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순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건 몇 달 전 문산(내가 사는 교하와 함께 파주시의 일부인) 부근 어느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에서다. “문산여고 3학년 지관순양 43대 골든벨!” 방송 날짜는 한 달 쯤 후라고 적혀 있었는데 챙겨보진 못했다. 지난 연말에 여기저기서 올해의 인물로 등장하는 걸 보고 그 후로 아주 많이 유명해진 걸 알았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까지 잘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초등학교를 못 다닐 만큼 가난한 소녀가 이룬 작은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그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이웃들의 자랑스러운 벗이 될 것인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의 작은 승리는 이웃들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한 출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천에서 난 용'의 행로는 대개 그렇다.

아버지 지씨는 지양이 골든벨을 울린 데 기뻐하면서도 “사람 되는 일보다는 공부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며 걱정부터 했다. 공부를 잘 한다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주변의 관심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씨는 “관순이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자율학습도 고3이 되어서야 담임 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저녁 7시까지만 시키고 있다. 지양은 대신 집에 돌아가 집안일은 물론 마을 이웃 일을 돕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도 관순이의 몫이다. 오리를 기르는 지씨는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데도 사육장에서 나오는 오리알은 몇년 전부터 인근 의료원과 요양소 등지에 수용된 오갈 곳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씨는 “관순이가 학자보다는 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 치고 곡학아세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학생은 많지만 의인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어제 우연찮게 읽은 지난 신문 기사에서 나는 지관순 양이 매우 반듯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며 그 배경엔 그의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가난한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가난하면서도 자식에게서 존경받는 아버지는 없다. 영혼이나 사랑까지 사고파는 세상에서 가난한 아버지는 자식의 인생을 해치는 죄인에 가깝다. 그러니 지관순 양과 그 아버지의 경우는 참 특별하다. 딸을 초등학교에 못 보낼 만큼 가난한데다 “의인”이니 “곡학아세”니 하는 지사적 언어(요즘 젊은이들이 구리디 구려하는)를 사용하는 아버지와 2004년의 딸 사이에 흐르는 믿기 어려운 존중은 말이다. 한 가지만 짐작한다면 그 아버지는 제 딸을 단지 말로 가르친 게 아닐 것이다. 말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그는 제 딸에게 ‘살아 보인’ 게 틀림없다.

                                                                                                              -Gyuhang.net 에서 퍼왔습니다.

말이 아닌 살아보이기. 말은 쉽고 살아보이기는 어렵다. 반듯한 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할수 있도록 배경이 되는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그 '살아보이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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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6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 일기
김성칠 지음 / 창비 / 199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역사를 거대한 물줄기로 보는 거시사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나 독일의 사회구조사, 프랑스의 아날학파 등은 ‘역사의 연속적 진보’라는 믿음 위에 익명의 거대집단을 역사의 집합적 주체로 삼아 큰 흐름과 줄기를 세워보려 했다. 미시사는 거시사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성립된 역사학 분과다.

개인의 일기나 편지들도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것들인데 이런 개인의 기록들을 통해 역사를 보는 것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역사 앞에서’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학문과 가정생활, 교우에 관계되는 것을 주로 실은 45년-46년 그리고 50년 1월의 일기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50년 6월 25일부터 51년 4월 8일까지의 일기,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실린 동료학자, 조카, 제자, 아내의 추모의 글 이렇게 세부분으로 말이다.

지은이의 아내도 말했듯이 지은이는 학자로서의 소명을 갖고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단순한 신변잡기나 일상의 기록들이 아니라 극심한 혼란기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 처지가지도 그리고 당시의 사회분위기까지 목적의식적으로 꼼꼼히 기록했던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온갖 모순이 복합적으로 합해져 모순의 결정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후에 다양한 문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그 당시는 가슴 아픔과 울분이다.

지은이 김성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스로가 “역사의 필연성을 믿었으나 성격이 다우지지 못해서 온건한 학우로 지냈음” 이라고 정의했듯이 그는 민족을 우선시하는 우파에 가까운 보수적인 사학자였던 것 같다.

