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읽었던 <조선을 떠나며>, 얼마 전 읽은 <다시 조선으로>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 주말 동안 그 과정을 짧게나마 진행했다. 더 깊이 읽고자 하면 미주에 있는 참고 사항을 확인해보며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기엔 시간상 제약이 크니 최소한 꼭 보아야 할 기사나 영상 위주로 체크를 해둔 상태였다. <다시 조선으로>를 한 번 더 읽었다. 초독 때도 간단하게 내용을 적으면서 읽기는 했는데 재독 때도 열심히 적어가면서 읽었다(역시나 놓쳤던 내용이 이다지도 많은지).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은 따로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시너지가 더 상승되고 보충이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나는 다큐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을 보았다. KBS 광복절 특별기획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2013), 일본 종전기념일 특별기획 NHK <망각된 귀환자> 2부작(2013)에 저자의 <조선을 떠나며> 내용을 참고로 제작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서다. 다만 NHK 방송은 내가 일본어가 전혀 안되기 때문에 자료 검색 자체를 할 수가 없어 보기를 내려놓았고 KBS 다큐멘터리만 시청했다. KBS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명확히 보였다. 주로 해방 직후 25일 간 조선총독부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며 그들의 범죄를 추적하는데 집중했다. 조선총독부는 8월 20일이 되자 조선 반도의 책임 통제를 재천명했고 일본 주류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게 되었다. 이는 소련군의 남하를 걱정했던 그들의 지연이 늦어진 것이 결정타였다. 조선총독부는 이제 미군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해야 했고 이를 위해 당시 미 24사단 하지 중장에게 비밀 서신을 80여통 보내 조선의 사정을 알렸다. 다만 그들은 사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달하고 새로 꾸려진 건준 등 조선의 정치 세력을 깎아내리거나 불온한 세력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조선인들의 폭동 제지를 위해 치안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변했다. 9월 8일 미 24단이 들어왔을 때 하지는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채 도착했을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앞선 서신 로비는 미군 도착 시 일본 경찰이 조선인을 향해 발포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조선총독부는 조선은행권 화폐를 불과 2주 만에 140억 발행하면서 남한 경제를 교란시켰다. 이 돈의 절반은 예금 인출로 사용되었지만 나머지 반은 조선총독부 관리, 귀환하는 조선군, 기업인의 퇴각 자금으로 쓰여졌다. 다만 남한의 혼란한 상황을 제대로 이용한 이들은 친일파를 비롯한 투기꾼들이었다. 이들의 내용은 다큐멘터리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지 않다. 말미에 김계조 댄스홀 사건이 언급되는 정도인데 분량을 보면 소략하다. 이 때문에 비리와 범죄의 온상은 조선총독부이고 이를 비호해준 것은 미군정이라는 단순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NHK 방송의 내용은 조선총독부 관련 내용보다는 소련군이 남하하면서 북한에 있던 일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고발에 집중했다고 한다. 

해방 후 남북한의 귀환 과정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남한의 일본인 귀환은 미군정에 의해 1946년 2~3월이 되면 대부분 다 이루어졌으나 북한에 있던 일본인은 소련군의 진주로 사실상 귀환이 늦어져 1946년 3월 이후에나 귀환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참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같은 책의 내용이 포커싱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다른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일방적인 수용이나 비난보다는 비판적인 자세가 요구되듯 시청각 자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책 <다시 조선으로>에서는 일본인의 귀환이 늦어지고 조선인의 수용이 늦어지면서 이루어진 양민족 간의 불편한 동거 전개 내용을 잘 다루고 있다. 남한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거류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세화회 조직을 만들고 미군정 정책에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여기에 도움을 주었던 친일파나 투기꾼들은 국공유, 사유 부동산, 기업체를 불법 매수하고 구호품을 횡령하였으며 생필품 등을 사재기하고 밀수하며 자기 배를 불렸다. 일본인들이 재산을 돌려 감시를 피해 밀항하는 동안 미군정은 일본인들의 사유재산을 허용해주면서 투기를 사실상 방조하고 묵인, 비호했다. 


두 번째로 다큐멘터리 <사할린, 광복은 오지 않았다>(2019)를 보았다. 

