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 / 푸른역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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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작년부터 언어, 개념, 학문 체계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겹치는 영역이 생기고 그 때는 이해되지 않고 넘겼던 것들이 이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짜릿함과 성장의 기쁨이 아닐까. 


거의 1년 만에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북한의 언어학자 김수경이라는 인물을 파헤친다. 개인의 역사이자 평전이지만 조선어학 이론을 확인할 수도 있다. 서술 방식이 독특한데 역사와 이론을 교차로 배치하여 낯선 인물과 역사, 그의 이론 중 끌리는 부분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두 달 전쯤 한국어 맞춤법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느낀 바가 있었다. 한글 맞춤법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은 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훨씬 복잡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잘못 써온 맞춤법을 마주하며 쉴 새 없이 머리에 돌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물며 현재 북한에서 사용 중인 조선어는 어떨까.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고 봐야 했다.


'우리말' 개념은 그것을 상대화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 단어 어디에도 국가를 지시하는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말'에는 분단 상황을 일단 괄호 안에 넣어 탈분단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레말'과 달리,'우리말'에는 민족이나 국민을 나타내는 요소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의 설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일본에 사는 나와 같은 일본인이 이 언어를 '우리말'이라고 부르는 것의 의의가 있다. 내가 '우리말'이라고 하는 순간,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 뭔가 '이물질' 내지 '침입자'가 들어온 듯한 감각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위화감도 모두 포함하여 '우리말' 개념의 가능성에 걸고 싶다. 장뤼크 낭시는 동질성과 단일성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존재와 복수성에서 공동성을 사고하려 했다. 낭시에 따르면, 전혀 공통성이 없는 특이한 존재들 간에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며,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특이한 존재가 형성된다. - P6~7

'우리말'과 '우리 나라'는 서로 다른 범위를 갖고 있다. '우리 나라'는 영토와 주권이 단일한 공간이라면 '우리말'은 그보다 더 다층적이고 넓은 범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김수경이라는 낯선 인물, 낯선 이론을 만났다. 서두에서 깔기는 했지만 조선어의 이론 부분은 역시 어려웠다. 그러나 이론이 어려워서 힘들다 싶으면 그의 흥미로운 역사를 풀어 놓기 때문에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인 이타가키 류타는 문화인류학자인데 전작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의 상주라는 공간의 지역사를 훓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필 김수경이라는 개인에게 꽂혔는가 궁금했다. 2009년 연구년을 맞아 보스턴 근교에 머물렀던 저자는 2010년 북미에 거주하는 한반도 북부 출신들과 인터뷰 조사를 위해 캐나다의 토론토를 방문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임혜영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언어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임혜영은 당시 토론토 대학에서 외국어 교원으로 근무 중이었고 아버지는 짐작하겠지만 김수경이다. 그 때는 김수경이라는 학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교토에 돌아왔다가 주변 연구자들에 의해 그가 북한 언어학의 기초를 닦은 학자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본격적인 자료 조사를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 이 책의 집필의 출발점이 되었다. 


김수경은 1934년 경성제대 예과를 만 15세에 입학하고 1937년 만 18세의 나이에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진학했다. 그는 법문학부에서 철학과를 선택했는데 당시 학부에 언어학 강좌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공이었다고(그렇지만 그 와중에 순수철학을 공부했다는 게 놀랍다). 김수경은 진작부터 언어학에 관심이 있어서 고바야시 히데오(소쉬르의 이론을 번역함) 연구실을 찾아간다. 그는 일본어학, 조선어학를 넘어선 일반언어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1940년 도쿄제대 문학부 대학원에 입학하여 4년 간 재학하면서 조선어학자인 이희승을 만나 친하게 지냈고, 또 이남재와 결혼을 한다. 1944년 자퇴를 하는데 조선어학 교수인 오구라 신페의 퇴직, 아내의 임신, 막바지에 이른 전쟁으로 학도병으로 출진해야 하는 상황 등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 그리고 그는 언어 천재였다고 한다. 무려 9개국어를 했다고. 그가 언어학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해방 후, 김수경은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좌파가 주도한 자치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치위원회 내부에서는 김수경을 조교수로 언어학 강좌를 맡기로 내정했으나 당연히 미군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실제로는 이희승이 맡았다고). 그는 11월 30일자로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위원을 사임했다. 이처럼 그는 해방 후에도 좌파 지식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국어국문화보급회, 조선언어학회에 참여하여 언어학 활동은 계속 이어갔다. 북한에서 김일성대학의 창립이 결정될 무렵 남한은 서울대학교 설립 계획이 추진된다. 그는 1946년 5월, 경성제대 동기생인 박시형의 보증으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김석형, 박시형과 함께 8월 17일 월북했다.


