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세계의 경우 자연철학이 기저를 이루었고 때문에 인문 현상들도 ‘지스‘로 환원해서 설명코자했다면 (그 극한은 원자론이다), 동북아세계의 경우 인문학이 기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들도 그 의미에 기반을 두고서 해석되었다. 그런 만큼이 문명에서 자연(天地)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의미로서의 자연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경우 자연 현상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이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 P33

지중해세계와 지리적 구조는 전혀 달랐지만, 고대 동북아세계 역시 무수한 이민족들이 명멸한 공간이었다. ‘중국‘의 역사가 마치 어떤 공동의 틀 내에서 성씨들만 교체되어간 역사라고 보는 것은 훗날 중원 대륙을 차지한 사람들이 사후적으로 구성한 역사일 뿐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ㅡ를 정립하고 하·은·주 삼대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아울러염제와 치우 등을 악역으로 배치함으로써 동북아의 역사를 일종의 선/악의 구도로, 정통/이단의 구도로 정립했다. 이렇게 본래 극히 이질적이고 역동적이었던 역사를 추후에 매끄럽게 재단하고, 또 선/악, 정통/이단의 구도로 구성해냄으로써 비로소 "중국"이라는 하나의 동일성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바로 『서경』이 이미 이러한 재구성의 원형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상고 시대를 논할 때, 우리는 사후적으로 구성된 이동일성 아래로 내려가 다채롭고 역동적인 차이생성을, 실제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 ‘중원‘의 역사를 말할 수는 있어도 ‘중국‘이라는특정한 나라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중원의 역사는 다양한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낸 역사일 뿐이다. - P54

그리스 자연철학과 동북아 역학의 차이는 다음 인용문에 특히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성인이 ‘괘‘를 긋고 ‘상‘을 관찰해 ‘사‘를 걺으로써 길함과 흉함을 밝히려 했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밀어 (剛柔相推) 변화가 생겨나니, 그로써 길함과 흉함은 얻고 잃음의 상이요, 후회와 부끄러움(悔)은 안타까움과 짓눌림 (憂)의 상이요, 변함과 화함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함과 유함은 낮과 밤의 상이다. 6효의 변화가 하늘·땅· 사람의 길(三極之道)을 세운다.
하여 군자는 ‘역‘의 배열에 입각해 편안히 안거할 수 있으며, 효사를 읽음으로써 즐 - P127

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군자가 거할 때는 ‘상‘을 보고 ‘사‘를 즐기지만 동할 때에는 ‘변‘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 한 것이다.(「사전 상」, 2장) - P128

동북아의 세계는 ‘작(作)‘의 세계가 아니라 ‘생(生)‘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 - P186

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기에 구현되는 선험적 질서로서의 이데아 개념 또한 없다. 다만 기 안에 잠재해 있고 기가 특정한 물(物)로서 개별화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내재적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기의세계는 코라의 세계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경우 코라의 의미는 현저하게바뀐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물질성, 생명성, 정신성을 내함(含)하고 있는 유일의 실체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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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8-05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멋져요!! 거리의화가님 완전 신세계 펼쳐집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근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5 16:18   좋아요 1 | URL
동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니 역시 ‘주역‘을 알지 않고서는 어렵더군요. 이 책 주역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8-11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주역 읽고 공부하려고 시도하다가 금세 포기했는데 거리의화가 님, 화이팅 입니다. 빠샤!!

거리의화가 2024-08-11 17:05   좋아요 0 | URL
주역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저도 예전에 중국철학서 읽을 때 주역이 나왔었는데 너무 어려웠었거든요. 주역은 해석서가 꼭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달은 장마와 함께 수증기가 밀려와 빨래를 해도 도무지 마르지 않는 나날이었다(건조기를 쓰지 않는데 이제는 정말 사야 하나 싶다ㅜㅜ). 


어김 없이 지난 달 읽은 책들을 정리해본다. 




일단 <한국 여성문학 선집> 시리즈(총 7권)가 있다. 어제까지 마지막 권 읽고 시리즈 완독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리뷰가 계속 밀려 있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도 며칠 안에는 읽고 마무리가 될 것 같다.

한국 여성 문학의 역사는 근현대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기획 덕분에 개인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이 많아져서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수록된 작품들이 문학 중 소설 장르에만 치우치지 않고 시, 희곡 등도 담겨 있다. 게다가 문학 만이 아닌 연설문이나 비평문, 좌담회 발췌 등도 실려 있다. 문학은 간접적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면, 비문학은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서 다른 맛이 있다. 독자가 어느 장르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선집의 묘미가 아닐런지.