얼마 전 읽었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에 사할린의 한인을 다루는 챕터가 다큐 시청에 도움이 되었다. 사할린의 남쪽 지역은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사할린에 자발적 또는 강제 징용으로 간 한인 노동자들이 1941~42년에는 개인적으로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43년 이후가 되면 집단 도주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노동 환경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 공식 기록 문서에 의하면 종전까지 인구 만명 정도였던 조선인의 수가 그 후 5천명으로 감소한다. 이는 피난, 귀환의 이유도 있지만 일본인에 의한 학살이 원인이라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특히 ‘카미시스카 학살’, ‘미즈호 학살’에 대한 참상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증언자들의 증언과 참상에 대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너무 잔혹하고 끔찍했다. 일본군은 조선인을 항상 특별 관리(특수부대가 있었다고)하며 경계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소련이 전쟁에 참전하자 일본(군)은 다급해진 나머지 피난 명령을 내린 뒤 군 시설 등을 모두 파괴했다. 문제는 조선인들을 소련군의 스파이 취급하여 유치장에 가두고 몰살시켰다는 데 있다. 미즈호 마을은 27명으로 집계되었다가 나중에 피해 규명이 되면서 35명으로 늘어났다(이들은 심지어 민간인들이었다). 카미시스카에서도 18명의 학살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협정 당시에도 사할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초반에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경계로 이들을 다루지 않고 그 이후에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1992년 사할린 영주 귀국의 길이 열렸을 때 증언과 사료를 모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생각했다. 심지어 이때 영주 귀국 자격 조건은 1945년 이전 건너간 사람들로 제한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다큐 마지막에 조국과 한국인들은 사할린 한인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인터뷰이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이래서 이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세 번째로 한겨레 기사 <‘우키시마호 사건’ 특별한 남북일 시민연대>를 읽었다.

우키시마호 사건 현장과 기록은 일본에 있고 생환자와 유족은 한국에 있는 사건인데 시민단체가 이에 접근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우키시마호 사건 발생 원인에 대해서 미군이 설치한 지뢰에 의한 폭침 때문이다라는 설과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에 의한 공격 때문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사건 발생 후 재일조선인연맹이 일본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어서 연합국 총사령부에 조사 요청을 했으나 미군정도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950년 선체 인양을 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신원 확인된 유골 일부를 봉환할 수 있게 한 것은 모두 재일조선인 연맹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우키시마호의 출항지인 아오모리 지역 시민 단체, 침몰지인 교토의 시민그룹인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 실행위원회’, 사건 소송을 주도한 ‘일본국에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추진하는 모임’은 소송을 하고 사건에 관한 사료들을 발굴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진행했다. 한일(+미국) 정부가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동안 발벗고 나서준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도 이런 자료들이 쌓일 수가 있었다. 정부는 앞으로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여전히 관심조차 없을지 답답하다.


재일조선인의 북송 과정을 다룬 KBS 파노라마 다큐멘터리(2013)를 보고 싶었는데 자료를 아무리 검색해도 영상을 찾지 못해 다큐를 언급한 기사를 보고 짧게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관리하며 차별하고 특별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였다. 이때 북한은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제공하고 무상 의료 서비스를 보장한다며 달콤한 유혹을 했다. 이에 조총련 중심으로 북한 귀국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많은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들은 다시 가난과 차별에 직면해야 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한번 들어간 그곳에서 다시 빠져나올 길은 만무했다는 데 있다. 이후에도 조총련은 북한의 실제 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재일동포를 계속 북한으로 보내는 일을 계속 했다. 다큐멘터리에는 10만명에 이르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유괴했다(?)고 다소 자극적인 언급을 했는데 너무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아쉽지만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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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인간은 인간 정신의 불명확한 본성 때문에 무지로 빠져들어갈 때마다 자기 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만든다. - P148

[122] 인간 정신의 또 다른 속성은 멀리 떨어져 있고 알지 못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그들 앞에 존재하는것에 의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 P148

[124]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53, 59] 자만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민족의 자만심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의 자만심이다. - P149

[161] 인간사의 본질 속에는 모든 민족에게 공통적인 정신의 언어가 전제되어야 함이 확실하다. 이 언어는 인간의 사회생활.
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의 본질을 균일하게 이해하도록 해주며 그사물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양태를 설명해준다[387]. 민중적 지혜의 금언인 속담이 그 예인데 고대와 현대의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가 그 민족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445]. 201 - P162

