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책을 샀다.

기존에 산 책도 아직 다 못 읽고 있지만 책을 구입하는 것만큼 기분을 잠시 전환시키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한 권의 신간만 빼놓고는 장바구니에 계속 몇 달째(?) 담겨 있는 책들 중에서 골랐다.



이 시리즈의 신간이 나올 때 눈여겨보곤 하는데 이번에 낸시 프레이저가 나왔길래 고민하다 구입했다.

얼마 전부터 사상의 좌반구를 읽고 있는데(아직 1부 밖에 안 읽어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음) 그 책에서도 낸시 프레이저가 언급된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사상가의 약력과 주요 사상을 빠르게 훓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관심이 간다고 나온 책을 모두 섭렵할 수는 없으니 이런 책을 통해서 저자의 살아온 길을 확인하고 애정이 간다면 관련 책을 더 구입하는 길로 나아가면 되겠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은 한국의 자본주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는 1950년대 전후 사회의 동력을 사상사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키워드는 근대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다. 오래 전부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함께 책을 읽는 분들에게서 적극 추천을 받은 바 있었고, 관련 서평을 읽어보며 구입을 결정했다.

   

<사쓰마와 시마즈 히사미쓰>는 메이지 유신의 승자인 사쓰마 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를 제시한다. 막부 말기 사쓰마 가는 당시 교토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시마즈 히마미쓰가 국부였다. 해당 역사에 대한 확장적 관점을 줄 수 있다고 함께 책을 읽는 분에게서 조언을 얻기도 했다. 관련하여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비교해보며 읽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일리아스의 등장 인물인 파트로클로스를 중심 인물로 하여 그려낸 소설이다. 일리아스를 각색한 소설이라는 것이 먼저 흥미로웠고 일리아스를 읽기 전후로 이 책을 읽어보면 또 다른 시선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오래 전 일리아스를 읽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쯤 일리아스도 재독해봐야겠다.


<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사실 언제 무엇 때문에 담아두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어떤 칼럼이나 책을 통해서 담았을텐데 이놈의 기억력... 이제는 장바구니에 담을 때도 무엇 때문에 담았는지 기록을 해놓아야 할 것 같다-_-



6월 중순 쯤부터 새 필라테스 코치 선생님을 만나 1:1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선생님은 이전 선생님보다 텐션이 높으셔서 약간 기빨리는 것이 있지만 운동을 세심하게 잘 지도해주시는 것 같다.

운동이 목적이니 운동을 잘 가르쳐주시면 됐지 싶다. 계속 수업을 진행하면 어색함도 나아지고 적응할 수 있겠지.

다행히 운동할 때 자세가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운동하라고 하셨다(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매사 회의하고 의심하는 습관이 있는 것이 운동에도 스며 있나보다. 허허...

주중에 2회 수업을 하는데 퇴근 후 하니까 하루가 정말 빨리 가는 느낌이다.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

2주째 주말에 하루는 근력운동, 또 다른 하루는 유산소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힘들기는 하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개인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나중에 선생님이 없을 때도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



7월부터 불볕 더위가 시작되었는데 지난 주말부터 비가 내리더니 그나마 날이 좀 시원한 듯 싶다.

옆지기는 며칠 전 장염에 걸려서는 고생을 하다 이제 겨우 나아졌다(다른 건 다 참을만했는데 커피 못 마시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를 바란다. 



피에쓰)

매년 알라딘 당신의 독서 기록을 확인할 때면 눈여겨보는 것은 좋아하는 책들의 분야다. 올해는 이렇게 나왔는데 예상한 대로의 순위인 것 같다. 


