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문학 선집 3 - 1945년~1950년대 전쟁과 생존 한국 여성문학 선집 3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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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민족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분단의 시작점인 시기이다. 한국사의 흐름은 여성의 인간(시민)적 자유를 턱없이 제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여성 해방의 의제는 먼 미래로 유예되었고, 남성을 민족적 개발 전사이자 방위군으로 내세운 초남성적 근대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에 이르면 여성들은 지극히 사인화사인화된 존재로 위치 지어지기 때문이다(P24).

해방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해외에서 갖은 수난을 겪다가 돌아온 남성 망명객의 감격으로 묘사되고, 한국전쟁의 비극은 어머니 조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남자의 훼손된 몸으로 은유된다. 이러한 묘사나 재현은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안전하며 이러한 안전은 남성의 희생에 빚진 것이라는 가정을 은밀히 유도한다(P26). 전후 여성 작가들은 남성중심적인 증언과 기억으로 인해 망각의 수렁에 빠진 여성들을 건져 내는 방식으로 기억 투쟁을 시도했다(P27). 


전후 1950년대 여성문학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백래시와 비슷한 상황으로 남성 문단 속에 인정을 받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그럼에도 여성 작가들은 펜을 꺾지 않고 문예지 대신 상업지에 글을 싣는 것을 선택했는데 활로 중 하나였다고 보여진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은 시간이 흐른 만큼 신구 작가들로 세대 교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최정희, 모윤숙, 노천명 등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구 작가들이 한편에 있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신진 작가들은 여성과 타자의 삶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 작품들은 전쟁 후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는 주제들이 많다. 캐릭터적으로 본다면 가부장제에 도전으로 비춰질만한 양공주의 등장, 이후 도전을 거듭하는 마녀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부장제의 허례허식을 꼬집고 그 속에서 여성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 여성 문학이 진정으로 시작된 시점은 이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정희는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구 작가를 대표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는 친일로, 해방 후에는 친미-반공의 색채를 담은 글을 발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앞선 2권에도 작품이 등장했지만 내가 리뷰에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이 작품 <풍류 잡히는 마을> 때문이다. 이 글은 몇 달 전 우연히 알게 되어 읽고는 싶었으나 오래 전 작품이라 지금은 읽기 어려워서 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리즈에 수록되어서 정말 반가웠다.


해방 후 남북은 각기 토지개혁을 한다. 일찍부터 토지 개혁을 한 북한과 달리 남한은 전쟁 직전에 가서야 부랴부랴 토지개혁을 했다. '개혁'이란 이름은 보수 집단에게는 위험한 명칭일 것이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본래 땅을 가진 지주는 자신의 땅을 내놓아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 법하다. 땅 한 줌도 가지지 못한 소작인들은 평생 자신의 땅 한 번 못 가져보고 인생이 끝나나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 때는 토지가 중요했고 지금은 집으로 바뀐 것만 다르지 않을까. 


토지개혁이니 뭐니 뭐니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소란할 뿐 우리 정부가 설 날도 막연한데 토지개혁이란 그리 쉽게 올 리 없을 게라고 지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도 어쩔 줄 아나 하는 마음에서 파는 땅이라 상답을 막우 내여놓지은 않었다. 따지고 본다면 토지개혁이란 최후의 선고장이 내리자면 아직 한참 될 것 같으니까 그동안에 나쁜 놈만 처분해서 그 돈으로 달리 이득을 볼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겠고 좋은 놈은 그대루 두었다가 토지개혁이 될 무렵에 땅이 좋으니만큼 욕심낼 자가 말겠으니까 그때를 봐서 할 일이고 혹시 그리 못되는 경우가 생기드라도 아직 그동안이 한참 될 상싶으니까 그새에 거기서 소출을 많이 내여서 가장 적은 폐해를 받자는 것이 지주의 생각이었다. - P70~71


서흥수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총독부나 면 소재지에 떡고물을 돌리다가 해방 후에는 군정청에 잘 보이기 위해 굽실거리면서도 소작인 등 자신의 일꾼들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었고 그만큼 처세에 능했기에 군정청 관리까지 거머쥔다. 하지만 그런 만큼 주변에 원한을 품은 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회갑 잔치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끝없는 낭만>에서는 미군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을 선택한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사랑으로 그를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주변의 말과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아버지 말씀을 믿어요?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셨어요. 돈 까닭에... 살 수가 없어서 미군하구 결혼했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지요? 절대로 돈 때문이 아닙니다. 돈 때문에... 살 수가 없어서 미군하구 결혼했다면 양갈보지 뭐예요? 나는 양갈보가 아닙니다. 「캐리·죠오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겁니다."