[173]이집트의 고대는 우리에게 두 개의큰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 하나는 이집트인들이 세계의 모든 시간을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라는 세 시대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세 시대의 순서에 따라 각 시대마다 세개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상형 언어 또는 신성한언어, 상징 즉 비유를 통한 언어 또는 영웅의 언어, 서간체 언어또는 인간의 민중 언어로 민중 언어란 일상적인 삶의 필요를 소통 - P127

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한 언어이다[52,432]. - P168

첫 번째 공리는 민중이 신화를 만들고,
그것도 호화롭게 만들려는 자연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인류의 소년기에 있던 초기의 인간은 사물을 개념화시킬 범주를 형성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적인 인격체를 만들어야 할 자연적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시적인 인격체란 상상력의 속(屬) 또는 보편적 상상력으로서, 모델이나 이상적인 초상화처럼 그것을닮은 모든 특수한 종(種)들을 거기에 맞추어 환원시킨다. 이러한유사성 때문에 고대의 신화는 호화롭게 꾸며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 P179

[250] 모든 민족은 어떠한 신성에 대한 숭배와 함께 시작하였기때문에, 가족 국가의 가부장들은 전조를 통한 점복에 능통한 현자였음이 확실하다. 그들은 점복을 수행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희생 의식을 거행하는 신관이면서 그들 가족에게 신성한 법을 전달하는 왕이기도 하다: - P190

[311] 씨족들의 자연법은 민족들의 관습과 함께 출현했고, 그것은 아무런 이성적 사고도 필요 없는 인간의 상식에 일치하며,
따라서 민족들 사이에 모방도 없다. - P215

모든 민족은 종교를 갖고 있고, 엄숙한 혼례를 거행하고,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다. - P225

방종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고 난 힘이 결핍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신앙에의존한다. - P232

육체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 선택의 자유, 즉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임이 확실한데, 그것이야말로 정의를 포함한 모든덕성의 고향이자 안방이다. 정의의 지시를 받아 자유의지는 모든올바른 것의 원천이 되며, 올바른 것의 부름을 받은 모든 법의 원천이 된다. - P233

학문의 여왕인 형이상학은 "학문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314] - P238

새로운 학문이 사용하는 기준이란 사람들 전체 혹은부분이 옳다고 인식하는 것은 사회적 삶의 규칙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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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파렴치한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감내해왔을까? 착한 마음을 넘어 구조의 문제들을 얼마나 직시했을까?

사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전혀 아니다. 다윈에게서 생존하는 것은 강자가 아니라 적합한 자, 즉 적자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적자생존이 진화의 메커니즘인 것이다. 강하거나 우수해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종이 자연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이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공룡은 강했지만 멸종했고, 매머드도 코끼리보다 훨씬 크고 강했지만 멸종했던 것이다. 자연계에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열등한 것에서 우수한 것으로’ 따위 진화의 방향성은 없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에 힘과 문화적 상상력의 위계가 엄연했던 만큼이나 성애의 판타지도 가파르게 위계화되었다. 승리한 나라의 남성이 점령지 여인과의 가벼운 로맨스를 꿈꿀 때, 패배한 나라, 약소국 남성은 수치심과 회한으로, 때로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사정을 몰랐다는 말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해도 좋을까? 그 무렵 한국의 인터넷 여론은 한술 더 떴다. "키워줬더니 베트남 따위가 건방지다"는 식의 혐오 댓글이 난무했다. 진보적이라는 커뮤니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과학사학자 김영식은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공리주의적인 과학기술관을 꼽는다. 개화기 이래 과학기술이 주로 경제적 효용 달성이라는 도구적 측면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 동도서기론적 입장에서 역설적이게도 일제시기 지식인들에게 과학주의적 태도가 널리 퍼졌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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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상에 쓸모가 없는, 힘이 되지 못하는 과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계적인 과학저술가 사이먼 싱은 말한다. "기술은 삶(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반면,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자들의 동기는 유용성이나 편리함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작은 사람’이라고 해서 역사의 책임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아니 작은 사람이야말로 역사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숙이 시작될 것이다.

적과의 싸움에 목숨 건 혁명가들이 동지가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의혹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독립혁명의 길에서 증오가 자랐다. 미움이 서로를, 스스로를 파괴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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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전 좋았습니다. 화가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기대되네요.

거리의화가 2025-05-13 11:39   좋아요 1 | URL
어제 알라딘 시스템 접속이 계속 이상해서 댓글을 이제야 답니다^^;
저도 이 책 좋았어요.
 