그가 쓴 조선역사도 그렇고 열하일기 번역본도 그렇고 그는 항상 우리 민족을 우선시하는 그런 학문을 하였다. 전쟁이 치열해지고 서울신문에서는 미군이 원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에 반발해 쓴 일기를 보면 더욱더 그렇다. 현재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하는 사람들이 민족도 내팽개치고 미국을 위한 집회, 기도회를 갖는 것을 보면 이 땅의 보수주의의 전통이 언제부터 왜곡되었는지 가슴을 칠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 김용옥은 어떻게 김정일을 처단하고 같은 민족을 몰살하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말을 했나 보다.

그는 보수적인 우파의 사상경향을 갖고 있었지만 좌익친구들에 대한 표현들에서 그가 그들에게 갖고 있었던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엉터리 선거에 대한 부분과 의용군 지원에 대한 그의 시각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이뤄진 이산가족들의 만남(의용군에 입대해서 자진 월북한 분들, 또는 월북한 학자, 예술인들이 많았음)을 생각나게 했고 그의 일기가 역사적인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지만 이 기록들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해방 이후 북은 토지개혁으로 수많은 소작농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벅차오름의 역사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통탄했듯이 문화인들과 기술자들의 월북은 당시 남한이 이들에 대한 인권과 생활보장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월북한 이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는지 모르겠고 이후 벌어진 정치적인 숙청으로 많은 인재들이 안타깝게 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토대가 되어서 전쟁이후 완전 파괴된 그들의 조국을 일으켜 세우고 남한보다 부강한 나라를 60년대까지 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쟁의 혼란한 가운데서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방송이나 신문이 열악했던 그 상황에서도 그 당시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기도 했다.

그의 일기 곳곳에서는 부모, 가족, 형제에 대한 애틋함을 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다정다감함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동물, 식물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그가 얼마나 온순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나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당시 남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노동자들과 그가 느끼는 전쟁은 틀림없이 다른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서로가 위협받는 생명에 대한 느낌도 달랐을 것이고 비슷했다고 할지 모르나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방법 또한 달랐을 것이다.

북의 한글전용에 대한 그의 호의와 다른 인텔리들의 반발을 보면 요즘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 학자가 학문을 하고 글을 쓰는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무지한 백성들이 최대한 알지 못하게...

난폭운전을 하는 흑인을 보고 그들의 피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라는 표현에서는 흑인에 대한 편견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이런 편견과 그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느꼈을 수많은 편견들이 겹쳐지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학자답게 파괴되고 훼손되는 문화유산과 귀중한 사료들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가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했던 것은 그것보다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 전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첫째는 동족상잔함이 슬프고 둘째는 미군과 조선 사람이 겨루어 방금 피를 흘리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미군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 많게끔 되었으니 이 사실이 더욱 슬프다”

일제 식민기간, 해방 이후, 또 전쟁을 거치며 우리는 많은 인재들을 잃었다. 김성칠 또한 잠깐 다니러간 고향에서 왜 좌익에게 살해되었는지 그 이유를 충분하게 추측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아쉽기 그지없다. 그는 틀림없이 전쟁 중의 양민학살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했을 것이고 우리민족의 주인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연구를 했을 것이다.


항상 새해에는 수많은 다짐을 한다. 그 중 하나는 일기쓰기(사실은 메모라도)인데 그의 일기를 보면서 단순한 나의 일상뿐만이 아니라 진지한 내면의 성찰(?)을 글로 남길 수 있다면 하는 지키지 못할 바램을 가져본다.