"그렇던가요? 그렇담 나 개인으로선 할 말이 없읍니다. 그러나 한국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으로선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차래 씨는 양갈보가 아니라고 자신을 변명합니다만 양갈보들에게 이야길 시켜 보더라도 역시 차래 씨와 똑같은 말을 할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산다고. 딸라가 탐나서, 호화로운 생활이 좋아서... 말하자면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따위 짓을 한달 여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이라거나 혹자는 부모 동기를 멕여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할 겝니다." - P92


지하련에 대해서는 지난 2권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작가인데 선집에서 만난 작가들 중 근대 초기 김명순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한 명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도 여러 작품들을 남겼지만 해방 후 작품인 <도정>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꼭 언급하고 싶었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개인의 내면은 단단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그 상황에서의 심리 묘사를 잘 표현해내었기 때문이다. 


이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엇인지 초조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반다시 울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튼 무슨 감동이든 한 번 감동이 와야만 할 판이었다. 어찌하여 나에겐 이것이 오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오지 않을 것인가? 온다면 언제 무슨 형태로 올 것인가? - P153

이 잠 오는 건, 어제 드러 새로 생긴 병이다. 무얼 생각하면 할수록 홀란하여, 갈피를 못 잡게 되면, 차츰 머리가 몽농하여지고, 그만 조름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 P154

노량진행 전차를 타고 섰노라니, 입속에서 뱅뱅 도는, 맴쟁이가 있다. 자세히 알어보니 별것이 아니라, 고대 막 조히우에 쓰고 나온 "소뿌르조아"라는 말이다. 그는 육 년 징역을 받은 적이 있는 과거의 당원인 자신에 대하여 무슨 보복이나 하듯, 일종의 잔인한 심사로 무심코 피식이 고소를 하는 참인데, 대체나 신기한 말이다. 과시 탄복할 정도로 적절한 말이다. ... 이 "심판" 아래, 이제 그는 고시라니 항복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이 헛전하도록 마음의 후련함을 깨닷는다-통쾌하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무엇인지 하나 가슴 우에 외처, 소생하는 것이엇다. - P165

주인공은 공산당 최고 간부인 지인을 만나 어떠한 결정을 하기 전까지 극도의 혼란을 겪는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에서 자아 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압박,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에서 어떠한 선택은 그 판을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한국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어떠한 이유에 의한 선택으로) 월북을 하거나 월남을 했고 이는 평생 더 이상 다른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작가 정충량도 남편은 북에 가고 아이를 데리고 월남한 경우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사회 운동가이자 문화부 기자, 논설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여전히 수많은 이산 가족과 그 후예들이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다 생각하면 너무나 서글픈 현실이다.


강신재는 나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작가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한 편의 글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시기적으로 좀 애매하게 걸쳐 있다는 생각이었다(그 이전 시기의 작가에 비해서는 새롭겠지만 내 나이에서 생각해보면 구시대적으로 느껴지는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어보니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과 비슷하게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의 억압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으나 그 표현 방식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나두 이전 들어누어서 얻어먹을 신세가 되었구나. 허 참」

「예편네 덕택에 시인 박형식도 일약 유명해지겠군. 어디 덕 좀 톡톡이 봅시다」 

성혜를 힐끔힐끔 바라다보며 입을 삐뚜리고 말을 한다. 그러다가 그의 눈은 차츰 더 붉게 되어 가면서

「집이라구 옛 참 방구석에 발을 부칠 수 없게시리 느러놓구서응? 문학이다? 것보담두 우선 양복바지에 푸레쓰나 한번 똑똑이 해놔 봐」

「.....」 - P230

길에는 한 사람의 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과 자옥한 안개에 쌓여서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형식은 불 밑에 책을 바싹 드려대고 그저도 정신없이 책장을 넘겨 재킨다.

성혜의 눈에 비친 형식의 모습은 한 개의 기괴한 피에로였다. 언제나 하듯 그대로 생각 밖에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우열한 피에로였다.

