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강대국의 입김 속에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코리언에게는 한국전쟁을 코리언화하는 작업이 가장 시급하다. - P87

전쟁, 특히 문명국가 간의 전쟁은 분명히 권력의 또 다른 행사이고 정책의 실천이다. 그런데 권력의 획득과 자원 분배로서의 정치는 경제 및 사회 상황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치활동은 곧 자원의 분배이자 이익의 조정이며, 정치적 역학은 이해의 균열이나 경제적·사회적 세력의 분포에 좌우된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군사적인 것의 핵심은 정치적인 것이며,
군사적인 것과 정치경제적인 것은 직접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 P99

근대국가 건설이란 곧 누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는가 하는문제이다.

계급투쟁의 가장 극적인 표현으로서의 혁명 혹은 - P109

혁명적 노선은 계급 간의 질서 있는 대립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려는 적나라한 폭력의 행사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의 혁명 과정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현상유지세력의 강력한 저항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갈등은 통제되지 않는 범위로 확장된다. 즉 초기에는 큰대의와 명분으로 출발한 혁명이 진행 과정에서 반드시 선의의 희생자를 낳게 되고, 결국 민중들의 원초적인 계급적 분노가 개개인들의 사적인 분노와 혼합되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 P110

전쟁의전선이 바뀜에 따라 ‘영토‘가 바뀌고, 국가조직이 바뀐 영토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지만, 국민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국민은 적 치하와 국가 치하에 편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새로운 국가에 충성을바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국가, 즉 전선을 따라 이동하던군대는 주둔지의 주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였다. 이 경우 국가, 즉 군대가 움직이자 그 이전의 ‘다른 국가‘에 충성을 바친 적이 있었던 국민은 그 국가를 따라 움직여야 했지만, 그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 P172

재판 현장에서 생과 사의 결정은 동원된 주민들 목소리 크기에 의해결정되기도 했다. 즉 죽이자고 외치는 사람이 많으면 곧 죽게 되었던것이다. 생과 사의 결정이 단순히 이념적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소의 인간관계 · 인격. 타인과의 원한 여부 등 아주 사적이고 우연한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P235

6.25 발발 후 이승만 정권이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과정에서 저지른 가장 큰 사건은 ‘국민방위군사건‘이었다. 정부는 1950년 12월 21일에 공포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거하여 제2국민병역에 해당하는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장정을 국민방위군에 편입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서울과 지방에서 국군이 후퇴작전을 펴자 각 지역에서 징집된 방위군도 자연히 후방으로 이송해야 했다. 그런데 이송 도중이나 후방 도착 시 장정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많은 돈을착복하여 방위군에 대한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수많 - P255

은 방위군이 질병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행군 도중 병자나 아사자가 생겨도 보살피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동은
‘끌어가고 끌려가는 슬픈 행군‘이었다. ‘포로‘도 아닌 국군으로 징집된 그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거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갔다. - P256

전쟁 당시 학살의 사실이 이렇게 은폐되고 또 학문적으로도 접근되지 않은 것은, 한반도 통일은 물론 21세기 동아시아에서 평화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데에도 대단히 심각한 장애가 된다. 한국전쟁기의 학살을거론하지 않고서 지난 시절 한반도 냉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국 사회 내의 통합을 이루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 P283

좌·우익 주민들 간의 폭력과 상호 살해는 그 출발점에서는 분명히신분. 계급 간의 갈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당시에는 소작인 · 머슴 등억압받고 못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좌익에 공명하였으며, 지주층이 주로 우익 측에 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주나 양반층 자제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 좌익에 가담하였고, 하층민 출신들이 신분상승을 위해 경찰과 군에 투신한 경우도 많았으므로 경찰과 민간인의 대립을 계급 간의 갈등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 P318

반란과 부역의 담론은 이승만과 대한민국, 김일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절대적 공동체, 군주 혹은 군주국가와 유사한 정치 단위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태생적 공동체 혹은 백성과 군주가 피로써 맺은 체제에 대한 배반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는 반란자와 그의 가족은 모두 한 사람의 반란행동에 연대책임을 진다는 가족주의와 같은 궤를 이루고 있다. - P370

이승만을 구원해 주고 남한의 지배집단을위기에서 구제해 준 이 전쟁을 통해 형성된 국가는 반공주의‘의 신성함을 과시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이민족 혹은 적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적으로 의심되는‘ 수많은 동족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국가였다. 그 국가는 이제 안보‘를 위해 ‘아름다운 나라‘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신적·문화적 자양분 등 거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의존하게 되었다.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전투의 기억‘들과 ‘미국으로 - P399

대한민국 지배집단의 다수는 국가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식들을 모두 해외에 유학 보내거나 정치적 압력과 뇌물 등을 통해 자신과 자식의 군복무 - P402