한 사람의 기억과 회상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기록을 남긴다면, 그 기록들이 서로를 비판하고 교정해 진실의 성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마르쿠제의 말처럼 “지나간 고난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그 고난을 야기했던 힘들을 무찌르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우리 모두 기억하고, 기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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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리뷰를 너무 늦게 읽었네요.
저도 오래 전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로자님 말씀처럼 흑인에 대한 약간의 편견 등은 엿보였지만
균형감각이 참 미더운 글들이었어요.^^
 
 전출처 : 바람구두 > 강의 : 선량한 낙관에 의한 관계론과 구분짓기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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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선생을 만나뵐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처음은 인천에서 '더불어 숲' 모임에서 당신이 강연하실 때, 다음 두 번은 학교에서 뵈었다. 이재정 당시 성공회대 총장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신영복 선생이 동석해주셨고, 다음 번엔 당신 자신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서 당신의 연구실에서 뵈었다. 이 때 인터뷰 끝내고 함께 학교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고, 식사 후엔 직접 구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셔서 성공회대 새천년관의 명물인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뵌 것이 부천 '더불어 숲' 모임에서 강연하시는 자리에서였다. 그러니까 이 책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를 출간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강연 끝나고 간단하게 저자 사인회가 있었는데, 난 그날 선생의 강연을 듣고자 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우연히 갔다가 저자 사인이 든 책까지 하나 얻어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앞장서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을 얻고자 해본 적이 거의 없음에도 기회가 닿아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을 얻게 되는 경험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번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묘한 경험을 해보았다.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와 펑크그룹 삐삐밴드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경험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세 번째다. 신영복 선생은 처음 뵈올 때나 이후 서너 차례를 뵐 때나 늘 여일(如一)하시다. 다들 잘 알겠지만 한자든 영어든 계집 혹은 계집녀가 들어가서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거의 없는데, 유독 '같을여, 말이을여(如)' 만큼은 '한결같다, 꾸준하다' 라 해서 비교적 좋은 뜻이 된다. 이 말이 '계집녀+입구'인데 한결같다란 뜻을 얻은 건 그만큼 여자들이 지조가 있다는 뜻인가? 지금껏 살아온 나만의 경험에 의하면 최소한 한결같다는 점에선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나은 편이었다. 다시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뵙는 동안 변함없고, 일관된 면모를 관철하는 어른 뵙기가 참 어려운데 당신은 애초의 모습 그대로인 걸 보며 새삼 연륜이란 켜켜이 쌓인 경험이란 걸 후학에게 느끼게 한다.


결론을 미리 당겨 이야기한다면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라는 표현으론 말할 수 없다. '필독서'란 말에는 어쩐지 필요에 의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징검다리 정도의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애독서', 여행가는 배낭 속에 넣어두고 어딜 가나 펼쳐볼만한 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30년간 남의 고기를 먹어왔지만 나는 고기 맛을 잘 모른다. 무엇을 먹든 급하게 먹는 버릇 탓에 음식 맛을 잘 아는, 음미하며 맛을 보는 미식가들의 미각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든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한 번 읽어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겠다. 마치 오래 씹을 수록 여러 맛이 나고, 깊은 맛이 배어나는 그런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자신은 서문에서 "남이 써놓은 책을 말만 바꾸어 내어놓는 데에도 참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그분들의 연학(硏學)에 진경(進境)이 월등하시길 빌면서 남은 잉크를 말린다."라며 38년 전에 출간했던 번역서의 역자 후기를 대신 옮겨 놓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참 겸손한 분이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는 그동안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되어 왔던 강의를 정리하여 묶은 책이다. 성공회대학교는 한신대학교와 더불어 최근 우리 사학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지닌 대학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 권위주의 독재 시절 이에 저항하다 감옥살이한 지식인들이 주로 교수가 된 대학, 교수들의 수형 기간을 전부 합치면 200년 가량 된다는 풍설의 성공회대학교, 일반 대학에서라면 교수에 임용되기 어려울 법한  문제적 지식인들이 모여 교수로 재직하는 대학이 성공회대학교이다. 이 대학의 진보적 학풍의 중심엔 멘토(mentor)로서 신영복 선생이 계신다. 멘토(mentor)란 상대에게 동기(motivate)를 부여하여 그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를 말한다. 단순히 동기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훌륭한 정신적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멘토(mentor)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딧세우스보다 연장자였던 친구 멘토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딧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되자 친구 멘토르에게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한다. 오딧세우스가 20여년 동안 지중해를 떠돌자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데 아테나 여신은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에게 조언을 해준다. 이후 멘토르는 충실하고 현명한 조언자이자 정신적 스승, 지향할 바를 제시해주는 역할 모델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좋은 책은 제목에서 책 안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 이미 많은 걸을 예시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많은 걸 미리 예시해주고 있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남도 아니고, 권위있는 전문가의 그것도 아닌 나의 동양고전이고, 나의 독법을 의미하며, 그것을 강의하였으며 신영복 선생 자신도 밝히고 있듯 당연히 반론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과 강의를 마치며를 제외하곤 각각 하나의 장에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를 배치해두고 있다. 예전에 신영복 선생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觀察보다는 愛情이, 애정보다는 實踐이, 실천보다는 立場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이다. 사상은 선택이며 역사는 현대사이며 역사이해는 역사가에 대한 이해이다. ...<중략>... 사람의 눈은 발에 달려 있다. 그 처지가 그 認識을 결정하는 법이다.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은 관객의 역어" 라고 말한 바 있다.