(싫어! 소설도, 공부도, 남편도, 사는 것도 다 싫어! 싫어!) - P246, 247


아내는 소설을 쓰는데 남편은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깎아내리는데 골몰한다. 비단 소설가라는 직업에 국한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기혼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래도 가정에 충실해야(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을 가진 기혼 남성들이 여전히 있다. 아내의 전문성을 깎아내리려는 태도에서는 열등감을 표출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3권 중 인상적인 작품을 고르라면 최정희의 <풍류 잡히는 마을>, 지하련의 <도정>, 강신재의 <안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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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2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민하다가 세트 펀딩은 못했는데 화가님 글 읽으니 부릉부릉 시동이 걸리려합니다.
작년 한국근대여성문학을 읽었을 때 이 시리즈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런지.. 아쉽네요.

소뿌르조아가 쁘띠 부르주아 인가보네요 ^^


친구한테 지하련의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를 선물받고 조금 보다가 말았는데, 이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지하련이 친구이자 애정의 대상인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있답니다. 생각난 김에 휴가 때 읽어보게 꺼내둬야 겠어요.

페크pek0501 2024-07-2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재 작가의 ‘젊은 느티나무‘라는 소설이 떠오릅니다. 그에게서 비누 냄새게 난다, 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ㅋㅋ
 
한국 여성문학 선집 2 - 1920년대 후반~1945년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한국 여성문학 선집 2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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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 선집 2권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의 여성 문학을 다룬다. 특히 중점적 시기는 1930년대다. 


1919년 삼일운동 이후 1920년대가 되면 사회주의 사상 유입으로 독립 운동은 반제국주의, 반식민 운동으로의 성격이 강해진다. 1925년 보안법 강화, 1928년 조선공산당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계급 차별 운동 등으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 민족, 계급은 근대문학 형성기를 특징 짓는 키워드들로서 좌와 우로 진자 운동을 하며 어떤 범주를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편소설, 장편소설, 서정시, 서사시와 같은 근대적 양식이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정착한 시기이기도 하다. …

여성문학 역시 1930년대 들어서면서 근대 초기 여성의 자각과 계몽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식민 현실과 교섭하면서 계급과 민족, 성 간의 교차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P17


1930년대는 여성문학이 식민 현실을 젠더의 시각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 낸 시기였다. 난민이나 유민이 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공감과 연대의 윤리로 포착하는가 하면 남성 중심의 가족 로망스와 윤리를 내파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장이 여성에게 부과한 '여성적' 글쓰기라는 틀과 '여성성'의 개념을 영리하게 전유해 여성성, 여성적 글쓰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와 가치 부여자에 따라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P34


박화성은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을 잇는 제2기 신여성 작가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여성 문제에 대한 의식은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에서 여성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내세워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목도하고 부딪치면서 제 나름의 현실 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그리며 보수적 성 규범을 탈피한 여성상을 창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록된 '추석 전야'는 노동 수탈과 성적 수탈을 함께 보여주는 소설이라 개인적으로 눈길이 많이 갔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소 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이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당기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

주인에게 갑시다. 내가 당신이 하던 짓을 다 말하고 결단을 낼 터이니..." - 추석 전야


공장 감독은 여성 노동자를 희롱하고 이를 본 동료 영신은 분노하여 감독에게 따진다. 애당초 기본 자금이 있을 리 만무한 가난한 계급의 노동자, 그것도 여성들은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성차별까지 감내야 하는 현실에 내몰렸다. 이를 보면서 1960년대 가발, 1970년대 의복 공장의 노동자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이 때의 여성들은 가장 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하필 추석이라는 시점이 절묘하다. 가족들이 모여서 화기애애해야 할 명절이지만 주인공은 사치와 여유 따위는 부릴 수가 없다. 자본주의란 이들에게 험난함의 대명사 같은 것이다. 일하다 어깨를 다친 영신은 밀린 아이의 월사금과 붉은 댕기를 사달라 조르는 아이의 마음을 내칠 수 없어 급하게 일거리를 찾는다. 

어릴 적 공과금, 급식비, 회비 등을 내지 못해서 자주 불려나간 경험이 있었다. 당시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으나 나중에 내가 직접 돈을 벌어보니 부모님이 그 때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겠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강경애는 빈농의 딸로 태어났기에 무산 계급에 대한 차별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식이 작품에서 눈에 띤다.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여성 단체였던 근우회에도 참가했다. 결혼해서 용정으로 이주한 뒤 조선인들의 현실을 담은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다. 만약 1944년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참 궁금하다. 


