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립출판 2 우리, 독립출판 2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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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출판 2, 북노마드 편집부 지음, 북노마드, 2019


독립출판, 독립서점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상업적 레토르로 들려 불편함이 있었다. 아니 내가 가진 편견때문에 불편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10여 년전 회자되던 인디라이터나 3~4년전의 1인 출판이라는 용어에 독립운동 백주년을 즈음하여 결연함을 더해 거창함으로 포장한 기성 출판, 대형 서점의 상업 시스템에서 만들어낸 조어일 것이라는 편견이 불편함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 독립출판 2를 읽고 모든 것이 내가 가진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데 내가 꼭 그런 꼴이었다.


여기, 독립출판2에서 6명의 작가가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이야기를 들으며 시대 변화에따라 출판시장도 변했음을 알게 되었다.


소수의 편집자와 출판사, 대형서점으로 과점된 상업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도 개인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개인적인 언어로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소수의 독점구조를 깨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기득권은 무엇을 행함으로써 권력을 과시하기 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힘을 행사한다. 소수의 편집자, 출판사가 과점된 출판 시장에서는 잘 팔릴 주제의 책, 잘 팔린 책을 쓴 저자의 책만이 선택될 확률이 높다.


일반인이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를 개인적인 언어로 쓴 이야기라면 기존의 상업 시스템에서는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이야기가 개인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생겼다.


대체로 평균적 인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대부분 평균적 인간과는 다른 사람이었고, 그 평균적 인간과 나의 괴리감이 나에 댛대한 자존감을 낮추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자기개발서나 흔한 성공 스토리의 책들은 읽지 않았다. 평균 이상의 사람이 쓰는 평균적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여지지도 공감되지도 않는 남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개인적인 언어로 접하면 이러한 평균적 인간과의 괴리를 줄이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어 깊이 공감할 수 있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주는 동질감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들이 독립출판, 독립서점, 개인미디어라는 시스템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흔히 역사는 사건의 연속이라고 한다. 연대순, 연도순으로 사건을 연결하고, 그 시대의 통치자가 만든 제도로 역사를 이해하곤 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의 이야기는 역사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사건도 역사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역사이다. 그러한 평범한 일상이 점에서 선으로 연결될 때 과거의 역사가 현재가 되고, 현재의 역사가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개인의 언어로 쓰여진 이야기가 더욱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는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이 아닌, 당당히 기성 출판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나를 반성하며, 오늘 독립서점에 들러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탐독해야겠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잖아요.
특히 출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기록이 책이 되는 과정을 겪고 나니
이제는 어떤 것도 책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규림, P17)


도쿄규림일기도 아주 사사로운 개인 이야기예요.
나중에 누가 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혼자 신나서 썼어요.
그런데 하는 사람이 신나는 일은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지잖아요. (김규림, P25)


책을 만들고 나서 정체성이 단단해졌어요.
독립 출판을 시작하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며 저에 댛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죠. (김진아, P42)


저도 노력하면 다 돼라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그런 생각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 나는 노력이 부족하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만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꼭 모두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안 되는 이유가 매번 자신의 탓도 아닌데 말이죠. (김현경, P78~79)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사회적 편견이 걷히고 인식이 바뀔 수 있잖아요.
마음이 상처 나고 부러진 듯한 늒느낌을 받을 때
의지나 마음가짐으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당연해졌으면 좋겠어요. (백세희, P101)


첫 책을 내는 것이 을 찍는 행위라면,
두 번째 책은 두 점을 이어 선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에요.
선이 생긴다는 것은 흐름이 생긴다는 것이고,
내 길이 생긴다는 겁니다. (서귤, P112)


독립 출판물은 누구나 좋아하면 그냥 하면 돼요.
독립 출판물이 숨구멍을 터주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사는 게 나무 빡빡한데 내가 이렇게 뭘 바라지 않고, 재미도 있고,
잘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는 부분이 있어요. (유재필, P133)