얼핏 보더라도 '입장(立場)' 이란 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주목해보아야 할 글귀는 "사람의 눈은 발에 달려 있다"란 말인데, 이 말은 입장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 자리가 입장이며 객관적이란 말은 내가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지칭한다는 뜻이 된다. 예전에 대선이 한창이던 무렵 홍세화 선생은 민주노동당 당원이란 신분이 기자로서 문제가 되자 "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란 글을 통해 '당파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기자가 지켜야할 객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팩트 뿐이며 이에 대한 시각과 분석에 차이가 있다. 기자의 정치-사회적 의식과 가치관, 세계관은 그가 당원이든 아니든 기사 작성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자의 당파성에 합리성이나 균형 감각이 담겨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그리고 기자의 당파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객관적 검증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홍세화 선생은 지난 대선 당시 TV토론 자리에서 정치적 입장(당파성)이란 삶의 조건과 계급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의 '입장'은 홍세화의 '당파성'이란 말과 통한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를 비전공자가 비전공자를 위해 고전 강독 강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 지나치게 겸손한 부분이다. 많은 전문가들, 전공자들이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그 자신이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강의"는 전체적으로 신영복 선생의 입장과 그에 따른 문제의식이 고전을 선정하고, 그 안에서 예시하고 있는 문안을 통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유석재 기자는 기사를 통해 신영복 선생의 이 책에 대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사랑을 깊이 깔고 있는 그의 글은 준엄한 동시에 따뜻한 ‘체온’을 지니고 있다. 그 체온은 자신의 이론과 사상이 세상을 걸어가는 ‘실천’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을 밝히려는 부분이 때론 약간의 고집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논어’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배우고 때때로 익힌다)’에서 ‘습(習)’을 실천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의 ‘사(思)’까지도 실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당혹스럽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사이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무시하고 새로이 등장한 지식인 계층인 사(士)를 피지배계급으로 설정, 유가(儒家)를 ‘제3의 계급 사상’으로 본 부분은 지나친 도식화라는 이론의 여지를 남긴다"고 쓰고 있다. 당혹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강의"는 단순한 고전 강독이 아니라 이것을 현재의 관점, 신영복 선생의 문제 의식이 녹아든 그만의 독법이자 해석이란 사실 때문에 말이다. 문제는 그런 해석을 독자가 어떻게 납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럴 때 "거두절미, 침소봉대" 식의 문법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신영복 선생은 모 신문처럼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신의 주장이란 것이지 절대적인 해석이 아니란 것을 늘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면 여기에 적절한 자신의 독해를 가미하며 읽을 수 있고, 위에서 지적한 부분들이 당혹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대목은 최소한 내가 읽기엔 없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은 애써 꾸민 미문(美文)은 아니나 많은 이들이 즐겨하는 문장으로 소문이 나있다. 반면에 특별히 어려운 문장이 아님에도 어렵다는 소문도 있다. 이 책 전체에서 그런 지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서론 부분과 주역을 다룬 3장이다. 