소금은 예로부터 모든 양념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귀한 취급을 받아왔다. 조선의 장 문화도 소금이 없으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당시 국경 근처에는 밀수입업자들이 목숨을 걸고 소금 거래를 위해 오갔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은 독립운동가 색출을 위해 친일 무장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독립운동 뿐 아니라 당시 근처에 거주 중인 조선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하나하나의 메주 덩이를 들어 보며 간장이나 서너 동이 빼고 고초장이나 한 단지 담그고... 그러자면 소금이나 두어 말은 가져야지 소금... 하며 그는 무의식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 또다시 고향을 그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향서는 소금으로 이를 다 닦았건만... 달리는 데도 소금 한 줌이면 후련하게 내려갔는데 하였다. 그가 고향 있을 때는 하도 없는 것이 많으니까 소금 같은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는지는 모르나 이곳 온 후로는 그는 소금 때문에 남몰래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소금 한 말에 이원 이십 전! 농가에서는 단번에 한 말을 사 보지 못한다. 그러니 한 근 두 근 극상 많이 산대야 사오 근에 지나지 못한다. - 소금, P216 


봉염의 어머니는 소금 밀수입을 위해 뛰어든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녀는 다른 남성 밀수업자들의 대열을 따라 붙었다. 솜옷을 입은 다른 밀수업자와는 다르게 봉염 어머니는 홑옷을 입은 데다가 발가락 나온 고무신을 신은 채 걸어야 했다. 남성 밀수업자들은 여섯 말의 자루를 든다고 하길래 호기롭게 네 말을 들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움을 견딜 수 없다. 가다가 순사를 만나거나 활동가들을 만날까봐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일본은 1925년 보안법 행사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소설의 결말은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흘러간다. 


모윤숙은 당시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다. 1940년대 조선임전보국단에 간사로 활동하면서 조선 여성을 적극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친미, 반공주의 입장에 뛰어들었다. 노천명도 식민지 말 친일 부역을 한 이력이 있으나 해방 후에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두 작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작품적으로도 노천명은 모윤숙의 강렬함과는 다르게 감수성이 더 느껴지는 편이다. 


해여진 치마보고 간난을 슬퍼할 때

어대선지 그얼굴은 가만히나타나

깨여진창틈으로속삭입니다

너는조선의딸이아니냐고.

그리운사람있어 눈물질때면

내억개 가만히 흔드는이있어

자비한목소리로들여줍니다

인생의전부는사랑이아니라고.

- 조선의 딸, P362


산넘어지나온저촌엔

은반지를사주고싶은

고운처녀도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네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남사당, P368


이들을 비롯해 송계월, 지하련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송계월은 짧은 삶을 살다 가서 참 안타까운 작가인데 이전에 전집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해서 더는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송계월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등 계급과 여성 문제에 천착한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지하련은 일제 시기 지식인의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를 다룬 작품을 여럿 남겼다는 점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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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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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 <인생>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고 해야 하겠지. 중국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번역본으로 함께 읽었다.


어느 청년이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원어 제목은 活着(활착: 살아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원어 제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1940년 후반 무렵부터 1960~1970년대 무렵까지 중국이 배경이므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비중을 높게 두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사건은 밑밥 역할만 할 뿐이고 그걸 맞닥뜨린 개인의 역경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게 될까.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사회 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개인의 환경에 따라, 사건을 맞닥뜨리는 태도와 자세, 행동력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젊은 시절 푸구이는 노름과 여자에, 폭력까지 쓰니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그래도 끝까지 캐릭터를 품기는 어려움). 아내인 자전, 딸인 펑샤, 아들인 유칭이 갈수록 안쓰러워 독서하면서 계속 눈물이 나 혼났다. 보통 슬퍼도 눈물 찔끔 흘리고 마는데 펑펑 울고 말았다.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 그래서 그 소중함을 잘 몰라 쉬이 지나쳐버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곤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 중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학교 친구는 학교를 떠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각자 일이 바빠 소원해져서 헤어지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직장을 떠나면 그만이다(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는 적이 거의 없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결혼 여부도 변수가 된다. 친한 친구들도 각각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무래도 각자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까. 그저 주기적으로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이 다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부고를 듣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위화의 부모님이 의사 출신이라 죽음을 간접적으로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상으로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과 평범함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가 은연 중에 드러나있다. 살면서 대박을 만난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1차적으로는 다행이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이는 부가적인 사항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아무리 힘겨워도 견디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을 통해서 남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폐 끼치지 않고 죽느냐, 죽을 때 내가 먼저 죽느냐, 나중에 가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전의 삶을 통해 얻었다. 결국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 하고 논란 만들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무척 어려울 듯).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원래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음표가 생긴다. 내가 먼저 죽는다면 그가 살아야 할 짊도 만만치 않겠구나, 그가 먼저 죽는다면 나도 또한 그리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살아온 세월만큼 그 그리움이 더해지지 않겠는가. 