기억에 남는 작가들이 있다면 근대 시기에는 김일엽, 지하련, 박화성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현대 시기는 최정희, 김자림, 박완서, 박경리, 정복근, 김승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추후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다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 역사를 재구성하는 보충재로서도 톡톡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마드>는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 고대부터 현재까지 유목 생활을 하던 이들의 역사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책이었다. 특정 지역을 오간 역사를 기술하되 고대 같은 경우 신화를 풀어 놓아 흥미를 돋우고 중세 이후에는 여행자들의 기록이나 역사서 등 관련 책을 기술하여 입체적인 역사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농경과 정주가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관점에서 어느새 유목 등 '이동'도 다르거나 비상식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책들이 과거보다 확연히 많아졌다.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은 이제 더는 유효하지도 않다. 다르게 볼 수 있는 감각을 역사서를 통해서도 이제는 경험해볼 수 있게 되었다.



<12.12>은 재판본이다. 초판본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판을 받을 무렵 나왔다. 이번 재판본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12.12의 배경과 결과 후의 역사까지 담아 놓았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사전-사후 지식까지 채울 수 있는 선물 같은 기획이 아닌가 싶다. 나 같은 경우도 12.12에 대한 자세한 내막이나 경과 과정을 잘은 몰랐기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책을 보고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더니 화룡점정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책을 보아도 정리하는 측면에서 좋을 것 같다.



<인생>은 위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장편 소설로는 첫 작품으로 알고 있다. '푸구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전쟁, 가난으로 힘겨웠던 푸구이의 삶에서 가족이란 자신을 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존재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구든 홀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가족을 선택할 수 없어서 때론 맞지 않아 힘들고 삶에 부딪쳐서 힘들기도 하지만 가족 때문에 행복하고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담담하게 울리는 문장을 얻는 것은 덤이다.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한국의 여성주의와 역사를 정리한 책이라 사례 등이 쏙쏙 이해되어서 참 좋았다. 뒷 부분의 제주도의 사례가 특히 좋았는데 이런 책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알고는 있으나 앞으로 여성주의를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나와주었으면 한다. 해외의 페미니즘 이론이나 대중서의 경우 번역을 해서 들어오기는 하지만 사례 등이 아무래도 외국 것이라 잘 와닿지 않아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니.  


권 수로 따지니 11권이라 많아진 느낌인데 개인적으로는 쉬어 가는 한달 간의 책 읽기였다^^ 


지난 달부터 시작한 함달달 책 <Holes>는 읽고는 있는데 잘 감기지가 않아서 결국 완독을 못했다. 함달달 책으로 그나마 영어 공부를 진행하는데 뭐가 문제일까. 아무튼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성정상 아니라서 완독은 해보려고 한다. 




요즘 덥지만 먹기는 또 잘 먹는데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양이 줄어드니 살만 찌고 있다ㅎㅎㅎ 어제는 편육에 막걸리를 먹었다(왜 이리 맛있는지ㅠㅠ). 계속 흐린 날이 많아 사진을 한동안 찍지 않았다. 그러다 반짝 해가 나면 그때만 찍곤 한다. 더워도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역시 좋다^^








8월도 잘 살아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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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8-02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의 꾸준한 읽기, 대단합니다.
더위를 핑계로 저는 게으른 여름입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의 리뷰 잘 읽고 있어요. 마지막 7권은 익숙한 작가가 보여 더욱 궁금합니다.
8월에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이어가세요!

거리의화가 2024-08-02 10:17   좋아요 2 | URL
자목련 님 무척 더운 여름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아무래도 쉽지 않은 책 읽기 계절입니다ㅋㅋ 선집 리뷰 잘 봐주고 계신다니 감사하고요.
무더위란 핑계로 계곡이나 바다로 가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뒹굴거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최소 열흘 정도는 폭염이 지속된다고 하는데 수분 섭취 잘하시고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요^^

페크pek0501 2024-08-02 1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중 <인생>밖에 읽은 게 없도다...ㅋㅋ
다음달에 읽으신 책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지 기대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2 14:59   좋아요 2 | URL
ㅎㅎ 페크 님 인생 저도 계속 미루다 이번에 읽어봤어요^^ 위화 이후 작품도 계속 읽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8월도 즐거운 독서 생활 이어가시길!

