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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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처럼 환하게 몸 전체로 번지는 온기 속에서 꿈꾸듯 다시 생각한다. 물뿐 아니라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 이 섬뿐 아니라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에 과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헤아려본 일이 없다. 우리 동네에 이사오기 전 생각했던 과거는 불과 몇 십년 전의 불쾌한 일로 연루되었던 어떤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더 과거, 더 이전의 과거에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은 어쩌면 자료를 찾기 전에는 헤아리기 어려울지 모른다. 물론 자료가 남아 있다 해도 일부만 복원할 수 있을 뿐이지 온전한 복원은 불가능하겠지만. 찍으면 영상이 되는 현재와 달리 사진조차 사치였던 시기가 있었고, 있었다 해도 찍히면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강박을 가져야 했던 엄혹한 시절도 있었다.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여러 모로 국가적으로 큰 기쁨이었다. 개인적으로도 2024년 마무리를 하며 한강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어서 영광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세 번째로 읽는 한강 작가의 책인데 <소년이 온다>만큼이나 좋았다. 


이 책이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읽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도 참혹했던 과거의 사건을 현재를 사는 사람의 시선으로 잘 보여준다. 몽환적이기도 하고, 잘 만져지지 않는 물체처럼 흐릿한 부분도 있는데 그런 모호함이 한강 작가의 문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1948년부터 한국전쟁 이후 1954년까지 제주도는 참혹한 현장이 되었다. 제주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해변을 불태우자 주민들은 살기 위해 산을 올랐다. 전쟁이 터진 해 여름에 대구에서 검속된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대구형무소에 수용되었다. 매일 수백 명씩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더 수용할 공간이 없게 되자 기존의 재소자들은 총살당한다. 사망자들 중에는 좌익 혐의를 받은 사람 이외에 제주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놀라움을 넘어선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1942년 폐광된 경산의 코발트 광산에서 대구형무소 재소자, 대구 보도연맹 가입자, 경북 지역 가입자 등 3500여명이 총살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제주는 최근 들어 여행을 여러 번 한 곳이다. 코로나 전후로 한동안 해외 여행은 가기 어려웠기도 했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에 그만한 곳이 없기도 했다. 


두 시간 전 내가 몸을 실었던 비행기는 몹시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뉴스로만 들었던 윈드 시어 현상 같았다. 활주로를 미끄러져 달리는 비행기의 속도가 차츰 줄어드는 동안, 통로 건너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스마트폰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우리 다음 비행기부터 전부 결항이야.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대꾸했다. 우리가 운이 좋았네.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운좋은 거냐. 날씨가 야, 이래가지고.


몇년 전 겨울, 제주에도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우리가 공항에 내리고 나서 바로 다음 항공기들부터 결항 소식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우리는 산간에 갈 일은 없었으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참 쉽지 않았었다. 제주에도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제주의 겨울이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오돌오돌 떨면서 여행을 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벌판에 눈이 내린다. 우듬지가 잘린 검은 나무들 위로 눈부신 육각형의 결정들이 맺혔다 부스러진다. 발등까지 물에 잠긴 내가 놀라 뒤돌아본다. 바다가, 거기 바다가 밀려 들어온다.


습기가 가득한 눈이 벌판 위, 바다 위에 나리는 풍경을 이처럼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장면은 꿈인듯 현실인듯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분명히 두 갈래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폭이 다른 세 개의 길이 숲 사이로 희끗하게 드러나 나는 혼란스러웠다.


주인공은 눈 속에서 길을 헤맨다. 혼란스러움 때문에 나도 읽으면서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오래 전 독일 여행을 갔을 때 고성을 올랐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다. 그때의 공포와 불안이 밀려왔던 것이다. 주인공이 겪은 이후의 장면들은 섬뜩했다.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가는 걸까, 나는 생각한다. 이 정적이 내 꿈의 바다 아랜가. 무릎까지 차올랐던 그 바다 아래. 쓸려간 벌판의 무덤들 아래.