사람도 때가 되면 익어야 하는 법이라네. 배가 다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천천히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사방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노을빛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평범해서 좋았던 문장들이 꽤나 많아서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다. 다만 주어진 환경이 다를 뿐이고 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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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7-2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이 본래 제목 쓴 거 보고 생각났어요 예전에 그 제목으로 나온 적 있다는 거... 그때 봤는지 ‘인생’으로 바뀌고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보기는 했지만 꽤 예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네요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자신이 정해야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7-23 17:18   좋아요 0 | URL
영화가 나온 지는 몰랐네요^^
내용만으로 보면 단조로운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인물의 상황에 이입되어서인지 감정을 끌어올리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갈수록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되네요^^; 희선 님 댓글 감사합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 1 - 1898년~1920년대 중반 여성문학의 탄생 한국 여성문학 선집 1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엮음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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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지식과 문화의 유입은 여성들의 삶과 지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학교를 비롯한 근대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자각한 여성 주체들의 움직임,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 개화 계몽의 열기로 꽉 찬 공론장의 부상은 여성의 읽기와 쓰기를 이끈 요인들이다. 이 시기 공적 담론은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를 통해 유포되었고, 이와 같은 공론장에 글 쓰는 여자가 출현한 것은 여성문학사의 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이다. 특히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의 강제 해산을 반대하며 대중들이 광장에서 연설의 장을 열었던 사건은 집 안의 여성들이 ‘소문’이나 ‘신문’이라는 간접화된 통로로나마 공론장의 열기를 경험하고 광장의 목소리를 내도록 촉발했다. <여자계>(1917), <신여자>(1920), <신여성>(1923) 등 여성 매체는 논설, 독자 투고뿐 아니라 수필, 소설, 시 등 문학적인 글쓰기를 훈련하는 장을 마련했다. 여성의 권리와 각성,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을 담은 이 시기의 작품들은 민족이나 가부장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개인의 목소리를 근대적 문학 양식에 담은 신여성에 의한, 신여성에 대한 글쓰기다. - P15~16


한국 여성문학 선집 시리즈는 남성 중심의 문학사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한국문학(사)에 여성문학을 여성의 관점으로 서술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다. 그동안 여성문학 선집이 출간된 이력이 있으나 대부분 시기가 1960년대 이전으로 한하고, 장르도 소설로 편중되어 있었다. 이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여성 연구자들이 20년 정도를 투자하여 특정 시기,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근현대 시기 여성 문학 텍스트를 엄선해 골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펀딩하기 전에 어떤 텍스트가 실릴지 감이 오지 않아 고민했었는데 막상 작가의 목록을 보니 아는 작가의 이름도 있지만 알더라도 이름만 아는 경우,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구입하기를 잘했다 생각한다. 시리즈는 총 7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898년 무렵부터 1990년대 이후까지 넓은 시기를 아우른다.


1권은 한국 여성문학이 탄생한 시점인 독립협회 활동 시기인 1898년부터 1920년대까지를 다룬다. 


