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동안 읽었던 책들 중 내게 좋았던 책을 추려본다.



1.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한국 현대사에 기여한 지성인들 60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종교,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각 지성인을 선정한 이유와 대표작을 훓어보고 저자의 간단한 평가까지 덧붙여 놓았다. 

선정된 지성인 중 처음 듣는 이름도 간혹 있어서 체크한 경우도 있었고 '이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성인 중 몇몇은 체크해놓고  저작을 구매하기도 했다. 

한국사상사를 쓴 박종홍의 경우가 그랬다. 

이런 책은 두고 두고 읽을 책은 아니지만 한번 읽어 놓으면 나만의 목록을 만들어 더 깊이 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2.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상반기에 북클럽을 통해 한국통사를 공부했다. 

그런데 조선의 개혁들 중 가장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대동법에 대해서 너무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런 내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알맞은 책이 있었으니 이 책이었다.  

중요한 개혁이라고 학교 다닐 때도 대동법에 대해서는 꽤 분량을 들여 가르친다. 

하지만 대동법의 자세한 내용과 변천사, 관련된 인물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책은 이 모두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의 공물 수취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대동에서부터 경대동, 호서대동법과 경기선혜법의 수정. 그리고 대동법의 전국화에 이르기까지 100년에 걸친 제도의 정비는 중간에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의 변수가 있었음에도 꾸준한 시도 끝에 정착될 수 있었다. 

역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다.


3. 올리버 트위스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이 유전, 환경 중 환경만으로 개선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생각이 들었다.

올리버가 로즈와 브라운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운명이 왜 이리도 기구할까 생각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 해가 되는 사람인지 구분을 지으며 살기에는 너무나 피곤하지 않은가.

소설 속에는 마치 빛과 어둠을 대비하듯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며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 재미를 더해주었다.

디킨스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글로 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개입시켜 놓은 부분이 흥미로웠다.

독자가 작가의 생각과 같거나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 비교하며 느껴보는 묘미를 챙길 수 있어서다.


 

4. 휴먼카인드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접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많은 저서에서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쉽게 나쁜 것에 휘둘리는 존재로 말해서 그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뉴스를 봐도 나쁜 소식들로만 가득하고 최악이 존재할까 할 때 그보다 더 최악이 존재할 때를 많이 접하며 어느샌가 비관론적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은 연대와 상호작용을 갈망하는 존재이며 우리의 몸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를 갈망한다고 이야기한다. 

호모 퍼피가 큰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같은 갈망 때문이라고.

더 나은 희망이 존재할 수 있고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100%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희망 중 일부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주문 같은 책이었다.


5.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이란 공간은 수많은 개인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일하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물건을 팔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담배를 사는 것처럼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말 꺼낼 일도 없다.

저자가 하필이면 편의점이란 공간을 선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이런 곳이라면 꼭 들르고 싶은 편의점이었다.

이 곳엔 따뜻한 어묵 국물 같은 소시민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을 때 읽으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고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경계를 긋는 세상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니 말이다.


6. 옥저와 읍루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중 옥저와 읍루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교양서라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반도, 그것도 남한의 시선에서 북방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곳이 쉽게 가볼 수 없는 지역인데다 고대사의 특성상 기록이 소략하므로 멀게 느끼기 때문이다.

고대사 유물과 유적은 새로 발굴되므로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최신 자료를 이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러시아와 가깝다 보니 러시아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는데 그 점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책에는 없는 옥저인과 읍루인을 만날 수 있다.


7. 제2의 성

이 책은 지금까지의 여성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투쟁의 역사도 알려주지만

성 이론, 그리고 남성과 여성. 성 정체성. 주변과의 관계.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기 때문에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 보부아르는 참 선구안적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보부아르가 목놓아 주장하던 여성 해방의 길은 멀게만 느껴지고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산재해 있다.