식민지배자는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시켜줄 거울, 즉 타자(식민지인들을 포함)를 필요로 한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타자로 설정했다. 식민지배자는 타자화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며, 타자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타자는 다름 아닌 희생자들, 유색인들, 식민지인들이다.

식민植民이란 지배국이 식민지에 자국민을 옮겨 심는다는 뜻이다. 식민주의란 힘이 센 나라가 무력으로 자신보다 약한 나라의 땅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그곳의 물적·인적 자원을 약탈하며, 자국민을 이주시켜 지배하고 통치하는 행위 및 이념을 일컫는다. 다름 아닌 약육강식을 근간으로 삼는 차별적 이데올로기이다. 식민주의는 자국민에게 승리의 영광을 가져다주지만, 식민지인들에게는 패배의 굴욕을 안겨준다.

‘탈’이란 접두어는 예속상태에서 벗어남, 즉 주권수립과 해방,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의식의 탈식민화를 의미한다. 해방, 광복, 독립이란 단어는 억압, 어둠, 예속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외형적 독립과 국가건설만으로 식민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신식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국적 자본주의는 더 이상 국가(경계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오직 하나의 국가(예를 들면 미국이란 거대 자본국가)만이 존재하고,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의 문제는 그 규모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스탈린 치하의 고려인(까레스키) 강제이주, 일제지배 하의 강제징용, 6·25전쟁, 사할린 거주 한인들, 해외 이민 등이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입증한다.

블라디보스톡, 타쉬켄트, 하와이, 멕시코, 위안부, 사할린 한인들, 우토로(일본 교토 징용 조선인 촌락) 등은 강대국의 힘에 유린을 당한 한민족의 수난사를 잘 말해준다. 이산자들이 당한 고통과 상처를 글로 기록하고, 그 부당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며 중요하다.

탈식민화에는 여러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그중 ‘매판계층(comprador)’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계층은 식민국의 상층부 엘리트를 구성하는데, 종주국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 결과 자국의 사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종주국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식민지배자는 이 매판계층과 유착관계를 맺어 적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손쉽게 식민지를 원격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민족주의에 기초한 문화적 본질주의 혹은 ‘토착주의(Nativism)’도 탈식민화에 걸림돌이 된다.

서발턴이란 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종속되거나 접근을 부인당한 그룹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노동자, 농민, 여성, 피식민지인 등 주변부적 부류가 속한다. 스피박이 ‘서발턴’이란 용어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노동자, 농민, 여성, 피식민지 등 기존의 용어들은 억압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성을 지니기 때문에 다양한 종속적 처지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발턴 용어 사용의 장점은 단일하고 고정된 의미와 맥락에 한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이 용어는 계층, 인종, 젠더를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이며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피박은 불평등 해소라는 정의실천보다는 지배권력을 해체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다. 바로 이점이 그녀의 한계이다.

일본이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계속 왜곡하는 현실에 맞서 우리는 계속 ‘자아성찰’만 해야 하는가.

탈식민주의는 저항담론이며 실천담론이다. 따라서 어렵고 난해한 용어와 이론을 운운하는 것은 지적 유희요 공허한 포즈이다. 탈식민주의 연구를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것, 자신의 삶과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탈식민주의 이론이 세상 읽기의 유효한 방식이 되고, 현실 참여의 영역과 맞물려 있어야 의미가 있다. 반성과 토론만 하다가 투쟁이나 실천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면 진보는 위기에 처한다.

저항은 패권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저항이 없다면 예속, 불평등, 비인간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배자의 입장에서도 타자(약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윤리학을 정립하는 것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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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의 모든 역사는 출발점에 신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최초로 배워야 할 학문은 신화 - P88

또는 신화의 해석이어야 하며, 신화는 이교도 민족의 최초의 역사였다는 것이다[202].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방법으로 민족은 물론학문의 출발점도 다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학문은 다름 아닌민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저작 전체를 통해 논증할 것이지만, 학문의 출발점은 민족의 공적인 필요성이나 유용성에 있었는데, 훗날 여기에 인간 개개인의 예리한 통찰력이 적용되어 완성되기에 이른 것이다[498]. 세계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모든 학자들은 그러한 출발점이 [지금까지의 세계사에서]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한다[399].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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