서론은 "강의" 전체를 아우르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념을 정리하는 부분인데,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훌륭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읽는 족족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뛰어난 해석에, 머리를 조아리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주역"편에 들어가면 분명히 쉬운 말로 풀이하고 있는 데도 워낙 "주역"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선지 주눅이 들어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앞서 입장을 강조했는데, 다시 한 번 입장을 강조할 만한 부분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모든 고전에 일정한 무게 중심을 싣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책 전체의 분량에서도 그렇고, 당신이 힘주어 다루고 있는 부분을 살피면 특히 "논어"와 "묵자"편인 것을 알 수 있다. "논어"야 워낙 고전의 지위란 측면에서도 그렇고, 당신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두 권의 책(자본론과 논어)이라고 밝히고 있는 탓이지만, "묵자"는 다소 뜻밖이자 신영복 선생다운 선택으로 당연해 보인다.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유가의 카운터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은 누가 뭐래도 노자의 도가 사상이다. 흔히 서양문명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융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 헤브라이즘이 종교(기독교, 프로테스탄티즘)을 의미한다면, 헬레니즘은 과학을 의미한다. 서양 문명은 이 양자의 조화와 균형, 견제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에 비해 동양 사상은 인본주의적인 사상인 유가와 자연주의적 사상인 도가의 대립과 견제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의 인본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반면에 도가는 이런 인본주의의 독선과 허구성을 비판하는 반체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강의"는 유가와 도가란 주류 사상을 중심으로 고전을 다루고 있지만, 소위 비주류 사상인 "묵자, 순자, 한비자"도 함께 다룬다. 순자는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학설이란 점에서 주류에 속하고, 한비자 역시 법가 사상을 대표해 천하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으나 묵가는 제자백가 2000년의 중국 사상사 속에서도 비주류 가운데 비주류였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평화'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에 비해 배 가까운 분량으로 다룬다. 여기에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녹아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단 24자로 기록된 묵자이지만 오늘날 묵자, 묵가의 사상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묵가의 사상적 복권은 실로 2000년만의 일인 것이다. 묵가의 사상이 이제야 빛을 볼 수 있게 된 가장 큰 까닭은 묵자의 사상이 오랫동안 유가에 의해 "사문의 난적"으로 지탄받아 왔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묵자의 사상이 오늘날의 좌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오랫동안 묵자는 묻혀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중국공산당에 의해 "묵가의 하느님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적으로 간주"되어 부정적 평가를 받았고, 우파로부터는 "세습과 상속을 반대하는 그의 평등사상 때문에 여전히 배척"되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이 묵자와 묵가 사상에 대해 호의적 입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맹자"와 "장자"를 빌어 와 "실천행위는 과도하였으며 절제는 지나치게 엄정하였다"며 묵가를 비판하는데, 이는 과거를 빌어 현재와 미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 내지 과거 좌파적 실천의 각박함을 함께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신영복 선생은 고전을 역사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이를 과거의 고리타분한 텍스트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강구해야 할 오늘의 살아 숨쉬는 텍스트로 재해석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몇몇 부분에서 신영복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중략>...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중략>... 제가 감옥에서 만난 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본문 82쪽>