성상 폐하의 외외탕탕하신 덕업으로 임어하옵신 후에 국운이 더욱 성왕하여 이미 대황제 위에 어하옵시고 문명개화할 정치로 만기를 총찰하시니 이제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가 성의를 효순하야 전일 해태한 행습은 영영 버리고 각각 개명한 신식을 준행할 새 사사이 취서되어 일신우일신 함을 사람마다 힘쓸 것이어늘 어찌하야 일향 귀먹고 눈먼 병신 모양으로 구습에만 빠져 있나뇨. 이것이 한심한 일이로다. 혹자 이목구비와 사지오관 육체가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야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 - 여학교설시통문, 이 소사 김 소사 , P36~37


이 글의 주인공은 두 ‘소사’다. ‘소사’는 결혼한 여성을 일컫는 말로 이 소사는 양성당 이씨로 왕가 종신 출신이었고, 김 소사는 양현당 김씨로 순성여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인물이다. 양성당 이씨는 찬양회 회장이었기도 했다. 찬양회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 여기고 순성여학교 설립을 후원하는 역할을 한 모임이었다. 찬양회는 이후 나오게 되는 여성 단체들의 모델이 되었다.

이 글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당시는 대한 제국이 있던 때로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를 새울 취지를 남긴 글이다.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는데 남자가 주는 것만 받아 먹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띈다. 


길바닥에, 구을르는 사랑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나와

사람 사람의 귀를 흔들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처녀의 가슴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

눈먼 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착한 여인들의 한을 지었다

‘사랑’이란 거짓말아.


내가 미덥지 않은 미덥지 않은 너를

어떤 날은 만나지라도 기도하고 

어떤 날은 만나지지 말라고 염불한다

속이고 또 속이는 단순한 거짓말아. 


주린 이의 입에서 굴러서

눈먼 이의 손길에 부서지는 것아

내 마음에서 사라져라

오오 ‘사랑’이란 거짓말아! - 저주, 김명순, P53




아랫목 벽에 걸린 로댕의 ‘다나이드’를 사진 박은 그림이며 머리맡에 롱펠로의 ‘화살과 노래’란 영시를 흰 비단에 옥색으로 수놓은 족자며, 또 이름 모를 물새가 방망이에 붙들어 매이어서 그 자유인 오 촌 가량의 범위를 못 벗어나고 애쓰는 그림이 어느 것이나. 자유를 안타깝게 바라는 소련의 취미가 아니랴. 이런 것들을 뒤돌아 보는 소련의 마음이 어찌 대동강의 능라도를 에두른 이류가 합쳐지지 않기를 바라랴. 흐름은 제방을 깨뜨린다! - 도라다볼때, 김명순, P123


1권에 등장하는 작가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이가 김명순이다. 일단 생각이 깨어 있다는 것에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글을 정말 유려하게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을 보면 평소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경험하는지 절로 알게 된다. 

그녀는 특히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겼다. 김명순은 매일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했고 개인 시집을 내기도 했으며 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발간된 조선 시인 선집에 여성 작가로 유일하게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저주>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얼마나 덧없고 유한한 감정인지 알 것이다. 이를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도라다볼때>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 여자의 감정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박사가 된 여성의 설정은 당시 신여성의 트렌드를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니 내가 생각하는 이성은 그이와 같은 이는 아니었나이다. 남성답지도 못하고 줏대가 없고 여자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이왕 상당한 아내를 둔 이상 절대로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는 자각이 없는 그이었나이다. 

내가 처음에 그를 사랑한 것은 이성이라고는 도무지 접촉해보지 못하다가 부모의 명령으로 눈감고 시집을 가서 친절하게 구는 이성을 대하니 자연 정다워진 데 지나지 않는 것나이다. - 자각, 김일엽, P223


우리의 조선 여자 사회는 아직도 유치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 이때는 어느 때입니까? 세계는 바야흐로 개조가 되려 하고 새 문명의 서광은 훤-하게 비치옵니다. … 몇 세기를 두고 우리를 냉혹하게도 압박하고 우리를 극심하게도 구속하던 인습적 구각을 깨뜨리고 벗어나서 우리 여자가 인격적으로 각성하여 완전한 자기 발전을 수행코자 함이외다. 남자들은 이를 이르되 파괴라, 반항이라, 배역이라 하겠지요. 고래로 우리 여자를 사람으로 대우치 아니하고 마치 하등 동물같이 여자를 모두 몰아다가 남자의 유린에 맡기지 아니하였습니까? -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김일엽, P232~233


김일엽은 이화학당 출신으로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주인공이다. 이후 입산 후 수계를 받았다. 시나 소설보다는 논설이나 수필을 많이 썼다. 