조선어의 문자체계의 터를 잡는 역할을 한 것은 김두봉이다. 김두봉은 한자의 폐지를 실시하고, 풀어쓰기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1948년 조선어 신철자법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데 여기에 김수경도 함께 참여했다. ‘조선어 신철자법’에서 핵심적인 것은 두음법칙의 폐기, 절음부의 도입, 신6자모 도입이었다. ‘토’의 개념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접사, 의미 중 문법상 의미를 가지는 것만 따로 분류한 말이다. 나는 이 중 풀어쓰기와 두음의 고정 표기, ‘토’의 개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만 풀어쓰기는 나중에 사용상의 문제로 버려지게 된다. 생각해보라. ‘감’을 한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을 ‘ㄱㅏㅁ’ 이렇게 표현하면 글자 수도 3개가 되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김수경은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세기가 되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이 주류를 잡게 되고 구조주의가 유행한다. 문헌학으로 대표되는 개별화와 구조언어학으로 대표되는 일반화는 근대 언어학의 지향성이 두 축이 되었다. 김수경 언어학의 초기 업적에는 ① 구조언어학, 나아가서는 언어철학 등 좀 더 보편적인 언어 문제에 대한 지향성, ② 조선어에 관한 개별 구체적인 역사언어학에 대한 지향성, 그리고 그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해방 후, 특히 월북 후에는 언어가 '이래야 한다'는 표준을 책정하려는 언어학, 즉 ③ 규범의 창출이라는 실천적인 언어학이 더해진다(P86~87). 


스탈린은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 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에 나타나는 심리 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생겨난,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견고한 공동체이다”고 할 정도로 언어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 구조를 실현한 언어학자가 니콜라이 마르와 그 학파였다. 마르학파는 스탈린이 최고지도자 지위에 있을 때 활약했는데 김수경이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향한 조선어학은 규범화, 구조화에 바탕한 것으로 국제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민족적 자주’ 개념이 강조되면서 조선어 문법에도 변화가 생겼고 관련하여 김수경은 가장 바쁜 세월을 보낸다. 1956년까지 김수경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과학연구부장’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그는 김두봉의 사상 비판 때 활동에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계속 교육과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1967~68년 김일성 유일 체제가 진행되면서 대학을 그만두고 교육 일선에서 물러나 도서관장을 맡게 된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이 되면 복권이 되고 그의 업적이 재조명된다. 


간단하게 그의 연구와 업적과 관련하여 설명했는데 사실 개인사는 훨씬 드라마틱하다. 한국 전쟁이 터지자 그는 교육 때문에 진도에 내려가야 했다. 전쟁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내와 딸들은 이남으로 내려갔고 그렇게 가족은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교수이자 학자로 엘리트였음에도 그는 입대해야 했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김수경은 1986년에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학술토론회로 주최자였던 최응구의 도움으로 둘째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1988년에 둘째 딸은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6년 큰 아들과 재회하였고 아내였던 이남재와는 1988년에 만날 수 있었다. 김수경은 2000년 영면한다. 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20세기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의 국어학자 중 한 명”이라는 식자의 언급과 함께 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2006년 ‘동숭학술재단이 선정한 언어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지역 연구를 포함한 오늘날의 학문 분야를 낳은 식민주의와 냉전이라는 힘에 대해, 비판적인 지역 연구로서의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고 말하고 싶다. 월러스틴과 마찬가지로 학문 분야의 장벽을 넘어 국민국가를 초월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일한 세계체계 분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등장했을 때의 비판적 계기를 계승하는 것, 즉 식민주의와 냉전이 남긴 틀의 재생산에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깨뜨리는 앎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작업을 추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재외 코리안의 경험에 끝까지 접근하면서 앎을 재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코리아학'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코리아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식민지기부터 냉전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었던 '조선', '남한', '북한'이라는 카테고리를 일단 괄호 안에 묶어서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 P12~13


