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족'이라는 개념이 적절한가에 대해서 의문점을 갖고 있다. 민족과 인종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문화 사회에서 다양성과 보편성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럴 때 세 권의 책을 만났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된 공동체>에서 오늘날 국가나 공동체의 연합 형태를 '민족'이라는 개념 하에 두고 이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상상된 공동체'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민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그가 말한 '상상된 공동체'가 인쇄 혁명, 언어, 글로벌 자본주의로 가능해졌다는 이유에는 납득이 간다. 

그러나 국가의 국경선은 그저 물리적으로 구분된 선일 따름 아니던가.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단일 민족으로 규정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의 문화권으로도 규정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다문화, 인종적 관점에서도).

오래전부터 시작된 유대인에 대한 포비아, 9.11 이후 확산된 이슬람 포비아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사회에서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뿌리 깊은 인종 혐오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 문제가 결합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과연 다문화사회에서 보편적 관점이 가능한가. 


인류학적인 정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민족을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민족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로서, 본성적으로 제한적이며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된다. 민족은 상상되었다(imagined). 가장 작은 민족의 일원들조차도 같은 겨레를 이루는 이들 절대 다수를 알거나 만나보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일조차도 거의 없으리라. 그럼에도 각자의 가슴속에는그들의 교감(communion)에 대한 심상이 살아 숨쉬고 있다. 민족은 제한적(limited)인 것으로 상상된다. 10억 가량의 살아 있는 인간들을 포괄하는 가장 큰 민족조차도 그 경계는 유연할지언정 유한하며,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들이 있다. 어떠한 민족도 스스로 인류라는 집합과 경계가 동일하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민족은 주권을 가진(sovereign) 것으로 상상된다. 어떠한 보편적 종교이든 간에 그 가장 독실한 추종자들조차도 그러한 종교들의 살아 있는 다원주의에, 그리고 신앙 각각의 존재론적인 주장들과 그 영역이 뻗어 있는 형태간의 어긋남에 어쩔 도리 없이 맞닥뜨렸던 인류 역사의 단계에서 성숙에 이른 민족들은 자유롭기를 꿈꾸었으며, 신의 가호 아래 있을 것이라면 다른 누구를 통하지 않기를 바랐다. 주권 국가는 이러한 자유를 표상하는 도전장이자 휘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각의 민족 내에서 실제로 횡행하고 있을 법한 착취와 불평등과는 상관없이, 민족은 언제나 깊은 수평적 동지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 <상상된 공동체>, P25~P28


<나의 타자들>에서는 민족은 주도 문화를 확립하고 패권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주도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그 패권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 의견도 같다. 정상성에서 내쳐지고 타자화되는 상황에서 자기 밥그릇은 기필코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식민지 국가의 주권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 제도 하에 묶여 난타당하던 여성들의 목소리 등등.


민족이라는 주도 문화의 확립은 패권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다. 그러나 패권이 없다면, 그리고 자기 주도권이 흔들린다면 패권을 위해 먼저 싸워야 한다. 당연함의 상실은 말하자면 ‘정상성’의 상실이기도 하다. 이 말은 ‘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제시하거나 묘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정상성’을 정의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사회 권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정상성, 당연함은 단지 그 정상성의 형태가 통용되는 집단에 소속된 이들만을 위한 가치다. 다른 이들에게 정상성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성은 배제의 역학이자 제외의 역학이다. - <나의 타자들> 2장 中


물론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식민지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의 카르텔을 답습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기득권은 나라를 빼앗겼을 지언정 자신들의 이권을 기필코 놓지 않았다.  

식민지 인종주의는 왕조적 정당성과 민족적 공동체를 용접하고자 시도했던 ‘제국‘(Empire)이라는 관념의 주요 성분이었다. 그러한 시도는 선천적으로 유전되는 우월성의 원리를 일반화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그 국내적 지위는 해외 영토의 광대함에 (얼마나 불안정하든)기반을 두고 있었다.