책을 읽으며 한국 근대 여성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봉건 타파를 넘어 노동자, 계급 투쟁에 이르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도 분연히 일어났다.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장한 여성 교육부터 시작해서 1920년대 사회주의 유입으로 '여성=민중' 이라는 의식이 움트며 여성 해방을 주장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특수적인 상황도 있고 해서 현실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갈 길은 멀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올해 중반에는 책을 열심히 읽지 못해서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꾸준히 읽는 한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이미 사둔 책들이 많아서 굵직한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은 결국 올해 안에 읽을 수 없을 것 같고(1월 안에 반드시!)

역사의 원전, 중국철학사와 하버드 중국사도 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도 있군.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책들은 꾸준히 채워서 읽을 작정이다.

지금 읽고 있는 대한계년사를 마저 10권까지 다 읽고 매천야록도 이어서 읽으려고 한다.



































 









내년도 어김없이 이렇게 읽다 보면 한해가 금방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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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26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벽돌책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래놓고 책을 많이 못 읽으셧다고 하시면
저 같은 사람은 웃픕니다.ㅠㅋㅋ
내년에 이 책들 읽으시려면 부지런히 읽으셔야겠네요.
응원합니다.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복되고 힘찬 새해 맞으십시오.^^

거리의화가 2021-12-27 08:37   좋아요 2 | URL
역사 분야를 좋아하는데 벽돌책, 그것도 양장본으로 신간이 나오고 사모으다보니 점점 많아지네요.
그래서 이사한지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책장에 책 꽂을 공간이 없어 또 쌓여가고 있습니다.
저 책들 읽으려면 최소 한 달에 한두권은 읽어야 다 읽을 수 있겠네요.
헌데 저 책들만 읽을 것 같지는 않고...ㅋㅋ 욕심이 커져만 갑니다.
응원 감사드리고 스텔라님도 좋은 새해 맞이하시길!

얄라알라 2021-12-27 1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년 12월의 끝자락이면, 알라디너 플친분들의 결산(?) 페이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라면, ˝대한계년사˝전집(?)만 읽어도 1분기는 갈텐데, 정말 대단하세요.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1-12-27 12:48   좋아요 3 | URL
다른 알라디너분들의 책은 어떤지 보는 맛이 좋아요.
어쩌다보니 두꺼운 책들만 있는 것 같은데
도전 의식이 있어야 더 열심히 읽게 되는 타입이라ㅎㅎ
북사랑님도 내년 독서 화이팅입니다!

mini74 2021-12-27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트위스트 ! 전 이 책 어린이용으로 읽은 거 같아요. 디킨즈 책 한 번 읽어보고싶어요. 거리의 화가님 역사책 우와! 내년에도 즐거운 독서생활 하시길 바라봅니다 *^^*

거리의화가 2021-12-27 16:48   좋아요 2 | URL
오 어린이용도 있군요.
디킨즈 좋은 작품 많다던데 저도 소설은 많이 읽는 분야가 아니라서 저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나쁘지 않았는데 다른 작품들은 언제 읽어볼 기회가 있을지.
읽어야 할 책들이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지 못하는 건 아쉽죠.
미니님도 즐독하세요!ㅎㅎ

scott 2022-01-07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ㅅ^

새파랑 2022-01-07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화가님의 올해의 책들 찾아봐야 겠어요 ^^

mini74 2022-01-07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의 책소개 참 좋았어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1-07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아니 이런 일이ㅠㅠ 감사드립니다.

책읽는나무 2022-01-07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이런 좋은 일이 생기셨네요?
축하 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알게 되었어요.^^
 

남성 동성애는 종종 아름다움, 사랑, 폭력, 죽음 등에 대해 문화적으로 귀중한 관심을 구현하는 것으로 비친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남성 동성애자는 생물학적 재생산이라는 명분보다는 훨씬 더 영적이고 성적인 명분을 위한 순교자로 간주된다. 남성에 대한 남성의 사랑은 여성과 아이들이 얽혀 있는 딱하고 구차스러운 가정의 대소사보다 훨씬 실재적이고 고양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식 ‘유심론’과 그것이 암시하는 모든 것(‘사랑’ 없는 섹스와 섹스 없는 사랑에서부터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은 서구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이다.
레즈비언은 그처럼 영광스럽게 확장시킬 만한 역사와 선조들이 없다. 레즈비언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성애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생활했으며,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했다. 레즈비언은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남성 동성애자보다 훨씬 가정적이고 관습적이며 성적으로 일부일처제에 순종한다. 여성들은 이런 특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젠더는 인종, 계급, 혹은 성적 지향보다도 근본적인 가늠 기준으로 작용한다. - P362