분명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라는 것이다.
독서는 누구나 하려고 하는 것을 저어하게 만들고,
누구나 이미 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게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시대를, 세상을, 국가를, 사회 체제를,
문화를, 삶을 생각하게 되어 있다. (윤동희,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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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B의 순간
김선아 지음 / 미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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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은 이유, 김선아 지음, 미호, 2019


별자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밥하늘에 가득 채운 수많은 별들을 바라 볼 때 별자리를 알지 못하면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나 W 모양의 카시오페아 자리조차 찾기 어렵다.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는데, 각자가 알고 있는 만큼 다르게 보이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문화유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넓혀 주었고, 역사와 문화유적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유적지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었다면 김선아 작가의 여기가 좋은 이유는 현대 건축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는 나의 현대건축 답사기였다.


그동안 트렌디한 핫플레이스에 가더라도 인테리어나 분위기 위주로 보아왔던 것 같다. 건물의 외관이나 구조, 재료 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아니 잘 모르기에 지나친 것 같다.


저자는 브런치에서 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이 많이 덜어졌다고 하는데, 몇몇 장면에서는 사진 없이 묘사만으로 장소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내 주변에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쳤거나, 갔던 곳 중에서는 건축에 대한 몰이해로 느끼지 못해던 부분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별마당도서관의 경우,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갑갑함을 털어내는 넓은 공간에 놀라고, 이곳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코엑스에서 길을 잃어도 별마당도서관만 찾으면 위치를 가름할 수 있게 해주는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 저자의 시선이 놀라웠다.


서가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이 공간에는 패턴이 생겨난다. 우리가 읽는 책에는 정해진 사이즈가 있고, 책을 보관하는 책장이라면 응당 갖춰야할 형태가 있다. 네모난 책을 위한 책장이 둥글게 디자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
중략) 이 외에도 찾을 수 있는 공간의 패턴이 한 가지가 더 있다. 직사각형으로 나뉜 서가의 격자 형태와는 다른 방향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패턴,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외부에서 지붕을 거쳐 들어오는 햇빛은 바닥에 넓은 패턴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바닥에 맺힌 그림자의 패턴을 인식하고 있을까?(P14)


나 또한 인식하지 뫃못했다. 책에 실린 사진을 통해 바닥에 패턴이 생기기 이 패턴이 지붕을 통해 비춰진 햇빛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뮤지엄 산의 경우, 건물을 통해 산책을 하도록 기획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단지 공간이 넓어서 듬성듬성 채웠구나, 넓은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러한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된 것이라는 점에 놀랐다.


보통의 박물관을 떠올려보자. 박물관으로 들어가 티켓을 구매하고, 바로 옆에 있는 전시장 1로 들어간다. 전시장 1을 모두 보고 나면 그 옆의 전시장 2로 이동한다. 이동은 모두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동선이다.
안도 다다오는 사람들을 내부에서만 빙글빙글 돌리고 싶지 않았다. 워낙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니, 조금 멀어도 괜찮았다. 이이들에게는 맘껏 뛰어 돌아다닐 수 있는 공원을, 어른들에게는 오래간만에 산책다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
(
중략) 자작나무 숲이 끝날 즈음에는 콘크리트 벽이 동선을 유도하고 있다. 쉽사리 박물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 더 풍경을 즐기며 콘크리트 벽을 쭉 따라 걸으면 물이 얕게 담겨 있는 수공간이 나오고 콘크리트 벽은 끝이 난다.
콘크리트 벽이 끝나는 지점부터 빼꼼, 박물관의 전체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강렬한 붉은 조형물 뒤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돌덩어리 건물이 바로 뮤지엄 산의 본모습이다.(P113)


소설가의 문장 중 기획되지 않은 문장이 없다고 하는데, 건축도 마친가지인 것 같았다. 잘 지어진 건축은 모든 요소에 기획되지 않은 부분이 없는 듯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어디를 방문하든 오랜 시간 머무르며, 찬찬히 둘러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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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아두면 시리즈 1
씨에지에양 지음, 김락준 옮김, 박동곤 감수 / 지식너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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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씨에지에양 지음, 김락준 옮김. 지식너머, 2019