식민지마다 목격되는 것은 드넓은 저택과 미모사와 부겐빌레아가 가득 피어난 정원, 급사들과 남자 하인들, 정원사들, 요리사들, 유모들, 하녀들, 세탁부들, 그리고 무엇보다 말들이라는 조연급의 대부대를 배경에 거느리고 시를 읊는 부르주아 귀족(bourgeois gentilhomme)"이라는, 으스스하게 우스운 활인화(tableau vivant)였다. 젊은 총각이라든가 하는 이런 식으로 살림을 꾸리지 않았던 이들조차 농민 반란 전야의 프랑스 귀족에 맞먹는 화려하게 의심스러운 지위를 누렸다. - <상상된 공동체>, P227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은 오늘날 다문화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그저 문화 문제만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인종주의, 여성 차별이 더해져 여성들의 주장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연결되었다고 말하지만 점점 더 유한한 자원에 자본주의에 따른 이익으로 자국중심주의는 강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은 국경을 강화하고 보수주의자들은 결집하는 중이다. 여기에 개혁주의자들의 논리가 분산되어 모여지기 힘든 것도 그 배경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역차별 논리와도 싸워야 하고, 보편주의냐 다문화주의냐에 의한 선택을 두고도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다. 예를 들어 히잡 논쟁이 대표적일 것이다. 히잡을 썼다고 강간을 당한 여성이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이슬람 혐오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히잡을 착용한 이유가 선택일 수도 있지만 강요일 수도 있다. 선택에도 여성이 종교적 이유로 선택한 것이냐 아니면 강간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냐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강요한 경우는 문화적이나 종교적 이유, 가부장제에 의한 논리에 의한 경우가 있겠다. 이처럼 히잡을 착용한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이를 다른 문화권 또는 국가에서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문제가 생긴다. 생각할수록 뚜렷한 해답은 없고 생각을 회전시키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문화적 인종주의‘는 초기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대체한 개념으로서 유럽중심의 백인 우월주의를 피부색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설명한다. 이 용어는 1967년에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실제 그개념이 확장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마틴 바커(Martin Barker)에 의해서라고 전해진다(Barker, 1981). 1970~1980년대 영국적 맥락에서 그는 문화적 차이가 적대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보았고, 따라서 문화적 차이때문에 민족국가가 폐쇄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적 인종주의가 하나로 경계 지어진 문화 단일체로서의 민족 건설이라는 개념에 토대를 둔다고 보았다. -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P164


추가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일본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인신 매매에 대한 언급이었다. 인신매매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인신매매 모집 브로커는 현지에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 산업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사기로 유인하고 모집이 끝나면 서류를 준비해 일본에 입국시킨다. 여성들은 이 때 이미 빚을 지기 시작하여 브로커를 거칠 때마다 수수료가 붙어 거액의 빚을 안게 된다. 국내 성 산업에 뛰어든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 생각날 수밖에 없고 이는 과거 몇 십년전 일본 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신매매 이민 여성에 대한 사회 담론은 일본에서 주로 인신매매의 강제성 여부를 둘러싸고 촉발되었다. 하나는 이민 여성의 자기 선택과 자발성을 강조하는 담론이다(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하는 주장). 이는 성 산업에 뛰어든 여성을 쉽게 비난하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인신매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작취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보는 젠더적 시각이다. 여기에서도 '성매매로 돈을 버는 일탈한 여성'이라는 전통 여성상 틀에서 본 관점과 자국 사회에서도 가난한 하층의 여성이라는 계급주의적 관점이 존재한다. 

이 중 어떠한 하나의 관점으로는 적절한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원인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결국 해결법도 세심해야 할 터.


질문에 대한 결론? 답을 얻지는 못했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하니 이렇게 읽으면서 정리해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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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22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그간 읽었던 책들이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과도 맞닿아 있어서 깊이 있게 읽기가 더 가능했던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답이 답이 아닐 수 있는거구나!‘ 를 매 페이지를 넘기며 깨닫고 있습니다.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앞으로도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라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듣고 세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곧 따라갈게요!