저자는 이 책에서 김수경이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전체사'를 그려내려고 했다. 한정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의 역사를 온전히 재구성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개인사=전체사'는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한 사람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채로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김수경은 20세기 대부분의 시기를 살아낸 인물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해방 전후, 북한의 현대 시기까지 개인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평전으로는 충분한 평가를 주고 싶다. 조선어학 이론의 기초도 얻을 수 있다. 다만 저자가 말한 대위법적 평전의 시도가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을 생각하여 가능한 쉽게 써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학문사다보니 개념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내가 5별을 준 것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하는 등 추적이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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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나라 말을 잘 아는 사람은 대단해요 여러 가지를 알면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을 알기도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기를... 식구들과 헤어진 건 마음 아팠겠네요 나중에 만났다고 해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26 14:07   좋아요 2 | URL
진짜 천재는 괜히 천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영어, 중국어 공부만 하는데도 허덕이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 분의 지위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회를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돌아가시기 전까지 만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젠더‘는 차이의 체계를 구성하고 분류하는 핵심이다. ‘섹스‘와 ‘젠더‘라는 용어의 복잡한 분화와 융합과정은 이 단어들의 정치적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 ‘섹스‘와 관련되었던 의학적 의미들은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영어에서는 점진적으로 ‘젠더‘에 축적된다. - P235

엥겔스는 계급과 국가 사이의 매개적인 구성체로서 가족을 최우선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성별의 구분을 분리하여 고려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적대적인 구분에 포함시켰다[카워드(Coward), 1983]‘ 가족 형태의역사적 다양성과 여성의 종속이라는 문제의 중요성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연스러운 이성애를 토대로했기 때문에 섹스와 젠더를 역사화할 수 없었다. - P238

여성을 자연의 범주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자기 구성적인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정치적·인식론적 노력 중에, 젠더의 개념은 생물학적 섹스의 오염으로부터격리되는 경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종속적인 존재로 출현한다고 주장하는 ‘나쁜 과학‘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섹스 혹은 여성으로 간주하여 구성할 것인가라는 진행 중인문제는 이론화하기 힘들어졌다. ‘생물학‘은 개입에 열려 있는 사회적 담론이라기보다 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 P243

섹스-젠더 체계의 보편화 권력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분석적인 분열은 유럽-아메리카 페미니즘의 자민족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경향의 일부로서 특히 유색 여성들로부터치적으로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젠더 범주는 그 밖의 모든 ‘타자들‘을 모호하게 하거나 혹은 종속시켰다. 하나의 ‘제3세계 여성(Third World Woman)‘을 특징짓기 위해 서구의 혹은 ‘백인‘의 젠더 개념을 이용하려는 노력은 오리엔탈리즘,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담론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종종 초래했다 [모한티(Mohanty),1984; 아모스 외(Amos et al), 1984]. 게다가 미국 ‘유색 여성‘ 자체의 섹스화된 정체성은 복잡한 다툼을 통해 정치적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위계적인 차이의 생산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이론을 산출했다. 그런 생산 체계 속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그리고 1960년대 시민운동과 반전운동으로부터 출현했던 여성운동초기 시절부터, 인종, 국적, 섹스 계급 등은 서로 얽혀 있었다. "여성들의 사회적 입장성에 관한 이런 이론들은 ‘총칭적인‘ 페미니스트 이론에 토대를 제공하고 조직했다. - P261

젠더, 인종, 계급에 대한 의식은 가부장제, 식민주의, 자본주의라는모순적인 사회 현실을 겪어 온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강제로 떠안긴 성과다. 그렇다면 내 화법에서는 누가 ‘우리‘로 간주되는가?
‘우리‘라는 강력한 정치 신화를 정초하는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모임에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있을 법한 단층선은모조리 따라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페미니스트들이 고통스럽게 분열되면서, 여성들 사이에 자행되는 각종 지배의 기반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되어 온 여성의 개념을 규정하기 어려워졌다. 나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역사적 위치(백인, 전문직, 중산층, 여성, 급진 정치, 북미, 중년의 신체)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에게 정치적 정체성이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근원은 너무나 많다. - P282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이 본질화하는 것은 노동의 존재론적 구조, 혹은 그 유비물인여성의 활동이다. "내가 볼 때 이 입장을 취할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마르크스식 인본주의를 계승하면서 너무나 서구적인자아를 함께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의 경우에 문제는 단일한 여성이라는 실체와 같은 것이 있다는 식으로 자연화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입장은 여성들을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 현실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감당하는무를 강조했고, 이와 같은 공식화를 통해 페미니즘에 기여했다. - P288