를 면제받고, 고급정보를 빼돌려 투기와 부정축재에 앞장서 왔다. 국무총리가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 탈법행동을 하고 불명예 사퇴를 하는 등 이들의 도덕성이나 국가에 대한 헌신은 보통의 국민들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6.25 발발 다음 날 고위관리들이 식솔과가재도구까지 챙겨 관용차를 타고 서둘러 도망가던 것과 크게 다르지않은 행동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P403

우리는 한국전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이러한 세계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표현인 국제적 군사대결체제라는 틀 속에서 보아야 하고,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과 인권의 실현이라는 전망을 놓치지 않은 채 그 부정적 유산을청산할 길을 찾아야 한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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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권을 읽고 삼체 중드 시리즈 앞부분을 보고 있다가 바빠져서 한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출퇴근으로 이동하는 길에 조금씩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삼체 1권을 재완독했다. 여전히 난해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삼체 중드는 삼체 소설 1권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원작에 충실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가 있다. 캐스팅도 어쩜 그리 찰떡으로 했는지 특히 왕먀오와 스창, 선위페이, 예원제 등... 모두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라 흡입력을 더한다. 원작 내용상 전체적으로 드라마는 묵직한 분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미를 생각한다면 다른 컨텐츠를 보는 것이 낫겠다. 넷플릭스 삼체도 진작 나왔지만 여력이 안 되어서 아직 시도해보지는 못했다. 원작과는 다른 느낌이 많다는 평인데 어쨌든 나는  궁금해서라도 향후 보기는 할 것 같다.

삼체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그대로의 영상을 원한다면 30부작인 중국 드라마를 추천한다. 


삼체 이야기는 수학, 물리, 천문학 등 관련 지식들이 많아 어려울 수 있지만 대중들도 흥미롭게 여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제법 많다. 나도 순수 과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어도 재미나게 볼 수 있었다. 


삼체 1권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를 몇 개만 꼽아보자.


먼저, 초반에 왕먀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경계에 뛰어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누구라도 눈 앞에 시한폭탄 타이머가 움직인다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타이머의 끝은 어떤 것일지, 내 삶은 이대로 끝이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이 타이머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될테니 말이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텐데 눈 앞에 종종 희뿌연 안개 같은 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다. 가끔씩 느끼는 어지러움증과는 다른 느낌인데 그럴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잠깐동안 생기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매 순간 눈 앞에 숫자가 새겨지는 경험은 역시 유쾌할 것 같지가 않다.


숫자들이 그를 집요하게 따라왔다.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창밖 잠든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찬란했고, 카운트다운 숫자는 광활한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 속 자막처럼 떠 있었다. - '저격수와 농장주' 中


두 번째로, 홍안 기지의 진실이 파헤쳐지기까지의 과정이다. 중심 인물은 예원제로 부모가 모두 물리학도였으니 자연스레 그도 물리를 전공했다. 그의 부모는 서로 입장이 달랐는데 한쪽은 기본과 이론을 중요시했다면 다른 한쪽은 현실에서의 적용(응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이 시작된 시점으로 양국 간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도 그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마오쩌둥의 사상 검증에 의해 예원제의 부모는 걸려들어 갈라서게 되었고 그녀도 이로 인해 노동형을 받아 가게 된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예원제는 양웨이닝과 레이즈청을 따라 홍안 기지에 들어선다. 


사실 나는 홍안기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찾아나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으나 그 전에 환경에 대한 비판이 인상 깊었다. 예원제가 노동형을 받으면서 읽게된 책이 공교롭게도 카슨의 <침묵의 봄>이었다는 것이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 전에서 DDT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인데 카슨의 책을 통해서 이는 더 잘 알려진 면이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숲의 나무들은 끝도 없이 잘려나갔다. 붉은 등을 내뿜는 거대한 전파 망원경은 새 떼를 집어삼키고 근방의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피부의 가려움증이 생겨난다. 오늘 아침 신문 기사에서 이런 단어를 보았다. '기후 위기'나 '기후 재앙'을 넘어선, '기후 이상화'라는 단어다. 얼마 전 6월 중 역대 최고 기온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외에는 성지 순례를 간 사람들이 50도가 넘는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900명이 넘게 사망했다고 들었다. 갈수록 지구의 환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푸다닥하는 소리가 나더니 산 아래 숲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밤하늘로 속속 떠올라 빙빙 돌았다. 그녀는 엄동설한 숲속에 그렇게 많은 새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어 공포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새 떼가 안테나가 향한 곳으로 날아들더니 희미하게 빛나는 구름을 배경으로 후드득 추락하기 시작했다. 약 15분 뒤, 안테나의 붉은 등이 꺼졌고 피부의 가려움증도 사라졌다. - '홍안 1' 中 


세 번째로, '삼체'의 목적과 지구삼체조직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구원파와 강림파 간의 구도를 설정한 작가의 생각이 좋았다. 지구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 구원받을 수 있는가, 지구는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없애버리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각 파의 대표 인물인 선위페이와 판한이 치열한 갈등을 벌일 때 특히나 흥미로웠다.