 

 

화학 전문가가 들려주는 48가지 화학 생활 상식.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는 책 제목처럼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최근 가습기 살균기, 살충제 계란 사태를 겪으며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화학물질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화학물질에 대해 제대로된 정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 책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MSG는 몸에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MSG는 정말 건강을 해칠까?>를 읽고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 과학자들은 연구 끝에 이 물에서 화학조미료의 원료인 글루탐산을 추출했고, 글루탐산염 중에서 안정성과 용해도가 가장 뛰어난 글루탐산모노나트륨은 그 자체로 화학조미료가 되었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화학조미료는 천연 식재료에서 발굴한 조미료이다.(P29)


 

글로탐산모노나트륨은 인공 발효를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어쨌든 천연 식재료에 존재하는 성분이다. 열량 섭취를 낮추기 위해서 아스파탐(인공 감미료)이 첨가된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이 건강에 나쁘다는 이유로 화학조미료 섭취를 꺼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화학조미료가 아스파탐보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니 말이다.(P31)


 

프라이팬의 종류와 차이, 적절한 사용법,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알맞은 그릇에 대한 설명은 그동안 무심히 다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던 습관을 바꿔야 함을 알게 되었다

.

 

또한 광고에서 막연히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자사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지만 정작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통통한 새우가 싱싱하고 맛있는 새우라는 잘못된 신념은 판매자로 하여금 새우에게 인산염을 먹이도록 만들었음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튀겼을 때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새우를 좋아하는 것이다. 시장의 어느 한 상점에서 새우에 인산염을 먹여 팔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새우의 크기가 작아서 장사가 잘 안 되는 다른 상점들도 덩달아 새우 수조에 인산염을 타기 시작한다. () 툭 까놓고 말하면 새우는 일단 커야 하고 튀겼을 때 바삭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잘못된 기대를 탓해야 한다.(P93~94)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는 먹거리 관련 화학 상식뿐만 아니라, 세안과 목욕, 미용, 청소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수제 비누는 천연적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100% 천연수제 비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수제 비누이건 공장에서 대량 생산산 비누이건 모든 비누는 비누화라는 화학 반응을 거쳐야 끈적끈적한 유지가 때를 깨끗이 씻어 내는 비누로 변한다. ‘비누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해서 비누를 만든다. 사람들이 재료상에서 구맿매한 수산화나트륨은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이다.(P161)


 

잘못된 정보로 공포심을 조장하고, 제대로된 선택을 방해하는 상황에서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 번 읽고 그칠 것이 아니라 수시로 읽으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식품 관련 뉴스는 제목만 보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만 믿고 흥분하면 안 된다. 지식과 이성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한다.(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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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비로소 나다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 익명의 스물다섯, 직장인 공감 에세이
김가빈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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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비로소 나다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김가빈 지음, 스노우폭스, 2019

 


퇴사후 비로소 나다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취업을 준비하고 입사하고 퇴직하면서 겪은 26명의 경험이지만, 이는 모든 직장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올해로 직장 생활 16년차인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직장생활 중 어려운 점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사괌과의 관계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경험담에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어려움들이 많이 담겨 있다.

사수로부터의 이유 없는 갈굼(?)과 냉대, 불명확한 업무 지시, 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 등.


이러한 어려움에 퇴직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조직이라면 어딜가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직자를 낙오자 취급하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럴수밖에 없다.