나의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몰라 주변을 미리 정리하고 유서를 적는 일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더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되었다. 

올해 아버지의 병환, 시아주버님의 사망으로 참 힘겨웠다. 더군다나 국가적인 재난 속에서 이 책의 내용은 그저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 쓰고 싸우자고 작가가 말해주어 고마웠다. 



내가 싸우는 것. 날마다 썼다 찢는 것. 화살촉처럼 오목가슴에 박혀 있는 것.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아 쓴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모두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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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1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42년에 많은 사람이 총살 당한 일이 있었군요 그런 건 누가 결정한 건지... 1942년이니 광복이 되기 전인데... 같은 나라 사람한테 죽임 당하기도 하고, 그런 일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많이 일어난 듯합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옛날 일만은 아니군요

제주가 따듯해도 섬이어서 눈이 많이 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비도 많이 오고...

2024년이 가고 2025년이 왔군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거리의화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5-01-01 08:05   좋아요 1 | URL
1942년 폐광된 코발트블루 광산에서 한국전쟁 때 학살당한 일이 있었던 거에요. 수용소 인원이 많아져서 기존에 있었던 사람들을 쫒아냈는데 제주도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답니다ㅜㅜ 헌데 그 근처도 아니고 경산까지 가서 그랬다는 것이 당황스럽더라구요. 물론 그곳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이 있었겠지만.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가 났을 것을 생각하면ㅠㅠ

2025년 새해가 밝았네요. 희선 님 모쪼록 작년 한해 묵은 일은 잘 털어내고 새 기운을 받아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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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기 전후 독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만들기도 한다.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의 책으로 두 번째 만나는 책이었는데 역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3명의 관점에서 사건을 풀어낸다. 육식을 거부하다 나중에는 먹는 것마저 온몸으로 거부한 사람, 그 사람의 육체를 탐닉하고자 했던 사람, 안정을 추구했지만 사실은 욕망 자체를 내려놓으려 했던 사람?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그는 자신이 어떤 경계에 와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세 이야기가 결국은 소유와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먹는 행위도 자신의 취사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욕망이다. 1부의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평소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내가 짐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짐스러움이, 괴로움이 과연 얼마나 갈까. 그동안의 육식 위주의 내 식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몇 십년동안 이어온 패턴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음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금기를 넘어서려 하는 소유와 욕망도 마찬가지다. 평범함과 안정성은 편안하지만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에게 모두 다 있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소유하고자 했던 것을 포기했던 적이 많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특히나 내 마음을 특히 흔들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점을 많이 느껴서일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튀지 않는 무난한 성실함으로 인생을 살아 왔는데 그것이 그저 ‘견뎌내며 산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늘 웃지 않아도 돼.”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을 좀 내려놓았지만.


한강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고통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질문한다.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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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세계 -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 1
마리아 미즈 지음, 안숙영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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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마을과 세계‘ 혹은 ‘세계와 마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이런 긴장을 관리하려면 큰 힘이 필요하지만 나는 서로 다른방향으로 이끌리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힘, 삶에 대한 열정을 주었다. - P316


오늘날 신자유주의 기반의 세계에서 사는 인간에게 과연 좋은 삶이란 가능할까. 마리아 미즈의 책을 읽기 전, 다 읽고 난 뒤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이 책은 마을과 세계 사이를 오간 마리아 미즈의 삶의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개인의 삶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기에 그녀가 산 시대의 역사와 사회상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고 그녀가 왜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즈는 어릴 적 농촌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 하에 생활하며 자랐다.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계속 유지하려면 책임져야 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배웠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자급자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다고 여긴다.

당시 기독교 하의 독일 사회는 15살 이후 소녀는 하녀로 일하다 자연스레 결혼 수속을 밟는 것이 일상적이었지만 미즈는 이를 거부하고 16살에 학교에 들어갔다. 기존 체제에 대한 그녀의 첫 번째 거부이자 삶의 전환이었다.