웨이청이 말했다. "삼체문제(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체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 천체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의 진정한 해결 방법은 어떠한 시간 단면의 초기 운동 벡터를 알고 있을 때 삼체 시스템 이후의 모든 운동 상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수학 모델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위페이도 갈망하는 목표였습니다."

선위페이가 말했죠. '당신들은 주의 힘을 빌려 인간에 반대하지요.' 그러자 판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 우리는 주가 세상에 강림해서 진작에 벌을 받았어야 할 인간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이 강림을 막고 있지. 그러니 우리는 공존할 수 없어." - '삼체문제' 中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 인물이 밝혀지기까지의 추적 과정은 그야말로 짜릿하다. 중심 인물이 밝혀지고 지구삼체조직이 설정되고 나서는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기까지 했다. 물리 개념을 몰라도 과학과 문명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구인이 해야 할 생각과 행동은 무엇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 '물리' 선생님만 좋아했지 정작 '물리'와는 담 쌓고 지냈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컴퓨터를 전공했음에도 인문/사회 분야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느라 과학 분야의 책을 등한시하고 있는데 간간이 읽어보자는 결심을 갖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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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 보니 6월의 반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 읽지도 못하고 안 읽으니 쓰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역시 읽기와 쓰기는 일종의 훈련이라 계속 하지 않으면 퇴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름칠을 위해 짧게나마 끄적여 본다.




유발-데이비스의 <젠더와 민족>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달 여성주의 책을 읽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 달 책은 꼭 읽고 싶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젠더'와 '민족'이란 키워드는 둘 다 내가 관심을 갖는만큼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는 초반부터 인류학, 사회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자와 인용 목록이 등장한다. 읽다 보면 어지럽기는 한데 예전보다는 나아졌음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작가와 관련 책의 목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해서 총 3장까지 읽었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생각한 바는 제목의 키워드가 글에 전체적으로 잘 녹아들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따로국밥 같다고나 할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문장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 중에서는 맥락과 상대주의라는 키워드에 눈길이 갔다.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 등의 개념을 따르고 있는 게이튼스의 주장은 젠더 관계를 분석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아는 언제나 상황적이다"라는 주장의 중요성은 젠더 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관계의 분석과 관련이 있다. - P30



해러웨이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학자 여겨진다. '사이보그 선언문'과 '반려종 선언'을 통해 내가 얻었던 지식적 충격은 지금도 유효하다. '맥락'context는 보편주의와 절대성과 반대 지점에 있는 개념이다.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지식은 다른 결론을 낳는다. 세계의 시공간은 좁혀졌지만 오히려 자국 보수주의가 득세하는 지금 '맥락'은 더 중요해졌다.


단일한 시각은 이중적인 시각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시각보다 나쁜 환상을 만들어낸다. - 24P 





문화 개념은 조너선 프리드먼이 설명한 보편적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들과 상대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기적 논쟁을 통해 오랫동안 결정되어 왔다. 전자의 관점에 따르면,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자신의 '발달단계'에 따라 특별한 서열을 지니게 되는 인간 문화 전반이 있다. 이를 거부하고 있는 이들이 주장하는 상대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에 따르면, 문명마다 상이한 문화를 갖고 있어 이들이 지닌 고유한 측면에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79~80



문화 개념에도 '보편주의'와 '상대주의'가 있다.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학자 쪽에 속한다. 불과 몇 달 전 읽은 <문화의 해석>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솔직히 그 때는 꾸역꾸역 읽었는데 몇 달이 지나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읽고 안 읽고는 역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라는 것이 발생학적으로 과연 무엇인가에 관하여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민족의 문화적 특수성, 즉 그들의 특이한 점들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개념의 구성-또는 재구성-에 인류학이라는 과학이 기여한 주요한 공헌은 그것들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데에 있을 것이다. - P63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의 개념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실례로 자바, 발리, 모로코 등의 원주민 문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 문화적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직접적인 현지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계와 이론을 정립해나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도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책의 부제가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다. 정희진 선생님이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서 나는 '트랜스', '횡단'이라는 개념을 뚜렷이 자각할 수 있었다. 