단발머리 2024-08-02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더운 날씨에 많이 읽으셨네요, 거리의화가님!
<한국 여성 문학 선집> 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7권에 기가 팍 죽어서 ㅋㅋㅋㅋㅋ 시작도 못 하고 있어요.
겹치는 그 한 권, 매우 반갑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8-02 16:37   좋아요 1 | URL
이번 여름처럼 어디 잘 안 돌아다니고 집콕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름 휴가도 집에서 보내려고 생각 중이라... 7권이라 많아 보입니다만 막상 읽으면 잘 읽혀서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한국의 여성과 남성> 얼마 전 올리신 글 봤습니다. 늘 좋은 귀감이 되어 주셔서 저도 보고 배우네요. 이번 달도 행복한 책 읽기 되시기를!

stella.K 2024-08-02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딴청인데 냉면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냉면 값이 많이 비싸다던데 비싼만큼 양이라도 많으면.

저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읽고 싶긴한데 과연 읽을 수 있을지...ㅠ

거리의화가 2024-08-04 12: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요새 냉면 양이 작더라고요? 도심에서 11,000원의 가격이면 싸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코다리 냉면이라 쫀득한 식감도 즐길 수 있었답니다.

스텔라 님 한 번에 읽기 힘드시면 특정 시기를 잡아서 한 권씩 독파해보시는 방법도 좋을 듯 하네요. 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시길 기원합니다^^

다락방 2024-08-11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성정상 아니라서‘ 라니, ㅋ ㅑ -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성정인 것입니다!!

거리의화가 2024-08-11 17:06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ㅠㅠ 여행 다녀오시자마자 아프셔서 어째요. 얼른 건강 회복하세요!
ㅎㅎ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장

경제적 조건의 변화와 피임법의 개발.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사상이 뿌리내림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으며열권 운동가들은 이대로의 진행이 곧바로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와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것으로 낙관하였다. - P387

많은 여성의 직업 진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의 종속은 지속되고 남성과 여성간의 진정한 대화는 열리지않았으며 여성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 속에 빠져 있음에 주목하여반성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모성 체험을 중심으로 한 성차에 대한 재해석과 여성주의적 문화 운동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 - P388

모성적 체험과 부모-자식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온 이러한 연구가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경험의 이분화가 사고 성향의 이분화를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분화는 무의식적 사고 구조의 차이에서부터 구체적 관심의 차이에까지 걸쳐 나타나는데 우선 코넬, 터시웰Cornell and Thurschwell (1987)과 버틀러 Butler (1987) 등은 개체의 특성을 분리성과 차이성에서 찾는 이분법적 논리 구조가 남성 지배 체제와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이 이원론 - P390

적 사고 구조는 여성 억압뿐 아니라 자연 파괴적 세계관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보고 궁극적으로 인간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관계를 규정해온 이원론의 극복 가능성은 우주 질서를 유기적으로파악하고 상호 의존성을 인식해온 여성들에게서 찾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P391

억압된 집단의 해방이란 그 집단이 지배 집단의 언어나 인식 범주를 통하지 않고 체험을 그 자체로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 P396

 기존 체제에 살아남기 위해서 핵심부와 주변부를 왕래하며 살아야 했던 주변인은 마치현장에서 참여 관찰을 하는 문화인류학자처럼 두 개의 세계를 경험하고 비교해볼 기회를 가지며 이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 이로써 주변인은 기존 체제를 더욱 객관적이고 상대적으로 볼 눈을 갖게되는 것이다.  - P398

일단 여성들이 자신의 억압 상태를 인식하게된다면, 그는 이미 인간 억압을 체험적으로 느껴온 터이므로 모든 종류의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자각한 여성은 억압된존재로의 자신 속에 길러진 부정적 성향을 인지하고 극복해나감과동시에 억압당하는 집단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분명히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또한 피지배자로서 지배자와 공존하여 살아가는 동안 지배집단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개발해왔다. 곧 자기 자신을 의심해보고 성찰하는 경향, 남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감정 이입적 이해의 능력으로서 이것은 더욱 인간적이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주요 자원이 될 수 있다. - P400

한국의 여성 운동은밖으로는 가부장적 원리의 핵심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원리에 근거한 - P403

세계의 지배 질서에 안으로는 ‘민족‘과 ‘분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온온갖 비인간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 P404