1위

한국근현대사

2위

여성학/젠더

3위

한국소설

4위

중국사

5위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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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어릴 때 그림책을 너무 많이 사서 1위 어린이, 그림책을 넘어설수가 없습니다. 그림책 안산지 15년은 넘은거 같은데 아직도 그림책이 1위예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5-07-22 09:24   좋아요 0 | URL
어린이, 그림책을 많이 사서 읽으실 수 있었다니 부럽습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사주실 수 있는 여력이 되었더라도 공터에서 고무줄하며 놀거나 했을 것 같지만!ㅋㅋ
요즘은 꼭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들이 제법 많이 나오더라구요. 갈수록 주변 환경이 나빠지다보니 인간 자체도 각박해지는 것 같아서 동화의 수요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희선 2025-07-25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온 뒤에는 더위가 이어지는군요 비가 그렇게 많이 오다니... 다음엔 그렇게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데 바란다고 되는 건 아닐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합니다 더위가 이어지는데 비 걱정이네요 비 안 와도 걱정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책도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7-25 08:25   좋아요 0 | URL
여름에 폭우와 폭염이 일상인 날씨가 된 듯합니다. 무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주말부터 글을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글쓸 틈이 안나네요. 읽을 시간을 좀 포기하고 이번 주말에는 꼭 써야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를요!
 

폴 길로이, 듀 보이스
포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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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의 ‘장기파동‘이 나타남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이놈이 가속화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가가 일반화하고, 특히 세르주 말레serge Mallet와 알랭 투렌 AlainTouraine 이 분석한 ‘신노동자계급‘이 등장했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기회와 실질적인 사회적 기회의 격차를 두드러지게 했다. ‘소외‘라는 감정은 이 격차 속에 존재했다. - P72

‘주요한 전선‘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부차적 전선‘은 크게 확장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투쟁(‘제2의 물결‘ 페미니즘), 민족해방운동, 동성애자 운동,
이제 막 태동한 정치생태학écologic politique 이 눈에 띈다. 이런 전선은 경제적 억압의 중심성을 약화하고, ‘착취‘ 개념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소외‘ 개념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 P74

구조주의 패러다임은 1960~1970년대의 이론적 계기‘moment‘를 떠받치던 지주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수십 년간 구조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비판이론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구조주의는 모든 사상 부문에 영향을 끼치고 다른 흐름들과 매우 체계적으로 ‘교배‘된 유일한 흐름이다. 마르크스주의적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구조주의의 영향을받은 페미니즘, 생태학, 문학 연구가 존재한다. - P87

1960~1970년대 비판사상은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해방 주체의 다양화, 다른 하나는 권력에 대한 ‘탈중심적‘ 접근을 위해 ‘국가중심적‘ 권력개념을 점진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이런 특징은 당시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노동조합적 기구가 겪은 위기의 결과인 동시에, 특히 - P97

페미니즘·반식민주의·생태학 주변에서 형성된 ‘부차적 전선‘의 증가에서도 유래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1990년대 후반에 출현한 오늘날의 비판이론에서도 볼 수 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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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지식인 거리가 멀어진 이유. 1920년대 후반 소련과 공산당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성격이 정해지면서.
추상적 지식의 전개. 현장과는 멀어짐. 지식인의 정치적 고립은 점점 더 추상적인 분석으로 이끌어.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 정리할 것.

비판이론은 대부분 대학교수인데 미국 대학은 개방성이 있어 열려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자리를 옮겼다. 정체성 정치로 억압받는 소수자에 적합한 사유 전통이 만들어짐.

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이 경우에는 비판사상의 지리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중요하게 발전시킨 것은 중유럽과 동유럽 사상가들이었다. 그러다 이쪽 대륙에서 스탈린주의화가 진행되며 이후 이론 형성이 차단되자, 사상의 구심점이 서유럽으로 옮겨 갔다. 이 사회적 공간에서 한동안, 즉 반세기 동안 비판적인 지적 생산물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동안에는 유럽 대륙에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이 쇠퇴하고, 또 정기간행물 뉴 레프트 리뷰 - P32