융합은 '범학문'이라는 표현처럼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식이 만나서 새로운 앎을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횡단적 사고' '사선으로 보기' '가로지름(crossing)' '조우(遭遇)'가 융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P46~47


'위치성'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나의 위치에서 생각한다는 건 성별, 계급, 인종, 지역 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 속에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만물은 결국 '나'라는 렌즈를 통해 인식되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앎은 무의미하거나 대개는 사회악이다. - P59


요즘 특히 나는 맥락과 위치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곤 한다. 내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사안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한 맥락 안에서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다른 형식의 민족 집단과 국가의관계와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여성들이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이해하는 전제조건이다. - P39
중요한 것은 혈통 개념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문화에 기초한 민족구성물에서 비롯된 관심들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둘 모두 국가 시민권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분석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젠더관계의 다양한 양상은 이러한 민족주의 기획의 모든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에 대해 적절한 어떤 이론화에는 중요하다. - P50

‘재생산권’은 보다 일반적인 여성 해방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보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일부로 봐야 하며, 이때 사회에서 사람들이 처한 위치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 P76

여성들은 종종 집단체의, 집단체 경계의 문화적 상징으로, 집단체의 ‘명예’의 잉태/전달자이자 세대를 잇는 집단체 문화 재생산자로 구성된다. 특정 법령과 규제들은 ‘올바른’ 남자와 ‘올바른’ 여자란 누구/무엇이며 집단체 구성원들의 정체성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면서 대체로 발전한다. 식민과 종속 과정에서 비롯되는 권한 박탈의 감정들은 식민화된 남성들을 통해 종종 남성성 박탈과/이나 여성화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저항과 해방의 과정에서 남성의-그리고 더러는 보다 중요하게 여성의-역할 (재구성)은 대부분의 이러한 투쟁에서 중심이었다. 그러나 문화들이 동질적이지 않은 만큼 그리고 특정 헤게모니 문화구성물들이 집단체 안에서 지배적인 지도력의 관심과 밀젒한 관계가 있는 만큼, 이러한 헤게모니 구성물들은 종종 이러한 헤게모니 기획을 지향하는 입장을 거스르기도 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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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16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이번달 여성주의 책이랑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저도 6월책 막 시작했는데 진도가 영 지지부진하네요. 기름칠을 위해서 자주 자주 올려주시어요^^

거리의화가 2024-06-20 08:02   좋아요 1 | URL
이번 책 어려운 듯하죠? 이런 책은 읽다 말다 하면 더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에 아예 완독해버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조 교재로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힘을 짜내어 더 자주 써보도록 해보겠습니다. 무더위가 찾아왔는데 건강 잘 챙기시길요!
 

집금오 주부가 상소하기를 "옛날 堯舜과 같은 태평한 시대에도 오히려 세 번 考課를 가하였고 대한이 일어났을 때에도 공적을 쌓게 하였으니, 관리들이 모두 오랫동안 근무하여 자손들이 장성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수재를 자주 바꾸어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여 서로 교대하느라 도로에서 지치고, 또 사무를 본 날짜가 짧아서 자신의 직책을 밝게 알지 못하며, 게다가 이미 준엄하게 견책을 가하니,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합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몇 해가 지난 뒤에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 뜻을두시고 한 代가 지난 뒤에 국가가 다스려지기를 바라신다면 천하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라고 하니, 황제가 그 말을 채택하여 이로부터 牧守들을 바꾸고 교대함이 자못 줄어들게 되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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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젠더와 국가의 이론 정립

‘여성성‘womanhood은 관계성의 범주이며 그와 같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민족성nationhood의 구성물들이 대개 ‘남성성‘manhood과 ‘여성성‘ 모두의 특정 개념들과 관련 있다. - P15

젠더, 인종, 계급은 이들이 비록 각기 다른 존재론적 기반과 별도의 담론을 지녔다 해도, 구체적인 사회 관계 속에 서로 맞물려 있으며 함께 논의될 때 더 명확히 설명된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부가 개념으로 볼 수는 없으며 어느 것도 추상적으로 우선시할 수 없다. - P26

젠더는 ‘실제‘ 사회적 남녀 차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젠더는 이들의사회적 역할들이 인종 및 민족 집합체에서 이들이 갖는 경제적 위치나 구성원권과는 정반대로, 이들의 성차나 생물학적 차이에 따라 정의되는 일단의 주체들과 관련된 담론의 양식이다. 성차 역시 담론 양식으로 이해해야한다. 담론을 통해 일단의 사회적 주체들은 상이한 성적/생물학적 구성물을 지닌다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젠더‘와 ‘성‘ 모두 담론 양식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다만 그 사안이 다를 뿐이다. - P29

한 맥락 안에서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다른 형식의 민족 집단과 국가의관계와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여성들이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이해하는 전제조건이다. - P39

중요한 것은 혈통 개념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문화에 기초한 민족구성물에서 비롯된 관심들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둘 모두 국가 시민권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분석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젠더관계의 다양한 양상은 이러한 민족주의 기획의 모든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에 대해 적절한 어떤 이론화에는 중요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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