사랑을 하면서 인도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는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교사가 되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면서도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낭만적인 꿈보다 불완전한 현실이 좋다.”를 받아들여 인도로 출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삶의 전환이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인도 사회와 계급 제도에 대한 현실을 확인하면서 의문을 품는데 이 경험은 향후 그녀의 삶을 이끄는 하나의 축이 된다. 


미즈는 1968년 학생 운동을 시작으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여성 운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와 만났다.

인도 여성 운동을 하다가 1975년 비상법이 선언된 인도 정부에서 농촌 및 도시 빈곤층 남성에 강제 불임 시술을 하고 좌파 탄압을 실시하자 인도 중산층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생산적, 가시적 노동만을 화폐 단위로 측정하여 부를 계산하는데 미즈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럼 그녀의 대안은 무엇일까. 바로 자급 관점이다. 자급은 삶을 직접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는 개념이다. 상품 및 잉여 가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시스템과는 정 반대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급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태, 사회, 정치, 문화, 경제의 기반 위에 존재한다. 이는 도시와 농촌, 빈국과 부국 어디서나 가능하며 다양한 문화적·생물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할 수 있다. 자급 관점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했으며 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유지한다. - P213

과연 자급을 이용해 필요 속에서 자유를 구할 수 있을까? 남녀 사이에 평화가 찾아올까? 미즈는 자급 관점을 위해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지배를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좋은 삶을 향한 방향의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전제조건의 해결이 애당초 쉽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회의가 일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집필할 무렵 페미니즘의 주류 의견은 ‘여성은 남성과 별개로 생각을 세우고 이론, 실천에 익숙해지며 남성이 주요 업무를 한다는 통상적 이론에 참여 제한을 해야 한다.’였다. 그러나 마리아 미즈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차이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자본주의 하의 착취와 억압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페미니즘의 의견들 중 좁혀지지 않는 답이 아닐까 한다.

기술과 진보가 여성 해방에 도움이 되었는가. 예를 들면 피임약과 재생산 기술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속박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미즈는 이 의견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에코 페미니즘은 서구 산업 국가의 소비 모델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부아르는 ‘여성이 월경, 임신, 출산의 주기를 통제하고 정복할 때까지는 남성에게 문화적 성취에서 배제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기술과 도구, 여성과 육체 사이의 관계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바나나를 원해요.” “우리가 온 세상을 짊어져야 합니까? 여성 문제를 계속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바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 교통만을 이용해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 아이와 함께 이동하는 엄마로서는 대중교통만으로 다닌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만일 세계적 자유 무역에 반대한다면 대안으로 어떤 경제와 사회를 제시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할 때 시작한다. - P310


그러나 기술과 진보는 세계를 전쟁터로 몰아 넣었고 자급자족 사회를 파괴, 빈곤의 나락에 빠뜨리며 서구 산업국 시스템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자본은 끊임없는 개발을 추구하면서 경쟁을 추구하게 한다. 세계적 자유 무역은 성장을 촉진해야 번영을 꿈꿀 수 있다고 입김을 불어넣는다. 미즈는 다른 세계를 꿈꾸어야 하고 이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화 대신 지역화를, 텃밭 가꾸기를,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일개 개인인 나로서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대안을 찾고 행동하는 일이 참으로 요원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와 소비 모델에 편승하는 일은 세계와 구성원들을 파괴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를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미즈의 ‘좋은 삶’이란 말이 계속 머릿 속에서 되뇌인다. 부디 나도, 너도, 우리도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좋은 삶이란 일의 부담과 즐거움, 만족, 창의성, 공동체 의식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인간은 함께 살고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삶은 일을 마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일부가 돼야 한다. 현대 사회의 불행은 대부분 일과 ‘자유 시간‘ 모두에 즐거움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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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29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뒷부분 조금 남겨두고 있는데요 마리아 미즈에게 내내 감탄하고 동의하며 읽고 있습니다.
완독 축하드리고 읽느라 그리고 이렇게 정리도 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12-31 17:36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도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마리아 미즈의 행동하는 삶을 보면서 참 멋진 인생을 사셨던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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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야기다. 시, 희곡, 수필 등 여러 형식을 띠고 있다. 어머니의 역사와 민족, 나라의 뿌리에 대한 고민과 성찰,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의 말은 읊조림으로, 절규로 때론 삼켜지고 뱉어지듯 폭발한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고 다양한 책들과 결합할 수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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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4 -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 세계철학사 4
이정우 지음 / 길(도서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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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는 인간의 의미, 인생의 의미를 해명해온 역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이해는 곧 세계 인식과 맞물려 이루어졌다. - P709~710