New Left Review』 『세미오텍스트Semiotext(e)』 『텔로스Telos』 『뉴 저먼 크리틱New German Critique』 『이론과 사회Theory and Society』 『크리티컬 인콰이어리Critical Inquiry』를 중심으로 지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이 이뤄짐으로써 비판의 중심이 영미권으로 점차 옮겨 갔다. 이처럼 비판이론은 역사적으로 비판이론이 거의 활발하지 않았던 곳에서 매우 활발히 전개됐다. - P33

비판이론은 사상이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일반 체제를 따른다. 파스칼카사노바 Pascale Casanova의 말처럼 "문학의 세계 공화국"이 있다면, ‘비판이론의 세계 공화국‘도 있다. 이 공화국은 동질적이지 않다. 모든 지역이 지적 생산에 공평하게 기여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불균등한 발전‘ 형태가 이 공화국을 지배한다. 어느 한 지역의 이론생산에 영향을미치는 여러 결정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특히 대학 체계의 성격, 경제발전의 정도, 사회운동의 효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역 격차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오늘날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비판사상의 생산과 유통 조건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 P47

신비판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그 내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헤게모니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통념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확실히 살아 있는 패러다임이다. 동시대 비판이론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이들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표방한다. 이 전통은 비판이론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활발하다. 수 - P53

1990년대 후반 비판사상이 부활했다는 것이 ‘패배‘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뜻은 아니다. 급진 좌파는 오늘날 확실히 방어 태세를 갖춘다. 군사적 패배나 운동 경기의 패배와 정치적 패배가다른 것은, 정치적 패배에는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무력관계는 어느 한 교전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젠가는변한다. 그러면 전투는 끝이 난다. 운동 경기에서는 경기 시간이 종료함에 따라 패배의 규모가 언제나 제한된다. 반면 정치 영역에서는 패배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권리‘ 같은노동운동의 성과가 무한히 파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비판사상의부활을 두고 뭐라 말하건, 그런 변수만은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신비판이론은 그 변수에 상당 부분 종속되어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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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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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읽어본 듯 하다가도 아닌 것도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전에도 읽기를 시도했던 것 같은데 앞부분 몇 페이지만 읽다 그만두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이슈메일이 퀴퀘그를 만나 피쿼드 호를 타게 되기까지 과정이 그랬다. 그 뒤 피쿼드 호를 타고 벌어지는 일들은 솔직히 지난하고 지루한 읽기 과정이었다. 핵심 줄거리는 간단한데 가지가 많은 나무 같은 느낌이랄까.
고래의 분류(향유고래 등), 포경업의 역사, 흰색이 의미하는 바, 고래가 등장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육지의 차이까지... 물론 그 와중에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을 때는 덤으로 이런 것을 얻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완독하고 나서 느낀 것은 이 책은 한 번쯤은 도전해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영문학 책 중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어떤 관점에 맞춰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꾸준히 읽기를 시도(도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 뻔한 클리셰와 해석만 있는 책은 계속 읽힐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은 역자들의 긴 주해가 있으며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나는 책의 등장 인물과 상황에 대한 상세한 분석까지 할 자신은 없어서 이성과 감정이 가는대로(내 방식대로) 읽었다.

모비 딕은 눈처럼 새하얗고 주름이 잡혀 있는 이마와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은 하얀 혹을 가진 고래다. 이런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어 바다에서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먼 거리에서도 고래잡이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모비 딕이 ‘흰 고래‘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대낮에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에서 거품을 만들어내며 모습을 드러낼 때 은하수 같은 포말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론 하얀 수의 같기도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슈메일은 피쿼드 호를 타고 항해를 하게 되었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를 몇 년간 돌아다니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을 무서워하는 데다가 그 망망대해를 어떻게 몇 년씩이나... 짧게 1~2시간을 이동하는 배에서도 멀미가 날 듯말듯하여 고역인데 말이다. 일반 고기잡이배는 그래도 항해 기간이 좀 짧은데 포경선은 그 기간이 무척 길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몇 십년동안 몇 회를 반복한다. 한 번 나가면 3~4년은 걸린다고 하니 40년 동안 배를 탄다고 하면 10번을 반복한 게 되려나?

