르는 사람을 전근대적인 야만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지금도 수염을 기른다는 게 너무 ‘튀는 행동’이라고 취급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비교적 자율적이라는 교수집단에서도, 한복을 입거나 수염 기른 사람을 이상하게 대한다는 것이 제가 감지한 분위기였습니다.

결국 ‘다름’에 대한 근대 지상주의적인, 군사주의적인 불인정 등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반영돼 집단 따돌림 현상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한국은 그렇다 치고, 군사주의·집단주의가 만연되지 않은 유럽에서 집단 따돌림은 어떤 요인으로 발생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집단 따돌림은 가장 잘 알려진 사회문제 중 하나입니다. 유럽 역시 한국과 같은 정도로 집단 따돌림이 만연되었고, 구타 등은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 사람이 40%에 이르고, 피해를 많이 보는 학생들이 거의 20%에 달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 폭력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 학교입니다. 학교에 이른바 모빙(mobbing) 문화라는 게 있는데 모빙은 원래 무리로 하는 악행으로 지금은 주로 왕따 현상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불링(bullying)인데 이는 학교 안에서의 이른바 왕따 현상, 특히 집단구타와 같은 형태를 지칭합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 집단 따돌림이 시작되는 곳은 유치원입니다. 대개 15~25%가 상습 피해자로 나오고, 20~25%의 학생들이 상습적인 가해자로 나타납니다. 유치원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무척 가혹해졌고, 이때 고립된 아이들은 심각한 성장 장해를 갖게 돼 문제가 큽니다.

특히 중학교에서는 피해 형태들이 고약하고 악질적이며, 한국보다 구타의 비율이 약간 높습니다. 한국은 주로 학생을 고립시키는 방식인데, 스칸디나비아는 인격 모독이 주를 이뤄 침 뱉기, 분비물 가방에 넣기, 이름 대신 좋지 않은 별명 부르기 등입니다. 이로 인해 학교마다 1년에 적어도 거의 한두 명씩 전학을 갑니다.

따돌림 방지는 ‘국가적 과업’

▲ 박노자 교수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2004 인권위 김윤섭
조사 결과 스칸디나비아의 집단 따돌림은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납세자의 납세액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으로 공개됩니다.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 납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사민주의 국가는 세금 징수에 완전히 의존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동네 학교에서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인터넷에 접속해 학부모들의 납세액이 얼마인지를 조사해, 납세액이 가장 적은 10%의 부모 아이들을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 집단 따돌림을 예방·근절하기 위해서 노르웨이 등의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국가·지자체·개별 학교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따돌림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해당 학교의 교장 및 담임들에게 묻는 등 따돌림 방지를 의무화시키고 폭력방지요원(대개 대체복무를 하는 병역 거부자들)을 학교마다 상주시켜 가해자·피해자들의 상담, 갈등 조절 등을 하게 합니다.

교육부 당국자들이 관련 연구자와 협력하여 따돌림 현황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를 벌이고 피해가 가장 심각한 학교에서 특수 프로그램을 운영케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따돌림 근절에 실적이 가장 우수한 학교를 국무총리가 직접 방문해 그 성과를 축하하는 등 따돌림 방지는 ‘국가적 과업’의 위상을 가집니다.

중앙·지역 일간지에서 피해자의 편지들을 공개하여 그들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가해자 및 그 부모들의 양심에 호소하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일간지들이 따돌림 근절의 당위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 피해 사례가 있으면 꼭 편지로 써 달라고 공고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는 따돌림 방지 차원에서 역극극(role-play)을 진행해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일단이라도 ‘놀이’를 통해서 맛보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학교들이 따돌림 방지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피해자·가해자의 고백을 인터넷으로 공개합니다.

피해자의 솔직한 심정이 만인에게 알려지면 그 피해자를 보는 가해자의 눈은 달라지게 돼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국의 관련 기관들도 참고해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부모들

그러나 이와 같은 전 사회적인 노력과 일련의 국지적 성공들에도 불구하고, 따돌림이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 건수가 증가하고 그 수법들이 더 악질적이 되고 있습니다. 즉, 각종 방지 프로그램들이 그 확산을 어느 정도 견제하는지 모르지만 병근(病根) 제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집단 따돌림을 유발시키는 사회·문화적 심층적 요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없다는 것이 원인인 듯합니다.