거리의화가 2024-08-24 17:38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 이 달에 제가 다른 이유로 읽어야 했던 책과 연결선상에 있어서 더 폭넓은 시선을 전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수학처럼 정답지가 존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분야의 학문, 현실 세계의 일들은 정답을 요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죠.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실 사회에서 하나의 정답은 강요이자 폭력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정답은 없어도 정의로운 방향으로 모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은 가지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10장

새로운 인구학적 지형도는 식민지 국가가 그 크기와 기능을 배가해 감에 따라 사회적·제도적뿌리를 깊게 내렸다. 상상된 지도를 길잡이 삼아 국가는 종족인종적계서제, 그러나 언제나 평행한 연쇄라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계서제라는원칙 위에 건설하고 있었던 새로운 교육 ·사법·보건·경찰· 이민 관료제를 조직했다. 차등화된 학교 · 법원·진료소. 경찰서·이민국의 그물망을 지나가는 예속 주민들의 흐름은 머지않아 일찍이 국가가 만들어낸 환상에 실재하는 사회적 삶을 부여한 ‘교통의 습관‘ (traffic-habit)을창조해 냈다. - P255

 지상의 범속한 공간만을 다루는 이 지도는 보통, 마치 제도사들의 눈이 일상 생활에서는 풍경을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보는 데에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지의 수직성으로부터 잠재의식적으로영향을 받는 양, 야릇하게 비스듬한 시점이나 시점들의 조합으로 그려진다. 통차이는 언제나 지방적인 것이었던 이러한 길잡이 지도들이 결코 안정적이고 더 넓은 지리적 맥락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으며, 근대지도의 관습인 조감도란 그들에게 완전히 낯선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 P258

나는 우리가 진짜로 보고 있는 것은 자각 없는 식민지 고고학의 직계 후예ㅡ 국가 문장으로서의, 그리고 "당연히 이게 그거지"라는 로고로서의 보로부두르가 아닌가 생각한다. 똑같은 보로부두르의 무한한 연쇄속에서의 그것의 위치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의기호로서 더더욱 강력한 보로부두르


사고의 ‘날줄‘은 주민집단들. 지역들. 종교들. 언어들. 생산품들. 유적들 등 국가가 실제로 또는 생각 속에서 통제하고 있는 어떤 것에든 끝없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려는 분류의 모눈이었다. 이 모눈의 효과는 무엇에 대해서든지 저것이 아니라 이것이다.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속한다고 언제나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가 있고, 한정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셀 수 있었다. (분류와 하위 분류에 사용되는 센서스의 우스운 네모, ‘기타‘라는 이름이 붙은 네모는 광채 나는 관료적 눈속임으로 현실의 모든 변칙 현상을 은폐했다.) ‘씨줄‘은 연쇄화(serialization)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세계는 복제 가능한 복수형의 것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가정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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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비준 이후 연합군 점령 통치로부터 벗어나면서 단일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구 식민지 출신 이민자를 차별·배제하는 폐쇄적 이민자 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아시아 각국에서 일본 이주가 증가하기 시작,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증가 폭이 확대되고 있다. - P284

일본으로의 여성 이민 중 결혼 이민을 제외하면 상당수는 ‘흥행(enter-tainment)‘ 자격으로 이주하는 경우다. 일본의 입국관리법 별표 해설에 따르면 ‘흥행‘이란 관람객을 모아 입장료를 받고 연극· 연예 · 연주·스포츠·•
영화 관람물 등을 개최하는 것을 말하며, 바. 카바레 · 클럽에 출연하는 - P286

가수 등의 활동도 포함된다.
흥행 자격의 외국인등록자 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가해 1996년에 2만 103명을 기록했으며, 2000년대 들어 급증해 2004년에는 최고치인 6만4742명을 기록했다. 아시아 중에서도 필리핀과 태국이 가장 높은 비중을차지한다. 흥행은 일본 남성의 아시아 섹스 관광이 비난받자 1980년대 초에 신설된 재류 자격으로, 단순 취로와 거주 목적의 이민은 받아들이지 않 - P287

는 엄격한 출입국관리법에서 전문 분야로 분류되면서도 쉽게 취득할 수있도록 규정되어, 일본 남성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아시아 여성을 일본으로 유인해온 것이다. - P288