 

이만한 연봉에 복지와 대출 제도까지 갖춰진 일자리를
또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쉬이 사직서를 내밀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무시 못했죠.
네가 여기서 나가떨어지면 그저 낙오자가 될 뿐이야.
버티면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왜 낙오자가 되려는 거야?”(P52)

 

그리고, 교통사고가 났음에도 병가를 내지 못하고 일과 치료를 병행하며 몸을 혹사시켜야 했던 이야기는 남일 같지 않아 더욱 가슴아팠다.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몸을 혹사하며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전치 두 달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회사에는 나를 대체할 인력이 없었다.(
)
결국 새벽에 진통제를 맞고 출근해서 점심 먹으러 나갈 때
물리치료를 받는 생활을 이어 갔다.(P64)

 


학창시절 직업은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직업은 나홀로 가질 수 없는 현실에서 직장은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는커녕 정치만 난무한 곳이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해질수록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동료를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들만 있게된다. 주인의식을 요구하지만,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신입사원과 로열패밀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지급받는 급여에 정비례한다. 급여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각종 복리후생을 포함한 처우라 하여도 무방하다. 임원의 10분의 1 급여를 받고 임원 만큼의 로열티를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요구가 부당하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학교는 우리에게 노동자의 권리 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경영마인드라는 미명하에 자본주의, 기업의 시스템을 순응하도록 가르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에도 취업만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실상은 정년을 채우기도 힘들고 50을 넘기기도 쉽지 않다.


 

시스템이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퇴사후 비로소 나다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문제를 개인화하며 덮지 않고 근본적인 시스템을 고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기업은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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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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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허영선 지음, 마음의숲, 2019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옿1947년부터 1954년까지 77개월간의 제주 4.3항쟁으로 인해 이유도 모른 채 받은 총격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피해자들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파도 아프다고 평생 말하지 못한 생존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가슴아프게 전해진다.

194921, 시퍼렇게 칼 선 성산포 터진목 집단학살터 현장이었어. 영문 모르고 끌려 나온 수많은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함께였어. 젊은 엄마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꼬옥 품에 안고 바람 부는 모래밭에 나왔다지. 당연히, 설마, 쏘랴 하셨겠지. 하늘을 뚫고 탕탕탕, 순간 몸을 관통한 총알에 엄마는 아기와 함께 스러졌지. 피범벅이 된 엄마의 가슴에서 하늘을 찢는 세 살배기의 겁 질린 울음이 곤드박질쳤어. 엄마의 피 가슴을 쥐어뜯던 아기가 꼬물꼬물 모래밭에서 버둥거렸어. 가슴과 양쪽팔에 세 발의 총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아기가 본능적으로 기어나왔던 것이지. 그러자 멀리서 다시 쏘았어. 그런데도 아기는 죽지 않았어. 그러자 다시 쏘려던 토벌대는 이놈은 하늘이 살린 놈이다. 죽여선 안 되겠다그랬다지. 아기는 당시 성산초등학교 앞에 살던 고모한테 강제로 맡겨졌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은 그때 의약품을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잘 키우라 했다지.(P252-253)


, 그땐 봄이었습니다. 고사리가 너무 좋았어요. 지천에 깔렸어요. 난 벗들이랑 매일매일 새벽부터 들에 나가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생고사리는 열네 살에겐 정말 무거웠어요. 등짐 져 나오는데 친구들은 다들 자기네 집에서 마중 나왔어요.
근데 우리 집에선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앋았던 겁니다. 왜 나만 마중 오지 않느냐고 집에 와서 막 울었어요. 그런데도 뒷날은 또 갔어요. 한 포대기 등에 지고 오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
멀리서 우리 아버지가 뒷짐 지고 겅중겅중 마중 오고 있었어요. , 우리 아버지구나, 난 속으로 기벘뻤어요. 아버지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어요. 그때 저 동쪽으로 순경들이 발 하나 가득 보였어요. 순경 10여 명이 팍팍 날아왔어요. 팡팡 쏠 것 같아서 난 무서웠어요
……
밤이 캄캄해도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어요. 동네 사람들도 형님만 안 보인다고 찾으러 다니고. 초하루 달이 불그스름하게 져올 때 …… 가서 보니 아버진 구덩이를 이만큼하게 파놓고 거기에. 얼마나 못 견뎠는지 꽝꽝한 조밭을 막 손톱으로 판 흔적이 보이는 겁니다. 피만 졸졸 나고 있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야.……
나 때문에 고사리 마중 나갔다가 죽었다고 막 소문 파다했어요. 장례를 치르고 나니 가을 들었어요. 난 고사리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P20-21)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을 통해 제주 4.3항쟁을 마주하면서 나는 80년 광주민중화운동이 떠 올랐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누구도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신문에서도 티비에서도.