예컨대 많은 학생들이 저지르는 가해 행각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 가정에서 느끼는 소외감, 부모의 무관심 등으로 밝혀져 있는데, ‘일중독’과 ‘소비중독’에 빠져 아이를 ‘2순위’로 인식하는 상당수 부모들의 사유 형태는, 생산·소비를 물신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혁되지 않는 한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가혹 행위의 당위성을 가르쳐 주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매일같이 보는 싸움·죽임의 장면인데, 역시 이윤 추구적 대중문화는 폭력이라는 ‘눈요기’의 주된 요소를 폐기 처분할 것 같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두 살 된 아이들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텔레비전으로 보는 만화에서마저도 추격·충돌·격투 등의 이미지들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폭력을 당연지사로 여기게 되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현실’과 ‘연출’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연출된 영상물에서 본 폭력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본받으려 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입증한 결과인데,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대중문화 생산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신문에서 텔레비전까지 모든 매체들이 늘 주목해 부각시키는 것은 프로 스포츠나 연예계 소식 등인데, 의식·무의식적으로 남학생들이 강인하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들을, 여학생들이 요즘 시쳇말로 ‘몸짱’·‘얼짱’으로 인식되는 연예계 스타들을 인간의 ‘표준 모델’로 각각 삼게 돼 있습니다.

그 ‘표준 모델’의 틀에 맞지 않은 - 즉, 허약해 보이거나 사교 능력이 없어 보이거나 너무 ‘빈티’ 나거나 ‘외모에 문제가 있는’ - 남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왕따 후보’가 되고 맙니다.

‘자유’를 표방하는 자본주의는 놀라울 정도의 일상적 사고의 획일화를 가져다 주는데, 그 획일적인 규범에 맞지 않은 자는 곧잘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게 됩니다. 인권 이상(理想)에 완전히 상반되는 현실이지요.

그러나 이윤 추구적 시스템이 이 지구를 계속 괴롭히는 이상 이 시스템이 고쳐질 것 같지도 않고 인권의 이념이 제대로 실현될 것 같지 않습니다. 결국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은 바로 반(反)자본주의적 투쟁과 둘이 아닌 하나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긴 시간 동안 부족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노자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8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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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세계 최초의 레인지파인더식 디지털 카메라 RD-1


 

 

 

 

 

 

 

 

 

 

 

나는 아직 디지털 카메라가 없다.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성과 점차 향상되는 성능에 감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몇 가지 이유, 가령 돈이 없다거나 기타등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생각처럼 내 몸에 착착 붙는 느낌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필름 카메라보다 디지털 카메라가 화질이 훨씬 떨어지네 어쩌네 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카메라로는 크게 확대해보지 않는 한 그다지 차이를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디지털 카메라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아직까지 필름 카메라에 보다 더 매력을 느낀다. 걔중에는 EOS나 니콘의 F시리즈 같이 전자식 카메라조차 거들떠 보지 않는 수동 카메라 매니아들도 있다. 만약 이것을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디지털 카메라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전자동분사방식의 엔진을 갖춘 오토매틱 자동차라면, 전자식 카메라는 그보다는 덜 첨단(디지털이 아니라는 점에서)일지는 기술적으로는 역시 놀라운 성능의 오토매틱 자동차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경주용 자동차들은 여전히 수동 기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수동기어변속의 치고 나가는 힘이나 운전자의 의지대로 작동한다는 그 느낌은 아무리 편리한 오토매틱 자동변속 장치를 장착한 신형 자동차라도 따라가기 힘든 매력을 준다. 클러치를 깊게 밟고, 수동기어를 조작한 뒤 엑셀레이터를 힘주어 밟는 순간 가속의 쾌감을 아는 드라이버는 오토매틱 자동차의 매끄러우나 몸에 착착 붙지 않는 그 느낌을 사랑하긴 힘들다. 마찬가지로 수동 카메라 혹은 필름 카메라에서 느껴지는 그런 작동감을 디지털 카메라에서 느끼기란 이미 수동의 억센 쾌감에 길들여진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 자체의 단점들도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가령,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신형 물건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어제의 고가 디지털 카메라가 하루아침에 퇴물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다는 건, 마치 신형 자동차가 연신 앞장서 추월하며 달리는 고속도로를 느린 속도로 달리는 기분이 든다.


 

 

 

 

 

 

 

 

 

 

 

 

 

 

 

 

그런 점에서 수동카메라는 더이상 개량될 수 없고, 더이상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 라이카 M6를 사용하는 이라면 더이상 기기 변동의 유혹 없이 차분하게 필요한 렌즈와 액세서리들을 장만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이미 최고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사이에는 아직까지 메워지기 힘든 영역들이 있다. CD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LP로 듣는 음악에서 인간은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음악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톤암을 조정하고, 음반을 매만지고, 바늘을 올리는 순간의 쾌감이란 CD를 트레이에 올리고 덜렁 스위치 조작 한 번에 흘러나오는 1010101010101010의 비트가 주는 음악과는 다르다.