피쿼드 호의 중심 인물은 에이해브 선장이다. 에이해브는 과거 모비 딕으로부터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고래를 추적한다. 그는 항해를 하면서 만나는 배마다 모비 딕의 행보를 물어본다. 선장은 그 욕망에 집착한다. 마치 인간이 세상을 향해, 자연을 향해, AI(기계)를 향해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을 하는 것 같다. 마침내 이겨보겠노라고, 내가 쓰러뜨려보겠노라고. 그래서 그의 모비 딕에 대한 추적은 집착과 광기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빌대드, 이슈메일, 퀴퀘그, 펠레그,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은 그저 고래를 잡으러 가는 목적이거나 돈을 벌기 위함이거나 등 달랐기에 갈등은 항해를 할수록 더해간다.
모든 악마성-이 모든 악이 미쳐버린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 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왜 하필 모비 딕일까, 왜 하필 흰 색의 고래일까 생각했다. 흰색은 여러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과거 우리 선조들이 입었던 흰색의 한복) 흰 배경 사이에서는 보호색처럼 은폐되기도 하여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두려움을 이끌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흰 색이 수의로 널리 쓰인다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색이라 두려움을 자아내면서도 사후세계와 신-인간을 연결하면서 영적인 힘, 신성함과 숭배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포경선을 타는 선원들은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배를 타기 전에는 무사히 그 여정을 끝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의식을 가지고, 만약 무사히 육지에 닿는다면 남은 날들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내 의지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도 불평하고 한탄하며 감정 낭비를 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에이해브의 집착과 광기를 나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갖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그래서 태어남과 사라짐만이 인간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아닐까. 살아가는 모양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동일하니까.

나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사람이 자기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남을 죽이거나 모욕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종교가 정말로 광신적이 되어 그 사람에게 명백한 고통이 되면, 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이 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어버리면, 그 개인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문제점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처럼 종교적 관용성과 포용성을 주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의 주요 흐름은 ‘기독교=문명‘ 이라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세계, 문명과 그 외를 분류하며 차별화하고 계급화, 위계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특히나 골상학에 대한 신봉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저 멀리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향해 너도 나도 배를 띄웠던 일들이 19세기와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흐름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포경선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도 위계화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주축국과 식민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포경선은 참으로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고래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인간의 탐욕으로 들소, 호랑이, 펭귄 등이 지구상에서 많이 사라졌다. 모두 다 인간의 창 끝에 사라진 것들이다. 현재 들끓는 지구의 기후도 이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완독하며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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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숙제 같은 책이에요. 몇년 째 책꽂이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어요. ㅎㅎ
어쨌든 좋은 책이란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책일테니 이 책도 많은 사람들이 좋다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화가님 글 읽으면서 또 어떤 부분을 생각하며 읽어야 할지도 생각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5-07-10 07: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숙제 같은 책들이 많죠^^; 저도 책꽂이에 노려보는 책들은 그대로 둔채 책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요즘은 그나마 자제한다고 하는데도ㅎㅎ) 민망합니다.
맞아요.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인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5-07-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생각이 뻗어나가는 방향은 다르다는게 독서의 재미이며 알라딘에서 글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거리의화가 님 글이라 확실히 감상도 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5-07-10 07:5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소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곳을 여전히 붙박고 있는 이유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5-07-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해 전에 그래픽 노블로 나온 걸로 한번 봤어요 긴 소설로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이기려는 것처럼 모비 딕도 자연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네요 지금은 이런 걸 보면 그냥 내버려두지 합니다 고래를 많이 잡아서 사라진 게 많으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5-07-10 08:00   좋아요 0 | URL
그래픽 노블로도 있었군요.
인간 대 자연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너무 뜨거워진 지구를 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