여성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은 지배의정보과학이라는 생산/재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체제 속으로 통합/착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 일터, 시장, 공적 영역, 몸 자체, 이 모든 것이 거의 무한한 다형적 방식으로 분산되고 인터페이스로 접합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여성과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마다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에 대응하는 국제적 저항운동을 만들어 내기가무척 힘들어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와 같은운동이 절실하다. - P297

새로운 경제적, 기술적 배치는 복지국가의 붕괴, 그리고 여성에게 본인뿐 아니라 남성, 아이, 노인의 일상까지 챙기라는 주문이 점점 강해지는 것과도 관련된다. 복지국가가 해체되는 과정에 안정된 직장을 예외로 만드는 가사경제에 의해 산출되고, 여성임금은 자녀 부양을 위한 남성 임금과 같을 수 없다는 기대로 지탱되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는 긴급한 관심의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 가장 가구가 생겨나는 원인은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의 함수다. 하지만 이 추세가 일반화되면서 여성 연대의 기반이 다양해졌다. 여성들에게 어머니라는 지위를 강요해 온 현실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 여성이 일상을 지탱하는 역할을 으레 맡게 되는 현상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이며 갈수록 전쟁 의존적인 경제와 통합되는 현상 자체는 새롭다. - P303

사이보그는 부분성, 유동성, 때로는 성과 성적 체현의 측면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젠더는 심오한 역사적 폭과 깊이를지녔어도, 결국에는 보편적인 정체성이 아닐 수도 있다. - P326

사이보그 젠더는 글로벌한 복수를행하는 로컬의 가능성이다. 인종, 젠더, 자본은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이보그 이론을 요청한다. 사이보그에게는 총체적 이론을산해 내려는 충동이 없지만, 경계 및 경계의 구성과 해체에 대한개인적 경험은 있다. 파급력 있는 행위를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하나의 관점과 지배의 정보과학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법을 하나제시할 정치적 언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신화 체계가 있는 것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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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5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 이제 퇴근하는데요. 퇴근길에 저도 이 책 또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화이팅!!
 


[CH13]

아빠는 미아에게 허쉬 초콜릿 쿠키를 베이킹해서 먹으라고 했다. 여전히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아는 기뻤다. 오븐을 께끗히 청소한 뒤 미아는 행크와 함께 베이킹 재료를 사기 위해 식료품점을 향했다. 거기에서 “이민자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하고 누군가가 해놓은 페인트칠이 남겨져 있었다. 행크는 미아의 눈을 가렸지만 그녀는 이미 그 문구를 봐 버렸고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 미아가 학교 선생님의 차별 대우에 대해서 털어놓자 행크는 자신이 은행에 가서 겪었던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행크는 인종주의자는 어디에든 있다며 만날 때마다 일희일비하면 힘들 것이라고 그들을 계속 설득해서 태도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CH14]

아이들과 이야기하던 중 그래피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마을에서 차별적인 언사가 담긴 그래피티를 봤다고 이야기하며 광분한다. 이 때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등장했으니 Mrs.Welch였다. 그녀는 지금 그래피티 시간이 아니라며 주의를 주었다. 미아는 함께 분노한 아이들인 Karena, Tomas, Jorge에게 쉬는 시간에 나무 밑에서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모여서 마을 주변에 보이는 혐오 단어 뿐 아니라 수시로 맞닥뜨린 혐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은 앞으로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며 비밀클럽을 만든다. 클럽명은 'Kids for Kids'로 했다. 

집에 가니 Anaheim Times의 기자가 프론트 데스크에 와 있었다. Annie Collins는 행크를 통해서 광고 이야기를 들었다며 모텔 식구들과 인터뷰를 하기를 원했다. 미아는 기쁜 소식에 루페에게도 알렸지만 그녀는 할머니도 아프신데다가 인터뷰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며 거절한다. 행크와 미아 가족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미아는 자신이 미국에서 경험한 일들을 나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이고 자유를 쫓는 나라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미아는 Annie가 인터뷰를 하며 받아 적는 모습을 무척 인상적으로 여긴 것 같다. 