그런 까닭에 디지털 카메라의 미래는 여전히 수동카메라이다. 엡손은 광학기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업체, 그 중에서도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에 관해 노하우가 쌓인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엡손은 HP와 함께 이 분야에서 단연 톱을 달리는 기업이다. 그런 엡손에서 Cosina의 렌즈를 사용하여 빈티지 느낌이 나는 6백만 화소급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표했다. 이전에도 라이카에서 파나소닉과 손잡고 M6의 느낌이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발표한 적이 있으나 외관만 카피되었을 뿐 수동 카메라의 조작감, 질감과는 현격한 차이를 주었는데, 이번엔 다르다.


 

 

 

 

 

 

 

 

 

 

 

 

우선 사용자의 리뷰를 살펴보니, 세계 최초의 레인지 파인더 방식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토포커스 시스템과 이 레인지 파인더 방식을 비교하자면 레인지 파인더를 통한 포커싱은 렌즈의 교환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빠른 포커싱이 가능한 동시에 정확하며 광량 또한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싱글렌즈의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처럼 셔터액션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막강한 장점이 있다." 레인지 파인더식 카메라는 일안리플렉스 카메라의 단점을 곧 장점으로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촬영된다는... 게다가 이 카메라는 셔터음이나 기타 조작 다이얼들의 느낌부터 게이지의 표시에 이르는 모든 것이 수동카메라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코시나 렌즈 자체도 수준급이라는데, 이 R-D1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가이지만 성능좋기로 악명높은 라이카의 L, M 마운트의 렌즈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이 카메라가 무척 고가가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예견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디가 300만원에 렌즈 하나 끼워주는데 그것의 겂이 50만원 정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참고로 라이카에서도 새로 레인지 파인더 방식의 디지털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진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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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다 펼쳐 본 책 속엔 예쁜 단풍잎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 단풍잎을 책 사이에 끼웠던 아이는 청년이 되어 있겠지.

한때 자기가 그렇게 예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아마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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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1968~2004)
추모 정은임
2004.08.09 / 신기주 기자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던 MBC 정은임 아나운서가 8월 4일 오후 6시 반, 결국 세상을 떠났다. 90년대 초반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등을 진행하며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세상을 향한 신실하고 심지 굳은 태도로 대중과 호흡했던 그다. FILM2.0은 그가 남긴 말과 글 중 일부를 발췌하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한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1992년 11월 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첫 방송 오프닝 멘트

초콜릿과 사탕,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선물. 3월 14일은 그렇게 요란하게 지나갔습니다. 화이트 데이라고요.... 그렇다면, 3월 15일 지난 하루를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3.15 마산의거. 4.19혁명의 씨앗이 된, 우리 역사의 달력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날이죠. 35년 전 마산 땅을 울린 그 민주의 함성이 이제는 거대한 사탕 더미에 깔려 신음 소리로 변하고, 또 어느새 우리의 달력에서는 사라져 버린 날이 된 것 같네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현대 사회에 있어서 한 마을에 이집 저집이 동시에 제사를 맞게 되는 것, 그곳은 슬픔과 공포의 역사일 따름이지요.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던 거창군 신원면, 경찰 총기 난동이 있었던 의령군 궁유면, 4월 3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제주, 그리고 아직 채 시신도 인양하지 못하고 있는 부안군 위도 마을, 모두 한날 한시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곳입니다. 아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만 빌 뿐입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자신보다 더 유명한 소피 마르소를 데리고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했습니다. 고문서 반환이라는 선물을 앞세워서요. 프랑스 대통령 최초의 방한을 환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반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진작 돌려주지 않고 하필 고속철 TGV가 선정된 뒤일까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홍대 앞에서 여의도까지 오는 데 2시간 30분이 걸려도 코스를 잘못 잡은 자신을 탓하기. 내가 사는 아파트가 바다 모래로 지어졌다는 것이 밝혀져도 이사 잘못한 자신을 탓하기. 다리가 무너져도, 그래, 체중 많이 나가는 우리가 너무 많이 지나갔어, 이렇게 생각하기. 앞서 말한 행동 강령은 대학민국 국민으로, 서울 시민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칙이었습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신청하신 곡은 영화 <파업전야>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금요일 첫 곡이었습니다. 천리안으로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네요. 요즘은 신문에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슬퍼요....우리 늦기 전에 시작합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일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셨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구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시구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지거나 책을 읽다 멋진 글을 발견할 때면 맨 먼저 떠올렸던 게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