"진의 시기는 통일과 건국의 과정이며 한의 시기는 이를 계승하여 통일 제국을 다스려 나가는 수성의 시기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법치와 덕치의 비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55쪽>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人)에 담론이든 민(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쪽>


이상과 같은 부분들은 역사 해석이란 측면에서 시제의 관점, 현실적 조건에 따른 대응, 시대의 상황에 따른 평가 등이란 측면에서 유연한 해석을 가능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객관은 관객의 역어란 애초의 신영복 선생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주관주의로 흐를 여지를 남겨둔다.


"내가 향원(鄕愿)을 싫어하는 것은 사이비(似而非)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빨강색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향원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나로서는 이 구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감옥을 하나의 마을로 치자면 그 마을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기준이 물론 문제이긴 합니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느 곳에나 다수로서의 민중은 존재하는 법이며 다수는 항상 선량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92 - 193쪽>


이 말은 "논어" 자로 편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본문 190쪽>


이 때 문제가 되는 두 가지는 좋고 나쁨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세울 것이며, 이것이 주관적이지 않음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다수로서의 민중은 존재하는 법이며 다수는 항상 선량하다"는 것이란 점이다. 과연 다수의 민중은 항상 선량한가? 이는 신영복 선생이 자신이 "강의"를 통해 힘주어 주장하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란 말이 지닌 힘이자 동시에 한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수가 결코 선량하지 않았던 시대를 알고, 그런 한 시대를 살았다. 다수란 한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두식(한동대 법대)교수는 "헌법의 풍경"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의 독재자들이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풍경, 본문 99쪽>


물론 신영복 선생이 주려고 하는 교훈마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영복 선생의 저 선량한 낙관에 나는 쉽사리 동의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극우든, 극좌든 소수의 독재자들의 야욕에 복종하는 다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독재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 권력의 고문실에 끌려간 양심수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고문실 바깥에서 들려오던 라디오의 한가로운 시정잡담이었다고 하질 않던가. 내가 신영복 선생의 저 선량한 낙관에 동의할 수 없는 것,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 인(人)을 기반으로 하던, 민(民)을 기반으로 하든, 과거의 고전으로부터 시작하든, 현재로부터 시작하든 모든 것을 회의하고,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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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얀마녀 > 슬램덩크 후일담



일본의 카나가와현의 현립고교 농구부를 배경으로 한만큼 그도시의 한 폐교에서 1억권 돌파 감사이벤트가 벌어졌는데 그곳의 칠판에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씨가 분필로 단편만화를 그렸고 그내용이 본편의 후일담으로 채워졌답니다.

*'슬램덩크' 본편의 후일담이 총 23개의 교실에 걸쳐 그려졌다.

*1번째 교실 : 백호가 소연에게 "리허빌리(rehabilitation - 회복, 재활)계의 리허빌리왕이 되겠다" 라는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를 소연과 친구들이 읽는다.

*2번째 교실 : 북산 1학년 3인 트리오 (<-벤치 트리오) 가 아침 5시부터 런닝을 하고 있다.
채치수가 빠진 공백을 레귤러 멤버가 되어 메꾸려고 열심히 하고 있는 듯.
5:30에 학교 체육관에 도착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연습을 하고 있는 중.

*3번째 : 겨울 선발전에 대비해 정대만이 연습하고 있다.
성적이 안되는 관계로 선발전에서 분발해, 대학지명을 노리는 중.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한다.

*4번째 : 한나와 안선생님이 아침조깅을 하던 중에 서로 만난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라고 서로 말하고 헤어짐.

*5번째 : 서태웅은 아침운동. 운동 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전거를 탄다.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것은 영어회화 테이프.

*6, 7번째 : 수업 중에 지명받지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채치수.
농구가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다. 권준호가 농구부에 들러보는게 어떻냐고 하자 -
"은퇴한 몸으로 그런 어중간한 짓을 할까보냐!! 이제부터 수험이다!!"
라고 말하며 거절.
권준호는 농구부에 잠깐 들리고, 채치수는 그걸 쳐다본다.

*8번째 : 수업을 땡땡이 친 송태섭.
옥상에서 리더쉽에 관한 책을 보고 있는 중,
"상사가 악마(원문은 鬼=오니)가 되면 부하가 잘 따른다" 라는 구절을 보고
"악마 캡틴으로 가볼까!"