고등학교까지 역사과목을 좋아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작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은 줄줄이 외우고 각각의 왕들의 재임시기에 있었던 일들은 연도까지 줄줄이 외우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부분과 반쪽짜리에 불과한 내용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많은 책들을 탐독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고,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주 4.3항쟁을 마주하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제주 4.3항쟁은 광주 5.18과 같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학살 사건이면서 77개월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자행된 학살이라는 면에서 더 충격적이었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동안 자행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제주 4.3 항쟁도 수많은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누구에 의해 왜 자행되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고, 아직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하며 참아내는 생존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소중한 가족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묻지도 못하고, 연좌제라는 덫이 있어 희생자의 가족이라는 이야기도 못하는 생존자들의 아픔은 세월로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면 잃어버린 다리에도 고통이 느껴져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있는 다리가 아프다면 움켜쥐고 주물러보기도 하겠지만 잃어버린 다리는 주무를 수 없어 고통이 더하다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유가 밝혀지고 책임있는 자의 사죄만이 아픔을,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누군가의 평생을 괴롭히고, 누군가의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
장면들 앞에 가해자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리라.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조차 없이, 타인의 삶에 평생의 상처가 될지 모를 행위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다 하겠는가.(P106)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를 교훈 삼아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음이라고 했던가? 그런면에서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집단과 블랙리스트로 정적을 제거하고 국정을 농단한 집단을 마주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역사를 통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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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사리사욕 가득한 정치집단은 이익을 가져가고,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은 희생양이 될 것인가. 무고한 희생에 대한 책임은 무겁게 하여 다시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적 수단을 악용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본다.


해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것은 이다.
욕심은 금물,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생명의 또다른 신호다.
삶의 철학이다.
살기 위해 물의 생을 택했으나, 목숨은 그 숨과의 안 보이는 대결이다.
숨은 인생이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시대 권력자들이 보이지 말아야 할 바닥을 보이는 현실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살라고 한다.
숨비소리를 들으라고 한다.(p127)


나날은 행복해야 한다. 역사의 블랙리스트로 사라진 이 땅의 삼촌들과 그들의 후손인 모두의 가슴에도, 그리고 정의는 늘 가슴 깊이 불꽃을 태우는 자들에게서 왔음을 잊지 말자. 행복도 그렇다. 얼음을 깨고 기어코 샛노란 복수초가 눈을 뜨듯. - P66

누군가의 평생을 괴롭히고, 누군가의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 장면들 앞에 가해자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리라.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조차 없이, 타인의 삶에 평생의 상처가 될지 모를 행위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다 하겠는가. - P106

해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것은 ‘숨‘이다. 욕심은 금물,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생명의 또다른 신호다. 삶의 철학이다. 살기 위해 물의 생을 택했으나, 목숨은 그 숨과의 안 보이는 대결이다. 숨은 인생이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시대 권력자들이 보이지 말아야 할 바닥을 보이는 현실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살라고 한다. 숨비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 P127

오랜 저항 정신이 스며 있는 제주도의 지울 수 없는 상처는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항쟁이다. 제주도를 하루아침에 ‘붉은 섬‘으로 내몬 가장 참혹했던 역사의 바람이었다. 국가 공권력이 동족끼리 적을 만들었던 야만의 시대, 광기의 시대였다. - P259

남보다 한발 앞서 걷는 사람들의 길은 척박하고 힘들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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