대학교 3,4학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회는 또 어떠해야 하나, 그런 문제들 때문에 고민에 빠졌었거든요. 87학번이니까 그때의 친구들도 다 비슷한 고민들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대학 시절을 보내고 방송국에 들어오면서, 다르게 말하면 사회인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이전의 정체성과 지금 처한 환경과의 괴리에 불편해 하면서도 물들어가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로저와 나>는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단번에 환기시켰고,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때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몰라요.
영화 월간지 'KINO'와의 인터뷰

영화를 보지 못하는 환경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밤 12시까지 아이 뒤치다꺼리 하더라도 꼭 새벽 3시까지 영화 1~2편씩 보고 나서 잤어요. 사람이 보수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가족이 생기는 거예요. 특히 2세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죠. 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건 할 수 있겠는데 결코 우리 아이에게는 나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할 것 같거든요. <허공에의 질주>를 떠올리며 생각해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요즘은 그게 가장 큰 화두예요.
'FILM2.0'과의 인터뷰

그때는 영화를 다루는 매체가 많지 않아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때마침 ‘문청(문학 청년)’들이 ‘영청(영화 청년)’으로 바뀌며 문화 담론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제 프로가 바로 그런 열기의 창구였지요. 이제는 영화 문화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영화가 일상인 시대를 살고 있죠. 청취자도 달라졌고 모든 매체가 영화를 다루고요.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가는 미지수지요.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행복하게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만차... 어떠세요? 이런 문구를 보면요. 어쩐지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지만요, 골목 안 어느 곳엔가 숨어 있어서 간판도 잘 안 보이고 입구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작은 칼국수집, 선술집에는 언제나 누구나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습니다. 새벽 3시에요. 아직은 어둡고 쌀쌀하죠. 이 가을 골목길 누구나 쭈뼛거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편안한 문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2003년 10월 19일 다시 시작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첫 방송 오프닝 멘트

부안 내부에서는 이미 핵 폐기물 유치에 대한 찬반이 갈리고 있는데, 투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투표에까지 가도록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오현석 씨는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동감입니다. 오현석 씨는 예전에 영화와 관련 없는 정체 불명의 사연을 우리 영화음악 게시판에 올려도 될까요 라고 한번 질문을 하신 바로 그분이시죠.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 삶의 문제를 다시 직시하고 그 힘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영화는 삶 전반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글을 올려주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 이건 진짜 맞더라고요. 사는게 작은 일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뭉쳐져서 겹겹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 하나하나를 신경 쓰지 못하면 삶 전체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 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 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입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2004년 4월 26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창문이 모두 영화 속 창문 장면으로 그려진 건물. 영화학을 하는 사람이 주인일까. '창문으로서의 영화'를 생각하게 한다. 구멍을 내어 바깥 세상을 보는 한 면을 제공하는 창문은 때때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케케묵은 답으로도 쓰이니까. 그러나... 이 건물은 정말 멋졌다. 그 위에 걸린 하늘도.
2004년 6월 5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테러리즘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테러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엄 촘스키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오늘따라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04년 6월 21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예전부터 내게 빗길 운전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였다. 빗줄기가 형체를 허물어뜨린 풍경은 움직이는 파스텔화. 이제 나는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2004년 7월 5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사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대부분의 아름다움은 강렬하고 화려하고 찬란할수록 빨리 사그라들고 시들고 부서지지 않나요?
2004년 7월 19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에 남긴 마지막 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특히 아주 젊어서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묻혀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 여러가지가 있죠? 그들은 더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테구요, 또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변하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전 우리 가슴속에 묻힌 후에 그는 한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죠. 리버 피닉스. 피닉스라는 그의 성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23살. 그때 죽었지만 그렇게 참 불사조처럼 우리 마음속엔 이렇게 오래 살아 남아있네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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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2004-08-1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로드무비 2004-08-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연두 2004-08-12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이 짠하니......... 저두 퍼갈게요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던 책이었다. 빌려주기도 많이 했고, 선물도 많이 했다.

내가 범접하기 힘든 사람들. 치열하게 살다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울기도 많이 울고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연인이 준 손수건을 찾아 온 산을 헤매이던 남아메리카의 혁명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민중을 위해 살겠다는 그 혁명가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디서 우연히 저 책 제목을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처음 봤던게 아마 2학년때였지. 작가는 김재희.

그 뒤로 새벽별이 뜨면 푸른 강이 보인다라는 책도 나왔는데.

지금은 뭐하고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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