철학적 사유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유해왔다. 이는 곧 윤리, 정치, 법 등에 대한 사유를 뜻한다. - P715


작년 말 세웠던 큰 계획 중 하나였던 세계철학사 시리즈를 4권을 마무리하면서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3권에서 근대성을 비롯한 칸트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핵심이었다면 4권은 근대성을 진단, 비판하는 것(탈-근대)에서 나아가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한 다양한 현대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근대 철학의 본질주의와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극복을 위해 꺼내든 탈-근대적 사유들(근대 철학의 본질주의 및 결정론을 극복하면서 전개된 생성존재론, 근대적 실증주의 인식론의 한계를 극복해나간 규약주의 이래의 여러 인식론과 합리주의적 형이상학, 인간존재를 둘러싼 현상학, 구조주의, 생명철학 등 여러 결의 참신한 시각들, 그리고 유난히 어두웠던 20세기의 현실에 부딪쳐나가면서 전개된 여러 실천적 철학들 - P7)이 탄생하였다. 


생성존재론은 ‘존재’가 아니라 ‘생성’을 실재로 보고 결정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연’ 개념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면서 형이상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생성존재론의 대표 주자는 베르그송이다.

베르그송은 피상적 현실에서 이성을 통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에 의해 생성이 폄하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실재라는 것이다.

이후 들뢰즈와 바디우가 사건의 철학을 들고 나왔다. 사건의 철학이란 사건 개념을 사물 개념과, 사실, 사태, 사고 같은 개념들과 구분하는 작업이다. 

들뢰즈는 사건과 의미 사이의 연계성을 언어적 관점에서 들여다보았다. 그는 사건(표현된 명제=의미)은 맥락에 따라 성립되고 자연과 역사 사이에 구분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디우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사유가 중요하며 자연과 역사, 존재와 사건 간에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주장했다.


철학이 분화되어 나올 무렵 과학도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분화되었다. 실증주의는 근대 문명의 성격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론에는 증명(실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다. 합리주의는 과학적인 성과가 쏟아져 나오면서 다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확장되는 합리성에 대한 비판으로 생철학, 의철학, 정신과학 등이 등장한다. 


분석철학은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분석에 의한 형식성을 중요시했으며 앞선 생성존재론과 대척점에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를 형식화하려는 앞선 시도를 논리학에 의해 참/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표로 만들었다(그 많은 일상 언어를 표로 구성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러셀은 개인이 특정 상황에서 얻은 경험 데이터가  하나의 사실이 된다고 말했다. 

이제 ‘경험적 주체’와 ‘선험적 주체’를 둘러싼 다양한 사유를 펼친 현상학을 말할 때가 되었다. 

후설은 현상학의 포문을 연 철학자이다. 그는 사물이 가진 실재성과 존재론적 가치를 현상에 부여하고 직관이 모든 인식의 기본 바탕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것에서 이념적인 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했다. 후설이 생각한 인식은 자기를 초월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의식이다.

하이데거는 당대를 거슬러 존재를 사유하고 존재와 인간의 관련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에게 ‘존재자’라는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존재케 하지만, 존재자가 드러나는 그 순간 스스로는 그 드러남 아래로 숨는다(P382). 