1991년 9월에 일어난 시모다테(下) 사건은 인신매매 아시아 여성 이민자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 담론이형성되는 계기였다. 현지 브로커로부터 일본의 태국 레스토랑과 공장에서일하며 생활비가 들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받고 일본에 입국한 태국 여성 3명은 이바라키 현(縣) 시모다테의 일본인 부부가 경영하는 한 야간 업소에 인도되었는데, 도항 비용 350만 엔과 매월 가산되는 생활비를성매매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여성은 강제 성매매와감금·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신들을 관리하는 태국 여성, 속칭 ‘마마‘를 살해하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들은 강도살인죄로 기소되어 1994년 5 - P293

월 지법에서 징역 10년, 1995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언도받았다.
이들 여성은 형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했다(下館事件夕3女性支3會, 1993). - P294

인신매매 여성 이민자에 대한 피해자 보호 담론이나 인권 담론은 인신매매의 실태와 구조적 문제, 이민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가시화하고 이슈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실제로 일본 정부의 정책대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일본 정부는 이민 여성의 자기 선택과 자발성에 기인한 자기 책임론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 문제의 개인화 - P297

를 우려하는 피해 담론이나 인권 담론은 인신매매와 관련된 일련의 형사사건에 대해 극한 상황에서의 우발적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일본 사법부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경우는 없었다. - P298

일본의 인신매매 대책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피해자 보호다. 인신매매방지와 처벌은 법적 근거에 따라 추진되지만 피해자 보호를 의무화한 법제는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 보호는 경찰과 관할 부서의 인신매매 피해자인지를 전제로 하며, 인지된 피해자가 원할 경우 일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국제이주기구의 귀국 지원 절차를 밟아 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출입국관리법상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지된 경우에 한해 불법체류자일지라도 강제 퇴거를 면할수 있도록 일정 기간 특별 재류를 허가하는 조항을 두었다. 그러나 보호의 필수 요건으로서 피해자 인지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경찰과관할 부서의 재량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지 절차 자체가 매우 엄격해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지되는 건수가 많지 않다. 피해자로 인지되더라도 일본에 재류할 수 있는 선택권은 없다. 피해자로 인지되면 합법적으로귀국할 수 있고, 인지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로 강제송환되어 귀국하는것이다(人身賣買禁止가 4,2009). - P306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에서 주체를 행정기관인 여성상담소로 한정하고 민간의 여성의 집이나 여성 단체와 인권 단체를 배제한 것도 문제로지적된다. 오랫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인권 보장을 주장해온시민단체의 경험이 인신매매 대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에서 성매매 여성의 일시 보호와 선도를 담당해온 여성상담소는 인신매매와 이민 여성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해접근하는 경향을 나타낸다(渡邊美穗, 2009). - P307

일본 사회에 외국인 이민자가 증가하고 이민자의 정주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이 강력한 체제 통합을 기조로 이민자를 치안 유지 목적의 관리대상, 노동력으로만 파악하던 데서 나아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생활자로 인식하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1990년대 중엽 다문화 공생 담론의 등장이다. 다문화 공생이란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주민이 상호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며 더불어 사는것이다(省, 2006). 이러한 일본의 다문화 공생 담론은 문화적 차이에대한 인정만 강조하고 이민자의 문화적 권리나 시민권에 대한 논의는 누락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 P298

1952년 제정 이래 50년간 유지되어온 외국인등록법이 2012년 7월에 폐지되었다. 이제 이민자도 세대별로 주민기본대장의 작성 대상이 되어 주민표의 기초 정보를 기반으로 국민건강보험, 개호보험, 국민연금 등사회보장 서비스와 기타 행정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總務省, 2013).
그러나 주민 간의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 공존을 지향한다는 다문화 공생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제 내국인과 이민자의 구별을 없애고 지역공동체의 주민으로서 이민자를 주류 정책에 통합시키겠다는 주민 통합에 이민자의 시민권 논의는 결여되어 있다. 이민자의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주민 통합의 대전제로서 대등한 관계 구축을 위한 시민권은 여전히 논외인 것이다. 따라서 재일 한국인은 4세대에 걸쳐 일본 사회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주민 통합을 표방하면서도 기타 이민자와 달리 재일 한국인에게 특별영주가드를 발급한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몰성적인 다문화 공생 정책하에서 성을 매개로 여성에게 더욱 억압적으로 작용해왔다. 일본이 생산해온 긍정적인 다문화 공생과 주민 통합이 가능하려면 인신매매 문제를 포함한 이민자 문제에 시민권과 여성의 인권을 근거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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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을 통해서도, 즉 일정 정도의 적응 단계를 통과한 후에도 사회는 지금까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통합’에 대한 서사가 보장해 주는 거짓 확신이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어디에서 생겨날까? 사회적 다양성이 여러 문화와 종교의 수집이라고 믿는 데서 생긴다. 사회의 다양성이 단순히 더함으로써 생긴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이 있고, 이것이 고유한 토착적인 것이며, 기존 토착 문화에 새로운 무언가가 단지 추가될 뿐이라는 생각이다.