<자각>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남편이 결국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뒤 여자가 모진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는데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지만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서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자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환경이 바뀌어도 본인이 깨닫지 않으면 결국 변할 수 있는 기회는 없으니까. 

수필이나 논설을 많이 썼다고 하더니 역시 달랐다. 소설보다 아래 논설문의 글이 훨씬 좋았다. 읽고 있으면 절로 손목을 불끈 쥐게 된다.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 인형의 가 제3막, 나혜석, P240


나혜석은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글(이는 그림도 마찬가지)을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작품들이 적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녀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정신여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고 매일신보에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삼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다른 독립 운동가들을 돕기도 했다. 화가로서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꾸준히 입선하는 등 그녀는 참으로 귀재였다. 

<경희> 등 여러 소설을 남겼다. <인형의 가>는 조선판 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는 주체성의 포효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앞에는 원문, 원문이 끝난 뒤에 현대어를 실어 두어서 보기가 좋았다. 원문이 해석이 어렵지는 않지만 단 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아무래도 오늘날과 다른 철자의 표기, 띄어쓰기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능한 원문으로 읽어보고 뒤에 현대어로 변경된 부분을 읽는다면 비록 그 시기를 경험하지는 못했더라도 작품을 통해서 그 시간을 더 잘 경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2권은 1920년부터 1945 해방 이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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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 정승화, 장태완 등 관련자 100인의 증언과 사진으로 재구성한 12·12 그날의 진실
이계성 지음 / 폴리티쿠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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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매스컴 사진 및 영상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죄수복을 입은 두 사람, 전두환과 노태우다. 어릴 때라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음에도 뇌리에 강렬했던 모양이다. 그 때는 그저 그들이 부패한 죄로 사법대에 올랐다고만 생각했다. 정치는 무관심이었고 그저 노래 듣고 부르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책은 30 년전 5.18 진상 조사로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법 심판대에 올랐을 때쯤 출간되어 나왔다가 올해 5.18 무렵 수정되어 다시 나왔다. 작가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당시 상황을 궁금해 하는 젊은 층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12.12 쿠데타 전후 사정을 실고 각주 등을 보충하는 등 작업을 추가했다고. 12.12를 잘 모르거나, 타이틀만 알고 있거나, 안다 해도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책이다. 작가가 기자라 그런지 글이 마치 르포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장감이 넘쳐서 쉴 틈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신군부 세력은 12.12를 왜 일으켰는가?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궁금증을 위해서는 그 배경을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체로 10.26 이후 전두환 및 신군부 세력이 정권 장악을 준비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꼭 쿠데타여야 했는가.'를 답하기 쉽지 않다. 책에서도 살펴보듯 군 내부, 정부 부처 인맥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씨앗임을 알아야 비로소 사건의 본질에 가 닿을 수가 있다. 

사건의 발단은 윤필용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윤필용 사건은 1972년 유신 마무리 후 1973년 유신의 주역이었던 세력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박종규는 경호실장, 강창성은 보안사령관이었고 윤필용은 수도경비사령관이었는데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과 윤필용 간에 밀착이 이루어지자 박종규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윤필용이 유신 자축 모임에서 이후락에게 한 '각하(박정희)가 노쇠하였으니 다음은 이후락(형님) 차례' 발언을 꼬투리 삼아 그를 끌어내리고자했다. 발언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사건을 조사하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군 세력이 경상도 출신으로 걸러지게 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하나회 세력에게는 기회가 된 셈이다.   


책을 읽으며 12.12와 관련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었던 여러 순간들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질문이 생겨나더라. 


먼저,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가장 놀랐던 것은 정승화 총장이 쿠데타 당일 오후 전두환을 불러 미팅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때 전두환의 숨은 의중을 파악했어야 하는데... 


2. 정승화 총장 납치를 위해 온 보안사 인력과 방어 세력 간의 충돌로 총격전이 벌어지자 순찰 중이던 경비대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공관경비대장인 황인주 소령과, 반일부 준위는 반대편 방향에서 몰려오는 육본 헌병 병력(33헌병대 소속 병력)과 마주쳐 그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육본 병력은 정승화 총장 연행 때 문제가 될까봐 합수부에서 파견한 인력들이었다. 이들이 약간의 시간차로 부딪치지 않았다면 납치되던 정승화 총장의 차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면?