[CH15]

미아는 루페에게 클럽에 대해 이야기하고 루페는 모임을 나무 아래로 함께 갔다. 3명의 친구들이 각자의 친구(Rajiv, Hector, Sophia)를 데려와 그들만으로도 6명이 되었다. 그들은 클럽의 룰을 정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모임을 진행하던 중 제이슨이 지나가다 자신도 끼워줄 수 있느냐 물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경계하는 듯 했고 루페는 특히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제이슨이 무슨 모임인지 물어봐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중이라고 답했다. 미아는 요전날 제이슨 집에서 얼굴을 붉혔던 일 때문에 앙금이 남아 있었고 제이슨은 그 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며 화를 낸다. 자신은 학교에서 놀림거리라면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미아는 자신도 미국에 와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가 불쌍해졌다. 아이들은 민망해했고 제이슨은 클럽 멤버가 되었다. 미아는 제이슨에게 요전날의 일을 사과했고 요리 실력을 다시 보여달라고 말했다. 제이슨 집에 가는 것이 그러니 모텔에 와서 하기로 한다. 


[CH16]

미아 사촌인 Shen에게 편지가 왔다. 그는 베이징 중앙 부근에 아파트를 사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second ring 근처라고 했다. 베이징에는 예전에 황제가 살던 황궁을 중심으로 rings가 둘러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미아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미아는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가 걸려와 매니저의 말로 전화를 받는다. 알고 보니 루페였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미아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어떤 식으로 장례식을 치뤘는지 생각해보려고 애썼고 아빠에게 예전에 Tai Nai Nai의 장례식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물어보았다. 아빠는 중국에서 장례식을 하면 가짜 돈을 시체와 함께 묻고 연기를 태우면 영혼이 하늘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아는 아빠와 weeklies들과 가짜 1943 copper alloy pennie를 준비하고 루페를 찾아가기로 한다.


[CH17]

다음날 미아는 루페에게 가짜 물건들과 아빠가 준 100달러의 진짜 돈과 엄마가 만든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미아가 그린 것은 비록 가짜 돈과 가짜 의료 보험 카드지만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었다. 루페는 무척 고마워했다. 

이 때 Mrs. Welch가 교실로 들어오며 말하길, "미아가 신문에 나왔네요! 제목은 '지역 모텔을 사기 위해 이민자들과 시민들이 뭉쳤다: The Calivista Under New Ownership.'" 이 때 Bethany가 그럼 가정부라는 소릴 해댔고(그는 작년에도 미아를 열받게 했던 아이다) Scotty는 어떤 이민자를 일컫는 것이냐고 쏘아댔다. 미아는 너희들 전부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대꾸했다. Mrs. Welch는 그만하면 됐다며 미아에게 청소를 주문했다. 청소를 다 마친 후 그녀는 다음 번에는 학급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기 전 미리 말해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CH18]

Kids for Kids 클럽 아이들이 나무 아래 모여 모텔에 대한 기사가 난 것에 대해 축하했다. 이제 멤버들이 총 10명이 되었다. Hector는 아빠가 실직하고 난 뒤로 모텔에서 지내오고 있다고 고백했다. Rachel은 클럽에 새로 들어온 첫 백인 멤버로 몇 달 전 은행에 집을 잃는 바람에 차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의 클럽 멤버인 Tyler도 역시 차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미아는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지낼 줄은 미처 몰랐다고 느꼈다.


[CH19]

행크는 최신, 최첨단, 최고급 전화 시스템을 거창하게 소개했는데 자신의 신용 카드로 장만한 것이었다. 미아의 엄마는 그것을 보고 속상해하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카드사에서 카드 발급 거절의 편지를 받은 것이었다. 엄마는 받은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미아는 그걸 주워 비자사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를 위한 딸의 마음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She has plenty of credit with the people around her. …”


[CH20]

다음 날 미아는 학교에 갔더니 책상에 루페의 편지가 있었다. 그녀의 할머니를 그린 그림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Mrs. Welch는 또 다른 작문을 쓰게 했다. 이번에는 “This one is about what art means to you.”였다. 그날 오후 모텔 프런트 바깥에 정보 교환 차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Uncle Rodrigues는 매일 인터뷰를 본 뒤 종일 설거지를 하지만 사장은 사람들을 무료로 부려먹는데 사기가 아니겠느냐면서. 사장은 그렇게 수년 간 사람들을 속였다고 이야기했다. 미아는 아울렛에서 겪었던 불만과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함부로 대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같이 분노했다.