다원화는 새롭게 오는 사람들만 바꾸지 않는다. 다원화는 이미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변화시킨다. 다원화는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원화는 관련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의미를 물어야 하는 당연함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모든 문화에서 외부의 관점은 내부 관점의 부분이 된다. 언제나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는 외부의 관점. 이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으며 다르게 살 수도 있는 외부의 관점을 말한다. 이 외부의 관점이 오늘날 모든 정체성, 모든 문화의 필수 부분이다. 외부의 관점은 이제 내부의 관점의 부분이 되었다.

민족이라는 주도 문화의 확립은 패권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다. 그러나 패권이 없다면, 그리고 자기 주도권이 흔들린다면 패권을 위해 먼저 싸워야 한다. 당연함의 상실은 말하자면 ‘정상성’의 상실이기도 하다. 이 말은 ‘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제시하거나 묘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정상성’을 정의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사회 권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정상성, 당연함은 단지 그 정상성의 형태가 통용되는 집단에 소속된 이들만을 위한 가치다. 다른 이들에게 정상성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성은 배제의 역학이자 제외의 역학이다.

동질 사회가 우리의 완전한 소속을 약속했다면, 그러니까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에게 완전한 정체성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이질 사회, 다원화 사회, 다양성의 사회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더는 온전하게, 직접, 당연히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질 사회는 또한 우리가 더 이상 같은 종류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전처럼 같은 종류의 우리로 구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온전하지 않다.

다양성은 기분 좋은 공존이 아니다. 단결? 존중? 현수막에서 보이는 병존은 현실의 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주술이기도 하다. 이 상황을 모든 이들이 수용하기를, 이 상황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주술.
다원화를 위한, 혹은 다원화를 방지하는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생각도 이런 주술에 속한다.

민족 형상은 군주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군주제와는 달리 민족 형상이 만드는 중심은 한 인격에 고정되지 않는다. 어떤 개인도 절대로 민족 형상을 체현하거나 실제로 현실화하지 못한다. 민족 형상 안에서 단지 다시 재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여성 운동이 성공적으로 보여 주었듯이 그 형상의 범위를 다시 설정할 수도 있다. 민족 형상은 변한다. 그러므로 민족 형상은 사회 전체를 실제로 체현했던 군주처럼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민족 형상은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는 빈자리를 완전히 채우지 못한다. 단지 덮어 주고 가려 줄 뿐이다.

1세대 개인주의에서는 주체의 변화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교육 기관들을 통해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관들은 주체를 변화시키려고 했고, 대부분 규율을 통해 작동했다. 이와 반대로 1960년대 이후 출현한 2세대 개인주의에서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본질적으로 선택된 특징과 함께 주체를 바꾸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표현이 중요했고, 중요하다. 이와 반대로 3세대 개인주의(다원화 개인주의)는 개인의 분열, 우연성의 경험, 불확실의 경험, 원칙적인 개방성 등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3세대 개인주의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심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연성에 대항하는 데서 생명을 얻는 정체성의 심장에 바로 이 우연성이 들어왔다.