여성 동성애는 남성 동성애만큼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그 대신 대다수 여성은 그 존재 자체가 법적으로 완전히 배제되는 ‘처벌을 받았다’. 그 수에 있어서는 아마도 레즈비언보다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은 성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 모두에서 훨씬 크게 억압된다. 따라서 그들은 동성애 남성이나 이성애 남성들보다 경제적으로 무력할 뿐 아니라 성적으로도 훨씬 더 소심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남성이 동성애자로서 살아남는 것보다 여성이 레즈비언으로 살아남기가 훨씬 더 힘들다. - P363

어떤 면에서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훨씬 쉽다. 이른바 여성의 ‘남성화’가 남성의 ‘여성화’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여성적인 모든 것은 경멸당한다. 여자가 바지를 입고 집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누가 자진해서 자기 발을 묶겠다고 하겠는가? - P365

여성은 ‘두뇌’ 아니면 ‘성기’, ‘가슴’ 아니면 ‘성기’, ‘어머니’ 아니면 ‘성기’라는 양자택일을 할 때라야만 남성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여성은 정서적이고 지적인 동시에 성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드물다. 여성이 이 세 가지 능력 모두를 발전시키기는 대단히 힘들다는 점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다. 여성은 정서적이고 지적이며 성적인 능력을 누구와 공유할 수 있는가? 자기 비하, 성적 소심함, 이성애를 모델로 한 역할놀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레즈비언, 특히 페미니스트 레즈비언들은 지금 시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성에게 산파 어머니 언니 딸 애인이 될 수 있다. - P368

그들의 성적 경험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현실로 남아 있다. 그들의 경험은 어머니, 고용주, 학급 친구,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없으며 심지어 심리치료사와도 공유할 수 없다. 그들이 느끼는 현실감각, 그들이 인지하는 쾌락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기껏해야 차선이며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나는 심리치료사가 환자의 이성애 경험에 관해 적극적으로 물어본다든가, 조심스럽게든 공공연하게든 레즈비언의 경험을 ‘규정’하는 것에 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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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료 기간 중에 심리치료사와 성적 접촉을 가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심리치료사의 성적인 유혹을 거절했던 여성들 다섯 명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했던 열한 명의 여성 중에서 열 명이 치료하는 동안 심리치료사와 ‘성관계’를 경험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진료실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했다. 일곱 명은 성관계 이후에도 같은 심리치료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고, 평균 4개월간 치료비를 지불했다. 이런 성적 접촉은 하룻밤에 그치기도 했지만 18개월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당시 여성들의 나이는 22세에서부터 45세에 이르렀고, 평균 31세였다. 네 명은 기혼이었거나 별거 상태였으며, 세 명은 독신이었다. 기혼 여성 네 명의 남편들은 성적인 접촉이 있던 바로 그때 동일한 심리치료사에게 아내와 함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열 명의 치료사는 환자보다 열다섯 살 이상 나이가 많았으며 평균 47세였다. 심리치료사 중 일곱 명은 기혼이었고 두 명은 별거 상태였거나 이혼했으며, 한 명은 독신이었다. 일곱 명은 정신과의사였고 세 명은 심리학자였다. - P295