*9번째 : 선발전에 나가기 위해서 뭔가르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한 상양멤버들.
성현준는 안경을 멋진 걸로 바꾸고, 장권혁는 중머리, 임택중와 오창석은 눈썹을 얇게 한다.
수염을 기른 김수겸에게 불린 신지섭는 "이런건 후지마씨가 아냐~" 라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타도해남, 타도북산의 의지를 불태우는 상양.

*10, 11 번째 : 농구부에 들린 변덕규는 후배들을 걱정한다.
하지만, 후배들은 요리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는 변덕규를 걱정한다.
윤대협이 없어져 박경태를 포함한 몇명이 찾으러 가지만, 윤대협는 바다에서 낚시 중.
이 소리를 들은 변덕규 "바보자식!! 그렇게 물고기가 좋으면 나랑 바꿔!!!!" 라고 외친다.

*12번째 : 능남의 주장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이에 동요한 안영수와 황태산이 차기 주장 자리를 놓고 겨루고 있다. 이걸 잘 정리하는 백정태. 백정태도 차기 주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듯.

*13번째 : 야요이와 나카무라(경태의 누나와 조수일듯)남의 '강함' 의 비결을 취재하고 있다.
이정환이 바다에서 서핑 보드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정환의 "검은 피부" 에 대한 의문을 푼 두사람.

*14번째 : 야요이와 나카무라가 다음에 본 것은 개와 산보하고 있는 전호장.
전호장은 개와 경주. 처음에는 호각으로 달리지만 결국 개에게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그대로 두사람하고는 만나지 못하는 전호장.


*15번째 : 이 후 두명은 조깅을 하고 있는 신준섭과 만나고 가겹게 인사를 나눈다.
"저 아이가 해남의 강함을 상징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라고 말하는 야요이.

*16번째 : 능남감독과 해남 감독이 전국체전 대표팀 멤버에 대해 이야기.
지금까진 해남 단독 팀이었지만, 이번에 한해서 혼성팀으로 구성하고 싶은 듯.
두 사람 다 각자의 멤버들을 구상하다,
능남감독 왈 "그런데 누가 감독을 맡지?"
각자를 째려보는 두 사람.

*17번째 : 산왕공고. 이명헌이 생각에 잠겨있다. 이런 이명헌에게 정성구가
"쇼호쿠 전은 이미 끝난 일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라고 말을 걸지만,
이명헌은 대답대신 접미어(?)를 생각한다.

*18번째 : 신현철-현필 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겨울 선발전에 지지않기 위해 동생을 철저하게 단련시키기로 한다.

*19번째 : 정우성이 비행기에 타고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would you like some wine?" 라는 물음에 "예스" 라고 대답, 정신없이 취한다.
하늘을 보면서 (하늘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정우성.

*20번째 : 백호군단 4명이 백호에 대해 이야기한 후,
"너희들도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았으면 좋겠다."
"너도"

*21번째 : 소연이가 백호에게 편지,
송태섭이 부원들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 채치수의 성적이 떨어진 것,
백호를 응원하는 것등이 쓰여있다.

*22번째 : 재활훈련소에서 할머니와 백호의 대화.
"첫 일본인 NBA선수가 탄생했다.
대부분의 인간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걸 말하는 녀석들은 도전(챌린지)하지 않는 녀석이야.
자, 백호군도 새로운 재활 단계에 도전!(챌린지)"
"흥. 잘봐둬, 다음에 가는건 나니까." "갈 수 있어?"
"물론. 난 천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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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펌)양조위-나는 현실이 싫다..그래서 연기가 즐겁다





 양조위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보이지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무간도3' 아시아권 시사회 참석을 위해 북경을 찾았을 때였다. 무대 위의 그는, 재치있는 말솜씨로 분위기를 휘어잡던 유덕화와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만면에 띤 여명 사이에 마치 자리를 잘못 찾아온 불청객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170cm가 넘지 않을 듯한 아담한 키에, 좁은 어깨,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는 길을 걸을 때도 자신을 둘러싼 매니저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쉽사리 묻혀버렸다.