3. 전두환은 반란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을 얻기 위해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 갔다. 최규하는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얻어 오라며 재가를 거부하며 버텼으나 결국은 막판에 전두환의 손을 들어줬다. 최규하가 끝까지 재가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꽤 오래 버티기는 했지만)


4. 윤성민 참모차장은 사태를 확인하고 반란군을 단호히 진압하기로 결심한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휘하 병력을 확실히 장악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국방장관에게 계속 연락을 취했으나 실패하자 총리 공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로부터 통화를 거부당하고 말았다. 대통령과 참모 차장이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면?


5. 육본 지휘부 세력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쿠데타 대응에 철저히 실패했다. 리더가 부재했다고는 하나 신군부의 쿠데타임을 인지하여 공격을 감행하는 식으로 전두환 측에 대응했다면? 


6.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사태 마지막까지 본분을 지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초기 진압 작전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는 성공했다. 그가 최소한 자리를 지켜 지휘권을 행사했다면 어땠을까? (본인의 소임을 다 했다면)


7. 신군부는 1공수여단을 서울로 진입시켰다. 이에 장태완 수경 사령관은 30사단 박희모 소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병력을 동원하여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을 막아달라 요청했다. 그러나 박 사단장은 육본과 합수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결국 합수부 측의 지시를 따라 서울 주요 통로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그가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지시를 따랐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이 떠오르거나 인상 깊은 장면도 많았다.


1. 전방에 있던 9사단과 제2기갑여단을 서울로 불러들인 합수부 측은 과연 국가를 위한 선택이라 말할 수 있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반격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과정에 의한 수단이 아니었나.


2. 쿠데타 당일 밤 육본 참모회의가 열렸다. 전방 사단 병력들은 장관 없이 병력 동원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는 상황에서 윤성민 참모차장은 참석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장태완 소장은 명령부터 내려야 한다고 단언했고 이 의견에 찬성한 것은 유일하게 군수 참모부장인 안종훈 소장 뿐이었다. "군인의 사명에 따라야 하는 우리 고급 장성들이 우리만 살겠다고 쿠데타군에 손을 들자는 거요?"(P299) 그의 말은 백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종훈 소장은 5.17 전국 계엄 확대 회의 때도 소신 발언을 했다는 것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중심을 지키는 군인들은 내쳐지고 권력 맛을 아는 인간들만 승승장구를 했으니 참...


3. 전두환은 쿠데타 이전부터 군 개편을 구상했고 정승화 총장의 혐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박정희 시해 동조자로 몰아 반란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선배 장성들을 모으면 정승화를 연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생각한 그 자신감이 소름끼친다.


4. 신군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12.12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인 위컴은 전방 부대를 서울로 진입시킨 것에 특히 분노했다. 군 핵심 전방 부대를 쿠데타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12.12 사태를 10.26 사건 수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신군부는 이후 정치에 가담하지 않을 거란 약속을 하며 빠져나갔다.


1980년 3월 5일 정승화 총장은 내란방조죄 혐의를 받아 재판부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 범인임을 알고도 나라의 실권자가 될 것으로 판단해 그의 내란 행위를 도왔다.'고 공소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정승화 변호인 측은 내란 행위 여부가 논란인 상황에서 공판은 대법원 판결 후로 연기해야 한다며 공판 기일 변경 신청을 했으나 재판부는 그 요청을 기각해버렸다. 군검찰은 내란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물증이 아닌 심증만으로 불충분함이 발견되어 확인 과정에서 7년형으로 확정됐다.  


같은 해 4월 14일 전두환은 기존 보안사령관에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직하게 되면서 막강한 권력자의 지위에 오른다. 바깥은 개혁의 바람으로 일명 '서울의 봄'이었지만 그는 사실상 권력의 정점에 오르며 국가를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착착 해 나가고 있었다.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겸직 요구를 관철하려할 때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최광수 비서실장을 압박하는 등 여러 사정이 있었다는데 과연 최규하 대통령은 이 때 전두환을 올리는 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12.12 쿠데타 사건을 책을 통해 복기하면서 노재현 국방 장관과 최규하 대통령의 진심이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망한 두 사람의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영화 <서울의 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완독하고 이제서야 보았다. 영화는 빠른 전개로 쉴틈없이 몰아치지만 아무래도 등장 인물이 가명을 사용하고 사건을 아무래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설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보충 자료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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