[CH21]

제이슨이 요리를 가르쳐준다고 모텔에 왔다. 그는 역시 요리사였고 맛있게 요리를 먹은 뒤 설거지까지 다 끝냈다. 미아는 다음 달에 LA에서 Proposition 187 법안 항의 행진이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제이슨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지만 그 녀석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미아의 엄마는 얼룩을 제거하려고 테이프를 가져다달라고 미아에게 말했다. 제이슨은 우유로 제거하면 잘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루페의 엄마가 자신의 집에서 녹슨 것에 우유를 적셔서 제거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미아는 루페의 엄마가 제이슨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미아는 오래된 진공 청소기를 새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망가뜨리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제이슨에게 함께 하자고 했다가 제이슨의 엄마가 들이닥친다.


[CH22]

미아는 뉴스에서 Prop 187이 통과되든 안 되든 증오 범죄가 증가할 것은 분명하다고 캐스터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열이 받은 미아는 모텔 바깥에 있는 광고 문구에 두 개의 단어를 더 집어넣는다. “IMMIGRANTS WELCOME.” Mrs. Welch는 작문 시험에 미아에게 B- 점수를 부여했다. 미아의 엄마는 새로 알게 된 중국인 지인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기로 하고 립스틱까지 발랐다. 그러나 미아가 그들 앞에서 가짜 쇼핑 백을 들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기분이 팍 상했다. 미아는 그녀의 pretending이 지겨웠다. 우리는 이제 모텔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제 ‘척'은 그만해도 될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날 밤 부모님은 대판 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CH23]

미아는 엄마가 속이 상해 집을 뛰쳐나갔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엌에 계신다고 했다. 미아는 아빠에게 괜찮냐며 물었는데 아빠는 어른들은 종종 싸운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아는 엄마에게 가서 사과했다. 엄마도 미아에게 사과했고 둘은 서로 포옹을 했다. 미아는 모텔 수영장에 PH 지수 테스트를 하러 갔다가 벽에 “Whites Only.”라는 단어를 보게 된다. 루페는 미아에게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우리가 쪼는 것이라고 말했다.


[CH24]

모텔을 밝은 노란색으로 칠하는 등 새롭게 단장했다. 그러나 여름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옆 모텔들은 장사만 잘되는데 Calivista 모텔만 파리가 날렸다. 투자자들이 찾아와 모텔 문구에 대해서 문제를 삼았다. 이건 사업이니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체부에게 편지가 왔다. 미아 엄마에게 온 카드사 편지였다. “Enclosed please find your new Visa credit card with a $300 limit.” 미아가 카드사에 보낸 편지가 효과가 있었고 결국 엄마에게 신용카드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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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에 형성되었던 초기의 공식(formulation) 이후로, 생물학에 관해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생물학이 기원에 관해, 창세기에관해,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근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부장제적 목소리로부터 물려받았다. 생물학은 아버지의 말에 의해 잉태되고 창시된 생명과학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부계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자 갈릴레오의 말이며, 베이컨의 말이고 뉴턴의 - P128

말이자, 린네의 말이고, 다윈의 말이었다. 반면 육신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리고 말씀은 자연스럽게 육신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젠더화되어 왔다(engendered). 샌드라 길버트(Sandra Gilbert)와 수전 구바(Susan Gubar)는 19세기 여성작가들을 연구하면서,
목소리를 구성하고, 권위를 가지고, 텍스트를 저술하고, 이야기를말하고, 말씀을 출산하려고 애쓴 여성들의 노고에 관해 논의한다.
저술한다는 것은 창시하고 이름 짓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워야만 했던 우리의 자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합법적권위를 부여받았던 텍스트인,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을 읽어내야만 했다. - P129