여성들이 공유하는 이상향은 약자를 보살피고 인간 관계 자체에서성취감을 느끼며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노동하며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이때 기존의 거대 조직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나눌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로 분권화되고, 인간의 개성과 이로 인해 창출되는 다양성은 최대로 존중되며 나라 예산의 가장 큰 몫은 국방비가 아니라 교육비로 쓰여질 것이다.
이는 곧 인간과 인간간의 위계 관계를 극소화하고 평등한 협동 관계를 극대화한 사회이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여성은 출산이 원죄의 고통이나 전생의 죄의 보상 행위가 아니고 고통 후에 오는 결실이며 생명 창조의 기쁨을 만끽함과 동시에, 모성의 체험은 문화적인 것이며 따라서 남성도 나누어가질 수 있음을 깨우쳐주게 될 것이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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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부분

제주는 육지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많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 위주의 행정력과 비공식적 지도자로서의 귀양 선비들의 활동은 제주도의 삶에 무시 못할영향력을 미쳐왔다. 16세기 이후부터 1900년 전후에 걸쳐 일어난 많은 민란에서 보여주듯이 제주는 외적 권력에서 부단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역사를 보임과 동시에 외적 권력에 아부하는 역사의 이중적면을 보이고 있다. - P308

육지가 관개 수리 사업과 가축의 힘을 토대로 한 남성 노동 중심의미작(米) 농업을 발전시켜온 반면, 제주는 생태적으로 특히 토질과강우량 등에 있어 여성 노동 중심의 밭농사 위주로 생업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여기에 해변 지역에서의 잠수업이 첨가되어 제주는 명실공히 여성 노동력 위주의 생산 체계를 이루어왔다. 이것이 제주 사회가 육지와 매우 다른 문화 구조를 형성케 된 주요 기반이라 하겠다. 또한 섬이라는 지형적 변수는 제주 문화의 또 다른 독자성의 근거가 되어왔다. 대중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인 최근까지 육지와의 왕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제주는 외부에 대한 지향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화를 형성해왔다. - P309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제주도 경제 개발 기본 방향은 3차산업 중심으로 바꾸어진다.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 수준의 관광지로개발한다는 목표 아래 ‘관광 종합 개발 계획‘을 작성하고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로 외화 수입을 증대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1, 2차 산업 개발을 위한 투자는 3차 산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동시에육지부와 외국의 대규모 자본이 제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제주경제의 이중 구조적 특성을 창출하였는데, 즉 국내 자본과 국외 자본을 중심으로 한 관광 서비스 산업과 제주 자본과 노동에 근거한 1차산업의 이분화가 그것이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이루어진 급격한 경제 성장은 제주의 고등 노동력을 대거 육지로 이동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 P310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는 여성의 낮은 지위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학설이 있다. 특히 부권제 가족내의 여성의 불안한 위치와 남편의 재산을 갖기 위한 부인들간의 경쟁과 갈등 등의 주제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의 무력하고 불행한 여성이 묘사되고 있다(D‘Andrade, 1966 - P328

Martin and Voorhies, 1975).
용마을의 경우, 이런 상식적 경우와는 반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고, 또 실제로 자립하고 있는 모중심적사회에서 오히려 무력하고 불안한 남편의 위치에 대한 해결책 또는보완책으로서의 일부다처제가 장려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P329

자주성이 또한 이 마을 여성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상부상조하지만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P330

용마을의 유교는 윤리 체계라기보다는 남성 우위의 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계 조상 제사의 복합체이다. 즉 토착화 과정에서, 유교는 윤리 체계에서 교조적 남존여비의 이데올로기로 변형.
전승되어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 P335

양편 비우세의 사회는 남녀에게 기회 균등이 이루어지는 평등의사회는 아니다. 남녀 불평등의 사회인 점에서 세계에 편재한 대부분의 남성 중심의 사회와 비슷하나, 남성 지배적이 아닌 점에서 특이하다. 이는 남녀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으나 두 세계가 최소한의 자치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남성 지배적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 P337

100년간의 근대화를 통하여, 특히 최근 10여 년간내, 경제적으로는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으로, 사회 문화적으로는 도시화와 대중 교육 및 대중 매체의 보급에 따라 제주는급속히 육지 경제에 종속되고 육지의 지배 문화에 동화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주의 경우는 기질적으로 여성들이 더욱 활달하고 ‘일‘ 중심적이어서 현대적 직업 활동에 적합한 면을 보이지만 이러한 기질과 역할의 상응성은 국가의, 그리고 육지형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일방적 규제 속에서, 그리고 제주도 문화 자체의 독특한 남성 우위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무시되어왔다. - P375

제주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과 높은 적응력은 1970년대까지는.
지나치게 여성 노동이 강요되기는 했으나 상당히 발휘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체제 아래서 여성적자질은 본격적으로 억압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상은 왜곡되고 있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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