다원화는 우리 각자 안에 자리 잡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들에게 다원화가 미치는 의미를 번역한다면, 감소된 정체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더 작은 자아다. 왜냐하면 우리는 작아졌고, 우리는 더 이상 당연한 우리가 아니며, 의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자아이며, 오늘날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정체성은 언제나 우리와 완전히 다른 정체성에 연결된다. 우리는 오늘날 어쩔 수 없이 외부의 관점을 내면의 관점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는 내면의 관점이다. 우리는 당연함이 축소된 자아다. 우리는 정체성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Precario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로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노동 계급을 가리킨다.)로 살아간다. 프레카리아트처럼 안정되고 고정된 관계에 비해 더 많은 노동을 요구받는다.
이것은 더 작은 자아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원화된 개인주의가 낳은 모순된 결과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름이 동등하게 만날 수 있는, 추상적이지 않은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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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역사의 천사

『브리튼의 해체에서 톰 네언은 영국의 정치 체계와 근대 세계의 그밖의 정치 체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몇몇 귀중한 말들을 남긴다.‘
[영국 체계] 단 하나만이 "서서히 이루어지는 관례적인 성장의 표본으로서, 이론을 따른 결과로 일어난 의도적 발명의 산물인 다른 사례들과는 다르다." 더 늦게 도착한 이들 다른 나라들은 "수 세기에 걸쳐 헌정주의를 진화시킨 그 국가의 경험이 맺은 과실을 단숨에 요약하려고 시도했다." 첫번째였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 나중에는 브리튼의 경험은 독특한 것으로 남았다. 이미 영국 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확장된 세계에 두 번째로 들어 - P235

섰기 때문에, 후발 부르주아 사회들은 이러한 이른 발전을 반복할 수 없었다. 그들의 연구와 모방은 굉장히 다른 어떤 것을 발생시켰다. 추상적인 또는
‘비인격적인‘ 국가라는 진정으로 근대적인 교의는 그 추상적인 성질 때문에이후 역사에서 모방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발전 과정의 예사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중에 ‘불균등결합 발전‘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의 초기 견본이었다. 진짜 반복과 모방은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테크놀로지에서든 전혀 불가능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주는 이미 복제되고 있는 최초의원인에 의해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P236

알렉산더 우드사이드(Alexander Woodside)의 말을 빌자면, "베트남(Vietnam)이라는 이름은 전반적으로 베이징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여, 한 세기 전의 베트남 지배자들에게는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당시로서는 작위적인 명칭이었던 베트남은 중국인들도, 베트남인들도 널리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모욕적인 당나라 말 ‘안남‘에 매달렸다.
한편 베트남 궁정은 1838~39년 왕국을 위한 다른 이름을 비공식적으로 창안했고, 이를 굳이 중국에 알리지 않았다. 그 새로운 이름인다이남(南)은 궁정 문서와 공식적으로 편찬된 역사 기록에 정례적으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지는 못했다." 이새이름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첫째, 여기에는 월나라 이름의 (‘Viet‘-namese)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다. 둘째, 그 영토적 지시는 (중화의) ‘남쪽‘이라는, 순수하게 관계적인 것이다." - P238

성공한 혁명가들은 오래된 국가의 전기 배선도 상속받는다. 가끔은 관리들과 밀고자들도 물려받지만, 서류철과 사건 기록, 공문서 보관소, 법, 재정보고서, 센서스, 지도, 조약, 교신, 각서 등은 언제나 물려받는 품목이다.
집주인이 도망간 대저택의 복잡한 전기 체계처럼, 국가는 예전의 화려한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새 주인의 손이 개폐기에 닿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혁명 지도부가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장원의 영주 노릇을 하게 된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 P241

광범위한 중국 인민 대중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의 식민지 국경 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쏟았으리라고 상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크메르 농민과 베트남 농민들이 그들 인민들 간의 전쟁을 원했거나 - P242

그 일에 자문을 제공했을 리도 없다. 대단히 진정한 의미에서 이 전쟁들은, 거의 사후(事後)에 그리고 언제나 자위의 언어로 인민 민족주의를동원하는, ‘각하들의 전쟁‘이었다. (그리하여 이 언어가 가장 그럴듯하지못했던 중국에서는, 네온사인이 빛나는 ‘소비에트 패권주의‘의 간판 아래에서조차 열광이 특히 저조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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