남아 있는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다양한 목소리로 여기서, 무엇을말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목소리 하나를 여성은생물학을 바라본다』의 후기가 제공한다.
남성 인간/자연의 안티테제는 인간에 의해 발명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연과 더불어 인류의 통일성을 실현하게(현실화한다는 말뜻 그대로) 될, 그리고 내부로부터 이해하게 될 관계를 재발명하는 것이다. (...) 과학은 인간의 자연 지배가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목표처럼 보였던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 출현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구성물이다. 그런 조건들은 변했고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그 길이 자연을 설명하고 향상시키기보다 파괴하기 쉬울 것이라는 점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여성들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운명은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았던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남성들보다 훨씬 더 빈번히 인정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실천해야 한다. (허버드 외, 1979) - P145

생물학의 규칙을 탈신비화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해 보인다.
자연은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구축되지, 화석 지층이나 열대우림에서 헐벗은 형태로 발견되지 않는다. 자연은 논쟁 대상이며, 여성은 그 싸움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일부 여성에게는 과학적인이야기의 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권위가 있다.

여성 학자를 포함한 많은 영장류학자들은 젠더가 자연과학의 내용을 물리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결과는 형편없는 과학이라고 일컬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증거가다른 해석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젠더는 관찰에서 피할수 없는 조건이다. 계급, 인종, 국가도 마찬가지다. - P192

여성 과학자들이 남성에 비해 더 착하거나 심지어 더 자연적인 이야기를 생산해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과학이라는 규칙의 안내를 받은 사회적 학문을 공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들은 규칙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구체적인 여성의 삶 속에서 훈련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평범한 문제인 것이다. 과학적 이야기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 비교 설화들의 의미를 향한 의무, 모델의 지위를 책임질 의무는 다면적이고 신비롭지 않으며 과학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잠재적으로 열려 있다. 과학을 만드는 사회적 과정을 무시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데 실패하고, 과학적 작업의 결과만을 사용하거나 오용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나는 현재의 역사적 조건속에서 여성, 양육 그리고 남성의 전쟁으로 얼룩진 오염에서 자유롭다고 주장되는 다른 무언가를 이상화하는, 자연에 대한 반과학적 설화를 추구하는 것은 책임감이 훨씬 덜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P193

포함과 배제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혹은 국적과 같이 고정된 범주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픽션 읽기라고 일컬어지는 고도로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생산된 포함과 배제, 동일시와 분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여성 의식을 표시한 당대의 지1도 위에서 대단히 특수하고 순수하지 못한 지역적/지구적, 개인 - P224

적/정치적인 우리의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각각의 읽기야말로교육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여성 경험‘이라는 막강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 특수성, 친화성이라는 호명을 통해 작동한다. 만회 불가능한 하나라는환상의 상실은 차이 속에 자리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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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로마 시대가 점차 진행되면서 철학은 양극으로 갈라졌다.
이 시대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정체성이 무너지면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한 시대였다. 이 개인은 두 가지 상반된 방향으로 나타났다. 그하나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접고서 내면으로 또는 작은 ‘우리‘로 움츠러든 개인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초월적 권력의 화신을 추구한 개인이었다. 전자는 디오게네스와 에피쿠로스로 상징되는이 시대의 상당수 사상가들에게서 볼 수 있고, 후자는 알렉산드로스, 로마의 군벌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로마 황제라는 존재로서 구현되었다.
이에 따라 철학 역시 양극화된다. 한쪽에는 소집단에 안주하면서 심리적평정을 꾀했던 철학 학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거대 권력에 봉사하면서 통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던 어용 철학자들-물론 현대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이 있다. 어느 형태가 되었든, 이는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에서의 철학/철학자에 비한다면 전락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P582

헬레니즘 - 로마 시대의 다른 철학들과는 달리 스토아철학은 수준 높-
은 논리학적 사유와 자연철학적 탐구를 보여주었고, 그 바탕 위에서 특히 윤리적 문제들에 천착했다. 이 점에서 그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은 세 번째의 위대한 철학 체계였다. 나아가 그것은 특히 지중해세계의 운명을 결정한 로마라는 거대한 힘을 떠받쳐준 정신적 기둥이기도 했다. 전문적인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로마의 지도급 인사들의 상당수가 스토아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로마사에서 진정으로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장교들도 대개 스토아주의자들이었다. 광폭했던 로마이지만 스토아철학이 그것을 굳게 받쳐주었던 것이다. 철학 자체로서는쇠락한 이후에도 그것은 지중해세계의 주요 가치로서 남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서구 사유의 한 성취로서 이해되고 있다. - P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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