사르트르는 개념을 파기하고 주체가 행동하는 것이 스스로를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를 만나고 나면 그의 철학은 ‘자유’적 대자존재에서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더하게 된다. 


구조주의는 합리주의의 또 하나의 형태로 데카르트의 이원적 구도를 삼원적 구도로 변화하는 시도였다. 현상이 실재(계)라면 구조(이미지)는 상상계(추상/상징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어를 통한 의미를 계열화(수직화)하고 타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두었다. 

라캉은 철학에 정신분석학적 인간 이해를 도입한 학자다. 그는 기호와 기표를 분명하게 구분했는데 기호는 누군가를 향해 무엇인가를 대리하는 것이고, 기표는 무엇인가를 향해 누군가를 대리하는 것이다(P461). 그는 거울 효과를 통해 우리는 자기 안의 타자성을 발견해야 하며 주체의 이중성과 욕망의 이중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셸 푸코의 타자의 사유는 배제의 역학을 파헤쳐서 지식, 권력, 주체의 역사를 인식하고자 했다. 푸코는 배제, 감금, 수용 등의 구조를 통해 지식-권력의 관계를 분석해내고 주체의 존재, 행위가 문제화되는 순간에 대해 밝히려 노력했다. 레비나스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환한 기억 때문에 누구보다도 타자에 천착한 철학자였다. 그는 참혹한 비극 속에서 신체(에서 비롯되는 욕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설파했고 나아가 타자의 타자성을 존중하는 사유를 강조한다. 데리다는 유대인이어서 사유하고 저항했지만 자신에게 존재하는 배타성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차별점을 나타냈다. 


20세기 정치철학은 세 갈래로 분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인류의 기본 인권 신장과 물질적 풍요의 증진에 큰 공헌을 했고, 스스로의 위기를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돌파해나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정성, 경제적인 것에 의한 사회적인 것의 파괴, 그리고 제국주의적 정복과 전쟁이라는 문제점들을 노정하곤 했다. 이런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 사회주의 특히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평등을 지향하고,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실제 착취당하는 무산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곳곳에서 심각한 참극을 야기했고, 무엇보다 권력의 집중에 의한 각종 폐해를 낳기에 이른다(P615~616). 민족주의는 가시적이고 ‘자연적’/‘본능적’인 성격을 띠기에 일반 대중에게는 더 가까이 다가온 이념이었다. 근대 국민국가가 상당수 민족국가였기에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아래에서 실제 움직였던 것은 민족주의였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는 또한 국가주의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민족주의가 국가권력, 군사적 권력에 의해 장악될 때 파시즘이 등장한다. 파시즘의 경험은 특히 극악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때로 민족주의가 긍정적 힘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이는 제국주의적 저항이라는 상황에서 피지배 민족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민족주의이다(P617-618). 


4권은 특히나 현대를 이끈 정치 철학의 흐름까지 함께 엮어서 보니 세계 정치사적 흐름과 연관지어 확인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베르그송과 계몽 비판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전체주의 비판의 한나 아렌트, 마르크스를 소환한 데리다, 그 반대편에 있었던 후쿠야마의 철학을 비교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와 스피박도 언젠가는. 이 중 하나라도 파고드는 철학자가 나타날 수 있기를.

철학사의 흐름을 훓어보면서 내가 이론에 많이 취약하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아무래도 이론적 철학보다 실천 철학에 더 무게추가 기울 수밖에 없었는데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어떤 사태를 보든 현실성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나의 성향과도 연결된다. 철학(자들)을 만나는 일은 결국 내가 어디에 더 관심을 가지는지 들여다보는 계기도 되었다.


이렇게 탈근대 사유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으로 세계철학사 시리즈 읽기를 마무리한다. 결코 이해했다고 볼 수 없고 한 번 훓어보고 개념을 정리한다는 측면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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