 이번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바지에 지극히 평범한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선 그는 `스타답지 않은' 조용조용한 몸짓으로 스튜디오를 서성댔다. 낮은 목소리와 조근조근한 말투, 긴 질문이 던져지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도 여전했다.

   서울에서 `서울공략'을 촬영중이지만 아직 `2046'의 차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연기했던 배역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항상 힘들다. 아직도 하루에 많은 시간을 차우와 그의 사랑을 생각하며 보낸다." 그래서인지 사람 좋아보이는 표정 사이사이 차우의 공허하고 차가운 미소가 슬쩍 스쳐간다.

 대답을 할 때 또렷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그의 오랜 버릇. 마치 "내 이야기가 제대로 이해됐나요?" 라고 묻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고 인사를 건네니, 시니컬하지만 솔직하게 답한다. "연기하면서 한번도 인기를 신경써본 적이 없다"고.

   "나에게 인기는 그저 인간 양조위의 자유를 빼앗는 그런 것일 뿐이다. 연기만 생각하는 배우만이 나날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당신에게 연기란 무엇이냐"를 물었을 땐 그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나는 현실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기가 즐겁다. 아주 어릴적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다. 연기를 통해서 울고, 웃고, 소리치면서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된 것 같다."

 짧고 단조로왔던 인터뷰와는 달리, 카메라 앞의 그는 퍽 유연했다. 방금 전의 어색함을 어느새 툴툴 털어버린 듯, 그의 선하디 선한 눈빛은 순간순간 낯선 표정으로 바뀐다. 때로는 영화 `무간도'에서 신분을 감추고 조직에 잠입했던 불안한 경찰의 눈빛이, 때로는 무표정하게 칼을 휘두르던 `영웅'의 냉정한 무사가 겹쳐진다.

 문득 `2046'에 여러번 등장하는 대사가 떠올랐다. `옛날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 나무에 구멍을 파고 비밀을 속삭였다'는 그 대사. 어쩌면 양조위는 영화라는 `자신의 구멍' 속에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았던 비밀들을 하나 둘 털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영희 기자
misquick@munhwa.co.kr







 "마치 14년간 한편의 영화를 찍은 느낌입니다. 제가 이 `긴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감동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AM7과 시네코아가 주최한 제 1회 종로영화제를 기념해 세계적인 배우 양조위가 AM7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사랑 3부작인 `아비정전'(1990년) `화양연화'(2000년) `2046'(2004년)의 심야연속상영 및 `아비정전' 무삭제판 특별상영이 마련돼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랑 3부작'의 주인공인 양조위는 "한국의 종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세 작품을 연속상영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퍼즐같은 세 영화를 세심히 끼워맞추다보면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 편의 영화 모두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는 1990년작 `아비정전'이란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 아비의 형 역할로 마지막에 잠시 등장할 뿐이다. "제 비중은 적었지만,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장국영의 연기에 감탄을 많이 했습니다. 유약한 듯 하면서도 강한 그의 매력이 정말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화양연화'와 `2046'에서는 같은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그는 "두 작품을 연결선상에 두면서도 다른 영화로 보이게 하는 것우은 대단히 힘들고, 그러나 매력적인 숙제였다"고 말했다.

 왕가위 감독과 수많은 영화를 함께 하면서 "본능대로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됐다"는 그는 "대본도 없고,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은 배우들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현재 마초성 감독의 액션영화 `서울공략' 촬영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는 오는 12월 중순쯤 홍콩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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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박상훈씨가 매주 작업해주는 '스타갤러리' 이번엔 양조위가 주인공이었다. 정말, 가편집 상태에서 봐도 숨이 턱 막히는게....엄청시리 멋있었다...흐흐.
안타깝게두.....영희는 양조위에게 그리 꽂히지 않은 편이라 인터뷰 정리가 힘들었단다. 차라리 날 보내주지~~~  라고 생각해보니.....한마디도 질문 못하는 바보가 됐을게다...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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