희생자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한 마음이 가책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화가 난다. 동정심은 분노로 바뀐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는 어느 정도 스스로 자초한 것임에 분명하다. 누더기를 걸친 거지는 자기 불행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거지 옆을 지날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지나가야 한다. 지금이 무슨 빅토리아 시대도 아니고, ‘이용당하는’ 여성이라니. 아직까지도 유혹당할 만큼 어리석은 여성들이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면, 그들은 ‘순진한 캔디’처럼 무슨 짓을 당하든 그래도 마땅하다… 열한 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의 돈벌이 능력과 교육 수준은 심리치료사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었다. 성적인 접촉을 할 무렵 두 명은 학생이었고, 두 명은 비서였으며, 다른 두 명은 가정주부, 한 명은 웨이트리스, 한 명은 레크레이션 강사, 한 명은 외판원, 한 명은 개인 비서, 한 명은 사회학자였다. 그렇다. 이들 여성들은 기막히게 ‘순진했다’. 그들의 순진함은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그런 무기력함 때문에 그들은 ‘은인’, ‘구세주’, ‘아버지’와 같은 인물의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모른다. - P304

그들 모두 남자들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를 자기 탓으로 돌렸다. 그들 모두 경제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요구들은 낭만적인 ‘사랑’과 혼동했다. 그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데 느렸다(분노는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실제로 힘이 없는 사람들이 드러내기에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감정이다). - P305

이들은 여성 환자들을 비서, 타이피스트, 베이비시터, 성적 파트너, 심부름꾼, 정원사, 치료 ‘보조원’ 그리고 전천후 기쁨조로 이용했다. - P307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때 일부 학자와 임상의들이 나를 공격했다. 그들은 이번 장에 소개된 내용의 정확성 혹은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하지만 결코 빈번한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나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몇몇 썩은 사과들로 대다수 훌륭한 의사들의 명성을 더럽히고 싶었나? 페미니스트들이 그 정도로 남자들을 싫어하나? 한 정신과의사는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 하루 전날 1달러에 합의를 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2년 이후로 정신과 환자 또는 심리 치료를 받는 환자와 심리치료사 사이의 성관계를 밝힌 많은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단지 숫자를 조금 조정했을 뿐, 내가 이번 장에서 말한 것의 많은 부분을 확인시켜줬다. - P320

이 여성들은 ‘병들었는가?’ 의학적으로 ‘병든 것’ 이상으로 ‘병들었는가?’ 그들의 병은 그들이 병들었다고(우리 문화에서 여성의 특권인 병든 역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이 여성들이 전형적인 성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것인가? 거꾸로 전형적인 성역할을 너무 지나치게 수용했기 때문인가? 그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은 우연인가? 어떤 경우든 그들은 결국 ‘치료받았어야’ 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대답은 과연 있는가? 모든 여성들에게 맞는 대답이 있는가? 많은 여성들은 입원 기간 동안 혹은 입원 이전에 그들의 성역할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 P340

우리 문화에서 여성이 정신적 심리적 성적으로 양성적이거나 ‘남자’같이 행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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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전문가들의 견해는, 간접적으로는 남성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여성에게 횡포를 부리게 된다. 지난 세기에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공통된 경험이었으며 결코 낭만화되지 않았던 결혼과 출산 같은 사건은 이제 이들과 같은 전문가에 의해 여성이 추구해야 할 영혼의 호사로 과대 포장된다. 과거에 (가난, 질병, 요절 등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 없이 불가피했던 것들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 20세기 여성의 구원 신화로 부활되었다. - P213

프로이트식 관점에서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종족의 양육자이자 열매 맺는 자"이며 잠재적으로 따스한 가슴을 가진 피조물로 보지만, 그보다는 흔히 자궁을 가진 변덕스러운 아이이며 남성의 생식기와 남성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것에 대해 영원히 애도하는 자로 본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여성 환자들에 대해 그토록 정밀하게 기록했던 두통, 피로, 만성적인 우울증, 불감증, 편집증, 압도적인 열등감은 이보다 더 정확한 용어로 해석된 적이 없었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증상’을 노예 심리의 특징인 간접적 의사소통으로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증상을 ‘히스테릭’하고 ‘신경증적’인 산물로 여겼으며, 악의에 가득 차 있고 부조리한 집안의 독재자, 심술궂고 퉁명스럽고 자기 연민에 찬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했다. 여자로서 행복해질 수 없는 여성들의 무능력은 해소되지 않은 남근선망, 해소되지 않은 엘렉트라 콤플렉스에서 기인하거나, 일반적으로 도무지 고치기 힘들고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의 고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 P215

여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전체 혹은 일부 견해가 카렌 호나이, 클래라 톰슨, 마거릿 미드에 이어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케이트 밀릿,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에바 피지스, 저메인 그리어 등의 여성 이론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검토되고 반박되었다.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알프레드 아들러, 헤리 S. 설리번, 빌헬름 라이히, 로널드 랭, 데이비드 쿠퍼, 토머스 사즈와 같은 남성 이론가들도 프로이트를 반박한 바 있지만 여성에 관한 그의 견해 때문은 아니었다. - P220

라이히는 일단 환자들이 건강한 성기를 회복하게 되면 일과 사랑에서 훨씬 의미 있는 관계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환자들을 충분히 꿰뚫어볼 수 있다면 모든 환자들에게서 ‘점잖은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성 경제’는 강박적인 도덕보다 우월한 자연스러운 도덕으로 조정된다. - P227

라이히는 성 에너지가 성기에서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변태적인 성욕과 건강한 성욕을, 성욕과 생식(임신과 출산을 위한 성욕으로서의 생식)을 조심스럽게 구분한다. 그는 경멸하는 마음 없이, 진지한 태도로 여성들이 평생 동안 경험하는 성적인 불행의 결과를 관찰한다. 그리고 몸의 역할과 몸과 마음의 통합이 얼마나 힘든지에 집중한다.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굴복’이 ‘건강한’ 이성애 성교의 본질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라이히는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이성애 중심 성교에 대한 여성의 ‘굴복’을 지나치게 많이 언급한 측면이 있다. 여성 권력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여성의 성적인 행복의 중요성에 관해서만 지나치게 거론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다. 약물처럼 섹스 역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편과 같은 강제적인 진정제가 될 수 있다. - P229

전반적으로 볼 때, 랭이 정신분열증의 과정을 사회적 환경에 배치시킨 것은 타당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고집스럽게 주장해온 것이 본질적으로 비상식적이었다는 것을 이해한 점도 옳다. 이상적으로는 이것이 모든 정신과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에 관한 그의 기준은 프로이트의 기준만큼이나 부재에 가깝거나 모호하다. 그가 가끔, 그러나 점차 빈번하게 대중의 정치 혁명이나 예술 형식을 광기와 동일시한 것은 부정확하며 혼란만 야기한다. 광기와 예술은 여러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는 동시에 그런 억압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고통과 차별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개인적이고 비가시적인 광기의 양태와, 잠재적으로 공적이며 구체적인 예술 양태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 P236

쿠퍼는 라이히의 주장 중 많은 부분과 ‘반문화’ 신화 혹은 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희망을 신봉한다. (1) 프로이트의 염세주의, 즉 부르주아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2) 우리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3)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자발적인 ‘집단’은 핵가족 중심의 일부일처제 가족과는 분명히 다르며, 그보다 분명 나은 것이다. 다른 모든 사회제도와 달리 자발적으로 형성된 집단은 제도를 반영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의 자유 위에 군림하는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독재를 강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4) 카리스마가 있는 반지도자적인 지도자들은 지도자가 아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지도자들의 ‘지도력’은 본질적으로 해악이다. (5) ‘광기’는 다소 ‘혁명적인’ 것이다. 사실상 우리 문화에서 광기는 무자비하게 처벌받는 무기력한 외침이다. - P242

사즈는 시민의 자유에 굳은 의지를 가진 도발적이며 정치적인 사상가이며 대단히 격조 높은 도덕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심리치료가 대단히 ‘사적’이라거나 다양한 사회적 권력 남용으로부터 개인을 반드시 자유롭게 하리라는 그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광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광기’는 ‘억압’과 ‘조건화’와 관련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이해만으로 억압이 초래했던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확신하지도 않는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치료 자체가 비윤리적이며 억압적이라는 사즈의 말은 분명히 옳다. 하지만 사즈는 뿌리 깊게 조건화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자기희생과 심리적인 자기희생에 순응하는 여성들의 본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을 ‘병들’거나 ‘나쁜’ 사람으로 여기며, 대단히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몸을 맡긴다. 경제적 육체적 성적 박탈이나 처벌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에게 자기희생을 대단히 고귀한 가치로 여기게끔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자기희생을 수행한다. 이 자연스러운 자기희생에 관한 여성들의 분노가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고 나면, 병원의 관행이 그들의 희생을 어쨌거나 강요할 것이다. - P249

심리치료 제도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위안과 자유에 대한 환상과 자기 인식이라는 자기 탐닉을 제공하여 사회적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형식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제도는 그와 같은 환상에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어쩔 수 없이 정신병적이라거나 위험하다고 낙인 찍고, 사회가 그들을 정신병원에 넘기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을 처벌하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심리치료 제도는 임상의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가부장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임상의는 우리 문화의 다른 누구보다 더 신성한 영감을 받거나 자기 자신의 감정과 접촉하지 않는다. - P251

젠더 폭력은 고통이나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적 증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진단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할 것이 많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젠더 폭력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초래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여성들이 진정으로 고통받고, 아울러, 다양한 방식으로 병리학적 진단을 받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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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1

아침부터 뉴스 보다가 아래 소식 보고 깜짝 놀랐다.

https://v.daum.net/v/20211224073447462?x_imp=dG9yb3NfY2xvdWRfYWxwaGE=&x_hk=NzU1ZmVmMDU4NjZmZjJlMDdm


연말 사면 결정 리스트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수긍이 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아무리 건강상 이유라해도)

삶은 고구마 몇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해진다.

이건 아니지 싶은데.


#2

알라딘 인문/사회 레터를 매주 금요일마다 받고 있다.


에세이가 처음 눈에 띈다.


제목부터 딱 끌린다. 《숭배 애도 적대》라니. 자살률이 높고 정치가 실종된 한국에서 그동안 숱하게 싸워온 투사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저자부터 천정환님이니까.



오바마와 빌게이츠가 추천한 책이라고 한다. 

1940~41년을 배경으로 영국의 윈스터 처칠이 총리로 임명되고 나서 1년간을 다뤘단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영국 안팎의 정세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있으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독일 기사를 확인하고 몇 년간 자료 발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써 낸 책이다. 생각보다 대한제국이 저평가되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3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소한 기쁨으로 보내보려한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캐롤 LP도 사고 클래식 LP도 사서 집에선 그걸 듣고

집-회사 오며 가며 이동할 땐 캐롤을 많이 들었다.

이렇게 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나고 좋은 것 같다.


어제 퇴근하면서 옆사람이 크리스마스 케잌을 사왔다.

오늘은 그거 먹으며 집에서 조용히 보내려고 한다.



아! 어제 게이샤 커피도 도착했으니 그것도 맛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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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24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커피, 케익.

거리의화가 님, 메리 크리스마스! :)

거리의화가 2021-12-24 10:4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연휴 되시길요^^

mini74 2021-12-24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메리 크리스마스 ~

거리의화가 2021-12-24 10:42   좋아요 1 | URL
미니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scott 2021-12-2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ヾ( *・ω・) °・ 🎁
`し( つ つ━✩* .+°
(/しーJ

거리의화가 2021-12-24 12:10   좋아요 1 | URL
스콧님도 가족과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라며. 메리크리스마스!

바람돌이 2021-12-24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책과 커피와 케익이면 저절로 따뜻해질듯요. 사실은 저도 어제 케익 먹었어요. 자꾸 자꾸 뚱뚱해지는 크리스마스예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1-12-24 14:31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케잌이 빠질 수 없죠. 이렇게 합리화해봅니다ㅎㅎ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